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
지난 계미년(1583, 선조16), 북쪽 오랑캐가 변경을 침범하였습니다. 당시 대신은 식견이 좁고 해이하여, 공을 탐내다가 패전한 자에게 관대한 법을 적용하여 함부로 군법을 흔들었습니다. 이른바 ‘백의종군하여 공을 세워 속죄한다’는 것이 여기서 시작되어, 이로부터 정해진 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장수와 병사들이 죽음을 면하는 것은 다행이지만 군율은 어찌하며 나랏일은 어찌하겠습니까. 법을 엄하게 만들어도 태만하게 여기는 폐단이 있는데, 법을 태만하게 만들면 폐단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익숙해져 모두 당연하게 여깁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수와 병사들이 도망치면서도 두려워하거나 꺼리지 않으며 좋은 방법이라고 여겼습니다. 식자들은 ‘백의종군하여 공을 세워 속죄한다’는 말이 장수와 병사들이 도망치는 길을 열었다고 여깁니다.
[원문]
往在癸未, 北胡犯邊. 當時大臣, 識見不遠, 狃於弛解, 其徼功敗軍者, 則圖置寬典, 敢撓軍法. 所謂白衣從軍, 立功自効者, 實權輿於是, 自此習爲常法. 其於將士之自免幸矣, 其奈軍律何? 其奈國事何? 作法於嚴, 其弊猶慢, 作法於慢, 弊將若何? 人習見聞, 皆謂當然. 至壬辰之亂, 逃將潰卒, 無復畏忌, 自謂得計. 識者皆以爲此八箇字, 實啓將士逃走之路也.
- 박성(朴惺, 1549~1606), 『대암집(大菴集)』 권4, 「시폐를 논하는 상소[論時弊疏]」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