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포럼/퇴계선생

퇴계선생문집 제8권_서계수답(書契修答)_예조가 일본국(日本國) 좌무위장군

청풍선비 2011. 4. 11. 12:49

퇴계선생문집 제8권_서계수답(書契修答

예조가 일본국(日本國)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 원의청(源義淸)에게 답하다

 

사자(使者)가 와서 전한 편지에 귀체가 편안하다는 통고를 받으니, 기쁜 마음 한량이 없다. 이전에 그대 선조가 우리 조정에 감화를 받고 의리를 흠모하여 수교하고 서로 기뻐하였는데, 중간에 끊어지고 계속되지 못하였으므로 매우 의아하였다. 지금 족하가 덕을 이어받고 선조를 추종하여 예전의 우호 관계를 다시 닦으려고 멀리 거센 파도를 건너 사자를 보내서 예(禮)를 바치니, 그 뜻이 매우 만족할 만하다.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와서 바친 예물은 삼가 이미 임금께 아뢰고 수납하였다. 그리고 임자년의 의춘서당(宜春西堂)의 일을 얘기한 것은 그렇지 않다. 이제 접대하지 않은 이유를 대강 말하겠으니, 그대는 일단 곰곰이 살펴 들어 보라. 당시 의춘이 이미 귀하의 심부름꾼이라고 자칭하고 왔으니, 만약에 그의 간사한 정상과 속이는 행적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면 우리 조정이 대대로 수교한 의리를 보아서라도 어찌 접대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다만 의춘은 이름을 바꾼 것이 의심될 뿐 아니라 그전에 그가 소이전(小二殿)의 사자라고 하며 명(命)을 전하고 돌아갔다가 곧바로 귀하의 사자라고 칭하며 왔는데, 여기에서 출발한 날에 의거하여 거기에 다시 도착한 시간을 상고해 보니 불과 얼마 안 되는 시일이었다. 앞의 사자가 직접 가서 보고하지 않을 수도 없으며 뒤의 사자를 멀리서 임명할 수도 없을 테니, 바다와 육지를 왕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전혀 맞지 않는 상황이 그가 축지법을 쓰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만회(萬回)의 능력이 있겠는가. 우리 조정이 이 때문에 의심하여 예관(禮官)을 보내 통역으로 심문했더니, 의춘의 대답이 앞의 일은 가리고 뒤의 일만 드러내어 교묘하게 꾸미려다가 도리어 졸렬해져서 마침내 말이 막히고 얼굴이 붉어져 변명을 못했다. 두 번 지나간 신묘년에 서화서당(西華西堂)이란 자가 귀하의 서계(書契)를 가져왔기에 우리나라가 접대하고 돌려보냈더니, 갑오년에 이르러 귀국 왕의 사자 정구 수좌(正球首座)가 왔을 때 국서(國書)에 이르기를, “이전에 우두머리들이 연락하러 보낸 자들은 모두 중간에서 거짓으로 꾸며 속인 것이다.” 하였다. 이에 비로소 서화가 사칭하고 온 것을 알고 정구가 돌아갈 때에 실정을 갖추어 통보하였으니, 귀국의 전고(典故) 안에도 갖추어 기재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대개 서화의 사칭은 지난 뒤에 드러났고 의춘의 사칭은 당일에 발각되었으니, 지난 뒤에 드러난 것이야 여러 말할 것이 없지만 당일에 발각된 것을 그래도 귀하의 사자의 예로 접대해야 하겠는가.
또 나라는 신의(信義)만큼 중한 것이 없고, 예는 명분(名分)만큼 중한 것이 없다. 명분이란 무엇인가. 실상의 대(對)가 되는 것이다. 저 의춘은 명색은 귀하의 사자이지만 그 실상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 저와 같으니, 비록 접대하고자 하더라도 예(禮)가 따라 주지 않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예가 따라 주지 않는데도 억지로 접대하게 되면 이것은 정성과 신의를 가지고 사자를 접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자를 속여서 귀하까지 속이는 것이다. 두 나라가 서로 우호를 맺어 신의 있는 사자가 왕래하는데, 만약 서로 속이는 것을 가지고 예라고 한다면 나라를 지키는 도리에 어떠하겠는가. 이것은 우리 조정에서만 배척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귀하도 몹시 싫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때 조정에서 논의하여 사자의 예로써 접대하지 않더라도 일반 왜인으로 접대하여 지나는 곳의 여관에 유숙시키고 바다를 건너는 데 필요한 식량을 넉넉하게 주었으니, 어찌 굶주리고 궁핍하게 하였겠는가. 어쩌면 의춘이 자기 계획이 성사되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겨 양식이 이르기를 기다리지 않고 지레 가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우리 조정이 그렇게 시킨 것은 아니다. 그렇긴 해도 우리 진장(鎭將)이 미처 주선하지 못한 소치이기 때문에 즉시 진장을 추궁하여 중하게 죄를 다스렸다.
지금 보낸 편지에 간곡히 말한 수백 마디 말이, 우리가 예의 근본을 저버리고 옛 관례를 어겨 사자를 접대하지 않았다고 하니, 비록 견책하는 뜻으로는 당연하다 하겠으나, 우리나라는 전에 귀국 왕의 말을 받고서 서화가 속인 것을 알았고 또 의춘의 종적이 서화와 다름이 없음을 분명히 알았다. 그러므로 귀하를 위하여 이렇게 거짓되고 외람됨을 지적하여 장차 명분을 바루고 실상을 책하여 국가의 신의를 굳게 지켜 영구히 수호하는 도리를 행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우리나라가 진실로 예를 저버린 것도 아니고 예를 아끼지 않은 것도 아닌데, 족하는 어찌 이에 대하여 깊이 양해하지 못하는가. 하늘에는 해가 둘이 없고, 백성에게는 임금이 둘이 없다. 《춘추》에 일통(一統)을 중하게 여기는 것은 곧 천지의 떳떳한 도리이고 고금에 통용되는 의리이다. 대명(大明)은 천하의 종주국이니, 바다 모퉁이까지 해가 뜨는 곳이라면 어디를 막론하고 신복(臣服)하지 않는 나라가 없으므로 귀국도 대대로 조공(朝貢)을 바친 것이다. 연도를 한정하여 조회를 허락한 명령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형세로 요량해 보건대 민절(閩浙) 지방의 간악한 백성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넘어서 귀경(貴境)의 사람들과 함께 이익을 겨냥해 서로 교통하다가 분쟁의 실마리가 빚어져 피차 변경에 피해가 생긴 듯하니, 이것이 바로 명나라에서 크게 금지한 이유이다. 어찌 고의로 그렇게 한 것이겠는가. 귀국이 여러 섬이 교통하는 잘못을 금지하는 데는 힘쓰지 않고 도리어 명나라가 인의를 베풀지 않는다고 배척하니, 어찌 잘못이 아닌가. 어진 사람에게는 다른 나라를 정벌하는 데 대한 질문도 하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명분과 의리를 범하면서 상국(上國)을 침범한단 말인가. 우리나라는 천리(天理)를 즐기고 천리를 두려워할 줄만 알 뿐 그 밖의 것은 들은 바 없다.
편지에서 왜선(倭船)이 상국에 왕래하다가 만약 표류하여 우리 국경에 도달하거든 모두 살려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는데, 이 문제는 그렇게 하겠다. 우리는 귀국과 서로 인접하여 대대로 우호가 돈독하니 귀국의 백성도 우리의 백성이다. 만약 표류해 온 왜인이 병기(兵器)를 버리고 맨몸으로, 오게 된 연유를 분명히 말하면 죽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마땅히 노자를 주어 호송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포악하게 병기를 가지고 섬과 포구에 출몰하면서 노략질하고 겁탈하는 것을 일삼으며 목숨을 맡긴 채 진실을 토로하지 않는 자라면 명백히 해적에 관련된 것이니, 각 변방의 진장들은 그 즉시 토벌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실로 조약에 엄히 규정한 바로, 귀국도 잘 아는 사실이니 잘 살펴서 처리하라. 그리고 상품을 무역하려면 그에 따르는 기율이 있어야 한다. 또 마침 흉년으로 인하여 비용이 넉넉하지 아니하므로 힘써 두터운 바람에 부응하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다만 면포 1500필만 서로 무역할 것을 허락하니, 실로 서운하다. 나머지는 진중하기를 기원하면서 이만 줄인다.


[주D-001]만회(萬回) : 신(神)의 이름이다. 이 신에게 제사 지내면 만리 밖에 있는 사람을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준다고 한다.
[주D-002]천리(天理)를 …… 줄 : “대국을 가지고 소국을 섬기는 자는 천리를 즐기는 자요, 소국으로 대국을 섬기는 자는 천리를 두려워하는 자이다.” 하였다. 《孟子 梁惠王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