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홍재전서경사강의

소축괘(小畜卦)

청풍선비 2010. 12. 22. 21:57

홍재전서 제105권

경사강의(經史講義) 42 ○ 역(易) 5 갑진년(1784, 정조8)에 선발된 이서구(李書九)ㆍ정동관(鄭東觀)ㆍ한치응(韓致應)ㆍ한상신(韓商新)ㆍ홍의호(洪義浩) 등이 답변한 것이다

 

[소축괘(小畜卦)]

 

여기서 “구름만 짙게 끼고 비가 오지 않음은 우리 서쪽 교외에서 왔기 때문이다.”라고 할 적에, 남쪽 교외라거나 북쪽 교외라고 하지 않고 굳이 ‘서쪽 교외’라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여기에 대하여 말하는 이들은 “서쪽은 음방(陰方)이고 짙은 구름은 음기(陰氣)이기 때문에 반드시 서쪽 교외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는데, 이는 진실로 그러하기는 하다. 그러나 다만 후천괘(後天卦)의 위치로 말하면 서쪽과 남쪽은 모두 음에 속하니, 곤괘(坤卦) 단사(彖辭)에서 “서남쪽에서는 벗을 얻는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남쪽은 버려두고 서쪽만 취한 것은 반드시 그만한 뜻이 있을 것인데, 이를 지적하여 말해 줄 수 있겠는가?

[한치응이 대답하였다.]
제2효(爻)에서 제4효까지를 호체(互體)로 보면 태(兌)가 되며, 태는 서방에 해당하므로 반드시 ‘서쪽 교외’라고 한 것인데, 송(宋) 나라 학자 구부국(丘富國)의 말이 그러합니다.


호체(互體)에 대한 학설은 한(漢) 나라 학자들이 견강부회한 큰 화두(話頭)의 하나이다. 그러나 성인(聖人)의 정밀한 뜻을 그렇게 구하면 거리가 멀어진다. 옛날 쌍계(雙溪) 왕회숙(王晦叔 왕염(王炎))이 장남헌(張南軒 장식(張栻))에게 묻기를, “이천(伊川)이 학자(學者)에게, 왕필(王弼)ㆍ호원(胡瑗)ㆍ왕안석(王安石) 삼가(三家)의 역해(易解)를 먼저 보게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니, 장남헌이 말하기를, “그 삼가는 호체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지금 《정전(程傳)》과 《본의(本義)》를 고찰하여 보면 한마디도 호체에 대하여 언급한 적이 없으니, 여기에서 정자와 주자의 식견(識見)과 견해(見解)가 고명(高明)함을 알겠다. 오징(吳澄)과 내지덕(來知德)의 무리는 그 뜻을 모르고 조금만 이해하기 어려운 곳을 만나면 문득 “호체(互體)의 상(象)이 그러하다.”고 한다. 그래서 한 괘(卦) 중에 원괘(原卦)에 의한 안과 밖의 상이 있고 또 호체에 의한 안과 밖의 상이 있다고 하여, 이를 갈라놓고 깨뜨리는 등 온갖 괴상한 말을 하니 성인이 상(象)을 설정하고 해석을 붙인 본뜻은 마침내 볼 수 없게 되었다. 구씨(丘氏)의 말도 그러한 성격인데 어떻게 그것으로 증명을 삼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서쪽 교외’의 뜻은 주자가 이미 분명하게 말하였다. 대개 서쪽 교외나 남쪽 교외는 다 같이 음방(陰方)인데, 이 괘(卦)에서 유독 서쪽 교외만을 예로 든 것은, 이때에 문왕(文王)이 유리(羑里)에서 연역(演易)하면서 기주(岐周)를 서쪽으로 보았기 때문에 ‘우리 서쪽 교외’라고 한 데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라는 것은 문왕이 스스로를 우리라고 한 것이다. 만약 구씨의 말대로라면 우리라고 한 ‘우리’는 과연 어느 곳을 가리켜 말한 것인가?

[한치응이 대답하였다.]
만약에 구씨의 말을 따르게 되면 ‘우리’는 마땅히 육사(六四)를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육사는 이미 이 괘(卦)를 주장하는 효(爻)가 아니니, 괘사(卦辭)에서 육사를 가리켜 우리라고 하는 것은 합당치가 않습니다. 《본의(本義)》를 따르는 것만큼 온당하지 못하니, 성상(聖上)의 말씀이 진실로 옳으십니다.


여기서 “바람이 하늘 위에 행하는 것이 소축(小畜)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문덕(文德)을 아름답게 한다.”고 하였는데, 소축의 상(象)을 보고 문덕을 아름답게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정전(程傳)》에서 “군자가 품고 있는 것 가운데 큰 것은 도덕과 경륜(經綸)이고 작은 것은 문장과 재예(才藝)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렇게 보면 ‘문덕’은 곧 문예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러나 《논어》에서 “덕을 바탕으로 하고 문예에 노닐어야 한다.”고 하였으며, 또 “덕행에는 안연(顔淵)ㆍ민자건(閔子騫)이고 문학에는 자유(子游)ㆍ자하(子夏)이다.”라고 하였으니, 옛날에 도덕과 재예를 논(論)하는 이는 두 가지로 나누거나 대대(對待)로 말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이 구절에서는 ‘문예’라고 하지 않고 ‘문덕’이라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한치응이 대답하였다.]
나누어서 말하면 문예와 문덕은 자연 크고 작은 차이가 있으나, 종합하여 말하면 문예는 곧 문덕 중의 한 가지 일입니다.


 

이상은 소축괘(小畜卦)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