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원문

[스크랩] 澤山咸 上六.

청풍선비 2010. 2. 18. 08:25

 

31.澤山咸

 

上六 咸其輔頰舌. 
 

    

   兌  澤

 

 

 

       艮  山

    


 

 

上六 咸其輔頰舌.
上六(상육) : 상륙은

咸其輔頰舌(함기보협설) : 그 볼과 혀로 느낌이라.

 

輔 도울 보㉠돕다 도움 광대뼈 바퀴덧방나무 재상 아전 경기  

口輔 : 구협()

頰 뺨 협. ㉠빰 땅 이름 쾌적하다 기분이 좋다 비유(比喩ㆍ譬喩)하여 천천히 말하다  

口頰 입 언저리 . 口峽 입안과 목구멍

 

咸其輔頰舌 : 輔頰은 뺨. 卦의 맨 위에 위치했으므로 신체의 상부인 顔面.

 

<上六> 뺨과 혀로 감응한다. 성실성이 없고 경박하여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주] 협설(협설): 협은 뺨이고 설은 혀.

[풀이] 상육은 음유거극, 극히 사물에 감응되기 쉽고 경솔하며 사물을 느끼면 곧 이것을 입밖에 내밷고 성의가 없다. 그러므로 보(광대뼈), 혀, 볼에 느낀다고 한다. 보는 윗턱부분으로 볼이나 혀와 더불어 사람이 지껄일때 움직이는 부분이다.

 

[上陰] : 뺨과 혀로 감응한다. 뺨에 감촉하는 것은 형식적이요, 혀로 감응함은 말로만 지껄일 뿐 성의가 없는 것이다. 이미 정열은 식고 형식이 남았을 뿐이다.

 

상육은 함기보협설이라. 상왈함기보협설은 등구설야라.
1) 상육은 그 볼과 빰과 혀로 느낌이라. 상에 가로되 '함기보협설'은 구설에 오름이라.
2) 뜻풀이
상육은 음유한 재질로 느끼는 괘의 위에 있고, 화열 ()하는 체에 있으니 느낌의 극에 이른 자이다. 따라서
그 느낌을 같이하고자 하나 실질이 없으니, 입으로만 그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1 상괘인 태상절 ()에서 '설, 구, 설'이, 상육이 동한 건삼련 (: 수)과 합하여 '보, 협'이 나온다.
#2 상괘가 태괘에서 건괘로 되었으니 기쁨 (태)를 두루 (건)말하는 뜻이다. 즉 함괘를 남녀의 교합으로 볼때 '함기매' '함기비 '함기고'를 전희, 상육의 등구설'을 후희로 느낌의 표현을 말로 하는 것이다.
#3 하괘 (간)의 세 효는 느낌을 기다려서 응하는 상 (간은 지)이나, 상괘 (태)의 세 효는 느낌의 주체이므로 (태는 기쁨) 보다 능동적이다.
또 '함기무, 동동왕래'는 앞에 보이는 곳이니 욕심으로 느낌이요, '함기비, 함기매'는 뒤의 보이지 않는 곳이니 욕심없이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함기고, 함기보협설'은 실체로써 느낌을 말한 것이다.

 

[상육]감응에 기쁨이 넘쳐 장광설로 떠벌린다.

輔頰舌 : 얼굴의 온갖 표정과 장광설로 떠벌림. 상육은 悅極이므로 기쁨을 참지 못하고(구오는 기쁨을 내색하지 않고 등줄기로 따스하게 느끼는 것과는 딴판임을 말함) 얼굴에 나타내며 장광설로 떠벌린다.

 

上六, 咸其輔頰舌이라

「傳」 上 陰柔而說體 爲說之主. 又居感之極 是其欲感物之極也. 故不能以至誠感物 而發見於口舌之間 小人女子之常態也 豈能動於人乎. 不直云口而輔頰舌 亦猶今人 謂口過曰唇吻曰頰舌也. 輔頰舌 皆所用以言也.

 

唇 놀랄 진,입술 순.㉠놀라다 놀라는 소리 입술 (순) 가장자리 (순) 둥근 물건의 둘레 (순)

吻 입술 문. ㉠입술, 입 입가, 입 끝 입시울 말투 (사물의 뾰족하게 내민)끝

口過  ①지나친 말 ②말의 실수(). 말을 잘못한 허물 ③구취(

 

[정전]상육은 說體로서 즐거워하는 주체이다. 또한 咸卦의 極에 해당하므로 남을 감통시키려는 의지가 너무 지나치다. 그러므로 남을 지성으로서 감통시키지 못하고, 口舌(달콤한 장광설)로써 감통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는 소인이나 아녀자들의 통상적인 편협한 태도로서 남을 감동시킬 수가 없다. 직접적으로 입(口)이라 하지 않고 輔頰舌이라 한것은, 지금 사람들이 口過(失言)를 脣吻(순물;입술) 또는 頰舌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輔頰舌은 이 모두를 사용하여 말을 하는 것이다.

 

上은 陰柔이고 說體로 기뻐함의 主體가 되고 또 감동함의 極에 처했으니, 이는 남을 감동시키고자 함이 지극한 것이다. 그러므로 至誠으로 남을 감동시키지 못하여 口舌의 사이에 나타난 것이니, 이는 小人과 女子의 떳떳한 태도이다. <口舌로> 어찌 남을 감동시킬 수 있겠는가. 다만 口라고 말하지 않고 輔, 頰, 舌이라고 말한 것은 또한 지금 사람들이 口過(잘못된 말)를 ‘脣吻’이라 하고 ‘頰舌’이라 하는 것과 같다. 輔, 頰, 舌은 모두 사용하여 말을 하는 것이다.

 

「本義」 輔頰舌 皆所以言者而在身之上. 上六 以陰居說之終 處咸之極 感人以言而无其實. 又兌爲口舌 故其象如此 凶咎可知.

 

輔, 頰, 舌은 모두 말을 하는 것인데 몸의 위에 있으니, 上六은 陰으로서 說의 끝에 거하고 咸의 極에 처하여, 사람을 말로써 감동시켜 그 실상이 없는 것이요, 또 兌는 입과 혀가 되기 때문에 그 象이 이와 같으니, 凶咎를 알 수 있다.

 

 

象曰 咸其輔頰舌 滕口說也.

象曰(상왈) : 상에 이르기를

咸其輔頰舌(함기보협설) : '함기보협설'은

滕口說也(등구설야) : 구설에 오름이라

 

상전에서 그 보협설에 느낀다 함은 다만 입끝만의 소리라는 것이다.

 

[상왈]咸其輔頰舌은 장광설을 떠벌리며 기뻐함이다.

腾口 : 장광설을 떠벌리다(张口放言). 腾 騰 . 张 張.

 

象曰, 咸其輔頰舌은 滕口說也라.

「傳」 唯至誠 爲能感人 乃以柔說 騰揚於口舌言說 豈能感於人乎.

[정전]오직 지성이라야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인데, 유순하고 열체로서 구설에만 의지하여 남을 감동시키고자 하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오직 지성이라야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데 유순함과 기뻐함으로 口舌과 言說에만 올리니, 어찌 남을 감동시키겠는가. 

 

「本義」 滕 騰 通用.

滕과 騰은 通用이다. 

 

 

 

 

 

홍재전서(弘齋全書) 제102권 [咸]

 

[咸]

彖傳曰咸感也。程子曰感者人之動也。彖傳又極言天地萬物聖人感通之理。則咸之一卦。專主乎感也動也。

而第觀六爻爻辭。皆宜靜而不宜動何也。

傳義曰九四在中而居上。當心之位而有心之象。此則指兌之下爻而言也。

象曰山上有澤咸。君子以。虛受人。程子云中虛則能受。朱子謂艮下二陰畫中虛。有滲水之象。

張氏又雙紐爲說曰土之中虛。於潤無所不受。心之中虛。於人何所不容。此則又若以艮下二畫爲心之象何也。

 

滲 스며들 삼. 흐를 림. ㉠스며들다, 스미다 배다 밭다, 거르다 새다, 흘러나오다 다하다, (물이)마르다 적시다 깃털이 처음 나오는 모양 흐르다 (림) 흐르는 모양 (림).

滲水 삼수 ①물에 잠김 ②물에 스며듦. 또는 그 물   

雙 두 쌍, 쌍 쌍.㉠두, 둘 한 쌍 짝수 밭의 면적 성(姓)의 하나 견주다 비견하다 서로 짝짓다 짝이 되다

紐 맺을 뉴(유). ㉠맺다 매다 묶다 관여하다 매듭 인끈(印-: 사슴 가죽으로 만든 끈)  

 

단전(彖傳)에서 “함(咸)은 감응(感應)의 뜻이다.”라고 하였고 정자(程子)는 “감(感)은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단전에서는 또 천지 만물과 성인이 감통(感通)하는 이치를 지극히 말하였으니, 함괘(咸卦)는 오로지 감응과 움직임을 위주로 한 것 같다.

그러나 여섯 효의 효사(爻辭)를 보면 모두 정(靜)을 마땅하게 여기고 동(動)은 마땅하게 여기지 않으니, 어째서인가?

《정전》과 《본의》에서 “구사(九四)는 중간에 있으면서 위에 있고 심장(心臟)의 위치에 있으면서 마음의 상(象)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태(兌)의 하효(下爻)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상사(象辭)에서 “산 위에 못이 있음이 함(咸)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마음을 비우고 남의 의견을 받아들인다.”고 한 데 대하여 정자는 “마음을 비우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였고, 주자는 “간(艮)의 밑에 있는 두 음효(陰爻)가 중간이 비어서 물이 스며드는 상이 있다.”고 하였고,

장청자(張淸子)는 ‘쌍뉴(雙紐)’라는 말을 만들어 “땅속이 비어 있으면 스며드는 물을 받아들이지 않음이 없는데, 마음속을 비우면 남의 의견을 수용하지 못함이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는 또 간의 밑에 두 획으로 마음의 상을 삼은 것 같은데, 어떻게 여기는가?

 

 

煕朝對。咸者感也。而感不自感。必待動然後感。故天地動而一理相感。萬物動而二氣交感。聖人動而黎民孚感。其所感之也。安往而非動也。

今夫六爻爻辭之似若宜靜不宜動者。蓋兌性說而錯以爲震則其進又速。所動者易以過中。所感者難以得正。故聖人爲此之慮。特以居吉往吝等語。警戒夫輕動而已。

卦爻本旨則何嘗宜靜而不宜動哉。且夫九四一爻。居股之上脢之下。以位則心之位也。以象則心之象也。

傳義所釋。旣皆如此。而但觀大象虛受人之訓則又却不同。如張氏雙紐之見。姑勿論其如何。

朱子所謂虛有滲水之象云者。蓋以艮下二畫爲心。此所以爲後儒起疑處。而以臣言之。艮下二陰自坎來。而說卦曰坎爲亟心爲堅心。然則朱子之又以艮下二畫爲心之象者。似由此也。

 

黎 검을 여.㉠검다 많다 늙다 미치다, 이르다 무리 민중 명아주(=藜) 나라 이름 무렵

却 물리칠 각. ㉠물리치다 물러나다 피하다(避--) 돌아가다 그치다, 쉬다, 멎다 사양하다(辭讓--) 뒤집다 도리어 반대로 어조사(語助辭) 발어사 틈  

姑 ㉠시어머니 고모(母) 계집, 여자(女子), 부녀(婦女)의 통칭(通稱) 잠시, 잠깐 조금 동안 빨아먹다

 

[김희조(金煕朝)가 대답하였다.]함은 감응의 뜻입니다. 그런데 그 감응은 스스로 감응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움직임을 기다린 뒤에 감응이 되므로, 하늘과 땅의 기운이 움직여서 한 이치가 서로 감응하고 만물이 움직여서 두 기운이 교감(交感)하며 성인이 움직여서 백성들이 믿음으로 감응하는 것이니, 그 감응하는 것이 어디엔들 움직이지 않겠습니까.

지금 저 여섯 효의 효사에서 마치 정(靜)하는 것을 마땅하게 여기고 동(動)하는 것을 마땅하게 여기지 않는 것같이 말한 것은 대개 태(兌)는 열성(悅性)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을 착(錯)으로 보아 동성(動性)을 지닌 진(震)이 되면 그 진출함이 더욱 빠르니 그렇게 되면 움직이는 것이 중도(中道)를 넘기가 쉽고 감응하는 것이 정도(正道)를 얻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성인이 그러한 염려를 하여 특히 “가만히 있으면 길(吉)하고, 움직이면 수치스러움을 당한다.”는 따위의 말로 가볍게 움직임을 경계한 것입니다.

괘효(卦爻)의 본뜻이야 어찌 정하는 것을 마땅하게 여기고 동하는 것을 마땅하게 여기지 않음이 있겠습니까.그리고 저 구사(九四)의 한 효로 말하면 넓적다리 위와 등심 밑에 있는 격이니 위치로 말하면 심장의 위치이고 상(象)으로 말하면 마음의 상입니다.

《정전》과 《본의》의 해석은 다 그러한 것인데, 다만 대상(大象)에서 “마음을 비우고 남의 의견을 받아들인다.”고 한 풀이를 보면 문득 같지가 않습니다. 장씨의 쌍뉴설(雙紐說)에 대해서는 우선 어떠하다고 논하지 않겠습니다.

주자가 말한 “빈 것은 물이 스며드는 상이 있다.”고 한 것은 대개 간(艮)의 아래의 두 획을 마음으로 여긴 것인데, 이것이 후세의 유학자가 의심을 일으킨 곳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신(臣)의 견해를 말씀드리면, 간의 아래의 두 음효(陰爻)는 감(坎)에서 온 것으로서, 설괘(說卦)에서 “감은 마음이 급한 것이 되고, 단단하고 심이 많은 것이 된다.”고 하였으니, 주자가 간의 아래의 두 획을 마음의 상으로 삼은 것도 여기에 근거한 것 같습니다.

 

九四云憧憧往來。朋從爾思。夫日往則月來。寒往則暑來。一往一來。皆感應之常理。則人心之亦不能無往來也明矣。然而朱子謂因占設戒者何也。

有自然底往來。有不好底往來。感應亦然。有私感應。有合當底感應。有內感者有外感者。有對應而言者。有專於感而言者。可一一剖析言之否。

 

底 밑 저. 이룰 지. ㉠밑, 바닥 속, 내부(內部) 구석 밑절미, 기초(基礎) 초고(草稿), 원고(原稿) 어찌, 왜 아주, 몹시 남모르게 그치다, 멈추다 (몰래)숨기다 막히다, 정체되다(停滯--) 이루다 (지) 이르다 

 

구사(九四)에서 “끊임없이 오가면 붕당끼리만 네 생각을 따를 것이다.”라고 하였다. 무릇 해가 지면 달이 뜨고 추위가 가면 더위가 와서 한 번 가고 한 번 오는 것은 모두 감응(感應)의 정상적인 이치이니, 사람의 마음도 분명히 가고 오는 것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주자가 “점(占)으로 인하여 경계를 베푼 것이다.”라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자연스러운 왕래도 있고 좋지 않은 뜻의 왕래도 있으니, 감응도 그러하여 사사로운 감응이 있고 합당한 감응이 있으며 안으로 감응하는 것도 있고 밖으로 감응하는 것도 있으며 대응으로 말한 것도 있고 전일한 감응을 가지고 말한 것도 있는데, 하나하나 분석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行恁對。往來卽感應之理。而日往月來。那箇是自然底往來。而著一憧憧底。便是不好底往來。故本義有因占設戒之訓。

而初六之應九四。夫所謂專於感者也。六二之應九五。夫所謂對應而感者也。九五之應六二。九四之憧憧。夫所謂私感應者也。卦之下體之感。夫所謂內感者也。卦之上體之感。夫所謂外感者也。

山澤通氣。男女相應者。夫所謂合當底感應也。故天地之化育萬物。君臣之共理天職。夫婦之和諧。日月之代照。不過曰一感字而已。咸之義大矣哉。無容更議。以上咸

 

[윤행임이 대답하였다.]가고 오는 것은 곧 감응의 이치인데,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것은 자연스럽게 가고 오는 것이지만 ‘끊임없다’라는 한마디를 덧붙인 것은 바로 좋지 않은 뜻으로 가고 오는 것이므로 《본의》에서 “점으로 인하여 경계를 베푼 것이다.”라고 풀이한 것입니다.

초육(初六)이 구사(九四)에 응(應)하는 것은 이른바 전일한 감응이고 육이(六二)가 구오(九五)에 응하는 것은 이른바 대응의 감응이지만, 구오가 육이와 응하는 것과 구사의 끊임없이 오간다는 것은 이른바 사사로운 감응입니다. 괘(卦)의 하체(下體)에서 감응하는 것은 이른바 안의 감응이고 괘의 상체(上體)에서 감응하는 것은 이른바 밖의 감응입니다.

산과 못이 기운을 통하는 것과 남자와 여자가 서로 감응하는 것은 이른바 합당한 감응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이 만물을 변화 육성시키는 것과 임금과 신하가 천직(天職)을 함께 다스리는 것과 남편과 아내가 화합하는 것과 해와 달이 번갈아 가며 비추어 주는 것들은 하나의 감(感) 자에 지나지 않으니, 함(咸)의 의의가 하도 커서 다른 의논이 더 필요 없겠습니다.

이상은 함괘(咸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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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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