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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명구] 한 해를 보내며

청풍선비 2016. 1. 19. 12:37
- 이백일흔아홉 번째 이야기
2015년 12월 31일 (목)
한 해를 보내며
묵은해는 경고(更鼓) 소리 따라 다 가고 새해는 새벽 쫓아 오겠지

舊歲隨更盡 新年趁曉來
구세수경진 신년진효래

- 허균(許筠, 1569~1618)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권1
「수세(守歲)」

 


이 글은 허균의 “수세(守歲)”라는 시의 한 구절로, 허균이 나이 서른 살을 하루 앞두고 지은 시입니다. ‘수세’는 섣달 그믐날 밤 온 집안에 불을 밝혀 놓고 밤을 새우며 새해를 맞이하는 풍습입니다.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제석(除夕 섣달 그믐날 밤)」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민가(民家)에서는 이날 다락과 마루, 방과 부엌에 모두 사기접시로 만든 유등(油燈)을 켜 대낮같이 밝혀놓고 밤을 지새우는데 이를 ‘수세’라고 한다.[人家, 樓廳房廚皆張油燈白磁一盞......晃如白晝, 達夜不睡, 曰守歲.]” 그리고 함경도와 평안도에서는 사기접시로 만든 등잔 대신 얼음 기둥 가운데를 파서 기름을 붓고 심지를 놓아 불을 밝히는 ‘빙등(氷燈)’을 설치하여 밤을 새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이날 밤에 잠을 자면 두 눈썹이 모두 하얗게 된다는 말이 있어 아이들이 이 말에 속아 잠을 자지 않는다. 혹 잠을 자는 아이가 있으면 다른 아이가 분가루를 눈썹에 발라놓고 깨어나면 거울을 보여주며 놀린다.[諺傳, 除夜睡, 兩眉皆白, 小兒多見瞞不睡. 或有睡者, 他兒以粉抹其眉, 攪使對鏡以爲戱笑.]”는 내용도 있습니다. 요즘도 아이들에게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샌다고 하는데 오래전부터 전해 온 풍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국세시기』에는 이 밖에도 섣달 그믐날 혹은 그즈음에 하는 여러 가지 풍속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이 어린 사람이 친척 어른을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묵은세배’, 대궐 안에서 섣달그믐 전날부터 대포를 쏘는 ‘연종포(年終砲)’ 그리고 윷놀이, 널뛰기 등입니다. 요즘도 한 해를 보내면서 행하는 것들입니다. 이 중에서도 윷놀이에 대해서는 특히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를 보면 당시에도 현재와 똑같은 방법으로 윷놀이를 하였고, 놀이로만 한 것이 아니라 새해의 길흉을 점치는데도 사용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지내온 일들을 돌이켜보며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할 때이지요. 그동안 정신없이 지내느라 잊고 있던 분들께 연락드리며 묵은세배도 하고, 저녁에는 가족들과 모여 앉아 불을 밝히고 도란도란 이야기 하며 새해를 기다리는 수세를 해 보면 어떨까요.

글쓴이 : 이정욱(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