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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참지(朴參知) 세견(世堅) 에게 드리다

청풍선비 2010. 12. 25. 14:23

 명재유고 제10권

 

서(書)

 

박 참지(朴參知) 세견(世堅) 에게 드리다

 

숙형(叔兄)은 그 기질이 후덕하고 재주가 빼어나 실로 이 정도에서 끝마칠 줄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이제 다 끝났으니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의지와 재주가 있음에도 성취하지 못하고 중도에 요절하여 초목처럼 영원히 침묵하게 되었으니 이는 형제들이 깊이 슬퍼하고 붕우들이 깊이 애도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또한 이 시대 군자들이 모두 함께 깊이 애석하게 여기는 일이기도 합니다. 진실로 평소의 언행을 주워 모으고 간략하게 행장(行狀)을 써서 책을 만든 다음 이 시대 군자들에게 한 말씀을 구하여 후세에 남기도록 해서 세상을 떠난 사람으로 하여금 이승에서 온전하게 사라져 버리는 일이 없게 한다면 죽은 이는 전해짐이 있게 되고 산 이는 유감이 없어질 것이니 이것이 진실로 붕우들의 지극한 바람이며 형제의 임무입니다. 이렇게 저의 우매함과 비루함을 생각지 않고 외람되게 말씀드리는 것은 좌우의 우애를 도우려는 것일 뿐입니다.
저는 지난해에 재종제인 식(拭)을 잃고 지금 또 이런 일을 당하니, 평소에 조용히 생각하노라면 간담이 찢어지는 듯합니다. 치미는 번민을 풀 방법이 없어 시를 지어 뜻을 폈으니 이는 조금이나마 가슴 가득한 슬픈 회포를 달래려고 한 것입니다. 이 글과 함께 보내니 한 번 보신 후에 돌려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신묘년(1711, 숙종37)-

동촌(東村)의 친척 어른께서 돌아오실 때에 부친 서찰을 받아 본 것은 비록 늦었지만 위안되는 점이 실로 많았습니다. 가을 서리가 내리는 지금은 벼슬살이의 기거하심이 어떤지 알지 못하여 구구하게 집사가 계신 곳을 향하여 우러르는 마음만 늘 간절합니다.
저는 봄에 중부(仲父)의 부름을 받고 중부를 따라 산과 바다를 구경하면서 드디어 한 번 풍악산(楓嶽山)에 올라서 동쪽으로 큰 바다에 임하고 북쪽으로 총석정(叢石亭)에서부터 남쪽으로 죽서루(竹西樓)까지 갔습니다. 그러다가 홍수에 길이 막혀 여름을 영월(寧越)에서 보낸 다음 얼마 전에는 또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북벽(北壁)과 구담(龜潭), 도담(島潭)을 하나하나 구경하고 곧바로 한벽루(寒碧樓) 아래에 이르러 배를 버리고 서쪽으로 돌아왔습니다. 무릇 구경한 곳들은 모두 지난번에 집사(執事)께서 두루 다녔던 곳들입니다. 아름다운 곳에 이를 때마다 고상한 풍모를 생각하며, 좀 더 머물러 저의 주인노릇을 하지 못하신 것이 한스러웠습니다. 마침 인편이 있어 인사를 올리고 이만 줄이며, 오직 서늘해진 날씨에 더욱 존체를 아끼시어 간절한 마음에 부응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임인년(1662, 현종3) 8월 5일-

[주C-001]박 참지(朴參知) : 박세견(朴世堅 : 1619〜1683)으로, 본관은 반남이고, 자는 중고(仲固), 호는 단애(湍厓)이다. 박정(朴炡)의 아들로, 박세당(朴世堂)의 중형(仲兄)이다.
[주D-001]중부(仲父) : 이때 영월 군수(寧越郡守)로 있었던 윤순거(尹舜擧)를 가리킨다. 《明齋遺稿 卷43 仲父童土府君行狀, 韓國文集叢刊 136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