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강의(經史講義)40 - 손괘
홍재전서 제103권
| 경사강의(經史講義) 40 ○ 역(易) 3 |
| [손괘(巽卦)] |
단사(彖辭)에서 “거듭 공손히 하여 명령을 거듭한다.[重巽以申命]”고 한 것은 무슨 말인가? ‘신(申)’으로써 ‘중(重)’을 풀이하고 ‘명(命)’으로써 ‘손(巽)’을 풀이했다는 뜻인가, 아니면 군자가 거듭 공손히 하는 뜻을 체득하여 그 명령을 거듭하는 것인가? 구부국(丘富國)은 “손괘(巽卦)의 내괘(內卦)는 명령의 시작이고 외괘(外卦)는 앞의 명령을 거듭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 비중이 명령을 거듭한다고 할 때의 거듭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전》에서는 “위에서 순한 도로 명령을 하면 아래에서 그 명을 받들고 따른다.”고 하였으니, 이는 그 비중이 손순(巽順)하다고 할 때의 순함에 있는 것이다. 혹자는 또 “강한 것이 중정(中正)함을 따르지 않으면 장차 편협한 쪽으로 비뚤어지게 되고 음유(陰柔)로서 양강(陽剛)함을 따르지 않으면 장차 남에게 영합(迎合)하며 아첨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몇 가지는 모두 ‘거듭 공손히 한다[重巽]’는 뜻을 풀이한 것인데 이렇게 학설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지니, 어느 것을 따라야 하겠는가?
‘손(巽)’은 들어간다는 것이니, 명령의 뜻이 있습니다. “거듭 공손히 하여 명령을 거듭한다.”고 한 것은 대개 “거듭 공손히 하는 뜻을 체득하여 그 명령을 거듭한다.”고 한 것과 같은 말입니다. 구씨(丘氏)의 말은 손괘(巽卦) 중에서 내괘(內卦)와 외괘(外卦)의 뜻으로 말한 것이고, 《정전》의 풀이는 내괘와 외괘의 체(體)를 가리켜 말한 것이며, 혹자의 말은 또 한 괘(卦)의 강효(剛爻)와 유효(柔爻)로 말한 것인데, 요컨대 모두 상호 관계로 밝힌 것에 대하여서는 잘못될 것이 없습니다. 무릇 공손함[巽]이란 순한 덕입니다. 위에서 공손한 마음으로 아랫사람에게 임하고 아래에서 공손한 마음으로 윗사람을 섬기면, 이 세상에 순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왕(聖王)들도 오히려 세 번씩 명령하고 다섯 번씩 거듭한 것인데, 요(堯)와 순(舜)이 신하들에게 자문을 구한 것과 반경(盤庚)이 백성에게 고명(誥命)을 내린 것도 그러한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 공손히 한다’는 뜻이 큰 것이 되는 까닭인데, 정자(程子)가 아니었다면 누가 그 깊은 뜻을 밝혀냈겠습니까.
손괘(巽卦)에서 말한 선경(先庚)과 후경(後庚)은 고괘(蠱卦)에서 선갑(先甲)이니 후갑(後甲)이니 한 것과 그 뜻이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두 괘를 서로 대비하여 말하면 손괘의 구오(九五)는 곧 고괘의 육오(六五)가 변한 것이며, 갑(甲)은 십간(十干)의 처음이고 경(庚)은 십간의 중간을 지난 것이다. 고괘에서는 신(辛)과 정(丁)에서 의의를 취하고 손괘에서는 정과 계(癸)에서 의의를 취한 것인데, 선(先)과 후(後)의 개념은 같으면서도 십간 중에서 취한 간(干)이 같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어떤 이는 “신칙하여 다시 분발하도록 하고 시행하여 변통에 맞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하고, 어떤 이는 “시작을 신중히 하여 그 계기를 생각하고 끝마침을 생각하여 그 성공을 고찰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변통’이라고 한 것과 ‘시작과 끝마침’이라고 한 뜻에 대하여 자세히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이 괘에서 선경(先庚)이니 후경(後庚)이니 한 것과 고괘(蠱卦)에서 선갑(先甲)이니 후갑(後甲)이니 한 것은 모두 일간(日干)을 취하여 말한 것이니, 대개 그 대체로서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갑(甲)은 일의 시작이고 경(庚)은 일의 변경이니, 예악(禮樂) 제작(制作)과 정치 교화에 관한 것을 갑이라고 한 것은 그 시작을 들어 말한 것이고 호령을 발하고 명령을 시행하는 것을 경이라고 한 것은 변경하는 바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간(十干) 중에서 간(干)을 취한 것이 같지 않은 이유입니다. ‘변통’이니 또는 ‘끝마무리’니 ‘시작’이니 하는 말들은 대개 선경이 정(丁)이 됨과 후경이 계(癸)가 됨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그 변경하기 전에는 분명하게 신칙하여 다시 분발하게 하고 그 이미 변경한 뒤에는 잘 헤아려 시행하여서 변통에 알맞게 하는 것이니, 이는 《본의》의 선정(先丁)ㆍ후계(後癸)의 뜻을 미루어 넓힌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에 앞서 간곡한 뜻을 갖는 것은 곧 시작을 신중히 하여 그 계기를 생각하는 것이고, 일을 한 뒤에 그 일을 헤아려 보는 것은 끝마무리를 생각하여 그 성공을 살펴보는 것이니, 이것이 구오(九五)의 효사(爻辭)에서 “처음은 없고 마침은 있다.”고 한 뜻입니다. 그러나 소주(小註)에 있는 장씨(張氏)와 호씨(胡氏)의 말에 이미 이러한 뜻이 자세하니, 지금은 감히 다시 말을 덧붙일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