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선생전서 제25권
성학집요(聖學輯要)
7제4 위정(爲政) 하(下)
제3장 취선(取善)
신이 생각건대, 군신(君臣)이 서로 맺어지고 나면 반드시 그 사람의 착한 점을 취하여, 모든 계책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들어서 시행한 뒤에 잘 다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취선(取善)을 다음에 두었습니다.
이윤(伊尹)이 말하기를, “임금은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못하며, 백성은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못하는 것이니, 스스로 대단하다 여겨 남을 얕보지 마시옵소서. 필부(匹夫)와 필부(匹婦)가 스스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임금은 그 공효를 이루지 못합니다.” 하였다. 《서경(書經)》 〈상서(商書) 함유일덕(咸有一德)〉 아래도 이와 같다. ○ 이윤이 태갑에게 경계하여 한 말이다.
채씨가 말하기를, “임금과 백성이 서로 필요로 함이 이와 같음을 말하여, 태갑(太甲)으로 하여금 감히 이 점을 소홀히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무(無)는 ‘말라[毋]’는 뜻과 같다. 이윤이 또 말하기를, ‘임금과 백성이 부리고 섬기는 것이 비록 귀천(貴賤)에 따라 다르나, 사람을 취하여 착한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귀천의 구별이 없다.’ 하였다. 대개 하늘이 하나의 이치를 사람에게 품부(稟賦)하여 이것이 흩어져서 만 가지 선한 것이 되는 것이며, 임금은 천하의 만 가지 선한 것을 합한 후에 이치가 순일(純一)한 것을 보존할 수 있으니, 만일 스스로 대단하게 여기고 남을 얕봐 필부가 스스로 임금에게 지극하게 하지 않으면 하나의 선한 것이 갖추어지지 못하여 임금이 그 공효를 함께 이룰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덕(德)에는 변치 않는 법이 없어서 선을 주재하는 것이 법이 되며, 선에는 변치 않는 주재가 없어서 능히 순일한 것에서 합쳐지는 것이다.
채씨가 말하기를, “떳떳하지 않다는 것은 어느 하나에 집착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사(師)는 법(法)이요, 협(協)은 합한다는 말이며, 덕(德)은 선의 총칭이요, 선은 덕을 실천하는 것이며, 일(一)은 근본을 모아서 합한 것이다. 덕은 여러 선한 것을 겸한 것인데, 선을 주재하지 않으면 한 근본에서 만 가지 다른 이치를 얻지 못할 것이며, 선은 순일(純一)한 것에 근원한 것인데 이 순일한 것에서 합쳐지지 않으면, 만 가지 다른 것이 한 근본으로 모이는 오묘한 이치에 통달하지 못한다. 넓혀서 하나가 아닌 선에서 구하며 요약하여 오직 하나인 이치로 모이는 것이 성학(聖學)의 조리가 시작되고 끝나는 차례이니, 공자가 이른바 ‘하나로 꿰었다[一貫]’는 것과 거의 같다.” 하였다.
기자(箕子)가 무왕(武王)에게 아뢰기를, “무릇 그 백성들 중에서 계책을 가지고 있거나 시행하거나 준수하는 이가 있다면, 임금께서는 그것을 생각하여 극(極)에 합하지 않더라도 허물에 걸리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옵소서. 그리고 부드러운 얼굴빛으로 내가 좋아하는 바는 덕(德)이라고 하거든 임금께서는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하였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洪範)〉
채씨가 말하기를, “계책을 가졌다는 것은 모책(謀策)이 있는 자이고, 시행한다는 것은 시행하여 베풂이 있는 자이며, 준수한다는 것은 자기가 지켜야 할 도를 지키는 자인데, 이 세 가지는 임금이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극(極)에 합하지 않는다는 것은 선에 합하지 않는다는 것이요, 허물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은 악(惡)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것은 중간 수준의 사람이다. 받아들이라는 것은 거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밖에 드러나게 편안하고 화한 빛이 있거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덕을 좋아하는 말이 있으면 복을 내려 줄 것이니, 복이란 작록(爵祿)을 말한다.”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말을 기준으로 해서 그 사람을 등용하지 않고, 사람을 기준으로 해서 그 말까지 버리지는 않는다.” 하였다. 《논어(論語)》
남헌 장씨(南軒張氏 장식(張栻))가 말하기를, “말을 기준으로 사람을 등용하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가 나올 것이니, 이는 진실로 불가하다. 그러나 비록 소인이 말한 것이라도 이것이 좋다면 또한 좋은 말이 되는 데는 해롭지 않으니, 사람을 기준으로 그 말까지 버린다면 좋은 말이 버려질 것이다.” 하였다.
순(舜)은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 순은 묻기를 좋아하였고 천근한 말[邇言]까지도 반드시 살폈다. 나쁜 점은 숨겨 주고 좋은 점은 선양해 주었으며, 그 양 끝을 잡아서 그 중(中)을 백성에게 베풀었으니, 이것이 바로 순 임금이 순 임금다운 소이이다. 《중용(中庸)》 ○ 역시 공자의 말씀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순(舜)이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이 된 까닭은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고 남에게서 취하여 시행했기 때문이다. 이언(邇言)이란 것은 천근한 말인데 그것까지도 오히려 반드시 살폈으니 그가 선(善)을 남겨 두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말이 선하지 못하면 숨기어 선양(宣揚)하지 않았고, 그것이 선하면 전파하여 숨기지 않았다. 그 넓고 밝은 것이 또 이와 같으니, 누가 착한 것을 말하기를 즐거워하지 않겠는가. 양 끝이란 것은 뭇 의논이 일치하지 않는 극단을 말한다. 대개 모든 사물은 다 양 끝이 있는데, 큰 것과 작은 것, 두텁거나 얇은 것 따위이다. 선한 것 가운데서도 또 그 양 끝을 잡아 헤아려 중(中)을 취해야만, 이것을 운용하는 데 택하는 것이 정밀해지고 행하는 것이 지극해진다. 그러나 나에게 있는 권도(權度)가 정밀하고 적절하여 어긋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렇게 하겠는가.” 하였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위대한 순은 선한 것을 남과 같이하기를 좋아하여서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랐으며, 남에게서 취하여 선을 행하기를 즐거워하였다. 농사짓고 질그릇 굽고 고기잡이하는 데서부터 황제가 되기까지 남에게서 취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하였다. 《맹자(孟子)》 아래도 이와 같다.
주자가 말하기를, “선을 남과 같이 한다는 것은 천하의 선을 공적(公的)으로 하고 사적(私的)으로는 하지 않는 것이다. 순은 미천할 때 역산(歷山)에서 농사를 지었고, 하빈(河濱)에서 질그릇을 구웠으며, 뇌택(雷澤)에서는 고기잡이를 하였다.” 하였다.
남에게서 취하여 선을 한다는 것은 남이 선한 일을 하도록 돕는[與]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남이 선을 하는 것을 돕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다.
주자가 말하기를, “‘여(與)는 허(許)한다, 돕는다.’는 말과 같다. 남의 선을 취하여 내가 행하면 곧 남에게 더욱 선을 권면(勸勉)하는 것이니, 이것은 내가 그 사람이 선을 행하는 것을 돕는 것이다. 천하 사람이 선을 행하도록 권면한다면 군자의 선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있겠는가. 이것은 선을 즐기는 성의에 애초부터 피차의 사이가 없으므로, 남에게 있는 것으로 자신을 넉넉하게 하고, 내게 있는 것으로 남에게 미치는 것이다.” 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옛사람은 나무꾼[芻蕘]에게도 물어보라 하였다.” 하였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판(板)〉
주자가 말하기를, “선민은 옛 현인(賢人)이요, 추요(芻蕘)는 나무꾼이다.” 하였다. ○ 풍성 주씨(豐城朱氏 주선(朱善))가 말하기를, “천근한 말에도 지극한 이치가 있으니, 그 사람이 천하다고 해서 그 말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하였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지혜로써 임하니 대군(大君)으로서 마땅한 일이다. 길(吉)하다.” 하였다. 《주역(周易)》 〈임괘(臨卦) 육오(六五)>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5가 높은 자리에 거하여 아래 2의 강하고 중한 신하[剛中之臣]와 상응해 있으니, 5는 임금의 지위이고 2는 신하의 자리로, 5와 2는 서로 응하는 효사(爻辭)이다. 이것은 임금이 신하에게 국정을 위임하여 힘들이지 않고도 나라가 다스려지는 상태로 곧 지혜로써 아래 백성에 임하는 것을 말한다. 대개 한 사람의 몸으로 광대한 천하에 임하는 데 있어서, 만약에 구구(區區)한 일까지 스스로 맡는다면 어찌 능히 모든 일에 두루 도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자기의 지혜를 믿고 스스로 전담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오직 천하의 선(善)을 취하고, 천하의 총명한 이에게 위임한다면, 모든 일이 두루 도달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니 이것이 크게 지혜로운 것이요, 대군으로서 마땅한 일이다. 그 길(吉)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였다.
신이 생각건대, 천하는 지극히 광대하고 일의 기틀은 지극히 번다하기 때문에 임금이 조그마한 몸으로서 고요하게 거처하고, 간략하게 살면서 상응하는 데 여유가 있는 것은 다만 천하의 지혜를 모아서, 천하의 일을 결단하는 데 있을 뿐입니다. 사람마다 제각기 지혜가 있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에게서도 한 가지는 얻을 게 있습니다. 만약에 뭇 지혜를 다 취하여 하나의 지혜로 합하고 나의 기준이 정확하고 밝아서 중(中)을 얻는다면, 천하가 광대하다 하더라도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을 운용하는 것과 같고, 일의 기틀이 번다하다 하더라도 물병을 거꾸로 들어 물을 쏟듯 막힘이 없을 것입니다. 대개 천하의 눈[目]을 나의 눈으로 삼는다면 보이지 않는 것이 없고, 천하의 귀[耳]를 나의 귀로 삼는다면 들리지 않는 것이 없으며, 천하의 마음[心]을 나의 마음으로 삼는다면 생각하지 못할 지혜가 없을 것이니, 이것이 성스러운 황제나 밝은 왕이 천하를 고무(鼓舞)하면서도 심력(心力)을 수고롭게 하지 않아도 되는 소이입니다. 이와 반대로 하면 스스로 통달했다고 여기는 데서 가려지고, 스스로 마음대로 하는 것이 고질이 되며, 자기의 총명을 자랑하고 한 시대를 업신여겨서, 천하의 사람들을 다 자기만 못하다고 여깁니다. 휘장 안이나 울타리 안에서도 오히려 견문이 미치지 못한 것이 있는데 하물며 광대한 천하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아, 스스로 성스러운 지혜를 가졌다고 하지 않고 백성들에게서 착한 것을 힘써 취하는 것은 비천한 것 같지마는 실은 순(舜)이 실행한 것입니다. 순의 총명이 어찌 남만 못한 게 있겠습니까마는 반드시 남에게서 취하여 선을 했다 하는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참으로 도리는 무궁하고 성인의 마음은 광대하고 공명하여, 하나의 착한 말을 들으면 시원스럽게 그것을 따르고 남과 자기의 간격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천하의 선을 모아서 스스로 시행(施行)하였으니, 이것이 순 임금이 지극히 성스럽게 된 소이입니다. 임금으로서 어찌 스스로 성스러운 임금인 체하고, 스스로 마음대로 하면서 순 임금보다 고명한 것을 하려 하다 도리어 어둡고 막힌 길로 달려간단 말입니까. 어떤 사람이 묻기를, “임금이 비록 여러 사람의 계책을 모으더라도 어진 선비들이 명에 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므로, 신이 대답하기를, “다만 임금이 선을 좋아하는 성의가 없는 것을 근심할 뿐이다.” 하였습니다. 선을 성심껏 좋아한다면 선비들이 천리도 가깝게 여기고 모여들 것입니다. 어진 이는 그 도를 행할 것이고, 지혜로운 이는 그 계책을 다하려고 할 것이며, 곧은 이는 그 충성을 바치려고 할 것이고, 용맹스러운 이는 그 힘을 다하려고 할 것이니, 어찌 선비가 명에 응하지 않을까를 근심하겠습니까. 만약에 말로만 선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그 실상이 없으면, 여러 계책이 모여도 권도(權度)의 정당성을 잃어서, 난초의 향기를 고약한 냄새라 하고, 숯을 희다고 하며, 막야검(鏌鎁劍)을 둔하다고 하고, 납으로 만든 칼을 날카롭다 하며, 또 혹 시비(是非)와 사정(邪正)에 대해 막연하여 취하거나 버릴 수도 없을 것입니다. 발언(發言)은 궁정에 가득 찼는데 하나도 시행하지 못하고, 마치 묘연히 깊은 우물 속에 빠진 것과 같다면, 선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갈 것입니다. 그 뒤에 비록 선한 말[善言]을 구하거나 어진 선비를 초빙한다 하더라도 누가 감히 그 명에 응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모두 임금이 스스로 취한 것입니다. 득실(得失)이 이와 같으니 전하께서는 굽어살피시옵소서.
제4장 식시무(識時務)
신이 생각건대, 지혜로운 이는 모르는 것이 없지마는, 마땅히 힘써야 할 것을 급선무로 삼아야 하니, 여러 계책이 모였다 하더라도 반드시 먼저 시무(時務)에 절실한 것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식시무(識時務)를 취선(取善) 다음에 두었습니다.
마땅히 알아야 할 시무(時務)에 대하여
학문을 논할 때는 곧 이치를 밝혀야 하고, 정치를 논할 때는 반드시 체계를 알아야 한다. 《이정유서(二程遺書)》 ○ 명도(明道) 선생의 말이다.
섭씨(葉氏)가 말하기를, “학문을 논하되 이치에 밝지 못하면 한갓 기록하여 외는 사장(詞章)의 말단적인 것을 일삼을 뿐이요, 학문을 안다고는 하지 못할 것이며, 정치를 논하되 그 체계를 알지 못하면 한갓 제도와 절문(節文)의 말단적인 것을 강(講)할 뿐이요, 정치를 안다고 할 수 없다.” 하였다.
생각이 선하거든 이에 따라 움직이되, 움직이는 것을 때에 마땅하게 한다. 《서경(書經)》 〈상서(商書) 열명(說命)〉
채씨가 말하기를, “선은 이치에 합당하다는 뜻이요, 시(時)는 때에 마땅하다는 뜻이다. 생각이 진실로 이치에 합당하고자 하지마는, 움직이는 것이 그때가 아니면 오히려 유익함이 없다. 성인이 이 세상과 대응하는 것 또한 때에 맞게 할 뿐이다.” 하였다. ○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천지는 순조롭게 움직이기 때문에, 해와 달은 그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사시(四時)는 그 절기가 어긋나지 않는다. 성인도 순조롭게 움직이기 때문에, 형벌이 공정하여 백성들이 복종한다.” 하였다. ○ 설씨(薛氏)가 말하기를, “큰일에 처해서는 아는 것이 우선이고 결단(決斷)은 그다음이다.” 하였다.
이상은 시무를 알아야 함에 대해 널리 말씀드렸습니다.
창업(創業)의 도에 대하여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구름과 천둥은 둔(屯)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나라를 경륜(經綸)한다.” 하였다. 《주역(周易)》 〈둔괘(屯卦) 상사(象辭)〉
정자가 말하기를, “구름은 비가 되려다 만 것이다. 비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둔(屯)이 된 것이다. 군자는 둔괘의 상(象)을 잘 관찰해 천하의 일을 경영하고 다스려 세상을 고난에서 구제한다. 경륜(經綸)은 경영하여 해내는 것을 말한다.” 하였다. ○ 주자가 말하기를, “고난한 세상은 군자가 무언가 해야 할 때이다.”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황제(黃帝)와 요순(堯舜)이 나와서 그 변화를 통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싫증나지 않게 하고, 신묘하게 교화하여 백성들이 올바르게 살도록 하였다. 역(易)은 궁(窮)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간다. 이 때문에 하늘이 도와주므로 길하여 이롭지 않는 것이 없다.” 하였다. 《주역(周易)》 〈계사(繫辭)〉
정자가 말하기를, “변(變)을 알고 화(化)를 알기는 어려운 일이다. 고금의 풍기(風氣)가 같지 않으므로 그 기용(器用) 또한 다르다. 그러므로 성인은 변화를 통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싫증나지 않도록 각각 그 시대를 따라서 알맞게 할 뿐이다.” 하였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가 나라를 세우고 왕통을 전하는 것은 계승해 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하였다. 《맹자》 아래도 이와 같다.
주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앞에서 왕업의 터전을 세우고 뒤에서는 후세에 왕통을 전하여, 그 바른 것을 잃어버리지 않고 후세에 이어서 행하게 할 뿐이다.” 하였다.
한 가지의 불의(不義)를 행하고 한 사람의 죄 없는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는다 하더라도 이런 일은 하지 않는다.
주자가 말하기를, “한 가지의 불의를 행하고 한 사람의 죄 없는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더라도 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은 마음이 바른 것이다.” 하였다.
이상은 창업(創業)의 도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수성(守成)의 도에 대하여
○ 부열(傅說)이 아뢰기를, “선왕의 이룬 법[憲]을 모아서 길이 허물[愆]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다. 《서경(書經)》 〈상서(商書) 열명(說命)〉 ○ 부열이 고종(高宗)을 경계하는 말이다.
채씨가 말하기를, “헌(憲)은 법이요, 건(愆)은 허물이다. 반드시 선왕의 법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은 선왕이 이룬 법을 자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함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허물을 짓지도 않고 잊지도 않으며, 전장(典章)을 따르노라.” 하였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가락(假樂)〉
주자가 말하기를, “건(愆)은 허물이요, 솔(率)은 따르는 것이며, 장(章)은 선왕의 전법(典法)이다. 행하는 것이 허물을 짓는 일도 없고 잊지도 않는 것은 선왕의 옛 법을 따르기 때문이다.” 하였다. ○
한(漢)나라 찬후(酇侯)인 소하(蕭何)가 죽고 조참(曹參)이 소하를 대신하여 정승이 되었을 때, 그는 한결같이 소하가 정해 놓은 것에 따라서 정사를 해 나갔다. 군국(郡國)의 관리 중에서 문사(文辭)에는 서툴러도 충후한 장자(長者)이면 곧 불러 승상사(丞相史)로 삼고, 관리 중에 언문(言文)에 매우 깊고 명성에만 힘쓰는 이는 문득 축출하였으며, 또 사람에게 조그마한 허물이 있는 것을 보면 오로지 덮어서 가려 주었기 때문에, 부중(府中)에는 아무 일이 없었다. 당시에 문제(文帝)는 국상(國相)이 시책을 처리하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여겼다. 그러자 조참이 아뢰기를, “고제(高帝)께서 소하와 더불어 천하를 평정하여 법령이 밝아졌으니, 폐하께서는 가만히 계시고 저희들은 직분을 지켜 소하의 규약을 따르고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또한 가하지 않겠습니까.” 하니, 문제가 이르기를, “좋은 말이다.” 하였다. 조참이 정승이 된 지 3년 만에 백성들이 노래하기를, “소하가 만든 법이 한 일 자처럼 반듯하도다. 조참이 대신하여 규약을 지키고 잃어버리지 않으니, 정치가 맑고 깨끗하여 백성들이 안정되어 어지럽지 않다네.” 하였다.
이상은 지키고 이루는 도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경장(更張)의 도에 대하여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항(恒)은 형통(亨通)하여 가는 바가 있음이 이롭다.” 하였다. 《주역(周易)》 〈항괘(恒卦) 단사(彖辭)〉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항(恒)은 변치 않고 오래간다는 것이다. 항도(恒道)는 형통할 수 있어서 어느 한 모퉁이만을 지키고 변(變)을 알지 못함이 아니다. 그러므로 가는 것이 있음이 이롭다. 오직 그 가는 곳이 있기 때문에 변치 않고 오래갈 수 있다. 만약 일정하다면 변치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직 때에 맞게 변역(變易)하는 것이 곧 상도(常道)이니, 천지가 오래가는 도와 천하가 오래가는 이치는, 도를 아는 이가 아니면 누가 능히 이것을 알겠는가.” 하였다.
또 말하기를, “개혁하자는 말[革言]이 세 번 이루어지면 믿음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주역(周易)》 〈혁괘(革卦) 구삼(九三)〉
정자가 말하기를, “혁언(革言)은 마땅히 개혁하여야 한다는 의논이고, 취(就)는 이루는 것이요, 합하는 것이다. 마땅히 개혁하여야 한다는 말을 살펴보아 이 말이 세 차례나 이르러 다 합하면 믿을 만하다. 마땅히 개혁하여야 할 일을 두려워하여 개혁하지 않는다면 때를 잃어서 해가 된다. 오직 마땅히 지극히 신중하게 하되 스스로 강하다고 자임하지 않고, 공론을 살피고 상고하여 개혁하자는 의논이 세 차례 합치된 이후에 이것을 개혁하면 과실이 없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거친 것을 포용하며, 큰 강물을 걸어서 건너며, 먼 데 것을 버리지 아니하며, 붕당(朋黨)을 없애면 중도(中道)에 합당할 것이다.” 하였다. 《주역(周易)》 〈태괘(泰卦) 구이(九二)〉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거친 것을 포용하고, 큰 강물을 걸어서 건너며, 먼 데 것을 버리지 않으며, 붕당을 없애는 이 네 가지는 태평 시대에 처하는 도이다. 사람의 마음이 안일하고 방자하면 정치가 느슨해지고 법도가 해이(解弛)해져서 모든 일이 절도가 없게 된다.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반드시 거칠거나 지저분한 것이라도 포용하는 아량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시정(施政)이 너그러워지고 찬찬하고 세밀해져서, 폐해가 되는 것이 개혁되어 일이 잘 다스려져 백성들이 편안해진다. 만약 널리 포용하는 도량은 없이 성내고 미워하는 마음만 있다면 깊고 원대한 생각은 없고, 사납고 어지러운 근심만 있어서 묵은 폐단이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환난(患亂)이 생긴다. 그러므로 사람을 포용할 도량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강물을 걸어서 건넌다.’는 것이란, 태평하고 편안한 세상에는 사람의 마음이 오래도록 안일한 데 젖어서 굳게 지키는 것만을 편하게 여겨, 나태하게 해 오던 대로 하려하고 바꾸는 것을 꺼리니, 강물을 뛰어서 건널 용기가 있지 않으면 이때에 무언가를 해낼 수 없다. ‘강물을 걸어서 건넌다.’는 것은 강(剛)하고 용감하여 족히 깊은 곳을 건너고, 위험한 곳을 넘어갈 수 있음을 말한다. 옛날부터 태평스러운 치세(治世)가 점점 쇠퇴해지는 것은 대개 안일에 젖어서 해 오던 대로 하기 때문인데, 강단(剛斷)이 있는 임금과 영민(英敏)한 신하가 아니면, 능히 분발(奮發)하여 그 묵은 폐단을 개혁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강물을 걸어서 건너야 한다고 한 것이다. 어떤 이는 ‘위에 말한 「포용한다.」는 것은 포함하고 관용(寬容)한다는 뜻이요, 여기에 말한 「강물을 걸어서 건너야 한다.」는 것은 분발하여 개혁한다는 뜻이니, 두 가지가 서로 상반되는 것 같다.’ 하였다. 그러나 이는 포용하는 아량을 가지고 강하고 과단성 있게 시행하는 것이, 곧 성현이 하시는 것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먼 데 것을 버리지 아니한다.’는 것은 태평 시대에 인심이 안일에 젖으면 구차하게 안일해질 뿐인데, 어찌 능히 먼 데 일에까지 미칠 깊은 생각이나 걱정이 있을 수 있겠는가. 태평스런 때를 다스리는 이는 마땅히 모든 일을 두루 살펴서 비록 먼 곳의 일이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 은미(隱微)한 일이나 궁벽하고 누추한 곳에 있는 어질고 재주 있는 이가 모두 먼 곳에 있는 것이다. 먼 곳의 것은 시대가 태평하면 이들을 내버려 두곤 한다. ‘붕당(朋黨)을 없앤다.’는 것은 때가 태평해지면 사람들이 안일에 젖어서, 그 마음이 방자하여 절도를 잃는다. 이것을 제약하여 바르게 하려 한다면 붕당을 만드는 사사로움을 근절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붕당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였다. 옛날부터 법을 세우고 일을 제재하는 것을 인정에 얽매어서 마침내 시행하지 못한 것이 많다. 사치를 금하자니, 가까운 친척에게 해가 되고, 농지 소유를 제한하자니, 귀족에게 해가 된다. 이러한 유(類)를 크게 공정한 잣대를 가지고 단행하지 않는다면 붕당에 이끌리게 된다. 태평 시대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붕당을 없애지 않는다면 다스리기가 어렵다. 태평 시대를 다스리는 도가 이 네 가지에 있다면 능히 중도에 합당할 수 있다. 상(尙)은 합당하다는 뜻이다.” 하였다. ○ 또 말하기를, “다스리는 도에는 근본을 좇아 말한 것도 있고, 일을 좇아 말한 것도 있다. 근본으로부터 말하자면 오직 임금의 마음이 그른 것을 바르게 하는 것뿐이니,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하면 조정을 바르게 할 수 있고, 조정을 바르게 하면 백관(百官)을 바르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일로부터 말하자면 세상을 구제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구제해야겠다고 한다면 변혁을 해야 할 것이니, 큰 변혁이 있으면 큰 이익이 있고 작은 변혁이 있으면 작은 이익이 있다.” 하였다. ○ 동씨(董氏)가 말하기를, “금슬(琴瑟)의 소리가 고르지 못할 때 심지어는 줄을 풀었다 다시 매어야만 연주할 수 있다. 정치를 하는 데도 잘 다스려지지 않으면 심지어는 반드시 변혁하여 다시 바꾸어야 다스릴 수 있다. 옛사람의 말에, ‘못에 다다라 고기를 부러워하는 것은 물러가서 그물을 만드는 것만 못하고, 정치에 당면하여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것은 물러가서 다시 개혁하는 것만 못하다.’ 하였으니, 개혁하면 잘 다스려질 수 있고, 잘 다스려지면 재해가 날로 없어져서 날로 복록이 온다.” 하였다. ○ 주자가 말하기를, “옛날에 아름다웠던 선위(禪位)로는 요와 순보다 훌륭한 것이 없다. 순이 요를 계승하여 왕위를 전해 받고서 28년간 예악(禮樂)ㆍ형정(刑政)에 있어서 새로이 고친 것이 많았다. 그 큰 것으로는 16명의 정승을 기용한 것인데, 모두 요가 기용하지 못한 바이며, 또 4명의 흉인을 제거한 것인데, 이것은 모두 요가 제거하지 못한 바이다. 그러나 순은 그것을 혐의스럽게 여기지 않았고, 요는 그것을 죄로 삼지 않았으며, 천하의 백성들은 그것을 그르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옛 제도를 그대로 따르느냐 개혁하느냐, 더느냐 더하느냐를 오직 의리로써 생각할 뿐이다.” 하였다.
이상은 경장의 도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신이 생각건대, 시무(時務)는 어느 때나 한결같지 않고 각각 마땅한 것이 있사오니, 큰 요체를 추려 보면, 창업(創業)하는 것과, 부조(父祖)의 업을 지키는 것과 개혁하는 것 세 가지뿐입니다. 창업의 도는 요(堯)ㆍ순(舜)ㆍ탕(湯)ㆍ무(武)의 덕으로 개혁할 시기를 만나 천리(天理)와 인사(人事)에 순응하는 경우가 아니면 안 되니, 이에 대해서는 더 논의할 것도 없습니다. 이른바 부조의 업을 지킨다는 것은 성스러운 임금과 어진 재상이 법을 창제해서, 정치 기구를 다 갖추고 예악을 융성하게 하면, 후세의 임금과 후세의 어진 이는 다만 그 이루어진 법규에 따라 가만히 팔짱을 끼고 이것을 준수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른바 개혁한다는 것은 나라의 흥성함이 극에 달해 중간에 미약해지고 법이 오래되면 폐단이 생겨, 마음이 안일에 젖어 고루한 것을 하던 대로 따르고, 백 가지 제도가 해이해져 날로달로 어긋나 나라를 다스릴 수 없게 되는데, 이때 반드시 현명한 임금과 현철한 신하가 마음에 느낀 바가 있어 떨쳐 일어나 법도와 기강을 붙들어 세우고, 어리석고 게으른 의식을 일깨우고 구습(舊習)을 깨끗이 씻어서 숙폐(宿弊)를 개혁하여, 선왕의 뜻을 잘 이어서 일대의 규모를 새롭게 한 뒤에, 그 공업(功業)이 선열을 빛내고 후손에게 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조(父祖)의 업을 지키는 것은 비록 평범한 임금과 머릿수나 채우는 신하라 하더라도 잃지 않고 지킬 수 있으므로 부조의 업을 지킴은 쉽습니다. 그러나 개혁하는 것은 높은 식견과 뛰어난 재주가 있지 않으면 할 수 없으므로 개혁은 어려운 것입니다. 부조의 업을 지키기만 해야 할 때 개혁에 힘을 쓴다면, 이것은 병도 없는데 약을 먹는 것과 같아서 도리어 병을 얻게 되는 것이요, 마땅히 개혁을 해야 할 때인데 준수(遵守)에 힘을 쓴다면, 이것은 병에 걸렸는데 약을 물리치는 것과 같아서 가만히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는 격입니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부조(父祖)의 업을 지킨다는 것은 크게 무도한 세상이 아니라면 모두 그대로 할 수 있는 것이지마는, 개혁하는 것은 반드시 그 사람을 기다려야 하니, 비록 개혁을 하고자 하더라도 알맞은 사람이 없다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하기에, 신은 답하기를, “그렇지 않다. 임금이 이 세상에 뜻이 없다면 어쩔 수 없으나, 만일 성심으로 나라가 다스려지기를 원한다면, 누추한 곳에 있는 사람들도 밝게 드러낼 것이니, 어찌 알맞은 사람이 없겠는가.” 하였습니다. 옛날부터 임금께서는 도를 배우고 어진 이를 좋아하며, 창생을 구제할 뜻을 세우고 어진 이를 구했으나 만나지 못해, 마침내 정치를 할 수 없었던 일이 있었던 적이 있습니까. 다만 그 배우는 것이 도가 아니요, 좋아하는 것이 어진 이가 아니므로 뜻은 비록 부지런하나, 도는 더욱 이탈되고 어진 이는 더욱 멀어질 뿐입니다. 비유하건대, 자손이 선인(先人)의 옛집을 지키고 있는 것과 같으니, 해가 묵어서 재목이 썩어 무너지려 하는데, 대목[工師]을 만나지 못하면 개수(改修)할 수 없다고 할 때, 집주인은 천 리 길을 멀다 하지 않고 가서 급히 대목을 구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대목을 얻지 못했다고 핑계 대면서 앉아서 그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겠습니까. 폐정(弊政)을 개혁하는 것도 어찌 이것과 다르겠습니까. 아, 인정(人情)은 옛 풍속에 안일하고, 세습은 전대의 법규에 젖어서 마치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 놓고 거문고를 타려 하고,[膠柱鼓瑟] 나무를 지키고 앉아서 토끼를 기다리는[守株待兎] 것과 같습니다. 눈앞에 아무 일이 없는 것만을 다행으로 여기다 뜻밖에 기이한 재난을 빚어내는 일이 많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깊이 경계하옵소서.
제5장 법선왕(法先王)
신이 생각건대, 비록 마땅히 처리해야 할 시무(時務)를 밝게 안다 하더라도 선왕(先王)의 정치를 회복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비유하건대, 마치 규구(規矩)를 따르지 않고 손으로 방원(方圓)을 그리는 것과 같아서, 마침내 세도(世道)를 만회(挽回)하여 훌륭한 정치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법선왕(法先王)을 다음에 두었습니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루(離婁)의 밝은 시력과 공수자(公輸子)의 교묘한 기술로도, 규구(規矩)를 쓰지 않으면 방원을 그리지 못하고, 사광(師曠)의 밝은 청각으로도 6률을 쓰지 않으면 5음을 바르게 탈 수 없으며, 요순의 도(道)로도 인정(仁政)을 행하지 않으면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릴 수 없다.” 하였다. 《맹자》 아래도 이와 같다.
범씨(范氏)가 말하기를, “이것은 천하를 다스리는 데는 법도(法道)가 없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인데, 인정(仁政)이라는 것은 천하를 다스리는 법도이다.” 하였다.
지금 어진 마음과 어질다는 소문이 있으면서도 백성들이 그 은택을 입지 못하여, 후세에 모범이 될 수 없는 것은 선왕의 도를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어진 마음은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어질다는 소문은 남을 사랑한다는 소문이 사람들에게 들리는 것이며, 선왕의 도란 인정(仁政)을 말한다.” 하였다. ○ 범씨가 말하기를, “제 선왕(齊宣王)은 한 마리의 소가 사지(死地)로 끌려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여, 양을 가지고 대체하라고 하였으니, 어진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양 무제(梁武帝)는 종일토록 단 한 끼의 소사(蔬食)만을 하고, 종묘(宗廟)에서는 밀가루[麫]로 제물(祭物)을 만들어 썼으며, 사형을 시킬 때에는 반드시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렸기 때문에, 천하가 그가 인자(仁慈)한 것을 알았으니, 어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제 선왕때는 제나라가 다스려지지 않았고, 양 무제의 말엽에는 강남(江南)이 크게 어지러웠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는 어진 마음과 어질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선왕의 도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한갓 착하기만 한 것[徒善]으로는 정치를 하기에 부족하고, 한갓 법도만 가지고는 저절로 행해질 수 없다.
주자가 말하기를, “도(徒) 자는 공연(空然)하다는 뜻과 같다. 그 마음에는 착한 것을 가지고 있으나 정치에 베풀지 않는 것을 한갓 착하기만 한 것[徒善]이라 하고, 그 정치에 법도를 베풀기는 하나 어진 마음이 없는 것을 한갓 법도 만으로[徒法]라고 한다. 정자가 일찍이 말하기를, ‘정치를 하는 데는 요컨대 반드시 기강(紀綱)과 문장(文章)이 있고, 권형(權衡)을 삼가고 도량형(度量衡)을 살피며, 법을 읽고 물가(物價)를 고르게 하는 것까지 하나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하고, 또 말하기를, ‘반드시 관저(關雎)와 인지(麟趾)의 뜻이 있어야만 주관(周官)의 법도를 행할 수 있다.’ 하였으니, 이 말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하였다.
높아지려면 반드시 언덕으로 올라가야 하고, 낮아지려면 반드시 개울과 못으로 내려가야 하니, 정치를 하면서 선왕의 도를 따르지 않는다면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
주자가 말하기를, “언덕은 본래 높고, 개울과 못은 본래 낮으니, 높아지거나 낮아지려고 하는 사람이 이것을 통하여 해 나가면 힘은 적게 들고 성공은 많아질 것이다.” 하였다.
규구(規矩)는 방원(方圓)의 극치이며, 성인은 인륜의 극치이다. 임금 노릇을 하려면 임금의 도를 다해야 하고, 신하 노릇을 하려면 신하의 도를 다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요순을 모범으로 삼아야 할 뿐이다. 순이 요를 섬기던 방법으로 임금을 섬기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기 임금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요, 요가 백성을 다스리던 방법으로써 백성을 다스리지 않으면 그 사람은 백성을 해치는 사람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요순을 모범으로 삼아서 군신의 도를 다하는 것은, 규구를 사용하여 방원(方圓)의 극치를 다하는 것과 같다.” 하였다.
부열(傅說)이 말하기를, “사람이 많이 들으려고 하는 것은 오직 일을 세우기 위한 것인데, 옛 가르침을 배워야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일을 하는 데 옛 가르침을 본받지 않고도 오래갈 수 있다는 말을 저[說]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였다. 《서경(書經)》 〈상서(商書) 열명(說命)〉
채씨가 말하기를, “옛 가르침은 옛 성스러운 임금의 교훈이니, 몸을 닦고 천하를 다스리는 도를 기재한 이전(二典 요전(堯典)ㆍ순전(舜典))과 삼모(三謨 대우모(大禹謨)ㆍ고요모(皐陶謨)ㆍ익직(益稷)) 같은 것이다. 옛 가르침을 본받지 않고도 길이 세상이 다스려지고 오래 편안할 수 있다는 말을 열(說)이 듣지 못했다는 것은 절대로 이러한 이치가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 정자가 말하기를, “선왕(先王)의 세대는 도로써 천하를 다스렸고, 후세에는 법으로 천하를 유지해 나갈 뿐이다.” 하였다. ○ 그는 또 말하기를, “삼대(三代)와 같은 다스림을 후세에도 분명코 회복할 수 있으나, 삼대와 같이 다스리지 못하는 것은 결국 도에 구차하기 때문이다.” 하였다.
신이 생각건대, 뒷세상의 임금이 삼대와 같이 성대하게 다스리는 것을 사모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마는, 다만 고금이 다르기 때문에 감히 그대로 시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명도(明道) 선생의 차자(箚子)에는 삼대를 회복할 수 있다고 극론하였는데, 그 말이 모두 의거할 만한 사실을 모은 것이라 그것을 근거로 삼아 시행할 수 있기 때문에, 삼가 다음에 기록하였습니다.
정자가 신종(神宗)에게
차자(箚子)를 올려 아뢰기를, “신이 생각건대, 성인이 법을 만드는 것은 모두 인정에 근본하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연구하기 때문에, 비록 이제(二帝)ㆍ삼왕(三王)이라도 때에 따라 개혁하고 일에 따라 조정하는 제도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치하는 큰 근본과 백성을 다스리는 요체가 되는 도(道)는 앞 성인이나 뒷 성인들이 어찌 한 가지, 한 꿰미로 연관되지 않겠습니까. 대개 고금(古今)과 치란(治亂)을 논할 것 없이 만약 생민을 다스리는 데 궁한 것이 있다면, 성스러운 임금의 법으로써 개혁할 수 있습니다.
고금과 치란을 논할 것 없이 만약 생민을 다스리는 데 궁한 것이 있다면, 오직 성스러운 임금의 법으로써 그 폐(弊)를 고칠 수 있음을 말한다. 후세에서도 능히 이 도를 다한다면 크게 다스려질 것이고, 부분적으로 쓰면 세상이 조금은 안정될 것이니, 이것은 역대에 분명하게 실증(實證)된 것입니다. 지금 만일 한갓 옛것에 얽매이기만 하여 오늘날에 이것을 시행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이름에만 따르고자 하고 그 실질적인 시행을 그만둔다면, 이것은 비루한 선비의 소견일 것이니 어찌 치도(治道)를 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혹시 오늘날의 인정이 모두 예와는 다르니 선왕이 하던 업을 지금 회복할 수는 없다고 하여, 당장 눈앞에 보이는 편리한 것만 좇고 고원(高遠)한 것에는 힘쓰지 않는다면, 이것은 아마 크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이론이 아닐 것이니, 현재의 지극한 폐단을 구제하지 못할 것입니다. 의복ㆍ음식이나 궁실(宮室)ㆍ기용(器用) 같은 것이야 오늘날에 있어서 편리하게 하면 되지만, 법도를 어찌 갑자기 개혁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바꿀 수 없는 천리(天理)에 사람이 의존해 사는 것은 고금에 차이가 없습니다. 성인이 반드시 해야 한다고 한 것은 본래 다 시행할 수 있지만 이것을 행하는 데는 선후가 있고 이것을 시행하는 데는 완급이 있습니다. 계획을 세워 운용하거나 세세한 일까지 타당하도록 주선(周旋)하는 것은 조정에서 강구하고 실시하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옛날에는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스승과 벗을 기다려 그 덕업(德業)을 성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순(舜)ㆍ우(禹)나 문왕(文王)ㆍ무왕(武王)의 성인도 모두 누군가를 따라서 배운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사부(師傅)의 직(職)이 닦아지지 못하고, 우신(友臣)의 의(義)가 밝게 드러나지 않아 덕을 높이고 선을 즐기는 풍조가 천하에 성하지 못하니, 이것은 고금에 차이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늘이 백성을 낳아 임금을 세워 그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되, 반드시 일정한 생업을 갖게 해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면 경계(經界)가 바르지 아니할 수 없고, 농토가 고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이 위정(爲政)의 큰 근본입니다. 당(唐)나라에는 그래도 식구에 따라 전지(田地)를 나누어 주는 제도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법이 싹 없어져서 부자(富者)들이 주(州)와 현(縣)을 차지해도 막지 못하며, 가난한 자가 뿔뿔이 흩어지고 굶어 죽어도 구휼하지 않습니다. 다행히 백성이 많다 하여도 의식(衣食)이 부족한 것은 끝이 없고, 태어나는 아이들은 점점 많아지는데, 이에 대한 대책이 없다면 의식은 날로 줄어 전전하다 죽는 자가 날로 많아질 것이니, 이것은 치란(治亂)의 기틀입니다. 그러니 어찌 그에 대한 대책을 차츰 강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 또한 고금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정(政)ㆍ교(敎)가 향리(鄕里)에서 시작되었고, 법이 동네[比閭]에서 일어나 족(族)ㆍ당(黨)ㆍ주(州)ㆍ향(鄕)ㆍ찬(酇)ㆍ수(遂) 같은 구역들이 서로 연속하여 통치(統治)하자, 백성들이 서로 편안하고 화목해져서 형법을 범하는 이가 드물고 염치를 잘 챙겼습니다. 이것 또한 인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으로서 이렇게 하면 성과가 있는 것은 또한 고금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의 교육은 선왕이 인륜(人倫)을 밝혀 천하를 교화시키기 위한 것인데, 지금은 학교가 폐지되어 도덕이 순일하지 못하고 향사(鄕射)가 없어져서 예의가 일어나지 못하며, 향리에서 추천된 선비가 나오지 아니하여 행실이 닦이지 못하고 뛰어난 선비가 학교에서 길러지지 않아 인재가 많이 사라졌으니, 이런 분명한 사실도 고금에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백성들이 9년 먹을 양식이 있어야 했으니, 3년 먹을 양식이 없다면 나라가 나라 꼴이 못 된다고 여겼습니다. 신이 천하를 관찰해 보건대, 경작하는 사람은 적고 먹는 사람은 많으며, 지력(地力)은 부족하고 사람의 노력은 부지런하지 못해, 비록 부자(富者)나 세력 있는 종실(宗室)이라 해도 여유분을 비축해 두는 일이 드뭅니다. 하물며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혹시 한 주(州)나 한 현(縣)에 어떤 해에 흉년이 들기라도 하면 도둑이 횡행하고 주린 자가 길에 가득 찹니다. 그러니 만약 불행히도 천 리가 재해를 입어서 여러 해 동안 흉년이 든다면 조정이 무슨 대책으로 이에 대처할지 알 수 없으니, 그 근심은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어찌 옛날에는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 하여 요행을 가지고 믿을 곳을 삼을 수 있겠습니까. 마땅히 점점 옛 제도를 따라서 밭을 백성에게 고루 나누어 주어 농사에 힘쓰도록 하고 공가(公家)에서나 사가(私家)에서 서로 곡식을 저장할 방법을 마련하여 흉년에 대비해야 할 것이니, 이것 또한 고금에 차이가 없습니다. 성인이 하늘을 받들고 사물을 다스리는 도는 육부(六府)에 있으며, 육부에서 맡은 것은 오관(五官)에서 다스려지고, 산(山)을 맡고 못[澤]을 맡은 관청에서 각각 금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만 가지 물건이 풍부하고 재용이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관이 닦아지지 않고, 육부가 다스려지지 않아, 쓰는 데 절도가 없고, 취하는 데 때가 없으니, 어찌 사물이 그 본성을 잃을 뿐이겠습니까. 나무를 얻겠다고 천하가 다 벌거숭이가 되었는데도 도끼로 마구 쳐 내고 거기에다가 점점 더 침범해도 금하지 않아, 시내와 못에서는 고기를 다 잡아들이니, 생명의 씨가 마르고 나면 장차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지극히 곤궁해진 폐단입니다. 오직 우관(虞官)의 직책을 닦아서 이런 것을 잘 길러 가게 하면 변통하여 오래갈 수 있는 형세가 있을 것이니, 이것 또한 고금에 차이가 있는 게 아닙니다. 옛날에는 관혼상제(冠婚喪祭)와 거복기용(車服器用)의 등차가 구분되어 있어서 감히 품계를 넘지 못하였기 때문에, 재용이 넉넉하고 백성들은 한결같은 마음을 지녔었는데, 지금은 예제(禮制)가 닦이지 않고 사치를 숭상하여 경대부의 집안에서도 예(禮)에 맞게 행동하지 못하며, 장사치들이 삼공(三公)을 넘봐도 예제가 인정을 단속하지 못하고 명수(名數)가 귀천을 분명히 구별하지 못합니다. 정해진 분수가 없으면 간사한 것이나 속이는 것이나 약탈하는 것을 사람마다 실컷 욕심대로 하고야 말 것이니, 어찌 멈추는 일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다툼이 일고 혼란스러워지는 길입니다. 선왕의 법을 본받아 잘 강구하여 덜 것은 덜고 더할 것은 더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도 또한 고금에 차이가 있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다만 그 실마리일 뿐입니다. 신은 특히 그 큰 실마리를 논하였습니다. 살피건대, 삼대의 법은 반드시 시행할 만한 효험이 있으니, 그 강조(綱條)와 도수(度數)와 시위(施爲)와 주조(注措)의 도 같은 것을 잘 살펴 행하면, 이것은 반드시 경전의 가르침에 비추어 보아 합당하고, 인정에 베풀어 보아 마땅하니, 이것은 분명히 정해진 이치입니다. 어찌 한갓 현실성 없어 아무 소용없는 설이겠습니까. 살피건대 밝은 성상께서는 헤아려 선택하소서.” 하였다.
신이 생각건대, 삼대의 도를 오늘날에도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은 정자의 논의에서 상세히 다루었습니다. 다만 유속(流俗)에 가려져 문무(文武)의 정치를 시행하지 못하고, 빈말이 되고 말아 상하 수천 년간 쓸쓸한 밤이 지속되었으니 기가 막힐 일입니다. 어진 정사[仁政]를 꼭 시행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성현의 말이요, 옛날의 도(道)를 회복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속된 무리의 말입니다. 당대의 임금이요 세상의 주인인 사람이 성현의 말을 믿지 않고 이속(俚俗)의 말만 깊이 믿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스스로 도를 향하려는 뜻이 없고, 또 어진 이를 좋아하는 정성이 없어서 그런 것이오니, 하던 대로 하기를 즐기고 진작(振作)하기를 꺼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다행히 임금이 옛날의 도를 행하려고 유신(儒臣)을 친근히 하여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속된 무리들의 비방이 국이 끓듯 끓어오르고 매미 울듯 시끄럽게 떠들어 대어 반드시 저지하여 무너뜨린 뒤에야 그만둡니다. 임금이 도를 독실하게 믿지 않고 어진 이를 깊이 알고자 하지 않는다면 어찌 본심을 지켜 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개 속된 무리의 고질은 갑자기 고치기 어렵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옛날의 도를 시행한다면, 백성들의 마음이 불안하여 처음에는 도리어 사리를 거스르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필연적인 사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구애되어 마침내 일할 수 없다면 떨어지기만 하는 세도(世道)를 언제나 만회할 수 있겠습니까. 비유하건대, 냉질(冷疾)에 걸린 사람이 가슴에 열(熱)이 날 때 냉질을 다스리는 약을 조금 쓰면 속이 답답하고 막히는 증세가 더욱 심해지고, 열이 날 때 약성이 차가운 약을 마시면 뱃속에 냉기가 쌓여 치료할 수가 없어서 결국 죽고 마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아, 소위 후세의 선비라는 자들이 읽는 것은 전(典)ㆍ모(謨)ㆍ고(誥)ㆍ훈(訓)이요, 사모하는 것은 공자ㆍ맹자ㆍ정자ㆍ주자이니 누가 감히 성인을 비난하는 말을 입 밖에 내겠습니까마는 그러나 처신하거나 정치하는 데 이르러서는 크게 그렇지 않음이 있습니다. 한번 성현의 가르침을 가지고 나라에 베풀고자 하면 바로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종족들도 깜짝 놀라 이리 배척하고 저리 억눌러 예측할 수 없는 화가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생각합니다. 만일 일상적인 것에 안주하고 옛것을 지키는 이론을 들으면, 이구동성으로 찬동하고 화답하면서 포백(布帛)이나 숙속(菽粟)처럼 실속 있는 것에 비하는 듯하니, 과연 이와 같다면, 성현이 헛말을 만들어 후세 사람을 속여 오훼(烏喙 독약)를 맛있는 음식이라고 칭찬하고, 물과 불을 밟을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향리의 거칠고 더러운 말이 곧 공평하고 적실해서 만세에 전해도 폐단이 없다고 한다면, 육경(六經)을 읽을 게 뭐며, 오교(五敎)를 베풀 게 무엇이겠습니까. 아, 인신(人臣)이 옛날의 도를 비난하고 훼방하는 것은 비열한 사람들의 본심인데, 임금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왜냐하면 저 비열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작록(爵祿)이요, 탐내는 것은 권세요, 구하는 것은 뇌물이요, 즐거워하는 것은 사치와 음란함이요, 편하게 여기는 것이 안일함입니다. 때를 노려서 벼슬길에 오르고는 지기(志氣)가 충만해져서 구차하게 당장 눈앞에 화패(禍敗)가 보이지 않는 것만을 다행으로 여길 뿐이니, 장래 종사(宗社)에 대한 근심을 그들이 어찌 근심거리로 삼겠습니까. 진실로 임금이 삼대(三代)의 다스림을 회복하는 데 뜻을 두고, 어진 신하를 구해서 정사를 맡긴다면, 그들은 작록을 보존할 수 없을 것이고, 기강을 잡는다면 그들은 권세를 굳힐 수 없을 것이며, 조정이 맑고 밝아지면 뇌물을 받을 수 없을 것이고, 예의로써 풍속을 이룬다면 저들만 음란하고 사치스러울 수 없을 것이며, 공업(功業)을 살펴서 내친다면 오래도록 안일(安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임금이 옛날의 도를 시행하는 것이 소인에게는 바로 짐독(鴆毒)이 되는 것입니다. 어찌 마음을 같이하고 힘을 다하여 고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간혹 어진 사대부라 하더라도 식견이 천박하고 짧아서 편안한 것만 좋아하는 자가 있는데 그들이라도 따라 도우면 더욱 임금에게 신임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선비로서 재주와 도를 품고 경세제민(經世濟民)할 수 있는 이는 또 모두 자신을 알아볼 사람을 기다리며 재주를 감추고서 함부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임금께 알려질 수가 없습니다. 조정에서 옛날의 도를 말할 수 있는 이도 뜻만 크고 야무지지 못한 부류에 불과할 뿐이니, 어찌 치도(治道)의 본체를 밝히거나 뭇사람들의 지껄임을 제지시켜, 임금의 마음이 쏠리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옛날의 도를 끝내 회복하지 못하는 소이입니다. 반드시 임금께서 깊이 생각하고 패연히 결단하여 반드시 학문이 밝고 행동이 고상하며 재주와 식견을 겸비한 선비를 얻어서 보좌하게 하여 해마다 그해의 공효가 있게 하여 속된 의논이 그사이에 개입되지 않게 한 연후에 의심하고 비난하던 자들이 차츰 믿게 될 것이고, 비방하고 조소하던 자도 차츰 복종하게 될 것이며, 시기하고 질투하던 자도 차츰 복종하게 되어서, 옛날의 도를 거의 실행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엎드려 살피건대, 전하께서는 잘 살펴 생각하옵소서.
제6장 근천계(謹天戒)
신이 생각건대, 임금이 하늘을 섬기는 것은 마치 아들이 아버지를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항상 이에 대하여 계속 생각하고 잊지 않아서, 조금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인사(人事)가 이미 닦아지면 하늘의 경계를 더욱 공경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근천계(謹天戒)를 다음에 놓았습니다.
착한 사람에게 복을 내리고 나쁜 사람에게 화(禍)를 내리는 이치에 대하여
이윤(伊尹)이 말하기를, “아, 하늘은 친(親)한 이가 없고 잘 공경하는 사람만을 친하게 대하며, 백성은 일정하게 그리워하는 이가 없고 어진 사람을 그리워하며, 귀신은 일정하게 흠향하는 이가 없고 정성을 다하는 사람의 제사를 흠향하니, 임금의 자리란 어려운 것이다.” 하였다. 《서경(書經)》 〈상서(商書) 태갑(太甲)〉
채씨(蔡氏)가 말하기를, “경(敬)과 인(仁)과 성(誠)은 각각 그 주된 대상에 따라 말한 것이다. 하늘에 대해 경(敬)으로 말한 것은 하늘은 이치가 있는 곳이라 동정(動靜)ㆍ어묵(語默)에 털끝만큼의 거만함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백성에 대해 인(仁)으로 말하는 것은 백성은 임금이 아니고 누구를 추대하겠는가. 환과고독(鰥寡孤獨)이 모두 임금이 돌보아야 할 바이기 때문이다. 귀신에 대해 성(誠)으로 말하는 것은 정성스럽지 아니하면 물(物)이 없는지라, 여기에서 정성이 선 뒤라야 저기에서 신(神)이 이르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를 마땅히 이와 같이 다해야 하는 것이니, 임금이 천자의 자리에 있으면서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 이는 나누어 말하면 셋이요, 합하여 말하면 하나의 덕(德)일 뿐이다.” 하였다.
덕(德)이 순일하면 움직이는 곳마다 길(吉)하지 않은 곳이 없고, 덕이 두셋으로 뒤섞이면[僭] 움직이는 곳마다 흉하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오직 길하고 흉한 것이 어긋나지 않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으며, 오직 하늘이 재앙과 상서(祥瑞)를 내리는 것은 덕에 달려 있다. 《서경(書經)》 〈상서(商書) 함유일덕(咸有一德)〉 ○ 역시 이윤(伊尹)의 말이다.
채씨(蔡氏)가 말하기를, “두셋이란 것은 뒤섞인 것이요, 뒤섞인다[僭]는 것은 어긋난다는 뜻이다.” 하였다.
우(禹)가 말하기를, “도[迪]를 따르면[惠] 길하고[吉], 역(逆)을 따르면 흉할 것이니, 이는 그림자나 메아리와 같은 것이다.” 하였다. 《서경(書經)》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
채씨(蔡氏)가 말하기를, “혜(惠)는 순하다는 뜻이요, 적(迪)은 도(道)라는 뜻이며, 역(逆)은 도를 거스르는 것이다. 도를 따르고 역(逆)을 따른다는 것은 선을 따르고 악을 따른다는 말과 같다. 천도는 두려워할 만하니, 길흉이 선악에 응하는 것이 마치 그림자와 메아리가 형상과 소리에서 나오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한다.” 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오직 문왕(文王)은 겁이 많고 공손해서 상제(上帝)를 밝게[昭] 섬겨 많은 복을 오게 하니[懷], 그 덕이 사특하지[回] 않아서 방국(方國) 받으셨도다.” 하였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대명(大明)〉
주자가 말하기를, “겁이 많고 공손한 것은 공경하고 조심하는 모습이니 이른바 경(敬)이다. 문왕의 덕은 여기서 성해졌으며, 소(昭)는 밝음이요, 회(懷)는 오게 함이며, 회(回)는 사특한 것이요, 방국(方國)은 사방에서 와서 따르는 나라이다.” 하였다. 이것은 착한 것으로 복을 받는 것을 말한 것이다.
성(成)ㆍ탕(湯)이 고(誥)를 지어 이르기를, “하왕(夏王)이 덕을 멸하고 위세를 부려 만방(萬方)의 백성에게 잔학한 일을 하였다. 하늘의 도는 선한 이에게 복을 주고, 음탕한 이에게 화를 주는 지라, 하(夏)나라에 재앙을 내려서 그 죄를 밝힌 것이다.” 하였다. 《서경(書經)》 〈상서(商書) 탕고(湯誥)〉
채씨(蔡氏)가 말하기를, “걸(桀)이 음탕하고 잔학하였기 때문에, 하늘이 재앙을 내려 그 죄를 밝혔다. 살피건대, 당시에 필시 재변(災變)이 있었으니, 《국어(國語)》 〈주어(周語)〉에 이른바, ‘이천(伊川)과 낙수(洛水)가 다 마르자 하(夏)나라가 망하였다.’ 하는 종류와 같다.” 하였다. 이것은 음탕한 짓을 하여 화를 받은 것을 말한다.
이상은 착한 이에게는 복을 주고 음탕한 이에게는 화를 내리는 이치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재앙을 만나 수신(修身)하는 도에 대하여
○ 윤후(胤侯)가 말하기를, “선왕(先王)이 하늘의 경계를 삼갔도다.[謹] 신하가 떳떳한 법도[常憲]를 세우고 백관(百官)이 그 직무를 닦아서 보필하였으므로 그 임금이 밝고 밝도다.” 하였다. 《서경(書經)》 〈하서(夏書) 윤정(胤征)〉
채씨(蔡氏)가 말하기를, “삼간다는 것은 두려워하고 자기를 반성하여 어떤 재변을 없애는 것이요, 떳떳한 법도라는 것은 법을 받들고 직무를 닦아서 이바지하는 것이다. 임금이 위에서 천계(天戒)를 삼간다면 신하는 아래에서 떳떳한 법도를 세워서 백관들이 각각 그 직무를 닦아서 임금을 보좌한다. 그러므로 임금은 안으로 덕(德)을 잃지 않고 밖으로 정사를 그르침이 없어서 밝고 밝은 임금이 된다.” 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하늘이 노하는 것을 공경하여 감히 놀며 즐기지 말 것이며, 하늘의 변하는 것[渝]을 공경하여 감히 내키는 대로 하지 말라. 높은 하늘은 지극히 밝아서 네가 가는[王] 곳을 다 보며, 높은 하늘은 지극히 밝아서[旦] 네가 이리저리 노는[衍] 곳을 지켜본다.” 하였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판(板)〉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유(渝)는 변한다[變]는 말이요, 왕(王)은 간다는 뜻과 통하니 나가서 가는 곳이 있음을 말한다. 단(旦)도 역시 밝은 것이다. 연(衍)은 방종함을 뜻한다. 하늘이 총명하여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니, 공경하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 동씨(董氏)가 말하기를, “사람이 하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은 곧 천지와 함께 유통하고 왕래하며 상응(相應)한다. 그러므로 천인(天人)이 서로 어울릴 때가 매우 두려워할 만하다. 국가가 장차 도를 잃어버리려 하면 하늘이 이에 먼저 재해를 내려 경고하고, 스스로 반성할 줄 모르면 또 괴이한 일을 일으켜서 경고하여 두렵게 하며, 그래도 그 변화할 줄을 모르면 손상과 멸망이 이른다. 이로써 하늘의 마음이 임금을 사랑하여 그 난을 그치게 하려는 것을 알 수 있다. 크게 무도(無道)한 세상이 아니라면 하늘은 이를 붙들고 지탱하여 안전하게 하고자 하니, 일은 오직 애써 노력하는 데 있을 뿐이다.” 하였다. ○ 광형(匡衡)이 말하기를, “하늘과 사람 사이에 좋은 기운과 나쁜 기운이 서로 통하며, 선과 악이 서로 밀어 일이 아래에서 일어나면 상(象)이 위에서 움직이고, 음양(陰陽)의 이(理)가 각각 거기에 감응하여 음이 변하면 정(靜)이 동(動)하고, 지진(地震) 같은 것이다. 양이 가려지면 밝은 것이 어두워지며, 일식(日食) 같은 것이다. 수재와 한재가 그 종류에 따라 일어난다.” 하였다.
순(舜) 임금이 말하기를, “강수(降水) 강(洚)이라고도 쓴다. 가 나를 경계하게 하도다.” 하였다. 《서경(書經)》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
진씨(眞氏)가 말하기를, “살피건대, 맹자의 말에 ‘물이 역행하는 것을 강수(洚水)라 한다.’ 하였는데, 물이 역행하여 범람하는 재앙은 비록 요(堯) 때에 일어났으나 순이 왕위를 대신 맡았을 때에도 그 해(害)는 오히려 그치지 않으므로, 순이 스스로 이르기를, ‘이것은 하늘이 나에게 경계하게 하는 것이다.’ 하였으니, 성스러운 황제와 밝은 왕이 하늘을 두려워하고, 자기를 반성하는 유가 이와 같다. 그 뒤에 성탕(成湯)도 가뭄이 극심해지자 또 여섯 가지 일을 가지고 스스로 자책하여 말하기를, ‘정사가 법도에 맞지 않았던가, 백성들을 모질게 부렸던가, 궁실이 높았던가. 여인들의 청탁이 심하였던가, 뇌물을 행하였던가, 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던가,’ 하였다. 성탕 같은 성스러운 임금에게 어찌 이런 일이 있었을까마는 그래도 몸을 반성하여 스스로를 질책함이 이와 같이 지극하였으니, 탕(湯)의 마음은 곧 순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한 무제(漢武帝) 때에 이르러 공손홍(公孫弘)은 이에 대하여 말하기를, ‘요(堯)가 홍수를 만났을 때 우(禹)에게 다스리게 하였으니, 순이 수재를 당하였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탕이 가뭄을 당한 것도 걸(桀)의 영향이 남아 있어서이다.’ 하였다. 순은 수재를 가지고 스스로를 경계하였는데 공손홍은 이것을 요에게 돌렸고, 탕은 가뭄을 가지고 스스로를 책하였는데 공손홍은 이것을 걸에게 돌렸다. 이렇게 간사하고 아첨하는 마음은 그 임금을 그르쳐 하늘의 경계를 업신여기게 함이 모두 이와 같으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하였다.
주공(周公)이 말하기를, “은왕(殷王)인 중종(中宗)은 엄숙하고 공손하며 공경하고 두려워하여 하늘의 명으로 스스로를 단속했다.” 하였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무일(無逸)〉
진씨(眞氏)가 말하기를,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정성을 다할 수 있었기 때문에 천명으로써 자신을 단속한 것을 말한다.” 하였다. ○
《사기(史記)》에 이르기를, “태무(太戊)가 즉위하고 이척(伊陟)이 정승이 되니, 아침에 뽕나무 뿌리에서 싹이 나 하루저녁에 크기가 한 아름이 되었다. 태무가 놀라서 이척에게 물으니, 이척이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요사한 것은 덕을 이기지 못한다 합니다. 임금께서 정사를 하는데 무슨 부족한 점이 있는 것 같으니, 부디 덕을 닦으시옵소서.’ 하였다. 태무가 이를 따르자, 상서롭지 못한 뽕나무가 말라 죽고 은(殷)나라의 도가 다시 일어났다. 태무를 중종(中宗)이라고 호칭하였다.” 하였다.
한(漢)나라 선제(宣帝)의 조서(詔書)에 이르기를, “내가 육예(六藝)에 밝지 못하여 대도(大道)에 답답하며, 음양(陰陽)과 풍우(風雨)가 순조롭지 못하니, 관리와 백성 가운데 몸을 닦아서 바르게 하고, 문학에 통하여 선왕(先王)의 술(術)에 밝은 이를 널리 천거하라.” 하였다. 《한서(漢書)》
진씨(眞氏)가 말하기를, “임금이 경(經)에 밝지 못하고 도를 알지 못하면,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지 못한다. 그리고 한 가지 마음이라도 불순한 것이 있거나, 한 가지 움직임이라도 중도(中道)를 잃는 것이 있으면 모두 음양의 화(和)를 범하는 것이다. 후세의 임금들 중에는 이것을 아는 이가 거의 없는데, 선제(宣帝)는 홀로 이것을 아니, 탁월한 견해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왕의 술에 밝은 이를 천거하였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대개 몸을 바르게 하고 도에 밝은 선비는 진실로 세상에 드물지만, 임금으로 하여금 과연 성의를 가지고 이들을 구하게 한다면, 어찌 한둘이라도 그럴 듯한 사람이 나와 임금을 위해 쓰이지 않겠는가. 당시를 두루 상고해 볼 때 오직 왕길(王吉)만이 다소나마 만세의 계책을 세워, 삼대의 융성할 때와 같이 현명한 임금으로 만들어 보려고 하였으나, 선제가 그만 오활(迃闊)하게 보고 말았다. 당시 자사(子思)나 맹자(孟子)가 있었다 하더라도 인의(仁義)를 구할 뿐이요, 공리(功利)에는 급급(汲汲)하지 않았을 것이니, 임금과 서로 어긋나 맞지 않음이 더욱 심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몸을 바르게 하고 도를 밝히는 선비가 이 뜻을 잘 살펴본다면, 어찌 가볍게 함부로 임금을 위해 나가려 하겠는가.” 하였다.
이상은 재앙을 만나 수성(修省)하는 도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환난을 예방하는 뜻에 대하여
○ 성왕(成王)이 말하기를, “옛날 크게 꾀할 때는 어지러워지기 전에 단속하고, 위태로워지기 전에 나라를 보전하였다.” 하였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주관(周官)〉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위태롭게 여기는 것은 그 지위를 편안하게 하는 방법이요, 망할까 걱정하는 것은 그 몸을 보존하는 방법이며, 어지러워질까 염려하는 것은 그 다스려짐이 있기를 생각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편안해도 위태로운 것을 잊지 않고, 보존되어도 망하는 것을 잊지 않고, 다스려져도 어지러운 것을 잊지 아니하기 때문에, 몸이 편안해지고 나라가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다.” 하였다. ○ 정자가 말하기를, “성인이 경계하는 것은 반드시 성할 때인데, 사람은 그 성할 때에 경계할 줄을 모른다. 그러므로 안일하고 부유한 데 젖으면 교만과 사치가 생겨나며, 한가하고 방자한 것을 즐기면 기강이 무너지며, 화란(禍亂)을 잊어버리면 죄악이 싹튼다. 그러므로 점점 음탕해져서 난(亂)이 이르는 줄도 알지 못하게 된다.” 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하늘이 장맛비를 내리기 전에, 뽕나무 뿌리[桑土]를 土의 음은 두(杜)이다. 캐어 가지고, 창문을 단단히 얽어매어 대비하면, 이제 너희 백성들이 누가 감히 나를 업신여기겠는가.” 하였다. 《시경(詩經)》 〈빈풍(豳風) 치효(鴟鴞)〉
주자가 말하기를, “태(迨)는 미친다는[及] 뜻이요, 철(徹)은 취한다는 뜻이며, 상두(桑土)는 뽕나무 뿌리이며, 주무(綢繆)는 얽어맨다는 뜻이며, 유(牖)는 새집의 기(氣)가 통하는 곳이며, 호(戶)는 그 출입하는 곳이다. 새가 되어 말하기를, ‘내가 하늘이 아직 장맛비를 내리기 전에 날아가서 뽕나무 뿌리를 가져다가 집의 틈을 얽어매어 견고히 하여 장마 때의 근심을 덜게 한다면, 백성들이 누가 감히 나를 업신여기겠는가.’라고 하여 깊이 왕실을 사랑하여 그 환난을 예방한다는 뜻을 비유하였다. 공자께서 찬(贊)하시기를, ‘이 시를 지은 이는 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능히 그 나라를 다스린다면, 누가 감히 그를 업신여기겠는가.’ 하였다.” 하였다.
이상은 환난을 예방하는 뜻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신이 생각건대, 사람은 천지의 마음입니다. 임금이 능히 선정을 행하여 화(和)한 기운이 위에 감응하면, 아름다운 상서[祥]가 이르고, 무도(無道)한 일을 많이 행하여 괴이한 기운이 위에 감응되면, 재앙이 일어나니, 하늘에 무슨 마음이 있겠습니까. 모두 사람이 부른 것입니다. 다만 그 사이에 떳떳한[常] 것도 있고 변하는[變] 것도 있는데, 선은 상서를 오게 하고, 악은 재앙을 오게 하는 것이 이(理)의 떳떳한 것이요, 선해도 상서를 보지 못하거나 악해도 재앙을 보지 않는 것은 이치[數]의 변괴(變怪)입니다. 성스러운 임금이 재앙으로 인하여 자기 몸을 닦고 반성하면 재앙이 변하여 상서가 되고, 용렬하고 어두운 임금이 재앙이 오지 않는다 하여 묵은 관습에 젖어 있으면 도리어 재앙을 초래하게 되는데, 이것은 필연적인 사세입니다. 하늘은 진실에 응하지, 꾸밈에 응하지 않으니, 진실한 마음으로 진실한 덕(德)을 닦으면 위태로운 것을 편안하게 할 수 있고, 어지러운 것을 다스릴 수 있으며, 멸망하는 것을 보존할 수 있으니, 어떤 재앙인들 그치게 하지 못하겠습니까. 그러나 오직 밖으로는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안으로는 몸을 닦고 반성하는 진실한 덕이 없기 때문에, 하늘의 노여움을 돌이킬 수 없고, 나라의 형세를 구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임금은 국가가 한가한 때에도 마땅히 미리 덕정(德政)을 닦고 깊이 환난을 막아서 오래 다스리고 영구히 편안한 계책을 삼아야 하니, 하물며 재앙과 변고가 생겨 경계하는 경우이겠습니까. 보통 사람의 마음은 걱정이 눈앞에 나타나면 조금 삼갈 줄을 알지만, 생각지 못한 환난이 생기면 대체로 경계할 줄 모릅니다. 그러므로 재변(災變)이 처음 일어날 때를 당하면 비록 평범한 임금이라도 경동(驚動)할 줄 알지마는, 재변이 자주 일어나는데 당장 반응이 나타나지 않으면 이것에 익숙해져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요사스러운 기운의 반응이 늦기도 하고 빠르기도 한데, 빠르면 화(禍)가 적고 늦으면 화가 크다는 것을 너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화란이 이미 일어나 멸망의 형상이 나타난 뒤에는 비록 마음을 혁신하고 덕을 닦고자 하여도 이미 소용이 없습니다. 천고 이래로 실패한 자취가 서로 일치하니 슬퍼할 만한 일입니다. 아, 성탕(成湯)은 자책하여서 천리에 큰비가 내렸고, 태무(太戊)는 선을 좇아서 상서롭지 못한 뽕나무가 말라 죽었으니, 이것은 진실한 마음으로 진실한 덕을 닦은 효험(效驗)입니다. 엎드려 살피건대, 전하께서는 이것을 본받으시옵소서.
제7장 입기강(立紀綱)
신이 생각건대, 위의 6장에서는 위정(爲政)의 근본과 위정의 도구에 대하여 자세히 논의하였습니다. 이 장 이하에서는 위정하는 일에 대하여 논하겠습니다. 정치하는 일은 기강(紀綱)을 세우는 것을 우선으로 삼습니다.
기강을 세워야 함에 대하여
훌륭한 의사는 사람이 수척(瘦瘠)하거나 비대한 것을 보지 않고 그 맥을 짚어 보아 병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며, 천하를 잘 경영하는 이는 천하의 안위(安危)를 보지 않고 그 기강의 치란(治亂)을 살핀다. 《창려문집(昌黎文集)》
한씨(韓氏 한유(韓愈))가 말하기를, “천하가 사람으로 놓고 보면 안위는 비대한 것과 수척한 것이라 할 수 있고, 기강은 맥이라 할 수 있다. 맥이 병들지 않으면 수척하다 하더라도 해롭지 않고, 맥이 병들면 비대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죽는다. 이 말의 의미를 환히 아는 사람은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 것이다. 그러므로 사지(四支)에 아무 탈이 없더라도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니 오직 맥이 어떠하냐에 달려 있을 뿐이요, 사해(四海)가 무사하더라도 자랑할 것이 못 되니, 오직 기강이 어떠하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하였다. ○ 주자가 말하기를, “이른바 강(綱)이라는 것은 그물에[網] 벼리가 있는 것과 같고 이른바 기(紀)라는 것은 실에 실마리가 있는 것과 같다. 그물에 벼리가 없으면 스스로 펼 수가 없고, 실에 실마리가 없으면 스스로 풀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한 집에는 한 집의 기강이 있고 한 나라에는 한 나라의 기강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향(鄕)이 현(縣)의 통솔을 받고 현이 주(州)의 통솔을 받고, 주가 노(路)의 통솔을 받고, 노가 대성(臺省)의 통솔을 받고, 대성이 재상의 통솔을 받는데, 재상은 모든 관직을 겸하여 천자와 함께 가부(可否)를 의논하여 정령(政令)을 내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곧 천하의 기강이다.” 하였다.
이상은 기강을 세워야 함에 대해 널리 말씀드렸습니다.
사심(私心) 없는 것이 기강의 근본이라는 것에 대하여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은 사사로이 덮는 것이 없고, 땅은 사사로이 싣는 것이 없으며, 해와 달은 사사로이 비추는 것이 없으니, 이 세 가지를 받들어 천하에서 일을 하면, 이것을 세 가지의 무사(無私)라고 한다.” 하였다. 《예기(禮記)》
주자가 말하기를, “기강은 스스로 설 수 없다. 반드시 인주(人主)의 심술이 공평정대하고 편당반측(偏黨反側)하는 사사로움이 없은 뒤에야 기강이 매이는 곳이 있어서 서게 된다. 임금의 마음은 스스로 바르게 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어진 신하를 가까이하고, 소인을 멀리하며, 의리의 귀추를 강명(講明)하고, 사사(私邪)로운 길을 막아 없앤 연후에야 바르게 될 수 있다.” 하였다. ○ 또
〈봉사(封事)〉를 올려 말하기를, “필부(匹夫)로 말하면, 한 집안을 사사로운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 고을에 통할 수 없고, 고을 사람으로 말하면 한 향리를 사사로운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 나라에 통할 수 없으며, 제후로 말하면 한 나라를 사사로운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천하에 통할 수 없거니와 천자에 이르러서는 하늘과 땅 끝까지 자신의 소유가 아닌 것이 없어서 통하지 못할 바깥이 없으니, 여기에 무슨 사사로움이 있겠습니까. 지금 삿된 생각 하나를 이기지 못하여 사심(私心)을 두는 데 이르고, 그 집안사람이나 가까이 두고 총애하는 사람을 바르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심지어 사인(私人)을 두기까지 하니, 사심을 가지고 사인을 쓰면 사비(私費)가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안으로는 들어가는 경비를 줄이고, 밖으로 남는 재산을 헌납하면서 사재(私財)를 두기까지 하니, 만사의 폐단이 이로부터 나옵니다. 어찌 애석하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 마음으로 근심하여 다스려지기를 원하신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인데, 어찌 나라의 법도를 떨치고 풍속을 아름답게 하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단지 이것은 한 생각이 일어나는 동안 사사로움과 삿됨의 폐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조정에 충(忠)과 사(邪)가 섞이고, 형벌과 포상이 분별되지 아니하며, 사부(士夫) 간에는 뜻이 비루해지고, 염치가 다 없어져도 오히려 사리의 당연한 것이라 여겨 떨쳐 일어나 이것을 교정하고 개혁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개 안으로 밝아야만 밖으로 정연해지며, 자신에게 잘못이 없어야만 남을 비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궁성(宮省)은 임금이 계신 곳인데 불공(不公)한 도와 부정한 사람이 그 속에서 소굴(巢窟)을 만들고 뒤엉켜 있으므로 폐하께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것이 공정하지 못하고 바르지 못한 것이 된다면 불길로 찌고 녹여서 폐하의 선을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나지 못하게 하며, 악을 미워하는 뜻이 깊어지지 못하게 하니, 그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강이 흔들려 패하니 중외(中外)의 사람들이 이것을 듣고 마음속으로 그르게 여겨 거리에서 수군거리며 모두 조정을 얕보고 업신여기니, 폐하께서는 이 기강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내 몸에 반성하여 구하지 않고 갑자기 진작시킬 수 있겠습니까. 위에서 기강이 진작(振作)되지 않기 때문에 아래에서 풍속이 퇴폐해지며, 겉으로만 아름답게 보이려는 태도에 젖어 일을 경영하고 따지는 데 오직 성과만 구하고 염치를 차릴 줄 모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치고 형이 아우를 격려하는 데에도 한결같이 이런 방법을 쓰면서, 충의(忠義)와 명절(名節)의 귀한 줄을 알지 못합니다. 한 사람이 굳세고 정직하며, 도를 지키고 이치를 따를 줄 아는 선비가 그 사이에 나오면 무리들이 그를 기롱하고 배척하며, 과격하다는 죄를 더하니, 그런데도 차마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이상은 사심(私心)이 없는 것이 기강을 세우는 근본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상벌을 공정하게 하는 것이 기강을 세우는 법이라는 것에 대하여
○ 고요(皐陶)가 말하기를, “하늘이 덕 있는 이에게 명할 때에는 다섯 가지의 복식으로 다섯 등급[章]을 나타내시며, 하늘이 죄 있는 이를 칠 때에는 다섯 가지 형벌로 다섯 가지 경우에 맞게 집행하니, 정사에 힘쓰고 힘쓰소서.” 하였다. 《서경(書經)》 〈우서(虞書) 고요모(皐陶謨)〉 ○ 고요(皐陶)가 순 임금에게 고한 말이다.
채씨(蔡氏)가 말하기를, “장(章)은 나타내는 것이다. 오복(五服)은 다섯 가지 등급의 복장이니, 9장(章)부터 1장까지가 이것이다. 위의 글은 하늘이 덕 있는 사람에게 명할 적에 다섯 등급의 복장으로 나타내 주고, 하늘이 죄 있는 사람을 칠 적에 다섯 가지 등급의 형벌로써 징계함을 말한다. 대개 상작(賞爵)과 형벌(刑罰)은 임금이 하는 정사로써 임금이 이를 주관하고 신하가 이를 적용하는 데에 마땅히 힘써야 하며 태만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였다. ○ 정자가 말하기를, “만물이 모두 하나의 천리(天理)이니 거기에 어찌 사심이 들어갈 수 있겠는가. 하늘이 죄 있는 이를 칠 적에 다섯 가지 형벌로써 다섯 가지 경우에 맞게 집행하며, 하늘이 덕 있는 이에게 명할 때 다섯 가지 복장으로 다섯 등급을 나타내는구나. 이는 다만 천리의 자연스러움이 마땅히 이와 같은 것이니, 어찌 그 사이에 마음의 희로(喜怒)를 용납할 수 있겠는가. 순(舜)이 16명의 정승을 기용하였는데, 요(堯)가 어찌 이것을 알지 못하였겠는가마는 다만 그들의 선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기용하지 못한 것이다. 순이 4명의 흉악한 사람을 죽였는데, 요가 어찌 이것을 살피지 못하였겠는가마는 다만 그들의 악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어찌 죽일 수가 있었겠는가. 기용하고 죽이는 데는 오직 하나의 의리가 있으니, 의(義)에 따라서 할 뿐이다.”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이름을 바르게 해야 할 것이다.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순하지 않고, 말이 순하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예악(禮樂)이 일어나지 않고,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형벌이 맞지 아니하고, 형벌이 맞지 않으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는 것이다.” 하였다. 《논어(論語)》
양씨(楊氏)가 말하기를, “이름이 그 실상에 맞지 않으면 말이 순하지 않고, 말이 순하지 않으면 실상을 살필 수 없어서 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 하였다. ○ 범씨(范氏)가 말하기를, “일이 그 차례를 얻는 것을 예(禮)라 하고, 사물이 그 조화를 얻는 것을 악(樂)이라 한다.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차례가 없어져서 조화롭지 못하기 때문에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고, 예악이 일어나지 않으면 정치를 베풀어 나가는 데 모두 그 도를 잃기 때문에 형벌이 맞지 않는다.” 하였다. ○ 정자가 말하기를, “이름과 실상은 서로 맞물리는 것이니 한 가지 일이 구차해지면 그 나머지도 모두 구차해진다.” 하였다.
정치가 행해지지 않고 교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작록(爵祿)으로 권면할 만하지 못하고 형벌로 부끄럽게 할 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윗사람은 형벌을 업신여기고 작록을 경솔하게 시행해서는 안 된다. 《예기》 ○ 역시 공자(孔子)의 말씀이다.
여씨(呂氏)가 말하기를, “정치가 행해지지 않고 교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윗사람이 작록과 형벌을 마땅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작록이 그 사람에게 맞지 않으면 착한 이를 권면할 수 없고, 형벌이 그 죄에 맞지 않으면 소인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것을 두고 형벌을 업신여기고 작록을 경솔하게 시행한다.” 하였다. ○ 주자가
〈봉사(封事)〉를 올려 아뢰기를, “신이 듣건대, 사해(四海)가 지극히 넓고 백성이 지극히 많은데 사람들은 저마다 뜻이 있어서 자기의 사사로움을 행하려고 합니다. 정치를 잘하는 사람은 이것을 잘 총섭(總攝)하고 정제(整齊)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각각 그 이치를 따르도록 하고 감히 자기가 하고 싶은 바대로 하지 못하도록 하니, 이는 먼저 위에서 기강을 유지하고 다음으로 아래에서는 풍속을 몰아가기 때문입니다. 기강이란 어진 이와 어질지 못한 이를 분별하여 상하의 구분을 정하고, 공과 죄를 잘 밝혀서 상벌의 시행을 공정히 하는 것입니다. 풍속이란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착한 것을 사모하여 반드시 행할 줄을 알게 하고, 또 착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여 반드시 버릴 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강을 떨치는 방법은 재상은 꼭 잡아 놓치지 않으며, 대간(臺諫)은 잘 살펴서 사사로운 바가 없으며, 임금은 또 공정(公正)한 마음으로 위에서 몸을 공손히 하되 백성들을 밝게 비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진 이가 반드시 위에 있고 어질지 못한 이가 반드시 아래에 있으며, 공 있는 이는 반드시 상을 받고 죄 있는 이는 반드시 형을 받아서, 모든 일이 계통에 결함(缺陷)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기강을 떨치면 천하의 사람들이 각각 스스로 분발하고, 또 서로 권면하여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출척(黜陟)과 상벌(賞罰)이 일일이 각자의 몸에 가해지지 않더라도 예의를 차리고 염치를 아는 풍속이 크게 변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극히 공정한 도가 위에서 행해지지 않기 때문에 재상과 대간(臺諫)이 될 만한 사람을 얻지 못하고, 출척과 상벌이 사의(私意)에서 많이 나와서, 천하의 풍속이 마침내는 명절(名節)과 행검(行檢)의 귀한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오직 아첨하고 아양을 부려서 질세라 서로 교제를 맺느라 힘을 쓰며, 그중에 한 사람이라도 말을 단정하게 하거나 얼굴빛을 바르게 한 이가 있다면, 무리들이 기롱하고 배척하여 반드시 이 세상에서 용납되지 못하게 한 뒤에야 그만두니, 이렇게 되면 나라의 형세가 마치 기울어져 가는 집이 크고 화려하여 외부의 변화는 깨닫지 못하나 재목(材木) 속은 이미 다 벌레 먹고 썩어 문드러져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진실로 임금께서 스스로 뜻을 결단하시어 그 마음을 아름답게 씻고 크게 경계하고 조심하여, 대소 신료로 하여금 각각 자기 직분을 다하게 하여 출척을 밝히고, 상벌을 신뢰할 수 있게 하지 않는다면 어찌 무너진 기강을 진작시키고 무너진 풍속을 바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관자(管子)가 말하기를, ‘예(禮)ㆍ의(義)ㆍ염(廉)ㆍ치(恥)를 사유(四維)라고 하는데 사유가 베풀어지지 않으면 나라가 멸망한다.’ 하였는데, 가의(賈誼)가 일찍이 한 문제(漢文帝)를 위하여 이 말을 외우고는 말하기를, ‘가령 관자가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그렇다 치더라도 관자가 다스리는 체통(體統)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를 어찌 한심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하였으니, 이 두 사람의 말은 명백하고 절실하며, 조금도 빈말이 아니라고 생각되니, 성명께서 유의하시면 천하가 매우 다행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하였다.
주자의 전후 〈봉사(封事)〉는 당시의 폐단을 진술한 것인데, 오늘날의 병통에 가장 적중한 것이기 때문에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신이 생각건대, 기강(紀綱)이란 국가의 원기(元氣)입니다. 기강이 서지 않으면 만사가 망가지고, 원기가 튼튼하지 않으면 백해(百骸 몸에 있는 모든 뼈)가 해이해집니다. 오늘날 논의하는 사람들이 입만 열었다 하면 바로 기강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아직 그 요체를 잡은 자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대개 정치를 하는 데 기강을 잘 세운다는 것은 마치 학자가 의(義)를 모아서 호연(浩然)의 기를 낳는 것과 같습니다. 어찌 한 가지의 영(令)이 바른 것을 얻고, 한 가지의 일이 마땅한 것에 적합하다고 하여 갑자기 그 효과를 보겠습니까. 대체로 위에서는 반드시 다스려야겠다는 뜻이 없고 아래에서는 녹을 타 먹겠다는 마음만 품고 있어서, 착한 이를 보고도 등용하지 못하고, 악한 이를 보고도 물리치지 못하며, 공 있는 사람이라 해서 반드시 상을 받는 게 아니며, 죄가 있는 사람이라 해서 반드시 형벌을 받는 게 아니어서 도학이 폐절(廢絶)되고 교화가 무너지고 풍속이 쓰러져서, 오직 권세와 이익만을 좇고 기강을 세워야 한다고 말로만 떠듭니다. 이 어찌 고질(痼疾)에 걸린 사람이 입으로는 양약(良藥)을 말하면서 실지로는 목으로 넘기지 못한다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반드시 임금이 먼저 뜻을 정하여 학문을 바르게 하고 몸을 성실히 하며, 호령을 발하고 일을 거행하는 것이 순수하게 대공지정(大公至正)한 도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신하들로 하여금 다 맑은 하늘에 뜬 밝은 해처럼 임금의 마음을 우러러보게 해야 합니다. 보고서 느낌이 일어 흥기된 뒤에야 어진 이를 높이고 능한 이를 부리고, 망녕된 이를 쫓아내고 간사한 이를 제거하며, 실적을 따져서 상벌을 분명히 하며, 일을 시행(施行)하고 조처하는 것이 천리에 순하고 인심에 합당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니, 크게 일세를 복종시킨다면 기강이 진작되고 명령이 행해지고 금령(禁令)이 지켜져서 천하의 일이 모두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二帝)와 삼왕(三王)이 인심을 열복(悅服)시키고 세도를 유지하여, 수백 년을 전하여도 견고하여 허물어지지 않았던 소이입니다. 오늘날 법도가 행해지지 않고 정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다 기강이 서지 않는 데서 연유(緣由)하니, 폐하께서는 기강을 진작(振作)시키시기를 엎드려 바랍니다.
제8장 안민(安民)
신이 생각건대, 기강이 서고 모든 신료가 다 자기 직분을 받들어야만 정치 기구가 베풀어지고 백성이 혜택을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강(紀綱) 다음에 안민(安民)을 놓았습니다.
임금과 백성이 서로를 필요로 하는 도에 대하여
부열(傅說)이 말하기를, “현명한 임금이 천도(天道)를 받들어 순응하여,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베풀어서, 후왕(后王)과 군공(君公)을 세우고, 대부와 사장(師長)으로서 받들게 하는 것은 안일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하였다. 《서경(書經)》 〈상서(商書) 열명(說命)〉
채씨(蔡氏)가 말하기를, “후왕(后王)은 천자요, 군공(君公)은 제후(諸侯)이다. 치란(治亂)을 난(亂)이라 한다.” 하였다.
순(舜)이 우(禹)에게 명하기를, “사랑할 만한 이는 임금이 아니겠으며, 두려워할 만한 이는 백성이 아니겠는가. 백성은 임금이 아니면 누구를 떠받들며, 임금은 백성이 아니면 누구와 더불어 나라를 지키겠는가. 공경하여 너의 지위를 조심스럽게 지켜 원할 만한 것[可願]을 경건하게 닦아라. 사해(四海)가 곤궁해지면 하늘이 내린 녹(祿)이 영영 끊기리라.” 하였다. 《서경(書經)》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
채씨(蔡氏)가 말하기를, “가원(可願)이라 하는 것은 맹자에 이른바 가욕(可欲)이라 하는 것과 같다. 대체로 원할 만한 것은 다 착한 것이니, 임금이 마땅히 그 거하는 바의 위를 조심하여 하고자 하는 것을 공경히 닦아야 한다. 만약에 한 오라기만큼이라도 착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생겨서 정사를 해치면 백성들은 제가 있을 곳을 얻지 못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온 백성들이 곤궁한 데 빠지면 임금의 천록(天祿)도 끊어져서 더 이상 계속되지 못하는 것이니, 어찌 깊이 두려워할 만하지 않겠는가. 위의 이 글은 안위(安危)와 존망(存亡)에 대한 경계로써 깊이 경고한 것이다. 비록 그 임금의 공덕이 성하여 반드시 이러한 지경에 이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해도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감히 편안하게 즐겨서는 안 되며, 호리(毫釐)의 사이에서도 조심하여야 하니, 이것이 성인의 마음이 되는 이유이다.” 하였다.
〈오자지가(五子之歌)〉에 이르기를, “황조(皇祖 우왕(禹王)을 가리킴)께서 이 훈계를 하였으니, 백성들은 가까이할지언정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백성은 오직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굳어야만 나라가 편안하다.” 하였다. 《서경(書經)》 〈하서(夏書) 오자지가(五子之歌)〉
채씨(蔡氏)가 말하기를, “이것은 우(禹)의 훈계이다. 임금과 백성의 관계는 그 형세로 말하면 존비(尊卑)의 분수가 하늘과 땅처럼 균등하지 않고, 정(情)으로 말하면 서로 맞물려서 편안해지는 것은 신체가 서로 도와서 살아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형세로 소원해지면 멀어지고, 정(情)이 가까워지면 합해진다. 친하기 때문에 가까이 한다고 하고, 멀기 때문에 소홀히 한다고 하여 친해야 하고 멀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굳어야 나라가 편안해진다. 근본이 굳지 못하면 비록 진(秦)나라만큼 강하고 수(隋)나라만큼 부(富)하더라도 결국 멸망하고 말 뿐이다.” 하였다.
이상은 임금과 백성이 서로 맞물려 있음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도에 대하여
○ 목왕(穆王)이 말하기를, “여름에 더운 비를 백성이 원망하고 겨울에 큰[祁] 추위를 백성이 원망하는 것은 그들이 오직 가난하기 때문이다. 그 가난한 것을 생각하여 살기 편안하도록 해 줄 것을 꾀하면 백성들이 편안해질 것이다.” 하였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군아(君牙)〉 ○ 목왕(穆王)이 군아(君牙)를 대사도(大司徒)로 삼은 말이다.
채씨가 말하기를, “기(祁)는 크다는 뜻이다. 더운 비와 큰 추위를 백성이 원망한 것은 스스로 그 삶이 가난한 것을 마음 아파한 것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그 백성이 참으로 살기가 어려움을 탄식한 것이니, 그 가난한 것을 생각하여 살기 편하게 해 주기를 도모한다면 백성들이 곧 편안해질 것이다.” 하였다.
〈강고(康誥)〉에 말하기를, “‘어린아이를 보호하는 것과 같이 하라.’ 하였으니, 강고의 말은 여기까지이다. 마음으로 정성껏 구하기만 하면 비록 적중되지는 않더라도 멀지는 않을 것이다. 대개 자식을 기르는 법을 익힌 뒤에 시집갔다는 사람은 없다.” 하였다. 《대학(大學)》
삼산 진씨(三山陳氏)가 말하기를, “갓난아이는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스스로 말을 할 수 없는데, 자애로운 어머니만은 그 아기가 하고 싶은 것을 안다. 비록 그 하고 싶은 것에 꼭 들어맞지는 않더라도 거기에서 멀지 않는 것은 사랑이 정성스러워 피차간에 틈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으로 구하는 것은 배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였다. ○ 장자(張子)가 말하기를, “대체로 임금과 정승은 천하의 부모가 되어 왕도(王道)를 행한다. 부모의 마음을 미루어 백성들을 대하지 못한다면 이것을 왕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른바 부모의 마음이란 것은 말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사해(四海) 안의 백성을 자기의 자식과 같이 보아야 하니, 만약 사해의 안을 다 자기의 자식처럼 본다면 정치하는 방법은 반드시 진(秦)과 한(漢)처럼 적은 은혜가 모자라지 않을 것이며, 오패(五伯)처럼 명분을 가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였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늙어서 아내 없는 것을 환(鰥)이라 하고 늙어서 남편 없는 것을 과(寡)라 하고, 늙어서 자식 없는 것을 독(獨)이라 하고, 어려서 아비 없는 것을 고(孤)라고 합니다.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은 세상에 가장 곤궁한 자들로 호소할 데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문왕(文王)이 정령(政令)을 발하여 인정(仁政)을 베풀 때에는 반드시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을 먼저 돌보았습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부자(富子)들이야 괜찮지만[哿], 괴롭고 외로운 사람[煢]들이 불쌍하구나.’ 하였다.” 하였다. 《맹자(孟子)》
주자가 말하기를, “선왕이 백성을 기른 정책은 백성들의 처자를 잘 인도하여 이들로 하여금 늙은이를 봉양하게 하고, 어린이를 돌보게 하며, 백성들 중에 불행히 환과고독(鰥寡孤獨)의 부류에 처해 부모나 처자식의 양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들을 더욱 불쌍히 여겨 구휼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들을 먼저 돌보았다. 시는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正月)〉편이요, 가(哿)는 가(可)하다는 뜻이며, 경(煢)은 괴롭고 근심스런 모습이다.” 하였다. ○ 정자가 말하기를, “지극히 인(仁)하면 천지가 한 몸뚱이가 되고, 천지 사이의 온갖 만물은 사지(四肢)가 되고 온몸이 된다. 자기의 사지와 온몸을 보고도 사랑하지 않을 자가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의서(醫書)에 손발이 풍(風)을 맞아 마비된 것을 사체불인(四體不仁)이라 하는데, 이는 아픈 것이 그 마음과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수족이 나에게 있는데 그 아픈 것을 알지 못하니, 불인(不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상에서 차마 할 수 없는 일을 차마 하는 마음을 갖고 은혜를 베풀 줄 모르는 자가 스스로 자기를 버리는 것 역시 이와 같을 따름이다.” 하였다.
이상은 백성을 사랑하는 도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백성을 두려워하는 도에 대하여
소공(召公)이 성왕(成王)에게 고하기를, “임금께서는 빨리 덕을 공경하여 크게 백성들을 화하게[諴] 하는 것을 지금의 아름다움으로 삼으시옵소서. 임금께서는 감히 뒤로 미루지 말고 백성들의 험난한 것을[碞] 돌보아 두렵게 여기옵소서.” 하였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소고(召誥)〉
채씨가 말하기를, “함(諴)은 화한다는[和] 뜻이요, 암(碞)은 험난하다는 뜻이다. 왕이 크게 백성을 화하게 하는 것을 지금의 아름다움으로 삼아야 한다. 백성은 비록 지극히 미미하나 지극히 두려워해야 하므로 임금은 당연히 덕을 공경하는 일을 뒤로 미루지 말고, 백성들의 험난한 것을 돌보아 두렵게 여겨야 한다.” 하였다.
〈오자지가(五子之歌)〉에 이르기를, “어리석은 남자나 어리석은 여자라도 다 나보다 나으리라. 나의 만백성을 대하되 마치 썩은 새끼로 여섯 마리의 말을 모는 것같이 두려워하니, 남의 위에 있는 사람이 어찌 공경하지 아니하겠는가.” 하였다. 《서경(書經)》 〈하서(夏書) 오자지가(五子之歌)〉
채씨가 말하기를, “임금이 인심을 잃으면 독부(獨夫 국민에게 악정을 행하여 버림받은 군주)가 된다. 독부가 되면 어리석은 남자나 어리석은 여자라도 다 나를 이길 것이다. 썩은 새끼는 끊어지기 쉬워서 말을 몰 수가 없는데, 이것으로 매우 두렵다는 것을 비유하였다.” 하였다. ○ 맥구(麥丘)의 읍인(邑人)이 제 환공(齊桓公)에게 축원하기를, “임금께서는 신하들과 백성에게 죄를 얻지 마시옵소서.” 하니, 공이 버럭 화를 내면서 하는 말이, “내가 아들이 아버지에게 죄를 얻고, 신하가 임금에게 죄를 얻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임금이 신하에게 죄를 얻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하였다. 그러자 맥구의 읍인이 절하고 일어나면서 하는 말이, “아들이 아버지에게 죄를 얻으면 고모나 자매나 숙부를 통해서 양해를 구하면 아버지가 죄를 용서해 줄 수 있을 것이고, 신하가 임금에게 죄를 얻으면 좌우의 근신들을 통하여 사죄하면 임금이 용서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옛날 걸(桀)이 탕(湯)에게 죄를 얻고 주(紂)가 무왕(武王)에게 죄를 얻은 것은 임금이 신하에게 죄를 얻은 것이니, 사죄하여 줄 사람이 없어서 지금까지 죄를 얻고 있습니다.” 하니, 공이 말하기를, “좋은 말이로다.” 하고는 맥구(麥丘) 땅에 그를 봉(封)하였다.
이상은 백성을 두려워하는 도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혈구(絜矩)의 도에 대하여
○충서(忠恕)가 도에서 떨어진 것[違]이 멀지 않다. 나에게 베풀어지기를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베풀지 말라. 《중용(中庸)》
주자가 말하기를, “나의 마음을 다하는 것이 충(忠)이요, 나를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것은 서(恕)이다. 그리고 위(違)는 떠난다는 뜻이니 여기에서부터 저기까지 서로 떨어지는 것이 멀지 않다는 말이다. 나의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헤아려 보면 같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지 않는 것이면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 장자(張子)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면 인(仁)을 다하는 것이다.’라고 한 말이 바로 이것이다.” 하였다.
위에서 늙은이를 늙은이로 섬기면 백성들이 효성에 흥기(興起)하고, 위에서 어른을 어른으로 받들면 백성들이 공경에 흥기하며, 위에서 외로운 이들을 가련하게 여기면 백성들이 배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군자는 혈구의 도[絜矩之道]가 있는 것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늙은이를 늙은이로 섬긴다는 것은 소위 내 늙은이를 늙은이로 섬긴다는 말이요, 흥(興)은 감발(感發)하여 흥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혈(絜)은 헤아린다는 뜻이요, 구(矩)는 모난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구(矩)는 모난 물건을 만드는 도구로 속칭 곡척(曲尺)이라 한다. 위에 말한 이 세 가지는, 위에서 행하면 아래에서도 본받는데 그림자나 메아리보다도 빠르다. 여기에서 인심이 같은 것을 볼 수 있으니, 한 사람도 그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 있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인심이 같은 것을 미루어 같은 것이란 마음이요, 마음이란 곧 구(矩)이다. 다른 사람에게 미치게 하여, 피차간에 각각 그 분원(分願)을 얻게 하면 상하와 사방이 균형 있고 방정해져서, 천하가 화평해질 것이다.” 하였다.
윗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껴진 것으로써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 것이요, 아랫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껴진 것으로써 윗사람을 섬기지 말 것이며, 앞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껴진 것으로써 뒷사람에게 먼저 하지 말 것이요, 뒷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껴진 것으로써 앞사람을 따르지 말 것이며, 오른쪽 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껴진 것으로써 왼쪽 사람에게 건네지 말 것이요, 왼쪽 사람에게서 싫다고 느껴진 것으로써 오른쪽 사람에게 건네지 말 것이니, 이런 것을 혈구의 도[絜矩之道]라고 한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걸(桀)ㆍ주(紂)가 천하를 잃은 것은 그 백성을 잃은 것이고, 그 백성을 잃은 것은 그 민심(民心)을 잃은 것이다. 천하를 얻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백성을 얻는 것이 곧 천하를 얻는 것이다. 백성을 얻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민심을 얻는 것이 곧 백성을 얻는 것이다. 민심을 얻는 데는 방법이 있으니, 하고자 하는 것을 거두어 주고 싫어하는 것을 베풀지 말아야 한다.” 하였다. 《맹자》 〈양혜왕 하(梁惠王下)〉 아래도 이와 같다.
주자가 말하기를, “백성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다 이루어 주되 마치 거둬들이듯 해 주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을 그들에게 베풀지 말라는 것이다.” 하였다. ○
조조(鼂錯)가 말하기를, “삼왕(三王) 때는 신하와 임금이 함께 꾀하고 서로 보필하였으며, 천하를 편안하게 하기 위한 계책은 하나도 백성들의 마음에 근본을 두지 않는 것이 없었다. 백성들의 마음은 임금이 오래 살기를 원하지 않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삼왕은 이들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고 해치지 않았고, 백성들은 생활이 넉넉하기를 원하지 않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삼왕은 이들을 후하게 해주어 곤궁하지 않게 하였으며, 백성들은 편안하기를 원하지 않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삼왕은 이들을 부축해 주어 위태롭지 않게 하였고, 백성들은 인정이 안일하기를 원하지 않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삼왕은 이들의 힘을 쓰는 것을 조절하여 여유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법령을 만들어서는 인정에 합당한 뒤에 행하고, 대중을 동원하고 백성을 부리는 데는 백성들의 일에 근본을 두고 하였기 때문에 천하의 사람들이 그 정치를 즐거워하고, 그의 덕에 귀의하여 부모처럼 바라보고, 흐르는 물처럼 따랐다.” 하였다.
편안하게 해 주려는 방법으로써 백성을 부린다면 수고롭더라도 원망하지 않고, 살려 주려는 방법으로써 백성을 죽인다면 비록 죽더라도 원망하지 않는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편안하게 해 주려는 방법으로써 백성을 부린다는 것은 본래의 목적이 백성을 편안하게 해 주려는 데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은 씨앗을 뿌리고 집을 고치는 종류이다. 살려 주려는 방법으로써 백성을 죽인다는 것은 본래의 목적이 백성을 살려 주려는 데 있는 것을 말한 것이니, 이것은 해(害)를 없애고 악을 버리는 종류이다. 대개 부득이 그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하면 비록 백성들의 욕망은 거슬린다 하더라도 백성들이 원망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이와 반대가 된다.” 하였다.
이상은 혈구(絜矩)의 도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세금을 가볍게 거두는 도에 대하여
○ 주공(周公)이 말하기를, “아, 군자는 편안하지 않은 곳을 처소[所]로 삼습니다. 먼저 농사짓기의 어려움을 알고, 이에 편안한 자리에 있으면 백성이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것입니다.” 하였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무일(無逸)〉 아래도 이와 같다.
채씨(蔡氏)가 말하기를, “소(所)는 처소(處所)와 같다. 군자는 편안함이 없는 곳을 처소로 삼아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먹을 때나 쉴 때나 여기에 있지 않음이 없어야 하니, 만약 이를 하다가 말다가 하면 이른바 처소로 삼는 것이 아니다. 먼저 농사짓기의 어려움을 알고 후에 안일한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왕이 부지런히 애쓰는 마음을 가지고 왕위의 안일한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의지한다[依]는 것은 농사짓는 일을 가리켜 한 말인데, 소민(小民)이 의지하여 산다는 것을 말한다. 사민(四民 사(士)ㆍ농(農)ㆍ공(工)ㆍ상(商))의 일 중에는 농사짓는 일보다 더 수고로운 것이 없고, 생민의 공(功) 중에는 농사짓는 일보다 더 큰 것은 없다. 주공이 무일(無逸)의 훈계를 말하면서 맨 먼저 이것을 언급하였으니, 이유가 있어서이다.” 하였다.
문왕(文王)은 감히 놀이와 사냥을 즐기지 아니하고 여러 나라에서 정당한 공납(供納)만을 받았다.
채씨가 말하기를, “놀이와 사냥을 하는 데는 나라의 떳떳한 법이 있다. 문왕은 감히 절도 없이 즐기지 않아 위에서 함부로 낭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에게 지나치게 거둬들이지 않았다. 여러 나라로부터 정당한 공납만 받을 줄 알아 정해진 공물(貢物) 외에는 함부로 거둬들이는 일이 없었다.” 하였다.
애공(哀公)이 유약(有若)에게 묻기를, “흉년이 들어 비용이 부족하니, 이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하였다. 《논어(論語)》 아래도 이와 같다.
주자가 말하기를, “비용은 나라의 비용이다. 공(公)의 뜻은 대개 부세(賦稅)를 더함으로써 비용을 족하게 하려 한 것이다.” 하였다.
유약(有若)이 대답하기를, “어찌 철법(徹法)을 쓰지 않습니까.” 하였다.
주자가 말하기를, “철(徹)은 통(通)한다는 뜻이요, 고르다[均]는 뜻이다. 주(周)나라 제도에는 한 농부가 밭 백 묘를 받아서 도랑[溝]을 같이하고 정전(井田)을 같이하는 사람과 더불어 힘을 합쳐 농사를 짓게 하여 묘(畝)를 계산하여 고르게 거둬들였다. 백성은 대체로 10분의 9를 얻고 관청에서는 10분의 1을 취하기 때문에, 이것을 철법(徹法)이라고 한다. 노(魯)나라에서는 선공(宣公) 때부터 묘(畝)에서 세를 받았으며, 또 묘마다 10분의 1을 취하였으니, 결국은 10분의 2를 취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유약이 철법만을 시행하여 애공(哀公)이 절용함으로써 백성을 후하게 대하기를 요청한 것이다.” 하였다.
애공이 말하기를, “2도 내게 오히려 부족하니, 어찌 그 철법을 쓰겠는가.” 하였다.
주자가 말하기를, “2는 10분의 2를 말한다. 공은 유약이 자기의 취지를 깨닫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렇게 부세를 더 받을 뜻을 보였다.” 하였다.
유약이 대답하기를, “백성이 족하다면 임금이 누구와 더불어 부족하겠으며, 백성이 부족하다면 임금이 누구와 더불어 족하겠습니까.” 하였다.
주자가 말하기를, “백성이 넉넉하면 임금이 홀로 가난해지지 않을 것이며, 백성이 가난하면 임금이 홀로 넉넉하지 않을 것이다. 유약은 깊이 군민(君民)이 일체(一體)라는 뜻을 말하며, 공이 많이 거두어들이는 것을 저지시켰으니, 남의 위에 있는 사람은 마땅히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 경원 보씨(慶源輔氏)가 말하기를, “애공이 부세를 더하려고 한 것은 오직 말단적인 이익만 도모하는 것이요, 유약이 철법(徹法)을 쓰려고 한 것은 근본으로 돌아가기 위한 의론이다. 사사로운 뜻에서 눈앞만 보면 근본으로 돌아가는 의론은 멀어지고, 말단적인 이익을 도모하면 하루아침의 순간적인 효과는 있으나 공평한 이치로써 길게 두고 보면 하루아침의 순간적인 효과는 다만 뒷날의 우환이 되게 하며, 근본으로 돌아가는 의론은 실로 오래가는 이익이 된다. 말류(末流)의 폐단은 더욱 말단적인 것을 추구하여 망하는 데 이르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으니, 이것은 고금을 통해 동일하다.” 하였다. ○ 정씨(鄭氏)가 말하기를, “백성의 재물은 곧 임금의 재물이고, 백성들의 힘은 곧 임금의 힘이다. 수레와 말은 백성이 생산하는 것이요, 곡식은 백성이 바치는 것이며, 힘의 부역은 백성이 하는 것이다. 백성들에게 그 부세를 줄여서 여유 있게 해 주면 그들은 생계를 꾸릴 수 있어서 힘을 내어 관청에 바쳐 올리는 것이 분명 많을 것이니 이렇게 되면 부족하다고 근심할 게 뭐 있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식구는 뿔뿔이 흩어지고 밭과 들은 황무지가 될 것이니, 임금은 어디서 취하여 비용을 족하게 하겠는가.” 하였다.
대영지(戴盈之)가 말하기를, “10분의 1의 세법을 실시하고, 관문(關門)과 시장의 징세(徵稅)를 폐지하는 것을, 지금은 시행할 수 없으니 조금 경감하는 정도로 했다가 내년까지 기다린 후에 그만두는[已]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맹자》 아래도 이와 같다.
주자가 말하기를, “영지(盈之)는 송(宋)나라 대부이요, 10분의 1은 정전법(井田法)이며, 관문과 시장의 세는 장사세를 말함이요, 이(已)는 그만두는 것이다.” 하였다.
맹자가 말하기를, “지금 매일 그 이웃 닭을 훔치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에게 ‘그것은 군자가 할 짓이 아니다.’ 하니, 말하기를, ‘그러면 그 수를 줄여서 한 달에 닭 한 마리씩을 훔치다[攘]가 내년까지 기다린 후에 그만두도록 하겠다.’ 대답하였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에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당장에 빨리 그만둘 것이지, 어찌 내년까지 기다릴 게 있겠는가.” 하였다.
주자가 말하기를, “양(攘)은 저절로 오는 물건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손(損)은 줄인다는 뜻이다. 의리상 옳지 못한 것인 줄을 알면서도 빨리 고치지 못한다면 달마다 닭 한 마리씩을 훔치겠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하였다. ○ 남헌 장씨(南軒張氏 장식(張栻))가 말하기를, “군자가 불의를 멀리하기를 마치 악한 냄새를 싫어하는 것같이 하며, 감히 가까이하지 않기를 마치 끊는 물에 손을 넣는 것같이 하며, 감히 잠깐이라도 편히 있지 않기를 마치 숯불에 앉아 있는 것같이 하여, 의(義)로 옮기기를 마치 주리고 목마른 이가 음식을 대하는 것같이 하여야 한다. 대개 밝게 보고 용감하게 결단하는 것이 이와 같지 않으면 스스로 특출나고 스스로 새롭게 할 수 없다. 선비가 몸가짐에 있어서 개과천선(改過遷善)할 즈음에 대영지(戴盈之)의 말대로 하면 종신토록 허물 속에 빠져 골몰할 것이요, 신하가 나라를 위하여 폐단을 개혁하고 옛것으로 돌이키는 일에 있어서 대영지의 말대로 하면 마침내 해 오던 대로 구차하게 하고 마는 지경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수신(修身)에서부터 치국(治國)에 이르기까지 지(知)ㆍ인(仁)ㆍ용(勇)의 삼덕이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지(知)는 이것을 아는 것이요, 인(仁)은 이것을 행하는 것이요, 용(勇)은 이것을 결단하는 것이니,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이상은 세금을 가볍게 거두어들이는 도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요역(徭役)을 가볍게 하는 도에 대하여
○〈왕제(王制)〉에, “백성을 부리는 일은 1년에 3일을 넘지 못한다.” 하였다. 《예기(禮記)》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민력(民力)을 부린다는 것은 성곽(城廓)ㆍ도로(道路)ㆍ구거(溝渠 도랑)와 궁묘(宮廟)를 짓는 일 같은 유인데, 주(周)나라 예(禮)에, 풍년에는 3일, 보통 해에는 2일, 흉년에는 1일뿐이다. 군역(軍役)은 이 제도에 구애되지 않는다.” 하였다.
흉년이나 전염병이 유행하는 때에는 부역도 없고 부세도 없다. 《주례(周禮)》
정씨(鄭氏)가 말하기를, “부역[力政]을 없앤 것은 그 노고를 가엾게 여기는 것이요, 부세를 없앤 것은 그 곤궁한 것을 가엾게 여기는 것이다.” 하였다. 역정(力政)은 부역시키는 것이다.
재물이 다하면 원망하고, 힘이 다하면 한탄한다.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진씨(眞氏)가 말하기를, “이것은 백성의 상정(常情)이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임금은 부세를 경감하여 그 재물을 탕진(蕩盡)하게 하지 않고, 부역을 감하여 그 힘을 고갈하게 하지 않는다.” 하였다.
장공(莊公) 9년 겨울에 수수(洙水)를 팠다. 《춘추(春秋)》 경문(經文)
호씨(胡氏)가 말하기를, “본래 나라는 백성을 보존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민력(民力)을 가볍게 써서 함부로 큰 공사를 일으켜서 나라의 기틀이 한 번 흔들리면 비록 긴 강이나 큰 냇물이 막고 있어서 그 봉역(封域)이 동정호(洞庭湖)와 팽려(彭蠡) 그리고 하수(河水)와 한수(漢水)같이 험고(險固)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의지할 수 없는데, 하물며 수수(洙水) 강 이름이다. 이겠는가. 수수를 준설했다는 것을 기록한 것은 나라를 지키는 말단의 업무에서 백성들을 괴롭혔으니 근본을 알지 못하는 것임을 밝혀 뒷사람들의 경계로 삼은 것이다.” 하였다.
이상은 함부로 부역을 하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형벌을 신중히 하는 도에 대하여
○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못 위에 바람이 있는 것이 중부(中孚)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옥사(獄事)를 의논하고 죽음을 늦춰 준다.” 하였다. 《주역》 〈중부괘(中孚卦) 상사(象辭)〉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못 위에 바람이 있으니, 수체(水體)가 허(虛)한 까닭에 바람이 잘 들어오고, 사람의 마음이 비어 있는 까닭에 사물이 잘 감동할 수 있다. 바람이 못 위에 부는 것이 마치 사물이 마음에 감동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중부(中孚)의 상(象)이 된다. 군자가 옥사(獄事)를 의논하는 데는 그 충(忠)을 다할 뿐이고, 죽음을 판결하는 데는 측은(惻隱)한 마음을 극진히 할 뿐이다. 천하의 일 가운데 그 충을 다하지 않을 곳이 없지만 옥사를 의논하고 죽음을 늦춰 주는 것이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하였다.
순제(舜帝)가 말하기를, “고요(臯陶)여, 지금 신하들 가운데 아무도 나의 정치[正]를 범하는[干] 이가 없는 것은 그대가 사사(士師 형을 다스리는 벼슬 또는 그 사람)가 되어 다섯 가지 형벌을 밝히고, 다섯 가지 가르침을 도와 나의 정치를 기약했기 때문이다. 형벌을 쓰되 형벌이 없어지는 것을 기약하여 백성들이 중도(中道)에 합하도록 한 것은 그대의 공이니, 더욱 힘쓸지어다.[懋]” 하였다. 《서경(書經)》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 아래도 이와 같다.
채씨(蔡氏)가 말하기를, “간(干)은 범한다는 말이요, 정(正)은 정치이며, 필(弼)은 돕는 것이다. 성인의 정치는 덕으로써 백성을 교화하는 근본으로 삼으며, 형벌은 다만 그 미치지 못하는 것을 도울 뿐이다. 기(期)라는 것은 일에 앞서 꼭 그렇게 하리라는 것을 말한다. 백성들이 다 중도(中道)에 합하면 형벌을 과연 쓸 곳이 없어질 것이다. 무(懋)는 힘쓴다는 뜻이니, 순임금이 고요의 아름다움을 칭찬하여 권면한 것이다.” 하였다.
고요(皐陶)가 말하기를, “임금님의 덕에 허물이 없어서 아래로 신하를 소탈하게 대하시고, 백성을 너그럽게 거느리시며, 형벌을 자손[嗣]에게까지 미치지 않고, 상은 후세[世]에까지 뻗치게 하셨으며, 모르고[過] 지은 죄는 커도 용서하시고, 일부러[故] 저지른 죄는 작아도 벌하셨으며, 의심스러운 죄는 그 형을 가볍게 하시고, 의심스러운 공은 그 상을 무겁게 하셨으며, 죄 없는 이를 잘못 죽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법도[經]를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다는 허물을 택하셨습니다. 삶을 좋아하는 덕[好生之德]이 백성들의 마음속에 흠뻑 젖었기 때문에 백성들은 유사(有司)의 법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하였다.
채씨(蔡氏)가 말하기를, “사(嗣)라는 것은 가까운 것이오, 세(世)라는 것은 먼 것이다. 죄는 부자에게 서로 미치지 않지만 상(賞)은 먼 후세에까지 뻗치게 하였으니, 그 착한 것을 좋아함은 길고, 그 악한 것을 미워함은 짧음이 이와 같다. 과(過)라는 것은 알지 못하고 저지른 범행이요, 고(故)라는 것은 알면서 일부러 저지른 범행이다. 모르고 저지른 죄는 비록 큰 것이라도 반드시 용서해 주고, 고의로 저지른 범행은 비록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형벌을 주며, 죄가 무겁게 처벌해야 할지 가볍게 해야 할지 의심스러운 경우라면 가벼운 쪽으로 벌을 주고, 공(功)을 가벼운 쪽으로 적용해야 할지 무거운 쪽으로 적용해야 할지 의심스러운 경우라면 무거운 쪽으로 상을 주었다는 것이다. 경(經)은 떳떳한 법도이다. 법도에 죽일 수도 있고 안 죽일 수도 있다면, 죽여서 생명을 해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우선 살려 두고 스스로 형벌을 잘못 내린 책임을 받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이것은 인애(仁愛)하고 충후(忠厚)함이 지극한 것으로, 모두 이른바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好生之德]이다. 대개 성인의 법은 한계가 있으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은 무궁하기 때문에 형(刑)을 쓰고 상(賞)을 행하는 데 혹시라도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항상 법을 굽혀서라도 은혜를 펴서 법을 집행하는 뜻이 그 삶을 좋아하는 덕을 이김이 없도록 하였으니, 이것은 그 본심에 막힌 바가 없기 때문에 정해진 법 밖에서도 행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본심이 불어나 넘쳐흘러 점점 민심 속에 스며들면 천하에 애모(愛慕)하고 감열(感悅)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선에 흥기되어 스스로 유사(有司)의 법도를 범하지 않는다. 고요(皐陶)는 순이 자기의 공을 아름답게 여긴 까닭에 이것을 말하여 위로 공을 돌린 것이다.” 하였다.
계강자(季康子)가 공자에게 정치에 관해서 묻기를, “무도한 자들을 죽임으로써 올바른 도를 이룩하게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하니, 공자께서 대답하시기를, “그대는 정치를 하면서 어찌 죽이는 방법을 씁니까. 그대가 선하고자 하면 백성은 선해집니다. 군자의 덕은 바람[風]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草]과 같아서 풀 위로 지나가면 반드시 눕습니다.[偃]” 하였다. 《논어》 아래도 이와 같다.
주자가 말하기를, “위정자는 백성들이 보고 본받는 대상인데 어찌 죽이는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위에서 착하려고 하면 백성들은 착해진다. 상(上)이란 글자는 한편 상(尙) 자라고도 쓰는데, 더한다는 뜻이다. 언(偃)은 눕는다는 뜻이다.” 하였다. ○ 윤씨(尹氏)가 말하기를, “죽인다는 말이 어찌 남의 위에 있는 사람이 할 말이겠는가. 몸소 궁행하면서 가르치면 복종하고, 말로만 가르치면 송사(訟事)를 하는 것이다. 하물며 죽이는 것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
맹씨(孟氏)가 양부(陽膚)에게 사사(士師)를 시키자, 증자(曾子)에게 그 일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증자가 말하기를,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정도(正道)를 잃어 백성들이 흩어진 지가 오래되었다. 그들이 죄를 범하게 된 실정을 알게 된다면 슬퍼하고 불쌍하게 여기고 기뻐하지는 말라.” 하였다.
주자가 말하기를, “백성이 흩어지는 것은 감정과 의리가 괴리되어 서로 단결되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 사씨(謝氏)가 말하기를, “백성들의 마음이 흩어지는 것은 부리는 데 도가 없고 가르치는 데 바탕이 없기 때문에 법을 범하는 것이다. 부득이하게 급박한 경우가 아니면 몰라서 거기에 빠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죄를 범하게 된 실정을 알게 된다면 슬퍼하고 불쌍하게 여길 것이지 기뻐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하였다. ○ 면재 황씨(勉齋黃氏 황간(黃榦))가 말하기를, “죄의 정상을 알고 기뻐하면 너무 각박한 뜻이 법 밖으로 넘치게 되고, 죄의 정상을 알고 불쌍하게 여기면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항상 법 안에서 작용하게 된다. 어진 사람의 말은 대개 이와 같은 것이다.” 하였다.
이상은 형벌을 삼가는 도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신이 생각건대, 부세를 적게 하는 것, 부역을 가볍게 하는 것, 형벌을 삼가는 것 세 가지는 백성을 편하게 하는 큰 요령입니다. 반드시 의(義)와 이(利)를 분별하고, 생산된 재물을 절약해서 쓰며, 백성에게 일정한 재산[恒産]을 만들어 주고 군정(軍政)을 명확하게 잘 닦아야만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도를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래 글에서 이것을 순서로 삼았습니다.
의(義)와 이(理)를 판별하는 것에 대하여
○의(義)가 이(利)를 이기면 치세(治世)가 되고, 이(利)가 의(義)를 이기면 난세가 된다. 임금이 의를 중히 여기면 의가 이(利)를 이기고, 임금이 이(利)를 중히 여기면 이가 의를 이긴다. 그러므로 천자는 많고 적은 것을 말하지 않고, 제후는 이롭고 해로운 것을 말하지 않으며, 대부는 얻고 잃는 것을 말하지 않고, 사(士)는 재화(財貨)를 유통시키지 않는다. 이것은 다 이(利)를 부끄럽게 여겨 백성들과 사업을 다투지 않고, 나누어서 시행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쌓아 두고 보관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순자(荀子)》
한(漢)의 문학(文學) 문학은 군국(郡國)에서 추천한 벼슬이다. 이 말하기를, “말단적인 이(利)를 억제하고, 인의(仁義)를 열어서 이(利)를 취하는 것을 보이지 말아야 교화가 일어날 수 있고, 풍속이 바뀔 수 있습니다. 전(傳)에 ‘제후가 이(利)를 좋아하면 대부가 더러워지고, 대부가 더러워지면 서민이 도둑질하게 된다.’라는 말이 있으니, 이것은 이(利)의 구멍을 열어 놓고 백성에게 죄의 사다리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또 이(利)는 하늘로부터 온 것도 아니요, 땅으로부터 나온 것도 아니요, 한결같이 백성들에게서 취한 것입니다. 오얏과 매실의 열매가 많이 열리면 다음 해에는 이것 때문에 나무가 쇠해지고 신곡이 익으면 구곡(舊穀)은 이것 때문에 이지러지는 것입니다. 천지에서부터 두 개가 한꺼번에 이득을 볼 수는 없는 것이니, 하물며 인사에 있어서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여기에서 이(利)를 보면 저기에서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지금은 개와 말을 기르는 일, 벌레나 짐승이 먹어 치우는 일, 쓸데없는 관리나 급하지 않는 일, 하는 일도 없이 입고 먹는 지방 수령[縣官]들이 많기 때문에 위로는 재용(財用)이 부족하고 아래로는 생활이 궁핍한 것입니다.” 하였다.
재화(財貨)를 걷어 모으면 백성이 흩어지고, 재화를 나누어 주면 백성이 모이나니, 어진 자는 재화로써 몸을 일으키고[發], 어질지 못한 자는 몸으로써 재화를 일으킨다. 《대학》 아래도 이와 같다.
주자가 말하기를, “발(發)한다는 것은 일으킨다는 것과 같다. 어진 자는 재화를 나누어 줌으로써 백성을 얻고, 어질지 못한 자는 몸을 망쳐서 재화를 늘린다.” 하였다.
윗사람이 인(仁)을 좋아하는데 아랫사람이 의(義)를 좋아하지 않은 일은 없다. 아랫사람이 의를 좋아하는데 윗사람이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부고(府庫) 속의 재화가 그의 재화가 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윗사람이 인(仁)을 좋아하여 아랫사람을 사랑하면 아랫사람은 의(義)를 좋아하여 윗사람에게 충성하니, 이렇게 되면 일이 반드시 이루어지고, 부고의 재화가 잘못 지출될 걱정이 없다.” 하였다. ○
육지(陸贄)가 덕종(德宗)에게 간(諫)하기를, “성인이 교(敎)를 세우는 데는 재화를 천하게 여기고 예양(禮讓)을 높이며 이(利)를 멀리하고 청렴(淸廉)을 숭상합니다. 그러므로 천자는 재화가 있고 없음을 묻지 않고, 제후는 재화의 많고 적음을 말하지 않으니, 이는 뇌물은 인심을 자극하여 화(禍)의 실마리를 열고 풍교(風敎)를 상하게 하여, 나라와 집을 어지럽게 할까 두려워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재화를 많이 모으는 데 힘써서 탕고(帑庫)에 두텁게 쌓아 두는 것은 필부(匹夫)의 부(富)요, 재화를 나누어서 백성들의 마음을 거두는 것은 천자의 부(富)입니다. 어찌 꼭 지존의 지위를 떨어뜨려, 유사(有司)의 직을 대신하며, 천자의 자리를 욕되게 하여 필부의 모아 두는 것을 본받겠습니까. 대개 국가가 일을 하면서 공공(公共)을 위해 마음을 쓰면 사람들이 반드시 즐거워하여 이에 따르고, 사사로이 자기 몸을 위해 마음을 쓰면 사람들이 반드시 어겨서 이에 배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의 위에 있는 사람은 마땅히 그 마음을 깨끗이 씻어서
삼무사(三無私)를 받들어 백성을 한데 모아야 합니다. 이러고서도 사람들이 혹 따르지 않는다면 그때 형(刑)을 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백성에게는 이(利)를 베풀고 그 자신에게 사(私)를 금하는 것은 천자가 거기에 의지해 천하를 다스리는 기구입니다. 이것을 버리고 힘쓰지 않아 백성들의 이(利)를 막고 사사로운 이익을 행한다면 사람들로 하여금 탐냄을 없애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보건대 임금의 두 창고[二庫]에 있는 진귀한 재물을 탁지부(度之部
재정을 담당하는 관청)에서 관리하지 않는 것은 사사로운 이익을 행하는 것이고, 경비를 지출해 주지 않는 것은 백성들에게 이익을 베풀지 않는 것입니다. 인심이 흩어지고 원망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폐하(陛下)께서는 평소 혼자 차지하려던 욕심을 돌이켜 보고 경계하시어 기용(器用)의 취급을 너무 풍요롭게 하지 말 것이며, 안락한 옷과 음식을 반드시 아랫사람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두 창고에 있는 재화를 다 공 있는 이에게 내어 주도록 하고, 시원스럽게 회포를 풀어 민중과 하고자 하는 바를 같이하며, 이렇게 한 뒤에는 납공(納貢)을 반드시 유사에 돌리십시오. 이와 같이 하면 혼란이 반드시 안정될 것이요, 적(賊)이 반드시 평정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조금 저축한 것을 나누어 크게 저축한 것을 이루고, 조그마한 보물을 덜어서 큰 보물을 튼튼히 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 주자의
〈봉사(封事)〉에 이르기를, “내탕(內帑
임금의 금고)의 세입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적인 저축이라 여기고 사인(私人)에게 맡겨 두어 재상(宰相)이 공물에 관한 규정을 정해 출납(出納)을 고르게 조정하지 못하고 호조[版曹]가 장부에 기록해 두어 얼마나 있는지를 헤아릴 수 있게 해 놓지를 못하며, 날마다 달마다 사적으로 쓰는 비용이 그 얼마인지를 알지 못할 정도이고, 오직 호조의 경비가 날로 매우 궁핍해지고 독촉이 날로 사나워져 조종(祖宗)의 좋은 법을 폐지하고 혹독함을 다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민력이 매우 곤궁해지는 소이(所以)입니다.” 하였다.
신이 생각건대, 천자의 부(富)는 사해(四海)에 저장되어 있고, 제후의 부는 백성에게 저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창고(倉庫)와 부고(府庫)를 두는 것은 공공의 물품을 보관하기 위한 것이니, 사사롭게 축적해 두어서는 안 됩니다. 임금이 사사로이 축적해 두는 것을 이(利)를 취한다고 하니, 이익의 원천이 한번 열리면 모든 신하들이 제각기 다투어 갈 것이니, 어딘들 이르지 못하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전하께서 참으로 해 보실 마음이 있으시면, 반드시 먼저 내탕사(內帑司)와 내수사(內需司)를 호조(戶曹)에 부속시켜 국가 공공(公共)의 비용으로 삼고, 사재(私財)로 삼지 말아서 신민으로 하여금 전하에게 터럭만큼도 이익을 탐내는 마음이 없음을 분명히 우러러보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더러운 버릇을 씻고 사유(四維)를 붙들어 지극히 좋은 정사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마땅히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상은 의(義)와 이(利)를 분별하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절용 생재(節用生財)에 대하여
○재물을 생산하는 데에는 큰 방도가 있으니, 생산하는 사람은 많고 놀고먹는 자가 적으며, 일하는 사람은 민첩하게 하고 사용하는 사람은 천천히 하면 재물은 항상 풍족할 것이다. 《대학(大學)》
여씨(呂氏)가 이르기를, “나라에 노는 백성이 없으면 생산하는 이가 많을 것이요, 조정에 요행으로 얻은 벼슬이 없으면 놀고먹는 자가 적을 것이며, 농사철을 빼앗지 않으면 일하는 것이 민첩할 것이요, 수입(收入)을 헤아려서 지출(支出)한다면 소비가 서서히 진행될 것이다.” 하였다. ○ 주자가 말하기를, “나라를 넉넉하게 하는 방법은 농사에 힘쓰고 비용을 절약하는 데 달려 있다.” 하였다.
“나라에 9년의 저축이 없으면 부족(不足)하다.” 하고, “6년의 저축이 없으면 급하다.” 하고, “3년의 저축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다.” 한다. 3년을 경작하면 반드시 1년 먹을 식량 여분이 있고 9년을 경작하면 반드시 3년 먹을 식량의 여분이 있으니, 비록 가뭄이나 장마가 있다 하더라도 백성에게 굶주린 기색이 없은 뒤에야 천자의 음식상에 날마다 많은 찬을 올리고, 음악으로 식사를 도울 수가 있을 것이다. 《예기》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인력이 갖추어지면 천변(天變)에 응할 수 있으니, 왕이 백성들과 더불어 근심을 같이할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가뭄이나 장마가 있다 하더라도, 백성들이 굶주린 기색이 없은 뒤에야 천자의 음식상에 좋은 찬을 올리고 음악을 연주해 식사를 돕는다.” 하였다.
《주역(周易)》에 말하기를, “하늘과 땅이 절도가 있어 사계절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제도를 조절하여 재물을 상하게 하지 않고 백성들을 해치지 않는다.” 하였다. 《주역(周易)》 〈절괘(節卦) 단사(彖辭)〉
정자가 말하기를, “이것은 절도[節]의 도(道)를 미루어 말한 것이다. 천지가 절도가 있는 까닭에 사계절을 이루는 것이니, 절도가 없으면 차례를 잃는다. 성인이 제도를 세워 절도를 만든 까닭에 재물을 상하게 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은 욕심이 무궁하므로 진실로 제도로써 절제하지 않으면 사치하고 방자해서, 재물을 상하게 하고 백성을 해치는 데 이른다.” 하였다. ○ 또 손괘(損卦)의 전(傳)에 말하기를, “손(損)이란 지나친 것을 덜어서 중(中)에 나아가는 것이요, 말단적인 것을 덜어서 본질에 나아가는 것이다. 천하의 해(害)는 말단적인 것이 이기는 것으로부터 말미암지 않는 것이 없다. 큰 집과 조각한 담장[峻宇雕牆]은 궁실(宮室)에서 나왔고, 주지육림(酒池肉林)은 음식(飮食)에서 나왔고, 지나치게 혹독하고 잔인(殘忍)한 것은 형벌에서 나왔고, 군사를 동원하여 함부로 전쟁을 하는 것은 본래 정벌(征伐)에서 나왔다. 대개 사람의 욕심이 지나친 것은 다 본래 몸을 받들고 기르는 것에서 나왔는데, 그 흐름이 멀어지면서 해가 되는 것이다. 선왕(先王)이 그 처음에 제정한 것이 천리(天理)요, 뒷사람이 말류로 흐르는 것이 인욕(人欲)인데, 손(損)의 뜻은 이 인욕을 버리고 천리를 회복한다는 것이다.” 하였다. ○ 주자가 말하기를, “국가의 재용이 다 백성에게서 나왔는데, 만약 이것을 절제하지 아니하여 용도에 부족함이 있으면, 반드시 백성들에게 부세를 함부로 거두어들일 것이니, 비록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백성은 그 혜택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사랑하려는 이는 반드시 먼저 비용을 절약[節用]해야 하니, 이것은 바꾸지 못할 원리이다.” 하였다.
이상은 비용을 절약하고 재물을 생산하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제민 항산(制民恒産)에 대하여
○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일정한 생업[恒産]이 없더라도 변치 않는 마음[恒心]을 갖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그렇게 할 수 있고, 일반 백성들은 일정한 재산이 없으면 그 때문에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변치 않는 마음이 없다면 방탕한 짓이나 사악(邪惡)한 짓 등을 못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죄를 지은 뒤에 뒤따라 처벌한다면, 이것은 백성들에게 그물질하는[罔民] 것이니, 어찌 어진 사람이 임금의 자리에 앉아 백성들에게 그물질하는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맹자》 아래도 이와 같다.
주자가 말하기를, “항(恒)은 항상이란 뜻이요, 산(産)은 생업(生業)이란 뜻이니, 항산은 항상 살아 나갈 수 있는 생업이다. 항심은 사람이 항상 지니고 있는 착한 마음이다. 선비는 학문을 했기 때문에 의리를 안다. 그러므로 비록 항산이 없다 하더라도 항심이 있지만, 백성들은 그렇게 될 수 없다. 망(罔)은 나망(羅罔)과 같으니, 보지 못하게 속여서 잡는 것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옛날 어진 임금은 백성의 산업을 제정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위로는 부모를 섬길 수 있고, 아래로는 처자를 먹여 살릴[畜] 수 있어서 풍년이 들면 일년 내내 배불리 먹을 수 있고, 흉년이 들더라도 죽음을 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 뒤에 백성을 선한 길로 인도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를 따라가기가 쉬웠다.[輕] 축(畜)은 ‘휵’으로 읽는다.
주자가 말하기를, “경(輕)은 쉽다는 뜻이다. 이것은 백성에게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오늘날 백성들의 산업을 제정하는 것에 위로는 부모를 섬기기에 부족하고, 아래로는 처자를 먹여 살리기에 부족하여, 풍년이 들더라도 종신토록 고생해야 되고, 흉년이 들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이렇게 되면 백성들을 죽음에서 구제하기에도 힘이 넉넉하지[贍] 못할까 걱정이니, 어느 겨를에 예의를 닦겠는가.
주자가 말하기를, “섬(贍)은 넉넉하다는 뜻이다. 이 말은 소위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농사철을 어기지 않게 하면 곡식이 이루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넉넉해질 것이고, 촘촘한 그물[細網]을 못에 넣지 않게 하면 물고기와 자라가 이루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넉넉해질 것이며, 적절한 시기에만 산림(山林)을 벌채하게 하면, 재목이 이루 다 쓸 수 없을 만큼 넉넉해질 것이니, 곡식과 물고기가 이루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넉넉해지고, 재목이 이루 다 쓸 수 없을 만큼 넉넉해지면, 백성들로 하여금 산 사람을 부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데 유감이 없게 할 수 있다. 산 사람을 부양하고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데 유감이 없게 하는 것이 왕도 정치(王道政治)의 시작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농사철이란 봄에는 밭 갈고 여름에는 김매고 가을에는 거두는 시기를 말한다. 대개 국가에서 부역[役]을 일으킬 적에는 이 때를 어기게 하지 말고, 겨울이 되어서야 부역을 시켜야 한다. 촉[數]은 빽빽하다는 뜻이요, 고(罟)는 그물이며, 오(洿)는 웅덩이인데 물이 고여 있는 곳이다. 옛날에 그물은 반드시 그물눈이 네 치[寸]인 것을 사용하였고, 물고기는 한 자[尺]가 차지 않으면 시장에 내다 팔지 못하고 사람들도 먹을 수 없었다. 그리고 산림과 시내나 못은 백성들과 더불어 공유(公有)하되 이것을 엄격하게 금하는 것이 있어서, 여(厲)는 막고 지키는 것이요, 금(禁)은 백성들이 적절한 시기가 아닌데 취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다. 초목은 잎이 다 떨어진 뒤에야 도끼를 들일 수 있었으니, 이것은 모두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한 초기에 법제가 미비했을 때의 일로, 또 천지자연의 이로운 것을 바탕으로 준절(撙節)하고 아껴 기르던 일이다. 그러나 음식과 궁실은 산 사람을 부양하는 것이요, 제사와 관곽(棺槨)은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는 일이니, 이것은 모두 백성들에게 급한 일로, 없어서는 안 될 일이다. 오늘날 모두가 이렇게 되도록 해 주면 사람들에게 한(恨)이 없을 것이다. 왕도(王道)라는 것은 민심을 얻는 것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왕도의 시작이라고 하였다.” 하였다.
5묘(畝)의 택지에다 뽕나무를 심으면 50세의 노인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을 것이고, 닭ㆍ돼지ㆍ개 등의 가축을 기르는 데 그 번식 시기[時]를 잃지 않으면 70세의 노인이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이고, 1백 묘의 전답을 가진 경작자의 농번기를 빼앗지 않는다면 몇 명의 식구를 가진 자가 굶주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상서(庠序) 교육을 신중하게 실시하여 효제(孝悌)의 의리를 되풀이하여[申] 가르친다면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길에 짐을 지거나 이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70세의 노인이 비단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일반 백성이 주리지 않고 헐벗지 않게 되고서도 왕 노릇을 하지 못한 사람은 없다.
주자가 말하기를, “시(時)는 새끼를 밸 때를 말하는 것이니, 예를 들면 맹춘(孟春 음력 정월)에는 희생을 쓸 고기로 암컷은 쓰지 아니하는 유와 같은 것을 말한다. 상(庠)과 서(序)는 모두 학교 이름이다. 신(申)은 거듭한다는 것으로 자세히 반복하는 뜻이다. 반(頒)은 반(斑) 자와 같으니, 노인의 머리가 반은 검고 반은 흰 것을 말한다. 이 말은 법제와 품절(品節)을 상세하게 다 갖추고 마름질하여 이루어 내고, 보좌하여 돕는 도를 극진히 잘 이루어 백성을 돕는 것이니, 이것이 왕도의 완성이다.” 하였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하늘과 땅이 사귀는 것이 태괘(泰卦)이다. 임금은 이를 보고서 하늘과 땅의 도(道)를 잘 마름질하여 이루어 내고, 하늘과 땅의 마땅함을 도와서 이로써 백성을 돕는다.” 하였다. 《주역(周易)》 〈태괘(泰卦) 상사(象辭)〉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천지가 사귀어서 음양이 조화를 이루면 만물이 무성하게 이루어지므로, 태(泰)가 된다. 임금은 마땅히 천지가 통하여 사귀는 태의 상(象)을 체득하여 천지의 도를 잘 마름질하여 이루고[財成] 천지의 마땅한 도리를 도와서[輔相] 백성을 도와야 한다. 재성(財成)은 그 시행할 방도를 잘 마름질하여 이루는 것을 말한다. 보상(輔相)은 백성들에게 천시(天時)를 쓰고 지리(地利)를 따르며 교화 육성의 공을 도와서 그 풍성하고 아름다운 이익을 이루어 내게 하는 것이다.” 하였다.
이상은 백성에게 일정한 생업을 만들어 주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수명 군정(修明軍政)에 대하여
○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지(地) 가운데에 수(水)가 있는 것이 사괘(師卦)이다. 군자가 이를 본받아 백성들을 포용(包容)하고 무리를 기르는 것이다.” 하였다. 《주역(周易)》 〈사괘(師卦) 상사(象辭)〉
정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땅 가운데에 물이 있는 상(象)을 보고서 백성을 보존하고, 그 무리를 기른다.” 하였다. ○ 주자가 말하기를, “물은 땅에서 벗어나지 않고 군사는 백성에게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백성을 잘 기르면 무리를 얻을 수 있다.” 하였다.
사(師)는 곧은 것[貞]이니 장인(丈人)이라야 길(吉)하고 허물이 없을 것이다. 《주역(周易)》 〈사괘(師卦) 단사(彖辭)〉
정자가 말하기를, “사(師)의 도는 바른 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군대를 일으키고 무리를 동원하여 천하에 해독을 끼치니, 올바른 도리로써 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으니, 그들을 강제로 내몰 뿐이다. 그러므로 사(師)는 곧은 것을 가지고 중심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 무리를 동원하는 것이 바르다 하더라도 통솔자가 반드시 장인(丈人)이라야 길하고 허물이 없을 것이다. 장인이란 것은 존엄한 이를 말하는 것이니, 군사를 통솔하는 이가 그 무리들이 존경하고 믿고 두려워하고 복종하는 바가 아니라 어찌 인심이 따르게 할 수 있겠는가. 이른바 장인이란 것은 반드시 본래 그 처한 곳이 높고 귀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 재모(才謀)와 덕업을 무리들이 두려워하고 복종하는 대상이면 된다.” 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그대의 거마(車馬)와 궁시(弓矢)와 군사[戎]를 잘 정돈하여 전쟁이 일어나는 데 대비하고 먼 데 있는 오랑캐에 대비하라.” 하였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억(抑)〉
주자는 “계(戒)는 대비한다는 뜻이요, 융(戎)은 군사이며, 작(作)은 일어남이요, 적(逷)은 멀다는 뜻이다.” 하였다.
신이 생각건대, 옛날에는 병사와 농사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평일에는 민생을 후하게 하여 은택을 입히며, 때로는 무예(武藝)를 시험하고 사냥을 하여 검열하고, 일이 없을 때에는 비려(比閭)와 족당(族黨)을 위하여, 사도(司徒)에게 교육을 받으며, 임금을 높이고 친족을 사랑하는 행실을 독실히 하고, 유사시에는 군사로 편성되어 사마(司馬)의 명령을 받들어 윗사람을 친애하고 어른을 위해 죽는 뜻을 분발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왕자의 군대는 정벌은 하여도 전쟁은 없었으니 아무도 감히 대적할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세에는 양민(養民)하는 정사를 시행하지 않고 병사를 점고(點考)하는 법이 엄격하기만 하여 거리의 사람들을 몰아서 적군과 싸우게 하며, 나라의 재용을 다 써서 군량을 공급하였으니, 이것은 당송(唐宋) 때 병정(兵政)의 폐단입니다. 우리나라의 선왕들은 백성들 중에서 선발하여 병정을 만들었고, 병정을 농경에 종사하게 하였다가 식량이 넉넉하여지면 군대로 나아가게 하였고 또 번갈아 휴식하게 하여, 나라에는 군량의 낭비가 없었고, 군사에게는 또 자기만 힘들다는 탄식이 없어서 그 법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차츰 민생이 곤핍해짐에 따라 근본이 튼튼하지 못하고, 각 진영의 장수들은 싹 빼앗아 가 백성들이 계속적으로 흩어지고 변방 경비의 결원 보충은 그 친족과 이웃으로 충당하니, 도망치는 이가 날로 많아져서 그 해독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장정을 끌어다가 인원수를 채워 놓으면 도망쳐 버리고 돌아오지 않으며, 병적을 완비하는 데 힘을 쓴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빈 명부만 안고 있으니, 그 형세가 필시 백성들이 싹 사라지고 난 뒤에야 그만두게 될 것입니다. 그 폐단의 근원을 궁구하면 실로 이것은 백성에게 항산(恒産)이 없고, 장수가 사람을 얻지 못한 데서 오는 소치입니다. 이것이 백성들을 포용하고 무리를 길러 나가는 것이 군정(軍政)의 근본이 되고, 장인(丈人)과 수사(帥師)가 군정의 강령이 되는 이유입니다. 전하께서는 마땅히 깊이 생각하시옵소서.
이상은 군정(軍政)을 정비하여 밝히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신이 생각건대, 임금은 나라에 의존하고, 나라는 백성에게 의존하는 것이므로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 것이라, 백성이 하늘로 삼는 것을 잃으면 국가가 의존할 데를 잃어버리니, 이것은 불변의 진리(眞理)입니다. 임금의 정치는 오직 백성에게 부모 노릇하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 민력(民力)을 늦추어 주고 민산(民産)을 후하게 해 주어서, 백성들이 하늘로 여기는 바가 넉넉하여 그 본연의 착한 마음을 보존하게 해 줄 뿐입니다. 임금으로서 이런 정치를 행하지 못하는 것은 욕심(慾心)이 많은 데에 얽매여 스스로 절도를 지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개 자기에게 이롭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남에게 해롭게 되니, 어찌 자기의 욕심을 채우고도 그 해로움이 백성에게 미치지 않는 일이 있겠습니까. 간혹 임금 중에는 비록 많은 욕심에 얽매이는 것은 없다 하더라도, 습관에 따라 하던 대로 하고 태만하게 하여 백성을 구하지 못하는 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욕심과는 차이가 있지만, 거꾸로 매달려 있는 듯한 심한 고통을 풀어 주지 못하고 나라의 근본을 박탈하여, 혼란과 멸망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은 한가지입니다. 아, 부모는 자식을 충심으로 사랑하여 그가 즐거워하는 것을 이루어 주고, 그 싫어하는 것을 제거해 주어 그 극진한 것을 다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임금이 진실로 백성에게 부모 노릇을 하고자 마음먹는다면, 한 백성이 제자리를 잡지 못해도 다 나의 적자(赤子)가 우물로 빠져들어 가는 것 같이 여겨, 미친 듯이 달려가서 기를 쓰고 이것을 구제하려 할 것입니다. 누가 적자가 우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을 앉아서 보기만 하고 태연히 웃고 담화하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옛날 성스러운 임금은 그 직책이 백성들에게 부모 노릇하는 곳에 있는 줄을 깊이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애쓰고 안타깝게 여겨 밥 먹을 겨를도 없고 마음은 언제나 이 백성들에게 있었을 뿐입니다. 그 백성의 힘을 아끼기를 마치 살을 베어 내는 듯이 어렵게 여기고, 그 백성의 생산에 힘쓰기를, 마치 배고플 때 먹이를 구해 주고, 그 폐습(弊習)을 혁신하기를 마치 급한 병에 약을 복용하듯이 하여, 반드시 그 백성들을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경지에 도달하게 한 뒤에야 마음으로 만족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백성은 은혜가 골수에 스며들고 사랑이 폐부(肺腑)에 맺히어, 임금을 위하여 죽는 것을 단 엿을 먹는 것보다 더 쉽게 하였으니, 국가의 형세가 어찌 오래도록 안정되지 않았겠습니까. 임금에게 부모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백성들도 사랑하고 받들 생각이 없고, 굶주림과 추위가 몸에 절박하기 때문에 예의가 다 상실되어 그들이 임금 보기를 승냥이나 호랑이ㆍ원수와 같이 여기고, 임금이 된 이도 또 그들을 업신여기면서 누구도 감히 나를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컴컴한 가운데 화(禍)의 싹이 잠복해 있어도 경계할 줄 모르다가, 하루아침에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변이 일어나고 소홀히 여기던 데서 환란이 생겨 필부필부(匹夫匹婦)가 다 강적이 된 뒤에는 후회한다 하더라도 이미 소용이 없습니다. 대개 백성의 힘이 쉬지 못하고 백성의 생산이 늘지 않으면, 비록 군사가 진(秦)나라와 같이 강하고, 재물이 수(隋)나라와 같이 부유할지라도 뿌리를 제거한 나무의 가지와 잎이 무성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말라 버리는 것을 서서 기다릴 수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물며 수나라나 진나라만큼 부강하지 못한 데 있어서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요, 백성을 편안히 하는 것은 자기를 편안히 하는 것입니다. 대개 백성을 편안히 한다는 것은 그들을 위하여 이(利)를 일으키고 해(害)를 없애 그들로 하여금 그 삶을 즐기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고루한 것을 그대로 따르고 그릇된 것을 그대로 지켜 그럭저럭 모면하면서 일폐(一弊)도 혁신하지 못하고 일정(一政)도 들어 쓰지 못하고서, 다만 아침저녁으로 간절하게, “나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 한다.”고 말로만 부르짖고 명령한다면, 이것은 성심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백성들은 지극히 어리석으면서도 지극히 신령(神靈)하니, 어찌 말로 속일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백성들이 편안하지 못한 것은 전하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알고도 구제하지 않으시면 백성들의 원망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엎드려 살피건대, 전하께서는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제9장 명교(明敎)
신이 생각건대, 《예기》에 이르기를, “노는 땅이 없고 놀고먹는 백성이 없으면 절제 있게 먹고 제때에 일을 하여 백성들이 모두 자기가 사는 곳을 편안하게 여기고 일을 즐거워하고 공업(功業)에 힘쓰며, 임금을 높이고 윗사람을 친하게 대하니, 그런 뒤에 학문을 일으킨다.” 하였습니다. 먼저 부유하게 하고 그다음에 교화하는 것은 이치와 사세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민(安民) 다음에, 명교(明敎)로써 끝을 맺습니다.
가르침을 일으키는 근본에 대하여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법령[政]으로 인도[道]하고 형벌로 다스리면[齊] 백성들은 형벌을 모면하려고만 할 뿐 부끄러움이 없다.” 하였다. 《논어》 아래도 이와 같다.
주자가 말하기를, “도(道)는 인도한다는 뜻과 같으니 앞에서 이끄는 것을 말한 것이요, 정(政)은 법제(法制)와 금령(禁令)을 말한 것이며, 제(齊)는 한결같이 다스려 나간다는 뜻이다. 인도하여도 따르지 않는 자는 형으로 한결같이 다스려 나간다는 것이다. ‘형벌을 모면하려고만 할 뿐 부끄러움이 없다.[免而無恥]’는 것은 구차하게 형벌을 모면하려고만 하지 부끄러워함이 없다는 것이니, 이것은 대개 감히 악을 저지르지는 못하더라도 악을 하려는 마음은 없어지지 않은 것이다.” 하였다.
덕으로 인도하고 예(禮)로 다스리면 부끄러움을 알고, 또 착한 데로 나아갈[格] 것이다.
주자가 말하기를, “예는 제도(制度)와 품절(品節)이요, 격(格)은 이른다는 뜻이다. 임금이 몸소 행하여 거느리면 백성들이 진실로 보고 느끼는 것이 있어서 흥기한다. 그러나 여기에 정도 차이가 있어 한결같지 않은 것은 예(禮)로써 한결같이 다스리면, 백성들이 불선(不善)을 수치로 여기고 또 선에 나아가는 것이다. 일설에 격(格)은 바르게 하는 것이니,
《서경(書經)》에, ‘그 그른 마음을 바르게 한다.’ 하였다.” 하였다. ○ 또 말하기를, “정(政)이라는 것은 다스리는 기구[具]요, 형(刑)이라는 것은 다스림을 돕는 법이요, 덕과 예는 다스리는 근본이요, 덕은 또 예(禮)의 근본이다. 이것은 서로 시종(始終)이 되므로 한쪽이라도 폐할 수 없다. 그러나 정(政)과 형(刑)은 다만 백성들이 죄를 멀리하게 할 뿐이지만, 덕과 예의 효력은 백성들로 하여금 날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선에 나아가게 함이 있다. 그러므로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 말단적인 정(政)과 형(刑)만 믿을 게 아니라, 그 근본을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하였다. ○ 정자가 말하기를, “사람을 가르치는 이가 착한 마음을 기르면 악이 자연히 사라지고, 백성을 다스리는 이가 공경과 겸양으로 인도하면 다툼이 자연히 멎을 것이다.” 하였다. ○
가의(賈誼)가 상소하여 아뢰기를, “대개 사람의 지혜는 지난 일은 볼 수 있지마는 앞으로 다가올 일은 보지 못합니다. 예(禮)는 앞으로 일어나기 전에 미리 금하고, 법은 이미 그렇게 되고 난 뒤에 금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이 쓰이는 까닭은 알기가 쉽고, 예가 생겨나는 까닭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경사스러운 상(賞)으로써 선을 권하고 형벌로써 악을 징계하는 것은, 선왕께서 금석(金石)처럼 굳게 지켜 이런 정치를 하셨고, 사시(四時)처럼 신실하게 이런 영(令)을 행하였으며, 천지와 같이 공평무사하게 이런 공정함에 근거하였으니, 어찌 이것을 사용하지 아니하였겠습니까. 그러나 ‘예(禮)니 예니’ 하는 것은 악이 싹트기 전에 근절하여 미묘한 데서 가르침을 일으키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백성으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선에 나아가고 죄를 멀리하게 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송사를 듣고 판정하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과 같으나 반드시 송사가 없도록 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임금이 된 이는 먼저 취하고 버릴 것을 살펴야 할 것이니, 취하고 버리는 기준이 안에서 정해지면 편하고 위태로운 싹이 밖에서 응하는 것입니다. 편안한 것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편안한 것이 아니요, 위태로운 것도 하루아침에 갑자기 위태로운 것은 아닙니다. 다 점점 쌓여서 그렇게 된 것이니, 살피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임금이 쌓을 것은 그 취사(取舍)에 달려 있습니다. 예의로써 다스리는 사람은 예의를 쌓고 형벌로써 다스리는 사람은 형벌을 쌓으니, 형벌이 쌓이면 백성들이 원망하고, 예의가 쌓이면 백성들이 화친(和親)해집니다. 그러므로 대대로 임금이 백성을 착하게 하고 싶은 것은 같지마는, 백성을 착하게 하는 방법은 달라서, 혹 덕교(德敎)로써 인도하기도 하고 혹 법령으로써 몰기도 하는데, 덕교로써 인도하면 덕교가 흡족해서 백성들의 기상이 즐거워지고, 법령으로써 몰면 법령이 극에 달하여 백성들의 기풍이 애절해지니, 슬픔이 일면 화(禍)가 응하고 즐거움이 일면 복이 응합니다. 진시황(秦始皇)이 종묘를 높이고 자손을 편안하게 하려 한 것은 탕왕(湯王)ㆍ무왕(武王)과 같았으나, 탕왕과 무왕은 그 덕을 광대히 하여 6, 7백 년을 행하여도 잃지 않았고, 진시황은 천하를 통치한 10여 년 만에 크게 망하였으니, 이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탕과 무왕은 취사(取舍)를 결정할 때 잘 살폈고, 진시황은 취사를 결정할 때 살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개 천하는 큰 그릇입니다. 지금 사람이 그릇을 두되 편안한 데 두면 편안해지고, 위태로운 데 두면 위태로워지기도 합니다. 탕왕과 무왕은 천하를 인(仁)ㆍ의(義)ㆍ예(禮)ㆍ악(樂)에 두었기 때문에 덕과 혜택이 사방의 오랑캐에까지 흡족하게 입혀져서, 그 자손 수십 대로 쌓여 나갔으니, 이것은 천하가 모두 아는 바입니다. 진시황은 천하를 법령과 형벌에 두었기 때문에 덕과 혜택은 없고 원망과 독기(毒氣)만 세상에 차서 화의 기미가 몸에 미치고 자손까지 끊어졌으니, 이것은 천하가 모두 아는 바입니다. 이것이 밝은 공효요 큰 증험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하는 말에 ‘남의 말을 들을 때, 반드시 그가 한 일을 가지고서 보면 말하는 자가 감히 함부로 말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지금 혹 예의가 법령만 못하고 교화가 형벌만 못하다 하기도 하는데, 임금으로서 어찌 은(殷)나라ㆍ주(周)나라ㆍ진(秦)나라의 일을 가지고 살펴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이상은 가르침을 일으키는 근본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입교(立敎)의 절목(節目)에 대하여
○ 순(舜)이 말하기를, “설(契)아, 백성들은 서로 친하게 지내지 않으며, 오품(五品)을 따르지[遜] 않는다. 그대에게 사도(司徒)의 직을 맡기니, 삼가 오교(五敎)를 펴되[敷] 너그러이[寬] 하라.” 하였다. 《서경(書經)》 〈우서(虞書) 순전(舜典)〉
채씨(蔡氏)가 말하기를, “오품(五品)은 부자ㆍ군신ㆍ부부ㆍ장유ㆍ붕우 다섯 가지 인륜의 명칭과 등급이다. 손(遜)은 순(順)한다는 말이며, 사도(司徒)는 가르침을 맡은 벼슬이고, 부(敷)는 편다는 말이며, 오교(五敎)는 다섯 가지 당연한 이치로 가르침의 규율을 삼은 것이요, 관(寬)은 여유 있게 기다린다는 뜻이니, 이것은 백성들에게 점점 배어들게 하는 것이다.” 하였다. ○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는 도리가 있다.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으며 편히 거처하면서 가르침이 없다면 새나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 성인이 이 점을 근심하여 설(契)에게 사도(司徒)의 직을 주어 인륜을 가르치게 하였다. 부자간에는 친함이 있어야 하고, 군신 간에는 의리가 있어야 하며, 부부간에는 분별이 있어야 하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어야 하며, 벗들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한다.” 하였다.
사도(司徒)가 육례(六禮)를 닦아서 백성의 성품을 절제하고, 칠교(七敎)를 밝혀서 백성의 덕을 일으키고, 팔정(八政)을 정제하여 음탕한 것을 막고도 도덕을 순일하게 하여 풍속을 같게 하고, 노인을 봉양하여 효도(孝道)를 다하고, 고독한 이를 가련히 여겨 부족한 것을 채워 주고, 어진 이를 숭상하여 덕을 높이고, 불초(不肖)한 이를 미워하여 악을 물리친다. 《예기(禮記)》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육례(六禮)는 관례(冠禮)ㆍ혼례(婚禮)ㆍ상례(喪禮)ㆍ제례(祭禮)ㆍ향례(鄕禮)ㆍ상견례(相見禮)요, 향례와 상견례는 지금 〈향음주례(鄕飮酒禮)〉와 〈사상견례(士相見禮)〉가 있어 참고해 볼 수 있다. 칠교(七敎)는 부자ㆍ형제ㆍ부부ㆍ군신ㆍ장유ㆍ붕우ㆍ빈객이요, 팔정(八政)은 음식ㆍ의복ㆍ사위(事爲) 백공(百工)의 기예(技藝)이다.ㆍ이별(異別) 지방에 따라 사용하는 용기에 차이가 있다.ㆍ도(度 자[尺])ㆍ양(量 말과 되)ㆍ수(數)ㆍ제(制 포백의 규격) 도량은 장단대소(長短大小)가 다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요, 수와 제는 다과광협(多寡廣狹)이 다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하였다.
이상은 가르침을 세우는 조목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학교를 일으켜 사습(士習)을 바로잡는 것에 대하여
○ 옥은 갈지 않으면 그릇을 이루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 군자가 만일 백성을 교화하여 풍속을 이루려 하면 반드시 그 배움으로부터 말미암아야 한다. 《예기》 아래도 이와 같다.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루는 데는 반드시 당우(唐虞) 때의, ‘아, 변화하여 이에 화평해진다.[於變時雍]’ 하는 것과 같아야 이에 지극해진다. 여기의 배움은 곧 대학의 도인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의 일이다.” 하였다.
옛날의 교육 기관으로 가(家)에는 숙(塾)이 있고, 당(黨)에는 상(庠)이 있었으며, 술(術) 주(州)를 말한다. 에는 서(序)가 있고, 국(國)에는 학(學)이 있다.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옛날에는 25가(家)가 한 여(閭)가 되어 한 거리에 같이 있었다. 거리의 입구에는 문이 있고 문 곁에는 숙(塾)이 있다. 백성으로서 가(家)에 있는 이는 조석으로 숙에서 교육을 받는다. 500 가가 한 당(黨)이 되는데 당의 교육 기관을 상(庠)이라 한다. 상에서는 여숙(閭塾)에서 뽑혀 올라온 사람을 가르친다. 술(術)은 주(州)인데 2500가가 한 주가 된다. 주의 교육 기관을 서(序)라 하는데 당학(黨學)에서 뽑혀 올라온 사람을 가르친다. 그리고 천자가 거하는 도읍과 제후의 국중(國中)의 학문을 국학(國學)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임금의 맏아들과 중자(衆子)ㆍ경대부와 선비의 아들, 그리고 준재로서 뽑혀 올라온 선비들을 가르친다.” 하였다.
악정(樂正)이 사술(四術)을 숭상하고, 사교(四敎)를 세워서 선왕의 시(詩)ㆍ서(書)ㆍ예(禮)ㆍ악(樂)의 순서로 선비를 양성[造]하되 봄가을에는 예(禮)ㆍ악(樂)을 가르치고 겨울과 여름에는 시(詩)ㆍ서(書)를 가르쳤다.
오씨(吳氏)가 말하기를, “악정(樂正)은 교육을 맡은 벼슬이다. 술(術)은 길을 이름하니, 시ㆍ서ㆍ예ㆍ악의 네 가지 가르침이 바로 덕에 들어가는 길임을 말한 것이다. 조(造)는 이룬다는 뜻이다.” 하였다. ○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옛사람의 교육은 비록 사계절에 따라 각각 익히는 것이 있으나, 그 실제는 풀을 자르듯이 저것을 버리고 이것만을 익히는 것이 아니니,
호언(互言) 정도일 뿐이지, 봄가을에 시서를 가르치지 않고 여름과 겨울에 예악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하였다. ○ 동씨(董氏
동중서(董仲舒))의 〈대책(對策)〉에 이르기를, “《춘추(春秋)》에서 하나로 통합하는 것을 중대하게 여기는 것은 이것이 천하의 변치 않는 법이요, 고금의 공통된 의리이기 때문입니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은공(隱公) 원년 춘왕정월(春王正月)이라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왕정월」이라 하였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로 통하는 것을 중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동중서(董仲舒)는 대개 이것을 빌려서 천하의 도술(道術)을 마땅히 하나로 통일해야 함을 밝혔습니다. 지금은 스승들의 도가 다르고 사람들의 이론이 달라서, 백가(百家)가 모두 방향을 달리하고 뜻이 같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위에서 하나로 계통을 유지할 수가 없어서 법제가 자주 변하여, 아래에서는 그 지킬 바를 알지 못합니다. 어리석은 신이 생각건대, 육예(六藝)의 과목과 공자의 술(術)에 있지 않은 모든 것은 다 그 도를 끊어 버리고 다시 나오지 못하게 하여, 간사하고 편벽된 말이 사라진 연후에 기강이 하나로 귀결될 수 있고, 법도가 밝아질 수 있으며, 백성들이 따를 곳을 알 것입니다.” 하였다.
신이 생각건대, 중고(中古) 이래로 도술이 분열되어, 노자(老子)ㆍ장자(莊子)ㆍ양주(楊朱)ㆍ묵적(墨翟)ㆍ신불해(申不害)ㆍ한비자(韓非子)ㆍ소진(蘇秦)ㆍ장의(張儀)의 설이 백성들을 혼란케 하였고, 한(漢)ㆍ당(唐)에 내려오면서 불교까지 겹쳐, 천하가 어두워져 누구도 따를 수가 없게 되자 호걸스러운 선비가 대부분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를 당해서도 인재가 배출되어 왕왕 실용(實用)에 적합하였습니다. 송(宋)나라 이후부터는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공이 우주를 떠받치니 도술이 통일되고, 더 이상 다른 갈래가 없어져 마땅히 인재를 이루기가 쉬운 듯하였는데, 오직 사람들이 학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도(世道)는 날로 떨어지고 인심은 더럽혀져서, 의리를 돌보지 않고 이익만을 구합니다. 인물이 묘연(眇然)하여 도리어 이단(異端)이 횡행하던 때만도 못하니, 이익을 탐내는 해가 이단의 해보다 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깊이 개탄할 만한 일입니다. 전하께서는 마땅히 서둘러서 옛날의 도를 회복하시고 그것으로 가르쳐 성취시키옵소서.
대사도(大司徒)는 향당에서 세 가지 물(物)로써 만민(萬民)을 가르치고 어진 이를 들어[興] 대접하였다. 《주례》 아래도 이와 같다.
주씨(朱氏)가 말하기를, “물(物)은 일이란 뜻이다. 흥(興)은 든다[擧]는 말이다. 세 가지 일이 이루어졌다고 고(告)하면 향대부(鄕大夫)가 그 현능(賢能)한 이를 천거하여 예로써 빈접(賓接)한다.” 하였다.
첫째는 육덕(六德)인데, 지(知)ㆍ인(仁)ㆍ성(聖)ㆍ의(義)ㆍ충(忠)ㆍ화(和)이다.
주씨가 말하기를, “지(知)는 시비를 분별한다는 것이요, 인(仁)은 사욕이 없다는 것이며, 성(聖)은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요, 의(義)는 단제(斷制)가 있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을 다하는 것을 충(忠)이라 하고, 어긋남이 없는 것을 화(和)라고 한다.” 하였다.
둘째는 육행(六行)인데, 효(孝)ㆍ우(友)ㆍ목(睦)ㆍ연(婣)ㆍ임(任)ㆍ휼(恤)이다.
주씨가 말하기를, “효(孝)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요, 우(友)는 형제에게 우애하는 것이며, 목(睦)은 구족(九族)에게 친목하는 것이요, 연(婣)은 외친(外親)에게 화목하는 것이며, 임(任)은 벗에게 신임이 있는 것이요, 휼(恤)은 가난한 이를 진휼(賑恤)하는 것이다.” 하였다.
셋째는 육예(六藝)인데, 예(禮)ㆍ악(樂)ㆍ사(射)ㆍ어(御)ㆍ서(書)ㆍ수(數)이다.
주씨가 말하기를, “예(禮)는
오례(五禮)요, 악(樂)은
육악(六樂)이요, 사(射)는
오사(五射)요, 어(御)는
오어(五御)요, 서(書)는
육서(六書)요, 수(數)는
구수(九數)이다.” 하였다. ○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예(禮)로써 마음[中]을 제지하고, 악(樂)으로써 화(和)를 인도하며, 사(射)로써 덕행을 보고, 어(御)로써 말달리기를 바르게 하고, 서(書)로써 마음의 계획을 보고, 수(數)로써 물(物)의 변화를 다하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지극한 이치가 들어 있어서 일상생활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하였다. ○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천하 다스리는 것을 잘 말하는 이는 법도가 서지 않은 것을 근심하지 않고 인재가 완성되지 못한 것을 근심하며, 수신(修身)을 잘하는 이는 기질(氣質)이 아름답지 못한 것을 근심하지 않고, 스승에게 배운 것이 밝지 못한 것을 근심한다. 인재가 완성되지 못하면 비록 좋은 법과 아름다운 뜻이 있다 하더라도 누가 이것을 행하며, 스승에게 배운 것이 밝지 못하면 비록 도를 받아들이는 바탕이 있다 하더라도 누가 이것을 이룩하겠는가.” 하였다. ○ 또 말하기를, “옛날 사람은 어려서부터 배워서 귀와 눈으로 보고 듣는 것이 모두 착하여 자라서도 기이한 사물을 보지 않았다. 그러므로 쉽게 성취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보는 것이 모두 착하지 못하여, 말을 할 수 있을 때가 되자마자 바로 더럽고 나쁜 것을 익혀 날마다 본성을 녹여 없애니, 여기에 다시 또 무슨 천리(天理)가 있겠는가. 모름지기 사람의 도리를 다한다 해도 본성이 조금은 남아 있어서 다 녹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럭저럭 하루를 보내는 사이에 다소의 교묘한 거짓을 일으키고 약간의 기정(機穽
기교(技巧))을 싹트게 한다. 이런 것들에 젖어 기운을 동하게 되니, 성현이 나지 않고 화기(和氣)가 싹트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평상시에 혹 약간 시절이 화평하고 농사가 풍년이 드는 일이 있더라도 이것은 또한 요행이 그렇게 된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옛날에는 한때 한집에서 성인이 함께 났는데, 후세에 와서는 수천 년간 적막하단 말인가.” 하였다.
《주역》에 이르기를, “위는 천(天)이요, 아래는 택(澤)인 것은 이괘(履卦)이다. 군자는 이를 본받아 위와 아래를 분별하여 백성들의 뜻을 안정시킨다.” 하였다. 《주역(周易)》 〈이괘(履卦) 상사(象辭)〉
정자가 말하기를, “상하의 분별이 분명한 뒤에 백성들의 뜻이 정해지고, 백성들의 뜻이 정해진 뒤에 다스림을 말할 수 있다. 만약 백성의 뜻이 정해지지 않으면 천하를 얻어 다스릴 수 없다. 옛날에는 공경대부 이하의 지위가 각각 그 덕에 맞아서 종신토록 그 자리에 있으면서 자기의 분수를 얻었다. 지위가 덕과 맞지 않으면 임금이 들어서 승진시키거나, 선비가 그 학문을 닦아서 학문이 높은 수준에 이르면 임금이 그를 구하였으니, 모두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로 보았다. 농(農)ㆍ공(工)ㆍ상고(商賈)가 그 일을 부지런히 하여도 누리는 데는 분한이 있기 때문에, 모두 정해진 뜻을 지니고, 따라서 천하의 마음이 통일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후세에는 서인(庶人)이나 선비로부터 공경대부에 이르기까지는 날마다 높고 영화로운 지위에 뜻을 두고, 농ㆍ공ㆍ상고는 날마다 부유하고 사치스러운 일에 뜻을 두어, 백성의 마음이 서로 이(利)에만 쏠려서 천하가 어지러우니, 어찌 하나로 통일될 수 있겠는가. 어지럽지 않기를 원하나 어려우니, 이는 상하에 정해진 뜻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이(履)의 상을 본받아 상하를 분별하여 각각 그 분수에 맞도록 하여, 백성의 뜻을 안정시킨 것이다.” 하였다.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귀천에 등급이 있고, 의복에 분별이 있으며, 조정에 지위(地位)가 있다면 백성들이 사양하는 바가 있게 될 것이다.” 하였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 하늘에서 놀고, 물고기는 못에서 뛰어오르네. 즐거울사 우리 군자여, 사람이 절로 모이누나.” 하였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한록(旱麓)〉
상채 사씨(上蔡謝氏 사양좌(謝良佐))가 말하기를, “‘솔개는 날아 하늘에서 놀고 물고기는 못에서 뛰어오르네.’라는 말은 상하가 각각 제자리를 얻은 것이니, 시인(詩人)은 이 같은 기상은 주(周)나라가 사람을 진작시키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 주자가 말하기를, “이 시는 문왕(文王)의 덕을 읊어 노래한 것이다.” 하였다.
아름답다 많은 선비, 이 나라에 태어났네. 나라에서 많은 선비를 낳으니, 이들은 주(周)나라의 기둥이로다. 선비가 많고 많아 문왕(文王)은 편안하시리. 《시경(詩經)》 〈대아(大雅) 문왕(文王)〉
주자가 말하기를, “문왕의 나라가 이렇게 많은 선비를 낳아 나라의 기둥이 될 수 있고, 문왕도 이들에게 힘입어 편안해질 수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
정자가 신종(神宗)에게 고하여 아뢰기를, “지금 천하가 쇠미하여 인정이 날로 투박해지고 말세의 습속이 떠들썩하여, 더 이상 염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니, 이것은 대개 조정에서 덕을 높이고 도를 즐거워하는 풍속이 일어나지 못한 것이며, 돈독하고 충후한 교화가 아직 펴지지 못한 까닭입니다. 오직 폐하께서는 성인의 수훈(垂訓)을 상고하여 선왕의 다스림을 본받고, 한마음으로 성의를 다해 하늘의 강건(剛健)함을 본받아 힘써 행하면 천하가 매우 다행한 일일 것입니다.” 하였다.
이것은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스스로를 닦는 데 근본을 둠을 말한 것이다. ○
또 말하기를, “한(漢)나라가 현량과(賢良科)를 통해 어진 이를 등용하였다고 하지만 남이 천거(薦擧)한 것이다. 공손홍(公孫弘) 같은 이도 남들이 억지로 일으켜 세워 나아갔는데, 후세의 현량과에서는 스스로 자신을 기용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만약 이 중에 그래도 ‘내 마음에 꼭 임금을 대면해서 천하의 일에 대해 직언하고 싶다.’고 하는 이가 있다면 이런 이는 그래도 숭상할 만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만약 부귀에 뜻이 있다면, 그 뜻을 얻으면 바로 교만하고 방종해지며, 그 뜻을 잃으면 바로 언행에 구속됨이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거나 비탄과 수심에 잠길 뿐이다.” 하였다. ○
또 그는 조정에 진언(進言)하기를, “천하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는 풍속을 바르게 하고, 어진 인재를 얻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니, 먼저 근시(近侍)와 현명한 유학자와 모든 집사(執事)들에게 예(禮)로써 명령하고, 마음을 다하여 덕업(德業)이 충실히 갖추어져 사표(師表)가 될 만한 이를 찾아야 합니다. 그다음으로는 뜻을 독실하게 하고 학문을 좋아하며 자질이 훌륭하고 행실을 닦은 이를 예를 갖추어 사람을 파견해서 초빙하여, 서울에 모아 놓고 아침저녁으로 서로 바른 학문을 강명(講明)해야 합니다. 그 도(道)는 반드시 인륜에 본원을 두고 물리를 밝혀야 하며, 그 교(敎)는 《소학(小學)》의 쇄소응대(灑掃應對)에서부터 시작하여 효제충신(孝悌忠信)을 닦는 데까지 이르게 하며, 예악(禮樂)을 잘 보살펴야 합니다. 이것을 잘 인도하고 격려하며, 점점 좋아지게 하여 성취해 나가는 데에는 다 절도와 차례가 있으니, 그 요령은 선을 택하여 몸을 닦아서 천하를 덕화(德化)하는 데 이르고, 향인(鄕人) 한 사람 한 사람에서부터 성인의 도에 이를 수 있으니, 그 학행이 모두 이에 합한 자가 덕을 이루게 됩니다. 먼저 재질과 식견이 밝고 통달하여 선에 나아갈 수 있는 자를 택하여, 이들로 하여금 날마다 그 학업을 받게 하고, 그중에 학문이 밝고 덕행이 높은 이를 택하여 태학(太學)의 스승으로 삼으며, 그다음에는 천하의 교학을 나누어 가르칠 것입니다. 선비를 선발하여 학교에 입학시키되, 현(縣)에서는 주(州)로 천거하고 주에서는 태학(太學)으로 천거하면, 태학에서는 이들을 모아 가르쳐서 해마다 그중에 어진 이와 재능이 있는 이를 조정에 논의해 천거합니다. 대개 선비를 선발하는 법은 성품과 행실이 바르고 깨끗하며, 집에서는 효제(孝悌)를 행하여 염치와 예의와 겸손이 있으며, 학업에 밝게 통하며 치도(治道)에 밝게 통달한 이를 뽑아야 합니다.” 하였다.
이상은 학교를 일으켜 선비의 습성을 바로잡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선악을 분별하여 풍속을 바로잡는 것에 대하여
○ 《주역》에 이르기를, “산(山) 위에 나무[木]가 있는 것이 점괘(漸卦)이다. 군자가 이를 본받아 어진 덕에 의거하여 풍속을 착하게 한다.” 하였다. 《주역(周易)》 〈점괘(漸卦) 상사(象辭)〉
정자가 말하기를, “산 위에 나무가 있는 것은 높은 것에는 점차적인 것이 있다는 뜻이다. 군자는 점(漸)의 상(象)을 본받아 어질고 착한 덕에 의거하여 풍속을 아름답게 교화시켜 나간다. 풍속을 옮기고 바꾸는 것은 하루아침이나 하루저녁에 이룰 수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착한 풍속은 반드시 점점 그렇게 되어 나가는 것이다.” 하였다.
성왕(成王)이 군진(軍陳)에게 명령하여 말하기를, “오직 백성들이 날 때의 본성은 두터우나 사물로 말미암아 바뀐다. 그리하여 위에서 명령하는 것을 어기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만을 따르고자 한다. 그대가 능히 법을 공경하되 몸에 덕을 나타낸다면, 곧 변하지 않는 것이 없게 되어 진실로 큰 도에 오르게 될 것이다.” 하였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군진(軍陳)〉
채씨가 말하기를, “이 백성들이 태어날 때의 본성은 본래 두터웠으나, 점차 엷어지게 되는 까닭은 습속에 유인되어 사물에 의해 바뀌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두터운 것이 바뀌어 엷어지게 되었다면 엷은 것은 어찌 도로 두텁게 할 수 없겠는가. 엷은 것을 돌이켜 두텁게 하는 것은 음성과 웃는 모습만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백성이 윗사람에 대해 진실로 그 명령은 좇지 않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만 좇는데, 이것은 《대학》에 말한, ‘그 명령하는 것이 그들이 좋아하는 바와 반대되면 백성이 좇지 않는다.’고 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경전(敬典)이란 것은 군신ㆍ부자ㆍ형제ㆍ부부ㆍ붕우의 상도(常道)를 공경하는 것이요, 재덕(在德)이란 것은 변치 않는 법도를 얻어서 몸에 나타내는 것이다. 대개 법을 공경할 줄만 알고 덕을 몸에 나타낼 줄 모르면 법과 내가 오히려 둘이 된다. 오직 법을 공경하고도 몸에 덕이 있으면 공경하는 법이 실상 자기에게 있지 않음이 없다. 실덕(實德)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북채로 북을 치는 것보다 빠르다. 이 때문에 풍속이 변하지 않는 것이 없어서 진실로 큰 도에 오르게 된다.” 하였다.
대사도(大司徒)가 향(鄕)의 팔형(八刑)을 가지고 만민을 바르게 하는데, 첫째는 불효에 대한 형벌이요, 둘째는 화목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형벌이요, 셋째는 인척간에 친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형벌이요, 넷째는 공경하지 않는 것에 대한 형벌이요, 다섯째는 벗에게 신의가 없는 것에 대한 형벌이요, 여섯째는 남을 돌보지 않는 것에 대한 형벌이며, 일곱째는 없는 말을 만드는 것에 대한 형벌이요, 여덟째는 백성을 어지럽히는 것에 대한 형벌이다. 《주례(周禮)》
주씨가 말하기를, “
삼물(三物)의 가르침을 좇지 않으면, 팔형(八刑)을 만들어 이것을 바르게 한다.” 하였다.
도는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가 있고, 정사는 풍속에 따라서 바뀐다. 그 착한 것을 착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을 권면할 수 없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필명(畢命)〉 아래도 이와 같다.
채씨가 말하기를,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다.’는 말은 높아질 때도 있고 낮아질 때도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정치를 하는 이는 풍속을 따라서 변혁을 한다.” 하였다.
선[淑]한 이를 표창하고 악[慝]한 자를 구별하여 선한 이가 사는 마을에 정표(旌表)를 하며, 선한 것을 드러내고 악한 것을 병[癉]으로 여겨 선한 이의 명성(名聲)이 들리게 하라. 교훈과 법도를 따르지 않으면 그 사는 마을의 경계[疆界]를 달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악을 두려워하고 선을 그리워하게 하라.
채씨가 말하기를, “숙(淑)은 선이요, 특(慝)은 악이며, 단(癉)은 병이다. 선한 이가 사는 마을을 정표한다는 것은 정문(旌門)을 세우는 유와 같다. 그 선한 일을 하는 이를 드러내고 선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을 병으로 여겨서, 선한 것을 한 이의 명성을 세워 당시에 드러나게 하고 후세에 전해 주는 것이 소위 선한 이를 정표하는 것이다. 그 교훈과 법을 따르지 않는 자는 그 사는 마을의 경계를 달리하게 하여, 선한 이와 함께 섞여 살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예기(禮記)》에 말한, ‘변하지 않으면 교(郊)에 옮기고, 변하지 않으면 수(遂)에 옮긴다.’ 하는 것이 바로 그 법이다. 악한 일을 함으로써 화(禍)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게 하며, 선한 일을 함으로써 복이 오는 것을 그리워하게 하는 것이 이른바 악한 이를 구별하는 것이다.” 하였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나의 한 일을 살펴보아서 군자라면 허물이 없다.” 하였다. 《주역(周易)》 〈관괘(觀卦) 구오(九五)〉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구오(九五) 효사(爻辭)는 임금의 자리에 거하는 것이니, 세상의 치란(治亂)과 풍속의 미악(美惡)이 모두 나에게 매여 있을 뿐이다. 만약에 천하의 풍속이 모두 군자의 풍속이라면, 이것은 내가 행한 정치와 교화가 착한 것이므로 곧 허물이 없을 것이다. 만약에 천하의 풍속이 군자의 도에 합당하지 않다면 이것은 내가 행한 정치가 착하지 않는 것이므로 허물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였다.
이상은 선악을 분별하여 풍속을 바로잡는 데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제사를 바르게 하여 신간(神姦)을 없애는 것에 대하여
○ 천자(天子)는 천지에 제사 지내고 제후는 사직(社稷)에 제사 지내며 대부는 오사(五祀)에 제사 지낸다. 천자는 천하의 명산과 대천에 제사 지내고, 제후는 자기 땅에 있는 산천에 제사 지낸다. 《예기(禮記)》
주자가 말하기를, “천자는 천지에 제사 지내고, 제후는 자기 국내의 산천에 제사 지내니, 이것은 오직 그것이 내게 속해 있기 때문에 내가 거기에 제사 지내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내게 속하지 않으면 기운이 서로 감응하지 아니하는 것이니, 어찌 그것들에 제사 지낼 수 있겠는가.”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귀신이 아닌데 제사 지내는 것은 아첨[諂]하는 것이다.” 하였다. 《논어》
주자가 말하기를, “그 귀신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히 제사를 지낼 귀신이 아니라는 말이요, 첨(諂)은 잘 보이기를 구하는 것이다.” 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즐거울사 군자는 복(福)을 구하는 데 간사하지[回] 않네.” 하였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한록(旱麓)〉
주자가 말하기를, “회(回)는 간사하다는 뜻이다.” 하였다. ○ 정씨(鄭氏)가 말하기를, “문왕(文王)이 복을 구하는 데도 덕을 닦아서 기다리고, 간사한 행동으로 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 주자가
〈봉사(封事)〉에서 말하기를, “신이 듣건대, ‘하늘에 밝은 도가 있어 그 보응이 밝게 드러난다.’ 하였습니다. 선한 일을 하는 자에게는 백 가지 길상(吉祥)을 내려 주고, 선하지 못한 짓을 하는 자에게는 백 가지 재앙을 내려 주기 때문에 사람의 화복은 다 그 자신이 스스로 취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은 하지 않으면서 아첨하고 빌어서 복을 얻는 자는 없으며, 악한 짓을 하지 않으면서 바른 것을 지키고서 화를 얻은 자는 없습니다. 하물며 제왕(帝王)은 실상 천명을 받아서 교(郊)ㆍ묘(廟)ㆍ사직(社稷)ㆍ신(神)ㆍ인(人)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진실로 덕을 잘 닦고 정사를 행하여 만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구제하려 한다면, 어찌 푸닥거리를 해서 재해를 제거하겠으며, 어찌 빌어서 복록(福祿)이 오게 하겠습니까. 만약 이와 반대로 하면 하늘에 죄를 얻어 사람들이 원망하고 신이 노여워할 것이니, 비록 악한 귀신을 물리치고 진인(眞人)을 오게 하여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또 하물며 선왕이 제정한 예(禮)는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근본에 보답하여 어버이에게 제사 지내는 것에는 다 떳떳한 법도가 있고, 그 제물[牲器]과 시일(時日)에도 모두 떳떳한 법도가 있습니다. 이승에는 예악(禮樂)이 밝게 존재하고 저승에는 귀신이 있는데, 여기에는 일리(一理)가 관통해서 애당초 간격이 없습니다. 진실로 예(禮)가 실리지 않은 곳에는 신이 흠향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귀신이 아닌데 제사를 지내는 것은 곧 음사(淫祀)가 되며, 음사에는 복이 없다는 것은 경전에 밝혀 놓은 것이 있습니다. 굳이 이것을 만들어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연스런 이치이므로 바꿀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때로 황홀한 사이에 간혹 신의 영향(影響)이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마음에 주관이 없어서입니다. 망녕되이 근심하고 망설여, 마침내는 무당과 요상한 사람이 그 틈을 타서 간사하고 기만적인 짓을 마음대로 하니, 속이고 유혹하는 술(術)이 행해지면, 그 화(禍)가 또 이르지 않는 곳이 없을 것입니다. 고금에 이로 말미암아 난망(亂亡)을 이룬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 경계해야 할 것이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진실로 학문을 정밀하게 이루어 성명(性命)의 이치를 밝히고, 마음이 환하게 트여 의혹되는 것이 없게 해서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은 있게 하고, 없어야 할 것은 없게 하지 않는다면, 무엇에 근거하여 예를 잡고 법을 쥐어서 요망스러운 뿌리를 끊겠습니까. 선왕 때의 정사에는 옳지 못한 도로써 정치를 어지럽게 하거나 귀신을 빌어 대중을 의혹하는 자는 다 반드시 주륙(誅戮)하고 봐주지 아니하였으니, 깊이 우려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전(傳)에 이르기를, ‘천지의 성(性)에 밝은 이는 신괴(神怪)로써 유혹할 수 없고, 만물의 정(情)에 밝은 이는 그릇된 것[非類]으로써 속일 수 없다.’ 하였으니, 그 망녕된 것은 대개 살피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생각건대, 밝으신 성상께서 이 점에 유의하시면 천하가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하였다.
이상은 제사의 법도를 바로잡아 귀신과 요괴를 끊는 것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신이 생각건대, 하늘이 이 백성을 낳을 때에 그들에게 사목(司牧)을 세웠는데, 사목은 실로 임금과 스승을 겸하였습니다. 목자(牧者)로서 그들을 기르고, 임금으로서 그들을 다스리며, 스승으로서 그들을 가르친 뒤에 이 백성들이 그 삶을 편히 즐길 수 있고 그 악을 개혁할 수 있으며, 그 선을 흥기할 수 있습니다. 삼대(三代) 이전에는 세 가지가 각각 그 도를 극진히 하였으므로, 정사가 이루어지고 덕화(德化)가 행해지고, 다스림이 융성하고 풍속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후세에 내려오면서부터는 도학(道學)이 행해지지 않아 임금은 스스로 궁행(躬行)의 실상이 없어 사방에 본보기가 되어 바르게 하지 못하고, 다만 법령으로 일세를 지탱하였을 뿐입니다. 그사이에 간혹 인자한 임금이 있어서 이 백성들을 지극히 넉넉하게 한 일도 있었지마는, 교(敎)에 있어서는 들은 바가 없으니, 어찌 윤리(倫理)가 질서를 잃고, 풍속이 퇴패한 것을 괴이하게 여기겠습니까. 옛 도가 행해지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일반 사람은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데 익숙해진 것을 모두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도리어 옛 도를 몹시 놀랄 만한 것이라고 하니, 지사(志士)가 분개하고 한탄하여 마지않는 이유입니다. 대개 옛 도라는 것은 산을 겨드랑이에 끼고, 북해를 건너뛰는 것[挾山超海]이나, 하늘에 오르고 허공을 달리는 것과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부자간에는 인(仁)을 다하고 군신 간에는 의(義)를 다하고, 부부간에는 별(別)을 다하고, 장유(長幼) 간에는 그 예(禮)를 다하고, 붕우 간에는 그 신(信)을 다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 천성에 근거하여 아름다운 덕을 발하는 것이니, 본래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다만 앞에서는 기품(氣稟)에 구애를 받고, 뒤에서는 물욕에 빠진 데다 항산(恒産)이 없기 때문에 이리저리 전전하며 살 곳을 잃고, 죽음을 면하기도 어려워 그 양심을 잃어버리고, 다만 형벌 무서운 것만 알고 명의(名義)와 절개를 지키는 것을 근심하지 않으며, 간사함을 더하고 거짓을 늘려서 교묘하게 법망(法網)을 피할 뿐입니다. 그리하여 윗사람은 교화에도 도가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다만 형법의 주밀하지 못한 것만 근심하여 과조(科條 조항)를 첨가하여 속이는 것을 막으려고 하니, 법이 주밀해질수록 간사함은 더욱 심해져서 풍속이 날로 무너지고 세도(世道)가 날로 야비해져서 구제할 수가 없게 됩니다. 때로 간혹 마음에 느낌이 일어 세상의 악습을 교정하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교(敎)를 베푸는 데는 근본이 있고, 백성을 교화하는 데는 차례가 있는 것을 모르고, 한갓 명분만 생각하고 그 실상을 얻지 못하며, 근본을 뒤로 하고 말단을 우선시하니 가르침은 있어도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인(世人) 중에 방자함을 즐기고 검속을 꺼리는 자들이 틈을 타서 힘껏 공격하여 옛 도를 진실로 회복할 수 없다고 하니, 이것은 한 잔의 물을 가지고 한 채의 수레에 붙은 불을 끄려고 하다가 못 끄면 물이 불을 끄지 못한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반드시 임금께서 먼저 궁행하기를 힘쓰고, 어진 이를 얻어 같이 다스리며, 조정의 명령은 인심을 열복(悅服)시켜, 전도(顚倒)되어 의탁할 곳이 없는 백성으로 하여금 모두 다 흥기할 생각을 품게 한 뒤에야 그들의 폐단을 제거하고 괴로움이 되는 것은 풀어 주며, 그들에게 동네[田里]를 정해 주어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고, 학교를 설립하여 가르쳐 갈 길을 가리켜 주며, 예(禮)를 제정하여 단속해서 절도를 지키게 하고, 향사(鄕射)와 향음주(鄕飮酒)의 의례를 만들어서 그들을 화락하게 인도하고, 선을 표창하여 권장해서 나아갈 방향을 알게 하고, 악을 물리쳐서 징계하여 돌아서야 할 것에서 과감히 돌아서게 하면, 앞으로 학교의 교육은 성대해질 것이요, 향당(鄕黨)은 공경과 겸양의 풍속을 일으킬 것이니, 한 시대에 큰 도가 일어나고 형벌을 버려두고 사용하지 않으며, 예악이 성대해질 것입니다. 어찌 옛 도를 오늘날에 참으로 실시할 수 없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묻기를, “이것이 맞는 말이긴 하지마는 만약에 반드시 임금이 몸소 실천하여 먼저 백성을 늘리고 부유하게 한 뒤라야 가르침을 베풀 수 있다면, 임금이 몸소 실천하는 날이 없고 백성을 늘리고 부유하게 할 기약이 없을 경우에는 끝내 가르침을 베풀 날이 없지 않겠습니까.” 하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임금이 만일 몸소 실천할 줄 모르고 백성을 기르는 데 힘쓰지 않는다면, 이것은 가만히 앉아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니 구제할 방책이 없다. 그런데 무슨 옛 가르침을 베풀 수 있겠는가. 만일 또 임금이 덕을 이루고 이 백성들이 늘고 부유해진 뒤라야 가르침을 베풀고자 하면 이 역시 하나에만 집착된 이론이다. 오직 임금이 몸소 실천할 뜻을 세우고 인정(仁政)을 베풀어 점차로 교육을 시행해 나가면 기르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병행하여 서로 이루어질 것이다. 백성을 교화하는 도는 그 요령이 이와 같다.” 하였습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힘쓰시옵소서.
제10장 위정공효(爲政功效)
신이 생각건대, 임금이 가르치고 기르는 도를 극진히 하면 반드시 영향을 받아 감동하는 교화가 만세에까지 끼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그 공효(功效)를 나타내었습니다.
인(仁)이 천하를 덮는 공효(功效)에 대하여
대도(大道)가 행해질 때에는 천하가 공평해져 어진 이와 능한 이를 선발하여 신의(信義)를 강구하고 화목을 닦는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의 어버이만 어버이로 여기지 않고, 자기의 아들만 아들로 여기지 아니하며, 늙은이는 생을 잘 마감할 곳이 있고 젊은이는 쓰일 곳이 있으며, 어린이는 자랄 곳이 있으며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독신, 불구자도 모두 부양을 받는다. 그러므로 모략이 막혀서[謀閉] 일어나지 않고, 도둑이 일어나지 않아 사립문을 열어 놓고 닫지 않으니, 이것을 대동(大同)이라고 한다. 《예기》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모폐(謀閉)라는 것은 간사한 꾀가 폐색(閉塞)되어 일어나지 않는 것이요, 대동(大同)이란 공평한 도로 크게 하나가 되는 세상이다.” 하였다.
맹자께서 말씀하기를, “패자(霸者)의 백성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驩虞] 듯하고, 왕자의 백성들은 만족스러운[皥皥] 듯하다.” 하였다. 《맹자》 아래도 이와 같다.
주자가 말하기를, “환우(驩虞)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과 같다. 호호(皥皥)는 마음이 넓어 스스로 만족하는 모양이다.” 하였다. ○ 정자가 말하기를, “환우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서 그렇게 된 것이니, 어찌 오래갈 수 있겠는가. ‘밭을 갈아 밥을 먹고 우물을 파서 물 마시며 편안하게 지내니, 임금의 힘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하였다. 이것은 자연인 하늘과 같으니, 이것이 바로 왕자(王者)의 정치이다.” 하였다.
죽여도 원망하지 않고, 이롭게 해 주어도 공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은 날로 선한 데로 옮겨 가면서도 그렇게 만드는 사람을 모른다.
주자가 말하기를, “이 말이 이른바 호호하다는 것이다. 용(庸)은 공(功)이다.” 하였다. ○ 풍씨(豐氏)가 말하기를, “백성들이 미워하는 바를 따라서 제거해 주는 것이지, 본래 이것을 죽이려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니, 무슨 원망이 있겠으며, 백성들이 이롭게 여기는 바를 따라서 이롭게 해 주는 것이지, 본래 이것을 이롭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니, 무슨 공이 있겠는가. 다만 그 성품의 자연스런 것을 도와서 스스로 얻을 수 있게 해 준 까닭에 백성들이 날마다 선한 데로 옮겨 가면서도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모르는 것이다.” 하였다.
군자가 지나가는 곳은 모두 교화[化]되고 그가 마음을 둔 것은 신묘해진다. 위아래가 천지(天地)와 함께 운행하니, 어찌 보탬이 적다고 말하겠는가.
주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성인을 통틀어 일컫는다. 지나가는 곳은 다 교화가 된다는 말은 성인이 지나가는 곳에는 사람들이 교화되지 않음이 없다는 것으로, 이것은 마치 순(舜)이 역산(歷山)에서 밭을 갈고 있을 때에는, 밭 가진 사람들이 모두 밭두둑[畔]을 양보하고, 하빈(河濱)에서 질그릇을 만들 때에는 그릇이 보기 싫거나 비뚤어지지 않았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마음에 둔 것이 신묘해진다는 말은, 마음을 두고 있는 곳은 신묘함을 측량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이것은 마치 공자가,
‘세우면 서고, 인도하면 따르고, 편안하게 해 주면 모여들고, 움직이면 화응(和應)한다.’는 것과 같아서,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하는데도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덕업(德業)의 성한 것으로서 천지의 화육(化育)과 더불어 같이 운행하여 온 세상 모두를 도야(陶冶)하는 것이니, 패자(霸者)가 조그마한 혜택을 베풀어 틈으로 새는 것을 때우는 것과는 같지 않을 뿐이다. 이것이 왕도(王道)가 위대한 까닭이니, 배우는 사람이 마땅히 마음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명성이 중국(中國)에 넘치고 오랑캐 지역에까지 뻗쳐 가 배나 수레가 이르는 곳이나 인력이 통하는 곳, 하늘 아래 땅 위, 해와 달이 비치고 서리와 이슬이 내리는 모든 곳의 혈기(血氣)를 지닌 자가 높이고 친애하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러므로 하늘을 짝한다고 일컫는다. 《중용(中庸)》
주자가 말하기를, “하늘을 짝한다는 것은 덕이 하늘처럼 넓고 크게 미친다는 것을 말한다.” 하였다.
이상은 인(仁)이 천하에 끼친 효과를 말씀드렸습니다.
덕이 천심에 부합할 때의 공효에 대하여
○ 《시경》에 이르기를, “아름다운 군자여, 아름다운 덕이 드러나고 드러나네. 백성과 벼슬아치를 합당하게 대하여 하늘의 녹[天祿]을 받았네. 보호하여 돕고 명을 내리는 일을 하늘이 거듭하시네.[申]” 하였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가락(假樂)〉
주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임금을 가리킨다. 민(民)은 뭇 백성이요, 인(人)은 벼슬에 있는 이이다. 신(申)은 거듭이란 뜻이다. 임금의 덕이 백성과 벼슬아치를 합당하게 대하여 하늘에서 복록을 받게 되었는데, 하늘이 임금을 반복해서 돌보아 주면서 싫증을 내지 않고, 거듭 보우(保佑)하고 명령하기를 또 계속한 것을 말한다.” 하였다.
또 이르기를, “문왕(文王)이 위에 계시니 하늘이 밝도다. 주(周)나라가 오래된 나라이지만 그 명(命)은 새롭도다.” 하였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문왕(文王)〉
이상은 덕이 천심(天心)에 부합했을 때의 효과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은택이 후세에까지 흘러가는 공효에 대하여
○ 《시경》에 이르기를, “이보다 더 강한 사람이 없으므로 사방이 그를 따르네. 더없이 잘 드러난 덕(德)을 모든 제후[百辟]가 본받네. 아, 전왕(前王)을 잊을 수 없네.” 하였다. 《시경(詩經)》 〈주송(周頌) 열문(烈文)〉
주자가 말하기를, “사람보다 강한 것이 없고 덕보다 크게 드러난 것이 없다. 사람이 선왕의 덕을 잊을 수 없는 까닭은 이 도(道)를 썼기 때문이다. 전왕은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을 말한다.” 하였다.
군자는 그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고, 그 어버이를 친애(親愛)하였으며, 소인은 그 즐거움을 즐거이 여기고, 그 이로움을 이롭게 여겼다. 이 때문에 세상을 떠났는데도 잊지 못하는 것이다. 《대학(大學)》
주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후세의 현자(賢者)와 왕자(王者)를 말하는 것이요, 소인은 후세의 서민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 글은 이전의 왕들이 백성을 새롭게 하여, 지선(至善)에 머물러서 천하 후세로 하여금 한 사물이라도 그 처소를 얻지 못한 것이 없게 하였기 때문에, 전왕이 세상을 떠났어도 사람들이 그를 사모하고 오래도록 잊지 못했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 또 말하기를, “그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긴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는 그 성대한 덕과 공적을 우러르는 것이요, 그 어버이를 친애한다는 것은 자손들이 보존하여 그 길러 준 은혜를 생각하는 것이며, 그 즐거움을 즐거이 여긴다는 것은 실컷 먹고 배를 두드리며 그 즐거움을 편안히 누리는 것이요, 그 이로움을 이롭게 여긴다는 것은 밭을 갈아 밥을 먹고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며 그 이로움을 누리는 것이니, 이것은 모두 선왕의 성덕(聖德)과 지선(至善)이 남긴 혜택이다.” 하였다.
이상은 혜택이 후세에까지 흘러가는 효과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신이 생각건대, 위정(爲政)의 보람은 인(仁)으로 천하를 덮어 주고 은택이 후세에까지 흐르게 하는 것으로, 성인이 할 수 있는 일로 이것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으니, 참으로 고원(高遠)하여 거의 미치기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궁행(躬行)하는 데 근본을 두고 순서에 따라 점진해 나간다면, 마치 길 가는 사람이 뒤로 가지 않으면 반드시 집에 이르고, 밥 먹는 사람이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배불러지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애초에 바람이나 그림자를 잡는 것처럼 효과를 구할 수 없는 것에 견주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임금이 참으로 이것을 고원하다고만 여겨 실행하지 않으실까 근심할 뿐입니다. 성왕의 정치는 책에 잘 진술되어 있습니다. 이는 규구(規矩)가 손에 있어서 모난 물건과 둥근 물건을 만드는 것과 같으니, 처음에는 비록 어긋나는 것이 있더라도 나중에는 점차 익숙해질 것이니, 어찌 왕정(王政)을 시행할 수 없음을 근심하겠습니까. 대개 임금으로서의 병통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많은 욕심에 끌려 왕정을 행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세속의 흐름에 빠져 왕정을 행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많은 욕심에 끌리는 사람은 시비(是非)의 공정한 것이 항상 사사로운 이익에 가리어지고, 유속에 빠진 사람은 성현의 말보다 항상 비루[鄙俚]한 말에 굴하게 됩니다. 후세에 다스려지는 날이 항상 적은 것은 오직 이 때문입니다. 대개 인의(仁義)를 몸소 실천한다는 것은 천덕(天德)이요, 생민을 교화하고 양육한다는 것은 왕도(王道)입니다. 후세의 임금들은 항상 말하기를, “나 같은 소자가 어찌 감히 옛 도를 바라겠는가.” 합니다. 천덕과 왕도에 대한 말은 옛 성현의 일이요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 인식하여, 신하가 이에 대해 진언(進言)하면 바로 손가락질하고 비웃으면서, 이상만 높고 실상이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내 마음의 정대무사(正大無私)한 것이 바로 천덕이고, 합당하게 일에 처하여 인심에 따르는 것이 왕도인 줄을 너무도 모릅니다. 때에는 고금이 없고 도는 고원한 것이 아니며, 바로 일상생활 속에 있는 것이니, 다만 이것을 아직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근심할 뿐입니다. 욕심이 많은 임금은 자포자기하는 것을 즐기고 있으니, 이것은 본래 말할 것이 못 되거니와 때로는 선을 하는 임금도 흔히 유속(流俗)에 빠지는 것을 면치 못하니, 더욱 애석한 일입니다. 세속의 사람들은 반드시 말하기를, “옛 도는 결코 회복할 수 없다. 이제 만일 묵은 것을 개혁하여 새롭게 하면 인심이 불안해져 장차 위험하고 혼란스러운 데에 이르게 되리라.” 하는데, 임금이 그 말을 깊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선비들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뜻을 수용하지 않아, 마침내 서로 부합될 리가 없게 됩니다. 지금 기강을 떨치고 있는지 무너뜨리고 있는지, 선비들의 습속이 정당한지 구차한지, 재상은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지 일없이 녹만 먹는지, 백관들이 자기 직책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게을리하고 있는지, 백성들이 잘 휴양하고 있는지 지쳐 있는지를 어찌 깊이 생각지 않습니까. 만일 기강이 떨치고 있어서, 선비들의 습속이 정당하고, 재상이 나라를 잘 다스리고 있으며, 백관이 직책을 감당하고 있고, 백성들이 잘 휴양하고 있다면, 이것은 거의 왕도 정치에 가깝습니다. 일변(一變)하면 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니, 어째서 옛 도를 회복할 수 없겠습니까. 만일 기강이 무너져 선비들의 버릇이 구차하고, 재상이 일없이 녹만 먹고, 백관이 사무에 게으르고, 백성들이 지쳐 있으면 이것은 앞으로 망할 증상입니다. 마땅히 급급히 서둘러서 개혁해야 할 것인데, 우선 당장 탈이 없다고 안심하고 도리어 무언가 해보려는 것을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 이것은 아마 지혜가 천박하고 모자라서 앞으로의 큰 근심을 염려하지 못하고 다만 눈앞의 무사한 것만 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어진 이는 초야(草野)에 있고 어질지 못한 이가 조정에 있어서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임금을 속이는 것이요, 실로 국인(國人)의 뜻은 아니며, 또한 당로자(當路者)가 재주와 지혜가 부족하여 스스로 할 수도 없는데, 또 어진 이를 천거할 줄도 모르고, 다만 구차하게 잘못에 대한 책임만 모면하려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이 생각하여 그 소이연(所以然)을 얻으면 세속에서 뭇사람이 비방하는 것도 한 번 휘둘러 안정할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무도(無道)한 나라에서는 선인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하로서 선(善)을 하다가 죽음을 당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임금이 도를 행하다가 화를 입었다는 말은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대개 임금이 명령을 세워서 난(亂)을 치(治)로 돌리는 것은 다만 마음 하나에 있을 뿐이니, 마음 하나가 도를 향하여 쉬지 않고 힘써 나가면, 곧 정치에 베풀어져서 세도(世道)가 일변(一變)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 기강을 세워 선비의 나쁜 습속을 교정(矯正)하고, 재상에게 정사를 맡기며 백공(百工)에게 일을 빛나게 하고, 서민들을 안락하게 하여, 선왕의 도를 따르다가 도리어 화를 입고 실패할 일이 있겠습니까. 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정치를 함에는 반드시 선왕(先王)을 좇아야 할 것인데, 임금이 몸소 행하는 것이 오히려 덕을 이루지 못했다면 어찌합니까.” 하기에, 신이 답변하기를, “수신(修身)을 치국(治國)보다 먼저 한다는 것은, 다만 그 순서의 당연한 것을 말했을 뿐이다. 만일 반드시 수신(修身)이 지극한 데 이르기를 기다린 뒤에야 정치를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진실한 덕을 다 이루기 전에는 국가를 어디에 둔단 말인가.” 하였습니다. 정자가 말하기를, “후왕이 《춘추(春秋)》의 의(義)를 알면, 비록 덕은 우(禹)와 탕(湯)이 아닐지라도 오히려 삼대(三代)의 정치를 본받을 수 있다.” 하였습니다. 정자가 어찌 거짓말로써 사람을 속였겠습니까. 그러나 임금이 취사선택할 줄 알고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을 성실히 하며, 반드시 다스리고야 말겠다는 뜻을 떨쳐서 어진 이를 구하여 믿고 맡긴다면, 덕이 이루어지지는 않더라도 치도(治道)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 나가면 차츰 학문이 성취되고, 덕이 진보되고, 정사가 날로 다스려지고, 교화(敎化)가 날로 넓어질 것이니, 수신(修身)과 치국(治國)이 극진한 곳에 함께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상천(上天)의 명을 두렵게 여기시고, 부모의 꾸짖음을 생각하소서. 백년 사직(社稷)의 중대성을 생각하시고, 도탄에 빠져 있는 백성들의 고통을 가엽게 여기시며, 사람들에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는 마음을 확충하고, 사람들에게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정치를 시행하소서. 널리 백성들을 구제하여 예악(禮樂)을 빛나게 일으키시고, 세도(世道)를 한번 새롭게 하여 삼황오제(三皇五帝)처럼 융성하게 함으로써 조종(祖宗)의 선열(先烈)을 빛내시고, 제왕의 자손에게 모범을 보이시면 만세에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주D-001]공자께서 …… 하였다 :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에 보인다.[주D-002]맹자께서 …… 하였다 : 《맹자(孟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보인다.[주D-003]학문을 …… 한다 : 《이정유서(二程遺書)》 권5 〈이선생어(二先生語)〉에 보인다.[주D-004]맹자께서 …… 하였다 :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보인다.[주D-005]한(漢)나라 찬후(酇侯) : 이 내용은 《한서(漢書)》 〈소하조참전(蕭何曹參傳)〉에 보인다.[주D-006]맹자(孟子)께서 …… 하였다 :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 보인다.[주D-007]차자(箚子) : 《이정문집(二程文集)》에 실린 〈논십사차자(論十事箚子)〉를 가리킨다.[주D-008]대우모(大禹謨) : 대본에는 ‘舜典’으로 되어 있는데, 《서경》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에 의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주D-009]사기(史記) : 이 내용은 《사기》 〈은본기(殷本紀)〉에 보인다.[주D-010]훌륭한 …… 살핀다 : 《창려문집(昌黎文集)》 〈잡설(雜說)〉에 보인다.[주D-011]공자께서 …… 하였다 : 《예기(禮記)》 〈중니한거(仲尼閒居)〉에 보인다.[주D-012]봉사(封事) : 《회암집(晦庵集)》에 실린 〈무신봉사(戊申封事)〉를 가리킨다.[주D-013]공자께서 …… 하였다 : 《논어(論語)》 〈자로(子路)〉에 보인다.[주D-014]정치가 …… 된다 : 《예기(禮記)》 〈치의(緇衣)〉에 보인다.[주D-015]봉사(封事) : 《회암집(晦庵集)》 〈기유의상봉사(己酉擬上封事)〉에 보인다.[주D-016]강고(康誥)에 …… 하였다 : 《대학장구(大學章句)》 전(傳) 9장에 보인다.[주D-017]맹자(孟子)께서 …… 하였다 :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보인다.[주D-018]충서(忠恕)가 …… 말라 :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3장에 보인다.[주D-019]위에서 …… 것이다 : 《대학장구(大學章句)》 전(傳) 10장에 보인다.[주D-020]맹자께서 …… 하였다 :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보인다.[주D-021]조조(鼂錯)가 …… 하였다 : 이 내용은《한서(漢書)》 〈조조전(鼂錯傳)〉에 보인다.[주D-022]애공(哀公)이 …… 하였다 : 《논어(論語)》 〈안연(顔淵)〉에 보인다.[주D-023]대영지(戴盈之)가 …… 하였다 : 《맹자(孟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보인다.[주D-024]흉년이나 …… 없다 : 《주례(周禮)》 〈지관사도 하(地官司徒下)〉에 보인다.[주D-025]재물이 …… 한탄한다 :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장공(莊公) 31년에 보인다.[주D-026]계강자(季康子)가 …… 하였다 : 《논어(論語)》 〈안연(顔淵)〉에 보인다.[주D-027]의(義)가 …… 것이다 : 《순자(荀子)》 〈대략(大略)〉에 보인다.[주D-028]육지(陸贄)가 덕종(德宗)에게 간(諫)하기를 : 이 내용은 《대학연의(大學衍義)》 〈격물치지지요(格物致知之要) 3 심치체(審治體)〉에 보인다.[주D-029]삼무사(三無私) : 《예기(禮記)》 〈중니한거(仲尼閒居)〉에 “하늘은 사사로이 덮어 줌이 없고, 땅은 사사로이 실어 줌이 없고, 해와 달은 사사로이 비추어 줌이 없다. 이 세 가지를 받들어 천하를 위로하는 것을 삼무사라 한다.”는 구절이 있다.[주D-030]봉사(封事) : 《주자전서(朱子全書)》 〈무신봉사(戊申封事)〉에 보인다.[주D-031]재물을 …… 것이다 : 《대학장구(大學章句)》 전(傳) 10장에 보인다.[주D-032]나라에 …… 것이다 :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보인다.[주D-033]맹자께서 …… 하였다 : 《맹자(孟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 보인다.[주D-034]서경에(書經) …… 하였다 : 《서경(書經)》 〈경명(冏命)〉에 보인다.[주D-035]가의(賈誼)가 상소하여 아뢰기를 : 이 내용은 《한서(漢書)》 〈가의전(賈誼傳)〉에 보인다.[주D-036]송사를 …… 한다 : 《대학장구(大學章句)》 전(傳) 4장에 보인다.[주D-037]맹자께서 …… 하였다 : 《맹자(孟子)》 〈등문공 상(滕文公 上)〉에 보인다.[주D-038]사도(司徒)가 …… 물리친다 :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보인다.[주D-039]예기(禮記)에 …… 하였다 :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보인다.[주D-040]옥은 …… 한다 :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보인다.[주D-041]악정(樂正)이 …… 가르쳤다 :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보인다.[주D-042]호언(互言) :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일부만 번갈아 쓰는 것을 말한다.[주D-043]대사도(大司徒)는 …… 대접하였다 : 《주례(周禮)》 〈지관사도(地官司徒)〉에 보인다.[주D-044]오례(五禮) : 제사를 지내는 예인 길례(吉禮), 관례와 혼례에 관한 가례(嘉禮), 빈객을 대하는 예인 빈례(賓禮), 군대에서 행하는 예인 군례(軍禮), 장사를 지내는 예인 흉례(凶禮)를 가리킨다.[주D-045]육악(六樂) : 황제의 음악인 운문(雲門), 요 임금의 음악인 함지(咸池), 순 임금의 음악인 대소(大韶), 우왕의 음악인 대하(大夏), 탕왕의 음악인 대호(大濩), 무왕의 음악인 대무(大武)를 가리킨다.[주D-046]오사(五射) : 화살이 사포(射布)인 후(侯)를 꿰고 지나가 촉만 희게 보이는 백시(白矢), 먼저 한 대를 쏘고 잇달아 세 대를 쏘는 삼련(參連), 화살 깃의 머리[羽頭]는 높고 촉은 낮게 하여 번쩍이며 날아가는 섬주(剡注), 신하가 임금과 함께 활을 쏘는데 임금과 나란히 서지 않고 한 자 뒤로 물러나는 양척(襄尺), 화살 네 대로 사포를 꿴 모습이 우물[井] 자 모양인 정의(井儀)를 가리킨다.[주D-047]오어(五御) : 수레가 달릴 때 수레의 방울 소리가 서로 호응하게 모는 명화란(鳴和鸞), 골짜기의 절벽을 따라 수레를 몰되 물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축수곡(逐水曲), 천자를 나타내는 표시나 자리를 지날 때 예의를 갖추는 과군표(過君表), 도로를 통과하면서 자유자재로 달려가는 무교구(舞交衢), 사냥을 할 때 짐승을 쫓으면서 왼쪽에서 활을 쏘아 잡는 축금좌(逐禽左)를 가리킨다.[주D-048]육서(六書) : 한자를 구성하는 여섯 가지 법이다. 상형(象形), 회의(會意), 전주(轉注), 지사(指事), 가차(假借), 형성(形聲)을 말한다.[주D-049]구수(九數) : 토지 면적을 측정하는 방법인 방전(方田), 물자의 교역과 매매를 셈하는 속미(粟米), 비례를 나누는 방법인 차분(差分), 평방과 입방을 재는 소광(少廣), 공정에 드는 힘을 계산하는 상공(商功), 배ㆍ수레ㆍ말ㆍ사람의 운임을 계산하는 균수(均輸), 방정식을 계산하는 방정(方程), 남는 것과 부족한 것을 셈하는 부족(不足), 삼각형의 면적을 구하는 구고(句股)를 가리킨다.[주D-050]정자가 …… 아뢰기를 : 이 내용은 《이정집(二程集)》 〈하남정씨문집(河南程氏文集) 상전차자(上殿箚子)〉에 보인다.[주D-051]또 말하기를 : 이 내용은 《이정집(二程集)》 〈하남정씨유서(河南程氏遺書) 단백전사설(鍴伯傳師說)〉에 보인다.[주D-052]또 …… 진언(進言)하기를 : 이 내용은 《이정집(二程集)》 〈하남정씨문집(河南程氏文集) 청수학교존사유취사차자(請修學校尊師儒取士箚子)〉에 보인다.[주D-053]대사도(大司徒)가 …… 형벌이다 : 《주례(周禮)》 〈지관사도(地官司徒)〉에 보인다.[주D-054]삼물(三物) : 육덕(六德)과 육행(六行)과 육예(六藝)를 말한다.[주D-055]천자(天子)는 …… 지낸다 :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보인다.[주D-056]공자께서 …… 하였다 : 《논어(論語)》 〈위정(爲政)〉에 보인다.[주D-057]봉사(封事) : 《주자전서(朱子全書)》 〈기유의상봉사(己酉擬上封事)〉에 보인다.[주D-058]전(傳)에 …… 하였으니 : 이 내용은 《한서(漢書)》 〈교사지 하(郊祀志下)〉에 보인다.[주D-059]대도(大道)가 …… 한다 : 《예기(禮記)》 〈예운(禮運)〉에 보인다.[주D-060]맹자께서 …… 하였다 :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보인다.[주D-061]세우면 …… 화응(和應)한다 : 《논어(論語)》 〈자장(子張)〉에 보인다.[주D-062]그러므로 …… 일컫는다 : 《중용장구(中庸章句)》 제31장(章)에 보인다.[주D-063]맹자께서 …… 하였다 : 《맹자(孟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보인다.[주D-064]군자는 …… 것이다 : 《대학장구(大學章句)》 전(傳) 3장(章)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