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명구자료 6
오면 다시 가고
사물은 오면 가지 않음이 없고 때는 가면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
物無有來而不往 時無有往而不復
- 윤원거(尹元擧) 가면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無往不復]
<해설>
음양(陰陽)으로 설명되는 천지자연의 이치로 볼 때, 사물이건 시간이건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달은 차면 이지러지고 이지러진 뒤에는 다시 차게 되며, 해가 뜨면 달이 지고 달이 뜨면 해가 지기 마련입니다.
인간사도 어찌 자연의 이치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맞닥뜨려진 상황이 영원할 듯하지만 인생이라는 기나긴 여정 속에서는 바로 한 순간일 뿐입니다.
순간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는 마음을 언제나 경계하고, 오늘과는 다른 내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옮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나는 재주와 지혜가 낮아서
나는 재주와 지혜가 낮아서 일을 대할 때마다 더욱 노력하였더니, 다행히 큰 허물이 없었다.
[吾才智下 每臨事加勉 幸無大過]
- 허목(許穆) 《기언(記言)》 중에서
<해설>
위 글은 미수(眉叟) 허목이 평소 교유하였던 사심(師心) 이정호(李挺豪 : 1578~1639)의 말을 인용한 것입니다. 미수는 이 말을 과불급(過不及)의 경계로 삼아 종신토록 마음에 새겼다고 합니다.
이정호는 성균관 유생으로 있다가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폐출하자 은거하여 학문에만 전념하였습니다. 인조가 재주와 학식이 있는 선비를 불러 기용함에 동몽교관이 되었고, 이후 통례원 인의, 공조 좌랑을 거쳐 황간 현감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의 치욕을 보고는 다시는 관직에 나아가지 않겠다는 뜻을 담아 만각(晩覺)이라고 호를 바꾸고 한산(韓山)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미수는 〈자서(自序)〉에서도 만각의 독실한 행실을 따라가지 못함을 자탄하였으며, 만각과 친분이 두터웠던 설옹(雪翁) 허후(許厚)는 그의 제문(祭文)에서 ‘심오한 학문과 확고한 실천’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성실함이 없으면 천하 만사를 이룰 수 없다고 선인들은 말합니다. 만각이 동료와 후배 학자에게 성덕군자(成德君子)로서 크게 인정을 받은 것은 겸손한 자세로 끊임없이 자신을 면려한 때문일 것입니다.
옮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때에 맞게 말하고 때에 맞게 행하라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면 움직여도 허물이 없고 말해야 할 때 말하면 말해도 후회가 없다 當動而動 動亦無尤 當言而言 言亦無吝 - 유도원(柳道源) 해야 할 일 네 가지[四當箴]중에서《노애집(蘆厓集)》 <해설> 이 글은 조선 후기 학자 노애(蘆厓) 유도원(1721~1791)의 사당잠(四當箴) 중 일부를 번역한 글입니다. 이 글에 이어서 “해야 할 일을 하면 해서 이룸이 있다.[當做而做 做亦有成]”는 구절과, “구해야 할 일을 구해야 하니 내 안에 있는 것을 구해야 한다.[求有當求 求在我者]”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글 바로 앞에는 ‘하지 말아야 할 일 네 가지[사막잠(四莫箴)]’를 적은 재미있는 글이 있습니다. “움직였다 하면 허물을 불러들이니 움직이지 않는 게 상책. 말했다 하면 후회스러워지니 말하지 않는 게 상책. 했다 하면 되는 게 없으니 안 하는 게 상책. 구했다 하면 비굴해지니 구하지 않는 게 상책.[動必招尤 莫如勿動 言必致吝 莫如勿言 做必無成 莫如勿做 求則自屈 莫如勿求]”이라는 내용입니다. 저자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자신의 인격 수양을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에 전념하여 경구(警句)를 벽에 써 붙여 놓고 항상 애송하였다 합니다. 세상살이에서 상처받거나 지쳤을 때 사막잠(四莫箴)처럼 푸념을 하다가도 다시 사당잠(四當箴)을 외며 마음을 가다듬던 저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삶 속에서 수행의 끈을 놓지 않고 부단히 노력한 선비들의 생활 태도를 기려 봅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
언로(言路)가 막히면
선비의 기상이 꺾이고 언로가 막히면
곧은 선비가 기미를 살펴보고는 멀리 숨어버릴 것이며
말만 잘하는 자들이 그 틈을 타 앞 다투어 나올 것입니다
士氣旣挫 言路旣塞 / 則直士色擧而遠遯 佞人伺隙而競進
- 이이(李珥)의 상소 중에서《율곡전서(栗谷全書)》
<해설>
조선 초기의 명신이자 학자인 율곡(栗谷) 이이(李珥 : 1536~1584)의 상소 중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이는 다른 글에서, “언로가 열렸느냐 막혔느냐에 나라의 흥망이 달려있다.[言路開塞 興亡所係]”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예부터 잘 다스려진 나라에서는 말을 바르게 해야 하고, 도가 행해지지 않는 나라에서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무도한 나라에서 바른 말을 하였다가 자칫 화를 입을까 걱정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른 말 때문에 화를 입을까 걱정을 해야 하는 나라는 이미 정도(正道)를 잃은 나라입니다.
학자들의 자유로운 사고가 막혀 어용학자만 판을 친다거나, 바른 말이 행해지지 못하고 아첨하는 말만 세상에 떠돈다면 어긋나도 너무 많이 어긋난 것이 아닐까요?
옮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떠나가신 어버이를 추모하며
녹봉이 어버이를 봉양하기에 충분하나 봉양할 수가 없으며,
은전(恩典)으로 영화롭게 할 수 있는데 영화롭게 해 드릴 길이 없네
祿足以養而不得養 / 恩足以榮而不得榮
- 강희맹(姜希孟)의 《사숙재집(私淑齋集)》에서
<해설>
홍문관 박사 조위(曹偉)가 고향에 내려가 영친연(榮親宴)을 베풀려고 하면서 강희맹에게 전송하는 글을 지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강희맹은 기꺼이 〈홍문관박사조태허영친서(弘文館博士曹太虛榮親序)〉를 지어 조위를 축하해 주면서 아울러 자신의 감회를 서술하였으니, 위 글은 여기에 나온 구절입니다.
영친연은 과거에 급제한 자의 부모를 영화롭게 해 주기 위해 나라에서 베풀어주는 잔치를 말합니다. 강희맹도 대과에 장원 급제하여 영친연을 베풀 기회가 주어졌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깊이 생각하는 마음에서 굳이 사양하였으므로 후일 더 영화롭게 해 드릴 기회가 있으리라 여기고 뒤로 미루었습니다. 그 뒤 당상(堂上)에 오르고 육경(六卿)에까지 올라 명예와 은총이 더욱 높아졌지만, 어버이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이에 강희맹은 어버이를 봉양할 때를 부질없이 보내버린 회한을 평생 가슴에 품게 되었습니다.
“아, 예로부터 지금까지 누구인들 부귀하게 되어 어버이를 봉양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혹 부귀하게 될지라도 어버이가 살아계시지 않으면 어찌하겠는가.” 하며 강희맹은 자기의 애통함을 거울삼아 더욱 시간을 아끼고 정성을 극진히 하여 후일에 유감이 없게 하기를 친구 조위에게 당부하였던 것입니다.
옮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가난은 네가 검소함 빛내 청렴을 떨치라는 것 병은 네가 섭생 잘해 생명을 잘 지키라는 것
貧欲汝之昭儉而振淸 / 病欲汝之攝生而養命
- 곽종석(郭鍾錫)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마음을 다잡는 글[處困箴]《면우집(俛宇集)》
<해설>
이 글은 구한말의 유학자 면우 곽종석(1846 ~ 1919) 선생의 처곤잠(處困箴) 중 일부를 번역한 것입니다.
어려움에 처하면 편안함을 찾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저자는 편안히 처하는 데 독이 있으며, 슬픈 일도 복되고 경사스러운 데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손가락질하며 욕하고 업신여겨도 그것은 네 언행을 다듬으라는 것이며, 어려운 일이 부딪쳐 와 마구 뒤흔들어대도 그것은 네 덕성을 튼튼히 하라는 것이라고 자신을 다독거립니다.
그리고 만 마리 말이 날뛰듯 어지럽게 부딪쳐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홀로 굳건히 중심을 잡으면 지혜로운 통찰이 날로 깨어날 것이라고 확신하며 자신을 추스립니다.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단련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겪으며 언행을 다듬고, 덕성을 기르고, 청렴을 떨치고, 생명을 지키는 능력을 키울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고통은 쓰나 그 열매는 달다.'고 웃으며 이야기할 날도 오지 않을까요?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구름은 지나가는 것일 뿐
태양은 저 높은 하늘에 있고 조각구름은 그저 지나갈 뿐
太陽中天 而片雲過之
- 이만부(李萬敷) 잡서변(雜書辨)
<해설>
조선 중기의 학자인 이만부(李萬敷 : 1664~1732)는 이 글에서, 옳지 않은 이단의 학설이 한 때 유행하더라도 결코 진리를 손상시킬 수 없음을 태양 아래를 지나가는 구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구름이 지나가면 일시적으로 태양이 가려지기는 하지만 구름은 그저 지나갈 뿐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름이 지나가는 그 순간에 보이는 것은 구름뿐이지만, 구름은 태양을 손상시킬 수도 없으며 잠시 후면 흩어져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구름만을 좇지 말고, 그 뒤에 영원히 빛나는 태양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옮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호랑이가 산중에 있으면
호랑이가 산중에 있으면 산나물이 자라나며, 용이 큰 못에서 사라지면 미꾸라지가 춤을 춥니다.
虎在而藜藿植 龍亡而鰍鱔舞
- 이서우(李瑞雨) 이하진 묘갈명(李夏鎭墓碣銘)《송파집(松坡集)》
<해설>
위 글은 경신년(1680, 숙종6) 봄, 대사간에 제수된 이하진(李夏鎭)이 잘못된 시정(時政)을 논하는 상소에서 한 말로, 이서우가 그의 묘갈명에서 인용하였습니다. 당시 허목(許穆), 홍우원(洪宇遠) 등 중신들이 숙종의 뜻을 거슬러 조정을 떠나게 되자 이러한 간언을 올린 것입니다.
이 글의 의미는 ‘훌륭한 신하를 내치면 장차 소인배가 득세하여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임’을 임금에게 경계한 것입니다. 《한서(漢書)》개관요전(蓋寬饒傳)에는, “산에 맹수가 있으면 여곽을 그 때문에 뜯지 못하고, 나라에 충신이 있으면 간신이 그 때문에 일어나지 못합니다.[山有猛獸 藜藿爲之不采 國有忠臣 姦邪爲之不起]”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강개하고 학덕이 높았던 개관요가 억울하게 죄를 받자 당시 간원이 그를 변호하는 글에서 한 말입니다.
나라에 큰 인물이 자리 잡고 있어야 만사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해악(害惡)이 싹트지 않는 것입니다.
옮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만학(晩學)의 즐거움
촛불로 어둔 밤 비추더라도 어두움이 밝아지니 계속해서 비추기만 하면 밝음을 이어갈 수 있네
以燭照夜 無暗不明 / 燭之不已 可以繼暘
- 정호(鄭澔) 노학잠(老學箴) 병서(幷序) 《장암집(丈巖集)》
<해설>
이 글은 조선 후기 문신 장암(丈巖) 정호(鄭澔)의 노학잠(老學箴) 중 일부를 번역한 글입니다. 저자는 63세인 경인년(庚寅年 1710, 숙종 36)에 죄를 지어 궁벽한 곳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글을 읽으면서 느낀 바가 있어 이 잠(箴)을 지었다고 합니다.
중국 춘추 시대 진(晉) 나라의 악사(樂師) 사광(師曠)이 “어려서 배우는 것은 해가 막 떠오를 때와 같고, 젊어서 배우는 것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과 같고, 늙어서 배우는 것은 밤에 촛불을 든 것과 같다.[幼而學之 如日初昇 壯而學之 如日中天 老而學之 如夜秉燭]”고 하였는데, 저자는 이 말을 인용하고는, 어려서 배우거나 젊어서 배운다면야 더없이 좋지만 늙어서 배우더라도 늦었다고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어 위의 “以燭照夜 無暗不明 燭之不已 可以繼暘” 구절과 함께 “해와 촛불이 다르다지만 밝기는 마찬가지이고, 밝기는 마찬가지라지만 그 맛은 더욱 값지다.[暘燭雖殊 其明則均 其明則均 其味愈眞]”라고 말하여 늙어서 배우더라도 배우는 것은 배우는 것이고, 배우는 맛은 오히려 젊을 때보다도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공부도 다 때가 있다.”는 말이 젊어서 학문에 힘쓰라고 격려하는 말이라면, “늙어서 배우는 맛은 더욱 값지다.”는 말은 공부에는 끝이 없으며, 학문하는 즐거움은 배우는 것과 삶의 경험이 맞물릴 때 더 커진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입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법
지혜로운 사람은 일이 드러나기 전에 살피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 일 없다고 말하며
태연히 걱정하지 않는다
智者見於未形 / 愚者謂之無事 泰然不以爲憂
- 이인로(李仁老)《파한집(破閑集)》
<해설>
고려 중기 무신정권기의 문인이었던 이인로(1152~1220)가 지은 문학비평서인《파한집(破閑集)》에 실린 글의 일부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지경에 처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이 일어나기 전에 기미를 살펴 미리 대처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부터 군자의 바른 처세로 “기미를 보고 일어난다[見幾而作]”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국가의 운영에 있어서도 미리 대처하지 못하면 그에 따른 여파는 온 백성에게 미치는 법입니다. 백성들의 수고로움은 군왕 한 사람에게 달려있다고도 하였습니다. 국가의 정책은 백성을 풍요롭게 할 수도 있고, 나락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평상의 아래쪽은 불이 타오르고 있는데 아직 엉덩이가 뜨겁지 않다는 이유로 무사태평 걱정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믿으라고만 한다면, 장차 불길에 휩싸여야 할 죄 없는 백성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을까요?
일이 커지고 어려워지기 전에 미리 살피고 대비하는 국가 정책으로 온 국민이 활짝 웃기를 기대해봅니다.
옮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자식에게 일러주는 네 가지 덕(德)
겸손함은 덕의 기초이고, 부지런함은 일의 근본이고, 세밀함은 다스림의 요체이고,
고요함은 마음의 본체이다
謙者德之基 / 勤者事之幹 / 詳者政之要 / 靜者心之體
- 최석정(崔錫鼎) 〈시아사덕잠(示兒四德箴)〉《명곡집(明谷集)》
<해설>
이 글은 조선 후기 학자 명곡(明谷) 최석정(崔錫鼎, 1646~1715)이 ‘자식에게 일러주는 네 가지 덕에 관한 잠[示兒四德箴]’을 짓고 그 아래에 풀어 쓴 글 중에 있는 내용입니다. 저자는 슬하에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두었는데, 곤륜(昆侖) 최창대(崔昌大, 1669~1720)가 그의 아들입니다.
저자는 자식에게 ‘교만하면 덕을 해치니 교만해서는 안 된다. 게으르면 일을 덮어두니 게을러서는 안 된다. 생각을 소홀히 하면 놓치는 게 있으니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기운이 들뜨면 지나침이 있으니 기운이 들뜨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훈계합니다.
그리고 교만함과 게으름과 소홀함과 들뜸을 다스릴 수 있는 요체로 겸손함과 부지런함과 세밀함과 고요함을 말하면서, 이 네 가지 덕을 행한 뒤에야 자신을 지키고 사물에 응접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어떤 일을 당부하는 것은 세상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소중한 열쇠를 건네주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명곡 선생은 마음을 고요하고 겸손하게 간직하고, 일을 부지런하고 꼼꼼하게 처리하라는 당부가 담긴 사랑의 열쇠를 자식들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옮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한창때에 힘쓰지 않으면
빠른 물살이 구렁으로 치닫듯이 한 백 년 금세 지나가니,
한창때에 힘쓰지 않으면 썩은 풀과 한가지로 사라져버린다.
馳波赴壑 百年易盡 / 盛壯不力 腐草俱泯
- 김정(金淨) 〈십일잠(十一箴)〉《충암선생집(冲庵先生集)》
<해설>
조선 중종조의 문신 김정(金淨, 1486~1521)이 한창 학업에 전념하던 스무 살 때, 앞으로의 인생에 지침으로 삼을 열 한 개 조목의 잠언을 지었습니다. 그 가운데 위 글은 편하게 노는 것을 경계한 일락잠(逸樂箴)의 한 구절입니다.
하루살이가 온종일 들끓다가 세찬 바람이 한 번 지나가면 온데 간데 없어지는 것처럼, 만물은 생겨났다가 한 순간에 다 없어집니다. 이 때문에 성인, 현사(賢士)들은 남보다 재주가 월등한데도 편하게 스스로 즐기며 노는 법이 없습니다. 짧은 하루를 아까워하고,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을 한탄하며, 항상 학문을 이루지 못할까 두려워합니다. 그리하여 좋은 이름이 오래오래 전해지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매한 사람들은 젊었을 때에 앞날이 먼 것을 믿고 하루하루를 향락으로 지내다가, 늘그막에 이르러서야 이룬 것이 없음을 뉘우칩니다.
김정은 이것을 ‘마치 뱀이 달아나 구멍에 들어가고 있는데 남아 있는 꼬리를 잡아당겨 빼내려 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였습니다. 지나간 세월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니,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옮긴이 / 오세옥(한국고전번역원)
내 것이 아닌데도 취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데 먹는다면 도적에 가까운 것이고 일하지 않고 배부르게 먹는다면 버러지인 것이다
非義而食 則近盜賊 / 不事而飽 是爲螟䘌
- 김창협(金昌協)〈잡기명(雜器銘)〉 중 반우(飯盂) 《농암집(農巖集)》
<해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이었던 김창협(1651-1708)이 밥그릇에 새겨 넣어, 밥을 먹을 때마다 경계로 삼았다고 하는 글입니다.
힘이 있거나 교활한 사람들은 내 것이 아닌 데도 취하여 자기 것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누군가는 자신의 것을 빼앗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빼앗기는 사람은 물론 힘없고 선량한 사람들이겠지요. 그리고 일하지 않고 배부르게 먹기만 하는 사람이란 역시 남을 착취하여 자신의 배만 불리는 사람일 것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았다면 제아무리 지체가 높고, 고상한 척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결국 도적인 것이며, 힘을 보탬이 없이 남의 것을 축내기만 한다면 버러지인 것입니다. 도적은 법으로 다스리고, 버러지는 없애버려야 할 것입니다.
옮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진정한 용기는
진정한 용기는 기세를 부려 억지 소리를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허물 고치기에 인색하지 않고 의리를 들으면 즉시 따르는 데 있는 것이다
眞勇 不在於逞氣强說 而在於改過不吝 聞義卽服也
- 이황(李滉)〈서답기명언논사단칠정(書答奇明彦論四端七情)〉《퇴계집(退溪集)》
<해설>
위 글은 사단(四端)ㆍ칠정(七情)과 이(理)ㆍ기(氣)의 문제에 대해 변론한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의 편지에 퇴계(退溪) 이황(1501~1570)이 답한 글에 있는 구절입니다. 고봉이 자신의 논의를 굽히지 않자 퇴계는 주자(朱子)의 용기를 예로 들었습니다.
“주자는 조금이라도 자기 의견에 잘못이 있거나 자기 말에 의심스러운 곳이 있음을 깨달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남의 말을 받아들여 즉시 고쳤으니, 비록 말년에 도(道)가 높아지고 덕(德)이 성대해진 뒤에도 변함없었습니다.”
하물며 성현의 도를 배우는 길에 갓 들어섰을 때에는 어떠했겠느냐고 고봉에게 반문하며, 퇴계는 20여 년 아래의 젊은 후배에게 위와 같이 타일렀던 것입니다.
흥할 것이냐, 망할 것이냐
아래를 더느니 차라리 위를 덜어라
與其下損 寧上損也
- 이익(李瀷)〈흥망계사검(興亡繫奢儉)〉《성호사설(星湖僿說)》
<해설>
위 문장은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1681~1763) 선생의 〈검소하면 흥하고 사치하면 망한다[興亡繫奢儉]〉라는 글에 들어있는 구절입니다.
저자는 재화(財貨)에는 한정이 있는 만큼 누군가가 이익을 보게 되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되어 있으며, 다 같이 이익을 보는 이치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치가 그렇다면 아랫사람에게서 더는 것보다는 차라리 윗사람에게서 더는 것이 낫다고 주장합니다.
백성의 생명은 재화에 달려 있고, 재화는 백성에게서 나오는데, 재화가 위로 흐르면 말단(末端)이 차고 근본(根本)이 비기 때문에 백성이 먼저 죽고 나라가 그 뒤를 따르게 된다고 엄중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곱게 물든 잎들이 무심히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는 계절입니다. 자연은 위를 덜어 아래에 보태는데, 사람들은 아래를 덜어 위에 보태려 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스승과 벗
스승이 없다 말하지 말라. 책에서 찾으면 많은 스승이 있을 것이다. 벗이 없다 말하지 말라.
조용히 책을 펼치면 그곳에 벗이 있을 것이다.
莫曰無師 求之方策 有餘師矣 / 莫曰無友 靜對黃卷 有其友矣
※ 方策과 黃卷은 모두 책을 뜻하는 말.
- 이선(李選) 세 고을 학생들에게 고하는 글[告諭三邑諸生文]《지호집(芝湖集)》
<해설>
이 글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선(1631~1692)이 제주도에 순무사(巡撫使)로 파견되었을 때에 고을 학생들의 학업을 격려하며 적은 것입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하지도 못했고, 물산이 풍부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바다 건너 제주의 학습 여건은 그리 좋지는 않았을 것이며, 학생들은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저자는 이들을 다독이며, 책이라는 스승과 벗이 있으니 부족하게 생각하지 말고 더욱 학업에 정진하여 큰 인물이 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언제나 쉽게 책을 접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내가 다가서기만 하면 언제나 나의 스승도 되어 주고, 나의 벗도 되어줄 것입니다.
술이 맛은 달지만
일찍이 들으니, 우임금은 마셔보고 달게 여겼다지만
술 좋아하고 몸 온전한 이는 열에 두셋뿐이다
曾聞大禹飮而甘 嗜酒全身十二三
- 심수경(沈守慶) 차임석천감자운(次林石川甘字韻)《청천당시집(聽天堂詩集)》
<해설>
이 글은 조선 중기의 문신 심수경(1516~1599)이 자손들에게 술을 경계시키는 뜻으로 지은 시 중의 일부입니다.
술은 하(夏)나라 때에 의적(儀狄)이 처음 만들었다고 합니다. 맛이 좋으므로 우(禹)임금에게 바치자 우임금이 맛을 보고는 ‘후세에 반드시 술로 인해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다.’ 하며 의적을 멀리하고 두 번 다시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익(李瀷)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우임금이 이미 술로써 나라를 망칠 사람이 있을 것을 알았다면, 처음 제조했을 때에 어찌 엄형으로 다스려 온 세상에서 근절시키지 않고 물리치기만 했단 말인가. 이는 너무 관대한 처분이 아니었던가. 후세에 주지(酒池)ㆍ조제(糟堤)가 생긴 것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여, 술을 국법으로 금지할 것을 강하게 주장하였습니다.
* 주지(酒池)ㆍ조제(糟堤) : 술로 만든 연못과 누룩으로 만든 언덕. 은(殷) 나라 주왕(紂王)이 총애하던 달기에게 미혹되어 주지와 조제를 만들어 온갖 향락을 누리다가 마침내 멸망하였다는 고사가 있음.
백성이 새로워지면
백성이 새로워지면 나라의 운명도 새로워지네
我民旣新兮 邦命亦新
- 이수광(李睟光) 〈스스로 새로워지기 위해 경계하는 글[自新箴]〉《지봉집(芝峯集)》
<해설>
조선 중기 학자 지봉(芝峯) 이수광(1563∼1628)의 문집에 실린 자신잠(自新箴)의 한 구절입니다. 저자가 66세가 되던 무진년 새해를 맞아 지은 것으로, 노쇠함은 더욱 심해지는데 학문은 새로워지는 것이 없다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 잠을 지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새해가 밝아 만물이 다 새로워지는 때에 새로워지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거울을 닦아 광채를 내듯 덕을 닦고, 나뿐만 아니라 백성과 함께 새로워지면, 나라의 운명도 새로워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라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길은 백성이 새로워지는 데 있고, 백성이 새로워지려면 나부터 새로워져야 하며, 내가 새로워지는 길은 덕을 닦는 데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덕을 닦아 나를 새롭게 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허물을 고치면 새로워지고 착한 일을 하면 새로워지네.”
사물을 대하면서
세상의 사물은 귀하다고 지나치게 좋아해서도 안 되고 하찮다고 지나치게 버려두어도 안 된다.
天下之物 貴不可偏愛 賤不可偏棄
- 이희경(李喜經) 《설수외사(雪岫外史)》중에서
<해설>
조선후기 대표적인 실학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제자인 설수(雪岫) 이희경(1745~1805)의 글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귀한 것만을 좋아하여 일상의 물건을 만들면서도 귀한 재료를 사용한다면, 귀한 것은 더욱 귀해져 정작 꼭 필요한 데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하찮고 흔한 재료를 가공하여 잘 사용할 수 있을 때 세상의 물자는 풍부해지고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얻기 힘든 금은보화보다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공기, 물, 흙이 우리에게는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사물이라도 모두 각각의 쓰임이 있습니다. 어디에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것입니다.
속이 비어야 받아들일 수 있다
두곡은 용량이 정해져 있는데, 먼저 먼지와 흙으로 채운다면 아름다운 곡식을 담을 수 없다.
斗斛之量受有多少 先之以塵土之實 則嘉穀爲之不容也
- 이익(李瀷) 〈권수보를 전송하는 서문[送權秀甫穎序]〉중에서 《성호집(星湖集)》
<해설>
위 글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1681~1763)이 후배인 권영(權穎)을 전송하면서 써준 글로, 지식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경계한 것입니다.
성호는 자신이 한때 학문을 널리 한답시고 잡설, 패기(稗記) 등을 가리지 않고 많이 얻는 데에 몰두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나이가 든 뒤에야 전현(前賢)들의 글을 고심해서 읽게 되었는데, 하루가 안 되어 다 잊어먹기 일쑤였습니다.
그 이유를 성호는, 과거에 마음을 두었던 잡다한 지식이 마치 밭에 씨를 뿌려 놓은 것처럼 좀체 없어지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하였습니다. 사람의 타고난 자질도 두곡처럼 정해진 용량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과 같은 우를 범하지 말고, ‘속이 비어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을 유념하기를 후배에게 조언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