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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 - 백 스물 여섯 번째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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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국과 폴란드와 청나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
2010. 8. 9. (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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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물을 바라보는 인간의 앎은 적층적인 경우가 많다. 한번 층이 바뀌면 그 층 안에 있던 앎 자체도 바뀌어 버린다. 역사학자가 할 일은 시대마다 서로 다른 인간의 앎을 탐사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층과는 서로 다른 층에 있는 앎의 유적을 발굴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산국과 폴란드와 청나라의 공통점이란 무엇일까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자. 이 물음은 2010년 현재의 감각으로 보자면 이해할 수 없는 낯선 내용이다. 폴란드와 청나라의 공통점도 막연하기만 한데 폴란드와 청나라, 그리고 신라와 동시대에 있었던 우산국의 공통점을 생각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낯설기만 한 이 물음이 1901년을 살았던 장지연에게는 익숙한 물음이었다. 우리의 앎과 층을 달리하고 있었던 그의 앎은 무엇이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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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건대 신라 지증왕 13년 우산국을 정복하였다. 우산국은 명주(溟洲: 강릉) 에서 정동으로 바다 한가운데 있는데 곧 지금의 울릉도이다. 땅은 사방 백 리에 불과하나 험준함을 믿고 복종하지 않았다. 이찬 이사부가 갑병 10여 인을 이끌고 나무 사자 100두를 만들어 금색으로 색칠하고 전함에 실어 섬에 도착하자 “너희들이 항복하지 않으면 이 짐승을 풀어놓아 너희들을 밟아 죽일 것이다.”라고 속였다. 우산국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고 마침내 항복하였다. 험준함을 믿고 복종하지 않다니 처음에는 어찌 그리 강경했으며, 크게 두려워하고 마침내 항복하다니 나중에는 어찌 그리 유약했는가? 적의 침입을 받지 않을 만큼 산하가 아주 단단한지, 견고하게 수비할 수 있을 만큼 성지가 아주 튼튼한지 헤아려 보고, 백성과 전사가 제대로 막을 수 있는지 그 많고 적음과 강하고 약함의 형세를 살펴 보아 저들이 침공할 수 없음을 안 뒤에야 복종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먹으로 찍은 점처럼 작은 해상의 외로운 섬이 믿을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만 한갓 험준함을 믿기만 했으니 그 백성의 어리석음을 알 만하다. 병사들이 함부로 짓밟아 올 만큼 사나운지, 전함이 부딪쳐 공격해 올 만큼 많은지 살펴보고, 금빛 사자가 정말 사납게 공격할 수 있는지 그 진짜와 가짜, 속임수와 정수의 실체를 파악해서 저들을 제어할 수 없음을 안 뒤에야 항복할 수 있는 것이다. 눈을 현혹시키는 기괴한 물건으로 협박하는 말 한 마디 한 것이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만 크게 두려워하고 마침내 항복했으니 그 백성의 어리석음을 알 만하다. 백성이 어리석은데 망하지 않는 나라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있지 않았다. 지금 세계에서 본다면 대국과 소국, 강국과 약국이 서로 나란히 늘어서 있는데, 백성이 어리석지 않으면 처음에도 자국의 힘을 믿지 않으면서 서로 화호를 맺고 나중에도 상대국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서로 기각을 이룬다. 따라서, 소국과 대국이 서로 맞서고 약국과 강국이 서로 자립한다. 백성이 어리석으면 처음에는 믿지 않음이 없다가 나중에는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게 되어 소국이 대국에 병탄되고 약국이 강국에 병탄된다. 백성이 심하게 어리석으면 소국과 약국 뿐만 아니라 대국과 강국도 병탄을 당한다. 멀리 구할 것 없이 태서의 파란(波蘭: 폴란드)은 대국이고 강국이라 할 수 있지만 백성이 어리석기 때문에 끝내 아국(俄國: 러시아), 보국(普國: 프러시아), 오국(奧國: 오스트리아)에 병탄되었다. 현금 지나(支那: 차이나, 곧 중국)의 청국도 대국이고 강국이라 할 수 있지만 백성이 어리석기 때문에 연합군에게 패배하여 누구 손에 병탄될지 모른다. 백성이 어리석으면 나라가 반드시 망한다는 증거를 분명하게 댈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나무로 만든 사자의 협박이 전후로 늘어서 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백성의 어리석음이 우산국보다 심하니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라를 가진 자 서둘러 먼저 백성을 가르쳐서 어리석음을 깨우쳐 나무 사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속임수인지 정수인지 알 수 있도록 한다면 어찌 나라가 보존되고 나라가 흥성하는 큰 기본이 아니겠는가.
- 장지연(張志淵),〈독사유감(讀史有感)〉《위암문고(韋庵文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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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외도(1882년 울릉도검찰사 이규원이 그린 지도로 추정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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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역사상 많은 국가들의 흥망성쇠가 있었지만 우산국의 망국사는 조금 특별한 데가 있다. 고구려와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을 당한 것처럼 망국사의 기본적인 형태는 대외적인 전쟁에서 패배한 결과로 나타난다. 또는 신라가 지방세력인 왕건에게 항복하거나 고려가 무장세력인 이성계에게 찬탈된 것처럼 대내적인 도전에 굴복한 결과로 나타난다. 그러나, 우산국이 신라에게 복속한 것은 신라와 국운을 건 일전을 벌인 결과도 아니었고 우산국 내부의 지방 세력의 소요 때문도 아니었다. 적어도 역사 기록에 의하면 우산국은 나무사자를 싣고 온 신라 이사부의 협박에 두려움을 느끼고 항복하였다. 이사부는 나무 사자를 이용한 것이지만 사자와 나무 사자를 분별할 능력이 없었던 우산국에게 그것은 액면 그대로 사자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공포의 실체를 알지 못할 때 공포를 헤쳐 나갈 행동의 반경은 그 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사자와 나무 사자의 사이를 통찰하는 민지(民智)의 개명이다.
민지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역사적 사실은 이처럼 우산국의 역사에서 마련된 것이지만, 민지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역사적 감각이 전통적인 관념 체계에서 충분히 표현된 적은 드물었다. 유교적인 왕정 이념에서 볼 때 왕조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원리는 천명과 민심이었고, 특히 민심은 천심이란 말이 있듯이 백성에 대한 국가의 본질적인 관심사는 백성이 얼마나 슬기로운가 하는 민지의 문제가 아니라 백성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민심의 문제에 있었다. 그렇게 보면 우산국의 역사에서 민지의 문제를 제기한 장지연의 역사 비평은 유교 전통에 입각한 오래된 앎이었다기보다 그가 이 글을 지은 1901년 당시 호흡하고 있었던 새로운 앎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우산국의 역사 그 자체가 아니라 우산국의 역사에서 민지를 읽어내는 그의 앎이 어떠한 역사적 환경에서 조성되었는가 하는 물음일 수도 있다.
민지에 주목하는 장지연의 앎은 독서와 견문의 두 가지 방향에서 나왔으리라. 독서의 방향이란 그가 『파란말년전사(波蘭末年戰史)』를 읽고 발견한 폴란드 백성의 어리석음이다. 한 때 발트 해에서 흑해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차지했던 동유럽의 패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18세기에 들어와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삼국에 영토가 분할되어 끝내 독립을 잃고 말았다. 외세를 등에 업은 귀족 세력의 내부적인 정쟁이 초래한 폴란드 망국의 사태는 대한제국을 살아가는 지식인들에게 타산지석이 되었다. 실은 한국도 그러하지 않은가. 한국도 러시아와 일본의 외세에 의해 폴란드의 전철을 밟고 있지 않은가. 견문의 방향이란 그가 청에서 일어난 의화단 운동을 보고 발견한 중국 백성의 어리석음이다. 서태후를 중심으로 집권 세력이 의화단의 무술과 권법을 이용해 서양 세력을 구축하려 하였다가 8개국 연합군에게 북경이 함락된 사건은 이웃 나라 대한제국의 지식인들이 보기에 도저히 믿기지 않는 어이없는 역사의 실패였다. 무술과 권법으로 총포를 물리치겠다고 나선 것도 그렇지만, 무모하게 배외주의에 불을 지폈다가 중국 각지를 서양 세력이 잠식하여 제국의 분열과 쇠망이 임박하였다는 것은 경악할 일이었다. 하지만, 한국 역시 그러한 실패를 경험하지는 않았는가. 동학운동과 의병운동은 의화단운동에서 얼마나 멀리 나아갔는가. 이러한 생각을 하며 장지연은 우산국의 역사를 읽으면서 차례로 폴란드의 실패, 청나라의 실패를 연상할 수 있었고 한국의 다가올 실패를 우려하고 있었다.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우산국과 폴란드와 청나라는 장지연의 인식 체계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 원문은 홈페이지 > 알림마당 > 고전포럼 > 고전의향기 에서 서비스 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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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노관범
*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박사 *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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