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선비 2011. 8. 12. 17:19

- 열 네 번째 이야기
2011년 8월 11일 (목)
칠석(七夕)

은하는 맑고 달빛도 풍요로운데
신선이 이 밤에 만나는 것 또한 좋으이
인간 세상의 수많은 까막까치들
해마다 오작교 만드느라 고생하오

銀河淸淺月華饒
也喜神仙會此宵
多小人間烏與鵲
年年辛苦作仙橋

- 임춘(林椿)
〈칠석(七夕)〉세 수(首) 중 첫 번째 시
《서하집(西河集)》(한국문집총간 1집)

  은하수와 달빛, 견우와 직녀의 만남, 까마귀와 까치가 지어주는 오작교(烏鵲橋) 등 칠석의 주요 아이템을 빠짐없이 다 갖추었으면서도 평이하고 담담하게 서술한 맛깔난 시이다.

  물이 맑고 얕아지며 달빛이 풍요로운 것은 가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칠석은 양력으로 8월이라 아직 덥지만 칠석 며칠 뒤가 바로 입추이니 사람들이 여름에 지쳐있는 사이에 가을은 어느새 턱밑까지 다가선 것이다. 이런 좋은 밤이 바로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번 만나는 때이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은하가 가로 놓여 만나지 못하자 인간세상의 까막까치가 날아가 직녀와 견우의 만남을 위한 다리를 놓는다. 얼마나 가슴 뛰는 로맨스인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이 설화의 직녀성과 견우성은 사실 독수리별자리[鷲星座]의 알타이르(Altair)별과 거문고별자리[琴星座]의 베가(Vega)별을 말하는데, 이 두 별은 사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빛의 속도로 다가가도 몇 십 년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한다는 그런 이야기는 여기서 무의미하다. 인간 세상에서는 이들의 만남을 의심치 않아 예부터 부인들은 음식을 차려 직녀처럼 바느질 솜씨가 좋아지길 기원하고, 수고하는 까마귀의 밥을 지어 올려 자손들의 명을 빌며, 한해 농사의 풍흉을 점쳐 왔다. 아울러 이즈음에는 으레 비가 오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대비도 했으리라.

  지난 주 토요일이 견우와 직녀가 일 년에 한 번 만난다는 칠석이었다. 칠석날에는 대체로 비가 내리는데 낮에 오는 비는 기쁨의 눈물이고 밤에 오는 비는 슬픔의 눈물이라고 한다. 토요일 낮엔 소나기가 왔지만 저녁에는 수줍은 듯 구름에 숨은 반달을 볼 수 있었으니 충분히 회포를 풀어 이별의 눈물은 없었나보다.

  유독 비피해가 많아 고달팠던 올 여름, 북태평양 고기압의 이상 발달이나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 이변, 이런 복잡한 분석보다 때로는 하늘의 연인들의 만남을 위해서라는 신화가 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지 않을까. 현대에도,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을 이야기로 풀어내어 마음의 여유를 찾게 해주는 신화가 필요하다.

 

글쓴이 : 김성애(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