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원문

[스크랩] 火天大有 上九

청풍선비 2010. 2. 18. 00:02

 

上九 自天祐之 吉无不利.

 

       離火


    乾天


 

 

上九 自天祐之 吉无不利.

上九(상구) : 상구는

自天祐之(자천우지) : 하늘로부터 돕는지라.

吉無不利(길무불리) :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도다.

 

自天祐之 하늘로부터 복을 내려받다. <上九>는 大有의 마지막 爻. 人力의 최선을 다한 끝에 하늘의 복을 얻어 窮極의 實相을 갖추게 됬고 純頂의 번영을 누리게 된 것임.

 

[풀이] 상구는 양강으로 괘극, 더구나 괘의 독음인 육오의 군주에 대한 수순(隨順)의 마음을 잃지 않으므로 하늘도 반드시 이를 도와 준다. 길로서 모든 일에 좋다.

隨順 남의 뜻에 순종(順從)함  隨順衆生 나쁜 사람 좋은 사람 할 것 없이 여러 중생()의 뜻에 따름

 

[上陽] : 하늘이 도우니 만사가 순조로와 길하지 아니한 것이 없다. 大有(대유)는 上吉(상길)한 괘이다.

 

[상구]하늘이 스스로 돕는 것이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祐 : 천지신명의 도움(돕다;保祐하다)

 

   上九는自天佑之라.吉无不利로다.                                      

【傳】上九,在卦之終,居无位之地,是大有之極而不居其有者也,處離之上,明之極也,唯至明,所以不居其有,不至於過極也,有極而不處則无盈滿之災,能順乎理者也,

五之孚信而履其上,爲蹈履誠信之義,五有文明之德,上能降志以應之,爲尙賢崇善之義,其處,如此,吉道之至也,自當亨其福慶,自天祐之,行順乎天而獲天祐,故所往,皆吉,无所不利也.  

                                                                    

[정전]상구는 괘의 終으로 지위가 없는 자리이다. 이는 대유가 지극하면서도 이에 자처하지 않는 자이다. 리괘의 상이므로 지극히 밝아서 대유에 자처하지 않고 지나치게 극성하지 않는다. 지극하면서도 자만하지 않으면 대유로 인한 재앙이 없으므로 능히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다.

육오가 성실한 군주인데, 그 위에 올라 있는 것은 성신을 이행하는 뜻이 된다. 육오가 문명한 덕이 있으므로 상위에 있는 자가 뜻을 낮추어 응하는 것은 현명함과 선을 숭상한다는 뜻이다. 도에 대처함이 이러한 것은 지극한 길도이다. 따라서 福을 누리는 것은 하늘이 스스로 돕는 것이고, 이는 천도에 순응함으로써 하늘의 도움을 얻는 것이니 나아가는 바가 모두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上九는 卦의 終에 있어서 지위가 없는 자리에 처했으니, 이는 大有가 지극하면서도 그 소유함을 자처하지 않는 자이다. 離의 위에 처함은 밝음이 지극한 것이니, 지극히 밝기에 그 소유함을 자처하지 아니하여 지나치게 지극함에 이르지 않는 것이다. 소유함이 지극하더라도 자처하지 않으면 盈滿의 재앙이 없으니, 이치에 순응하는 자이다. 五가 孚信인데 그 위를 밟고 있음은 誠信을 이행하는 뜻이 되고, 五가 文明한 德이 있는데 上이 뜻이 낮추어 그에게 응함은, 賢者를 높이고 善을 숭상하는 뜻이 되다. 그 대처함이 이와 같으면 길한 道가 지극한 것이니, 스스로 마땅히 福慶을 누려 하늘로부터 도움을 받을 것이다. 행실이 天道에 순응하여 하늘의 도움을 얻었다. 그러므로 가는 곳마다 모두 吉하여 이롭지 않은 바가 없는 것이다. 

 

【本義】大有之世,以剛居上而能下從六五,是能履信思順而尙賢也,滿而不溢,故其占,如此.  

大有의 세상에 剛으로서 위에 거하여 아래로 六五를 따르니, 이는 誠信을 이행하고 순함을 생각하며 賢者를 높이는 것이다. 가득하나 넘치지 않으므로 그 占卦가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大有上吉 自天祐也.

 

象曰(상왈) : 상구에 가로대,

大有上吉(대유상길) : '대유상길'은

自天祐也(자천우야) : 하늘로부터 도움이라

 

상전에서 대유가 상구가 길인 것은 하늘로부터 도움이 있기 때문이다.

 

[상왈]大有의 상구가 길한 것은 하늘이 돕는 것이다.

 

   象曰大有上吉은自天佑也1라.                                           

【傳】大有之上,有極當變,由其所爲,順天合道,故天,祐助之,所以吉也,君子,滿而不溢,乃天祐也,

繫辭,復申之云天之所助者,順也,人之所助者,信也,履信思乎順,又以尙賢也,是以自天祐之吉无不利也,

履信,謂履五,五,虛中,信也,思順,謂謙退不居,尙賢,謂志從於五,大有之世,不可以盈,豊而復處盈焉,非所宜也,

六爻之中,皆樂據權位,唯初上,不處其位,故初九,无咎,上九,无不利,上九,在上,履信思順,故在上而得吉,蓋自天祐也. 

 

[정전]대유의 상은 극이므로 당연히 변하는 것인데, 천도에 순응하여 그 도와 합하기 때문에 하늘이 도와서 길한 것이다. 군자가 가득하지만 넘치지 않도록 하면 하늘이 돕는 것이다.

<계사전>에서 이 뜻을 다시 펴기를 “하늘이 돕는 바는 천도에 순응하기 때문이고, 사람이 돕는 바는 성신이 있기 때문이다. 성신을 따라 실천하고, 천도에 순종하며, 현인을 숭상하는 도를 행하기 때문에 하늘이 스스로 도와서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고 하였다.

 성신을 따른다는 것은 육오의 도를 밟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육오의 虛中이 곧 미더움(信)이다. 천도에 순종하는 것은 겸손하여 자처하지 않음을 말하고, 현인을 숭상하는 것은 육오를 따르는 것이다. 대유의 때에는 욕심껏 가득 채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풍족하면서도 다시 또 가득 채우려 하는 것은 마땅한 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효로부터 오효까지는 모두 권세를 즐기지만 오직 초구와 상구만은 자신의 지위에 자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초구는 허물이 없으며, 상구는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상구가 위에서 성신을 실천하고 천도에 순응하므로 길함을 얻는 것이니, 이는 하늘이 돕는 것이다. 

 

大有의 上은 소유가 지극하여 마땅히 변할 것이나, 행하는 바가 하늘에 순응하고 道에 합하기 때문에 하늘이 도와서 길한 것이다. 君子가 가득하나 넘치지 않음은 바로 하늘이 돕는 것이다. <繫辭傳>에 다시 이것을 펴서 말하기를 “하늘이 돕는 것은 순응하기 때문이요 사람이 돕는 것은 誠信하기 때문이니, 誠信을 이행하고 순함을 생각하며 또 어진이를 숭상한다. 이 때문에 하늘로부터 도와서 吉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하였다. 履信은 五를 밟음을 이르니 五가 中을 비움이 信이요, 思順은 겸손하여 자처하지 않음을 이르고 尙賢은 뜻이 五를 따름을 이른다. 大有의 세상엔 가득해서는 안되니, 풍성한데 다시 가득함에 처함은 마땅한 바가 아니다. 여섯 爻 가운데 모두 권세와 지위를 점거하는 것을 좋아하나 오직 初와 上은 그 지위에 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初九는 허물이 없고 上九는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上九가 위에 있어서 誠信을 이행하고 순함을 생각한다. 그러므로 위에 있으면서 吉함을 얻는 것이니, 이는 하늘로부터 돕는 것이다. 
 

 

 

 

괘풀이

 

大有(대유)는 관대하고 공명정대한 덕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리는 군자의 모습이다. 태양이 높은 하늘에서 빛나고 있는 형상으로 盛運(성운)을 보여준다.

 

물질면보다 정신적인 면에서 더욱 길운이다. 입학, 취직, 시험, 새로운 계획 모든 것이 순조롭다. 힘을 충실히 하여 적극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好運(호운)을 마음껏 발전시키라. 일이나 계획에 있어서 세부적인 것은 남에게 맡기고 당신은 중요한 중추적인 것을 파악하여 행동함이 좋다.

 

자칫하면 업신여겨 친구를 잃는 일이 있을 것이다. 친척과 동료 혹은 여자에 대하여 조금 고민이 있을 수 있다.또 성운을 얼싸 좋다고 함부로 지나치게 행동하면 뒷날 반발이 오리라.

 

 

 

 

홍재전서(弘齋全書) 제101권 [大有]

 

[大有]

 

傳義則以履信思順尙賢。爲上九之事。而郭氏則以爲六五之事。

今以履信之履字觀之。則五之孚信而上九履其上。有蹈履誠信之意。程說似然。又以尙賢之尙字觀之。則上九爲賢而六五處其下。有尊尙賢德之意。郭說似是。未知何說爲得歟。

第念諸卦通例。以上爻爲無用之位。五爻爲人君之位。而卦之所重。在於君爻。則履信思順尙賢之屬之六五。於義爲尤勝歟。

 

정전(程傳)》과 《본의(本義)》에서는 믿음을 이행하고[履信], 순응하길 생각하고[思順], 어진 이를 높이는 것[尙賢]을 상구(上九)의 일로 보았는데, 곽옹(郭雍)은 육오(六五)의 일이라 하였다.

지금 “믿음을 이행한다.[履信]”고 한 이(履) 자를 관찰해 보면 육오는 성실한 믿음이 있는 자인데, 상구가 그 위에 있어서 성실한 믿음을 밟고 있는 뜻이 있으니, 《정전》의 말이 옳을 듯하다. 또 “어진 이를 높인다.[尙賢]”고 한 상(尙) 자를 관찰해 보면 상구는 어진 이가 되는데 육오가 그 밑에 있으면서 어질고 덕 있는 이를 높이는 뜻이 있으니, 이는 곽옹의 말이 옳은 듯하다. 어느 학설이 더 좋은지 모르겠다.

모든 괘의 공통적인 예를 생각해 보면 상효(上爻)는 쓸모없는 자리이고 오효(五爻)는 임금의 자리인데, 괘의 중요함은 군효(君爻)에 있는 것이고 보면 믿음을 이행하고, 순응하길 생각하고, 어진 이를 높이는 것을 육오에 배속시키는 것이 이치로 보아 더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

 

翼晉對。爻有六位。而以五爲君。獨於上一爻屬之無位而尊。故諸家之說。或以賓師之義。休退之地爲言。如鴻漸于逵。不事王侯之類是也。

此卦六五之君。下有羣賢之輔。而上九則以剛明之德。處大有之盛。無所作爲。而享其天祐之福。履信思順尙賢之事。特言其順理合道。獲助天人之慶也。

傳義之訓。皆主是義。若如郭說則當初繫辭中何不及六五爻辭。而只擧自天祐以下。繼之以云云耶。

此箇爻位。恐當以賓師休退之例推之矣。然而六十四卦。莫盛於大有。盛必有衰。固理之常也。

故於九四爻辭。已有匪彭之戒。况居大有之極者。必有招損之慮。而只緣大有之終承之以謙。有大而不自有。

居上而不自高。所謂履信思順。其實謙之爲也。非大有之爲也。又何獨以六五當之哉。

 

 

[이익진이 대답하였다.]효(爻)에 여섯 자리가 있는데 그중에서 오효를 임금으로 삼고, 유독 위의 한 효만을 지위는 없으면서 높은 자리에 있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제가(諸家)의 학설 중에 손님과 스승의 뜻으로 보거나 물러나 쉬는 자리로 말을 하기도 하는데, “기러기가 점점 공중으로 나아간다.[鴻漸于逵]”라든가 “왕후를 섬기지 않는다.[不事王侯]”는 것들이 그러한 것입니다.

이 괘에서 육오의 임금은 아래에 여러 어진 이들의 보필이 있지만, 상구는 강명(剛明)한 덕을 가지고 풍성한 대유(大有)에 처해 있으면서 뚜렷하게 하는 일도 없이 하늘에게 도움 받는 복을 누리고 있으니, 믿음을 이행하고 순응하길 생각하고 어진 이를 높이는 일은 다만 이치에 순응하고 도리에 맞게 하여 하늘과 사람의 도움을 얻는 경사를 말한 것입니다.

《정전》과 《본의》의 해석은 모두 이러한 뜻을 위주로 한 것인데, 만약 곽옹의 말대로라면 애당초 계사(繫辭)에서 어찌하여 육오의 효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다만 “하늘로부터 돕는다.[自天祐之]”고 한 이하의 것만을 들어서 이어 말하였겠습니까.

이 육오 효의 자리는 아마도 손님과 스승의 뜻으로 보거나 물러나 쉬는 자리로 미루어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합니다. 그러나 64괘 중에 대유괘(大有卦)보다 더 풍성한 것이 없으니, 풍성하면 반드시 쇠퇴하는 것은 진실로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구사(九四)의 효사에서는 이미 “풍성함을 내세우지 않아야 한다.[匪其彭]”고 한 경계가 있었습니다. 더구나 대유(大有)의 마지막 자리에 처해 있으니 반드시 감손(減損)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나, 다만 대유가 끝난 다음에는 겸괘(謙卦)로 이어져서 풍부하게 소유하였으면서도 있는 체하지 않고 윗자리에 있으면서도 높은 체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른바 “믿음을 이행하고 순응하길 생각한다.[履信思順]”고 하는 것은 사실상 겸(謙)이 그렇게 하는 것이지 대유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닌데, 어찌 육오만을 해당시킬 수 있겠습니까.

 

 

陽爲富陰爲貧。陽爲大陰爲小。今此一陰在上卦之中而五陽宗之。則非謂大者有之。卽謂所有之大也。

程傳以富有釋大有。而鄭氏則以爲直以大有。爲富有盛大。則失其義矣。然若以所有之大之義例之。則富有獨不可謂所有之富也歟。

 

양(陽)은 풍부함이 되고 음(陰)은 가난함이 되며 양은 크고 음은 작은 것이 되는데, 지금 이 괘는 음효(陰爻) 하나가 상괘(上卦)의 중간에 있고 그것을 다섯 양이 종주(宗主)로 삼고 있으니, “큰 것이 소유하였다.[大者有之]”는 말이 아니고 “소유한 것이 크다.[所有之大]”는 것이다.

그런데 《정전》에서는 대유(大有)를 부유(富有)로 풀이하였으나, 정여해(鄭汝諧)는 “곧바로 대유를 부유와 성대(盛大)로 보는 것은 그 본뜻을 잃은 것이다.” 하였다. 그러나 만약에 “소유한 것이 크다.”고 하는 뜻으로 미루어 보면 그 ‘부유’라고 한 것도 “소유한 것이 부유하다.”고 할 수는 없겠는가?

 

 

崑秀對。釋大有之義者。皆以爲大其有。而不以爲大且有。謹按王註曰不大通。何由得大有乎。

孔疏曰能大所有。故稱大有。本義曰大有。所有之大也。此皆大其有之謂也。

獨程傳曰大有。盛大豐有也。又曰大有繁庶之義。又曰富有鮮不有害。則此乃大且有之謂也。鄭氏所云失其義者。以是故耳。雖然善於易者。玩其象而毋泥其辭可也。

今夫大有一卦。一柔居尊。衆陽竝應。謂之大其有可也。謂之大且有亦可也。有何失其義之可論哉。若必以所有之富。釋所有之大。則亦恐非程傳之本旨也。以上大有

 

[이곤수가 대답하였다.]대유를 풀이한 이는 모두가 “그 소유함이 크다.”고만 하고 “크면서도 부유하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삼가 고찰해 보면 왕필(王弼)의 주석에서는 “크게 형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대유를 얻겠는가.” 하였고,

공영달(孔穎達)의 소(疏)에서는 “소유를 크게 할 수 있으므로 ‘대유’라고 일컬었다.”고 하였으며, 《본의》에서는 “대유는 소유함이 큰 것이다.” 하였으니, 이는 모두 그 소유함이 큼을 말한 것입니다.

유독 《정전》에서만 “대유는 성대하고 풍부하게 소유한 것이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대유는 번성하고 많다는 뜻이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부유하게 되면 해가 없는 경우가 적다.”고 하였으니, 이는 크면서도 부유함을 말한 것입니다. 정여해가 “그 본뜻을 잃은 것이다.”라고 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역리(易理)를 잘 연구하려면 그 상(象)을 완미(玩味)하고 말에는 매달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이 대유괘로 말하면 음유(陰柔)한 한 효가 높은 자리에 있고 많은 양이 아울러 순응하고 있으니 “그 소유함이 크다.”고도 할 수 있고 “크면서도 부유하다.”고도 할 수 있는데, 어찌 그 뜻을 잃었다고 논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반드시 ‘소유함의 풍부함’을 가지고 “소유함이 크다.”고 풀이한다면 이는 아마도 《정전》의 본뜻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상은 대유괘(大有卦)이다.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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