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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싫은 소리는 소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청풍선비 2015. 2. 7. 12:28

- 삼백쉰일곱 번째 이야기
2015년 1월 12일 (월)
싫은 소리는 소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번역문]

상공(尙公 상진(尙震))이 한번은 들을 지나다가 어느 늙은 농부가 쟁기를 잡고 밭갈이하는 것을 보았는데, 쟁기 하나에 소 두 마리를 메워 밭 갈기를 매우 공들여 하고 있었다. 상공이 구경하다가 “농사일을 참 잘하는구려. 소 두 마리 중에 어느 소가 나은지 말할 수 있겠소?”라고 물었다.
노인이 대답이 없어 상공이 앞으로 다가가니, 노인이 급히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여 말하기를, “공이 물은 두 소 중에 한 마리는 힘도 세고 재주도 있는데, 한 마리는 힘도 약하고 미련한 데다 늙기까지 했습니다.” 하였다. 상공이 “그렇군요. 그런데 처음에는 대답하지 않다가 지금에야 귀에 대고 속삭이는 것은 어째서요?”라고 하니, 노인이 말하기를, “소는 큰 가축이라서 사람 말을 알아듣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남을 미워할 줄도 알지요. 내가 저놈들 힘을 의지해 부려먹으면서 재주 없다고 헐뜯어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그럽니다.” 하였다.
상공이 그 말에 크게 반성하여 그때부터 한평생 남의 잘못에 대해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으며, 장점만 말하고 단점은 말하지 않았다.


[원문]

 

尙公嘗行野, 見一老人執耒耕野, 一犂兩牛, 開墢甚力. 尙公觀之, 仍曰: “田事甚可賞. 其兩牛中, 有優劣者之可言者乎?” 老父不應, 尙公前行, 老父趨詣之, 附耳語曰: “公之所問兩牛, 一則力健而材, 一則力脆而才劣, 年亦老矣.” 尙公曰: “然. 然老父之初不應, 今乃附耳語之, 何哉?” 老父曰: “牛, 大畜, 能解人言, 有恥惡之性. 吾不欲賴其力委任使, 而訾其不材以傷其心也.” 尙公言下大省, 自是平生恥言人過矣. 言其長, 不言其短.

- 윤휴(尹鑴, 1617~1860), 「풍악록(楓岳錄)」, 『백호전서(白湖全書)』제34권 「잡저(雜著)」


「풍악록」은 윤휴의 금강산 기행문으로, 1672년 56세 되던 해 윤7월 24일부터 8월 24일까지의 기록이다. 위의 이야기는 유람 도중에 일행이 서로 타고 가는 말을 탓하는 것을 보고 윤휴가 일행에게 들려준 이야기로, 조선 중기 때 문신인 상진(尙震)의 “불언단처(不言短處)” 고사이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크든 작든 집단에 속하여 서로 관계를 맺는 일이다. 사람끼리 맺는 관계뿐만 아니라 저 늙은 농부처럼 짐승과도 관계를 맺으며, 물론 물건과도 관계를 맺고 어떤 상황이나 일과도 관계를 맺는다. 관계가 없는 인간의 삶은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수많은 관계 속에서 자연 옳고 그름이 생기고 좋고 나쁨이 생기기 마련이어서 늘 평가가 뒤따른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공적인 평가도 있으나 심히 개인적인 평가는 우리 주변에서 무심히 내던지는 말 한마디에 언제나 들어있으며, 누구나 하루에 수십 번씩 여러 대상을 상대로 평가를 한다.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은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내가 옳게 여기는 것을 상대는 그르게 여길 수 있고, 내가 나쁘게 여기는 것을 상대는 좋게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장점과 단점도 마찬가지이다. 단점이 다른 측면에서는 얼마든지 장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선악과 시비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데 서로가 상대의 단점을 드러내기에만 치중한다면 아마도 세상에는 단점만 난무하고 장점은 자취를 감추고 말 것이다. 피차 단점만 드러난 사회가 좋을 리가 있겠는가.

현대는 무한 경쟁의 시대로 치닫고 있다. 경쟁의 긍정적인 측면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하기도 하였으나 경쟁의 속성은 상대의 잘못과 단점을 부각시켜 자기 성공의 밑거름을 삼게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사회 곳곳에서 단점은 만들어지기도 하고 변질되기도 하고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도 하여 사람의 마음을 황폐하게 하고 관계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이렇게 단점이 극대화되고 장점은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라면 과연 정인(正人)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순(舜) 임금이 위대할 수 있었던 것은 남의 안 좋은 점은 감춰 주고 좋은 점은 드러내 알려서 다른 사람의 선(善)을 함께 공유해서였다고 한다.*

옛 성인들은 말씀에 박절함이 없으셨다. 또한 제자의 단점을 충분히 아시고도 단점을 꼬집어 고치라고 말씀하시기보다는 에둘러 말하여 스스로 깨우치게 하셨다. 물은 위에서 흘러 아래로 내려가고,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은 모두 쓰러진다. 이는 윗자리에 있는 사람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뜻하니, 상진의 “불언단처”와 순임금의 “은악양선(隱惡揚善)”을 지금의 지도층 인사들이 다시 한번 새겨봐야 될 일이 아닌가 한다.

한 해가 가고 다시 한 해가 시작되었다. 새해를 맞아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훈훈한 며칠을 보냈다. 이러한 덕담이 단 며칠간의 의례적인 인사로 끝나지 않고 일 년 내내 이어져서 상진이 실천한 것처럼 장점만 말하고 단점은 말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아울러 올 한 해는 소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는 저 늙은 농부의 마음을 배워 우리 사회가 선으로 가득하기를 소망해 본다.

*『중용』제6장 “순 임금은 큰 지혜가 있는 분이셨다. 순 임금은 묻기를 좋아하고 하찮은 말도 살피기를 좋아하셨다. 안 좋은 점은 감춰 주고 좋은 점은 드러내 알리셨으며, 양 극단을 절충하여 그 중도를 백성에게 행하셨으니, 이래서 아마 순 임금이 되셨을 것이다.[舜其大知也與! 舜好問而好察邇言, 隱惡而揚善, 執其兩端, 用其中於民, 其斯以爲舜乎!]” 『맹자』「공손추 상」“위대한 순 임금은 이들보다 더 위대한 점이 있었으니, 선을 남과 공유하여 자신의 불선을 버리고 남의 선을 따르셨으며, 남의 선을 취하여 나의 선으로 만들기를 즐기셨다.[大舜有大焉, 善與人同. 舍己從人, 樂取於人以爲善.]”

 

 



글쓴이 : 선종순
  •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전주분원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