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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 성호사설 제29권 > 시문문(詩文門) >천자문(千字文)

청풍선비 2011. 4. 19. 18:06

 성호사설 > 성호사설 제29권 > 시문문(詩文門) >천자문(千字文)

 

유후촌(劉後村)이, “《천자문(千字文)》을 세상에서는 양(梁) 나라 산기상시(散騎常侍) 주흥사(周興嗣)가 지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법첩(法帖) 가운데 한 장제(漢章帝)가 이미 이 글을 쓴 것이 있으니, 아마 양 나라 사람이 지은 것은 아니리라.” 하였으므로, 뒷사람은 끝내 이 말을 믿고 한(漢) 나라 때에 이미 이 글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의 소견으로는, 《천자문》가운데, “두백도(杜伯度)의 고초(藁草), 종요(鍾繇)의 예서(隸書)[杜藁鍾隸].”라는 것과, “여포(呂布)의 사(射), 혜강(嵇康)의 거문고[布射嵇琴].”와 “완적(阮籍)의 휘파람, 채윤(蔡倫)의 종이[阮嘯倫紙].”라는 등의 말이 있으니, 이 사람들은 모두 한 장제의 뒤에 난 사람들이며, 또, “기리계(綺里季)가 한 혜제(漢惠帝)에게 돌아왔다[綺回漢惠].” 하였으니, 장제의 입으로 이같은 말이 선뜻 나왔겠는가?
이로 미루어볼 때, 장제의 글씨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양 무제(梁武帝)가 은철석(殷鐵石)을 명하여 왕우군(王右軍)의 글씨 천 자를 모해 내서 주흥사를 시켜 차운하게 하였으므로, 그 글이 현저히 편차(編次)에 구애 받은 흔적이 있어 아정(雅正)하지 못한 데가 많으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지금 법첩의 그릇된 점으로써 심지어 양(梁) 나라 시대의 글이 아니라고까지 의심한다면 이는 지나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