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촌선생문집 제1권_응제시_2
- 내주(萊州) 바다에 항해(航海)하다.
열 길이라 바람돛 만곡의 배로 / 十丈風帆萬斛船
푸른 바다 아득아득 가이없구려 / 雲開蒼海渺無邊
물결에 별 매달려 서로 비추고 / 星垂雪浪相涵映
물은 은하에 부딪쳐 함께 연대라 / 水拍銀河其接運
반양산(半洋山) 향해 가서 장사를 슬퍼할망정 반양산은 산 이름인데 내주(萊州)의 바다 가운데 있다. 일명 오호도(嗚呼島)라고도 한다. 전횡(田橫)의 부하 5백 명이 자살한 곳이다. / 可向半洋悲壯士
삼도라 뭇신선 찾아가진 않으련다 / 不須三島問群仙
오르락내리락 이 몸 몹시 흥겨우니 / 舟中偃仰堪乘興
넌지시 뗏목 타고 하늘로 오를 걸세 / 自是浮槎便上天
이달 22일에 10수를 명제(命題)하다.
[주D-001]전횡(田橫) : 진(秦) 나라 사람으로 본래 제(齊)의 왕족이었다. 뒤에 한신(韓信)이 제왕(齊王) 전광(田廣)을 파멸시키자, 전횡은 자립하여 왕이 되고 항우(項羽)를 섬겼었는데 한 고조(漢高祖)가 항우를 멸망시키자 전횡은 그의 무리 5백 명을 데리고 해도(海島)로 도망하였다. 고조는 사람을 보내어 부르기를 “전횡아 오라. 높은 자에게는 왕을, 낮은 자에게는 후(侯)를 주겠으며, 만일 오지 않으면 군사를 보내어 전멸시키겠다.” 하였다. 전횡은 두 객(客)과 함께 낙양(洛陽) 30리 밖에까지 와서 자살하니, 그의 객도 따라 죽었으며 해도에 있던 5백 명도 이 소식을 듣고는 모두 자살하였다. 이 때문에 그들을 슬퍼하여 이 섬을 오호도(嗚呼島)라 불렀다 한다.
[주D-002]삼도(三島) : 바다 가운데 있으며 신선이 산다는 영주(瀛洲)ㆍ봉래(蓬萊)ㆍ방장(方丈)의 삼신산(三神山)을 가리킨다.
- 상고 시대 개벽(開闢)한 동이왕(東夷王)
옛날에 신인(神人)이 단목(檀木) 아래 하강하자, 나라 사람들이 그를 임금으로 세우고 따라서 단군(檀君)이라 호하였다. 때는 당요(唐堯) 원년(무진)이었다.
전설을 듣자니 아득한 옛날 / 聞說鴻荒日
단군님이 나무밑에 내리었다네 / 檀君降樹邊
임금 되어 동쪽 나라 다스렸는데 / 位臨東國土
저 중국 요 임금과 때가 같다오 / 時在帝堯天
전한 세대 얼마인지 모르지만 / 傳世不知幾
해로 따져 천 년이 넘었답니다 / 歷年曾過千
그 뒷날 기자의 대에 와서도 / 後來箕子代
똑같은 조선이라 이름하였네 / 同是號朝鮮
- 일본(日本)이 바라보이다.
물결치는 저 동쪽 바다를 보니 / 東望洪濤外
왜놈들 성품이 위낙 완악해 / 倭奴稟性頑
일찍이 덕화에 못 젖었기에 / 未嘗沾聖化
언제나 간흉을 부렸지 / 常自肆兇奸
가만가만 이웃 나라 침략해 오고 / 剽竊侵隣境
바다산에 몸 붙여 구차히 사네 / 偸生寄海山
원컨대 천토를 받들고 가서 / 願將天討去
죄를 묻고 개가 부르며 돌아왔으면 / 問罪凱歌還
[주D-001]천토(天討) : 하늘의 뜻을 받들어 죄가 있는 자를 토벌하는 것을 말한다.
- 금강산(金剛山)
하얗게 우뚝 선 천만 봉우리 / 雪立亭亭千萬峯
바닷구름 걷히자 옥부용 솟았네 / 海雲開出玉芙蓉
신광은 으리으리 한 바다 간직하고 / 神光蕩漾滄溟近
맑은 기운 서려서려 조화가 뭉치었네 / 淑氣蜿蜒造化鍾
험준한 멧부리는 조도에 다다르고 / 突兀岡巒臨鳥道
그윽한 골짜기엔 신선이 숨어 있네 / 淸幽洞壑祕仙蹤
동쪽을 유람하다 정상에 오르고자 / 東遊便欲凌高頂
홍몽세계 굽어보며 가슴 한번 열어 보자 / 俯視鴻濛一盪胸
[주D-001]조도(鳥道) : 높은 봉우리로 통하는 오솔길. 이백(李白)의 촉도난(蜀道難) 시에 “서쪽으로 태백성(太白星)을 바라보니 조도가 있다.” 하였다.
- 신경(新京)의 지리(地理)
천 년이라 바다 나라 성인을 만나니 / 海國千年遇聖明
우리 임금 붙좇아 정성을 바치도다 / 我王歸附貢丹誠
백성을 다스려 조선이라 이름 받고 / 牧民寵受朝鮮號
집을 지어 한양 도읍 새로 만들었네 / 作室新開漢邑城
한강물 남을 둘러 넘실넘실 흘러가고 / 一水繞南流蕩漾
삼각산 북을 지켜 우뚝이 솟았다오 / 三山鎭北聳崢嶸
구구한 지리야 말한들 무엇하리 / 區區地理何須說
황제 은혜 길이 입어 태평을 즐기리라 / 永荷皇恩樂太平
- 진한(辰韓)
삼한 나라 솥발처럼 대치해 있어 / 三韓曾鼎峙
천 리라 전쟁에 시달렸다오 / 千里困兵爭
이기고 지고 힘이 서로 적수라서 / 勝負力相敵
합병이 좀처럼 성공을 못 봤다오 / 兼幷功未成
왕공이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키니 / 王公初擧義
김씨는 멀리서 정성을 바치었네 / 金氏遠輸誠
이로부터 오늘날에 이르도록 / 自此至今日
우리 백성 삶의 터전 다져왔었네 / 吾民得遂生
[주D-001]왕공(王公)이……바치었네 : 고려의 태조(太祖) 왕건(王建)에게 신라 경순왕(敬順王)이 항복한 일을 가리킨다.
- 마한(馬韓)
아득아득 마한 땅을 더듬어 보니 / 渺渺馬韓地
구구하다 저 한 바다 물가로세 / 區區鯨海濱
세 나라가 분할하여 점령하더니 / 三方初割據
통일로써 마침내 화친되었네 / 一統竟和親
봉적이라 천년이 지나간 뒤에 / 鋒鏑千年後
사방 들엔 상마가 우거졌네 / 桑麻四野春
더더구나 성명의 시대 만나니 / 況今逢聖代
먼곳도 동인을 입었답니다 / 遠俗被同仁
[주D-001]동인(同仁) : 온 천하 사람을 차별없이 한결같이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 변한(弁韓)
동쪽 나라 셋으로 나눠졌을 땐 / 東國三分際
백성들이 오래도록 불안했었네 / 民生久未安
끊임없이 일어나는 만촉의 싸움 / 紛紛蠻觸戰
뒤숭숭 소란했던 변한과 진한 / 擾擾弁辰韓
옛 성가퀴 슬픈 바람 메아리치고 / 古壘悲風起
오래된 누대에 밝은 달빛 차갑구나 / 荒臺澹月寒
통합이 이뤄진 뒤로부터는 / 自從成統合
제나 예나 길이 서로 즐거웠다오 / 彼此永交懽
[주D-001]만촉(蠻觸)의 싸움 : 작은 나라들끼리 서로 다툰다는 뜻. 《장자(莊子)》 칙양(則陽)에 “달팽이의 왼쪽 뿔 위에 만(蠻)이라는 나라가 있었고 오른쪽 뿔 위에는 촉(觸)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서로 땅을 쟁탈하느라 전쟁을 벌여 수만의 시체가 쌓였었다.” 한 우언(寓言)에서 나온 것이다.
- 신라(新羅)
저 옛날 혁거세란 임금이 있어 신라의 시조(始祖) 이름인데 성은 박씨이다. / 伊昔赫居世
오봉 원년 나라를 열었었다오 한 선제(漢宣帝) 오봉(五鳳) 원년에 신라의 시조가 즉위하였다. / 開邦五鳳年
대수는 오래라 천년 내리고 / 相傳千歲久
외떨어진 한 구석을 차지했다오 / 粗保一隅偏
갑자기 계림의 땅을 드리며 / 却獻鷄林土
곡령으로 건너와 조회하였소 / 來朝鵠嶺天
면면히 이어가던 삼성의 사전(祀典) 신라는 박(朴)ㆍ석(昔)ㆍ김(金) 세 성이 번갈아서 임금이 되었다. / 綿綿三姓祀
영영 끊겨 정히 가엾습니다 / 永絶正堪憐
[주D-001]곡령(鵠嶺) : 개성(開城)에 있는 송악산(松嶽山)의 이칭(異稱).
- 탐라(耽羅)
검푸른 한 점이라 한라산 보소 / 蒼蒼一點漢羅山
아득아득 저 멀리 파도 속에 있네 / 遠在洪濤浩渺間
바다에서 사람 오자 별빛 함께 반짝이고 옛날에 탐라 사람이 신라에 조회오자 객성(客星)의 응험(應驗)이 있었으므로 신라 임금은 기뻐하여 호(號)를 성자(星子)라 내렸다고 그 자손이 지금까지 일컫는다. / 人動星芒來海國
말은 용종을 낳아 천한으로 들여오네 / 馬生龍種入天閑
땅은 외져도 백성은 생업을 이루고 / 地偏民業猶生遂
바람결에 장삿배는 갔다가 돌아오네 / 風便商帆僅往還
성대라 직방씨(職方氏) 여지도(輿地圖)를 편수할 제 / 聖代職方修版籍
이 나라 누하대서 삭제하지 않았도다 / 此邦雖陋不須刪
[주D-001]천한(天閑) : 천자가 타는 말을 기르는 마굿간을 말한다.
[주D-002]직방씨(職方氏) : 주대(周代)의 관명(官名)으로 천하의 지도와 사방의 공부(貢賦)를 맡았다.
- 대동강(大同江)
기자의 옛터라서 땅이 절로 평탄한데 / 箕子遺墟地自平
큰 강물 서쪽으로 틔어 외로운 성 감쌌구려 / 大江西拆抱孤城
물결은 아득아득 하늘 닿아 아스라하고 / 烟波縹渺連天遠
모래는 맑고 맑아 바닥까지 보이누나 / 沙水澄明徹底淸
온갖 내 받아들여 언제고 넘실넘실 / 廣納百川常混混
만상이 잠기어라 빈 속에 가득찼네 / 虛涵萬像更盈盈
바다로 들어가는 조종의 뜻을 보소 / 霈然入海朝宗意
대국을 섬기는 우리님의 정성일레 / 正似吾王事大誠
10월 27일 6수를 명제(命題)하다.
[주D-001]조종(朝宗) : 조종은 모든 물이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데, 뒤에 제후(諸侯)가 천자에게 조알
(朝謁)하는 의미로 썼다.
- 내빈(來賓) 누대 이름 에서 고가(高歌)를 듣다.
만국이라 내빈들 옥경에 모이기로 / 萬國來賓會玉京
높은 누대 일부러 길가에다 지었구려 / 高樓爲向路傍營
화기 엉긴 더운 술 골수에 젖어들고 / 酒熏和氣淪肌骨
노래 한창 맑은 소리 정감을 자아낸다 / 歌咽淸聲感性情
패물은 징글징글 주옥이 부딪치고 / 風動佩環珠玉碎
휘날리는 춤가락 비단 소매 가벼워라 / 香飄舞袖綺羅輕
구경하는 먼 곳 손님 얼마인지 모르지만 / 遠人遊賞知多少
미신의 오늘날 영화만은 못하리라 / 爭似微臣此日榮
- 중역(重譯) 누대 이름 에서 영인(伶人)을 구경하다.
먼 나그네 은총 입어 봉성을 나와보니 / 遠客承恩出鳳城
한 거리 대낮에 말굽이 가볍구나 / 天街白日馬蹄輕
누에 오르니 툭 트인 앞창이 가장 좋고 / 上樓最愛軒窓逈
술잔 들며 무르익은 풍악 구경하네 / 擧酒貪看技樂成
해학 섞인 말 웃음 진실로 즐겁지만 / 笑語詼諧誠可喜
구르는 다리 허리 곱기도[孌轉] 연전(孌轉)이 다른 책에는 전변(轉變) 으로 되어 있다. 하다마다 / 腰肢孌轉更堪驚
이제사 광대 재주 공교한 줄 알았으니 / 如今得閱伶才巧
실컷 취해 벙실벙실 임의 은혜 감사하네 / 大醉陶然荷聖情
[주D-001]봉성(鳳城) : 장안(長安)에 대한 이칭으로 제도(帝都)를 가리킨다.
- 남시(南市) 누대 이름 에서 잔을 들어 실컷 취해 돌아오다
백 척이라 높은 다락 시정(市井)을 내리 눌러 / 百尺高樓壓市廛
구경꾼 오르니 흥취가 유유하이 / 遊人登眺興悠然
긴 거리 온갖 물건 어울려 뒤섞이고 / 長街萬貨紛交錯
일천 호의 좋은 가옥 멀리 벋어 연해 있네 / 華屋千甍遠接連
금술잔 자꾸 들며 춤가락 구경하고 / 屢引金觴看妙舞
비파 소리 들으면서 시를 짓는다오 / 更聞瑤瑟賦新篇
임의 은혜 함초롬이 취한들 마달쏜가 / 皇恩旣渥那辭醉
어화 둥둥 돌아보니 하늘에 달 솟았네 / 酩酊歸來月上天
- 북시(北市) 누대 이름 에서 소회를 말하고 낙탁(落魄)한 채 돌아오다.
종부산 앞에 있는 북시루는 / 鍾阜山前北市樓
붉은 추녀 신주에 솟아났구려 / 朱甍突兀控神州
관광이라 먼 나그네 은명 입어 왔다소니 / 觀光遠客承恩至
노래하는 미인이 술을 권해 만류하네 / 度曲佳人勸酒留
가슴 풀고 실컷 마셔 참으로 호탕하다 / 縱飮開懷眞軼宕
부축받아 돌아오니 이것도 풍류로세 / 扶歸落魄亦風流
전례없는 큰 덕택에 함초롬이 젖었으니 / 沈酣德澤曾無比
뼈가 가루되도록 보답할 것을 생각하네 / 感激惟思粉骨酬
[주D-001]신주(神州) : 중국을 말한다.
- 취선(醉仙) 누대 이름 에서 실컷 마시며 강 언덕을 바라보다
좋은 날 구경놀이 취선루에 올랐어라 / 勝日遊觀上醉仙
난간에 기대앉아 강둑을 바라보네 / 欄干徙倚向江天
바람 연기 얽혀얽혀 성 밖을 연대었고 / 風烟縹渺連圻外
물 구름 아득아득 포구와 맞닿았네 / 雲水微茫接海壖
귀한 술 한껏 취한들 어떠리요 / 美酒不辭成酩酊
향기로운 생선 안주 배 부르게 먹어보자 / 珍羞且得飽芳鮮
한 가락 맑은 노래 객의 시름 다 녹으니 / 一聲淸唱羈愁盡
임의 은혜 감격해라 만 년을 축수하네 / 深感皇恩祝萬年
- 학명루(鶴鳴樓)에 두 번째 앉아서 환패(環佩) 소리를 듣다.
학명루 위에서 오래도록 배회하니 / 鶴鳴樓上久徘徊
환패 소리 징글징글 천천히 걸어오네 / 環佩珊珊緩步來
비파 소리 어울린 노래도 좋지마는 / 已喜淸歌和寶瑟
금술잔 받드는 섬섬옥수 더더구나 / 況看纖手捧金杯
남으론 제전이라 산하도 웅장하고 / 南臨帝甸山河壯
북으론 천문이라 일월이 열렸구려 / 北對天門日月開
거룩하신 임의 은혜 내신에게 전달받아 / 得被內臣宣聖澤
사흘을 유가하고 실컷 취해 돌아가네 / 遊街三日醉扶回
홍무(洪武) 병자년(1396, 태조5) 여름에 명 나라 황제가 사신을 본국에 보내어 표(表) 지은 자를 징소(徵召)하였는데, 신(臣) 근(近) 이 윤색(潤色)에 참여한 까닭에 우리 임금에게 고하고 명 나라 조정에 달려갔었다. 황제는 사(赦)하여 불문에 붙이고는 은명(恩命)을 내려 문연각(文淵閣)에 머물러 반열에 따르게 하고 아울러 광록시(光祿寺)에서 사식(賜食)하고 내부(內府)에서 사의(賜衣)하였으며, 3일 동안 유가(遊街)하게 하고 따라서 잔치를 베풀어 주며 명제(命題)하여 시(詩) 약간 수를 지어 바치게 하고 어제(御製) 장구(長句) 사운시(四韻詩) 3편을 하사하였다. 어찌 헤아렸으랴 천광(天光)이 내려 미물(微物)을 비식(賁飾)함은 실로 천추 에 만나기 어려운 특이한 은총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에 또 한림학사(翰林學士) 유공 삼오(劉公三吾)와 교분을 맺게 되었는데 연치와 덕망이 모두 높은 분이라서 태산북두(泰山北斗)와 같이 우러르며, 허공 관(許公觀)ㆍ경공 청(景公淸)ㆍ장공 신(張公信)ㆍ 대공 덕이(戴公德彝) 등 여러 분들이 난장 봉채(鸞章鳳彩)의 존재로 금림(禁林)에서 빛을 날리는 처지인데 도, 모두 해외의 소생이라 해서 비루(鄙陋)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겸공(謙恭)하여 예로 대우하며 따뜻한 얼굴로 대해 주었다. 나는 매양 옷자락을 걷어잡고[摳衣] 나아가 업(業)을 받으며 의심되는 바를 질문하여 알지 못하는 것을 배우고자 하였으나 언어가 다르고 또 통역할 사람조차 없어서 마침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칙지 (勅旨)를 받들고 동으로 돌아와서 지난일을 추억해 보니, 어렴풋이 꿈에 천상에 올랐다가 깨고 보니 진토(塵土)에 있는 것과 같았다. 다행히도 천장(天章 어제시(御製試))이 상자 속에 빛나고 있으니 마땅히 열겹으로 싸서 값지게 수장하여 긴 세대를 통해 자손의 보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홍무 30년(정축) 봄 3월 상순에 양촌 권근은 본국에 와서 쓰다.
[주D-001]남으론……열렸구려 : 제전(帝甸)은 황성(皇城)에 가까운 지방을 말하며 천문(天門)은 천상(天上)에 있는 문으로 상제(上帝)가 살고 있다 하는바 황제의 궐문(闕門)을 미화해서 칭한 말이다.
[주D-002]윤색(潤色) : 지어놓은 문장을 다시 다듬는 것, 곧 윤문(潤文).
[주D-003]금림(禁林) : 궁중(宮中)을 가리키는데, 윗구절에 난장 봉채(鸞章鳳彩)가 있으므로 이에 맞추기 위하여 금림이라 한 것이다.
[주D-004]옷자락을 걷어잡고[摳衣] : 일어나 경의를 표시하는 용어로 제자가 스승에게 나아갈 때 많이 쓴다.
- 제진(製進)한 천감(天監)ㆍ화산(華山)ㆍ신묘시(神廟試) 병서(幷序)
성균 박사(成均博士) 신 등은 엎드려 이러한 때를 만났습니다.
주상 전하께서 뛰어난 무덕(武德)으로써 시기에 응하여 천명(天命)을 받아 통서(統緖)를 열고 읍양(揖讓)으로써 나라를 차지하여 마침내 한강(漢江) 북쪽에 도읍을 정하였습니다. 그 다음해 가을에 침묘(寢廟)가 이루어지자 겨울(1395, 태조4) 10월 5일 을미에 몸소 곤룡포와 면류관을 갖추시고 태실(太室)에 증제(烝祭)를 올리니, 신인(神人)이 모두 즐거워하고 상서와 경사가 함께 이르러서 세상에 드문 의전(儀典)이 한번 거행으로 모두 갖추어졌으니 거룩하고도 아름답습니다.
예로부터 성제(聖帝) 명왕(明王)이 작흥(作興)하면 반드시 문신(文臣)의 가영(歌詠)과 찬송(讚頌)이 곁따라서, 그 아름다운 성덕(盛德)과 신공(神功)을 발양하여 관현(管絃)에 올리고 금석(金石)에 새김으로써 휘황찬란하게 천추에 빛내곤 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주(周) 나라의 시로 대명(大明)ㆍ면과(綿瓜)ㆍ생민(生民)ㆍ청묘(淸廟)가 그것인데, 이는 그 천명을 받아 도읍을 정한 것을 찬미(讚美)하거나 그 사당을 세워 제사받드는 것을 칭송하여, 덕과 공을 선양하고 밝히며, 따라서 권장과 경계를 붙여 간책(簡冊)에 실어 만세의 경(經)이 되었던 것입니다.
한당(漢唐)으로 내려와서도 역시 사(詞)ㆍ부(賦)의 작품을 남기어 그 임금을 찬미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한 시대의 거룩한 공업이 이에 의탁하여 불후(不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 전하의 광대하고 숭고한 덕은 한당(漢唐)을 뛰어넘어 곧장 요순(堯舜)을 따라가고 있으니, 진실로 시(詩)로써 그 아름다운 덕을 찬양하여 무궁한 세대에 전하게 함이 마땅합니다.
신등은 모두 비재(菲才)의 몸으로 다행히 좋은 세대를 만나서 현가(絃歌)로 교화하는 직책을 맡고 있사온데, 친히 이처럼 거룩하고 아름다움을 보고서 어찌 감히 가시(歌詩)가 없어 그 풍성(風聲)을 사라지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비졸(鄙拙)함을 헤아리지 않고 선뜻 고시(古詩)에 의거하여 사언시(四言詩) 3편을 짓고 편마다 서(序)를 두어 책머리에 붙였습니다. 그리하여 이것을 제생들과 함께 즐겁게 노래하고 읊으며, 춤추고 뛰놀며, 삼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길 왼편에서 헌상(獻上)합니다. 비록 사어(詞語)가 거칠고 얕아서 그 아름다움을 선양하기에는 부족할지 모르나, 혹시 태사(太師 악공(樂工)의 장)에게 명령하여 한번 채택하여 진열하게 하신다면 이만 다행이 없겠습니다.
천감(天監)은 조선이 천명(天命)을 받은 것을 아름답게 여긴 것이다. 왕이 거룩한 덕과 큰 공이 있어 천명과 인심이 집합되었으므로 고려를 가름하여 나라를 지니게 된 것이다.
하늘이 아래 내려보시어 / 天監于下
덕 있는 이에게 사랑을 모아 / 眷厥有德
그를 군장으로 삼아 / 俾長以君
백성들의 안정을 기원했도다 / 式求民莫
오직 저 고려 나라가 / 維彼有麗
그 정사 아름답지 못하기에 / 其政不淑
우리 님 명하여 대신케 하니 / 命我代之
만백성이 열복하도다 / 萬民悅服
백성의 열복이란 어떤 건가 / 民悅維何
회조가 맑고 밝아 / 會朝淸明
저자 가게도 아니 바뀌고 / 市肆不易
백성들도 총칼 못 보아라 / 民靡見兵
실내(室內)서 읍양으로 교체하고 / 揖讓于室
돌아와 정성으로 추대하네 / 歸戴以誠
대보가 발라지니 / 大寶克正
영원토록 편안하리로다 / 其永維寧
두령답다 우리 님은 / 烝哉我后
힘써 힘써 공경일레 / 翼翼其敬
덕은 인으로 높아지고 / 德以仁隆
무로써 안정했네 / 而繇武定
사심없이 하늘 섬겨 / 昭事不回
그 명을 받았도다 / 受天之命
크게 일어나 임금 되어 / 誕興作君
조선 땅을 차지했네 / 有朝鮮境
이 조선의 땅은 / 維朝鮮境
바다 동쪽 위치했네 / 殿海之東
단군이 일으키고 기자 다스려 / 檀興箕乂
풍속 좋다 이름났네 / 闡以醇風
세 곳에서 할거터니 / 三方割據
왕씨가 통일하고 / 王氏統同
우리 임금 일어나니 / 我后之作
기업 더욱 높았도다 / 基緖益隆
신라라 백제라 / 曰羅曰濟
고구려는 / 曁高麗氏
사사로이 호칭 세워 / 私立號稱
기강이 산만하더니 / 散無其紀
우리 임금 제명 받아 / 我受帝命
비로소 발라졌네 / 克正于始
기봉(箕封)에 자리잡아 / 履箕之封
억만 년을 전하리다 / 傳億萬祀
아 크도다 천명이여 / 於皇天命
빛나고 빛나 사정 없어 / 赫赫靡常
덕 없는 자 넘어뜨리고 / 覆彼昏德
어진 임금 일으키네 / 興我哲王
아 장래 임금들 / 嗟嗟來嗣
거울삼아 잊지 마소서 / 鑑此不忘
덕을 공경하면 / 克敬爾德
억만세라 다함 없으리 / 億載無疆
이상은 천감 6장(章), 장마다 8구이다.
화산(華山)은 한양에다 도읍을 정한 것을 찬미한 것이다. 조선이 천명을 받아 도읍을 한강 북쪽에 정하여 만세의 기업(基業)을 세우니 사방으로 도리(道理)가 균평하고 배와 수레가 함께 통하여 백성이 편리하게 여겼다.
화악(華岳)은 높아높아 / 華山峨峨
한강은 넘실넘실 / 漢水湯湯
하늘이 다진 터전 / 天作之固
금탕보다 장하도다 / 壯于金湯
우리 임금 명을 받아 / 我興受命
한양에 도읍 정하니 / 來定于陽
점괘조차 길하여 / 卜協其吉
길이길이 좋으리라 / 永允于臧
화악은 높아높아 / 華山嵩嵩
한수는 넘실넘실 / 漢水活活
하늘이 만든 지역 / 天作之區
평탄하고 광활하이 / 平衍以闊
사방 노정 균등하여 / 道里攸均
배 수레 모두 닿네 / 舟車畢達
여기에 도읍 세워 / 建都于玆
원근이 다 기뻐하네 / 遠邇胥悅
넘실넘실 한강수는 / 滔滔漢水
이 도읍을 둘렀으니 / 于國是環
좋은 풍기 감싸 주어 / 風紀之蓄
금포로 완전토다 / 襟袍以完
임이 오셔 집 정하니 / 王來爰宅
신하 백성 편안코야 / 臣庶乂安
아 억만년을 내려 / 於萬斯年
길이 삼한을 지키리다 / 永鎭三韓
우뚝 솟은 저 화악 / 華山屹屹
서울의 진산일레 / 鎭于神京
영기 뭉쳐 신령 내려 / 鍾英降神
우리 문명 도우리라 / 佑我文明
밝고 밝은 우리 임금 / 明明我后
사려 깊은 여러 신하 / 穆穆群卿
마음 맞춰 다스리니 / 協心而治
태평이라 억만세를 / 萬世太平
이상은 화산 4장, 장마다 8구이다.
신묘(神廟)는 사당을 세워 친히 제사함을 찬미한 것이다. 터를 가려 도읍을 정하고 먼저 침묘(寢廟)를 지어 낙성되자 증제(烝祭) 올리며 친히 제사를 받들었다.
새 사당 빛나고 빛나 / 新廟赫赫
높고도 엄숙하이 / 其崇翼翼
궁궐보다 먼저 시작 / 迺先于宮
하루 못 가 낙성했네 / 迺營迺作
조고를 공경히 모셔 / 敬迓祖考
소목 차서 정했도다 / 式序昭穆
신이 와서 편안하니 / 來燕來寧
제사 범절 어김없네 / 享祀不忒
아 거룩하다 조고님 / 於皇祖考
대대로 공덕이 크사 / 世篤勳德
뒷자손에게 거름 주어 / 克昌于後
왕의 자취 여셨도다 / 式開王迹
우리 임 그 복 받아 / 我應以受
큰 나라 차지하니 / 奄有大國
추존(追尊)하는 예를 써서 / 載用追崇
종사를 지극히 하도다 / 宗祀是極
몸소 증제(烝祭) 올리니 / 躬薦大烝
곤룡포 빛나도다 / 龍衮有章
멥쌀이 향기롭고 / 粢盛苾苾
풍악은 징글징글 / 管磬鏘鏘
오르내려 관헌하니 / 登降灌獻
예를 갖춰 틀림없네 / 禮備而臧
많은 복을 내려 / 介玆繁祉
만년토록 수하리라 / 萬壽無疆
조촐한 제물 접시 / 潔蠲籩豆
즐겁도다 북치는 소리 / 於樂鼓鐘
효도 생각 끊임없어 / 烝烝孝思
삼가고 공경하네 / 翼翼其恭
큰일을 마쳤어라 / 卒事旣飭
그 정성 더욱 더해 / 益殫厥悰
천억이라 그 자손 / 子孫千億
만복을 같이하리다 / 萬福攸同
이상은 신묘 4장, 장마다 8구이다.
[주D-001]침묘(寢廟) : 옛날 종묘(宗廟)의 제도에, 앞에 있는 것을 묘(廟), 뒤에 있는 것을 침(寢)이라 하였다.
[주D-002]증제(烝祭) : 겨울 제사 이름. 봄 제사를 약(禴), 여름 제사를 사(祠), 가을 제사를 상(嘗), 겨울 제사를 증(烝)이라 한다.
[주D-003]대명(大明)……청묘(淸廟) : 대명ㆍ면과(綿瓜)ㆍ생민(生民)은 《시경(詩經)》 대아(大雅) 편명으로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훈계하기 위하여 주(周) 나라가 천명을 받아 건국한 것을 찬미한 내용이며, 청묘는 주송(周頌) 편명으로 문왕(文王)을 제사할 때에 쓰던 아악(雅樂)이다.
[주D-004]회조(會朝)가 맑고 밝아 : 《시경》 대아 대명(大明)에 있는 말로 무왕(武王)이 주(紂)와 회전(會戰)하던 날 아침이 청명했으므로 한 말인데, 지극히 인(仁)한 자가 지극히 불인(不仁)한 자를 치기 때문에 하늘도 도와서 날씨마저 청명하다는 뜻이다.
[주D-005]대보(大寶) : 왕위(王位)를 말한다. 《주역(周易)》 계사 하(繫辭下)에 “성인의 대보는 군위(君位)이다.” 하였다.
[주D-006]금탕(金湯) : 금성 탕지(金城湯池)의 준말로 산하(山河)의 견고함을 말한다.
[주D-007]금포(襟袍) : 형승(形勝)의 산하가 겹겹으로 싸였음을 말한다.
[주D-008]관헌(灌獻) : 울창주(鬱鬯酒)를 땅에 부어 강신(降神)하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