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선생문집 제41권_잡저(雜著)_〈천명도설(天命圖說)~
퇴계선생문집 제41권_잡저(雜著
천명도설(天命圖說)〉 후서(後叙) 도식(圖式)을 붙임
내가 처음 벼슬에 나온 이래 한양(漢陽) 서쪽 성문(城門) 안에 와서 산 지가 20년이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이웃에 사는 정정이(鄭靜而 정지운(鄭之雲))와 서로 인사가 없어 교제하지 못했다. 하루는 조카 교(㝯)가 어디서 〈천명도〉라는 것을 얻어 가지고 와서 보여 주었는데, 그 도식과 해설이 자못 틀린 데가 있었다. 교(㝯)에게 누가 지은 것이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하였다. 그 뒤에 차츰 수소문하고서야 비로소 그것이 정이(靜而)에게서 나온 것을 알았다. 이에 사람을 통해 정이에게 연락하여 본도(本圖)를 보여 달라고 하고 얼마 지나서는 또 정이를 만나 보자고 하여, 모두 두세 차례 편지를 왕복한 뒤에야 정이가 좋다고 하였으니, 내가 지난날 궁벽하고 고루하여 교제가 적은 것이 부끄러울 만하다. 내가 만난 기회에 정이에게 말하기를, “지금 이 도식이 교가 전해 준 것과 같지 않은 것은 어찌된 까닭입니까?” 하니, 정이가 대답하기를, “지난날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와 사재(思齋 김정국(金正國)) 두 선생의 문하(門下)에서 배울 적에 그 이론을 듣고 물러 나와서 아우 아무개와 함께 그 뜻의 귀추를 강구하였습니다. 다만 성리(性理)의 미묘함을 표준 하여 밝힐 데가 없는 것이 염려되어 시험 삼아 주자(朱子)의 말씀을 취하고 여러 학설을 참작하여 도식을 하나 만들어서 모재 선생에게 올려 의심나는 것을 질정하였더니, 모재 선생이 그것을 그릇되고 망녕된 것이라고 물리치지 않고 책상에 놓아두고는 여러 날을 집중하여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잘못된 곳을 지적해 줄 것을 청하자, ‘오랜 공부를 쌓지 않고는 경솔히 말할 수 없다.’ 하였으며, 혹 배우는 사람이 문하에 오면 이를 꺼내 보이며 말씀하셨습니다. 사재 선생 역시 꾸짖으며 금하지 않으셨으니, 이것은 이 두 선생께서 뜻만 크고 실속은 없는 저를 유도해 나아가게 한 것일 뿐 그 도식이 전할 만하다고 여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당시 동문의 생도들이 이것을 베껴서 사우(士友)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그 뒤 제 스스로 잘못임을 깨닫고 고친 것이 많았으니, 이 때문에 전후로 차이가 생긴 것인데 아직까지도 확정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운(之雲)은 부끄럽기도 하고 겁도 나니, 원하건대 바로잡아 가르쳐 주시면 대단히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그렇습니다. 두 선생께서 경솔히 잘잘못을 논하지 않은 데에는 실로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이 학문을 익히면서 만일 타당하지 못한 곳이 있음을 깨달았다면 또 어찌 구차하게 동조하고 왜곡되게 변호하여 끝내 그 시비를 가려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사우들이 전하면서 모두들 ‘모재ㆍ사재 두 선생의 시정을 거쳤다.’고 하였는데, 여전히 오류가 있음을 면치 못한다면 사문(師門)에 누가 됨이 또한 크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정이가 대답하기를, “이것이 진실로 제가 일찍부터 우려하던 것이니, 감히 마음을 비우고 가르침을 듣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내가 마침내 〈태극도(太極圖)〉와 그 해설을 증거로 대며 지적하여 어느 대목은 잘못 되었으니 고치지 않을 수 없고, 어느 대목은 쓸모없으니 없애지 않을 수 없고, 어느 대목은 빠졌으니 보충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말이 어떠하냐고 하였는데, 정이는 모두 말이 떨어지자마자 수긍하면서 어기거나 고치기를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다만 내 말에 타당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힘껏 변명하고 논란하여 지당하게 귀결된 뒤에야 그만두려 하였다. 아울러 호남(湖南)의 선비 이항(李恒)이 논한 “정(情)은 기권(氣圈) 가운데 둘 수 없다.”는 설을 들어 여러 장점을 모으는 자료로 삼았다. 두어 달이 지난 뒤에 정이가 고쳐 만든 도식과 부기한 해설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 주기에 다시 함께 참고하고 교정하여 완전히 정비하였다. 비록 과연 오류가 없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들의 소견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거의 다한 것이었다. 이에 자리 오른편에 걸어 놓고 아침저녁으로 마음을 부치고 자세히 들여다보며 연구하여, 이 도식을 통해 스스로 깨우쳐 마음을 계발하여 조금이나마 진전이 있기를 바랐다. 하루는 어떤 손님이 우리 집에 와서 이것을 보고 나에게 말하기를 “정생(鄭生)이 〈천명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대가 고정(考訂)해 주었다더니, 그게 바로 이것입니까?” 하기에, “그렇습니다.” 하니, “정생의 주제넘음과 그대의 어리석고 망녕됨이 너무 심합니다.” 하였다. 내가 눈이 둥그레지며, “무슨 말입니까?” 하니, 손님이 말하기를, “황하(黃河)와 낙수(洛水)에서 상서가 나오자 복희씨(伏羲氏)와 우(禹) 임금이 이로 인하여 《주역》의 팔괘(八卦)와 《서경》의 〈홍범(洪範)〉을 지었으며, 오성(五星)이 규성(奎星)에 모이자 주자(周子)가 이에 응하여 〈태극도설(太極圖說)〉을 만들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도서(圖書)를 만드는 것은 모두가 하늘의 뜻에서 나온 것으로 반드시 성현(聖賢)이 나온 뒤에야 비로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 정생이란 사람은 어떤 사람인데 감히 도식을 만들었으며, 그대는 또 어떤 사람인데 감히 그 잘못을 도와주었단 말입니까.” 하였다. 내가 일어나 절하며 사과하기를, “서생(書生)이 옛것만 믿고 마음대로 저촉하고 무릅써 참람함이 이에 이르렀는데, 그대의 후한 책망과 깨우침 덕분에 거의 죄과를 면하게 되었으니 이런 다행히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가령 이 도식이 경전(經傳)의 뜻을 어기고 사견(私見)을 내어 별다른 뜻을 창출했다면, 그대가 비난할 뿐 아니라 누구든지 공격할 것이고 선정(先正)에게 죄를 얻을 뿐 아니라 하늘에서도 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도식은 주자(朱子)의 말씀을 가지고 태극의 본도(本圖)에 근거하여 《중용》의 대지(大旨)를 기술하여, 드러난 것으로 인하여 은미한 이치를 알아서 상호 간에 발명하며 쉽게 깨닫게 하려는 데 불과합니다. 이와 같을 뿐인데 무슨 큰 잘못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손님이 발끈하여 말하기를 “그대가 나를 속이려 합니까. 주자(周子)의 〈태극도〉에서는 태극에서 오행(五行)까지 세 개의 층(層)으로 되었고, 기화(氣化)와 형화(形化)가 또 두 층으로 되었는데, 이 도식에서는 덩그러니 동그라미 하나뿐이니, 어찌 그와 같다 할 수 있겠습니까.” 하여, 내가 대답하기를, “손님은 참으로 태극과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이 세 개의 층이 있다고 여기며, 기화와 형화가 또 이 세 가지 밖에서 나와서 따로 두 층이 있다고 여깁니까?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요,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다.’ 하였으니, 음양의 조화는 바로 하나의 태극이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혼륜(渾淪)하여 말하면 단지 하나뿐입니다. 다만 주자(周子)가 〈태극도〉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일 적에 부득이 다섯으로 나누었던 것뿐입니다.” 하였다. 손님이 말하기를, “이것도 도식을 만들어 남에게 보이는 것인데, 어째서 주자처럼 하나를 나누어 다섯으로 만들지 않고 도리어 다섯을 합하여 하나로 하였습니까? 이것이 이설(異說)을 세운 게 아닙니까?” 하여, 대답하기를, “각각 주장하는 것이 있어서입니다. 염계(濂溪)는 이기(理氣)의 근본을 천명하고 조화(造化)의 기묘(機妙)를 드러내었으니 나누어 다섯으로 만들지 않으면 사람들을 깨우칠 수 없고, 이 도식은 사람과 물건의 타고난 것으로 인하고 이와 기의 화생(化生)을 근원하였으니, 합하여 하나로 만들지 않으면 그 위치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모두 부득이하게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더구나 사람의 위치에서 본다면 이른바 ‘하나를 나누어 다섯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완연히 다 갖추어져 있으니, 그 뜻은 이미 염계의 〈도설〉에 전부 갖추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태극도설〉을 기반으로 그려 놓은 것에 불과할 뿐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였다. 손님이 말하기를, “〈태극도〉에는 음 가운데 양이 있고 양 가운데 음이 있는데 여기에는 없고, 〈태극도〉에는 원(元)ㆍ형(亨)ㆍ이(利)ㆍ정(貞)이 없는데 여기에는 있고, 〈태극도〉에는 땅과 사람과 물건의 형체가 없는데 여기에는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여 내가 대답하기를, “음(陰)의 자(子)에서 오(午)까지는 양 가운데 음이 되고, 양의 오(午)에서 자(子)까지는 음 가운데 양이 되니, 〈하도(河圖)〉와 염계의 〈태극도〉가 모두 그러합니다. 다만 거기에서는 대대(對待)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객(客)이 주인 가운데 포함되어 있고, 이 〈천명도〉는 운행(運行)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제때를 만난 것이 속에 있고 공을 이룬 것이 밖에 있으니, 실제로는 똑같습니다. 염계의 〈도설〉에서 ‘오행이 생길 때에 각각 그 성(性)을 하나씩 타고난다.’ 하였는데, 성(性)은 바로 이(理)입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이른바 ‘오행의 성’이란 곧 여기의 원ㆍ형ㆍ이ㆍ정을 말한 것이니, 어찌 거기는 없는데 여기는 있다 하겠습니까. 지(地)와 인물(人物)의 형체의 경우도 〈태극도설〉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도설〉에 이른바 ‘태극의 진(眞)과 음양ㆍ오행의 정기(精氣)가 묘하게 합하여 남자를 이루고 여자를 이루어 만물이 화생한다. 만물이 생기고 또 생겨서 변화가 끝이 없다.’ 한 것이 인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내가 본래 ‘이 〈천명도〉는 사람과 물건의 타고난 것을 인하고, 이와 기의 화생(化生)을 근원하여 만들었다.’ 하였으니, 지(地) 또한 하나의 물체입니다. 그렇다면 인물을 형용하면서 아울러 땅을 형용한 것이 모두 조술(祖述)한 바가 있는 것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거기에 있고 없고 같고 다른 것을 의심합니까?” 하였다. 손님이 말하기를, “이 〈천명도〉가 〈태극도〉에 조술한 바가 있다고 그대가 말한 것은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태극도〉에서 왼쪽이 양(陽)이 되고 오른쪽이 음(陰)이 된 것은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에서 오(午)가 앞이고 자(子)가 뒤이며, 왼쪽이 묘(卯)이고 오른쪽이 유(酉)로 된 방위(方位)에 근본한 것이니, 이는 참으로 만세토록 바뀌지 않을 정해진 분수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도식에선 일체를 이와 반대로 바꾸어 놓았으니, 너무 엉성하고 틀리게 해 놓은 것이 아닙니까?” 하여, 내가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방위를 바꾸어 놓은 것이 아니고 다만 보는 사람과 도식 사이에 주객(主客)의 차이가 있는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도ㆍ낙서 이하 모든 도서(圖書)의 위치는 모두 북쪽에서 내려오는 것을 위주로 하였는데, 보는 사람도 북쪽에서 보는 것을 위주로 보니, 이는 도식과 보는 사람 사이에 주객의 구분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후좌우ㆍ동서남북이 모두 바뀌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 〈천명도〉는 도식이 주인으로 북쪽에 있고 보는 사람은 손님이 되어 남쪽에 있어서 손님 쪽에서 주인을 향해 남쪽에서 북쪽으로 보기 때문에 그 전후좌우가 보는 사람의 향배(向背)에 따라 서로 바뀐 것뿐이지 천지(天地)의 동서남북의 본래 위치에 변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그 곡절이 다른 것 같지만 의미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하였다. 손님이 말하기를, “하도ㆍ낙서와 선천(先天)ㆍ후천(後天) 등은 모두 아래에서 시작했는데, 이 도식만 위에서 시작한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여, 대답하기를, “이것도 〈태극도〉를 따라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태극도〉가 굳이 위에서 시작한 것에 대해 그 연유를 말하겠습니다. 북쪽에서 남쪽을 향하여 전후좌우를 나누어 놓고서, 이어 뒤에 있는 자(子)를 아래로 하고 앞에 있는 오(午)를 위로 한 것은 하도ㆍ낙서 이하가 모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양기(陽氣)가 처음 아래에서 생겨서 차차 자라나 위에서 극에 달하니, 북방은 양기가 처음 생기는 곳입니다. 저 하도ㆍ낙서는 모두 음ㆍ양의 소멸과 성장을 위주로 하되 양을 중시하였으니, 북쪽으로부터 아래에서 시작하는 것이 진실로 당연합니다. 그러나 〈태극도〉에 있어서는 이와 다릅니다. 이(理)와 기(氣)를 근원하여 조화의 기틀을 드러내어 상천(上天)이 만물에 품부해 주는 도리를 표시해 놓은 까닭에 위에서 시작하여 아래에 이른 것입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하늘의 위치가 실로 위에 있어 본성을 내려 주는 천명을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간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도식은 한결같이 염계(濂溪)의 옛것에 의지하여 만든 것이니, 어찌 이에 대해서만 유독 그 뜻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처음에 정이(靜而)가 하도ㆍ낙서의 예에 따라 아래에서부터 시작한 것을 고쳐 염계의 예를 따르게 한 것은 나의 책임입니다.” 하였다. 손님이 말하기를, “〈태극도〉가 위에서부터 시작한 것은 화(火)가 왕성한 오방(午方)의 자리에 해당하고, 이 도식이 위에서부터 시작한 것은 수(水)가 왕성한 자방(子方)의 자리에 해당하니, 이래도 같다 할 수 있습니까?” 하여, 내가 대답하기를, “〈태극도〉는 이미 만물에게 명령하는 것을 위주로 하였으니 그 도식의 위쪽은 바로 상제(上帝)가 본성을 내려 주는 최초의 근원으로 만물의 근저(根柢)의 극치가 되어, 하도ㆍ낙서 등의 도식이 소멸과 생성을 위주로 하는 것과는 자연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도식의 체(體)는 다만 한가운데 세워서 곧장 보아 내려가는 것이지 편벽되게 남방(南方)을 위로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이 도식을 만들면서는 사람과 물건이 품부하여 생겨난 이후로부터 시작하여 천지의 운화(運化)의 근원을 미루어 나갔으니, 도식의 상면은 실로 〈태극도〉의 상면이지만 상면이 되는 위치와 등급은 차이가 있게 된 것입니다. 대개 〈태극도〉는 태극에서 시작하여 음양과 오행이 차례대로 나온 뒤에야 묘하게 응결하는 원(圓)이 있으니, 묘하게 응결하는 원이 바로 이 도식에 게시한 천명(天命)의 원인인 것입니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태극에 동(動)과 정(靜)이 있는 것은 바로 천명이 유행(流行)하는 것이다.’ 하였으니, 진실로 이 말씀대로라면 〈천명도〉를 만드는 데는 마땅히 태극에서 시작해야 할 것인데, 지금 묘하게 합하여 응결하는 데서부터 시작한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사람과 물건이 생겨난 이후로부터 시작하여 그것을 미루어 올라가서 묘하게 응결하는 곳까지 이르면 이미 극치가 되기 때문에 이것으로 도식의 상면에 해당시켜 천명을 처음 받는 곳으로 만든 것입니다. 오행과 음양 이상은 실로 천원(天圓)의 한 도식에 갖춰져 있으며,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태극은 묘사할 필요도 없이 심원하여 그치지 않음[於穆不已]이 그 가운데 뻗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식의 상면 또한 어찌 편벽되어 수(水)가 왕성한 자리에만 해당한다고 하겠습니까.” 하였다. 손님이 말하기를, “그러면 이 도식만 〈태극도〉가 북쪽에서 남쪽을 향하고 사람과 물건을 그 사이에 배치한 것같이 할 수 없다는 것입니까? 또 북쪽이 위가 되고 남쪽이 아래가 되는 것에도 이유가 있습니까?” 하여, 대답하기를, “천지(天地)의 성(性)에는 사람이 제일 귀합니다. 《주역》에 이르기를, ‘하늘의 도(道)를 세우니 음(陰)과 양(陽)이요, 땅의 도를 세우니 유(柔)와 강(剛)이요, 사람의 도를 세우니 인(仁)과 의(義)이다.’ 하였으니, 이것은 인극(人極)이 세워지면 천지와 함께 참여하게 됨을 말한 것입니다. 천지의 도(道)는 북쪽에 위치하여 남쪽을 향해 있고, 사람은 그 사이에 태어나 음(陰)을 등지고 양(陽)을 안고서 또한 북쪽에 위치하여 남쪽을 향해 서 있으니, 이것이 올바른 위치여서 천지와 함께 참여하여 삼재(三才)가 되는 귀중함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천지는 북쪽에 위치하여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사람은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양(陽)을 등지고 음(陰)을 안게 됩니다. 천지가 주인이 되고 사람이 손님이 된다면 명실(名實)과 향배(向背), 경중과 귀천이 모두 타당성을 잃게 될 것이니, 어찌 옳겠습니까. 또 종래의 도서(圖書)들이 북쪽을 아래로 만들어 놓은 것은 북쪽이 아래라는 것이 아니고 기운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을 가지고 말해서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도식에서는 천지가 형체를 정해 놓은 것을 가지고 말했으니, 진실로 북극(北極)이 높고 남극이 낮으며 서북이 높고 동남이 낮은 것을 또 어찌 의심할 것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손님이 말하기를, “사람과 금수와 초목의 형체를 방(方)ㆍ원(圓)과 횡(橫)ㆍ역(逆)의 유형으로 나눈 것은 어디에 근거한 것입니까?” 하여, 대답하기를, “이것은 본래 선유(先儒)들의 설로써 정이(靜而)가 변론해 놓은 데서 다 얘기하였으니, 내가 더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였다. 손님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천명(天命)에서부터 심(心)ㆍ성(性)ㆍ정(情)ㆍ의(意)에 대한 선(善)ㆍ악(惡)의 구분과 또 사단ㆍ칠정의 발(發)함이 자사(子思)와 주자(周子)에 부합한다는 것에 대한 그 대략을 들어 볼 수 있겠습니까?” 하여, 대답하기를, “천명의 원(圓)은 곧 주자(周子)가 이른바 ‘무극의 진(眞)과 음양ㆍ오행의 정기(精氣)가 묘하게 합하여 응결한다.’는 것인데, 자사는 이(理)와 기(氣)가 묘하게 합한 가운데서 홀로 무극의 이(理)만 가리켜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곧바로 이것을 성(性)이라고 하였을 뿐입니다. 사람과 물건을 갈라 놓고 ‘물건마다 각각 하나의 태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주자(周子)의 〈도설(圖說)〉에 근본한 것으로 자사의 이른바 성(性)이란 것이고, 심(心)ㆍ성(性)의 원은 곧 주자(周子)가 말한 ‘오직 사람만이 그 빼어난 것을 얻어 가장 영특하다.’는 것이며, 그 영특한 것은 심(心)으로서 성(性)이 그 가운데 갖추어져 있으니 인(仁)ㆍ의(義)ㆍ예(禮)ㆍ지(智)ㆍ신(信)의 다섯 가지가 바로 이것이며, 빼어나다는 것은 기(氣)와 질(質)입니다. 오른쪽의 질(質)은 음(陰)이 하는 것이니, 곧 이른바 ‘형체가 이미 생겼다.’는 것이고, 왼쪽의 기(氣)는 양(陽)이 하는 것이니, 곧 이른바 ‘신(神)이 지(知)를 발한다.’는 것입니다. ‘성이 발하여 정(情)이 되고 심이 발하여 의(意)가 된다.’는 것은 곧 오성(五性)이 감동함을 이르는 것이고, 선기(善幾)와 악기(惡幾)는 ‘선과 악이 나누어진다.’는 것이고,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은 ‘온갖 일이 여기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말한다면 〈천명도〉의 구절은 모두가 주자(周子)의 〈도설(圖說)〉에 근본한 것이며, 성(性)ㆍ정(情)의 미발(未發)ㆍ이발(已發)이 또 어찌 자사에서 벗어난다 하겠습니까. 더구나 경(敬)으로 정(靜)할 때에 존양(存養)하는 것은 바로 주자(周子)의 ‘정(靜)을 주장하여 극(極)을 세운다.’는 것으로 자사의 ‘계구(戒懼)로 말미암아 중(中)을 지극히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고, 동(動)할 때에 경(敬)으로 성찰한다는 것은 주자(周子)의 ‘정(定)하여 닦는다.’는 일로써 자사의 ‘근독(謹獨)으로 말미암아 화(和)를 지극히 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악기(惡幾)가 횡(橫)으로 나온 것은 바로 ‘소인(小人)들이 도리를 어그러뜨려 흉하다.’는 것이니, 내 생각에 이 도식은 사사로운 생각으로 창출해 낸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어찌 지나치게 무함하는 말을 빌릴 것이 있겠습니까. 배우는 사람들이 이 도식에서 참으로 천명(天命)이 내 몸에 구비되어 있는 것을 알아서 덕성(德性)을 높여 믿고 따르기를 지극하게 한다면 본래의 고귀함을 잃지 않을 것이며, 인극(人極)이 여기에 있어 천지에 참여하고 화육(化育)을 돕는 공효가 모두 이르게 될 것이니, 또한 위대한 일이 아닙니까.” 하였다. 손님이 말하기를, “그대는 이 도식이 자사(子思)와 주자(周子)의 도에 맞다고 하는데, 이것은 정생(鄭生)과 그대가 자사와 주자(周子)의 도에 터득함이 있다는 것입니까? 내가 들으니, ‘도(道)가 있는 사람은 속에 쌓인 것이 밖으로 드러나 덕스러운 모양이 얼굴에 나타나고 등으로도 넘쳐난다. 그리하여 집 안에 있어도 반드시 달(達)하게 되며 나라에 있어도 반드시 달하게 된다.’고 하는데, 지금 정생의 곤궁함과 불우함을 사람들이 다 외면하고 그대의 용졸(庸拙)한 재주로 녹만 먹고 있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모두 비웃고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을 알기가 어렵다 해도 어째서 조금이라도 스스로 돌이켜 자신을 헤아려 보지 않고 서로 더불어 참람되고 망녕된 짓을 한단 말입니까.” 하여, 내가 말하기를, “아, 나는 처음에 손님을 통달한 사람이라 생각해서 묻는 대로 어리석은 소견을 공손히 대답하였는데, 이제 내 기대를 크게 실망시키는군요. 진실로 그대의 말대로라면 공자(孔子)가 있어야 주공(周公)의 도를 얘기할 수 있고, 자사(子思)와 맹자(孟子)가 있어야 안자(顔子)와 증자(曾子)의 학문을 배울 수 있단 말입니까. ‘성인(聖人)은 하늘을 희망하고, 현인(賢人)은 성인을 희망하고, 선비는 현인을 희망한다.’는 말은 모두 없애야 한단 말입니까. 한(漢)나라 이래로 역학(易學)을 논한 사람이 많은데 그 사람들은 모두 복희(伏羲)ㆍ문왕(文王)ㆍ주공 같은 성인이며, 송(宋)나라 이후부터 지금까지 천인성명(天人性命)의 학설을 말한 사람이 많은데 그 사람들은 모두 주자(周子)ㆍ소자(邵子)ㆍ정자(程子)ㆍ주자(朱子) 같은 현인이란 말입니까. 무릇 선비가 의리(義理)를 논하는 것은, 농부가 뽕나무와 삼[麻]에 대해 말하고 장석(匠石)이 먹줄과 먹통을 얘기하는 것과 같아서, 제각기 떳떳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농부에게, ‘네가 참람되게 신농씨(神農氏)가 되려 한다.’고 나무라며, 장석에게, ‘네가 망녕되게 공수자(公輸子)가 되려 한다.’고 나무라고 있습니다. 신농씨와 공수자는 실로 쉽사리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버린다면 또 어디서 배워서 농부나 장인이 되겠습니까. 그대의 말이 시행된다면, 나는 먹줄도 먹통도 없어지고 뽕나무밭과 삼밭이 다 황폐해질까 걱정됩니다. 옛날 촉(蜀)나라에 통(筩)을 메는 사람이 《주역》의 한 구절을 얘기한 것이 이치에 맞자 군자(君子)가 그 말을 취해 후세에 전하였으니, 이렇다고 어찌 통을 메는 사람을 반드시 복희씨와 문왕이라 여긴 것이겠습니까. 말이 취할 만하면 취하는 것이니, 군자가 사람을 취하는 것이 이와 같고, 군자가 남을 지나치게 나무라지 않고 그의 뜻이 좋은 것을 용납함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지금 그대의 말은 우리들이 듣고서 참고한다는 면에서는 도움을 준 것이 매우 크지만, 그대가 남을 책망하는 도리에서는 너무 험악하고 좁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대는 어찌 차마 함부로 이런 짓을 합니까.” 하였다. 손님이 이에 망연자실하다가 석연(釋然)하게 깨달은 바가 있어 머뭇머뭇하다가 떠나갔다. 마침내 문을 닫고 문답한 말을 기록하여 스스로 경계하고 또 이것을 정이(靜而)에게도 보여 주는 바이다.
가정(嘉靖) 계축년(1553, 명종8) 납평절(臘平節)에 청량산인(淸涼山人)은 삼가 쓰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