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나무에 핀 꽃 |
이른 봄이라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들판에 아직 초록은 보이지 않고 간간이 홀로 피어 있는 복사꽃, 살구꽃만 유난히 눈에 띈다. 작은 나무에 핀 꽃일수록 더 또렷하고 사랑스럽다. 문득 “외로운 나무에 핀 꽃이 절로 분명하여라.”라고 노래한 두보(杜甫)의 시구가 생각난다. 아, 이 아름다운 풍경을 단 한 구절로 이토록 잘 그려 놓다니. 정녕 한 폭의 작은 그림이다. 좋은 시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우리 가슴에 오래 남아 있다가 뜻밖의 정경을 만나면 이렇게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곤 한다. 내가 이 시구를 특히 좋아하는 까닭은 이 뿐만은 아니다.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길 바라지 않고 향기로운 삶을 사는 군자의 모습이 외로운 나무에 핀 꽃과 겹쳐서 떠오르곤 하기 때문이다. |
선생이 신유년(1561) 3월 그믐에 계재(溪齋) 남쪽으로 걸어 나와 이복홍(李福弘), 덕홍(德弘) 등을 데리고 도산(陶山)으로 가다가 산 위의 소나무 아래 잠시 쉬셨다. 당시 산에는 꽃이 활짝 피었고 내 낀 숲은 봄기운이 아련하였는데 선생이 두보(杜甫)의 시구를 읊으셨다.
소용돌이 물에 목욕하는 해오라기는 무슨 마음인가 외로운 나무에 피어 있는 꽃이 절로 분명하여라
덕홍이 묻기를 “이 시의 뜻이 어떠합니까?” 하니, 선생이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하는 군자가 목적을 두어 작위(作爲)하는 바 없이 자연스럽게 사는 모습이 이 뜻과 은연중에 합치한다.” 하셨다. “해오라기가 목욕하는 것은 누구를 위해 자신을 깨끗이 하는 것이겠습니까. 꽃은 자연스런 모습으로 분명하고 자연스럽게 향기를 풍기니, 누구를 위해 그러한 것이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선생이 “이것이 목적을 두어 작위하는 바 없이 자연스럽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한 증거이다. 학자가 모름지기 이 이치를 체험하여 바른 의리를 지키고 자신의 이익을 꾀하지 않으며 정도를 밝히고 공효를 따지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이 시구의 꽃, 해오라기와 다름이 없겠지만 만약 터럭만큼이라도 목적을 두어 작위하는 마음이 있으면 학문이 아니다.” 하셨다. 완락재(玩樂齋)에 이르러 절우사(節友社)의 매화 아래 앉아 계시는데 어떤 중이 와서 남명(南冥)의 시를 바쳤다. 선생이 몇 번 읊조리고 말씀하시기를 “이 분의 시는 으레 몹시 특이하고 어려운데 이 시는 그렇지 않구나.” 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차운하여 주시고는 또 절구 한 수를 지으셨다.
꽃은 바위 벼랑에 피고 봄은 고요한데 새는 시냇가 나무에서 울고 물은 잔잔하네 우연히 산 뒤쪽으로부터 동자 어른들 데리고 한가히 산 앞에 이르러 고반(考槃)을 바라본다
덕홍이 묻기를 “이 시에는 기수(沂水) 가에 노니는 즐거움이 있어 일상생활 중에 천리(天理)가 위아래에 다 같이 막힘없이 유행(流行)하는 오묘한 경지가 있습니다.” 하니, 선생이 “이런 뜻이 조금 있긴 하지만 추측하여 말한 것이 지나치게 높다.” 하셨다. |
[先生辛酉三月晦, 步出溪齋南, 率李福弘德弘等, 往陶山, 憩冡頂松下一餉間. 時, 山花灼灼, 煙林靄靄; 先生詠杜詩“盤渦鷺浴底心性 獨樹花發自分明”之句. 德弘問: “此意如何?” 先生曰: “爲己君子無所爲而然者, 暗合於此意思.” 問: “鷺浴爲誰潔己? 花發自在而明, 自在而香, 曾爲誰而然也?” 先生曰: “此無所爲而然者之一證耳. 學者須當體驗, 正其誼, 不謀其利, 明其道, 不計其功, 則與花鷺無異矣. 若小有一毫爲之之心, 則非學也.” 到玩樂齋, 坐節友社梅下. 有僧進南冥詩; 先生吟詠數遍曰: “此老之詩, 例甚奇險, 此則不然.” 因次以贈, 又作一絶云: “花發巖崖春寂寂, 鳥鳴磵樹水潺潺. 偶從山後携童冠, 閒到山前看考槃.” 德弘問: “此詩有沂上之樂, 樂其日用之常, 上下同流, 無所滯礙之妙也.” 先生曰: “雖略有此意思, 推言之太高耳.”] |

▶ 어해도(魚蟹圖)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