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ㅣ曰 人皆曰予知로대 驅而納諸罟擭陷阱之中而莫之知辟也하며 人皆曰予知로대 擇乎中庸而不能期月   守也ㅣ니라
공자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모두 말하기를 내가 안다 하되 몰아서 저 그물과 덫과 함정 속에 들이게

하면 피할 줄을 알지 못하며, 사람이 모두 말하기를 내가 안다 하되 중용을 가려내 지키라 하면 한달도

능치 못하느니라.”

驅 : 몰 구 罟 : 그물 고 擭 : 덫 확 陷 : 빠질 함 阱 : 함정 정 辟 : 피할 피

[본문 해설]
세상 사람들은 으스대며 중용을 안다하니 이들을 몰아 (중용지도가 아닌) 그물이나 함정에 빠뜨리면

피하지 못하고 중용을 택해서 지키라 하면 한달도 지키지 못함을 공자가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순임금은 간악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서제가 수차례에 걸쳐 그를 죽이려 했을 때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이유는 순임금이 생에 대한 애착이 아니라 만약 순임금이 그들이 의도한 대로 죽었을 경우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부모와 동생을 손가락질하며 자식과 형을 죽인 사람들이라고 욕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부모에 대한 불효요 형제간의 우애를 저버리는 일이기에 순임금이 지혜롭게 대처하신 것이다.

罟는 網也오 擭은 機檻也오 陷阱은 坑坎也ㅣ니 皆所以掩取禽獸者也ㅣ라 擇乎中庸은 辨別衆理하야

以求所謂中庸이니 卽上章好問用中之事也ㅣ라 期月은 匝一月也ㅣ라 言知禍而不知辟온 以況能擇而不能守랴 皆不得爲知也ㅣ니라
고는 그물(網)이오 확은 덫(機檻)이요 함정은 구덩이에 빠짐이니 모두가 눈을 가려 금수를 취하는

바이니라, 중용을 가려낸다는 것은 많은 논리를 분별해 나누어서 써 이른바 중용을 구함이니

즉 윗글에 (순임금이) 묻기를 좋아하고 중용을 쓴 일이니라. 기월은 한달을 두른 것이니라

(한달이 된 것이니라). 화를 알고도 피할 줄을 알지 못하거든 써 하물며 능히 (중용을) 가려서 능히

지키지 못함이랴. (이것은) 모두가 知가 되지 못함이라

(조금 배우고 지혜롭다고 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檻 : 우리 함 匝 : 돌 잡

 

右는 第七章이라


承上章大知而言하고 又擧不明之端하야 以起下章也ㅣ니라
위 글의 대지를 이어서 말하고 또 밝지 못한 단서를 들어서 써 아래 장을 일으킴이니라

 

第八章

子ㅣ曰 回之爲人也ㅣ 擇乎中庸하야 得一善則拳拳服膺而弗失之矣니라
공자 말씀하시기를 “회(안자)의 사람됨이 중용을 가려서 하나의 선함을 얻으면 받들어 가슴에

붙여서 잃지 아니 하느니라”

拳 : 주먹 권, 拳拳 : 주먹을 말아쥐듯이 정성스럽게 받드는 모양을 나타냄. 膺 : 가슴 응

[본문 해설]
안회(안자)가 32살에 돌아가셨을 때 공자는 하늘이 나를 망쳤다(噫라 天喪予삿다 天喪予삿다 : 논어, 先進편)고 통곡할 만큼 탁월한 제자였다. 안회는 누추한 거리에 살면서 대나무로 엮은 밥그릇에

밥을 담아 쪽박의 물을 먹으면서도(一簞食와 一瓢飮에 在陋巷이라) 조금도 배우는 즐거움이 변치

 않으니 공자는 안회야말로 참으로 어질다(賢哉아 回也여)고 거듭거듭 칭찬했다(논어, 雍也편).

노나라의 애공이 공자에게 제자 중 누가 배우기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공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안회를 꼽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잘못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았으나 불행히도 단명으로 죽어 지금은 없다.

그후로는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들은 바가 없다

(不遷怒하며 不貳過하더니 不幸短命死矣라 今也則亡하니 未聞好學者也ㅣ라 : 雍也편)”고 하였을

정도이다.

回는 孔子弟子顔淵의 名이라 拳拳은 奉持之貌라 服은 猶著也ㅣ라 膺은 胷也ㅣ라 奉持而著之心胸之

間은 言能守也ㅣ라 顔子는 蓋眞知之라 故로 能擇能守如此하니 此는 行之所以無過不及而道之所以

明也ㅣ라
회는 공자 제자 안연의 이름이니라. 권권은 받들어 갖는 모양이라. 복은 붙이는 것과 같음이라.

응은 가슴이라. 받들어 가져서 가슴 한 가운데에 붙이는 것은 능히 지킴을 말함이라. 안자는 대개

 참으로 아느니라. 그러므로 능히 가려내고 능히 지킴이 이와 같으니 이는 (중용을) 행하는데 써

과불급이 없어 도가 써 밝은 바이라
著 : 붙일 착 胷 : 가슴 흉, 胸과 같음

 

右는 第八章이라


子ㅣ曰 天下國家도 可均也ㅣ며 爵祿도 可辭也ㅣ며 白刃도 可蹈也ㅣ도대 中庸은 不可能也ㅣ니라
공자 말씀하시기를 “천하국가도 가히 고르게 하며 벼슬과 녹도 가히 사양할 수 있으며 날이 선

칼날도 가히 밟을 수 있으되 중용은 가히 능치 못하느니라.”

爵 : 벼슬 작 祿 : 복 록 辭 : 사양할 사 蹈 : 밟을 도

均은 平治也ㅣ라 三者는 亦知仁勇之事니 天下之至難也ㅣ라 然이나 皆倚於一偏이라 故로 資之近而力能勉者는 皆足以能之어니와 至於中庸하야는 雖若易能이나 然이나 非義精仁熟而無一毫人欲之私者면 不能及也ㅣ라 三者는 難而易하고 中庸은 易而難하니 此民之所以鮮能也ㅣ라
균은 평치함이라. 세 가지는 知 仁 勇의 일이니 천하의 지극한 어려움이라. 그러나 모두가 한쪽에

기울어졌느니라. 고로 가까운 데부터 힘으로 능히 힘쓰는 자는 다 족히 써 능하거니와 중용에

이르러서는 비록 쉽게 능할 것 같으나 그러나 의로움(義)과 정미로움(精), 어짊이 성숙해져 터럭만큼의 사람 욕심의 사사로움이 없는 자가 아니면 능히 (중용지도에) 미치지 못하느니라. 세 가지는

어려울 것 같지만 쉽고 중용은 쉬울 것 같으나 어려우니, 이는 백성이 써 능한 이가 드문 바이니라.

[앞주 해설]
천하국가를 고르게 하려면 알아야 하고(知), 벼슬과 녹도 사양할 수 있으려면 어질어야 하고(仁),

칼날을 밟으려면 용기가 있어야(勇) 하는데 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가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다. 중용의 도에 이르려면 의롭고 정미롭고 어짊이 성숙해져 조금도

사사로운 욕심이 없어야 한다. 가균(可均)하려면 충분히 지혜롭기만 하면 되고, 가사(可辭)하려면

충분히 어질면 되고, 가도(可蹈)하려면 용감하기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얼핏 보기에는 매우 어려운 것 같지만 한쪽으로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기에 오히려 쉽다. 하지만 중용의 도를 실천하려면

의롭고 정미롭고 어짊이 모두 충분히 성숙되어야 하므로 얼핏 보기에는 쉬울 것 같지만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공자도 말씀하셨듯이 중용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右는 第九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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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庸 解說 ㅡ 5장

 

子ㅣ曰 道其不行矣夫인뎌
공자 말씀하시기를 “도가 행하지 못할진져”

由不明이라 故로 不行이라
밝지 못하므로 말미암음이라. 그러므로 행하지 못함이니라.

右는 第五章이라

此章은 承上章而擧其不行之端하야 以起下章之意라
이 장은 위 글을 이어서 그 행하지 못하는 단서를 들어서 써 아래 글의 뜻을 일으키니라.

[앞주 해설]
이 장은 간단하지만 앞 장에서 예시했듯이 결국은 知者나 愚者, 賢者나 不肖者의 과불급으로
인해 도가 행해지지 못함을 결론짓고 다음 장부터는 도가 행해진 예를 구체적으로 들고 있다.

 

中庸 解說 ㅡ 6장

 

子ㅣ曰 舜은 其大知也與ㅣ신뎌 舜이 好問而好察邇言하샤대 隱惡而揚善하시며 執其兩端하샤 用其中於民하시니 其斯以爲舜乎ㅣ신뎌
공자 말씀하시기를 순임금은 그 큰 지혜이시다. 순임금이 묻기를 좋아하시고 가까운 말을
살피기를 좋아하시되 악함을 숨기고 선을 드날리시며 그 두 끝을 잡으셔서 그 중을 백성에게 쓰시니 그 이로써 순임금이 되심이로다(과연 순임금이로시다).

[본문 해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묻기를 좋아하지 않는데 순임금은 상대가 비록 어리석건
그러하지 않던 간에 묻고 살펴 그 악은 숨겨두고 선은 높이 드날렸다. 그리고 늘 백성들로부터 항상 양단의 얘기들을 듣고 중으로써 정치를 하셨으니 순임금은 과연 성인다우셨음을 표현한 글이다.

舜之所以爲大知者는 以其不自用而取諸人也ㅣ라 邇言者는 淺近之言이어늘 猶必察焉하니 其無遺善을 可知라 然이나 於其言之未善者엔 則隱而不宣하시고 其善者엔 則播而不匿하사 其廣大光明이 又如此하시니 則人孰不樂 告以善哉리오 兩端은 謂衆論不同之極致라 蓋凡物이 皆有兩端하니 如小大厚薄之類라 於善之中에 又執其兩端而量度하야 以取中然後에 用之면 則其擇之審而行之至矣라 然이나 非在我之權度ㅣ 精切不差면 何以與此리오 此는 知之所以無過不及而道之所以行也ㅣ라


순임금이 써 대지가 되신 것은 그 스스로 쓰지 아니하고 저 사람에게 취함으로써 함이니라.

가까운 데 말은 천근한 말이어늘 오히려 반드시 살피니 (순임금이야말로) 그 선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가히 알 만하니라. 그러나 그 말이 선하지 못한 자에게는 숨겨서 선양하지 아니 하시고 그 선한 자에게는 전파하여 숨기지 아니하셔서 그 광대하고 광명함이 또한 이와 같으시니 즉 사람이 누가 선으로써 말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리오. 양단이란 것은 여러 사람의 의논이 같지 아니한 극치를 말함이라. 대개 그 물건이란 것이 모두 양단이 있으니 작고 크고 후하고 박한 종류인 것과 같음이라. 선한 가운데에 또한 그 양단을 잡아 잘 헤아려 중을 취한 연후에 쓰면 (백성들이) 그 가림을 살피고 행함이 지극할 지니라.

그러나 내게 있는 권도(저울과 잣대)가 정절해서 조금도 어긋나지 않음이 아닐 것 같으면 어찌 써 이에 참여하리오. 이는 지(知)로써 과하거나 불급하지 않음이 없어 도가 써 행해지는 바라.

度 : 헤아릴 탁 權 : 저울 권 度 :자 도

右는 第六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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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庸 제4장 解說

 

子ㅣ曰 道之不行也를 我知之矣로라 知者는 過之하고 愚者는 不及也ㅣ라니 道之不明也를 我知之矣로라 賢者는 過之하고 不肖者는 不及也ㅣ니라

 

공자 말씀하시기를 도가 행하지 못할 것을 내가 아노라 지혜로운 자는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함이라 도가 밝지 못할 것을 내가 아노라 어진 자는 지나치고 어질지 못한 자는 미치지 못하느니라.

 

[본문 해설]

중용지도는 천리(天理)요 진리(眞理)이다. 주역에도 중정과 중부, 중절, 중용, 중화의 도를 강조하고 있다. 천지도 중용의 도가 아니면 만물을 낼 수 없듯이 중용의 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치와 실천하는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중용지도로써 행해야 하는 사람은 흠결 하나 없듯이 정치도 중용지도로 행해 나가야 국가가 발전하고 사회가 발전하고 백성들이 잘 살게 된다. 그러나 대도(大道)인 중용지도를 행하고 밝힌다는 것은 쉽지 않음을 공자가

강조하고 있다.

 

[참조]

주역은 過하거나 不及함이 없는 中을 가장 중시한다. 中은 節과 통하니 천지의 배합인 60간지에 상응하는 60번째의 괘가 곧 水澤節이다(節卦 彖傳에도 中正以通을 말함).

역법(曆法)상으로 한 해의 中節에 해당하는 것은 周天常數 360일이다. 5歲에 두 달의 윤을 두는 방법(五歲再閏)에 기준하면 매년 日行은 6일이 과도하고 月行은 6일이 부족하다. 주역에서는 이를 大過와 小過로 설명하고 있는데, 대과는 큰 양(日陽)이 지나친 것이고 소과는 작은 음(月陰)이 지나친 것이다. 그러므로 日行의 과도한 도수가 대과가 되고 月行의 과도한 도수가 소과가 되는데, 이것은 일월운행에서 상대적으로 발생하는 氣盈(기영 : 대과)과 朔虛(삭허 : 소과)의 도수에 상응한다.

 

道者는 天理之當然이니 中而己矣라 知愚賢不肖之過不及은 則生禀之異而失其中也ㅣ라 知者는 知之過ㄹ새 旣以道로 爲不足行이오 愚者는 不及知하고 又不知所以行하니 此는 道之所以常不行也ㅣ라 賢者는 行之過ㄹ새 旣以道로 爲不足知하고 不肖者는 不及行하고 又不求所以知하니 此는 道之所以常不明也ㅣ라

 

도라 하는 것은 천리의 당연함이니 중일 뿐이니라. 알고 어리석고 어질고 어질지 못함의 과불급은 타고난 품부의 다름인즉 그 중을 잃음이라. 아는 자는 아는 것이 지나쳐 이미 도로써 족히 행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자는 아는데 미치지 못하고 또한 행동하는 바를 아지 못하니, 이것은 도가 항상 행해지지 못하는 바이니라. 어진 자는 행실이 지나쳐 이미 도로써 알 것이 없다하고 어질지 못한 자는 행동이 미치지 못하고 또한 아는 바를 구하지 아니하니 이것은

도가 항상 밝지 못하는 바이니라.

 

 人莫不飮食也ㅣ언마는 鮮能知味也ㅣ니라

 사람이 마시고 먹고 하지 않음이 없건마는 능히 맛을 아는 이가 적으니라

 

道不可離어늘 人自不察하니 是以로 有過不及之弊하니라

 도는 가히 떠나지 못하거늘 사람이 스스로 살피지 못하니 이로써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폐단이 있느니라.

 

右는 第四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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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제3장 해설

 

 子ㅣ曰 中庸은 其至矣乎인뎌 民鮮能이 久矣니라

 공자 말씀하시길 중용은 그 지극한져! 백성이 (중용에) 능함이 적은지 오래이니라.

 

過則失中이오 不及則未至라 故로 惟中庸之德이 爲至라 然이나 亦人所同得하야 初無難事로대 但世敎ㅣ 衰하야 民不興行이라 故로 鮮能之今已久矣라 論語엔 無能字하니라

 

지나치면 중을 잃고 미치지 못하면 이르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오직 중용의 덕이 지극함이라. 그러나 또한 사람이 한가지로 (중용의 덕을) 얻어서 처음에는 어려운 일이 없으되 다만 세상 가르침이 쇠퇴해져서 백성이 (중용의 덕에) 일어나 행하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능한 이가 적은지 이제 이미 오래되었느니라. 논어에는 자가 없느니라.

 

[앞주 해설]

중용의 덕이 지극한지라 과하면 중을 잃게 되고 불급하면 미치지 못한다. 사람은 애초 하늘로부터 중용의 덕을 얻었기에 처음에는 이를 실천하는데 어렵지 않았으나 세상의 가르침이 쇠퇴해지면서 중용의 덕이 흥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래전부터 중용에 능한 자가 드물게 된 것이다. 공자의 말씀이 많이 담겨 있는 논어를 보면, 옹야편(雍也篇)에 子ㅣ曰 中庸之爲德也라 其至乎인져 民鮮이 久矣니라(중용은 덕이라 그 지극함이여 (중용의 덕을 행하는) 백성이 드문지 오래니라)고 하였듯이 이곳에는 자가 빠져 있다. 즉 지극한 중용을 행하는 백성이 적다라고 하였을 뿐이다. 하지만 자사가 지은 중용에는 지극한 중용의 덕을 능히 할 수 있는 사람이 적어진지 이미 오래되었다자를 하나 더 붙여 피폐해진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右는 第三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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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제2장 해설

 

仲尼ㅣ曰 君子는 中庸이오 小人은 反中庸이니라

 중니(공자) 가라사대 군자는 중용이오 소인은 반중용이니라

 

 中庸者는 不偏不倚無過不及而平常之理니 乃天命所當然이요 精微之極致也ㅣ라 唯君子라야 爲能體之요 小人은 反是니라

 

중용이라 하는 것은 치우치지도 아니하고 기울어지지도 아니하고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어서 늘 그대로의 이치이니 이에 천명의 당연한 것이고 정미롭고 은미한 극치니라 오직 군자라야 능히 그 중용을 체행을 하고 소인은 이와 반대되는 짓을 하느니라.

 

 君子之中庸也는 君子而時中이오 小人之反中庸也는 小人而無忌憚也ㅣ니라

 군자의 중용은 군자이면서 때로 중을 하고 소인의 반중용은 소인이면서 꺼림이 없느니라.

 

王肅本에 作小人之反中庸也라 하야늘 程子ㅣ 亦以爲然하시니 今從之하노라 君子之所以爲中庸者는 以其有君子之德하야 而又能隨時以處中也하고 小人之所以反中庸者는 以其有小人之心하야 而又無所忌憚也ㅣ라 蓋中無定體하야 隨時而在하니 是는 乃平常之理也ㅣ라 君子는 知其在我라 故로 能戒謹不覩하고 恐懼不聞하야 而無時不中이요 小人은 不知有此하니 則肆欲妄行하야 而無所忌憚矣리라

 

왕숙본에 소인이 중용에 반한다고 지었거늘 정자가 또한 써 그렇다고 하니 이제 따르노라 군자가 써 중용을 한다는 것은 그 군자의 덕이 있으면서 또한 능히 때를 따라 써 중에 처함이요 소인이 써 중용에 반한다는 것은 그 소인의 마음이 있어서 또한 기탄하는 바가 없느니라. 대개 중이라 하는 것은 정한 체가 없어서 때를 따라서 있으니 이것이 이에 늘 평상의 이치이라. 군자는 그 내게 있음을 아느니라. 그러므로 보지 않을 적에 경계하고 삼가며 듣지 않았을 적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때로 중을 하지 않음이 없고, 소인은 이것이(중용이 내 마음에 있음을) 있음을 아지 못하니 방자한 욕심이 망령되이 움직여서 조금도 꺼리는 바가 없느니라.

 

[앞주 해설]

中無定體는 주역에 나오는 神无方而易无體(신은 방소가 없고 역은 체가 없다)의 이치와 같다. 때와 장소에 따라 신비로운 신의 작용이 나타나므로 방소가 없고 역 또한 때마다 다르게 점괘가 나오므로 일정한 체가 없듯이 중이라 하는 것도 정해진 체가 없어 때에 따라 나타남을 설명한 글이다. 그러므로 군자의 중용은 항상 삼가고 두려워하는 반면 소인의 반중용은 거리낌없이 망령되이 행동한다.

 

 右는 第二章이라

 

此下十章은 皆論中庸하야 以釋首章之義며 文雖不屬이나 而意實相承也ㅣ라 變和言庸者는 游氏曰 以性情으로 言之면 曰中和요 以德行으로 言之면 則曰中庸이 是也ㅣ라 然이나 中庸之中은 實兼中和之義라

 

이 아래 열장은 다 중용을 논해서 머리장의 뜻을 해석함이니 글이 비록 연결되지는 아니하나 뜻은 실로 서로 이어지니라. 和를 변하여 庸이라고 하는 것은, 유씨가 말하기를 성정으로 말하면 가로되 중화요, 덕행으로써 말하면 중용이 이것이라. 그러나 중용의 가운데에 실지로 중화의 뜻을 겸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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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 제1장 해설

 

 天命之謂性이오 率性之謂道ㅣ오 修道之謂敎ㅣ니라

하늘이 명한 것을 성품이라 이르고, 천명의 성품을 그대로 따르는 것을 도라 이르고, 그 성품을 따르는 길을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 이르느니라

 

[본문 해설]

천명 = 성(性) ․ 솔성 = 도(道) ․ 수도 = 교(敎)는 대학의 첫머리에 나오는 삼강령인 명명덕(明明德)과 친민(親民)과 지어지선(止於至善)과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 대학과 마찬가지로 중용도 天地人 삼재로 시작함을 알 수 있다.

하늘이 우리에게 명해준 것이 성품이므로 곧 天命之謂性이고, 하느님에게서 타고난 성품을 내가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길(道)이므로 곧 率性之謂道이고, 그 성품을 따르는 도를 잘 닦아 나가 마름질 해놓은 것이 가르침이므로 곧 修道之謂敎이다. 도를 잘 닦아 나가는 것, 즉 마름질하는 것이 바로 교육적인 가르침(敎)이 되는 것이다. 그 가르침을 받아 道를 따라가는 것이며, 그 도를 가다 보면 率性이 되고 결국 천명을 그대로 받드는 것이 된다. 성품을 이룬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역 계사상전 제8장에서 공자가 이루어진 성품을 존하고 존함이 도의의 문이라(成性存存이 道義之門이라) 하신 말씀과 통하는 글귀이다. 주역 계사상전 제5장에서는 한 번은 陰을 하고 한 번은 陽을 하는 것이 道이고, 이를 이어나가는 것은 善이 되며, 이를 이룬 것은 性이라(一陰一陽之謂ㅣ 道ㅣ니 繼之者ㅣ 善也ㅣ오 成之者ㅣ 性也ㅣ라)하였다. 사람은 원래 善하게 타고 난다. 그 선을 바탕으로 이어나가면서 이룬 것이 性이 된다. 繼之者善은 1년으로 말하면 元亨의 봄과 여름을 말하고, 成之者性은 利貞의 가을과 겨울에 해당한다. 하늘 그대로 이어받기는 받았지만 어떻게 여물지 모르는 상태가 繼之者善이고 가을이 되면 부여받은 성질대로 여무는 것이 成之者性이다. 그 成之者性이 계속 存存하는 成性存存만 된다면 道義의 문이 된다는 것이다. 도는 그 體이고 義는 그 用이다. 곧 도덕과 의리이다. 성성존존하게 된다면 이것은 곧 도덕과 의리를 행하는 문이 되어서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자연이나 우리 몸은 모두가 역의 이치로 만들어졌다. 자신의 몸을 자연과 더불어 순수하게 천명 그대로 이끌어나갈 때 率性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存存하는 것이다.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모습 그대로 천성을 따르는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주역의 본체로 들어가서 역을 깨닫고 도를 통하게 되는데, 중용을 소주역이라 하는 이치를 맨 먼저 중용 머릿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편으로 黃帝陰符經을 보면 天性은 人也요 人心은 機也ㅣ니 立天之道하야 以定人也니라(하늘의 성품이 곧 사람의 것이고 사람의 마음은 움직이는 기틀인 것이니 하늘의 도를 잘 세움으로써 사람을 정립하느니라)라 하였다. 또한 마음에서 물건이 나오고 물건에서 죽으니 그 기틀이 눈에 있다(心生於物하고 死於物하나니 機在於目이니라) 하였다. 사람의 마음은 보는 것에 따라 항상 흔들리므로 항상 하늘의 도를 잘 세워 용맹정진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논어의 가장 첫머리에서 學而時習之(배우고 때로 익힌다)를 내세워 항상 공부해야 함을 강조함도 흔들리는 사람의 마음을 다잡기 위한 방법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命은 猶令也ㅣ요 性은 卽理也ㅣ라 天以陰陽五行으로 化生萬物하야 氣以成形하고 而理亦賦焉하니 猶命令也ㅣ라 於是에 人物之生이 因各得其所賦之理하야 以爲健順五常之德하니 所謂性也ㅣ리라

명은 영(令)과 같고 성은 즉 이치이니라. 하늘이 음양과 오행으로써 화하여 만물을 내니 기운으로써 형체를 이루고 이치를 부여해주니 (하늘이 사람에게) 명령함과 같음이라. 이에 사람과 모든 물건의 생함에는 각기 그 부여받은 바의 이치로 인하여 건순오상의 덕을 갖추고 나왔으니 성품이라 이르느니라.

 

[앞주 해설]

윗글은 주자가 달아놓은 앞주이다. 천명은 하늘의 命令이며, 性이라고 하는 것은 하늘이 사람에게 어떻게 살라고 부여해준 보이지 않는 이치를 말함이다. 하늘이 음양오행의 이치로 만물을 화생하여 그 기운으로써 형체를 이루고 그 속에 보이지 않는 이치를 준 것이다. 천명지위성의 이치를 설명한 것이다. 이러한 하늘의 이치에는 건순오상의 덕이 있다. 주역 건괘 대상전에서 공자는 하늘의 움직임은 굳건하여 군자가 이로써 스스로 굳세어 쉬지 않는다(天行이 健하니 君子ㅣ 以하야 自彊不息하나니라)라고 하여 하늘은 순양으로써 굳셈을 나타내었고, 곤괘 문언전에서는 곤의 도가 순한저! 하늘을 이어 때로 행하느니라(坤道ㅣ 其順乎뎌. 承天而時行하나니라)고 하여 땅은 순음으로써 유순함을 말하였다. 곧 사람의 하늘과 땅의 음양의 도에 따라 健順함을 부여받았으며, 음양이 사귀는 가운데 나온 오행에 따라 仁義禮智信이라는 다섯 가지의 떳떳한 덕인 五常의 덕을 부여받은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란 누구나가 健順五常이라는, 하늘이 명한 성품을 갖고 나왔다는 것이다.

중용을 소주역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머릿장에 천명을 언급하고 있으니 그것은 곧 주역의 음양 이치에 따른 글이기 때문이다.

 

率은 循也요 道는 猶路也ㅣ라 人物이 各循其性之自然이면 則其日用事物之間에 莫不各有當行之路하니 是則所謂道也ㅣ라

따를 순과 같고, 길 로와 같음이라. 사람이나 모든 물건이 각각 그 성품의 자연함을 따르면, 날로 쓰는 사물의 사이에 각각 마땅히 행해야 할 길이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곧 도이니라.

 

[앞주 해설]

道와 路를 합하여 道路가 된다. 道는 머리 수(首)갈 지(之)가 합한 글자로 머리가 가는 것이 으뜸이요 원칙이고, 路는 발 족(足)에 각기 각(各)을 합하였으니 각각 나아가는 것으로 道는 나아가는 길의 體가 되고, 路는 用이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가야 할 길이 있는 한편으로,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각기 처한 바 위치에 따라서 마땅히 가야 할 길이 있음을 말한다.

 

修는 品節之也ㅣ라 性道는 雖同而氣稟이 或異니라 故로 不能無過不及之差할새 聖人이 因人物之所當行者而品節之하야 以爲法於天下則爲之敎ㅣ니 若禮樂刑政之屬이 是也ㅣ라

수는 품절(마름질하는 것)이라. 성과 도는 비록 같으나 기품이 혹 다르니라. 그러므로 과하거나 불급함의 차이가 없지 않기 때문에 성인이 사람과 물건의 마땅히 가야할 바를 인하여 잘 품절하여 써 천하의 법을 삼으니 이를 일러 교라고 하니 예를 들어 예절과 음악과 형벌과 정치 같은 등속이니라.

 

[앞주 해설]

닦는다는 것은 마름하는 것이다. 물품을 잘 손질하고 다듬어 절도있게 하는 것이다. 하늘의 명이 性이고 그 성품을 닦는 것이 道이므로 하늘이 부여하는 원리는 같으나 사람마다 타고 나는 기질적인 품성(稟性)은 각기 다르다. 타고난 성질이 급한 사람도 있고 느린 사람도 있으며, 타고난 기질이 강한 사람도 있고 유약한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모두가 똑같이 중을 지켜나간다면 별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타고난 과불급의 차이가 있기에 성인이 사람마다 물건마다 마땅히 가야 할 바에 대해 잘 닦아나갈 수 있도록 마름질을 한다. 그것이 곧 , 가르침인데 이에는 예절과 음악, 형벌과 정치 등등의 여러 방법이 있다.

 

蓋人이 知己之有性호대 而不知其出於天하며 知事之有道호대 而不知其由於性하며 知聖人之有敎호대 而不知其因吾之所固有者하야 裁之也ㅣ라 故로 子思ㅣ 於此에 首發明之하시니 而蕫子所謂道之大原이 出於天이라 하니 亦此意也ㅣ라

대개 사람이 자기에게 성품이 있음을 알되 그것이 하늘에서 나옴을 알지 못하며, 사물이 가야 할 길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것이 하늘이 부여해준 성품을 따라야 하는 연유는 알지 못하며, 성인의 가르침이 있는 것을 알면서 그 나의 진실로 둔 바를 인하여 마름하는 것은 알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자사가 이에 (중용의) 머릿장에 밝히시니 동자(董子 ; 동중서)란 이가 도의 큰 근원은 하늘에서 나왔다 이르니 또한 이 뜻이니라.

 

 道也者는 不可須臾離也ㅣ니 可離면 非道也ㅣ라 是故로 君子는 戒愼乎其所不睹하며 恐懼乎其所不聞이니라

도라 하는 것은 가히 잠깐이라도 떠나지 못할 것이며 가히 떠나면 도가 아니니라. 이런 고로 군자는 그 보지 못한 바에서 경계하고 삼가하며 그 듣지 못한 바에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느니라.

 

[본문 해설]

우리가 가야 할 길, 곧 도라는 것은 내 몸에서 잠깐이라도 떠나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길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도를 실천하지 않아 벌어질 무서움이나 두려움을 보고 난 뒤에야 어거지로 하는 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보지 않고(不睹) 듣지 않더라도(不問) 이것이 사람이 가야 할 길이겠구나 하는 원리에 입각해 스스로 늘 조심조심 도를 따라가야 한다(戒愼恐懼)는 것이다.

불가(佛家)의 금강경(金剛經) 사구게(四句偈)에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만약 빛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한다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하는 것이니 영원히 여래를 보지 못할 것이니라)라고 한 말도 바로 不睹하고 不聞이라 하여 도를 닦지 않음을 경계한 말이다.

 

道者는 日用事物當行之理니 皆性之德而具於心하야 無物不有하고 無時不然하니 所以不可須臾離也ㅣ라 若其可離면 則豈率性之謂哉ㅣ요 是以로 君子之心이 常存敬畏하야 雖不見聞이나 亦不敢忽이니 所以存天理之本然이요 而不使離於須臾之頃也ㅣ라

도라 하는 것은 날로 쓰는 사물이 마땅히 행해야 할 이치이니 모두가 성품의 덕이요 그것이 마음에 다 갖추어져 물건마다 (도를) 두지 않음이 없고 때로 그렇지 않음이 없으니 써한 바가히 잠깐이라도 떠나지 않음이 없느니라. 만약 가히 떠나면 어찌 하늘이 정한 성품을 따른다고 할 수 있으리요. 이로써 군자의 마음이 항상 경외롭게 두어(곧 戒愼恐懼) 비록 보고 듣지 못하나 또한 감히 경솔히 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이 써한 바 천리의 본연(곧 性道)을 존하는 것이고 잠깐의 경각이라도 떠나지 못함이니라.

 

[앞주 해설]

윗 글의 常存敬畏는 대학 전문 제6장 제2절의 小人이 閒居에 爲不善호대 無所不至하다가 見君子而后에 厭然揜其不善하고 而著其善하나니 人之視己ㅣ 如見其肺肝이니 然則何益矣리오 此謂誠於中이면 形於外니 故로 君子는 必愼其獨也ㅣ니라(소인이 한가하게 있을 때에 불선을 행함이 이르지 아니하는 바가 없다가 군자를 보고 난 뒤에 슬며시 그 불선을 가리고 선을 드러내지만, 남들이 자기를 알아봄이 마치 나의 폐장과 간장을 보는 듯할 것이니 그렇다면 어찌 유익하겠는가. 이를 일컬어 속마음에 성실하면 밖으로 드러난다고 하는 것이니, 때문에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를 삼가니라).는 내용과 같이 항상 .戒愼恐懼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아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莫見乎隱이며 莫顯乎微니 故로 君子는 愼其獨也ㅣ니라

숨은 것보다 나타나는 것이 없으며 미미한 것보다 드러나는 것이 없으니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를 삼가느니라

 

[본문 해설]

천자문에 屬耳垣墻(속이원장), 寓目囊箱(우목낭상)이라는 말이 있다. 귀는 담장에 붙어 있고, 눈은 내가 늘 쓰는 상자 속이나 천장에 붙어 있으니 말조심 행동조심 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흔히 숨어있는 것이 절대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더 잘 나타나고, 미미한 것이라 하여 결코 드러나지 않으리라 여기지만 역시 다 드러나기 때문에 숨어 있을 때나 은미할 때나 남이 보지 않고 듣지 않을 때라도 다시 말해 홀로 있을 때라도 스스로를 삼가야 한다.

주역 풍화가인(風火家人)괘에서 언급한 君子는 言有物而行有恒이라(말에는 실물이 있고 행동에는 항상함이 있다) 하여야 하고 앞서도 나왔듯이 必愼其獨해야 한다는 뜻이다.

 

隱은 暗處也ㅣ요 微는 細事也ㅣ라 獨者는 人所不知而己所獨知之地也ㅣ라 言幽暗之中 細微之事에 跡雖未形이나 而幾則已動하니 人雖不知나 而己獨知之하니 則是天下之事ㅣ 無有著見明懸而過於此者ㅣ라 是而로 君子ㅣ旣常戒懼하야 而於此에 尤加謹焉ㅣ니 所以遏人欲於將萌하야 而不使其潛滋暗長於隱微之中하야 以至離道之遠也ㅣ라

隱은 어두운 곳이요 微는 가느다란 일이라. 홀로란 것은 남이 알지 못하는 바이며 나 혼자만이 알고 있는 것이라. 그윽하고 어두운 가운데 세미한 일이 비록 자취라는 형체는 있지 아니하나 기미는 이미 움직이고 있어 남들이 비록 알지 못하나 나 홀로는 아는 것이 곧 천하의 일이니 나타나고 밝게 드러나 여기에 지남이 있지 않느니라. 이로써 군자가 항상 계신공구하야 이에 더욱 더 삼갈 것이니, 써한 바 사람의 욕심이 장차 싹 트는 것을 막아 은미한 가운데 푹 잠겨 차차 불어나고(潛滋) 어두운 속에서 점차 커져(暗長) 도를 떠나 멀리 이르지 않게 함이니라

 

[앞주 해설]

아무리 비밀스럽게 하는 일이라도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기에 형체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미 기미는 드러나 있는 것이니 곧 만천하에 다 알려진다. 주역 14번째 화천대유(火天大有)괘에 보면 "遏惡揚善(알악양선)하야 順天休命(순천휴명)하나니라(악한 것을 막고 선한 것을 드날려서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따르느리라)하였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모든 것이 많아지고 풍성해지다보니 이를 탐하고 욕심을 내어 죄짓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물질이 풍요롭고 빈부의 격차가 나면 없는 사람는 없기에 가지려고 죄짓고, 있는 사람은 더 가지려고 죄를 짓는다. 그래서 遏惡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맹자에도 遏人欲存天理(사람의 욕심을 막아 하늘의 이치를 보존해야 한다)라 하였다. 즉 하늘이 부여해주 性道를 지키기 위해서는 항상 戒愼恐懼해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대목이다.

 

喜怒哀樂之未發을 謂之中이요 發而皆中節을 謂之和ㅣ니 中也者는 天下之大本也ㅣ오 和也者는 天下之達道也ㅣ니라

희노애락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때를 中이라 이르고 나타났지만 節에 맞게 함을 和라 하니 中이라 하는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和라는 것은 천하의 통한 道이니라(모두가 가야 할 길이니라)

 

[본문 해설]

여기서부터는 중용을 설명하고 있다. 앞에서는 도를 말하였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기뻐하거나 성내거나 슬퍼하거나 즐거워할 때가 있다. 이것이 아직 마음 속에 있을 때가 중이고, 그것을 잘 조절해 적절히 나타났을 때를 和, 곧 조화, 화합이라고 한다. 이것이 곧 中和이며, 中庸을 말한다. 中은 언제나 中이고, 和는 떳떳함(庸), 正, 節로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中和라 하면 中庸이요, 中正이요 中節이요 中道로도 얘기할 수 있다.

中은 속에 있는 것이므로 뿌리가 되기에 大本으로 표현했고, 근본에서 나와 가지를 뻗어 나가는 것이 道이므로 누구나 다 가야할 길이기에 和를 達道로 표현했다. 곧 내적인 大本이 中, 外的인 達道가 和가 된다.

 

 

喜怒哀樂은 情也ㅣ니 其未發則性也ㅣ라 無所偏倚라 故로 謂之中이요 發皆中節은 情之正也ㅣ라 無所乖戾라 故로 謂之和라 大本者는 天命之性이니 天下之理ㅣ 皆由此出하니 道之體也ㅣ라 達道者는 循性之謂니 天下古今之所共由니 道之用也ㅣ라 此言은 性情之德이니 以明道不可離之意니라

희노애락은 (사람의) 감정(情)이니 그것이 아직 발하지 않았을 때를 性이라 함이라. 치우치고 기울어지는 바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이를 중이라 함이요 발하되 절도에 맞는 것을 감정의 바름이니라. 어긋나거나 거스리는 바가 없으므로 이를 和라 이르니라. 대본이라는 것은 천하의 성품이니 천하의 이치가 모두 이로 말미암아 나오니 도의 體이니라. 통한 도라고 하는 것은 성품을 따름을 이름이니 천하와 고금이 한가지로 말미암은 바이니 도의 用이라. 이것은 성정의 덕을 말함이니 써 밝은 도는 가히 떨어질 수 없다는 의미니라.

 

[앞주 해설]

大本은 곧 道之體가 되며 中이 되며, 바로 중용 맨첫머리에 언급한 天命之謂性을 말한다. 達道는 곧 道之用이 되며 和가 되고 率性之謂道에 해당하고 性情之德을 말한다.

 

 

致中和ㅣ면 天地ㅣ位焉하며 萬物이 育焉이니라

중화에 이르면 천지가 자리하며 만물이 길러지느니라

 

[본문 해설]

주역 계사상전 첫머리에 易簡而天下之理ㅣ 得矣니 天下之理ㅣ 得而成位乎其中矣니라(쉽고 간단함에 천하의 이치를 얻으니, 천하의 이치를 얻음에 위를 그 가운데에 이루느니라)고 하였으며, 천부경에도 人中天地一라 하여 가운데 자리하는 것을 매우 소중함을 밝히고 있다. 하늘이나 땅이나 중화라는 제 위치를 잃는다면 만물이 길러질 수 없음을 표현해 중화는 곧 천지로부터 시작됨을 알 수 있다.

 

致는 推而極之也ㅣ라 位者는 安其所也ㅣ오 育者는 遂其生也ㅣ라 自戒懼而約之하야 以至於至靜之中하야 無所偏倚而其守ㅣ 不失이면 則極其中而天地ㅣ 位矣요 自謹獨而精之하야 以至於應物之處에 無小差謬而無適不然이면 則極其和而萬物이 育矣ㅣ니라 蓋天地萬物은 本吾一體니 吾之心이 正이면 則天地之心이 亦正矣ㅣ요 吾之氣ㅣ 順이면 則天地之氣ㅣ 亦順矣이라 故로 其效驗이 至於如此하니 此는 學問之極功이요 聖人之能事라 初非有待於外나 而修道之敎로 亦在其中矣ㅣ라 是其一體一用이 雖有動靜之殊나 然이나 必其軆立而後에야 用이 有以行이면 則其實ㅣ 亦非有兩事也ㅣ라 故로 於此에 合而言之하야 以結上文之意ㅣ니라

치는 미루어 극함이라, 위라는 것은 그 곳에서 편안함이오, 육은 그 생함을 이룸이니라. 계신공구로부터 간략히 하여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 이르러 치우치거나 미뤄지는 바가 없어 그 지키는 바를 잃지 않으면 그 중이 지극해져 천지가 위를 얻게 되고, 근독(홀로를 삼가함)으로부터 정미롭게 해서 써 물건을 응하는 곳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어긋남이 없어서 어디를 가든지 그렇지 않음이 없으면(中이라는 體를 잘 잡는다면) 그 화함을 극하게 해서 만물이 길러지느니라. 대개 천지만물이라 함은 본래 내 한 몸이니 나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도 바를 것이요 나의 기운이 순하면 천지의 기운도 또한 순하느니라. 그러므로 그 효험이 이와 같은데 이르니 이것은 (중용이라는) 학문의 지극한 공이며 성인의 능한 일이니라. 처음에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지 아니하나(내 성품 밖으로 나가지 않으나) 도를 마름하는 敎(修道之敎)가 또한 그 가운데 있느니라(도를 잘 마름하고 밖으로 나가 가르치니 효험이 커짐이 있음이라). 이 그 일체일용이 비록 동하고 정하는 다름이 있으나 반드시 그 체가 선 뒤에 용이 써 행함이 있으면 즉 그 실지(실상)가 두 가지 일이 있지 않음이니 고로 이에 합해서 말하니 윗글의 뜻을 여기에 말함이라

 

[앞주 해설]

천지인이 모두가 하나임을 밝히고 있다. 천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 속에 있음을 부연설명하고 체용의 이치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체를 바로 세우고 행해야 함을 덧붙이면서 一體一用은 곧 一原을 밝히고 있다.

 

右는 第一章이라

 

子思ㅣ 述所傳之意以立言하야 首明道之本原이 出於天而不可易하니 其實은 體備於己而不可離이요 此言 存養省察之要하야 終言聖神功化之極하니 蓋欲學者로 於此에 反求諸身而自得之ㅣ니 以去夫外誘之私而充其本然之善이니라 楊氏l 所謂一篇之體要요 是也ㅣ니라 其下十章은 蓋子思ㅣ 引夫子之言하야 以終此章之意ㅣ니라

자사가 전한 바의 뜻을 지어서 써 말을 세워서 먼저 도의 본원이 하늘에서 나와서 가히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밝혀 놓았으니 그 실지는 체가 몸에 갖추어져 가히 떠나지 못함을 (머릿장에) 밝힌 것이오, 이 말은 살피고 살핌의 중요함을 잘 존양하고(말해놓고 ) 마침내는 성신(성인의 신비로움)의 공되고 화하는 지극함을 말해 놓았으니, 대개 배우는 자가 이에 저 몸에 돌이켜 구해(反求諸身) 스스로 얻어써 밖으로 유혹되는 사사로움을 버리고 본연의 선함을 충족시키게 함이라 .양씨가 한편의 체요라고 말한 바가 이것이니라. 이하 십장은 대개 자사가 공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써 이 장의 뜻을 마무리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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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경전 > >사서 > 중용

 

『중용』은 유교의 기본 경전인 사서(四書)의 하나로서 유교의 철학적 배경을 천명하고 있는 책이다.

이것은 본래 『예기(禮記)』 49편 가운데 제31편으로 들어 있었지만, 그 내용의 중요성 때문에 일찍이 한대(漢代)부터 단행본으로 세상에 통용되었다.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의 육예략(六藝略) 예류(禮類)에는 『중용설(中庸說)』2편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책의 저자로는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왔다. 자사가 『중용』을 지었다는 최초의 기록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로서 『공자세가(孔子世家)』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일찍이 송(宋)에서 곤경에 처하였는데, 이 때에 『중용』을 지었다"라고 되어 있다.

후한(後漢)의 경학자 정현(鄭玄)은 "공자의 손자 자사가 이를 지어 성조(聖祖)의 덕을 소명(昭明)하였다"고 하였다. 정현은 현존 최고의 주석(註釋)을 남겼는데,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양(梁)의 심약(沈約)과 『오경정의(五經正義)』의 책임 편찬자인 공영달(孔穎達), 한유(韓愈)·이고 등  한(漢)·당(唐)의 학자·문인들은 아무도 이러한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현학(玄學)과 불교가 크게 유행하였던 남조(南朝) 송(宋)의 대옹이 『중용전(中庸傳)』2권을 짓고, 양(梁)의 무제(武帝)는 『중용의소(中庸義疏)』1권과 『사기제지중용의(私記制旨中庸義)』5권을 남겼다고 하지만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송대(宋代)에 이르러 성리학(性理學)이 유행하면서 호원(胡瑗)·정호(程顥) 등의 학자들이 주석서를 지었는데, 이것을 총체적으로 정리한 것이 주희(朱熹)의 『중용장구(中庸章句)』이다. 정호·정이  『중용』을 공자의 문하에서 전수된 심법(心法)이라고 하여 중시하였고, 주희는 『중용장구』와 『중용혹문』을 지어 중용의 뜻을 천명하면서 『논어(論語)』·『맹자(孟子)』·『대학(大學)』과 함께 사서로 표장(表章)하였다.

그런데 『예기』가 한(漢)나라 초기인 B.C.130년 경 처음 나타났던 것으로 보면 자사의 생존 시대와 약 300년의 차이가 있다. 또한 하간헌왕(河間獻王)에 의해 발견되었을 당시에는 131편이었다고 하며, 뒷날 대성(戴聖)의 의하여 49편으로 정리되기까지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 있었다. 이는 『중용』의 자사 저작설에 대해 충분히 의심할 만한 근거가 된다. 자사의 『중용』 저작설에 대해 처음으로 의심한 사람은 북송(北宋)의 사학자요 문인인 구양수(歐陽脩)와 소식(蘇軾)·여대림(呂大臨)이었다.

 이 가운데 정이의 제자인 여대림은 "자사가 송에서 지냈던 때는 그의 나이 16세에 불과하다"라는 『공총자(孔叢子)』의 기록을 근거로 그 같은 나이에 저술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같은 주장은 후에 『공총자』가 위서(僞書)임이 드러나서 논거가 흔들리기는 하였으나 당시에는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청대(淸代)에 이르러 경서 전반에 대해 고증학적 검토가 진행되었다.

이때의 연구 성과를 수용한 호적(胡適)·전목(錢穆) 같은 학자들은 자사의 『중용』 저작설을 부정하고 진(秦)·한(漢) 사이의 학자가 지은 것으로 단정하였다. 그리고 풍우란(馮友蘭)·무내의웅(武內義雄) 등 중국과 일본의 학자들도 이에 동조하였다. 그러나 『중용』 전체 내용을 살펴볼 때 전 22편이 자사의 작품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첫 장(章)은 분명히 자사의 글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중용』전체의 요체가 된다는 점에서 『중용』은 자사에 의하여 그 저본이 성립되고 그 문도들에 의해 보충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예기』『중용』편은 본래 33장으로 되어 있었는데 정이는 그것이 옳지 못하다고 여겨 37장으로 나누어 『중용해(中庸解)』를 지었고, 주희는 다시 33장으로 하여 『중용장구(中庸章句)』를 지었다. 이 책의 서문은 『대학장구(大學章句)』의 서문과 함께 명문으로 평가되어 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애송되었으며, 주희 자신의 사상과 견해를 담고 있어 더욱 중요시되었다. 그것에 따르면 우선 『중용』은 "자사가 도학(道學)의 전통이 없어질 것을 염려하여 지은 것이다"라고 하여 도통(道統)의 맥락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상서(尙書)』『대우모(大禹謨)』에 나오는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미세하니 오직 정밀하고 오직 한결같아야 진실로 그 중용을 잡게 된다"라는 문장을 내세우고 도심이 늘 몸의 주인이 되고 인심은 언제나 그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어서 도학의 전통을 요(堯)·순(舜)·우(禹)·탕(湯)·문(文)·무(武)·고요(皐陶)·이윤(伊尹)·부열(傅說)·주공(周公)·소공(召公)·공자(孔子)·안회(顔回)·증삼(曾參)·자사(子思)·맹자(孟子)·정씨 형제·주희 자신으로 전승된 것으로 제시하였다. 한편 조보지(晁補之)는 82장으로 나누어 『중용전(中庸傳)』을 지었으며, 여립무(黎立武)는 15장으로 나누어 『중용분장(中庸��章)』을 지었다.

『중용』은 구성 체재 및 내용을 보면, 제1장은 전편(全篇)의 요체가 되는 것으로 자사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다. 즉 천명(天命)·성(性)·도(道)·교(敎)를 말하여 『중용』의 철학적 근거와 내용을 밝혔다. 이어서 중화(中和)의 공효(功效)를 말하여 "중화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잘 생육(生育)될 것이다"라는 중용 최고의 경지를 그리고 있는데 이것이 중용의 도이다.

주희는 이에 대하여 "도의 본원은 하늘로부터 나와 바뀔 수 없고, 도의 실체는 자신에게 갖추어져 떠날 수 없음을 밝혔고, 이어서 그것을 기르고 살피는 요령을 말하였으며, 끝으로 성신(聖神)의 공화(功化)가 지극함을 말하였다"라고 설명하였다. 제2장에서 제11장까지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제1장의 뜻을 완결시킨 것이다. 이에 대하여 주희는 "중은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는 것이며,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것을 일컬음이고, 용(庸)은 평상(平常)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즉 중은 지중지정(至中至正)한 인성(人性)의 본연(本然)을 나타내는 말로서 시중(時中) 말하며, 용은 일상 생활에서 평상됨을 나타내는 것이다. 결국 중용의 도는 일상 생활을 바탕으로 인간 본성을 평탄하게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용을 택하여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군자(君子)와 소인(小人)의 구분이 있게 되는데, 제2장에서 공자는 "군자는 중용을 따르고 소인은 중용에 반(反)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부터 제11장까지는 중용의 도를 이루는 즉 치중화(致中和)하는 방법을 논하고 있다. 『주자어류(朱子語類)』에서는 중용과 중화의 관계를 "성정(性情)으로써 말하면 중화이고, 리의(理義)로써 말하면 중용이지만, 그 실제는 동일하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중화를 체(體)라고 한다면 중용은 용(用)이다. 결국 중화는 성정으로서 심성(心性)을 가리키는 것이고, 중용은 그것이 행위로서 드러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제12~20장에서는 공자의 말과 『시경(詩經)』을 인용하여 '중용의 도'의 원리와 작용에 대해서 밝혔다. 제12장 본문에는 "군자지도(君子之道)는 비(費)하며 은(隱)하다"고 하였는데, 주희는 이것을 체용(體用)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즉 중용의 중은 천하의 정도(正道)로서 용(用)·비(費:넓음)이고, 용(庸)은 천하의 정리(定理)로서 체(體)·은(隱:은미함)이라고 하였다. 또한 중화의 중은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으로서 체·은이며, 화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으로서 용·비이다.

그리고 중용과 중화의 관계에서 중화는 체로서 은이며, 중용은 용으로서 비이다.

제21장~26장은 성(誠)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성은 『중용』에서 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이다. 제20장에서 "성실함[誠]은 하늘의 도요, 성실히 하는 것[誠之]은 사람의 도이다"라고 하였다. 성은 스스로 이루어진 것이고, 사물의 끝과 시작이 되는 본체로서 존재와 원리이며, '성지'는 미숙한 인간이 진실무망하려고 노력하는 인사(人事)의 당연이다. 제22장에서는 '성지'하는 수양을 통하여 성을 이룬다면 천성(天性)을 터득하여 행할 수 있다고 하였다. 제27~33장에서는 지성(至誠)을 체득한 성인의 도(道)·덕(德)·교화(敎化)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우리 나라에 『중용』이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라고 보여진다. 그것은 신라 원성완 4년(788)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태학(太學)에 설치할 때 그 과목 중에 『예기』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용』은 고려말 성리학(性理學)의 전래 이후 학자들 사이에서 필독서로서 널리 읽혀졌는데, 권근(權近)이 사서에 구결을 하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많이 읽힌 주석서(註釋書)로는 송대(宋代) 석돈이 편집하고 주희가 산정한 『중용집략(中庸輯略)』, 주희의 『중용장구』·『중용혹문(中庸或問)』, 명대(明代) 양주진(楊朱陳)의 『중용사초(中庸私抄)』, 관지도(管志道)의 『중용정석(中庸訂釋)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 이언적(李彦迪)은 『중용구경연의(中庸九經衍義)』를 지었으며, 선조(宣祖)의 명으로 간행한 이이(李珥)의 『중용언해(中庸諺解)』가 있다.

 

인터넷 발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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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庸


1.  天命之謂性이오 率性之謂道요 修道之謂敎니라 道也者는 不可須臾離也니 可離면 非道也라 是故로 君子는 戒愼乎其所不睹하며 恐懼乎其所不聞이니라 莫見乎隱이며 莫顯乎微니 故로 君子는 愼其獨也니라 喜怒哀樂之未發을 謂之中이오 發而中節을 謂之和니라 中也者는 天下之大本也요 和也者는 天下之達道也니라 致中和면 天地位焉하며 萬物育焉하니라 (中.一)


2.  仲尼ㅣ曰 君子는中庸이오 小人은反中庸이니라 君子之中庸也는 君子而時中이오 小人之中庸也는 小人而無忌憚也니라  (中.二)


3.  子ㅣ曰 中庸은 其至矣乎인저 民鮮能久矣니라 (中.三)


4.  子ㅣ曰 道之不行也를 我知之矣로다 知者는 過之하고 愚者는 不及也니라 道之不明也를 我知之矣로다 賢者는 過之하고 不宵者는 不及也니라 (中.四)


5.  子ㅣ曰 道其不行矣夫인저 (中.五)


6.  子ㅣ曰 舜은 其大知也與신저 舜이 好問而好察邇言하사대 隱惡而揚善하시며 執其兩端하사 用其中於民하시니 其斯以爲舜乎인저 (中.六)


7.  子曰 人皆曰予知로되 驅而納諸罟擭陷阱之中而莫之知辟也라 人皆曰予知로되 擇乎中庸而不能期月守也니라  (中.七)


8.  子曰 回之爲人也 擇乎中庸하야 得一善則拳拳服膺而弗失之矣니라  (中.八)


9.  子曰 天下國家도可均也며 爵祿도可辭也며 白刃도可蹈也로되 中庸은不可能也니라  (中.九)


10. 子路問强한대 子曰 南方之强與아 北方之强與아 抑而强與아 寬柔以敎요 不報無道는 南方之强也니 君子居之니라 衽金革하야 死而不厭은 北方之强也니 而强者居之니라 故로君子는 和而不流하나니 强哉矯여 中立而不倚하나니 强哉矯여 國有道에不變塞焉하나니 强哉矯여 國無道에至死不變하나니 强哉矯여  (中.十)


11. 子曰 素[索]隱行怪를 後世에有述焉하나니 吾弗爲之矣로라 君子遵道而行하다가 半塗而廢하나니 吾弗能已矣로다 君子는依乎中庸하야 遯世不見知而不悔하나니 唯聖者아能之니라  (中.十一)


12. 君子之道는 費而隱이니라 夫婦之愚로도 可以與知焉이로되 及其至也하야는 雖聖人이라도亦有所不知焉하며 夫婦之不肖로도 可以能行焉이로되 及其至也하야는 雖聖人이라도 亦有所不能焉하며 天地之大也에도 人猶有所憾이니 故로君子語大인댄 天下莫能載焉이오 語小인댄 天下莫能破焉이니라 詩云鳶飛戾天이어늘 魚躍于淵이라하니 言其上下察也니라 君子之道는 造端乎夫婦하나니 及其至也하야는 察乎天地니라  (中.十二)


13. 子曰 道不遠人하니 人之爲道而遠人이면 不可以爲道니라 詩云伐柯伐柯여 其則不遠이라하니 執柯以伐柯하되 睨而視之하고 猶以爲遠하나니 故로君子는以人治人하다가 改而止하니라 忠恕違道不遠하니 施諸己而不願을 亦勿施於人이니라 君子之道四에 丘未能一焉이로니 所求乎子로 以事父를未能也하며 所求乎臣으로 以事君을 未能也하며 所求乎弟로 以事兄을未能也하며 所求朋友로 先施之를未能也로니 庸德之行하며 庸言之謹하야 有所不足이어든 不敢不勉하며 有餘어든不敢盡하야 言顧行하며 行顧言이니 君子胡不慥慥爾리오 (中.十三)

 

14. 君子는素其位而行이오 不願乎其外니라 素富貴하얀 行乎富貴하며 素貧賤하얀 行乎貧賤하며 素夷狄하얀 行乎夷狄하며 素患難하얀 行乎患難이니 君子는無入而不自得焉이니라 在上位하야 不陵下하며 在下位하야 不援上이니라 正己而不求於人이면 則無怨이니 上不怨天하며 下不尤人이니라 故로君子는居易以俟命하고 小人은行儉以徼幸하니라 子曰 射有似乎君子하니 失諸正鵠이오 反求諸其身이니라  (中.十四)


15. 君子之道는 辟如行遠必自邇하며 辟如登高必自卑니라 詩曰妻子好合이 如鼓瑟琴하며 兄弟旣翕하야 和樂且耽이라 宜爾室家하며 樂爾妻帑라하야늘 子曰 父母는其順矣乎인저  (中.十五)


16. 子曰 鬼神之爲德은 其盛矣乎인저 視之而弗見하며 聽之而弗聞이로되 體物而不可遺니라 使天下之人으로 齊明盛服하야 以承祭祀하고 洋洋乎如在其上하며 如在其左右니라 詩曰神之格思를 不可度思어늘 矧可射思아 夫微之顯이니 誠之不可揜이 如此夫인저 (中.十六)


17. 子曰 舜은 其大孝也與신저 德爲聖人이시고 尊爲天子이시며 富有四海之內하사 宗廟饗之하시며 子孫保之하시니라 故로大德은 必得其位하고 必得其祿하며 必得其名하고 必得其壽하니라 故로天之生物은 必因其材而篤焉이라 故로栽者를培之하고 傾者를覆之니라 詩曰嘉樂君子의 憲憲令德이라 宜民宜人이라 受祿于天이어늘 保佑命之하시고 自天申之라하니라 故로大德者는 必受命이니라 (中.十七)


18. 子曰 無憂者는 其惟文王乎인저 以王季爲父하시고 以武王爲子하시니 父作之하고 子述之하시니라 武王이 纘大王王季 文王之緖하사 壹戎衣而有天下하시되 身不失天下之顯名하사 尊爲天子시고 富有四海之內하사 宗廟饗之하시며 子孫保之하시니라 武王이 末受命이어시늘 周公이 成文武之德하사 追王大王王季하시고 上祀先公以天子之禮하시니라 斯禮也 達乎諸侯大夫及士庶人하니 父爲大夫요 子爲士면 葬以大夫요 祭以士하며 父爲士요 子爲大夫면 葬以士요 祭以大夫하야 期之喪은 達乎大夫하고 三年之喪은 達乎天子하니 父母之喪은 無貴賤一也니라  (中.十八)


19. 子曰 武王周公은 其達孝矣乎신저 夫孝者는 善繼人之志하며 善述人之事者也니라 春秋에 其祖廟하며 陳其宗器하며 設其裳衣하고 薦其時食하니라 宗廟之禮는 所以序昭穆也요 序爵은 所以辨貴賤也요 序事는 所以辨賢也요 旅酬에 下爲上은 所以逮賤也요 燕毛는 所以序齒也니라 踐其位하야 行其禮하고 奏其樂하며 敬其所尊하고 愛其所親하며 事死如事生하고 事亡如事存이 孝之至也니라 郊社之禮는 所以事上帝也요 宗廟之禮는 所以祀乎其先也니라 明乎郊社之禮와 禘嘗之義면 治國은 其如示諸掌乎인저  (中.十九)


20. 哀公이問政한대 子曰 文武之政이 布在方策하니 其人存則其政擧하고 其人亡則其政息이니이다 人道는敏政하고 地道는敏樹하니 夫政也者는 蒲盧也니라 故로爲政在人하니 取人以身이오 修身以道요 修道以仁이니라 仁者는人也니 親親이爲大하고 義者는宜也니 尊賢이爲大하니 親親之殺와 尊賢之等이 禮所生也니라 在下位하야 不獲乎上이면 民不可得而治矣리라 故로君子는 不可以不修身이니 思修身인댄 不可以不事親이오 思事親인댄 不可以不知人이오 思知人인댄 不可以不知天이니라 天下之達道五에 所以行之者는三이니 曰君臣也와 父子也와 夫婦也와 昆弟也와 朋友之交也 五者는天下之達也요 知仁勇三者는 天下之達德也니 所以行之者는 一也니라 或生而知之하며 或學而知之하며 或困而知之하나 及其知之하야는 一也니라 或安而行之하며 或利而行之하며 或勉强而行之하나니 及其成功하야는 一也니라 子曰 好學은近乎知하고 力行은近乎仁하고 知恥는近乎勇이니라 知斯三者則知所以修身이오 知所以修身則知所以治人이오 知所以治人則知所以治天下國家矣니라 凡爲天下國家 有九經하니 曰 修身也와 尊賢也와 親親也와 敬大臣也와 體群臣也와 子庶民也와 來百工也와 柔遠人也와 懷諸侯也니라 修身則道立하고 尊賢則不惑하고 親親則諸父昆弟不怨하고 敬大臣則不眩하고 體群臣則士之報禮重하고 子庶民則百姓勸하고 來百工則財用足하고 柔遠人則四方歸之하고 懷諸侯則天下畏之니라 齊明盛服하야 非禮不動은 所以修身也오 去讒遠色하며 賤貨而貴德은 所以勸賢也오 尊其位하고 重其祿하며 同其好惡는 所以勸親親也오 官盛任使는 所以勸大臣也오 忠信重祿은 所以勸士也오 時使薄斂은 所以勸百姓也오 日省月試하야 旣稟稱事는 所以勸百工也오 送往迎來하며 嘉善而矜不能은 所以柔遠人也오 繼絶世하고 擧廢國하며 治亂持危하고 朝聘以時하며 厚往而薄來는 所以懷諸侯也니라 凡爲天下國家 有九經하니 所以行之者는一也니라 凡事는豫則立하고 不豫則廢하니라 言前定則不跲하고 事前定則不困하고 行前定則不疚하고 道前定則不窮하니라 在下位하야 不獲乎上이면 民不可得而治矣리라 獲乎上이有道하니 不信乎朋友면 不獲乎上矣리라 信乎朋友가有道하니 不順乎親이면 不信乎朋友矣니라 順乎親이有道하니 反諸身不誠이면 不順乎親矣리라 誠身이有道하니 不明乎善이면 不誠乎身矣리라 誠者는 天之道也요 誠之者는 人之道也라 誠者는 不勉而中하며 不思而得하야 從容中道하나니 聖人也리라 誠之者는 擇善而固執之者也리라 博學之하며 審問之하며 愼思之하며 明辨之하며 篤行之니라 有弗學이언정 學之인댄 弗能을 弗措也하며 有弗問이언정 問之인댄 弗知를 弗措也하며 有弗思이언정 思之인댄 弗得을 弗措也하며 有弗辨이언정 辨之인댄 弗明을 弗措也하며 有弗行이언정 行之인댄 弗篤을 弗措也하야 人一能之어든 己百之하며 人十能之어든 己千之니라 果能此道矣면 雖愚나必明하며 雖柔나必强이니라  (中.二十)


21. 自誠明을 謂之性이오 自明誠을 謂之敎니 誠則明矣요 明則誠矣니라  (中.二一)


22. 唯天下至誠이야 爲能盡其性이니 能盡其性則能盡人之性이오 能盡人之性 則能盡物之性이오 能盡物之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이오 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니라  (中.二二)


23. 其次는 致曲이니 曲能有誠이니 誠則形하고 形則著하고 著則明하고 明則動하고 動則變하고 變則化니 唯天下至誠이야 爲能化니라     (中.二三)


24. 至誠之道는 可以前知니 國家將興에 必有禎祥하며 國家將亡에 必有妖孼하야 見乎蓍龜하며 動乎四體라 禍福將至에 善을必先知之하며 不善을必先知之하나니 故로至誠은如神이니라  (中.二四)


25. 誠者는自成也요 而道는自道也니라 誠者는 物之終始니 不誠이면 無物이라 是故로君子는 誠之爲貴니라 誠者는 非自成己而已也요 所以成物也니 成己는仁也요 成物은知也니 性之德也라 合內外之道也니 故로時措之宜也니라  (中.二五) 


26. 故로 至誠은無息이라 不息則久하고 久則徵하고 徵則悠遠하고 悠遠則博厚하고 博厚則高明하니라 博厚는 所以載物也요 高明은 所以覆物也요 悠久는 所以成物也니라 博厚는配地하고 高明은配天하고 悠久는無疆이니라 如此者는 不見而章하며 不動而變하며 無爲而成이니라 天地之道는 可一言而盡也니 其爲物이不貳라 則其生物이不測이라 天地之道는 博也厚也高也明也悠也久也니라 今夫天은 斯昭昭之多이나 及其無窮也하야는 日月星辰이繫焉하며 萬物이覆焉이니라 今夫地一撮土之多니 及其廣厚하야는 載華嶽而不重하며 振河海而不洩하며 萬物이載焉이니라 今夫山이 一卷石之多로되 及其廣大하야는 草木이生之하며 禽獸居之하며 寶藏이興焉이니라 今夫水一勺之多로되 及其不測하야는 黿鼉蛟龍魚鼈이生焉하며 貨財殖焉이니라 詩云維天之命은 於穆不已라하니 蓋曰天之所以爲天也요 於乎不顯가 文王之德之純이여하니 蓋曰文王之所以爲文也이요 純亦不已니라  (中.二六)


27. 大哉라 聖人之道여 洋洋乎發育萬物하야 峻極于天이로다 優優大哉라 禮儀三百이요 威儀三千이로다 待其人而後에行이니라 故로曰苟不至德이면 至道不凝焉이라하니라 故로君子는 尊德性而道問學이니 致廣大而盡精微하며 極高明而道中庸하며 溫故而知新하며 敦厚以崇禮니라 是故로 居上不驕하며 爲下不倍하니라 國有道에 其言이足以興이오 國無道에 其黙이足以容이니 詩曰旣明且哲하야 以保其身이라하니 其此之謂與인저  (中.二七)

                 

28. 子曰 愚而好自用하며 賤而好自專이요 生乎今之世하야 反古之道면 如此者는 災及其身者也니라 非天子면 不議禮하며 不制度하며 不考文이니라 今天下車同軌하며 書同文하며 行同倫이니라 雖有其位나 苟無其德이면 不敢作禮樂焉이니라 雖有其德이나 苟無其位면 亦不敢作禮樂焉이니라 子曰 吾說夏禮나 杞不足徵也요 吾學殷禮하니 有宋이存焉이어니와 吾學周禮호니 今用之라 吾從周호리라  (中.二八)


29. 王天下有三重焉이니 其寡過矣乎인저 上焉者는 雖善이나無徵이니 無徵이라不信이오 不信이라民弗從이니라 下焉者는 雖善이나不尊이니 不尊이라不信이요 不信이라民弗從이니라 故로君子之道는 本諸身하야 徵諸庶民하며 考諸三王而不謬하며 建諸天地而不悖하며 質諸鬼神而無疑하며 百世以俟聖人而不惑이니라 質諸鬼神而無疑는 知天也요 百世以俟聖人而不惑은 知人也니라 是故로君子는 動而世爲天下道니 行而世爲天下法하며 言而世爲天下則이라 遠之則有望이오 近之則不厭이니라 詩曰在彼無惡하며 在此無射이라 庶幾夙夜하야 以永終譽라 하니 君子未有不如此而蚤有譽於天下者也니라  (中.二九)

 

30. 仲尼는 祖述堯舜하시고 憲章文武하시며 上律天時하시고 下襲水土하시니라 辟如天地之無不持載하며 無不覆幬하니라 辟如四時之錯行하며 如日月之代明이니라 萬物竝育而不相害하며 道竝行而不相悖라 小德은川流요 大德은敦化니 此天地之所以爲大也니라  (中.三十)


31. 唯天下至聖이야 爲能聰明睿知로 足以有臨也니 寬裕溫柔 足以有容也요- 發强剛毅 足以有執也며 齊莊中正이 足以有敬也며 文理密察이 足以有別也니라 溥博淵泉하야 而時出之니라 溥博은如天하고 淵泉은如淵이라 見而民莫不敬하며 言而民莫不信하며 行而民莫不說이니라 是以로聲名이 洋溢乎中國하야 施及蠻貊하야 舟車所至와 人力所通과 天之所覆와 地之所載와 日月所照와 霜露所隊의 凡有血氣者 莫不尊親하니 故로曰配天이니라  (中.三一)


32. 唯天下至誠이야 爲能經綸天下之大經하며 立天下之大本하며 知天地之化育이니 夫焉有所倚리오 肫肫其仁이며 淵淵其淵이며 浩浩其天이니라 苟不固聰明聖知達天德者면 其孰能知之리오  (中.三二)


33. 詩曰衣錦尙絅이라하니 惡其文之著也니라 故로君子之道는 闇然而日章하고 小人之道는 的然而日亡하나니 君子之道는 淡而不厭하며 簡而文하며 溫而理니 知遠之近하며 知風之自하며 知微之顯이면 可與入德矣리라 詩云潛雖伏矣나 亦孔之昭라 故로君子는 內省不疚하야 無惡於志니 君子之所不可及者는 其唯人之所不見乎인저 詩云相在雨室혼대 尙不愧于屋漏라하니 故로君子는 不動而敬하며 不言而信이니라 詩曰奏假無言하야 時靡有爭이라하니 是故로君子는 不賞而民勸하며 不怒而民威於鈇鉞이니라 詩曰不顯惟德을 百辟其刑之라하니 是故로君子는 篤恭而天下平이니라 詩云予懷明德의 不大聲以色이라하야늘 子曰 聲色之於以化民에 末也라하시니라 詩云德輶如毛라하니 毛猶有倫이어니와 上天之載 無聲無臭아至矣니라  (中.三三)  

 

 

중국 유교 경전의 하나. 공자(孔子)의 손자인 자사(子思)의 저작이라 알려졌다. 오늘날 전해지는 것은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기(禮記)》에 있는 <중용편(中庸篇)> 이 송(宋)나라 때 단행본이 된 것으로, 《대학(大學)》 《논어(論語)》 《맹자(孟子)》와 함께 사서(四書)로 불리고 있으며, 송학(宋學)의 중요한 교재가 되었다. 여기서 ‘中’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 ‘庸’이란 평상(平常)을 뜻한다. 인간의 본성은 천부적(天賦的)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 본성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본성을 좇아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도(道)이며, 도를 닦기 위해서는 궁리(窮理)가 필요하다. 이 궁리를 교(敎)라고 한다. 《중용》은 요컨대 이 궁리를 연구한 책이다. 즉 인간의 본성은 한마디로 말해서 성(誠)일진대, 사람은 어떻게 하여 이 성으로 돌아가는가를 규명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 주자(朱子)는 《중용장구(中庸章句)》라고 하는 주석서(注釋書)를 지었는데, 여기서 주자는 자사가 도학(道學)의 전통을 위해 《중용》을 썼다고 말하였다.

(四書栗谷諺解)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이이(李珥)가 선조의 명을 받아 사서(四書)를 한글로 번역한 책. 활자본. 13권 13책. 장서각도서. 1574년(선조 7)에 유희춘(柳希春)이 왕명으로 사서오경(四書五經)의 구결(口訣) 언해(諺解)를 상정(詳定)하려 하다가 76년에 상소(上疏)하여 이 일을 당시 홍문관 부제학 이이에게 상정케 하였다. 이이는 이 일을 맡아 사서언해(四書諺解)만을 상정하고, 오경에는 손을 대지 못하여 인행(印行)을 못하고 전사(傳寫)만이 후세에 전하다가 1749년(영조 25)에 홍계희(洪啓禧)가 필사본을 입수하여 교서관(校書館)에서 간행하였다. 그 후 1973년 성균관대학과, 84년 홍문각(弘文閣)에서 영인하였다. 총 13권 13책 중 대학율곡언해(大學栗谷諺解)가 1권 1책, 중용율곡언해(中庸栗谷諺解) 1권 1책, 논어율곡언해(論語栗谷諺解) 4권 4책, 맹자율곡언해(孟子栗谷諺解) 7권 7책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한문으로 된 본문 뒤에 각각 언해를 붙이고, 한자에는 모두 그 음(音)을 달았다.

(中庸講義)

1781~94년에 걸쳐 규장각의 초계문신(抄啓文臣)에게 내린 정조의 조문(條問)과 이에 대한 문신의 답변. 전6권. 1785년에 서형수(徐瀅修)와 91년에 서유구(徐有")가 정리하였으며, 현재 《홍재전서》에 4권이 실려있다. 정조의 조문은 전후 4차례에 걸쳐 1781, 83, 84, 94년에 선발된 초계문신에게 내려졌고 이는 각각 1권, 1권, 2권, 2권으로 정리되었다. 《홍재전서》에는 84년의 2권이 누락되었는데, 이는 84년의 《중용강의》에 참가한 이서구(李書九)의 《척재집(齋集)》 권16에 실린 <중용강의>로 보충할 수 있다. 정조는 조문에서 《중용》의 내력, 《중용》의 독법과 장구 해석의 원칙, 허령(虛靈), 지각(知覺)과 인심(人心), 도심(道心)의 해석 등 《중용》 해석상의 각종 의문점을 제시하였고, 근거 자료로 중국과 조선 학자의 학설을 광범위하게 인용하였다. 따라서 초계문신 역시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정조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였는데, 조문의 전문을 기록한 다음에 가장 우수한 초계문신의 답변을 요약 정리하였다. 정조의 《중용강의》에 참여한 학자로는 김재찬(金載瓚)·윤행임(尹行恁)·서형수·신현(申絢)·홍석주(洪奭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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