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사설 > 성호사설 제2권 > 천지문(天地門) >고려비기(高麗秘記)
성호사설 > 성호사설 제2권 > 천지문(天地門) >고려비기(高麗秘記)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비기(秘記)가 많았다.
당(唐) 나라가 고구려를 칠 때, 가언충(賈言忠)이 일을 계획하고 돌아오니, 제(帝)가 군중(軍中)의 일을 묻자, 충언이 군중사는 대답하기를, “반드시 제압할 것입니다. 그곳 비기에 ‘9백 년 못 가서 80대장이 고씨를 멸하리라[不及九百年 當有八十大將滅高氏].’ 했으니, 한(漢) 나라가 나라를 둔 지 올해로 9백 년이고 이적(李勣)의 나이가 80세입니다.” 했는데, 그 비기라는 것이 사군(四郡) 때에 나왔다고 하니, 9백 년을 거꾸로 계산한 것이며 과연 증험했던 것이다.
고려 숙종 때에도 김위제(金謂磾)가 올린 글에 도선(道詵)의 답산가(踏山歌)를 인용하여,
삼동에 해가 뜨니 평양이 있네 / 三冬日出有平壤
했으니, ‘삼동에 해가 뜬다.’고 한 것은 손방(巽方)의 목멱(木覓)으로, 송경(松京)에서 동남쪽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던 것이며, 또한 《신지비사(神誌秘詞)》를 인용하여, “마치 칭추(稱錘)ㆍ극기(極器)와 같으며 칭간(稱幹)은 부소(扶疎)이다.” 했으니, 칭추라는 것은 오덕(五德)의 땅이요, 극기는 백아강(白牙岡)이니, 이것은 저울로써 삼경(三京)을 비유한 것입니다. 송악(松岳)이 중(中)이 되고 목멱이 남이 되며 평양이 서가 되므로 극기라는 것은 머리요, 추(錘)라는 것은 꼬리이며, 칭간이라는 것은 벼리[綱]를 거는 곳이니 송악이 부소가 되어 칭간에 비유되고, 평양[西京]이 백아강이 되어 칭수(稱首)에 비유되며, 삼각산(三角山)의 남쪽이 오덕구(五德丘)가 되어 칭추에 비유된 것입니다.
오덕이라는 것은, 가운데 있는 면악(面岳)이 원형(圓形)으로 토덕(土德)이 되고, 북쪽에 있는 감악(紺岳)이 곡형(曲形)으로 수덕(水德)이 되며, 남쪽에 있는 관악(冠岳)이 첨예(尖銳)하여 화덕(火德)이 되고, 동쪽에 있는 양주(楊州) 남행산(南行山)이 직형(直形)으로 목덕(木德)이 되고, 서쪽에 있는 수주(樹州)의 북악(北岳)이 금덕(金德)이 되므로……”라고 했으니, 극기라는 것은 저울머리에 물건을 담는 그릇을 가리키는 것으로 저울대의 가볍고 무거우며 처지고 솟는 것이 모두 다 저울추에 달려 있으니, 지금 우리 한양의 도읍이 삼경 중에는 가장 중요한 곳이 되는 것이다.
《신지비사》라는 것은 어느 사람이 지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역시 우리 성조(聖朝)의 문명지치(文明之治)를 예견했으니 이상하다 하겠다.
숙종이 삼각산 면악 남쪽 원줄기 중심 대맥(大脈)에 임좌 병향(壬坐丙向)으로 남경(南京)을 세우고, 때때로 순유(巡遊)하다가 미처 옮기지 못했었는데 신우 8년에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고 공양왕 2년에 다시 도읍을 한양으로 옮겼으나 운이 이미 다 끝났으니, 비록 옮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근세에 또 의상(義相) 남사고(南師古)의 기록이 있어 어리석은 사람들이 혹 준거해 믿으니 이것은 다 불초남자(不肖男子)의 망령된 말을 믿는 것이다. 하나같이 증험이 없으니 우습다 하겠다.
[주D-001]제(帝) : 여기서는 당 태종(唐太宗)을 가리킴.
[주D-002]나라 : 여기서는 한사군을 가리킴.
[주D-003]삼경(三京) : 송경ㆍ서경ㆍ남경으로, 지금의 개성ㆍ평양ㆍ서울을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