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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명구 공모전 당선작] 아첨자와 간쟁자

청풍선비 2016. 12. 12. 10:12
아첨자와 간쟁자
아첨을 잘하는 자는 충성하지 못하고,
간쟁(諫諍)을 좋아하는 자는 배반하지 않는다.
이 점을 살피면 실수하는 일이 적을 것이다.

善諛者 不忠 好諫者 不偝 察乎此則鮮有失矣
선유자 불충 호간자 불배 찰호차즉선유실의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목민심서(牧民心書) 이전(吏典) 6조』 「제3조 용인(用人)」

해설
윗글은 정약용이 1818년(57세)에, 자신의 체험과 유배 기간에 닦은 견문을 바탕으로 지방관으로서 지켜야 할 준칙을 담아 저술한 『목민심서』이전(吏典) 6조 가운데 제3조이다.

정약용의 저서로 추측되는 『다산필담(茶山筆談)』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현령(縣令)은 지위가 비록 낮으나 군주와 같은 도가 있으니, 아첨을 힘써 물리치고 간쟁을 충분히 받아들이는 일에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아전이나 노비는 지체가 낮으니 간쟁을 감히 못 하거니와 아첨부리기도 또한 불편한 입장이고, 오직 향승(鄕丞)이나 수교(首校)의 무리들만이 얼굴을 들어 수령의 안색을 살피면서 할 말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첨으로 비위를 맞추어 수령을 악으로 인도한다. 수령에 대한 비방이 들끓어도 ‘칭송하는 소리가 길에 가득하다.’ 하고, 수령이 파직될 기미가 있는데도 오히려 ‘오래 재직할 것이니 염려할 것 없다.’ 한다.
그러면 수령은 기뻐서 이 사람만이 충성스럽다고 여기고 감영의 공문이 이미 도착해 있는 줄을 모른다. 옥사에 대한 조사가 갑자기 일어나면 어제까지 면전에서 아첨하던 자는 스스로 증인이 되어 수령의 자잘한 잘못까지도 들추어내지만, 그래도 혹 숨기고 덮어 주는 자는 바로 전날 귀찮게 간쟁하던 사람일 것이다. 수령된 자는 반드시 크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縣令雖卑,有君道焉。力排謟諛,翕受諫爭,不可不自勉。然吏ㆍ奴地卑,諫固不敢,諂亦不便。唯鄕丞ㆍ首校之等,擧顏察色,可以盡言。於是阿諛順旨,導之爲惡,謗毀如沸,乃曰‘頌聲載路’,黜罷有機,猶云‘久任無慮’,牧欣然以爲此人獨忠。不知營檄旣到,査獄忽起,則昨日面諛之人,自作證保,以發微奸,而其或隱忍而掩覆者,乃前日爭執可苦之人也。爲牧者必須猛省。

후한(後漢) 때 어린 나이로 주군(州郡)의 관리가 된 동회(童恢)가 있었다. 뜻이 굳고 견문이 넓은 사도(司徒) 양사(楊賜)는 동회가 법을 공평하게 집행한다는 말을 듣고 불러서 썼다. 그러던 어느 날 극간(極諫)을 하던 양사가 탄핵을 받아 면직되었다. 그러자 양사의 부하들은 모두 떠나고, 동회 홀로 대궐에 들어가 간쟁하였다. 마침내 일이 잘 마무리되자, 떠났던 부하들은 모두 관부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동회는 장책(杖策)을 짚고 떠나버렸다. 이에 논자(論者)들은 그를 아름답게 여겼다.

위정자 앞에 아첨꾼들이 들끓으면 정치는 망하게 되어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부정 선거로 하야하기 전까지 주변의 아첨꾼들이 자신을 악으로 인도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면죄부가 될 근거는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위정자는 듣기 싫은 말로 자신에게 간쟁하는 사람을 떠나보낼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을 더 가까이 두고 정사를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정약용의 이론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위정자들이 속는 셈치고 정약용이 체험으로 터득한 지혜를 믿고 아첨자들을 멀리하고 간쟁자를 가까이 두길 바란다면 너무 과한 욕심일까?

 

글쓴이이은영
성균관대학교 문학박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