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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때 만났을 때 말이 주상(洲上)에 미치자 내가 주위를 돌아보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저 칭찬이 있으면 훼방이 있는 것은 진실로 인지상정(人之常情)이나 근자에 사람들이 주상에 대해서는 취모구자(吹毛求疵)가 너무 심하니, 어찌 칭찬이 지나치기 때문에 훼방이 지나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본 바로 말한다면 주상의 바른 학술과 선유(先儒)의 학설을 밝힌 공로는 거의 근세에 없던 것이니, 비록 주자(朱子)의 충실한 계승자요 퇴계(退溪)의 적통을 이은 분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頃對時, 語及洲上事, 而愈顧瞻未及言. 大抵有譽則有毁, 常情之固然, 而近日此近物情, 於洲上, 吹覓太甚, 豈譽者之過故毁之者甚耶? 然以余論之, 洲上學術之正ㆍ發揮之功, 殆近世所未有. 雖謂之朱門之素臣ㆍ陶山之嫡傳, 可也.]
- 《후산집(后山集》속집(續集) 권2,〈김치수에게 보냄[與金致受]〉
자네를 만난 뒤에 아직 만나기 전에 보내온 편지를 받아보았네. 그 편지 속에서 나를 너무 높이고 지나치게 추켜세운 말이 많았으니 모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네. 아마도 나를 만나지 못했을 때 혹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여 전해 들은 말이 사실이 아닌데도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평정한 마음으로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일 테지. 그러나 이미 나를 만나본 뒤에는 이런 생각은 없어졌겠지. 봄철에 몇 차례 나를 찾아와 주었기에 예의(禮儀)의 자리에서 함께 어울리고 학문의 이치를 물어보고서 자네의 뜻이 안정되고 행실이 차분하며 식견이 깊고 생각이 분명한 것이 일반 후배들보다 훨씬 뛰어난데도 겸허한 자세로 듣기를 즐겨하고 묻기를 좋아하며 근면하고 민첩하여 나태하지 않다는 사실에 감탄하였네. 장차 단계를 착실히 밟아 가서 날이 갈수록 크게 진보하여 그 큰 성취를 한량할 수 없을 것이니, 나의 스승이지 나의 벗이 아니네. 나를 스승으로 섬기는 예를 갖추겠다고 했는데 나는 이미 늙은 몸일세. 어찌 감히 나이가 많다고 해서 무턱대고 선배로 자처하여 우리 성권(聖權) 족하에게 어른 행세를 할 수 있겠는가. 말만 해도 진땀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려 감히 많은 말을 할 수 없군. 더구나 한주(寒洲)의 학문은 세상 사람들이 역질(疫疾)처럼 금기시하여 이에 물들면 종놈처럼 보고 개돼지처럼 욕하고 이에 반대하면 신선이 되어 구름 위에 오른 격이 되니, 어느 쪽으로 가느냐에 따라 영욕과 화복이 나눠지네. 우리 몇 안 되는 문도들은 바야흐로 숨을 죽이고 몸을 움츠린 채 그저 근신하며 조용히 살면서 우리 주리(主理)의 학문을 이어갈 길을 도모할 뿐일세. 그리고 행여 천행으로 마침내 잘못이 바로잡아져 그 학설이 옛 성현의 학설에 맞는지 연구되어 그 결과를 들을 수 있다면 비로소 편안히 웃으며 눈을 감을 수 있을 걸세. 이 밖에는 이 세상에서 더 바라는 바가 없으며, 또한 다른 사람에게까지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네. 자네는 젊은 나이에 학문의 길에 올라 장도가 앞에 펼쳐져 있는 터에 어찌 이런 금고(禁錮)의 숲 속에 들어가서 스스로 모욕을 자초해서 되겠는가. 나는 이미 자네에게 사랑을 받은 터라 참으로 자네에게 화를 전가하고 싶지 않네. 그래서 이렇게 간절히 말해주는 것이니, 바라건대 부디 조심하여 안전한 길로 가서 몸을 잘 지키고 대업(大業)을 이루고, 이 오활하고 어리석으며 곤궁하고 외로워 아무 데도 의지할 곳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되지 말게나. 나는 걱정하며 간절히 빌어 마지않네. 삼가 이렇게 답장을 쓰네.
[旣見後, 得未見時書, 書中多推假失倫而相與過厚者, 皆鍾所不堪當. 盖其未見之想, 疑於或然, 而傳聞之得, 不能以眞, 愛之之急, 而不暇於稱停也. 其在旣見後, 明者當無此矣. 春間數次承眄, 周旋於禮儀之塲, 叩端於名理之奧, 艶嘆夫志定而行馴, 識沉而慮明, 有非尋常後輩所等夷, 而猶謙冲退虛, 喜聞而好問, 勤敏而不怠. 是將科盈而日大以進, 渾浩乎不可涘者也, 泰師非泰友. 床下之拜, 鍾已晩矣. 曷敢以年紀之大而肯冒處于前輩之列, 爲少長之治於吾聖權足下哉! 言猶汗悸, 不敢多詞, 况寒洲之學, 爲世厲禁. 染此者奴視而豕詬, 反此者羽化而雲昇, 榮辱休咎, 判於趨嚮. 區區二三遺徒, 方相與屛息竄伏而謹拙以自靖, 圖所以毋負我主理之傳, 而賴天之靈, 得正其終, 將歸質於先聖賢而聽其發落, 方始逌然而瞑其目矣. 其餘更無所睎冀於斯世矣, 亦不欲延累於他人矣. 賢者英年啓軔, 脩塗在前. 豈宜徑入於禁錮之林以自取濯足之來哉! 鍾旣被愛於賢者, 誠不欲載禍以相餉, 故爲此披懇以相告. 望千萬戒愼, 範其馳驅, 利用安身, 克達大施, 毋爲此迂愚枯僻蹇滯孤劣之無所於歸焉者之陋也. 鍾不勝拳拳憂禱之至. 謹此控謝.]
-《면우집(俛宇集)》 권93,〈하성권에게 답함[答河聖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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