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삼경 외/시경

시경집전(詩經集傳) 서(序)

청풍선비 2010. 10. 28. 10:22

시경집전(詩經集傳) 서(序)

▣ 시경집전(詩經集傳) 서(序)


或有問於予曰 詩何爲而作也오 予應之曰 人生而靜은 天之性也요 感於物而動은 性之欲也니 夫旣有欲矣면 則不能無思요 旣有思矣면 則不能無言이요 旣有言矣면 則言之所不能盡하여 而發於咨嗟詠歎之飮者 必有自然之音響節族(주)而不能已焉하니 此詩之所以作也니라


혹자(或者)가 나에게 묻기를 “시(詩)는 어찌하여 지었습니까?” 하였다.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사람이 태어나서 정(靜)할 때에는 하늘의 성(性)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사물에 감동되어 동(動)하면 성(性)의 욕(欲)[정욕(情欲)]이 나온다. 이미 욕(欲)이 있으면 생각이 없을 수 없고, 이미 생각이 있으면 말이 없을 수 없고, 이미 말이 있으면 말로써 다할 수 없어서 자차(咨嗟)하고 영탄(詠嘆)하는 나머지에 발(發)하는 것이 반드시 자연스러운 음향(音響)과 가락이 있어 그칠 수 없으니, 이것이 시(詩)를 짓게 된 이유이다.”


曰 然則其所以敎者는 何也요 曰 詩者는 人心之感物而形於言之餘也니心之所感이有邪正이라 故로 言之所形이 有是非하니 惟聖人在上이면 則其所感者無不正하여 而其言이 皆足以爲敎요 其或感之之雜하여 而所發이 不能無可擇者면 則上之人이 必思所以自反하여而因有以勸懲之하니 是亦所以爲敎也니라 昔周盛時에 上自郊廟朝廷으로 而下達於鄕黨閭巷히 其言이 粹然無不出於正者는聖人이 固已協之聲律하여 而用之鄕人하며 用之邦國하여 以化天下하시고 至於列國之詩하여는 則天子巡守에 亦必陳而觀之하여 以行黜陟之典이러시니 降自昭穆而後로 以陵夷하여 至於東遷하여 而遂廢不講矣라 孔子生於其時하사 卽不得位하여 無以行勸懲黜陟之政일새 於是에 特擧其籍而討論之하여 去其重複하고 正其紛亂하며 而其善之不足以爲法과 惡之不足以爲戒者는 則亦刊而去之하여 以從簡約, 示久遠하여 使夫學者로 卽是而有以考其得失하여 善者師之而惡者改焉케하시니 是以로 其政은 雖不足以行於一時나 而其敎는 實被於萬世하니 是則詩之所以爲敎者然也니라


“그렇다면 그 가르침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시(詩)는 사람의 마음이 사물에 감동되어 말의 나머지에 나타난 것이니, 마음의 감동하는 바에 사(邪)와 정(正)이 있다. 그러므로 말에 나타나는 바에 시(是)와 비(非)가 있을 것이니, 오직 성인(聖人)이 윗자리에 계시면 감동된 것이 바르지 않음이 없어 그 말씀이 모두 족히 가르침이 될 수 있는 것이요, 혹시라도 감동됨이 잡(雜)되어 발(發)하는 바가 선택할 것이 없지 못하면 윗사람이 반드시 스스로 돌이킬 바를 생각해서 이것을 인하여 선(善)을 권면하고 악(惡)을 징계함이 있으니, 이 또한 가르침이 된다. 저 옛날 주(周)나라의 전성기에 위로는 교제(郊祭)와 종묘제사(宗廟祭祀)와 조정(朝廷)으로부터 아래로는 향당(鄕黨)과 여항(閭巷)에 이르기까지 그 <시(詩)의> 말이 순수하여 모두 정도(正道)에서 나온 것은 성인(聖人)이 진실로 이것을 성률(聲律)에 맞추어 지방 사람들에게도 사용하고 국가에도 사용하여 천하(天下)를 교화하였고, 열국(列國)의 시(詩)에 이르러서는 천자(天子)가 순수(巡狩)할 때에 또한 반드시 이것을 진열하고 관찰하여 출척(黜陟)의 법을 행하였다. 그런데 시대가 내려와서 소왕(昭王)·목왕(穆王) 이후부터는 점점 침체하여 동쪽으로 천도(遷都)함에 이르러는 마침내 폐지되고 강(講)하지 않았다.

공자(孔子)께서 이때에 태어나시어 이미 지위를 얻지 못하여 권징(勸懲)하고 출척(黜陟)하는 정사를 행할 수 없으셨다. 이 때문에 다만 그 전적(典籍)을 들어 토론하여 중복된 것을 제하고 분란(粉亂)한 것을 바로잡으며, 선(善)이 족히 법이 될 수 없는 것과 악(惡)이 족히 경계가 될 수 없는 것은 또한 삭제하여 제거해서 간략함을 따라 구원(久遠)함을 보여주어서, 배우는 자로 하여금 이것을 가지고 그 득실(得失)을 상고하여 선(善)한 것을 본받고 악(惡)한 것을 고치게 하셨다. 이 때문에 그 정사가 비록 한 시대에 행해지지는 못하였으나, 그 가르침은 실로 만세(萬世)에 입혀졌으니 이것은 시경(詩經)의 가르침이 됨이 이러한 것이다.”


曰 然則國風雅頌之體가 其不同若是는 何也오 曰 吾聞之하니 凡詩之所謂風者는多出於里巷歌謠之作하니 所謂男女相與詠歌하여 各言其情者也라 唯周南召南은 親被文王之化以成德하여 而人皆有以得其性情之正이라 故로 其發於言者 樂而不過於淫하며 哀而不及於傷이라 是以로 二篇이 獨爲風詩之正經이요 自而下는 則其國之治亂不同하고 人之賢否亦異하여 其所感而發者 有邪正是非之不齊하니 而所謂先王之風者 於此焉變矣라 若夫雅頌之篇은 則皆成周之世에 朝廷郊廟樂歌之詞라 其語和而莊하고 其義寬而密하여 其作者往往聖人之徒니 固所以爲萬世法程而不可易者也요 至於雅之變者하여는 亦皆一時賢人君子閔時病俗之所爲어늘 而聖人取之하시니 其忠厚惻之心과 陳善閉邪之意가 尤非後世能言之士所能及之라 此는詩之爲經이 所以人事浹於下하고 天道備於上하여 而無一理之不具也니라


“그렇다면 국풍(國風)·아(雅)·송(頌)의 체(體)가 그 같지 않음이 이와 같음은 어째서입니까?”

“내가 들으니, 무릇 시(詩) 중에 이른바 풍(風)이란 것은 이항(里巷)의 가요(歌謠)의 작품에서 나온 것이 많으니, 이른바 남녀(男女)가 서로 읊고 노래하여 각기 그 정(情)을말했다는 것이다. 오직 주남(周南)가 소남(召南)은 친히 문왕(文王)의 교화를 입어 덕(德)을 이루어서 사람들이 모두 그 성정(性情)의 올바름을 얻었다. 그러므로 그 말에 나타난 것이 즐겁되 너무 지나치지 않고, 슬프되 상(傷)함에 미치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주남(周南)·소남(召南) 두 편은 홀로 풍시(風詩)의 정경(正經)이 되었고, 패풍(風)으로부터 이하는 그 나라의 치란(治亂)이 똑같지 않고, 사람의 현부(賢否)가 또한 달랐다. 그리하여 감동하여 발(發)한 것이 사정(邪正)과 시비(是非)의 같지 않음이 있었으니, 이른바 선왕(先王)의 풍(風)이라는 것이 여기에서 변하였다.

아(雅)·송(頌)의 편(篇)으로 말하면 모두 성주(成周)의 세대에 조정(朝廷)과 교조(郊朝)에 쓰는 악가(樂歌)의 내용이다. 그 말이 화(和)하면서도 장엄하고, 그 의(義)가 너그러우면서도 치밀하여, 작자(作者)가 왕왕 성인(聖人)의 무리였으니, 진실로 만세(萬世)의 법정(法程)이 되어 변할 수 없는 것이다. 아(雅)의 변(變)으로 말하면 또한 이것도 모두 한 때의 현인(賢人)·군자(君子)가 세상을 걱정하고 풍속을 안타깝게 여겨 지은 것인데, 성인(聖人)이 이를 취하셨으니, 그 충후(忠厚)하고 측달(惻)한 마음과 선(善)을 말하고 간사함을 막으려는 뜻은 더욱 후세(後世)에 문장을 잘하는 선비들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것이 시경(詩經)이 인간의 일이 아래에 무젖고 천도(天道)가 위에 갖추어져 한 이치도 구비하지 않음이 없는 이유이다.


曰 然則其學之也는 當奈何오 曰 本之二南하여 以求其端하고 參之列國하여 以盡其變하고 正之於雅하여 以大其規하고 和之於頌하여 以要其止니 此學詩之大旨也라 於是乎章句以綱之하고 訓以紀之하며 諷詠以昌之하고 涵濡以體之하여 察之情性隱微之間하고 審之言行樞機之始면 則修身及家, 平均天下之道가 其亦不待他求而得之於此矣리라 問者唯唯而退어늘 余時方輯詩傳일새 因悉次是語하여 以冠其篇云이라

淳熙四年丁酉冬十月戊子에 新安朱熹는 序하노라


“그렇다면 이것을 배우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남(二南)[주남(周南), 소남(召南)]에 근본하여 그 단서를 찾고, 열국(列國)의 풍(風)을 참고하여 그 변(變)을 다하고, 아(雅)에서 바루어 그 규모를 키우고, 송(頌)에 화(和)하여 그 그침[귀결]을 요약하여야 하니, 이것이 시경(詩經)을 배우는 대지(大旨)이다. 이에 장구(章句)로써 큰 벼리를 삼고, 훈고(訓)로써 작은 벼리를 삼으며, 읊어 창달하고 무젖어 체득하여, 성정(性情)의 은미한 사이에서 살피고, 언행(言行)의 추기(樞機)의 시작에서 살핀다면, 몸을 닦아 집안에 미치고 천하를 평균(平均)히 하는 도(道)[방법]가 그 또한 다른 데서 구할 필요 없이 여기에서 얻어질 것이다.”

이에 묻는 자가 ‘예예’하고 물러갔다. 나는 이 당시 막 시전(詩傳)을 편집하고 있었으므로 인하여 이 말을 모두 차례로 엮어서 이 편(篇)의 머리말로 적는 바이다.

순희(淳熙) 4년 정유년(丁酉年)[1183] 겨울 10월 무자일(戊子日)에 신안(新安) 주희(朱熹)는 서(序)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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