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산뜻한 한국사 이야기 없을까? 언제나 새 학기를 준비할 때면 일어나는 마음의 갈증이다. 언젠가 “바다로 보는 한국사”라는 주제로 수업을 한 일이 있다. 수업 후반부에는 해양수산부 발간물의 도움을 받아 우리나라 해역을 <서해 해역>, <서남해 해역>, <동남해 해역>, <동해 해역>, <제주 해역>의 5개 해역으로 나누어 각 해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학생들이 발표하는 자리가 있었다. 나름대로 기대가 컸다. 국사와는 다른 지역사, 그것도 ‘해역사(海域史)’가 아닌가! 결과는 해역마다 제각각이었다. 이야깃거리가 가장 많은 해역은 <서해 해역>이었지만 <서해 해역>의 역사는 가장 산뜻하지 않았다. 거의 국사책을 다시 본 듯한 느낌이었다. 그럴 수밖에. 백제, 고려, 조선의 수도가 이 근방에 있었으니 말이다. 이야깃거리가 가장 적은 해역은 <동해 해역>이었다. <동해 해역>은 상대적으로 역사보다는 민속에 가까운 편이었다. 그러면 이야깃거리도 많으면서 산뜻한 역사 지식을 선사하는 곳은 어디였을까. 그것은 <제주 해역>이었다. <제주 해역>은 탐라국의 고유한 지역적 전통이 있었고 한반도의 안과 연결된 역사와 한반도의 바깥과 조우한 역사가 중첩해 있는 이색적인 지역이었다. 근대 국민국가를 위해 만들어진 단일한 국사 이야기가 마치 낡은 녹음테이프가 반복되는 듯 느껴질 때, <제주 해역>은 참으로 풍부하고 산뜻한 역사 자원을 갖추고 있는 듯이 보였다. 지방사와 국사와 세계사가 동시에 펼쳐진 국카스텐 같은 곳? 아무튼 거꾸로 읽는 역사만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쪼개서 읽는 역사도 재미있음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로컬하게 쪼갤수록 글로벌하게 읽힌다는 역설적인 재미 말이다.
하지만 한국사에서 제주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실 우리 역사에 제주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세계사에 유례가 드물게 한반도에서는 후삼국시대 이후 천 년간 단일한 국가가 지배해 왔고 그랬기에 한국사의 복수성(plurality)을 역사적으로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역사적 주체로서 우리가 하나가 아니라 둘 이상이라는 생각, 또는 우리 안에 또 다른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한국사는 중국사나 유럽사와 달리 삼한일가(三韓一家)로 표상되듯 일찍부터 일가(一家)를 만들었던 놀라운 역사 아닌가?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문화적으로 균질적인 한반도 중심부 위주의 생각일 수 있다. 우리나라 강역은 그러한 전형성을 넘어선다. 이와 관련하여 장지연(張志淵)은 19세기 말 대한제국이 왜 제국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두 가지 증거를 제시한 일이 있다. 대한의 지역적 구성을 보면 이미 조선시대부터 남으로 탐라와 북으로 말갈을 아우르는 제국의 공간을 갖추었고 또 중국에서 명이 멸망한 후 대한이 진정한 역사적 계승자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우리 역사 안에 적어도 탐라와 말갈이 속해 있다는 사실, 비록 장지연은 이를 통해 단지 제국의 성립 요건을 추구한 것이지만 어쩌면 지금의 시점에서 본다면 우리 역사의 복수성, 다양성, 다원성을 사유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역사 안에서 제주라는 타자를 오랜 기간 품어 왔던 역사적 경험을 통해 내부적인 타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단일성에 집착하는 소국의 마인드에서 벗어나 복수성을 성찰하는 대국의 마인드를 갖출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다시 제주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남북분단과 6.25사변을 전후한 시기 이 땅의 백성들은 체제와 이념이 다른 한 민족 두 국가에 의해 처참한 고통을 당하였다. 냉전 체제에 편승한 공산주의와 반공주의의 광신(狂信) 앞에 보편적인 인도(人道)는 설 곳이 없었고 폭력적인 국가 권력으로 인해 백성들은 자신이 입은 고통을 발설조차 못한 채 영원한 침묵을 강요당하였다. 제주의 4ㆍ3 역시 그러한 비극의 하나였다. 제주도 유학자 김석익이 제주도 현대사에 해당하는 「탐라기년보유」에 기록하였듯이 당시 제주도에는 ‘살육의 정치’가 자행되고 있었고 제주도 도민은 ‘산중의 포로가 되지 않으면 군(軍)ㆍ경(警)ㆍ청(靑)의 총검 아래에 모두 죽고야 말았다.’ 그리고 반공 국가 대 빨갱이라는 인식구도하에 생존자들은 철저히 타자화되어 존재의 망각과 기억의 말살을 강요당하였다. 현기영의 ‘순이 삼촌’이야말로 냉전 체제의 반공 국가에서 양산된 우리 안의 타자를 대표하는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국 현대 우리 안의 타자가 어디 그 뿐인가. 멀리는 ‘순이 삼촌’에서 가까이는 탈북자와 다문화가정에 이르기까지 목하 한국 사회는 내부적인 타자가 전례 없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 내부적인 타자를 모두 아우르는, 타자와 소통하는 역사학이 절실히 요청되는 지금, 제주는 그러한 역사학적 성찰의 특별한 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끝으로 투철한 의식으로 제주 현대사까지 한문으로 기록한 김석익의 사학 정신에 감탄을 표한다. 20세기 격동의 세월을 살았던 선인들의 치열한 ‘근대 한문’, ‘근대 문집’ 앞에 아무런 철학 없이 글자 뜻이나 따지는 훈고학이 행세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