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포럼/고전한시

[한시감상] 가을밤의 단상

청풍선비 2020. 6. 3. 17:23

예를 배우던 뜰 앞에서 선친 말씀 직접 들으니
봉은사에 자주 가서 공부했노라 하시었네
부모님 여의고 홀로 남은 이 목숨 머리가 온통 센 채
바로 그곳에서 지는 해를 보노라니 눈물이 수건을 적신다
당시의 일 묻고자 해도 연로한 승려가 없고
그저 임진년이라 쓰인 유묵만 남아 있구나
머뭇머뭇 동쪽 문 기둥을 자꾸 배회하노라니
오래된 나무에서 서글픈 바람이 불어오누나

 

聞禮庭前聽說親문례정전청설친
奉恩寺裏出遊頻봉은사리출유빈
餘生孤露頭成雪여생고로두성설
此地斜陽淚滿巾차지사양루만건
欲訪前塵無老宿욕방전진무로숙
秖殘遺墨記壬辰지잔유묵기임진
躊躇重繞東門柱주저중요동문주
古樹悲風吹向人고수비풍취향인

 

- 목만중(睦萬中, 1727~1810), 『여와집(餘窩集)』 권5 「선친이 젊은 시절에 봉은사(奉恩寺)에 자주 왕래하며 공부하였는데 절의 누각 동쪽 두 번째 들보의 가장 높은 곳에 성명이 기록되어 있고 아래에 ‘임진년 중추’라고 쓰여 있었다. 지금 헤아려보니 72년 전인데도 묵적이 완연하기에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리며 쓰다. [先君子少日數往來肄業於奉恩寺。寺樓東邊第二樑最高處有題名。下方書以壬辰仲秋。計今七十二歲。墨蹟宛然。感泣有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