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라서 유달리 추운데다 동짓달이라 추위가 닥쳐와 입이 덜덜 떨립니다. 요즘 추운 날씨에 벼슬살이에서 평안하심을 살펴 알았으니, 송축합니다. 다만 지난날 외진 산골에서 쓸쓸히 사실 때나 현재 요직에 올라 현달한 때나, 만난 처지를 그대로 받아들이실 뿐이겠지요. 나 같은 사람은 외진 강가에 틀어박힌 채 마음대로 찾아가 만나지도 못하고 있으니, 물고기와 새에게 비웃음을 받기에 알맞고, 또한 이내 삶이란 것이 깊은 산 속 노승(老僧)의 찰나만도 못합니다. 우스운 노릇입니다. 머잖아 한 번 찾아 주신다니, 참으로 몹시 바라던 바입니다. 그렇지만 과연 번잡한 일들을 떨쳐버리고 한가한 틈을 내어 오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추위가 겁나서 집안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중씨(仲氏)의 행차는 평안히 돌아왔다니, 다행입니다. 써주신 연구(聯句)는 잘 받았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江寒又是一之日, 冷薄波吒, 不可禁當. 卽承審觱發, 仕體文祉, 耿誦. 第往境之窮山沈淪・現在之當路騫翥, 隨遇而銷受已耳. 但吾輩之一隅江干, 不能恣意攀追, 適足爲魚鳥笑人而已, 亦不滿深山老古錐一彈指, 且呵. 非久一存, 是固深企, 果復撥諸冗, 作漫汗耶? 戚從怯寒癡頑. 仲行穩旋是幸. 張聯領完. 姑不備.]
- 김정희(金正喜) <이석농-종우-에게 주다[與石農 鍾愚]>《완당집(阮堂集)》 |
추위의 여세가 곧장 세밑까지 이어진데다 썰렁한 강 기운마저 엄습하니, 동파(東坡)의 지옥(紙屋)과 죽탑(竹榻)으로는 월동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고, 당 태위(党太尉)가 고주(羔酒)를 조금씩 따라 마셨던 풍류도 내게는 엄두도 못 낼 일입니다. 추운 아침에 손을 호호 불고 이 가절(佳節)에 무료함을 더욱 느끼면서, 그저 산중에서 눈 녹인 물에 차를 우려 마시던 때를 그리워하고 있던 차에 뜻밖에 보내주신 편지와 함께 좋은 술과 산짐승 고기를 받았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내 구미(口味)에 너무 호사스러울 뿐 아니라 식욕도 가라앉았으니, 저 연한 양고기에 은합(銀榼)의 술을 마신 모산(茅山)의 도사(道士)들은 식탐이 많은 배불뚝이들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추운 밤, 종묘에서 제향(祭享)을 모시느라 아직 지난 번 병세(病勢)가 곧바로 쾌차하지 못했음을 살펴 알았습니다. 푸른 암벽, 푸른 이내 낀 산 속을 유람하여 정신을 조용히 쉬어야만 공무에 찌든 속진(俗塵)을 씻어낼 수 있을 터인데, 그렇게 하는 것이 과연 쉽지 않은지요? 나 같은 사람은 자질구레한 일들을 견디지 못하고 있으니, 신선이 되어 훌쩍 떠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앓던 해수증(咳嗽症)은 이곳의 좋은 샘물 덕분에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비록 달팽이처럼 집안에 들어앉아 있지만 기침이 심하지 않으니, 자못 기이합니다. 보내주신 두 서화첩(書畵帖)은, 요즘 창가에 앉아 그 토묵(吐墨)한 것을 자세히 살펴보니, 참으로 진기한 작품입니다. 게다가 오방치(吳邦治)가 쓴 화제(畵題)는 필법이 고아(古雅)하여 좋으며, 또 홍설재(鴻雪齋)1)의 글씨는 바로 저수량(褚遂良)2) 서법(書法)의 정수를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서화첩의 작자가 모두 누구인지 알 수 없단 말입니까. 천하가 지극히 넓어 이들이 두 사람 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혹 우리나라가 외진 지역이라 견문이 미치지 못했을 뿐 강소(江蘇)ㆍ절강(浙江) 지역에는 잘 알려진 사람들인 것입니까. 어찌하여 화록(畫錄)이나 서보(書譜)에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이름도 보이지 않는단 말입니까. 이씨(李氏) 화권(畫卷)의 청록색은 그 선염(渲染)3) 이 더욱 신묘함을 알겠으니, 옛 사람이 “그림을 좋아함이 골수(骨髓)에 들었다.”고 한 것을 이런 데서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근래에는 한번 보고난 서화(書畵)에는 마음을 머물러 둔 적이 없었는데 지금 이 서화첩은 차마 손에서 선뜻 내려놓지 못하겠습니다. 잠시 여기에 두어 더 감상할 수 있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종전의 묵은 벽호(癖好)가 다시 도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전 눈 내릴 때 산방(山房)에서처럼 마주 앉아 이 서화첩을 함께 품평할 수 없는 것이 몹시 아쉽습니다.
1) 홍설재(鴻雪齋) : 청(淸)나라 때 사람으로 시(詩)ㆍ서(書)ㆍ화(畵)에 모두 뛰어났던 황단서(黃丹書)를 가리킨다. 그의 호가 설재(雪齋)이다. 2) 저수량(褚遂良 596~658) : 당(唐)나라 때의 명필로 그의 서법은 이왕(二王), 즉 왕희지(王羲之)와 그의 아들 왕헌지(王獻之)을 계승하고 구양순(歐陽詢)과 우세남(虞世南)의 장점을 두루 갖추어 힘차면서도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다. 3) 선염(渲染) : 묵법(墨法)과 담채법(淡彩法)의 한 종류로 바림 또는 설색이라고도 한다. 먼저 화면에 물을 칠하고 마르기 전에 수묵이나 채색을 칠하여 붓 자국이 보이지 않게 축축이 번지는 점진적인 변화를 나타낸다. 대개 한 쪽을 진하게 나타내고 다른 한 쪽은 갈수록 엷고 흐리게 나타낸다. 산수화에 구름이나 안개가 끼거나 비가 오는 경치, 달밤 등을 그릴 때 많이 사용된다.
[餘寒直抵臘下, 江氣又從以侵凌; 老坡之紙屋竹榻, 不足排悶, 党尉之羔酒淺斟, 亦非雅分. 朝冷呵手, 益覺佳節無▼(忄+羽/木), 但憶山中雪水試茗. 忽伏承下書, 夾之以美醞山肉, 非徒口趣太奢, 胃饞可鎭; 茆山道士脆羝銀榼, 卽一笨伯耳. 何等頂謝! 謹伏審夜寒駿奔餘, 匀體度尙有前損之未卽淸和; 必須石翠嵐漪之間, 頤神養眞, 可以大滌舃底黃塵. 此事果不容易耶? 如小人者, 實不耐米鹽凌雜, 竊欲輕擧而不能辦矣. 正喜嗽症, 實賴泉力, 雖作蝸縮, 不至鼈咳, 殊可異矣. 二帖, 間從窓影, 細閱吐墨, 儘是奇品. 且其吳邦治所題, 筆法雅古可愛; 又鴻雪齋書, 直是褚法神髓, 未知皆何等人耶! 天下至廣, 此輩皆無聞焉; 抑或偏方見聞之所未及, 而盛稱於江浙間歟! 何畵錄書譜, 不見一人也. 李卷靑綠, 愈見其渲染之神妙, 古人所云愛畵入骨髓者, 始可論於此等耳. 近於烟雲過眼處, 未甞留着此心, 今不忍遽釋, 仰蘄暫存, 是見獵之習氣耶? 恨無由對訂, 如山房雪几耳.]
- 김정희(金正喜) <권이재-돈인-에게 주다[與權彝齋 敦仁]>《완당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