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重水坎 上六.
29.重水坎
上六 係用徽纆 寘于叢棘 三歲 不得 凶.




上六 係用徽纆 寘于叢棘 三歲 不得 凶.
上六(상육) : 상육은
係用徽纆 寘于叢棘(계용휘묵 치우총극) : 매는 데 노끈을 써서 가시덩쿨에 두어서
三歲不得凶(삼세불득흉) : 삼년이라도 얻지 못하니 흉하니라.
係 맬계. ㉠매다 ㉡이어매다 ㉢묶다 ㉣잇다 ㉤얽다 ㉥매달다 ㉦매달리다 ㉧끈 ㉨혈통 ㉩핏줄 ㉪죄수 ㉫실마리 ㉬계사(繫辭: 주역의 괘의 설명) ㉭사무 구분(區分)에서 가장 하위 단위(單位)
徽纆 휘묵 옛날에 죄인(罪人)을 묶는 데 쓰던 세가닥으로 꼰 노와 두 가닥으로 꼰 노
徽 아름다울 휘. 표기 휘.㉠아름답다 ㉡아름답게 하다 ㉢(악기를)타다 ㉣훌륭하다 ㉤묶다 ㉥표기(標旗: 목표로 세운 기) ㉦바 ㉧묶음 ㉨노끈, 세 겹의 노끈 ㉩기러기발 ㉪안휘성의 약칭.
거문고의 줄을 고르는 자리를 나타내기 위(爲)하여 거문고의 앞쪽에 둥근 모양으로 박은 크고 작은 열세 개의 자개 조각. 특(特)히 금으로 박은 것을 '금휘(金徽)'라 이름
纆 노 묵. ㉠노 ㉡두 가닥.
禍福糾纆화복규묵. 화복(禍福)이 꼰 노와 같이 서로 얽혀 있다는 뜻으로, 재앙(災殃)이 있으면 복이 있고, 복이 있으면 재앙(災殃)이 있음을 비유(比喩)해 이르는 말. 史記(사기)
寘 둘 치.메울 전.㉠두다 ㉡다하다 ㉢그치다, 멈추다 ㉣들이다 ㉤처리하다 ⓐ메우다 (전) ⓑ채우다 (전)
叢 떨기 총. 모일 총 ㉠떨기 ㉡숲 ㉢모이다 ㉣모으다 ㉤더부룩하다 ㉥번잡하다(煩雜--), 번거롭다 ㉦잘다
棘 가시 극. ㉠가시 ㉡가시나무 ㉢창(槍) ㉣멧대추나무 ㉤공경(公卿)의 자리 ㉥야위다 ㉦위급하다 ㉧벌여놓다
係用徽纆 寘于叢棘 : 徽는 세겹 새끼줄,纆는 두겹 새끼줄. 叢棘은 감옥을 비유한 말.
<上六>새끼줄로 꽁꽁 묶이여 가시덩굴 속에 놓여있다. 삼년이 지나도 벗어나지 못하리라. 道에 復歸할 가망이 없기 때문이다.
[주] 계용취묵(係用徽纆): 휘는 세가닥, 묵은 두가닥으로 꼰 색기.
*치우총극(寘于叢棘): 치는 두다. 총극은 가시덤불
[풀이] 상육은 음유거극,음험한 소인이 함부로 나아가 험난에 깊이 빠지는 상태. 예를 들어 휘묵으로 결박하고 가시덤불로 둘러싸인 뇌옥에 같히는 것으로 3년이 지나기 까지는 빠져나올 수가 없어 흉이다.
[上陰] : 몸이 노끈으로 묶이어 가시덩굴 속에 두어지다. 최고의 지위에 있으면서 그 덕을 잃었기 때문이다. 긴 시일 동안 흉하리라.
상육은 계용휘묵하야 치우총극하야 삼세라도 부득이니 흉하니라. 상왈상육실도는 흉삼세야리라.
1) 상육은 매는 데 휘와 묵을 써서 가시덩쿨에 두어서, 삼년이라도 얻지 못하니 흉하니라.
상에 가로되 '상육의 도를 잃음'은 그 흉함이 삼세리라.
휘: 세 가닥으로 꼰 노끈 휘 : 묵: 두가닥으로 꼰 노끈 묵
치: 둘 치 총: 떨기 총 극: 가시 극
2) 뜻풀이
상육은 음의 유약함으로써 험한 괘의 끝에 위치하니, 그 험한데 빠짐이 깊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노끈으로 꽁꽁묶어 옥에 가두어 3년이 지나도록 사면을 받지 못하는 것 같으니, 그 감의 흐르는 도를 잃음이 큰 것이다.
#1 상육이 동하면 손하절(묵)이니 '휘'와 '묵'이 된다. 내호궤 진(족)과 외호괘 간(수)을 '휘'와 '묵'으로 꽁꽁 묶어, 호괘인 리 감옥에 가두되(손입) '총극(가시덩쿨)'위에 두는 것이다.
[상육]꼼짝할 수 없게 감금되어 끝내 험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니 흉하다.
係用徽纆 寘于叢棘 : 꼼짝할 수 없이 갇히다(구금되다). 係用徽纆은 밧줄로 묶는 것이고, 寘于叢棘은 가시나무 덤불속에 가두는 것임(옛날에는 감옥의 주위에 가시덤불을 심어서 죄수들의 탈옥을 막았다고 함).
上六은 係用徽纏하야 寘于叢棘하야 三歲라도 不得이니 凶하니라.
【傳】上六,以陰柔而居險之極,其陷之深者也,以其陷之深,取牢獄爲喩,如係縛之以徽纏,囚寘於叢棘之中,陰柔而陷之深,其不能出矣,故云至于三歲之久,不得免也,其凶,可知.
牢 우리 뢰.뇌㉠우리 ㉡감옥(監獄) ㉢굳다 ㉣희생(犧牲)(소, 양, 돼지의 세 희생) ㉤에워싸다 ㉥쓸쓸하다 ㉦안온하다
縛 얽을 박. ㉠얽다 ㉡동이다 ㉢묶다, 포박하다 ㉣매이다 ㉤구속되다(拘束--) ㉥포승(捕繩) ㉦복토(伏兔: 차여(車輿)와 차축을 연결 고정하는 나무)
纏 얽을 전.㉠얽다 ㉡얽히다 ㉢구르다 ㉣감다 ㉤감기다 ㉥돌다
[정전]상육은 음유로써 험극에 처함은 험난에 깊이 빠진 것이다. 깊이 빠졌으므로 감옥(牢獄)으로 비유하였다. 이는 마치 동아줄로 붙들어 매고 가시덤불속에 가두어 둠과 같으므로, 음유한 덕으로는 이와 같은 험지를 빠져 나올 수가 없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三年)이 지나도록 면하지 못하는 것이니 그 흉을 알만하다.
上六은 陰柔로서 險의 極에 처하여 빠짐이 깊은 자이니, 빠짐이 깊기 때문에 牢獄(뢰옥; 감옥)을 취하여 비유하였다. 이는 마치 동아줄로 붙잡아 매서 가시나무 숲속에 가둬둔 것과 같으니, 陰柔로서 빠짐이 깊어 나올 수 없다. 그러므로 ‘3년의 오램에 이르러도 면할 수 없다’고 말하였으니, 그 凶함을 알 수 있다.
【本義】以陰柔,居險極,其象占,如此.
陰柔로 險의 極에 처하였다. 그러므로 그 象과 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上六失道 凶三歲也.
象曰(상왈) : 상에 이르기를
上六失道(상육실도) : '上六失道'은
凶三歲也(흉삼세야) : 그 흉함이 삼세리라
상전에서 상육은 바른 도를 벗어나 있으므로 3년 동안이나 흉이다.
[상왈]上六失道는 끝내 흉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象曰上六失道는 凶三歲也1리라.
【傳】以陰柔而自處極險之地,是其失道也,故其凶,至于三歲也,三歲之久而不得免焉,終凶之辭也,
言久,有曰十,有曰三,隨其事也,陷于獄,至于三歲,久之極也,他卦,以年數言者,亦各以其事也,如三歲不興十年乃字,是也.
[정전]음유한 자가 스스로 極險을 자처하는 것은 곧 失道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년이 지나도록 흉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곧 끝내 흉하다는 뜻이다.
오랜 기간을 말함에 十數(10년)와 三數(三年, 三歲)를 모두 사용하는데 일에 따라 달리 사용한다. 감옥에 갇혀서 三歲에 이른다는 것은 긴 세월을 말한다. 다른 괘에서 년수로 말하는 예도 또한 각기 일의 사안에 따른 것이다. 예로서 同人卦의 三歲不興과 屯卦의 十年乃字가 그러한 예이다.
陰柔로서 스스로 지극히 험한 자리에 처하였으니, 이는 道를 잃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 흉함이 3년에 이른 것이다. 3년이나 오래도록 면하지 못하였으니, 끝내 흉하다는 말이다. 오램을 말할 때에 10 이라 말한 경우가 있고 3이라 말한 경우가 있으니, 그 일에 따른 것이다. 獄에 빠져 3년에 이름은 오램이 지극한 것이다. 다른 卦에 年數로 말한 것도 또한 각기 그 일에 따른 것이니, 예를 들면 同人卦의 “3년이 되어도 일어나지 못함이다.[三歲不興]”는 것과 屯卦의 “10년이 되어서야 생육한다.[十年乃字]”는 것이 이것이다.
홍재전서(弘齋全書) 제102권 [坎]
習坎之習。是重習之習耶。抑學習之習耶。
傳義之竝訓重習者。蓋原於彖傳之說。而平菴項氏之說曰離震艮兌巽。皆當以重習起義。
而坎在六十四卦之先。故特加習字。以起後例。乾坤六爻只一爻。故不加習字。此言似矣。而亦有不然者。
夫旣訓習爲重。則重乾重坤之加之以習字。獨何不可之有也。
蓋坎險也。險難之事。非經便習。不可以行。必當預積習之然後。可濟險阻。
水雖至險而習乎水者不能溺。故聖人特加習字。此孔穎達以下諸儒所以取義於便習之習也。
兩說皆通。從何說耶。
습감(習坎)이라고 할 때의 ‘습(習)’의 뜻은 중습(重習)한다는 습인가, 아니면 학습(學習)한다는 습인가?
《정전(程傳)》과 《본의(本義)》에서 모두 중습으로 풀이한 것은 아마 단전(彖傳)의 말을 근거로 삼은 것 같은데, 평암 항씨(平菴項氏 항안세(項安世))의 말에 의하면 “이(離)ㆍ진(震)ㆍ간(艮)ㆍ태(兌)ㆍ손(巽)은 다 마땅히 중습의 뜻으로 보아야 하는데
감(坎)이 64괘 중에 앞에 있기 때문에 특히 습(習) 자를 더하여 다음 괘의 예(例)를 일으킨 것이며,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의 경우는 여섯 효(爻) 전부가 한 효에 해당하므로 습 자를 더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말이 그럴듯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점이 있다.
이미 습 자를 중(重)의 뜻으로 풀이하였으면 중건(重乾)이나 중곤(重坤)의 경우에 습 자를 더하는 것이 어째서 옳지 않다는 것인가?
대개 감(坎)은 험(險)의 뜻인데 험난한 일은 익숙한 경험이 없으면 행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미리 익숙한 경험을 쌓아야 험난한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물이 아무리 위험하다고 하더라도 물에 익숙한 자는 빠져 죽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성인이 특히 습 자를 더한 것인데, 그것이 공영달(孔穎達) 이하 여러 학자들이 “익숙하게 익힌다.”고 한 습의 뜻을 취한 까닭이다.
두 학설이 다 통하는데, 어느 학설을 따라야 하겠는가?
翼晉對。八卦之因而重之。爲六十四也。其純而重者有八。而獨於此一卦加一習字。其他則闕如也。
若乾坤二卦則不但純陽純陰之爲也。
觀於大象傳天行地勢之文。其不當言重習之義。可知已矣。離巽以下五卦則加之以習。或無不可。而坎於序卦。適爲六子之先。故名以習坎。以發他卦之例。項氏胡氏之說是也。
坎爲險陷之事。非經便習。不可以行。故取便習之義。名曰習坎。古註王弼孔穎達之說是也。
凡此二說亦皆有理。重習之說。本乎彖傳重險之義。便習之說。本乎大象傳習敎事之義。而傳義之竝主重習之訓者。誠以習有二義。而重習之義較深故也。
大抵習之爲字。從羽從白。取象乎鳥數飛之義。重習所以爲學習。學習實本於重習。在物爲重習。在事爲學習。
坎者物也。故以重習爲名。而用坎之道則以學習爲義。程傳卦序亦嘗以學習溫習之習。繼之於後。其意槩可見矣。
槩 평미래 개. ㉠평미레(말이나 되에 곡식을 담고 그 위를 평평하게 밀어 고르게 하는 데 쓰는 방망이 모양의 기구) ㉡풍채 ㉢절개 ㉣대개(大槪: 대부분) ㉤평미리치다 ㉥달다 ㉦느끼다 ㉧개탄하다(慨歎ㆍ慨嘆--) ㉨씻다 ㉩물 대다
[이익진이 대답하였다.]팔괘(八卦)를 바탕으로 하여 이를 거듭함으로써 64괘가 되었고, 그중에 순수하게 거듭된 것이 여덟인데 유독 이 한 괘에만 습 자를 더하였고 그 밖의 것은 더하지 않았습니다.
건과 곤 두 괘의 경우는 순양(純陽)과 순음(純陰)으로 되었을 뿐만이 아닙니다.
대상전(大象傳)에서 천행(天行)이니 지세(地勢)니 한 글을 보면 중습(重習)의 뜻으로 말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이(離)와 손(巽) 이하의 다섯 괘는 습 자를 더하더라도 불가(不可)함이 없을 것 같은데 감(坎)은 서괘(序卦)의 순서에서 육자(六子) 중의 맨 앞에 있으므로 습감(習坎)이라는 이름을 붙여 다른 괘의 예(例)를 일으켰으니, 항씨(項氏)와 호씨(胡氏)의 말이 바로 이러합니다.
또 감은 험한 일이 되어 익숙한 경험이 없이는 행할 수 없으므로 익숙하게 익히는 뜻을 취하여 습감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고주(古註)의 왕필(王弼)과 공영달(孔穎達)의 말이 이러합니다.
이 두 학설도 모두 일리가 있으니, ‘중습’이라는 말은 단전(彖傳)에서 “거듭 험하다.”고 한 뜻에 근본한 것이고 ‘익숙하게 익힌다’고 한 말은 대상전(大象傳)에서 “가르치는 일을 익힌다.”고 한 뜻에 근본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전》과 《본의》에서 다 같이 ‘중습’의 풀이를 위주로 한 것은 ‘습’에는 진실로 두 가지 뜻이 있으나 중습의 뜻이 비교적 더 깊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습(習)이라는 글자는 날개를 뜻하는 우(羽) 밑에 백(白)을 붙여서 새가 날려고 연습한다는 뜻에서 상(象)을 취한 것이므로 중습은 학습(學習)의 뜻이 되며, 학습은 사실상 중습에 근본한 것으로서 물(物) 자체에 있어서는 중습이 되지만 일을 행함에 있어서는 학습이 되는 것입니다.
‘감(坎)’ 그 자체는 ‘물’에 해당하므로 중습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나 감을 응용하는 도리는 학습으로 의의를 삼아야 하는 것인데, 《정전》과 서괘(序卦)에서도 ‘학습’과 ‘온습(溫習)’의 습으로 뒤를 이었으니 그 뜻의 개요를 알 수 있습니다.
一陽陷於二陰之中。陰之缺處。有似窞穴。此坎之所以爲陷溺之象也。
然物之陷溺者。固所自取。而元非窞穴之罪。則陷溺者當凶。而陷溺之者宜無與於吉凶之故也。
今其卦象則却有不然。初六與六三上六。皆所謂陷溺之者。而凶且勿用。九二九五。卽所謂陷溺者。而无咎小得何也。
窞 광바닥의 작은 구덩이 담.㉠광(壙) 바닥의 작은 구덩이㉡옆으로 난 구멍㉢구덩이
한 양효(陽爻)가 두 음효(陰爻) 속에 빠져 있는데 음효가 끊어진 곳은 파인 구멍과 같으니, 이것이 감(坎)이 빠지는 상(象)이 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물건이 빠지는 것은 진실로 스스로 취한 것이지 본래 파인 구멍의 잘못이 아니니, 빠진 자가 흉한 일을 당한 것이고 빠지게 한 것은 길흉의 일과는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 괘상(卦象)은 문득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초육(初六)과 육삼(六三) 그리고 상육(上六)은 다 빠지게 한 자인데도 흉하다느니 또는 쓰지 말라느니 하였고, 구이(九二)와 구오(九五)는 곧 빠진 자인데도 허물이 없다느니 또는 조금 얻는다느니 한 것은 어째서인가?
世綸對。一陽在二陰之中而爲坎。則陽固陷溺者。陰固陷溺之者。然以一卦言之。都是坎險之體。故以六爻觀之。皆有陷溺之象。於此無自取陷溺者使之陷溺者之別矣。
吳臨川之以柔畫之耦。爲水旁兩岸之象。以陰爻之缺。爲岸下窞穴之象者。其說太涉奇巧。坎之爲坎。豈其然哉。
上下皆陰。中有一陽。陰陽失道。剛柔失宜。而於是乎爲坎。則在坎之卦居坎之體者。其陰也其陽也。陷溺則一也。然坎有上下淺深之別。爻有剛柔虛實之分。故其象也其占也。亦各異義。
初六也六三也上六也。均是柔弱之質。而初則處坎之下。故其陷也深而入于窞。
三則處下坎之上。居上坎之下。前後皆險。進退俱陷。故其陷也益深而又入于窞。
上則處險之極。居坎之終。其陷也又深而有似乎牢獄。其出也無期而如係以徽纆。則其兆之凶。其占之不可用。從可以知矣。
九二也九五也。等是陽剛之才。俱處坎險之中。然而二則以居坎之下。故終未能出險。而其占也小得矣。五則以居坎之上。故將抵於出險。而其占也无咎矣。
若不以自陷者陷之者分看。而只就當爻之義言之。其象之如彼。其占之如此。似不難曉矣。以上坎
耦 나란히 갈 우.㉠나란히 가다 ㉡마주서다 ㉢짝짓다 ㉣우수 ㉤짝 ㉥한 자 넓이 ㉦성(姓)의 하나
[강세륜(姜世綸)이 대답하였다.]한 양효가 두 음효 속에 있는 것이 감이니, 양효는 진실로 빠진 자이고 음효는 이를 빠지게 한 자입니다. 그러나 한 괘로 말하면 모두 감험(坎險)의 체가 되므로 육효(六爻)로 볼 적에는 모두 빠지는 상이 있으니, 이런 점에서는 스스로 빠지거나 빠지게 하는 구분이 없습니다.
임천 오씨(臨川吳氏)가 감(坎)의 음획(陰畫)의 짝을 가지고 물가의 양쪽 언덕의 상으로 보고 음효(陰爻)의 끊어진 것으로써 언덕 아래에 푹 파인 구멍의 상으로 본 것은 그 말이 너무도 교묘한 논리에 해당합니다. 감의 성격이 어찌 그러한 것이겠습니까.
위와 아래는 다 음(陰)이고 중간의 한 양(陽)이 있으니, 이는 음과 양이 도리를 잃고 강(剛)과 유(柔)가 마땅함을 잃은 격입니다. 그래서 감이라고 한 것이니, 감의 괘에서 감의 체에 있는 것은 음이건 양이건 빠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감(坎) 즉 빠지는 데는 위아래와 얕고 깊은 구별이 있고 효(爻)에는 강과 유와 허(虛)와 실(實)의 구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상(象)이나 점(占)에 있어서도 각각 뜻이 다른 것입니다.
초육과 육삼과 상육은 다 같이 유약(柔弱)한 바탕이나, 초육은 감의 아래에 있으므로 그 빠지는 것이 깊어서 구덩이에 들어가는 격이고,
육삼의 경우는 아래에 있는 감의 위와 위에 있는 감의 아래에 있으니 앞과 뒤가 모두 험난한 것으로서 나아가거나 물러남에 다 빠지는 것이 되므로 그 빠지는 것이 더욱 깊으면서 또 구덩이에 들어가는 격이고,
상육의 경우는 험난한 극한 상황에 처하고 감의 마지막에 있으니 그 빠지는 것은 더 깊어서 감옥에 갇힌 것과 같고 그 벗어날 기약이 없는 것은 마치 끈으로 얽어맨 것과 같은 격이므로 그 조짐은 흉하고 그 점은 쓸 수 없음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구이와 구오는 다 같이 강한 양의 자질로서 모두 감의 험난함 속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구이의 경우는 감의 밑에 있으므로 험난함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지만 그 점은 조금 얻는 격이고, 구오의 경우는 감의 위에 있으므로 장차 험난함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그 점은 허물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스스로 빠지는 것과 빠지게 하는 것을 구분하여 보지 않고 해당 효의 뜻만 가지고 말한다면, 그 상은 저러하고 그 점은 이러함에 대해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 같지 않습니다.
이상은 감괘(坎卦)이다.
[주D-001]육자(六子) : 《주역(周易)》의 팔괘(八卦)에서 건(乾)ㆍ곤(坤)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 괘를 가리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