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원문

[스크랩] 天水訟 .初六

청풍선비 2010. 2. 17. 23:50

 

06.天水訟



 

   乾

 

    

   坎

    

 

 

 

6. 訟(不親)

大義 : 無訟 - 和諧社會 - 法律文化.

 

訟  송사할 송, 용납할 용   ⓐ용납하다(容納--) (용) 받아들이다 (용) 송사하다(事--), 고소하다(告訴--) 다투다 쟁론하다(爭論--) 신원하다(伸冤--: 가슴에 맺힌 원한을 풀어 

 

 訟卦는 ,옳고 바르고 진지함을 내세우나,결국 장애의 벽에 부딪치게 되고 마는 卦象을 지닌다. 스스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남에 대한 적의를 버리고 中道를 지킨다면 吉할 수 있겠지만, 자신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면 凶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현명한 지도자를 받들고 가르침을 받아야한다. 마치 큰 강을 건너는 勇者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기어이 다투어 보갰다고 버틴다면, 마침내 深淵에 빠지고 마는 비참한 결과로 종말을 보게 될 것이다.

 

[풀이] 송은 소송인데 웃사람이 강건(乾)하고 아랫사람이 음험(坎)하다면 소송은 피할 수가 없다. 그리고

소송은 중심에 정성이 있으면서 상대에게 이것이 막히고 방해됨으로서 부득이 일으키는 것으로 스스로 잘

두려워하여 중도에 알맞는 행동을 취하면 길이지안 강제로 소송을 수행하려 한다면 흉이다.

그 시비의 판단은 구오와 같은 강건중정위 대인에게 보이고 결단을 내려달라고 하는게 좋다. 큰 강을 건너는

 모험을 시도하는 건 이롭지 않다.

 

 

6. 天水訟                                                              
   【傳】訟,序卦,飮食必有訟,故受之以訟,人之所需者,飮食,旣有所須,爭訟所由起也,訟所以次需也,

爲卦,乾上坎下,以二象,言之,天陽,上行,水性,就下,其行,相違,所以成訟也,以二體言之,上剛下陰,剛險,相接,能无訟乎,又人,內險阻而外剛强,所以訟也.    

 

[서괘전]음식에는 반드시 다툼이 생기므로 송괘로 받았다. 사람이 기다리는 것이 음식이고, 이미 기다린 바가 있었다면 이로써 쟁송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므로 송이 수괘의 다음이 되었다.

괘가 乾上坎下이므로 상으로 말하면 天陽은 위로 오르고, 水性은 아래로 흐르는 것이므로 서로의 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쟁송이 일어난다. 체로써 말한다면 上剛下險으로 剛險이 서로 접촉하므로 쟁송이 없을 수가 없다. 또는 사람에 있어서도 內險하고 外剛하면 쟁송이 일어나게 된다.

 

訟卦는 <序卦傳>에 “음식에는 반드시 爭訟이 있다. 그러므로 訟卦로 받았다.” 하였다. 사람이 필요한 것이 음식이니, 이미 필요로 하는 것이 있으면 爭訟이 이로 말미암아 일어나니, 訟卦가 이 때문에 需卦의 다음이 된 것이다. 卦됨이 乾이 위에 있고 坎이 아래에 있으니, 두 象으로 말하면 하늘의 陽은 위로 가고 물의 성질은 아래로 내려가서 그 감이 서로 어긋나니 이 때문에 송을 이루는 것이요, 두 體로 말하면 위는 剛하고 아래는 險하니, 강과 험이 서로 접하면 爭訟이 없을 수 있겠는가. 또 사람이 안은 험조하고 밖은 剛强하니 다투게 되는 것이다.

 

 

 

訟 有孚 窒 惕 中吉終凶.
利見大人 不利涉大川.

 

訟有孚窒惕中吉終凶(송유부질척중길종흉) : 송은 믿음을 두나 막혀서 두려우니, 중은 길하고 마침은 흉하니

利見大人(리견대인) : 대인을 봄이 이롭고

不利涉大川(불리섭대천) : 큰 내를 건넘이 이롭지 아니하니라.

 

窒 막힐 질.㉠막다, 막히다 멈추다, 그치다 (가득)차다 메이다, 통하지 않다 7월의 딴 이름 종묘문(宗廟門), 무덤의 문 질소(素)

두려워할 척   ㉠두려워하다 근심하다 삼가다 빠르다

 

訟  訴訟, 또는 재판.

有孚 窒  성실함이 있으나 막힌다. 소송은 자신의 正大하고 진지함을 주장하면서 남과 투쟁하는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그 성실성이란 곧 남에게 통하지 않고 방해되기 때문에 한 말이다.

中  中道를 지키다. <九二>와 <九五>가 있기 때문에 한 말임.

 

 

訟에서는 성심(信義)이 불통할 것을 경계해야 하며, 중도를 지키면 길하고 송사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은

흉하다. 대인을 만나면 이롭고(中吉) 큰일을 이룰 수 없다(終凶).

 

訟 : 다툼(힘으로 다투는 것은 爭이고 말로 다투는 것은 訟이다;說文).

죄로써 다툼이 獄이고 재물로써 다툼은 訟이다(爭罪曰獄,爭財曰訟;周禮·地官).=>그러므로 不親이다(訟不親也;雜卦傳)

또한 서괘전에서는 음식에는 반드시 다툼이 있다(飲食必有訟)하였으니 “사람은 재물 때문에 죽고 날 짐승은 먹을 것 때문에 죽는다(人爲財死,鳥爲食亡)”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니, 재물은 항상 이를 탐하는 자들 간에 이익을 상충하게 하므로 다툼의 빌미가 된다. (老子를 첨가할 것)

飲 마실 음.

 

窒 : 막히다(塞 : 不通).

 

中吉 : 중도를 지키면 길하다. 여기에서의 中은 中正의 의미보다는 문맥상 終凶과 연계되는 문구로 보면 “원만히 중도에서 화해하다(中和)”는 의미가 더 어울린다. 즉 송사를 끝까지 밀고나가서 終凶에 이르기 전에 중도에서 상호의 신의를 바탕으로 원만하게 화해하면 길하다가 옳을 것 같다. 뒤 따르는 利見大人은 中吉과 연결되고, 不利涉大川은 終凶과 연결된다.편자.

 

[無訟——和諧(和合)社會]

천인합일의 철학적 기초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 즉 화합을 기본으로 한다. 그러므로 사회적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최선의 과제는 상호간의 和諧이다. 복잡한 사회환경 속에서 각자의 이익이 상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임에 대하여 이를 원만하게 해결하고 평화로운 사회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충되는 이해에 대한 중재가 필요하다. 이러한 다툼에 대한 중재행위를 현대사회에서는 재판이라는 법적기구로써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최선의 방법은 분쟁이 일어날 소지를 애당초 없애는 것이다. 곧 고대중국사회의 전통적 법률기초인 無訟제도가 그것으로 분쟁의 시초에 和諧를 조장하는 것이다.

 

無訟理念은 중국고대사회에 있어서 儒家思想이 절대적 지배위치에 있을 때 “貴和持中、貴和尚中”이라는 문화이념 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孔子는 大同世界를 이룩하려는 政治理想을 가지고 있었으며, 大同社會로 나아가기 위한 太平治世的인 理想이 곧,孔子가 말하는 無訟이며 “聽訟,吾猶人也,必也使其無訟乎”(論語·顏淵)라 하였다. 여기에서 “聽訟”은 “無訟”을 실현하는 한 수단인 것이며 무송은 또한 청송의 최종 목적이 된다.

송괘에서는 無訟의 和諧社會로 나아가는 방법을 서술하고 있다[편자].

 

 

 

  訟은 有孚ㅣ나 窒하야 愓하야 中은 吉코 終은 凶하니                
  【傳】訟之道,必有其孚實中,無其實,乃是誣妄,凶之道也,卦之中實,爲有孚之象,

訟者,與人爭辯而待決於人,雖有孚,亦須窒塞未通,不窒則已明,无訟矣,

事旣未辯,吉凶,未可必也,故有畏愓,中吉,得中則吉也,終凶,終極其事則凶也. 

                           
말씀 변, 두루 미칠 편  ㉠말씀 ㉡이리저리 둘러 대는 말 ㉢문체(文體) 이름 ㉣말을 잘하다 ㉤(말에)조리가 있다 ㉥교묘(巧妙)하게 말하다 ㉦말다툼하다, 논쟁하다(論爭--) ㉧다투다, 변론하다(論--)... ㉨말하다, 이야기하다 송사하다(訟事--), 맞고소하다 분별하다(分別--), 변별하다(分別--)

 

爭辯  쟁론()

窒塞 몹시 놀라거나 싫어서 기막힐 지경(地境)에 이름. 질기(窒氣): 숨이 통(通)하지 못하여 기운(氣運)이 막힘.

 

[정전]訟道는 반드시 마음에 신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하지 못하고 망령되게 남을 속이는 것은 흉한 도이다(괘의 중심이 강실이므로 信義가 있는 상이다).

쟁송은 타인과의 다툼을 제삼자가 결단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비록 성심이 있지만 상호 불통하기 때문에 송사가 일어나는 것이니, 막힌 데가 없다면 이미 밝은(분명한) 것이므로 다툼은 일어나지 않는다(無訟).

다툼의 옳고 그름이 판명되지 않으면 길흉을 논할 수 없는 것이므로 畏惕(항상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경계함)하라 하였고, 中吉은 득중하였기 때문에 길하다는 뜻이며, “終凶”은 송사를 끝(極)까지 밀고 나가면 흉하다는 말이다.

 

訟의 도는 반드시 孚實(부실; 성실)이 있어야 하니, 심중에 성실함이 없으면 이는 誣妄(속이고 망령됨)이니, 흉한 道이다. 卦가 中實(가운데가 꽉참)한 것은 有孚의 象이 된다. 訟은 남과 더불어 爭辯하면서 남에게 결단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니, 비록 성실함이 있으나 또한 모름지기 막혀서 통하지 못한다. 막히지 않았다면 이미 밝아서 다툼이 없을 것이다. 일이 이미 분별되지 않았다면 吉凶을 기필할 수 없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中吉’은 中道를 얻으면 吉한 것이요, ‘終凶’은 그 일을 끝까지 하면 흉한 것이다.

 

 

   利見大人이오 不利涉大川하니라.                                  
  【傳】訟者,求辯其曲直也,故見於大人,大人則能以其剛明中正,決所訟也,訟非和平之事,當擇安地而處,不可陷於危險,故不利涉大川也.                                                                    
 

曲直 ①옳고 그름 ②굽음과 곧음

결단할 결, 빠를 혈    ⓐ빠르다 (혈) 신속(迅速)한 모양 (혈) 결단하다(斷--), (승부를)가리다 결정하다(定--), 분별하다(分別--), 판단하다(判斷--) 과감하다 틔우다, 흐르게 하다 터지다

 

송사는 是非를 밝혀야 하기 때문에 대인을 만나야 이롭다. 大人은 곧 강명하고 중정한 군자로서 시비를 가려주는 자이다. 송사는 화평하지 못한 일이므로 마땅히 편안한 자리에서 安居해야 하며, 무단히 나아가 위험에 빠져서는 안 되므로 “不利涉大川”이라 하였다.

 

訟은 曲直을 분별해주기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大人을 만나봄이 이로우니, 大人이라면 그 剛明함과 中正함으로 쟁송하는 바를 결단해 줄 것이다. 쟁송은 화평한 일이 아니니, 마땅히 안전한 곳을 가려 처할 것이요, 위험한 곳에 빠져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大川을 건넘은 이롭지 않은 것이다.

 

  【本義】訟,爭辯也,上乾下坎,乾剛坎險,上剛以制其下,下險以伺其上,又爲內險而外健,又爲己險而彼健,皆訟之道也,九二,中實,上无應與,又爲加憂,且於卦變,自遯而來,爲剛來居二而當下卦之中,有有孚而見窒能懼而得中之象,上九,過剛,居訟之極,有終極其訟之象,九五,剛健中正,以居尊位,有大人之象,以剛乘險,以實履陷,有不利涉大川之象,故戒占者,必有爭辯之事而隨其所處,爲吉凶也.    

 

伺 엿볼 사.㉠엿보다, 노리다 정찰하다(偵察--), 정탐하다(偵探--) 찾다 살피다, 문안하다(問安--) 돌보다 시중을 들다, 거들어주다 (시기를)기다리다 

遯 달아날 둔. ㉠달아나다(=遁) 숨다 피하다(避--) 도망치다(逃亡--) 회피하다(回避--)  

 

訟은 쟁변하는 것이다. 위는 乾이고 아래는 坎이니, 乾은 剛하고 坎은 險하다. 위는 剛함으로 아래를 제재하고 아래는 險함으로 위를 살피며, 또 안은 험하고 밖은 굳세며, 또 자기는 험하고 상대는 굳셈이 되니, 모두 쟁송하는 道이다. 九二는 中實하나 위에 應與가 없고 또 坎은 더 근심함이 된다. 또 卦變에 있어서 遯卦(둔(돈)괘)로부터 왔으니, 剛이 와서 二에 처하여 下卦의 中에 당하였으니, 성실함이 있으나 막힘을 당하고 능히 두려워하여 中을 얻는 象이 있다. 上九는 지나치게 강하여 訟의 極에 처하였으니 訟事를 끝까지 하는 상이 있고 九五는 剛健하고 中正하여 尊位에 거하였으니 大人의 象이 있으며, 剛으로서 險을 타고 實로서 陷을 밟았으니 大川을 건넘이 이롭지 않은 象이 있다. 그러므로 점치는 자에게 반드시 爭辯할 일이 있는데 대처하는 바에 따라 吉하거나 凶하다고 경계한 것이다. 

 

 

彖曰 訟 上剛下險 險而健 訟.
訟有孚窒惕中吉 剛來而得中也.
終凶 訟不可成也.
利見大人 尙中正也.
不利涉大川 入于淵也.

 

[단왈]송괘는 상체는 강건하고 하체는 험하다. 곧 험하고 교만함이(健) 부딪치므로 다툼이 일어난다.

有孚窒惕中吉(신의가 상호 불통할 것을 항상 염려하여 中和를 이루면 길하다)은 강(구이)이 밖으로부터 와서 득중하였기 때문이다.

終凶은 송사는 끝까지 밀고 나가면 안 된다는 것이고, 利見大人은 中正한 군자를 높이 사는 것이며,

不利涉大川은 함부로 물을 건너다가는 深淵에 빠진다는 뜻이다. 

 


彖曰(단왈) : 단에 가로대

訟上剛下險(송상강하험) : 송은 위는 강하고 아래는 험해서,

險而健訟(험이건송) : 험하여 건장함이 송이다.

 

  彖曰訟은 上剛下險하야 險而健이 訟이라.                         
  【傳】訟之爲卦,上剛下險,險而又健也,又爲險健相接,內險外健,皆所以爲訟也,

若健而不險,不生訟也,險而不健,不能訟也,陰而又健,是以訟也.

                                                                   
  【本義】以卦德,釋卦名矣.      

 

[정전][訟, 上剛下險, 險而健訟]

송괘는 체가 上剛下險이므로 험하고 강건함(또는 교만함)이 부딪치는 것이다. 또는 험함과 교만함이 서로 교차하므로 안으로는 험하고 외양으로는 교만한 것이 모두 송사를 일으키는 원인이다.

만약 강건하나 험하지 않거나, 험하나 교만하지 않으면 쟁송은 일어나지 않는다.

 

訟은 卦됨이 위는 剛하고 아래는 險하니, 험하고 또 굳센 것이다. 또 험과 건이 서로 접하여 안은 험하고 밖은 굳세니, 모두 쟁송함이 된다. 만일 굳세더라도 험하지 않다면 쟁송이 생기지 않을 것이요, 험하더라도 굳세지 않다면 쟁송할 수가 없는데, 험하고 또 굳세기 때문에 쟁송하는 것이다.

 

訟有孚窒惕中吉(송유부질척중길) : '송유부질척중길'은

剛來而得中也(강래이득중야) : 강이 와서 중을 얻음이오,

 

剛來  剛은 <九二>爻의 강건한 기운을 가르키는 말. 來는 오다. 호응하다. 

 

 訟有孚窒愓中吉은 剛來而得中也ㅣ오.                               
  【傳】訟之道,固如是,

又據卦才而言,九二,以剛,自外來而成訟則二乃訟之主也,

以剛處中,中實之象,故爲有孚,

處訟之時,雖有孚信,亦必艱阻窒塞而有愓懼,不窒則不成訟矣,

又居險陷之中,亦爲窒塞愓懼之義,二以陽剛,自外來而得中,爲以剛來訟而不過之義,是以吉也,

 

卦有更取成卦之由,爲義者,此,是也,卦義,不取成卦之由,則更不言所變之爻也,據卦辭,二乃善也而爻中,不見其善,蓋卦辭,取其有孚得中而言,乃善也,爻則以自下訟上,爲義,所取,不同也. 

 

[有孚窒惕中吉, 剛來而得中也]訟道는 오직 이와 같아야 한다.

괘재를 들어서 말한다면 剛인 구이가 외괘로부터 내려와서 송괘를 이루었으므로 송괘의 주효가 된다.

따라서 剛이 중에 있는 것이 中實한 象이므로 有孚이다.

송의 때에는 비록 신의가 있더라도 반드시 어려움에 봉착하고 불통할 수 있음을 항상 염려함으로써 사전에 불통을 막을 수 있다면 다툼은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험중(坎中)에 있는 것 역시 窒塞을 염려하는 뜻이 된다. 양강(구이)이 밖에서 내려와 得中하여 송사에 지나침이 없기 때문에 길하다.

 

訟의 道가 진실로 이와 같고, 또 卦才를 근거하여 말하면 九二가 剛으로서 밖으로부터 와서 訟을 이루었으니, 이는 바로 訟의 주체이다. 剛으로서 中에 처함은 中實의 象이므로 ‘有孚’라 한 것이다. 訟의 때에 처하여 비록 孚信이 있으나 또한 반드시 어렵고 막혀서 두려움이 있을 것이니, 막히지 않으면 訟을 이루지 않을 것이다. 또 험함의 가운데에 처하였으니, 이 또한 막히고 두려워하는 뜻이 된다. 二가 陽剛으로 밖으로부터 와서 中을 얻었으니, 剛이 와서 쟁송을 하나 지나치게 하니 않는 뜻이 되니, 이 때문에 吉한 것이다. 卦중에 다시 成卦의 이유를 취하여 뜻을 삼은 경우가 있으니, 이 卦가 바로 그러한 바, 卦의 뜻에 成卦의 이유를 취하지 않으면 다시 변한 爻를 말하지 않는다. 卦辭를 근거하면 <剛이 와서 中을 얻었으므로> 이는 바로 善한 것이나 爻 가운데에서는 선함을 볼 수 없다. 괘사는 ‘有孚得中’을 취하여 말했으니 바로 善한 것이고, 爻辭는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과 쟁송함을 가지고 뜻을 삼았으니, 취한 바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終凶(종흉) : '종흉'은

訟不可成也(송불가성야) : 송사는 가히 이루지 못할 것이요,

 

   終凶은 訟不可成也ㅣ오.  
  【傳】訟非善事,不得已也,安可終極其事,極意於其事則凶矣,故曰不可成也,成,謂窮盡其事也.

 

[終凶, 訟不可成也]송은 선한 일이 아니므로 부득이한 경우인데, 어찌 끝까지 다투겠는가? 극한으로 나아가는 것은 흉을 초래할 것이므로 不可成이라 하였다(成은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다).

  

송은 좋은 일이 아니고 부득이해서 하는 것이니, 어찌 그 일을 끝까지 하겠는가. 다투는 일에 뜻을 다하면 흉하다. 그러므로 ‘이루어서는 안된다’고 하였으니, 성은 그 일을 끝까지 함을 이른다.

 

 

利見大人(이견대인) : '이견대인'은

尚中正也(상중정야) : 중정함을 숭상함이오,

 

   利見大人은 尙中正也ㅣ오.                
  【傳】訟者,求辯其是非也,辯之當,乃中正也,故利見大人,以所尙者,中正也,

聽者,非其人則或不得其中正也,中正大人,九五,是也.               

 

[利見大人, 尙中正也]송은 시비를 가리기를 기다리는 것인데, 이를 분변함에는 마땅히 中正해야 하므로 利見大人으로써 존숭하는 것은 中正이다.

聽訟하는 사람의 품격이 적합하지 않으면 중정을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니 中正한 大人은 바로 구오이다.

 

訟은 그 옳고 그름을 분별해 주기를 구하는 것이니, 분별함이 마땅한 것이 바로 中正이다. 그러므로 大人을 봄이 이로우니, 숭상하는 바가 中正하기 때문이다. 爭訟을 다스리는 자가 훌륭한 사람이 아니면 혹 중정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中正한 大人은 九五가 이것이다.

 

不利涉大川(불리섭대천) : '불리섭대천'은

入于淵也(입우연야) : 못에 빠짐이라.

 

  不利涉大川은 入于淵也ㅣ라.                                       
  【傳】與人訟者,必處其身於安平之地,若蹈危險則陷其身矣,乃入于深淵也,卦中,有中正險陷之變.   

  【本義】以卦變卦體卦象,釋卦辭.

 

밟을 도, 슬퍼할 신  ⓐ슬퍼하다(=悼) (신) (발로)밟다 (발을)구르다 따르다, 따라 행하다 가다, 떠나가다 뛰어들다 (기회를)이용하다(利用--)

 

[不利涉大川, 入於淵也]

타인과 다투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편안한 자리가 어디인가를 찾아야 한다. 만약 험을 자초하면 몸을 망치게 될 것이니 심연의 나락에 빠지는 것과 같다. 괘중에는 中正險陷의 變이 있다.

 

남과 쟁송하는 자는 반드시 자신을 平安한 곳에 두어야 한다. 만일 위험한 곳을 밟는다면 그 몸을 빠뜨리게 되니, 이는 바로 깊은 못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卦 안의 中正險陷의 象이 있다.

 

 <彖傳> 訟卦는, 하늘을 상징하는 乾卦와 위험을 상징하는 坎卦로 구성되 있다. 따라서 위는 剛健하고 아래는 險阻에 막혀 있는 괘상이다. 訴訟이란 곧 위함을 안고 있으면서도 남을 抗爭하는 일을 말한다.

"訟卦란 진지하게 임하지만 장애에 부딪힌다. 마치 두려워하는 듯한 기분으로 中道를 지킨다면 吉할 것이다"라고 한것은 자제력이 있는 陽剛 , <九二>爻가 호응하여 中正을 얻게 되기 때문이요,

"끝까지 버티고 싸운다면 凶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한 것은 소송이 그와 같은 태도에 좌우되어 성취를 기 할 수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 현명한 지도자의 가르침을 받아야한다"고 한 것은 中正의 道를 존중함이요,

"큰 강을 건너는 勇者처럼, 그런 태도로 임해서는 안된다"라고 한 것은, 深淵에 빠지게 되는 양상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전에서도 송은 상괘가 강(乾)으로 하괘가 험(坎)이고 또한 마음이 음험(坎)으로서 그것도 강건(건)인 것이 송이라고 한다. 소송은 지성이 있어 막힌다. 두려워하며 중정하면 길하다고 함은 강효(구이)가 속괘로 내려와서 중간을 차지하게 소송을 일으키는 사람이 강중의 마음을 가지면 좋은 것이다.

끝나면 흉이라함은 소송은 끝장이 날때까지 밀고 나가선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대인을 보는 게 이롭다 함은 그 중정을 숭상하기 때문이다. 큰 강을 건너는 데 이롭지 않다고 함은 깊은 물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象曰 天與水 違行 訟 君子以 作事謀始.

象曰(상왈) : 상에 가로대,

天與水違行訟(천여수위행송) : 하늘과 물이 어긋나게 행함이 송이니,

君子以作事謀始(군자이작사모시) : 군자가 이로써 일을 지음에 처음을 꾀하느니라.

 

事  訟事

 

  象曰天與水ㅣ 違行이 訟이니 君子ㅣ 以하야 作事謀始하나니라.        
  【傳】天上水下,相違而行,二體,違戾,訟之由也,若上下,相順,訟何由興,君子觀象,知人情,有爭訟之道,故凡所作事,必謀其始,絶訟端於事之始,則訟无由生矣,謀始之義,廣矣,若愼交結明契券之類,是也. 

 

하늘은 위로 올라가고 물은 아래로 흘러가 서로 어긋나게 가서 두 體가 어그러지니, 爭訟하는 이유이다. 만일 上下가 서로 순하다면 쟁송이 어디로부터 일어나겠는가. 군자가 이 象을 보고서 人情에 쟁송하는 道가 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무릇 일 할 때에 반드시 그 처음을 잘 도모하여 분쟁의 발단을 일의 시초에서 끊어버리면 쟁송이 말미암아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처음을 도모하는 뜻이 넓으니, 交結(교결; 교제)을 신중히 하고 契券(문서)을 분명히 하는 따위와 같은 것이 이것이다.

 

  【本義】天上水下,其行,相違,作事謀始,訟端節矣.

하늘은 위로 올라가고 물은 아래로 흘러가서 가는 것이 서로 어긋나니, 일을 할 때에 처음을 잘 도모하면 분쟁의 발단이 없어질 것이다. 

 

 契券  계약서()

 

하늘은 위에 있고, 물은 아래로 흐르는 것. 이 하늘과 물이 서로 배반돼 운행되고 있다. 이것이 송괘의 괘상이다. 군자는 이 괘상을 거울 삼아 매사를 처리함에 있어서 그 출발을 조심한다. 그리하여 뒷날에 있을 분쟁의 씨앗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한다.

 

상전에서는 하늘(건)은 위로 올라가고 물(감)은 아래로 흘러 각각 어긋난 행동이 된 것을 송이라고 한다.

군자는 그러한 어긋남에서 비롯되는 소송이 일어나지 않도록 매사에 있어 그 시작을 신중히 해야 할것이다.

 

 

 

訟(송)괘는 위는 하늘을 상징하는 乾(건)괘로 되어 있고, 아래는 물을 의미하는 坎(감)괘로 되어 있다.

 

乾(건)은 陽괘로서 剛强(강강)을 나타내는 것이요, 坎(감)은 陰괘로서 물의 위험을 상징하는 즉 陰險(음험)을 나타내는 괘이다. 위에 剛强(강강)한 자가 있어 아랫 사람들을 학대하고 아래는 陰險(음험)한 자가 있어서 웃사람들과 항쟁하려는 형태이다.

 

訟(송)은 소송, 재판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남과의 쟁투를 말한다. 訟(송)은 자신의 성실성이 남에게 통하지 않고 방해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쟁송이란 결코 좋은 노릇은 아니다. 잘 반성하여 잘못을 범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남에게 대한 적의를 버리면 길할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쟁송을 고집하면 흉하다. 中正한 것을 존중하고 현명한 지도자의 중재를 받는 것이 좋다. 큰 강을 건너는 것과 같은 일대 위험을 무릅쓰고 기어코 다투어 보겠다고 버티게 되면 마침내 深淵(심연:깊은연못)에 빠져 들어 비참한 결과로 종말하리라.

 

 

 

 

 

 

 初六 不永所事 小有言 終吉.

 

 

   乾

 

    

   坎

      初六

 

 

 

 

初六 不永所事 小有言 終吉.

初六(초륙) : 초육은

不永所事(불영소사) : 일을 길게 끌지 아니하면,

小有言終吉(소유언종길) : 조금 말이 있으나 마침은 길하리라.

 

不永所事  이 爻는 아래 자리에 있는 陰爻로서 힘이 미약하기 때문에 한 말임.

 

<初六> 爭訟을 길게 끌어서는 안된다. 다투는 바 그 일을 길게 물고 늘어지지만 않는 다면 다소의 말썽이 있을지라도, 결국 사리가 옳게 판명되어 吉하게 될 것이다.

 

[풀이] 초육은 일삼는 것을 길게 끌지 않는다면 다소의 말은 있어도 끝에 가서 길이다.

 

[초육]다툼을 길게 하지 않는다. 조금 구설수는 있으나 결과는 길하다.

[지괘는 謙卦이므로 송사에 임하여 상호 겸손한 자세로 임하면 자연히 손쉽게 화해를 이룰 수 있다. 또한 구사와 정응하여 상호 화해를 이루기 때문에 다툼을 오래하지 않는다고 보아도 된다.]

所 : 대명사적 용법으로 此와 같이 보아 所事는 발생한 송사.

 

[初陰] : 쟁송은 길게 끌어서는 안된다. 적당한 시기에 그치라. 다소의 말썽은 있을 것이나 결국은 사리가

분명하게 변증되어 길할 것이다.

 

 

初六은 不永所事ㅣ면 小有言하나 終吉이리라.                      
  【傳】六以柔弱,居下,不能終極其訟者也,故於訟之初,因六之才,爲之戒曰若不長永其事則雖小有言,終得吉也,蓋訟非可長之事,以陰柔之才而訟於下,難以吉矣,以上有應援而能不永其事,故雖小有言,終得吉也,

有言,災之小者也,不永其事而不至於凶,乃訟之吉也.                                                                   
 

[정전]초육은 유약하고 지위가 낮아서 송사를 끝까지 밀고 나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초육의 재질을 들어서 송사를 오래 끌지 않으면 조금 구설수는 있어도 결국은 길하게 마친다고 하였다.

송사를 오래할 수 없는 것은 음유한 자가 아래에서 다투기 때문에 어렵지만 길한 것이며, 또한 상괘에 응원하는 자가(구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조금 구설수가 있지만 결국에는 길하다.

有言은 재난가운데는 약소한 것이고, 송사를 최후까지 고집하지 않아 終凶에 이르지 않으므로 길하다.

 

六은 유약함으로 아래에 거하여 쟁송을 끝까지 하지 못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訟의 초기에 六의 재질로 인하여 경계하기를 “만약 다투는 일을 영구히 하지 않으면 비록 다소 말이 있으나 끝내 길함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쟁송은 長久히 할 만한 일이 아니니, 陰柔의 재질로 아래에서 쟁송하면 길하기가 어려우나 위에 應援(九四)이 있어 다투는 일을 영구히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비록 다소 말이 있으나 끝내 길함을 얻는 것이다. 말이 있음은 재앙 중에 작은 것이다. 다투는 일을 영구히 하지 아니하여 흉함에 이르지 않는 것은 바로 쟁송의 吉함이다.  

 

  【本義】陰柔居下,不能終訟,故其象占,如此. 

陰柔로 아래에 거하여 쟁송을 끝까지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象과 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不永所事 訟不可長也.
雖小有言 其辯 明也.

象曰(상왈) : 상에 가로대,

不永所事(불영소사) : 일을 길게 끌지 아니하면,

訟不可長也(송불가장야) : 송사는 오래하지 못하는 것이니,

雖小有言其辯明也(수소유언기변명야) : 비록 조금 말이 있으나 그 분별함이 분명하리라.  

 

상전에서도 일삼는 바를 길게 하지 않음이란 소송을 길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소의 다툼은 있어도 이쪽에 도리가 있다는 주장은 분명하다.

 

[상왈]“不永所事”는 송사는 오래 끌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고,“雖小有言”은 지혜롭게 판명함이다.

 

 

象曰不永所事는 訟不可長也ㅣ니
  【傳】六以柔弱而訟於下,其義,固不可長永也,永其訟則不勝而禍難,及矣,又於訟之初,卽戒訟非可長之事.

 

[정전]유약한 자가 아래에서 다투는 것은 의리상 길게 할 수가 없다. 끝까지 나간다면 이기지도 못할 뿐 아니라 화를 입게 될 것이므로 송의 초에 다툼을 오래하지 말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六이 유약함으로 아래에서 쟁송하니, 그 義가 진실로 장구히 해서는 안되니, 쟁송을 영구히 하면 이기지 못하여 禍와 어려움이 미칠 것이다. 또 訟의 초기에 爭訟은 장구히 할 만한 일이 아님을 경계한 것이다. 

 

 

雖小有言이나 其辯이 明也ㅣ라.      
  【傳】柔弱居下,才不能訟,雖不永所事,旣訟矣,必有小災,小有言也,旣不永其事,又上有剛陽之正應,辯理之明,故終得其吉也,不然,其能免乎,在訟之義,同位而相應,相與者也,故初於四,爲獲其辯明,同位而不相得,相訟者也,故二與五,爲對敵也. 

 

유약함으로 아래에 거하여 재질이 쟁송할 수 없으니, 비록 다투는 일을 영구히 하지 않으나 이미 쟁송을 하였다면 반드시 작은 재앙이 있게 되므로 다소 말이 있는 것이며, 이미 다투는 일을 영구히 하지 않고 또 위에 剛陽의 正應이 있어서 분별하고 다스려주기를 밝게 하므로 끝내 그 길함을 얻은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흉함을 면할 수 있겠는가. 訟의 뜻에 있어서는 분별함이 밝음을 얻음이 되고, 位가 같으나 서로 맞지 않으면 서로 爭訟하는 자이므로 二와 五가 서로 對敵하는 것이다.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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