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포럼/계곡선생

계곡만필 제1권_[만필(漫筆)]_《중용장구》 가운데 세 가지 의심스러운 것

청풍선비 2011. 4. 7. 21:22

계곡만필 제1권

[만필(漫筆)]

 

[《중용장구》 가운데 세 가지 의심스러운 것[中庸章句中有疑者三]]

 

내가 《중용장구(中庸章句)》를 읽으면서 의심나는 점이 세 가지가 있었다. 이에 기록을 하여 도(道) 있는 자에게 질정(質正)을 구하는 바이다.
수장(首章)에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性)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고, 도(道)를 닦는 것[修]을 교(敎)라고 한다.” 하였으니, 《중용》은 바로 도를 닦는 그 가르침을 위주로 지어진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아래의 글에서 바로 이어서 말하기를, “도라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라고 하였고, 이와 직결시켜서 계구(戒懼)와 신독(愼獨)과 치중화(致中和)의 일을 언급하였으니, 이것이 즉 실제로 도를 닦는 그 일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닦는다[修]는 것은 닦아서 밝게 하고[修明] 닦아서 다스려 나간다[修治]는 것을 의미하니, “군자는 이를 알고 닦아 나가 길하게 된다.[君子修之吉]”는 뜻과 동일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장구》에서는 “닦는다는 것[修]은 등급을 정해서 차례로 절제(節制)해 나가는 것[品節之]”이라고 하였고, “교(敎)는 예(禮), 악(樂), 형(刑), 정(政) 등이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품절(品節)로 수(修)의 뜻을 풀이하는 것은 아무래도 직접 절실하게 와 닿는 해석이 되기에는 부족한 느낌이다. 그리고 예악(禮樂)이라는 것이 비록 몸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계구(戒懼)와 신독(愼獨)에 비교해 본다면 조금 느슨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형정(刑政)으로 말하면, 본래가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도구일 뿐, 학자들이 몸과 마음을 닦는 것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인데, 이것을 가지고 도(道)를 닦는다고 한다면 너무 동떨어진 일이 되지 않겠는가.
대저 본장(本章)에서 말하고 있는 계구(戒懼)와 신독(愼獨)과 치중화(致中和) 등 우리 몸에 절실한 가르침을 치지도외한 채, 멀리 예악형정(禮樂刑政)을 끌어다 거론하여 교(敎)로 삼은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의문이다.
12장(章)에 “군자의 도는 비(費)하고 은(隱)하다.” 하였는데, 이 비와 은 두 글자는 본래 이해하기가 무척 어렵다. 우선 《장구》에서 해석한 뜻을 가지고 미루어 보건대, 모든 사물과 언행 속에서 드러나는 백 가지 행동 만 가지 선한 일이 크게는 밖이 없이 무한대[大無外]하고 작게는 안이 없이 무한소[小無內]의 양상을 보이니 이것이 모두 비(費)라는 것이고, 그 속에 내재한 이치를 눈으로 볼 수 없는 그것이 바로 은(隱)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와 은이라는 두 글자가 단지 이 장(章)에만 나타나 있다 하더라도, 그 뜻으로 보면 《중용》 한 편에서 논한 내용 모두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처음에 일리(一理)를 말하고 나서 중간에 만사(萬事)로 확산시키고 끝에 다시 합쳐 일리(一理)로 귀결시킨다.”고 한 것이 바로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지금 《장구》에서는 그 내용을 분류하여, 12장(章)부터 20장까지를 비와 은에 대한 대소(大小)의 뜻을 논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렇다면 다른 장(章)에는 비와 은의 뜻이 없다는 말인가.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의문이다.
대범 글 짓는 체제를 보건대, 편(篇), 장(章), 구(句), 자(字)의 형태를 갖추면서 각각 법도를 유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글자가 합쳐져서 하나의 구(句)를 이루고, 구가 합쳐져서 하나의 장(章)을 이루며, 장이 합쳐져서 하나의 편(篇)을 이루는 것이니, 하나의 구(句)가 곧장 하나의 장(章)으로 되는 경우는 있지 않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장구》에서는 “도가 행해지지 않을 것이다.[道其不行矣夫]”라는 하나의 구절을 가지고 제5장(章)으로 삼고 있다. 주자(朱子)는 필시 “자왈(子曰)”이라는 두 글자가 말머리를 여는 표현인 만큼 다른 장(章)에 끼워 붙이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구(句)로 장(章)을 삼는 것은 아무래도 문장의 체제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것이 나의 세 번째 의문이다.
선유(先儒)의 정설(定說)에 대해서는 본래 깍듯이 따르며 지키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마음속에 의심이 들 경우에는 이를 강구해 보는 것 또한 당연하다 하겠다. 식견이 통달한 군자라면 분명히 나의 이러한 의혹을 풀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주D-001]중용장구(中庸章句) : 송(宋) 나라 주희(朱熹)가 《예기(禮記)》 속의 《중용(中庸)》을 33장으로 분류해서 정리한 것으로, 고본(古本)과는 같지 않다.
[주D-002]계구(戒懼)와 …… 일 : 앞 글에서 바로 이어지는바 “그러므로 군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경계하고 삼가며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겁을 내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은미할 때가 가장 잘 드러나는 법이니, 그래서 군자는 혼자 있을 때를 조심하는 것이다. …… 중과 화의 경지를 이루면 천지가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제대로 생육한다.[是故 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의 내용을 가리킨다.
[주D-003]군자는 …… 된다 : 송(宋) 나라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나오는 말이다.
[주D-004]처음에 …… 귀결시킨다 : 《중용장구》 첫머리에 인용한 정자(程子)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