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사절(死節)의 진실

【번역문】
임진년의 변고에 도성이 함락되자 포로가 된 부녀가 헤아릴 수 없었다. 때로 혹 절개를 지키다 죽은 부녀에 대해서 난이 평정된 후 조정에 계문(啓聞)하여 정려(旌閭)하였다. 그런데 금년에 포로가 된 자는 그 진위를 알 수 없었던 까닭에 절개를 지키다 죽었다고 칭탁하여 정표가 내려지기도 하였으므로 외람되게 몰래 정려되는 것이 이처럼 심하였으니 어찌 그 진위를 분명히 알겠는가? 갑진년(선조37, 1604년)에 송운(松雲, 惟政(1544~1610)의 호)이 사신으로 일본에 갔었는데, 사절자라 하여 일본에 있으면서 본가에 서신을 전하려는 자가 역시 많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송운은 그 서신을 본가에 전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지친들이 포로가 되었다고 이름나는 것을 꺼리면서도 거짓으로 절개를 위해 죽었다고 하기 위함으로, 그 서신을 보고자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방방곡곡 정려된 자 중에는 혹 허위가 있다는 말이 있다.

【출전】寒皐觀外史v39 效顰雜記上


【원문】
壬辰之變都城䧟沒婦女被虜者不可紀極時或有
死節者事定之後啓聞㫌閭而當年被虜者人不

知真僞故托以死節亦至㫌表也竊吹濫巾甚矣
[주] 僧 惟政松雲 一号泗溟 西山 大師 休靜 髙足也
何以明其然耶甲辰 松雲 使日本所謂死節者在
日本寄書本家者亦多而 松雲 不敢傳爲本家至
親忌被擄之名冐死節之名而不欲觀其書也則
坊坊曲曲大其門丹其漆者亦或有虛僞辭

기담을 측정하는 춘직으로 달성위가 선왕에게 고한 이야기를 얘기하다.



【번역문】
안상사(安上舍) 아무개는 순흥(順興) 사람이다. 이웃에 나이 어리고 예쁜 눈을 가진 여자 무당이 살았는데 취하려 하였으나 응하지 않았고 간통하려 하였으나 방법이 없었다. 어느 날 저녁에는 마음에 병이 났다고 거짓을 부려 마치 아픈 것처럼 꾸며 자기 아내에게 말했다.
"증세(證勢)가 위중하니 여자 무당을 청해 와 잔식법(盞食法)을 해보아야 할 듯 하오."
그의 아내는 이 말을 믿고 무당을 불렀다. 무당이 도착하여 그의 옆에 앉아 가슴을 안마하며 장차 잔식(盞食)을 시도하려 하자 안상사가 손으로 가만히 아래치마를 끌어당겼다. 그러자 무당이 말했다.
"빨리 놓아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무당이 그 후 두세 번 더 말하자 그의 아내는 귀신이 놓아주지 않아 지금 마음의 병이 났다고 여기고 기도하며 말했다.
"원하옵나이다. 놓아주십시오. 놓아주십시오."
그래도 안상사는 더욱 세게 치마를 붙들었다. 그러자 무당은 빠져나갈 수 없고 또 그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없음을 알고선 그의 아내에게 거짓으로 말했다.
"적소두(赤小荳) 한 되, 명미(命米) 몇 되, 명포(命布) 몇 자를 가져오십시오."
무당은 그의 아내가 가져오는 즉시 작은 쟁반에 담아 병자의 몸 옆에 두고 거짓으로 기도하는 척 했다. 그 후 그의 아내에게 도로 주며 말했다.
"이 쟁반을 가지고 동쪽으로 50보를 가서 쟁반을 받들고 삼칠배(三七拜)를 하여 귀신을 보내야 합니다."
그의 아내는 쟁반을 받들고 대문을 나갔다. 그 이후의 일은 안상사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 전하지 않는다. 그는 무당이 떠나자 다시 살아났다. 그의 아내는 끝내 그 상황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무당에게 후한 대접을 하여 보냈다.
선왕께서는 병오년(丙午年, 1546년)부터 낮에 기분이 좋지 않아 반드시 밤에 잠을 잘 때 피곤해 했다. 이 때 달성위(達城尉)가 시좌(侍坐)하고 있었는데 그는 일찍이 영남에서 안상사의 일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가 대궐에서 이 일을 선왕께 진달하자 선왕께서는 크게 웃으시고 조금 지나 밤새도록 잠을 주무시지 못하셨다. 그 후 사람들은 이 일을 기담(奇談)을 측정하는 준칙(準勅)으로 삼게 되었다.

【출전】寒皐觀外史v40 效顰雜記下

【원문】
安上舍某 順興 人也隣有女巫年少而美目挑不應
欲奸無計一夕佯爲心痛如不可堪言于厥配曰
證勢危重請女巫來行盞食法可也配信其言召
巫巫至坐其側摩其胸將試盞食安潛以手掣其
裙底巫曰宜速赦之不爾當有不好事也再三言
 

[주]丙午二字恐當作丙寅
[주] 建城尉姓徐名景霌字 子順 号松崗尙 宣祖 第一女貞 翁主
之厥配以爲鬼神不赦致今心痛也又手祝曰願
赦之赦之安操之益急巫知不可免且心不能無
動誑厥配曰拿赤小荳一升命米數升命布數尺
來即盛于小盤置于病者身上佯爲祈禱之狀還
授厥配曰將此盤東去五十步奠此盤三七拜而
送之可也配奉盤出門爾後之事安秘而不傳巫
去乃爲甦醒之㨾配終始不悟待巫加厚先王自
丙午不豫晝必昏睡睡則苶然時 達城 尉侍坐曽
聞此事於南中陳達于宸廳先王大笑移時不眠
竟夕人以此爲凖勅奇談也

김상헌이 집에 머물 때에 근신했던 행적

【번역문】
선왕고(김상헌을 말함)께서 집에 계실 적에는 인물의 선악과 조정의 득실에 대해서 일찍이 가벼이 논하지 않으셨다. 혹은 시사(時事) 가운데 우려할만한 것을 들었을 때, 개연히 탄식을 하셨고, 간혹 사람들과 대화에서 말이 미쳤을 뿐이었다.
판전(判銓)에 재임 중이셨을 때 문정(門庭)은 깨끗하여 자리에는 잡스러운 빈객이 없었으며 연소자제들이 옆에서 모실 적에 감히 한가로운 잡담을 하지 못했다. 의견을 말할 때 비록 합설(合說), 저화(底話)에 관계되어도 감히 동년배들과 함께 서로 말을 주고받지 못했다. 정령(政令)의 옳고 그름에 이르러서는 더욱더 감히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했고, 단지 일이 있으면 아뢰고 질문이 있으면 대답하실 뿐이었다.
지금에는 입에서 오히려 우유 냄새가 나는 아이들이 부형의 앞에서 조정을 논하고 인물을 포폄하는데 돌아보고 거리낌이 없다. … (중략) … 자제들의 행동이 전연 수신하여 경계함이 없고, 경사(經史)의 책들은 강습하지 않으면서 단지 관보(官報)만을 구해 보고서 망령되이 시사를 말하는데 팔을 걷어붙이고 큰 소리로 말하며 떠들썩하게 다투니 풍습의 어그러짐이 한결같이 여기에 이르렀다. 후생배들은 절실하게 경계함이 마땅하다.

【출전】寒皐觀外史v39 谷雲雜錄


【원문】
先王考居家人物臧否朝廷得失未甞輕議或問時
事之可憂者慨然發歎或對人言及而已判銓時
門庭閴然㘴無雜賔年少子弟侍側不敢以閒雜


之言妄有所陳說雖係合說底話亦不敢與同軰
私相酬酌至於政令是非尤不敢發諸口只有事
則禀有問則對而已今之世口尙乳臭之兒在父
兄前則論說朝政褒貶人物畧無顧忌凢其無限
做底事置之度外子弟之行全不修飭經史之書
畧不講習只求見邸報妄談時事攘臂大言紛挐
喧囂風 習之 乖一至於此後生軰㔹冝戒之

기지로 한꺼번에 세 가지를 얻은 우씨 포수

【번역문】
산양현(山陽縣) 북리곡촌(北梨谷村)에 우성(禹姓)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이름은 모(某)이다. 그는 사냥을 일로 하는데, 나가서 쓰러뜨리지 않음이 없다. 하루는 산에 들어가 암돼지를 보고서 따라가는데 우연히 한 계곡에서 커다란 호랑이와 마주하였다. 그 호랑이는 돼지를 때려눕히고 고기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때 작은 표범이 호랑이 살피다가 바람을 맞으며 서서히 움직였다. 그리고 서로 거리가 가까워지자 갑자기 돌입하여 호랑이의 목을 물으니 호랑이가 마침내 기절하였다. 우(禹)가 유엽전으로 그 표범을 맞혀 죽이니 일거에 셋을 얻으니 변장자(卞莊子)의 공보다 낫다. 아! 호랑이는 표범의 적수가 되지 못함이 분명하다. 그러나 호랑이는 스스로 그 용맹함에 의지하여 돼지를 먹고 있다가 표범이 갑자기 나타나므로 마땅히 죽음을 면할 수 없었다. 이는 사마귀와 황작(黃雀)의 일과 같은 것이다.

【출전】寒皐觀外史v39 效顰雜記上

원문】
山陽縣北棃谷村中有禹姓人名某射獵爲事發無
不殪一日入山擬得豝豵偶抵一谷有大乕摶豬
食肉方甘小豹窺虎 林緩行遡風而進相去稍
近突入噬頸虎氣垂絶禹以柳葉箭射之殺其豹
一舉得三勝於卞莊子之功矣噫虎豹不敵明矣
而虎自恃其猛耽於食豬不覺玄豹之猝至其不
免也冝㢤此與螳蜋黃雀之事正相似

계집종의 지혜

【번역문】
서울에 호걸스러운 선비가 있었는데, 일생을 색(色)을 좋아하여 당시에 삼물론(三勿論)이라 불렸다. 향촌에 살던 계집종이 있었는데, 하루는 다루가치[達魯花赤]를 따라 왔다가 며칠도 지나지 않아 주인과 사통하였다. 주인의 부인이 크게 노하여 계집종을 불러 장차 죄를 주려 하니, 계집종이 말하기를,
"한마디만 하고 죽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주인의 부인이 말하기를,
"너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저는 나이 이제 15살로 처음으로 신공(身貢)하게 되었으나, 집에는 저축해 놓은 것이 없어 여러 이웃에게 빌렸습니다. 내년에도 또한 신공을 감당하려면 논과 밭을 전매하여 그 수를 맞추어야 합니다. 올해 서울에 올라올 때 어미와 더불어 통곡하고 지아비와 헤어졌습니다. 모녀의 정이 있었지만 그 사랑을 오히려 베어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신공을 갖추었던 것은 오직 주인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하물며 저의 옥문십수(玉門十手)는 주인의 고유함을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공(上供)을 독촉하여 명령하니 둘을 모두 받들 수가 없어서 그래서 저 자신이 몸소 임한 것입니다. 계집종이 비록 천한 몸이지만 감히 그 명령을 거역하겠습니까? 전하여 말하기를, 선비는 각각 그 주인을 섬기며 관직을 지내는데, 신하에게 임금이나 계집종에게 주인은 모두 한 가지 모양입니다."
라고 하였다. 주인의 부인이 화를 거두면서 말하기를,
"계집종의 말이 맞다. 죄는 늙은 놈에게 있다."
고 하며 마침내 그녀를 용서하였다. … (중략) … 계집종이 잘 변통하여 말해서 주인 부인의 노여움을 풀었고, 주인 부인은 그 정상이 용서할 만하여 벌하지 않았다. 마음이 넓고 도량이 큰 것이 마치 한나라 고조(高祖)와 같다.

【출전】寒皐觀外史v39 效顰雜記上


【원문】
洛有豪 士一 生好色時稱三勿論也有婢在郷一日
随達魯花赤而来未數日又私之主婦大怒呼婢
将罪之婢曰願一言而死主婦曰爾欲何言對曰
婦年纔十五爲新貢家無所儲貸諸隣里明年又
将實貢而典賣䵚田以凖其數今年上来與母相
慟哭而别夫以母女之情而猶割其愛不連朝夕
 
而猶備其貢惟主命是從矣况女有玉門十手所
指主翁明知其固有而督令上供以二無之尊而
身親臨之婢是賤身敢拒其命傳曰士各爲其主
用職耳臣之於君婢之於主職是一㨾也主婦霽
怒曰婢也之辭直而有理罪在老奴矣遂赦之噫
婢乃欒布蔽 通之 類也其辦足以觧主婦之怒而
主婦能恕其情不之罪也其恢廓大度亦可謂同
於漢髙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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