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 9년(1434) 7월에 전하께서 지중추원사 이천(李蕆)에게 말씀하셨다.
“경이 예전에 감독하여 만든 활자로 인쇄한 책들은 참으로 정교하고 아름답다. 다만 글자 모양이 너무 작아 읽기 불편한 점이 있으니 큰 글자로 된 책으로 자본(字本)을 삼아 다시 주조하는 것이 더 좋겠다.”
라고 하시며 그에게 활자 주조하는 일을 감독하게 하고 집현전 직제학 김돈(金墩), 집현전 직전 김빈(金鑌), 호군 장영실(蔣英實), 첨지사역원사 이세형(李世衡), 의정부 사인 정척(鄭陟), 봉상시 주부 이순지(李純之), 훈련관 참군 이의장(李義長) 등에게 실무를 주관하게 하셨다. 그리고 경연(經筵)을 위해 보관된 『효순사실(孝順事實)』·위선음즐(爲善陰騭)』·『논어』 등을 꺼내어 자본으로 삼게 하고, 부족한 글자는 진양대군 유(瑈)에게 직접 쓰게 하셨다. 공역은 그달 12일에 시작하여 2개월 만에 20여만 자를 주조하고 9월 9일에 처음으로 인쇄에 들어가니, 하루에 인쇄한 양이 40여 장이나 되었다. 또한, 활자 모양이나 인쇄 방식이 이전의 활자에 비해 훨씬 더 반듯하고 갑절이나 더 수월해졌다.
宣德九年秋七月, 殿下謂知中樞院事臣李蕆曰: “卿所嘗監造鑄字印本, 固謂精好矣. 第恨字體纖密, 難於閱覽, 更用大字本重鑄之, 尤佳也.” 仍命監其事, 集賢殿直提學臣金墩、直集賢殿臣金鑌、護軍臣蔣英實、僉知司譯院事臣李世衡、議政府舍人臣鄭陟、奉常主簿臣李純之、訓鍊觀參軍臣李義長等掌之. 出經筵所藏『孝順事實』、『爲善陰騭』、『論語』等書爲字本, 其所不足, 命晉陽大君臣瑈書之. 自其月十有二日始事, 再閱月而所鑄至二十有餘萬字. 越九月初九日, 始用以印書, 一日所印, 可至四十餘紙. 字體之明正, 功課之易就, 比舊爲倍矣.
김빈(金鑌, ?~1455), 「갑인자주자발(甲寅字鑄字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