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에 소위 공화국(共和國)이란 게 있다. 무릇 공화의 도가 상도(常道)가 될 수 있을까? (중략) 지금 공화를 말하는 자들은 ‘똑같이 사람인데 임금이랄 게 뭐가 있는가?’라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자들도 우두머리를 무시할 수는 없어서 중간에 한 사람을 추대해 장자(長者)로 삼아 대통령(大統領)이라 한다. 장자로 여길 때에는 허명을 빌려 주고 떠날 때에는 평민과 동등하게 여긴다. 허명을 빌려 주는 모양새가 마치 도적에게 수괴가 있음과 같고 떠나보내는 모양새가 마치 제사를 지내며 추구(芻狗)1)를 쓰는 것과 같다. 선유(先儒)는 부처에게 제자가 있음을 논하여 거짓으로 합한 사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종신토록 감히 변하지 않는 관계였으니 어찌 이렇게 대통령과 같이 아침에는 임금으로 보고 저녁에는 동료로 보았겠는가. 그렇다면 문왕이 조심하고 공자가 삼간 것은 모두 외모로만 꾸미고 본마음이 아니라는 것이니 성인의 도가 본받기 부족하단 말인가. 사람이 되어 이러하다면 아예 벌과 개미만도 못한 것이다. 말하는 사람들은 ‘공화의 도를 따르면 두 가지 좋은 점이 있으니, 위로는 폭군이 전제(專制)하는 폐해가 없을 것이고 아래로는 재지(材智)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통하지 않는 의론이다. 임금이 임금인 것이 언제 전제를 원해서였는가. 요순의 성대에도 악목(岳牧 사악(四岳)과 십이목(十二牧))과 백관이 서로 정사를 토의하였고, 후세에 지치(至治)의 군주도 모두 간언을 좇아 하지 말 일을 그만 두고 감히 마음대로 하지 않았다. 쇠란한 세상이 되어서야 내 말대로만 따르고 감히 나를 어기지 않는다는 것이 있게 되어 스스로 옳다 여기는데 아무도 감히 그 잘못을 바로잡지 못했던 것은, 성인이 법을 설치할 적에 그 도로 잘 다스릴 수 있기를 위했을 뿐이라 나중에는 혼란이 없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禹), 탕(湯), 문(文), 무(武)의 도를 수십 년, 수백 년 전할 수야 있지만 그렇다고 어찌 걸(桀), 주(紂), 유(幽), 여(厲)가 없게 할 수야 있었겠는가. 걸, 주, 유, 여가 우, 탕, 문, 무의 십 분의 일이라도 지켰다면 어찌 그 지경이 되었겠는가. 그러나 그 지경이 된 것은 우, 탕, 문, 무로도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하늘도 그런 일이 없도록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상하다. 양계초(梁啓超)는 ‘서양인의 법으로 치(治)는 있고 난(亂)은 없게 할 수 있으니 맹자가 일치일란(一治一亂)이라고 말한 것은 잘못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일찍이 이를 보고 ‘하늘에 낮이 있고 밤은 없으며 봄여름이 있고 가을겨울은 없게 한다면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다. 이렇게 어린 아이 같은 식견으로 천하의 일을 함부로 논한단 말인가?’라고 비웃은 적이 있다. 난세가 없을 수는 없고 폭군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인이 도를 행하는 것으로 혼란을 늦추고 폭정을 약화시킬 수는 있으니 가의(賈誼)가 일컬었던 삼대의 태자 교육이 그 요점이다. 사람의 본성은 서로 아주 차이가 나지는 않으니 걸, 주, 유, 여가 어찌 세세로 나오는 자품이겠는가. 재주가 보통인 자도 더불어 향상시킬 수 있으니 그 임금에 그 신하가 있는 법이라 인재야 그다지 근심할 바가 아니다. 삼대 이후 교도(敎道)가 행해지지 않고 태자 교육하는 법이 특히 무너졌기 때문에 비록 한(漢) 문제(文帝)가 어질고 한(漢) 무제(武帝)가 뛰어났지만 그 자식들은 도박을 하고 사람을 죽였으며 박망원(博望苑)2)이 열려 빈객이 섞여 나왔으니 그것이 혼란을 빠르게 하고 폭정을 열었던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지금 구미(歐美)에서 공화를 한 지 아직 백 년이 되지 않으니 그 운세가 한창 상승하는 중에 있다. 그래서 그 법이 그나마 지탱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한(漢), 당(唐), 은(殷), 주(周)처럼 오래 간다면 그 법이 혼란을 초래하고 폭정을 일으킬 텐데 막아낼 수 있겠는가. 재지(才智)가 있는 사람은 본디 다 쓰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세상이 흥성할 때에는 재지 있는 선비가 모두 현달하여 모두 쓰이지만 세상이 쇠퇴할 때에는 숨어 지내며 쓰이지 못한다. 하지만 현달해서 쓰이지 못해도 반드시 숨어 지내다 행할 수 있고 현재에 쓰이지 못해도 반드시 후일에 이로움이 있을 것이다. 만약 사람들마다 반드시 현달해서 현재에 쓰이기를 원한다면 이치로 보아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더구나 자리에는 귀천이 있고 책임에는 대소가 있어서 귀한 자는 명령하고 천한 자는 명령을 받들며, 책임이 큰 자는 만 가지를 담당하고 책임이 작은 자는 한 가지를 담당하여 감히 서로 어긋나지 않아 이렇게 해서 치(治)가 이루어진다. 지금 천한 자가 귀한 자를 능가하고 책임이 작은 자가 책임이 큰 자를 침범해서 시끄럽게 다투고 분분하게 바꾸면 이름은 치(治)이지만 실제는 난(亂)이다. 난이라는 이름이 어찌 다투고 빼앗고 서로 죽이며 헤어져 떠돌아 조금도 무관한 것을 이르는 것이겠는가. 공자는 ‘자리에 상하가 없으면 자리 위에서 난이 있는 것이고 수레에 좌우가 없으면 수레에서 난이 있는 것이다.’3)라고 하였다. 이 말을 미루어 보건대 귀천이 없고 대소가 없으면 이는 나라에서 난이 있는 것이니 어찌 치(治)를 보겠는가. 그래서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정사를 도모하지 않는다.’4),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서인(庶人)이 국정을 논하지 않는다.’5)고 하는 것이다. 지금에는 의원(議院)을 만들고 의원(議員)을 두어 사람들마다 국정을 논할 수 있다. 또 그렇게 하지 못해도 각자 정당을 만들어 연설로 고취하고 신문으로 전파하여 마치 장작더미를 쌓듯이 다시 의원에 나아가기를 구하고 마치 땅벌이 봉기하듯이 뒤에 온 자가 윗사람이 된다. 모두 남을 물어뜯는 마음이 있는데 이를 일러 각각 그 재지를 다한다고 하니 또한 첨예하지 아니한가. 더구나 큰 재주는 스스로 팔지 않는 법이고 큰 지혜는 스스로 쓰지 않는 법이다. 어진이가 공경과 예의를 다하지 않으면 오지를 않고 마음을 비워 찾아가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는다. 지금 봉기하는 사람들과 섞여 나오게 하여 천하의 큰일을 논하게 한다면 손숙오(孫叔敖)와 백리해(百里奚)의 무리도 더러 부끄럽게 여길 터이니, 하물며 이윤(伊尹)과 태공(太公)의 무리이겠는가. 이렇다면 이른바 자기를 다하는 자는 작은 지혜나 한 가지 재주를 지닌 경박하고 자잘한 부류일 따름이고 크고 온전한 자는 본디부터 나아갈 길이 없다. 행여 재주가 온전하고 지혜가 큰 선비가 추천을 얻어 통령이 되어도 아래로 자잘한 무리에게 견제를 받아 필시 큰일을 하려는 뜻을 행하지 못할 것이고 다시 몇 해 되지 않아 떠난다면 비록 깊은 계책과 좋은 정치가 있어도 겨우 말단을 시험해 보고는 바뀐 사람이 다시 올 것이다. ‘잔혹한 사람을 교화시켜 사형이 없는’6) 세상, ‘한 세대 지난 뒤에 인(仁)이 실현되는’7) 세상을 이룩한 공로가 있기를 구하고 싶겠지만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더구나 통령이 되어 권력이 없으면 제대로 뜻을 펼치지 못하고 권력이 있으면 사람들마다 그것을 갖고 싶어 해서 갖고 싶어 하는 곳에서 다툼이 일어나는 바이다. 중국이 공화를 행한지 며칠 안 되는데 통령이 다시 바뀌어 정해지지 못했고 여론이 한창 비등하여 이를 넘보는 자가 부지기수이다. (중략) 통령의 선출은 투표의 많고 적음으로 한다. 비록 공정한 것 같지만 백성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좋아하고 싫어함에 불변의 성질이 없다. 홀로 서서 별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헛된 명예로 군중을 얻는 사람도 있다. 공맹(孔孟)은 천하를 돌아 다녔지만 종신토록 상하가 통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항(陳恒)은 온 나라에서 모두 임금으로 삼고 싶어 했고 왕망(王莽)에게 송덕문을 지은 사람은 49만 명이나 되었다. 이런 자들을 장차 어찌 취해서 절충할 것인가. 선주(先主)가 공명(孔明)을 등용하고 부견(符堅)이 경략(景畧)을 천거할 때에 좌우의 신하들이 모두 기뻐하지 않았다. 만약 투표를 했더라면 몇 표를 얻었을까. 하늘에서 만물이 열릴 때에 반드시 제 때가 있고 땅에서 풍속이 이루어질 때에 각기 마땅함이 있는 법이다. 삼황(三皇) 이전의 풍속을 오늘날에 돌이키고 구미 여러 나라의 법을 중국에 옮기니 이는 술잔을 버리고 다시 술을 마시는 것과 같고 오월(吳越)의 문신을 보고 노송(魯宋)의 봉장과 바꾸는 것과 같다. 따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따르더라도 잘못이다. (중략) 그러면 그 도는 아무래도 행할 수 없는 것일까. 순(舜)과 같은 사람이 일어나 통령이 되고 공자가 임금을 섬기는 방식으로 그를 섬겨 종신토록 변하지 않으며 그가 노쇠하면 우(禹)와 같은 사람을 구해서 후계자로 삼아 죽은 후에 통령으로 세우고 적자(嫡子)에게는 녹을 준다. 이렇게 한다면 행할 수 있을진저!
1) 추구(芻狗) : 고대 중국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풀로 만든 개를 가리킨다. 제사를 지낸 후에는 쓸 데 없어서 미천하고 쓸모없는 사물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2) 박망원(博望苑) : 한 무제가 태자를 위해 세운 궁원으로 태자가 여기서 빈객을 접할 수 있도록 하였다. 3) 자리에……것이다 : 『예기』 「중니연거(仲尼燕居)」에 있는 말이다. 4) 그 자리……않는다 : 『논어』 「태백(泰伯)」에 있는 말이다. 5) 서인(庶人)이……않는다 : 『논어』 「계씨(季氏)」에 있는 말이다. 6) 잔혹한……없는 : 『논어』「자로(子路)」에 있는 말이다. 선인(善人)이 백 년 나라를 다스렸을 때의 경지를 가리킨다. 7) 한 세대……실현되는 : 『논어』「자로」에 있는 말이다. 왕자(王者)가 나타났을 때의 경지를 가리킨다.
[今之世有所謂共和之國者焉。夫共和之道。其可以爲常乎哉。(중략) 今之言共和者曰鈞是人也。何君之有。然爲此說者。又不能無其帥也。則間推一人焉以爲長曰大統領。方其長之也。借之以虛名。及其去之也。等之於平民。其借之也如盜賊之有渠魁。其去之也如祭祀之用芻狗。先儒論佛氏之有師弟子而謂之假合。然且終身不敢變焉。豈若是大統領者之朝君而夕儕之也。若然則文王之夔夔。孔子之兢兢。皆飾於外貌而非其心。聖人之道。不足以爲法歟。人而至此。曾不如蜂蟻也夫。 然說者之言則以爲從共和之道。盖有二善焉。上而無暴君專制之害也。下而有材智者皆得自盡也。是又不達之論也。夫君之爲君。何甞欲其專制哉。唐虞之盛。岳牧百官。相與吁咈。後世知治之主。皆必從諫替否。不敢自肆。至其衰亂之世。然後有惟其言而莫予違。自以爲是而莫敢矯其非者。聖人之設法也。爲其道可以治者而已。不能爲其終無亂也。禹湯文武其道可以傳於數十百年。然寧能使桀紂幽厲而無之。使桀紂幽厲而守禹湯文武之什一。豈至於是哉。然而至是者。非獨禹湯文武之不能也。天亦不能使之無也。 異哉梁啓超之言曰西人之法。可以有治而無亂。孟子之言一治一亂非也。吾甞笑之曰使天有晝而無夜。有春夏而無秋冬。則其言可信也。若是乎其爲孩童之見而妄議天下事哉。夫亂不可使無。暴君不能使之不作。而聖人之爲道則有可以遲亂而弛暴者。賈誼所稱三代之敎太子其要也。人性不甚相遠。桀紂幽厲豈世出之資哉。中材者可以與之上也。有其君則有其臣。人材之不足非所憂也。三代以下。敎道不擧。而敎太子之法尤壞。故雖以漢文武之仁英而使其子博局而殺人。開博望苑而雜進賓客。其速亂而啓暴。不亦宜哉。今歐美之爲共和者。未及百年也。又其運之方昇也。故其法猶可以支持。使如漢唐殷周之久也。則其法之召亂而興暴。可以防也哉。 夫人之有材智者。固欲其用之盡也。然世之興也則材智之士畢顯而盡其用。其衰也則有屈伏而不見用者矣。然不有用於顯。必有施於隱。不有用於時。必有益於後。若人人而必欲其顯而有用於時。理之所不能然也。且夫位有貴賤。任有大小。貴者令之。賤者承之。大者萬之。小者一之。不敢相違越。斯之爲治。今也使賤者加其貴。小者侵其大。囂囂然而議之。紛紛然而更之。名雖爲治。其實則亂。夫亂之爲名也。豈爭奪相殺流離不相屬之謂哉。孔子曰席而無上下。是亂於席上也。車而無左右。是亂於車也。推此言也。無貴賤無大小。是亂於國也已矣。惡睹其爲治哉。故曰不在其位。不謀其政。天下有道則庶人不議。 今也設院置員。使人人得以議之。又不得則各自爲政黨。演說以皷之。新報以播之。求其更進。如積薪然。後者欲其爲上也。如地蜂之起也。皆有螫人之心焉。謂之各盡其材智。不亦銳乎。且大材不自衒。大智不自用。賢者不致敬盡禮則不至。不虛心延訪則不答。今使雜沓於蜂起之中。使論天下之大事。叔敖里奚之徒。猶或羞之。而况伊尹太公之倫哉。如此則其所謂自盡者。小智一材浮薄瑣瑣之流爾。其大而全者則固無路可進也。幸有全材大智之士得推擧而爲統領。下爲瑣瑣者之所牽制。必不能行其有爲之志。又不數歲而去之。則雖有深猷美政。纔試其端而更之者又至矣。欲求其有勝殘去殺。世而後仁之功。何可望哉。且統領而無權也則不足以行其志矣。其有權也則人人得以欲之。欲之所在。爭之所起也。 中國之行共和幾日矣。統領再易而未定。輿論方騰。覬覦者不知其數也。(중략) 統領之選也。以投票之多寡。雖若公矣。而民之爲道也。好惡無常性。盖有特立而寡與者。亦有虛譽而得衆者。孔孟轍環天下。終身無上下之交。而陳恒一國皆欲以爲君。王莾頌其德者至四十九萬人。若是者將安所取衷哉。先主之用孔明。符堅之擧景畧。左右諸臣皆不悅。若用票焉。其得之幾何。 天之開物也。必有其時。地之成風也。各有其宜。以三皇以前之俗。反之於今日。以歐美諸邦之法。移之於中國。是猶棄罍爵而更事抔飮。見吳越之文身而欲易魯宋之縫章也。不惟不能從。雖從亦非也。(중략) 然則其道終不可行歟。曰有如舜者立以爲統領。以孔子之所以事君者事之。終其身而不易。其老也則求如禹者而爲貳。沒則立焉。其嫡嗣則祿及之。若是其可以行也歟。]
- 조긍섭(曺兢燮 1873~1933), 『암서집(巖棲集)』 권17, 「비공화론(非共和論)」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