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선생문집 제10권_발(跋)_포산 향약책(苞山鄕約冊)의 뒤에 쓰다.
여헌선생문집 제10권_
발(跋)_
포산 향약책(苞山鄕約冊)의 뒤에 쓰다.
아! 대학(大學)과 소학(小學)의 도(道)를 강(講)하지 아니하여 선비들이 올바른 학문을 잃고, 지방에 삼물(三物)의 가르침이 행해지지 아니하여 지방에 선(善)한 풍속이 없어졌으니, 백성들이 어찌 다시 삼대(三代)의 훌륭함을 볼 수 있겠는가. 교화의 근본과 학교의 거행은 바로 위에 있는 자의 책임이니, 위에 있는 자가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세상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향약(鄕約)을 만든 것으로 말하면 어찌 후세에 부득이하여 만든 규정이 아니겠는가. 병이(秉彛)의 천성(天性)과 윤기(倫紀)의 차례는 하늘이 똑같이 부여(賦與)하여 사람들이 함께 행하여야 하니, 단 하루도 이를 어겨서는 사람이 될 수 없고, 이를 거스르면서 세상에 있을 수 없다. 혹 호걸스러운 선비가 있어 문왕(文王)을 기다리지 않고 그 사이에 나와 이미 스스로 자기 몸을 선하게 하였으면 또 반드시 혼자만이 이루지 않고 반드시 함께 서려는 뜻을 두어야 하니, 이 때문에 지방에 약속이 있게 된 것이다.
지목하여 약(約)이라 하였으니, 약은 지방 사람들의 일이다. 그러나 그 도는 본성(本性)을 따르고 윤리(倫理)를 밝히고, 자신을 바로잡고 남을 바로잡는 요점이니, 비록 위에 있는 자의 정사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학과 소학, 지방의 삼물의 도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약속은 처음 송(宋) 나라 때의 남전 여씨(藍田呂氏)에게서 나왔는데, 우리 나라에는 본조(本朝)에 정암(靜庵) 조공(趙公)이 이것을 들어 시행할 것을 청하였으나 미처 마치지 못하였고, 그 뒤에 퇴계(退溪) 이 선생(李先生)이 또한 일찍이 그 조항을 가감(加減)하여 영구히 통행할 수 있는 규정으로 삼았다. 그러나 함(咸), 영(英), 소(韶), 호(濩)의 훌륭한 음악은 말로(末路)의 귀와 눈에 합하기 어렵고, 대갱(大羹)과 현주(玄酒)는 후세의 잔치 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끝내 한 세상에 미루어 행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유식한 자가 깊이 슬퍼하지 않겠는가.
지금 김후 세렴(金侯世濂)이 포산(苞山)의 원이 되어 마침내 이 일에 뜻을 다하고 전후의 과조(科條)를 찾아 전사(傳寫)하여 책을 만들되 먼저 학규(學規)를 향약의 첫머리에 놓고, 또 향약의 조항을 부연하여 본현(本縣)에 시험 삼아 시행하고 있으니, 참으로 보기 드문 일이다. 내 일찍이 치하(治下)의 사람을 만나 들으니, 아직 몇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자못 새로운 효험이 있다고 말하였다. 병이(秉彛)의 천성을 진실로 속일 수 있겠는가.
나는 향약의 글을 한 번 보았으면 하였는데, 마침내 보내 주어 그 머리와 끝을 보게 되었다. 포산 사람들이 과연 시종 이 약속과 같이 한다면 한 고을이 어찌 집집마다 봉작(封爵)을 받을 만한 아름다움이 있지 않겠는가. 다만 생각하건대, 이러한 일을 세속의 사람들은 우활(迂闊)하다 하여 괴이하게 여기고 업신여기지 않는 자가 드물 것이니, 뜻이 있는 자는 세속 사람들이 비웃고 업신여긴다 하여 스스로 저상(沮喪)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옛날에 주회암(朱晦庵)은 이미 《소학(小學)》 책을 짓고 책 머리에 “혹자들은 옛날과 지금은 마땅함이 다르다고 말하고 있으나 옛날과 지금의 차이가 없는 것은 진실로 일찍이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참으로 알지 못한다.” 하였다. 이 향약 가운데의 절목(節目)은 성분(性分)과 직분(職分)에 벗어난 것이 없으니, 이는 높은 지위에 있는 자가 먼저 그 정성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바라건대 어진 김후(金侯)는 주회암의 이 말씀을 함께 약속한 사람들에게 말해줄 수 있겠는가.
[주D-002]함(咸), 영(英), 소(韶), 호(濩) : 모두 고대의 훌륭한 음악이다. 함은 함지(咸池)로 황제(黃帝)의 음악이고, 영은 육영(六英)으로 제곡(帝嚳)의 음악이며, 소는 순(舜) 임금의 음악이고, 호는 대호(大濩)로 탕(湯) 임금의 음악이다.
[주D-003]대갱(大羹)과 현주(玄酒) : 대갱은 종묘(宗廟) 제사에 올리는 쇠고기국이고, 현주는 정화수(井華水)인데 옛날 술이 없을 때에 대신 올렸다. 대갱은 원래 간을 맞추지 않고, 현주 역시 이름만 술이지 아무런 맛이 없으므로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