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록보유 (己卯錄補遺)] - 최운 전(崔澐傳)
《기묘록(己卯錄)》은 본래 기묘사화(己卯士禍) 때에 같이 화를 입었던 한 사람인 김정국(金正國)이 편찬한 것이고 뒤에 김육(金堉)이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 시절에 간행하였다.
[제목] 최운 전(崔澐傳)
최운(崔澐)은 □□생으로 자(字)는 운지(澐之)이다. 대대로 전의(全義)에 살았으며 일찍이 충암(冲庵 김정(金淨))과 같이 공부하였다. 무인년에 그 고을에서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별과(別科)로 보관(補官)되었는데, 천목(薦目)에는, 지조와 행실이 바르고, 학식과 재행(才行)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제(下第)하여 황간 현감(黃澗縣監)이 되었다. 정사를 대범하게 다스리고 송사(訟事)는 사리에 맞으니 아전들은 두려워하고 백성들은 따랐으며, 임금은 옷감 한 벌을 내려 격려하였다. 12월에 파직되어 고향에 근신하고 있었는데 경진년에 이신(李信)의 고사(告辭)에, “김 대사성(金大司成 김식(金湜))이 망명 중에 있을 때, ‘나를 받아줄 사람은 최운과 영해 부사(寧海府使) 이윤검(李允儉)뿐이다.’ 말한 바 있다.” 하였으므로, 체포되어 추국을 받고 전 가족이 강계(江界)로 추방되어 죽었다. 죄가 풀리자 그의 아내가 뼈를 가지고 돌아와 고향에 장사지냈다. 공이 일찍이 청풍(淸風) 한벽루(寒碧樓)에서 벗을 보내는 시를 지었는데,
머나먼 타관 길에 / 萬里關河路
나그네의 외로운 모습이여 / 羈危隻影微
바람은 성긴 버들 언덕에 많고 / 風多疎柳岸
낙엽은 늦은 산 석양빛에 떨어진다 / 葉落晩山暉
내 마음 산수에 쏠려 있고 / 山水情都在
저 일은 존망이 다 틀렸네 / 存亡事已違
고향이 이제 멀지 않으니 / 故園今不遠
행여나 더디 돌아갈까 저어하노라 / 錯莫欲遲歸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