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홍재전서경사강의
계사전 하(繫辭傳下) 제11장
청풍선비
2010. 12. 22. 21:35
홍재전서 제104권
경사강의(經史講義) 41 ○ 역(易) 4
[계사전 하(繫辭傳下) 제11장]
공자가 계사(繫辭) 가운데 처음에는 “쇠한 세상의 뜻이다.”라고 했고, 이어서 “역을 지은 이는 아마 우환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는 “문왕(文王)과 주(紂)의 일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한 편 가운데 세 번이나 마음을 쓴 것은 어째서인가? “위태로운 것을 평평하게 하고 나태한 것을 기울어지게 한다.”고 한 것에 대해 시중항(柴中行)은 “성인께서 역(易)의 도를 논하면서 이와 같이 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주씨(朱氏)는 “위태롭고 두려운 것은 평평하게 하고 나태한 것은 기필코 기울어뜨린다.”고 하였다. 하나는 역의 측면에서 말한 것이고 하나는 사람의 측면에서 말한 것인데, 둘 중 어느 것이 통하는 것인가?
[심진현이 대답하였다.]
역은 복희(伏羲)의 글입니다. 상고의 순박한 시대에 어찌 다시 인정(人情)과 세도(世道)가 이처럼 험난하며 우환과 어려움이 이렇게 심했겠습니까. 그래서 그 글이 다만 기(奇)와 우(耦)의 획만으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은(殷)ㆍ주(周)의 시대로 내려오면 왕도(王道)가 쇠퇴하고 세상의 변란이 자꾸 생겨나 문왕 같은 성인도 유리(羑里)에서의 액을 당하였고, 기자(箕子)와 미자(微子) 같은 현인도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곤궁함을 붙들어 주고 위험함을 구제한 도가 생기게 되었고, 재난을 입고 밝음을 해칠 우환(憂患)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왕이 이 역을 연역(演繹)할 때 길흉(吉凶)과 회린(悔吝)의 상을 간절하게 말하고 아홉 괘의 덕을 닦는 도에 뜻을 다하여 환난(患難)에 대처하는 법을 밝히셨던 것입니다. 이에 공자께서 은ㆍ주가 점차 쇠퇴하는 것을 가슴 아파하고 문왕의 괴로운 심정에 상심하여 처음에는 “쇠한 세상의 뜻이다.”라고 하여 상심과 한탄의 마음을 보였습니다. 그러고도 부족하다고 여겨 또 “역을 지은 이는 아마 우환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고, 그래도 모자라게 여겨 마지막에는 주(紂)와 문왕의 말로써 분명하고 명쾌하게 변론하였습니다. 아, 공자의 뜻은 아마도 주공(周公)의 도가 쇠하는 것을 슬퍼하여 깊은 한탄을 이 글에 담은 것 같습니다.
“위태로운 것을 평평하게 하고 나태한 것을 기울어지게 한다.”고 한 뜻은 그 문맥을 살펴보면 아마도 “문왕이 이 역을 지으심에 있어 위태로운 말을 하여 천하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저 위태롭고 두려운 것을 하늘이 평평하게 하고 나태한 것을 하늘이 기울게 만드는 것’이 바로 역의 도로서 군자가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알게 한 것이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자의 해석도 이와 같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시씨(柴氏)의 말은 ‘문왕이 역을 연역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평평하게 하고 기울어지게 했다’고 보고 있고, 주씨(朱氏)의 말은 ‘역의 도가 평평하게 하고 기울게 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고 있으니, 이러한 분분한 논의는 모두 계사(繫辭)의 본뜻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유독 서기(徐幾)의 말 중에 “위태로운 것을 평평하게 하고 나태한 것을 기울게 하는 것은 누군가가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 아니다. 잘 심어진 것을 북돋워 주고 기울어진 것을 엎어 버리는 것 역시 자연의 이치이다.”라고 한 것은 능히 성인의 본뜻을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은 복희(伏羲)의 글입니다. 상고의 순박한 시대에 어찌 다시 인정(人情)과 세도(世道)가 이처럼 험난하며 우환과 어려움이 이렇게 심했겠습니까. 그래서 그 글이 다만 기(奇)와 우(耦)의 획만으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은(殷)ㆍ주(周)의 시대로 내려오면 왕도(王道)가 쇠퇴하고 세상의 변란이 자꾸 생겨나 문왕 같은 성인도 유리(羑里)에서의 액을 당하였고, 기자(箕子)와 미자(微子) 같은 현인도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곤궁함을 붙들어 주고 위험함을 구제한 도가 생기게 되었고, 재난을 입고 밝음을 해칠 우환(憂患)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왕이 이 역을 연역(演繹)할 때 길흉(吉凶)과 회린(悔吝)의 상을 간절하게 말하고 아홉 괘의 덕을 닦는 도에 뜻을 다하여 환난(患難)에 대처하는 법을 밝히셨던 것입니다. 이에 공자께서 은ㆍ주가 점차 쇠퇴하는 것을 가슴 아파하고 문왕의 괴로운 심정에 상심하여 처음에는 “쇠한 세상의 뜻이다.”라고 하여 상심과 한탄의 마음을 보였습니다. 그러고도 부족하다고 여겨 또 “역을 지은 이는 아마 우환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고, 그래도 모자라게 여겨 마지막에는 주(紂)와 문왕의 말로써 분명하고 명쾌하게 변론하였습니다. 아, 공자의 뜻은 아마도 주공(周公)의 도가 쇠하는 것을 슬퍼하여 깊은 한탄을 이 글에 담은 것 같습니다.
“위태로운 것을 평평하게 하고 나태한 것을 기울어지게 한다.”고 한 뜻은 그 문맥을 살펴보면 아마도 “문왕이 이 역을 지으심에 있어 위태로운 말을 하여 천하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저 위태롭고 두려운 것을 하늘이 평평하게 하고 나태한 것을 하늘이 기울게 만드는 것’이 바로 역의 도로서 군자가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알게 한 것이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주자의 해석도 이와 같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시씨(柴氏)의 말은 ‘문왕이 역을 연역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평평하게 하고 기울어지게 했다’고 보고 있고, 주씨(朱氏)의 말은 ‘역의 도가 평평하게 하고 기울게 할 수 있다’는 것으로 보고 있으니, 이러한 분분한 논의는 모두 계사(繫辭)의 본뜻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유독 서기(徐幾)의 말 중에 “위태로운 것을 평평하게 하고 나태한 것을 기울게 하는 것은 누군가가 그렇게 만든다는 것이 아니다. 잘 심어진 것을 북돋워 주고 기울어진 것을 엎어 버리는 것 역시 자연의 이치이다.”라고 한 것은 능히 성인의 본뜻을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은 계사전 하(繫辭傳下) 제11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