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포럼/고전한시

[한시감상] 도원행(桃源行)

청풍선비 2017. 4. 24. 15:40

한시감상
2017년 3월 2일 (목)
백쉰여덟 번째 이야기
도원행(桃源行)

도원행(桃源行)

동쪽으로 석교는 바다까지 걸쳐있고
북쪽의 만리장성 요동까지 뻗었네
아방궁 짓느라 백성의 힘 고갈되니
시달리던 백성들 살길 찾아 숨었네

함곡관에서 멀리멀리 속세를 등지고
진나라 백성이 신선 나라 사람 되었어라
언덕과 밭두렁에 복사나무만 심었더니
만 그루에 꽃이 피자 봄이 다시 돌아왔네

무릉의 어딘가에 살고 있던 늙은 어부
복사꽃 아래서 농사짓는 사람들과 만나니
시황 죽고 진 망한 건 한스러워하지 않고
남들이 자기 마을 어지럽힐까 걱정했지

당시의 일이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마는
도연명이 기문 지어 맛깔나게 다듬었네
천 년 지난 지금까지 찾아갈 길 없어
부질없이 그림 보며 신선 모습 상상하네

石橋東跨滄海闊석교동과창해활
北築長城抱遼碣북축장성포요갈
阿房殫盡萬夫力아방탄진만부력
赬魴覓水偸生活정방멱수투생활
函關茫茫隔幾塵함관망망격기진
秦人變作華胥民 진인변작화서민
惟知種桃作丘畛유지종도작구진
花開萬樹回靑春화개만수회청춘
武陵何處漁舟叟무릉하처어주수
花間邂逅逢耕耦화간해후봉경우
不恨秦亡祖龍死 부한진망조룡사
却恐凡人亂我趣각공범인란아취
當時眞僞不可知당시진위불가지
淵明作記潤色之연명작기윤색지
如今千載無路入여금천재무로입
畫圖空想神仙姿화도공상신선자

- 성현(成俔, 1439~1504), 『허백당집(虛白堂集), 풍아록(風雅錄)』권1 「도원행[桃源行〕」

해설
위의 시는 동양의 이상적인 낙원을 상징하는 무릉도원(武陵桃源)에 대해 읊은 것이다. 내용상 네 단락으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첫 단락은 진나라의 포악한 정사를 피해 도망친 백성들을 이야기한 것이다. 석교는 진시황이 바다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기 위해 건설하게 했다는 다리이고, 만리장성이나 아방궁은 모두 민력을 고갈시킨 토목공사였다. 두 번째 단락은 진나라를 떠난 백성들이 새로운 마을, 즉 도원을 이룬 내용이고, 세 번째 단락은 무릉의 어부가 우연히 이 마을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단락은 도연명이 글로 지어 세상에 전한 이 일의 진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천 년이 지난 지금도 도원을 상상하며 그린다는 작자의 감상이다.

시에서 말한 도잠(陶潛)의 기문은 「도화원기(桃花源記)」라는 제목으로 『도연명집(陶淵明集)』에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진(晉)나라 때 무릉에 살던 어부가 배를 타고 물길을 따라가다가 길을 잃었는데 아름다운 복숭아꽃 숲을 만났고 다시 좁은 동굴로 들어가 보니 그 안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 안에서 농사를 짓고 평화로이 살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니 그들은 진나라의 학정을 피해 도망 온 사람들로 진나라가 망하고 이후 한나라, 당나라가 흥성했다 망한 사실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부가 돌아갈 즈음에 그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을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는데, 이후 어부가 다시 그 마을을 찾아가려 했으나 길을 찾지 못했다.
평범한 사람이 속세를 떠나 신선세계나 이상향을 찾았다가 돌아온다는 전형적인 내러티브인데, 특이한 점이라면 도원은 당시의 일반 농촌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눈이 놀랄 만한 화려한 궁전이나 미인도 없고, 술과 고기를 쌓아놓고 즐기는 풍요로움도 없고, 도술이나 괴력을 자랑하는 신도 없다. 그냥 소박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백성들이 있을 뿐이다. 현실과 다른 점이라면 그들을 괴롭히는 포악한 정치가 없는 것이다. 고작 이 정도가 이상향이라면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 본다면 잘못된 정치가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공자도 포악한 정사는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봄이 되어 벚꽃이나 복사꽃이 흩날리면 곳곳이 도원과 같은 경치를 이룰 것이다. 하지만 꽃잎만 휘날린다고 도원이 되겠는가? 정치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진나라 백성들처럼 어딘가로 떠나고픈 마음이 들지 않기를 바란다.
글쓴이김성애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