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포럼/퇴계선생

[계몽전의 서(啓蒙傳疑序)]

청풍선비 2011. 4. 11. 13:28

[계몽전의 서(啓蒙傳疑序)]

 

내가 살피건대, 《역학계몽(易學啓蒙)》에서는 심오하고 찬란한 이치를 마치 해와 별처럼 밝게 드러내었고 여러 유자들의 변론과 해석 또한 모두 정밀하고 두루 통하여 더 이상 유감이 없다.

그러나 이수(理數)의 학문은 너무 넓고 미묘하며, 복잡하고 착란하여 연구하기가 쉽지 않다. 한 겹을 뚫으면 또 한 겹이 있어서 연구할수록 더욱 끝이 없다. 더구나 사람의 소견이 서로 다르지 않을 수 없음에랴.

인자(仁者)가 볼 때에는 인(仁)이라고 이르고, 지자(知者)가 볼 때에는 지(知)라고 이르니, 반드시 참작하고 고치고 한 뒤라야 그 취지의 귀결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증거로 삼은 말이 혹 구해 보기 어려운 책에서 나온 것이어서, 반드시 상고하고 논하여야만 그 참뜻이 어디에 속하는지 알 것이다. 이러므로 의심나고 어려운 것 중에 또 의심나고 어려운 것이 생기고, 주해(註解)한 것에다 또 주해가 필요하게 된다.

심오한 의미를 밝히지 않을 수 없고, 인본(印本)의 그릇된 것을 바로잡지 않을 수 없으며, 곱하고 나누는 법을 상세히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늙고 병들어 정신이 혼미하니, 비록 약간 생각하여 얻은 것이 있더라도 곧 다시 잊어버리고는 까마득히 애초에 그 비슷한 것도 보지 못한 것 같은 때가 종종 있다.

아무래도 끝내 여기에서 더 나아감이 없을까 두렵다. 요 몇 년 이래로 이 책을 읽을 때마다 혹 생각하다가 깨우침이 있거나, 옛글을 살펴서 증거를 찾을 때마다 기록해 두었더니, 이것이 쌓여서 여러 권이 되었다.

이는 참고하여 열람하기에 편리하게 하고 잊어버리는 데 대비하고자 해서일 뿐이었고, 이것으로 옛사람보다 아는 것이 많은 것을 구한 것은 아니었다. 일찍이 원락자(苑洛子)의 책 《의견(意見)》을 보니 《역학계몽》에 기여한 공이 있다 하겠으나,

그 또한 근세에 구하기 어려운 책이다. 다만 그 그림이 너무 잗달아 그다지 밝혀낸 것이 없으며, 해설이 너무 어려워 남다른 논의를 제시하기를 좋아하였다. 지금 그 요의(要義)의 몇몇 조목을 골라 드러내었고 그 나머지는 보이지 못하였으니, 보는 이가 자세히 살펴야 할 것이다.

○ 운대진일 수기(雲臺眞逸 주자의 호 手記)

수기는 수록(手錄), 수편(手編), 수교(手校) 등과 같은 것이다. 서울에 윤광일(尹光溢)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항상 말하기를,

“수(手) 자는 일(逸) 자에 붙여야 하니, 진일수(眞逸手)가 바로 회암(晦菴)의 별호이다.”

하였으나, 내가 듣고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그 뒤에 정호음(鄭湖陰)의 서자 아무개가 또 그 집에 중국본《계몽(啓蒙)》이 있는데, 그 주석(注釋)에, 바로 ‘수(手) 자’를 호라 하였으니 윤씨의 말과 같다고 하였다. 윤이 크게 기뻐하여 자기 말에 증거가 있음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결국에 그것이 뜻과 이치에 맞지 않아서 믿을 수 없어, 호음공(湖陰公)에게 그 원본을 빌려 보고자 하였으나, 병으로 인하여 실행하지 못하고 온 것이 한이 된다.

 

○ 뒤에 우경선(禹景善 우성전(禹性傳))이 또 한 본(本)을 얻었는데, 윤과 정(鄭)의 말과 같다고 편지로 질문하므로, 내가 전설(前說)을 고집하고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얼마 후에 우(禹)가 또 선본(善本)을 얻어서 대조해 보니, 전에 말한 윤ㆍ정과 우가 처음 본 책에는 수(手) 자 밑에 기(記) 자가 빠졌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오해하여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주D-001]원락자(苑洛子)의 책 의견(意見) : 원락자는 명나라 때의 한방기(韓邦奇 : 1479~1555)의 호이며, 그는 《역학계몽의견(易學啓蒙意見)》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