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강의(經史講義)39 - 구괘
홍재전서 제102권
경사강의(經史講義) 39 ○ 역(易) 2
[구괘(姤卦)]
구괘(姤卦)의 구삼(九三)에서 “볼기에 살이 없어 가는 것을 머뭇거린다.”고 하였고 쾌괘(夬卦) 구사(九四)에서도 “볼기에 살이 없어 가는 것을 머뭇거린다.”고 하여 그 상(象)이 같은데, 구괘에서는 삼효의 자리에 있고 쾌괘에서는 사효의 자리에 있으니 어째서인가? 쾌괘의 초효(初爻)에서는 “발꿈치가 장하다.”고 하였고 구괘의 상효(上爻)에서는 “그 뿔에서 만난다.”고 하였는데, 저것과 이것의 머리와 꼬리가 도치(倒置)된 것은 또 어째서인가? 그리고 익괘(益卦)의 육이(六二)와 손괘(損卦)의 육오(六五)라든가 기제괘(旣濟卦)의 구삼(九三)ㆍ초구(初九)ㆍ상육(上六)과 미제괘(未濟卦)의 구사(九四)ㆍ초육(初六)ㆍ상구(上九) 같은 것은 상(象)에서는 호발(互發)이고 효(爻)에서는 호환(互換)으로서 하나같이 구괘와 쾌괘의 예(例)와 같이 하였는데, 이를 일일이 다 자세하게 논해 줄 수 있겠는가?
구괘의 하체는 곧 손(巽)이고 손은 다리에 배속되므로 구삼이 손체(巽體)의 마지막에 있어서 다리 위에 있는 볼기에 비유되는 것입니다. 또 쾌괘의 경우는 거꾸로 보면 손체가 있는 것이 되므로 구사(九四) 효(爻)가 역시 볼기로 비유되는 것입니다. 또 쾌괘의 초구에서는 “발꿈치가 장하다.”고 하였고 구괘의 상구에서는 “그 뿔에서 만난다.”고 한 것도 모두 가까이에서 취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구괘의 구삼은 초육을 좋아하는 자세로 구이와 가까이하는 뜻이 있고, 쾌괘의 구사는 양강(陽剛)의 자질로서 음유(陰柔)의 자리에 있으므로 볼기에 살이 없어 가는 것을 머뭇거리는 상이 있는 것인데, 이는 바로 구괘ㆍ쾌괘의 구삼과 구사의 차이인 것입니다. 쾌괘의 초구는 맨 밑에 있으면서 조급하게 움직이는 격이고 구괘의 상구는 맨 위에 있으면서 배우자를 만나지 못한 격이므로 발꿈치가 장한 것과 뿔에서 만나는 상이 있으니, 이는 바로 두 괘의 초구와 상구의 차이입니다. 손괘(損卦)와 익괘(益卦)는 이(離)의 호체(互體)로서 이(離)는 거북[龜]에 배속되므로 반드시 거북의 상을 취했는데, 익괘의 육이와 손괘의 육오는 본체(本體)로 보아서는 가운데가 비었으나 자리로서는 중정한 자리이니 이는 즉 익괘 육이와 손괘 육오의 구분입니다. 그리고 기제괘(旣濟卦)와 미제괘(未濟卦)는 내괘(內卦)와 외괘(外卦)가 모두 감(坎)으로 이루어졌고 감은 바퀴에 배속되므로 반드시 바퀴의 상을 취한 것인데, 기제괘의 초구와 미제괘의 구이는 진출함을 중지시킬 수가 있어서 지나치게 강함을 경계함이 되니 이는 즉 두 괘의 초구와 구이의 구분입니다. 순상(荀爽)의 《구가역(九家易)》에서는 “감은 여우[狐]의 상이 되므로 기제괘와 미제괘의 초효(初爻)에는 모두 여우가 꼬리를 적시는 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두 괘의 구삼과 구사로 논하면 기제괘의 구삼은 양강으로서 양강의 자리에 있으므로 “고종(高宗)이 귀방(鬼方)을 친다.”고 하였고 미제괘의 구사는 양강으로서 음유의 자리에 있으므로 “기동(起動)하여 귀방을 친다.”고 한 것입니다. 만약 두 괘의 상효(上爻)로 말하면 기제괘에서 “머리를 적신다.”고 한 것은 물에 적시는 것이고 미제괘에서 “머리를 적신다.”고 한 것은 술에 적시는 것입니다. 상으로서는 비록 호발(互發)이라고 하더라도 효로서는 호환(互換)이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착종(錯綜)의 뜻이 되는 것입니다.
구괘의 구오(九五)는 제자리를 얻었으나 상응(相應)이 없으니 마치 기(杞)나무와 재(梓)나무처럼 아름다운 재목이 외[瓜] 넝쿨에 휘감긴 것과 같아서, 재주가 있는데도 쓰이지 못하고 선창(先唱)을 해도 화답하는 이가 없다. 그래서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면서 천하의 현재(賢才)를 구하는 격이다. 그의 생각은 아마 이러하였을 것이다. ‘하늘이 만약 나의 운명을 실추시키려고 한다면 모르겠지만 만약 그 운명을 실추시키지 않으려면 반드시 훌륭한 신하를 탄생시켜 나의 보필자가 되게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리(事理)에 맞을 것 같은데, 《정전》과 《본의》에서 취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신이 듣건대, 주자의 말씀에 “경문(經文)의 뜻은 되도록 평이(平易)한 쪽으로 보아야지 굳이 천착하여 볼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늘로부터 떨어짐이 있으리라.[有隕自天]”는 한 구의 말도 그 뜻을 평이한 쪽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구오는 제자리에 있기는 하나 상응하는 이가 없으므로 노심초사하며 어진 이를 널리 구하면서, 하늘이 만약 나의 운명을 실추시키려고 한다면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훌륭한 신하를 탄생시켜 나의 보필자가 되게 할 것이다.”라고 한 것으로 본다면, 그 어감(語感) 중에는 은연중 《시경(詩經)》 대아(大雅) 숭고편(崧高篇)에서 “산이 신령(神靈)을 내려 보내어, 윤길보(尹吉甫)와 신백(申伯) 같은 이가 태어나게 하였다.”고 한 것이라든지 상송(商頌) 장발편(長發篇)에서 “이윤(伊尹) 같은 경사(卿士)를 내려 보냈다.”고 한 것과 같은 뜻을 띠게 됩니다. 이는 일설에 대비하는 데는 해될 것이 없겠으나, 그래도 《본의》에서 “본래는 없다가 갑자기 있는 것이다.”라고 풀이한 것만은 못합니다.
주아부(周亞夫)가 낙양(雒陽)을 공격할 때에 적들이 그를 일러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였는데, 그 주아부가 어떻게 정말 하늘에서 내려왔겠습니까. 진실로 홀연히 나타나는 것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음을 말한 것입니다. 지금 이 구오의 임금도 과연 덕을 함양하고 정성을 쌓은 나머지 몸을 굽히고 어진 이를 구하되 어느 한순간에 헌원씨(軒轅氏)가 풍후(風后)와 역목(力牧)을 얻고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을 얻고 문왕(文王)이 여상(呂尙)을 얻은 것처럼 하게 되면, “하늘로부터 떨어짐이 있으리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러니 《정전》과 《본의》에서 이쪽을 취하고 저쪽은 취하지 않은 뜻을 대략 상상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