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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서대 수정암 중창기(五臺山西臺水精庵重創記)

청풍선비 2010. 12. 2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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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촌선생문집 제14권

기류(記類)

 

 

오대산 서대 수정암 중창기(五臺山西臺水精庵重創記)

 

 

강원도 경계에 큰 산이 있는데, 다섯 봉우리가 나란히 솟아 크고 작기가 비슷하게 둘러섰으므로, 세상에서 오대산이라고 부른다. 중앙의 것이 지로(地爐), 동쪽 것이 만월(滿月), 남쪽 것이 기린(麒麟), 서쪽 것이 장령(長嶺)이고, 북쪽 것은 상왕(象王)이라 하여 드디어 다섯 가지의 성중(聖衆)이 늘 머물고 있다는 말이 있어 불교(佛敎)를 믿는 사람들이 굉장하게 떠들어대나, 우리 유가(儒家)에 있어서는 근거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더 말하지 않는다.
서대(西臺) 밑에서 함천(檻泉 솟아나는 물)이 솟아나서, 빛깔과 맛이 보통 우물물보다 낫고 물의 무게도 또한 무거운데 우통수(于筒水)라고 한다. 서쪽으로 수백 리를 흘러가다 한강(漢江)이 되어 바다로 들어가는데, 한강이 비록 여러 군데서 흐르는 물을 받아 모인 것이지만 우통수가 중령(中泠)이 되어 빛깔과 맛이 변하지 아니하여, 마치 중국의 양자강(揚子江)과 같으므로 한강이라 이름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우통수의 근원에 수정암이란 암자가 있는데, 옛날 신라 때 두 왕자(王子)가 이곳에 은둔하여 선(禪)을 닦아 도를 깨쳤기에, 지금도 중[衲子]으로서 증과(證果)를 닦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두 거처하기를 즐겁게 여긴다. 임신년(壬申年) 가을에 불에 탔는데, 이때 조계종(曹溪宗)의 시 잘하는 중 나암 유공(懶菴游公)과 목암 영공(牧菴永公)이 모두 명리(明利)를 버리고 이 산에 들어왔다가, 암자의 서까래가 잿더미로 변한 것을 보고서 측은하게 여겨 비탄(悲歎)하며 다시 세우려고 화소(化疏)를 가지고 곧 산을 나서 널리 권선(勸善)하므로, 시중(侍中) 철성(鐵城) 이공 임(李公琳) 및 그의 부인 홍씨(洪氏)와 중추(中樞) 고흥 유공(高興柳公) 및 그의 부인 이씨(李氏)와 여러 단가(檀家 시주하는 집)들이 이를 듣고서 모두 기뻐하며 각기 돈과 곡식을 시주하였다.
계유년 봄에 바야흐로 공사를 시작하게 되어, 다시 함천(檻泉) 옆 숲 밑에 가서 지형을 보니 매우 절승이므로, 곧 나무를 베고 그 지면(地面)을 깎아내니 옛날 주추가 그대로 있어 옛터가 완연하므로, 보는 사람들이 서로 경하(慶賀)하며 모두들 말하기를,

“아마 하늘이 화재를 내어 그 전 누추하던 것을 태워 버리고 더욱 좋게 짓도록 한 것이거나, 두 공(公)이 재생(再生)하여 옛터를 발견한 것이거나, 아니면 도안(道眼)이 갖추어져 저절로 옛사람들과 합치된 것이 아닌지. 이는 반드시 이 세 가지 중에 한 가지일 것이다.”

하며, 곧 즐겁게 일에 나와 공사를 마치게 되었는데, 불당(佛堂)은 오량(五梁 보가 다섯 줄로 된 집)으로 다섯 칸이고 욕실(浴室)이 두 칸으로 되어, 그 규모와 제도가 그다지 별다르지 않은 것은, 간편함을 따른 것이었다. 나암이 또한 유공(柳公)과 함께 새로 미타(彌陀)와 팔대보살(八大菩薩)을 그려서 불당 중앙에 걸었고, 고동(古銅) 향로 및 정병(淨甁 물병)과 기구[什器]들을 모두 갖추었으며, 경찬회(慶讚會)를 이미 세 번이나 하였고, 수선(修禪)에 뜻을 두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머무르게 되니, 암자로서는 할 일을 다한 것이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앞으로 이 암자에 있는 사람들이, 신라의 두 왕자와 같이 득도(得道)하는 사람이 있을 것인지. 언제나 청소[掃漑]를 잘하여 황폐(荒廢)하지 않도록 하되, 기우는 것은 붙잡아 세우고 썩는 것은 바꾸어서 두 공(公)의 뜻을 떨어뜨리지 않고 이 산과 함께 무궁하게 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또한 화재를 만나 다시 숲이 되어 알 수 없게 될는지. 모두 기필할 수 없으니, 이는 다음 사람들의 책임에 달린 것이다.
나암(懶菴)이 나에게 와서 기(記)를 청하였으니, 대개 이것으로써 장래를 경계하려는 것이었다. 내가 나암과 도는 비록 다르나 서로 안 지가 오래이기 때문에 사양하지 아니하고 그의 말을 써서 기(記)로 하였다. 나암은 세족(世族)으로서 부귀를 버리고 가사를 입었는데, 명성이 매우 높아 지금은 양가 도승록대사(兩街都僧錄大師)가 되었다 한다.

영락 2년 2월 16일


 

[주D-001]중령(中泠) : 중국 강소성(江蘇省) 진강현(鎭江縣) 서북쪽의 양자강(揚子江) 속에 있는 샘. 강물과 함께 흐르면서도 이 물은 특히 섞이지 않고 찬맛을 그대로 지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