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포럼/양촌집

양촌선생문집 제22권_발어류(跋語類)_천문도(天文圖)의 지(誌)

청풍선비 2011. 3. 24. 16:39

양촌선생문집 제22권_

발어류(跋語類)_

 

천문도(天文圖)의 지(誌)

 

천문도의 석본(石本)은 옛날 평양성(平壤城)에 있었는데, 병란(兵亂)으로 강물에 잠겨 유실되었으며, 세월이 오래되어 그 남아 있던 인본(印本)까지도 없어졌다. 우리 전하께서 즉위하신 처음에 어떤 이가 한 본을 올리므로, 전하께서는 이를 보배로 귀중히 여기고 서운관(書雲觀)에 명하여 돌에다 다시 새기게 하매, 본관(本觀)이 상언(上言)하기를,

“이 그림은 세월이 오래되어 별[星]의 도수가 차이가 나니, 마땅히 다시 도수를 측량하여 사중월(四仲月 음력 2ㆍ5ㆍ8ㆍ11월)의 저녁과 새벽에 나오는 중성(中星)을 측정하여 새 그림을 만들어 후인에게 보이소서.”

하니, 상께서 옳게 여기므로 지난 을해년(1395, 태조4) 6월에 새로 중성기(中星記) 한 편을 지어 올렸다. 옛 그림에는 입춘(立春)에 묘성(昴星)이 저녁의 중성이 되는데 지금은 위성(胃星)이 되므로, 24절기가 차례로 어긋난다. 이에 옛 그림에 의하여 중성을 고쳐서 돌에 새기기가 끝나자 신(臣) 근(近)에게 명하여 그 뒤에다 지(誌)를 붙이라 하였다.
신 근은 삼가 생각건대, 자고로 제왕이 하늘을 받드는 정사는 역상(曆象 달력)으로 천시(天時)를 알려 주는 것을 급선무로 삼지 않는 이가 없다. 요(堯)는 희화(羲和)를 명하여 사시(四時)의 차례를 조절하게 하고, 순(舜)은 기형(璣衡)을 살펴 칠정(七政)을 고르게 하였으니, 진실로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의 일에 부지런함을 늦추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삼가 생각건대, 전하께서는 성스럽고 인자하시므로 선위를 받아 나라를 두신지라, 중외가 안일하여 태평을 누리니 이는 곧 요순(堯舜)의 덕이며, 먼저 천문(天文)을 살펴 중성(中星)을 바루니 이는 곧 요순의 정치이다. 그러나 요순이 천문을 보고 기구를 만들던 마음을 구한다면 그 근본은 다만 공경에 있을 뿐이니, 전하께서도 또한 공경을 마음에 두어 위로 천시(天時)를 받들고 아래로 민사(民事)를 부지런히 하시면, 그 신성한 공렬(功烈)이 또한 요순과 같이 높아질 것이다. 하물며 이 그림을 정민(貞珉)에 새겼음에랴! 길이 자손 만대에 보배로 삼을 것이 분명하다.

홍무(洪武 명 태조(明太祖)의 연호) 28년(1395, 태조4) 겨울 12월 일


[주D-001]서운관(書雲觀) : 고려 때 천문(天文)ㆍ역수(曆數)ㆍ측후(測候)ㆍ각루(刻漏)의 일을 맡아보던 관청. 조선 태종 때 관상감(觀象監)으로 고쳤다.
[주D-002]중성(中星) : 28수(宿) 중 해가 질 때와 돋을 때 정남(正南)쪽에 보이는 별. 혼중성(昏中星)과 단중성(旦中星)으로 분리된다.
[주D-003]기형(璣衡) : 선기옥형(璇璣玉衡)의 약칭으로 혼천의(渾天儀)라고도 한다. 해ㆍ달ㆍ별의 천상(天象)을 그려서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관측하던 기계인데, 사각(四脚)의 틀 위에 올려 놓고 회전시키면서 관측하도록 되어 있다.
[주D-004]칠정(七政) : 일(日)ㆍ월(月)과 오성(五星)인 금(金)ㆍ목(木)ㆍ수(水)ㆍ화(火)ㆍ토(土) 곧 천체를 이른다.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선기옥형(璇璣玉衡)을 살펴 칠정의 운행을 바로잡는다.” 하였다.
[주D-005]정민(貞珉) : 굳고 고운 돌인데, 비석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