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글은 윤기의 나이 57세 때인 1797년 남포 현감(藍浦縣監)에서 파직된 뒤 1799년까지의 어느 시점에 쓴 작품으로 추정된다. 비록 파직이었지만 작자는 바쁜 직무에서 벗어나 집에서 한가로이 기거하며 지난날 화를 당한 일을 상기하였다. 그리고 그는 자식들에게 해를 피하여 몸을 온전히 지키도록 경계시키는 한편 스스로를 반성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글을 지었다. 운문으로 된 서문과 함께 총 12조항의 산문으로 이루진 글 가운데 위의 글은 세 번째 조항 말조심에 대한 글의 일부이다.
윤기는 서문에도 말조심에 대해 이렇게 썼다. “입은 화를 부르고, 행동은 흔단(釁端)을 여니, 명심하고 명심하여, 경계하고 조심하라[惟口招禍 惟動啓釁 念茲在茲 必戒必愼]”
사실 말에 대한 경계는 어느 시절 누구나 언급하고 있다. 말을 조심하지 못하면 크게는 패가망신하고, 작게는 창피를 당하고 미움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환란이 말에서부터 나오니 한 번 입에서 나갔다 하면 말[馬]을 달려도 따라잡을 수 없고 손으로 가릴 수도 없으며 바닷물로도 씻어낼 수 없으니, 말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입을 다물고만 있어서는 또 안 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양쪽 다 옳다는 양시론(兩是論)으로 처세하면서 자신은 세상 살아가는 법을 안다며 자부하거나, 사람들과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유흥을 즐기는 것을 처세법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더더욱 군자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말을 삼가되, 의리와 인륜에 관계된 것에 대해서 말을 해야 할 때는 해야 한다. 그래서 말을 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의리와 인륜에 관계된 일이라면 화를 당할지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것을 윤기는 은연중에 가르치고 있다.
오늘날에도 윤기의 가르침대로 평소 말조심을 하되, 의리와 인륜에 관계된 일이라면 화를 당할지라도 할 말을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짐짓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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