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포럼/고전명구6.31이전

냉담가계(冷淡家計)

청풍선비 2010. 9. 6. 13:26

냉담가계(冷淡家計)

 

옛날의 선비들도 딱딱한 고전에서는 좀처럼 재미를 느끼기 어려웠던가보다. 오죽하면 냉담(冷淡)하다고 했겠는가. 동서를 막론하고 고전의 글들은 대개 읽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서점에 가보면 이제 고전들도 각양각색의 자태로 단장하고서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고전의 체면이 영 말이 아닌 것들도 있다. 고전은 고인(古人)을 대하는 마음으로 그 맛없는 맛을 곱씹어 느껴가며, 조금은 옷깃을 여미고 읽어야 오히려 독서하는 맛이 나지 않을까.
    
    
이 책의 요점은 오로지 학문을 하는 데 있다네. 따라서 굉장하고 대단한 말이 강물을 기울이 듯 쏟아져도 문장을 잘 지으려 그렇게 쓴 것이 아니며, 은미하고 오묘한 뜻을 짧은 글에 담고 있더라도 가르침을 숨기려 그렇게 쓴 것이 아닐세. 구구절절이 사우(師友)간에 주고받는 진정한 학문의 뜻 아님이 없으며 또한 서로 절차탁마하고 책려(責勵) 권면하는 말 아님이 없네. 그러므로 사람을 학문의 길로 인도하는 힘이 다른 책에 비할 바가 아닐세.

학자는 먼저 심신(心身)을 수렴하여 냉담가계(冷淡家計)로 애쓰는 공부를 하여, 이 책에서 연찬(硏鑽)하고 곱씹어 음미하기를 오래도록 그치지 않아야 비로소 그 맛이 참으로 좋은 줄을 알아 학문에 힘을 얻을 수 있을 걸세. 그렇지 않다면 이 책은 이미 과거에 급제하는 데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문장의 모본(模本)이 되지도 못하네. 게다가 요즘 사람들의 학문은 글자를 새기고 글귀를 외는 데 힘을 쏟지 않으면 반드시 문장을 화려하게 꾸미는 데 정신이 팔리니, 머리를 숙이고 마음을 억누르고서 이 책을 읽어 뱃속의 탁한 기운을 씻어내고 일반 사람들이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맛을 들일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으랴. 그렇다면 이 책을 간행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읽으려 하지 않음에야 어찌하겠는가.


비록 그렇지만 양자운(揚子雲)은 후세의 자운(子雲)을 기다릴 줄 알았으니1) , 무릇 군자는 옛것을 이어받아 후세에 전하여 우리 도를 힘써 밝혀두고서 아는 이가 알고 수긍하는 이가 수긍할 때를 기다릴 뿐이지,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에 따라 취사(取捨)해서는 안 되네. 만약 세상 사람들의 취향에 영합함으로써 자기 책이 세상에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면 성인의 말씀을 모독하고 우리 도(道)를 욕되게 하는 데 가깝지 않겠는가.

 

[此書大要。專主於學問。故雖閎言大論。辯如懸河。非尙其文也。微詞奧義。寂寥短章。非隱其敎也。蓋其句句節節。莫非師友授受淵源宗旨。亦莫非相與切磋琢磨責勵警勉之言。故其作人爲學之功。非他書比也。惟學者。先須收斂身心。以冷淡家計。作辛苦工夫。於此鑽硏咀嚼。久久不輟。方始眞知其味之可悅。而得其力也。不然。旣非擧子決科之利。又無學士斲窓之需。且今人爲學。不困於訓詁誦說。則必眩於文詞繪繡。其能俯首抑心於此。滌腸胃之葷血。味衆人之所不味者。寧有幾人。然則雖使印出。其如人不肯讀何。雖然。揚子雲猶知俟後世之子雲。凡君子述古垂世。但務明吾道。以俟知者知肯者肯耳。不當徇世俗之好惡而爲取捨也。若逐時好求人悅。以幸其書之行世。不幾於侮聖言而辱吾道乎]


-《퇴계집(退溪集)》19권〈황중거에게 답하다[答黃仲擧]〉별지(別紙)

 

1) 양자운(揚子雲)은 …… 알았지(으니) : 자운(子雲)은 전한(前漢) 때의 학자인 양웅(揚雄)의 자이다. 양웅이 《태현경(太玄經)》을 짓자 사람들이 “이처럼 어려운 글을 누가 읽겠는가.” 하니, 양웅이 “나는 후세의 자운을 기다린다.” 하였다. 《漢書 卷87 揚雄傳》
    
    
〈해설〉    
퇴계 이황이 제자인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1517~1563)에게 답한 편지이다.


여기서 이 책이란 퇴계가 편찬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를 가리킨다. 《주자서절요》는 퇴계가 《주자대전(朱子大全)》의 편지 중 학문에 요긴한 것들을 추려 모아서 편찬한 것인데 금계가 성주목사(星州牧使)로 재임하던 1561년에 이 책을 처음 간행하였다.


냉담가계(冷淡家計)는 가난한 생활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주자(朱子)가 친구인 여조겸(呂祖謙)에게 보낸 편지에서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함께 공부하게 하는 방법에 대해 “먼저 경서에 뜻을 두게 하는 편이 좋을 듯하니, 사서는 요열(鬧熱)하고 경서는 냉담(冷淡)하네. 후생들은 심지(心志)가 안정되지 못해 바깥쪽으로만 쏠리지 않을 사람이 드무니, 이 점을 미리 방비해야 하네.”2) 한 데서 온 말이다. 역사서는 사람이 시끌벅적한 저자거리와 같아 흥미를 끌기 쉬운데 경서는 그 내용이 냉담하여 맛이 없다는 것이다. 삼산(三山) 유정원(柳正源 1730~1788)은 젊은 학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대가 이러한 재주와 자질을 가지고서 일찍이 과거 공부의 굴레를 벗고 냉담가계에 뜻을 두어 지기(志氣)가 이미 정해지고 식견이 풍부하니, 소년들 중에서 내가 드물게 보는 바이다.”3) 하였다. 즉 냉담가계는 경서와 같이 재미없는 책을 읽는 것을 말한다. 《주자서절요》와 같은 책을 읽는 것도 당연히 포함된다.


퇴계가 《주자대전》을 처음 읽은 것은 43세 때이다. 주자학(朱子學)의 나라로 불리는 조선으로서는 의외로 《주자대전》 완질은 중종(中宗) 18년(1523), 교서관(校書館)에서 처음 공간(公刊)되었고, 그 20년 후인 1543년에 퇴계가 처음 그 책을 입수하였다. 그 이전에도 《심경(心經)》, 《근사록(近思錄)》, 《성리대전(性理大全)》 등 성리학 저술들이 간혹 일부 학자들에게 읽히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주자(朱子)의 저술을 모아 놓은 《주자대전》을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읽고 연구한 사람은 퇴계가 처음이다. 퇴계는 《주자대전》을 읽고 연구한 지 13년만인 56세 때 《주자서절요》의 편집을 완성하였다. 퇴계는 이 책을 편집한 목적이 노년에 보기 좋도록 중요한 내용을 절록(節錄)한 것이라 했지만 이 책에는 실로 주자의 학문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퇴계는 《주자서절요》와 같은 책을 읽을 사람이 당시에 드물 터이므로 《태현경(太玄經)》을 지은 양웅(揚雄)이 그랬듯이 후세에 이 책을 알아줄 사람을 기다린다고 했지만, 《주자서절요》가 간행되자 학계에서 큰 호응이 일어났다. 이 책이 간행되자 젊은 학자들이 속속 이 책을 통해 주자학에 입문했으니, 조선에 본격적인 주자학의 시대를 연 것은 거의 이 책에서 비롯했다 해도 될 것이다. 편저(編著)이긴 하지만, 조선 학자의 저술로 퇴계의 《주자서절요》만큼 학계에 영향을 크게 미친 책이 있을까.


퇴계 자신이 좀처럼 읽히지 않으리라 예상했던, 냉담한 책 《주자서절요》는 조선에서만 도합 8차례 활자와 목판으로 간행되었고, 일본에서도 4차례 목판본으로 간행되었다. 실로 사서삼경(四書三經)에 버금가는 권위와 영광을 누린 것이다.


오늘날 인문학이 위기에 봉착했다, 인문학이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의 인문학이 퇴계의 시대와 꼭 같을 수도 없고 꼭 같아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이 고전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는 옛날과 지금이 결코 다를 수 없다. 고전은 재미없지만 고전을 읽지 않으면 늘 삶의 중심에서 일탈하여 변방을 헤매고 가지만 만질 뿐 뿌리는 잡지 못하여, 종당에 인문학이란 것이 삶의 본질을 묻는 인간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오늘날 사람들은 조금만 자기 취향에 맞지 않으면 그 책을 손에 쥐려 하지 않고,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만 찾아서 매우 효율적으로 책을 읽는다. 지식을 선별해 가질 뿐 책에서 지혜를 배우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고전은 본래 냉담한 것이니 그 냉담한 맛을 참고 씹으며 고전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인문학을 할 수 없다는 인식이 세상에 널리 퍼져서 냉담한 책들이 품위를 갖추고 다투어 서가에 오를 날이 오기를 기대(企待)한다.

 

2) 然恐亦當令先於經書留意爲佳. 盖史書閙熱經書冷淡, 後生心志未定, 少有不偏向外去者. 此亦當預防也. 《朱子大全》 33권〈答呂伯恭〉
3) 左右以恁地才資, 早脫程文之戹, 留意冷淡家計, 志氣已定, 見解已富. 年少叢裏。吾見亦罕矣. 《三山集》 3권〈答李敬美〉


ㆍ참고사항
 글쓴이 / 이상하
 2010.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