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石問)
가정집(稼亭集) > 가정집 제1권 > 잡저(雜著)
객이 묻기를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하였다.
그러자 객이 말하기를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하였다.
이에 객이 말하기를
하였는데, 내가 그만한 능력이 없다고 사양하니, 객이 이내 붓을 잡고는 다음과 같이 시를 지었다.
하늘과 땅의 정기여 / 堪輿精氣
이 견정(堅貞)한 물질을 내어 / 生此貞質
효용이 끝없게 하였도다 / 功用不旣
기이하도다 그 문채 그 결이여 / 文奇理異
선명하도다 가로 세로 그 무늬여 / 煥其經緯
모나게 쪼개지고 둥글게 나뉘어서 / 方裂圓分
귀천을 막론하고 은혜를 베풀도다 / 施之賤貴
삼재에 하나 더해 사재로 할 만하니 / 可四三才
이 물건은 어떤 일에도 관련이 있음이로다 / 可該衆彙
우가 바위를 뚫자 용으로 날아올랐고 / 禹鑿龍飛
진이 바위를 몰자 사슴이 죽고 말았도다 / 秦驅鹿死
비석에 새겨 공적을 기념하고 / 碑以紀功
토석을 쌓아 이정표를 세우도다 / 堠以表里
우묵하게 파서 절구통도 만들고 / 窊而爲臼
판판하게 갈아서 숫돌로도 쓰는도다 / 磨而爲砥
석경(石鏡)은 가인의 생활 필수품이요 / 鏡徇佳人
석정(石鼎)은 도사의 여행 도구로다 / 鼎隨道士
회지는 돌로 조를 잘도 제작했고 / 懷智作槽
숙신은 돌로 화살촉을 만들었도다 / 肅愼作矢
석연(石燕)은 비를 몰아오는데 / 燕能致雨
석서(石犀)는 수해를 물리치도다 / 犀能却水
살에 침을 놓을 때는 석망(石芒)이 있고 / 砭肌有芒
얼굴을 젊게 하려면 석수(石髓)가 있도다 / 駐顔有髓
초나라 석호(石虎)는 깃털까지 푹 박히고 / 楚虎飮羽
진나라 석우(石牛)는 발꿈치를 들었도다 / 秦牛擧趾
새는 돌을 입에 물고 어디로 가시는고 / 鳥㘅曷歸
석양(石羊)은 엎드려 있다가 일어났도다 / 羊伏且起
낭군을 기다리다 못해 돌이 되기도 하고 / 或望夫還
어떤 이는 돌을 형님으로까지 모셨도다 / 或作兄事
영척의 노래에서는 / 寗戚之歌
돌을 언급해 뜻을 전하였고 / 載言厥志
남산의 시에서는 / 南山之詩
바위를 말해 아름다움을 드러내었도다 / 式著其美
금은 따라서 변하는 것이 부끄럽고 / 金慚從革
옥은 시장 상인의 거래가 부끄럽도다 / 玉愧貿市
환퇴(桓魋)의 석곽(石槨)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 魋槨不成
요 임금의 흙섬돌엔 돌이 버림을 받았도다 / 堯階見棄
생각하면 신묘한 이 물건도 / 惟此神物
때에 따라 쓰임이 다르도다 / 用隨時異
내버려두면 돌덩어리에 불과하지만 / 抛之頑璞
갈고 닦으면 보배로 변신하도다 / 琢則寶器
송나라 사람은 깊숙이 감추었고 / 宋人深藏
초나라 왕은 늦게야 다듬었도다 / 楚王晩剖
지금은 묘당의 초석(礎石)인 것이 / 今礎廟堂
예전에는 왕부의 관석(關石)이었도다 / 昔關王府
하지만 실체야 변하는 일이 있으리오 / 體豈有渝
작용 역시 조금 도울 뿐이 아니로다 / 用非小補
그대의 공덕을 노래하노라니 / 頌爾功德
나의 폐부가 또 격동되는도다 / 激我肺腑
요컨대는 유능한 사관에게 부탁해서 / 要畀良史
만고에 길이 전해지게 함이로다 / 流光萬古
객이 송(頌)을 짓고 떠난 뒤에 내가 물러 나와 그 내용을 살펴보고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이치가 그 속에 있지 않음이 없음을 바로 인지하였다. 아, 자방(子房)이 경외한 것은 속임수가 섞인 괴담에 가깝다고 한다면, 승유(僧孺)가 품평한 것은 장난기가 섞인 해학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그 밖에 돌에 관한 제가(諸家)의 설들이 있지만, 모조리 거론하여 일일이 소개할 수 없기에 우선 객이 읊은 송으로 이 편을 장식할까 한다.
영축(盈縮)ㆍ대사(代謝) : 진퇴(進退)ㆍ굴신(屈伸)ㆍ다소(多少)ㆍ장단(長短)ㆍ수요(壽夭)ㆍ영허(盈虛) 등 온갖 변화하는 현상이 주기적으로 번갈아 새롭게 교대하는 것을 말한다.
영고(榮枯)ㆍ계칩(啓蟄) : 초목이 무성하여 꽃 피고 열매를 맺었다가 다시 마르고 시드는 것처럼 모든 존재가 성하고 쇠하는 현상이 마치 겨울철에 땅속에서 칩거했다가 봄에 다시 나와 활동하듯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한 경제(漢景帝)의 이름이 계(啓)이기 때문에 이를 피해서 후대에 계칩을 경칩(驚蟄)으로 바꿔 불렀다.
양의(兩儀) : 보통은 음양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천지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성인(聖人) : 여기서는 공자와 같은 성인이 아니라 신성한 능력을 소유한 초인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반고(盤古) : 천지가 개벽할 당시에 맨 먼저 나와서 세상을 다스렸다는 중국 신화 속의 인물로, 최초의 인간인 동시에 세상을 창조하는 조물주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하는데, 일명 혼돈씨(混沌氏)라고도 한다. 반고가 죽을 때에 숨기운은 풍운이 되고, 목소리는 뇌정(雷霆)이 되고, 좌우의 눈은 각각 해와 달이 되고, 사지와 오체는 각각 사극(四極)과 오악(五嶽)이 되고, 근맥(筋脈)은 지리(地理)가 되고, 기육(肌肉)은 전토(田土)가 되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성신(星辰)이 되고, 피모(皮毛)는 초목이 되고, 치골(齒骨)은 금석이 되고, 정수(精髓)는 주옥이 되고, 땀은 우택(雨澤)이 되었다는 기록이 《오운역년기(五運曆年記)》에 나온다.
산의 뼈〔山骨〕 : 바윗돌을 가리킨다. 참고로 한유(韓愈)의 석정(石鼎)이라는 연구(聯句) 시 첫머리에 “솜씨 좋은 장인(匠人)이 산의 뼈를 깎아다가, 그 속을 파내고서 음식을 끓일 그릇을 만들었다네.〔巧匠斲山骨 刳中事煎烹〕”라는 표현이 나온다.
공공(共工)이 …… 되었으니 : 공공씨(共工氏)가 전욱(顓頊)과 싸우다가 성이 나서 부주산(不周山)을 머리로 치받자 하늘 기둥이 부러지면서 하늘은 서북쪽으로 기울고 땅은 동남쪽으로 꺼졌다. 이에 여와씨(女媧氏)가 자라의 다리를 잘라서 땅의 사방 기둥을 받쳐 세우고, 오색의 돌을 구워서 터진 하늘을 메웠다는 전설이 있다. 전욱은 황제(黃帝)의 손자이다. 황제와 싸웠다고 한 것은 가정의 착오이다. 《淮南子 覽冥訓》《列子 湯問》
우순(虞舜)이 …… 하였고 : “순 임금이 창작한 음악인 소소를 연주하자, 봉황이 듣고 찾아와서 춤을 추었다.〔簫韶九成 鳳凰來儀〕”라는 내용이 《서경》 익직(益稷)에 나온다. 그리고 8종의 악기인 금(金)ㆍ석(石)ㆍ사(絲)ㆍ죽(竹)ㆍ포(匏)ㆍ토(土)ㆍ혁(革)ㆍ목(木)을 팔음(八音)이라고 하는데, 석이 사 등의 앞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주 선왕(周宣王)이 …… 주었으니 : 석고(石鼓)는 북 모양으로 된 10개의 석조 유품으로, 돌 표면에 진대(秦代)의 전자(篆字)에 가까운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중국 최고(最古)의 금석문으로 꼽힌다. 한유는 주 선왕 때의 작품이라고 하고, 위응물(韋應物)은 주 문왕(周文王) 때의 작품이라고 하는 등 이설이 많으나, 주 선왕이 사냥한 내용을 사주(史籒)가 송(頌)으로 지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원래 섬서성(陝西省) 부풍현(扶風縣) 서북쪽에 있던 것을 당나라 때 봉상부(鳳翔府) 공자묘(孔子廟)로 옮겨 왔다가 다시 북경(北京)의 국자감(國子監)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옛날에 …… 못했고 : 승당(升堂)ㆍ입실(入室)은커녕 집 근처인 담장〔藩〕이나 문간〔閾〕에도 이르지 못했다는 뜻으로, 돌에 대해서 피상적으로만 언급했을 뿐 수준 높은 경지는 보여 주지 못했다는 말이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에 “시를 짓는 솜씨야 근처에도 못 갔지만, 울적한 심정을 풀려면 그래도 노름보다야 낫지 않소.〔作詩雖未造藩閾 破悶豈不賢樗蒲〕”라는 표현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7 李杞寺丞見和前篇復用元韻答之 再和》
위대하고 지극하다 : 각각 하늘과 땅을 찬양한 말이다. 《주역》 건괘(乾卦) 단(彖)이 “대재 건원(大哉乾元)”으로 시작하고, 곤괘(坤卦) 단(彖)이 “지재 곤원(至哉坤元)”으로 시작하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모나게 …… 나뉘어서 : 당나라 정유충(鄭惟忠)의 고석부(古石賦)에 “둥글게 나뉘는 것은 우박처럼 흩어지고, 모나게 찢어지는 것은 얼음처럼 갈라진다.〔圓分者雹散 方裂者冰開〕”라는 표현이 나온다. 《文苑英華 卷31 地類7》
우(禹)가 …… 날아올랐고 : 하우(夏禹)가 치산치수(治山治水)를 잘해서 순(舜)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는 말이다. 우가 홍수의 물길을 강하로 유도할 적에 “용문의 바위를 뚫고 이궐의 길을 열었다.〔鑿龍門 辟伊闕〕”라는 말이 《회남자(淮南子)》 수무훈(修務訓)에 나온다. 또 《주역》 건괘 구오(九五)에 “용이 날아올라 하늘에 있다.〔飛龍在天〕”라는 말이 있는데, 보통 임금의 즉위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진(秦)이 …… 말았도다 : 진나라가 학정으로 천하를 잃었다는 말이다. 진 시황이 돌다리〔石橋〕를 놓아 바다를 건너가서 해가 뜨는 곳을 보려고 하자, 신인(神人)이 바위를 바다로 몰고 가면서 채찍질을 하니 바윗돌이 모두 피를 흘리며 붉게 변했다는 전설이 진(晉) 복심(伏深)의 《삼제약기(三齊略記)》에 나온다. 사슴은 천하를 뜻한다. 제나라 변사 괴통(蒯通)이 한 고조(漢高祖)에게 유세하면서 “진나라가 사슴을 잃자 천하가 모두 그 뒤를 쫓고 있다.〔秦失其鹿 天下共逐之〕”라는 말로 군웅이 할거하여 천하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는 것을 비유한 고사가 있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회지(懷智)는 …… 제작했고 : “당 개원(開元) 연간에 악공 하회지(賀懷智)가 비파를 잘 연주하였는데, 돌로 조(槽)를 만들고 곤계(鵾雞)의 힘줄로 현(絃)을 만들어 쇠로 퉁겼기 때문에, 소식(蘇軾)의 시에 ‘곤계의 현줄을 철로 퉁기는 솜씨여, 세상에 다시 볼 수 없도다.〔鵾絃鐵撥世無有〕’라는 표현이 있게 된 것이다.”라는 말이 《산당사고(山堂肆考)》 권162 계근작현(雞筋作絃)에 나온다. 조(槽)는 현악기 위에 현을 올려놓는 움푹 파인 격자(格子)를 말하는데, 단목(檀木)으로 만들면 단조(檀槽)라고 하고, 옥석(玉石)으로 만들면 석조(石槽)라고 한다.
숙신(肅愼)은 …… 만들었도다 : 주나라 무왕(武王)과 성왕(成王) 때에 숙신씨(肅愼氏)가 와서 호시(楛矢)와 석노(石砮)를 공물로 바쳤는데, 그 길이가 1척(尺)이 넘었다는 기록이 《국어(國語)》 노어 하(魯語下)에 보인다.
석연(石燕)은 비를 몰아오는데 : 상주(湘州) 영릉산(零陵山)에 제비처럼 생긴 돌들이 있는데, 풍우가 몰아치면 크고 작은 돌들이 진짜로 제비 모자(母子)처럼 날아다니다가 풍우가 그치면 다시 돌로 환원한다는 전설이 북위(北魏) 역도원(酈道元)의 《수경주(水經注)》 상수(湘水)에 나온다.
석서(石犀)는 수해를 물리치도다 : 바위에 물소의 형태를 조각해서 둑 위에 세우면 수괴(水怪)를 진압한다는 전설이 있다. 진(晉)나라 상거(常璩)의 《화양국지(華陽國志)》 촉지(蜀志)에 진 효문왕(秦孝文王) 때 이빙(李冰)이 촉군 태수(蜀郡太守)로 부임하여 석서 다섯 마리를 세워서 수정(水精)을 진압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석수(石髓) : 석종유(石鐘乳)라고도 하는데, 복용하면 신선이 되어 장생불로한다는 도가의 전설이 있다.
초나라 …… 박히고 : 초나라 웅거자(熊渠子)가 밤에 길을 가다가 바위를 범으로 오인하고는 활을 쏘았는데 바위에 워낙 깊이 박혀서 화살 끝의 깃털이 보이지 않을 정도〔飮羽〕였다는 일화가 《한시외전》 권6 24장에 보인다.
진(秦)나라 …… 들었도다 : 돌로 만든 소가 길을 인도했다는 ‘석우개도(石牛開道)’의 고사를 가리킨다. 진 혜왕(秦惠王)이 촉(蜀)을 정벌하려고 했으나 길을 알지 못하자, 다섯 마리의 석우를 만들어 꽁무니에 황금을 묻힌 다음 황금 똥을 누는 소라고 속였다. 이에 촉왕이 오정역사(五丁力士)를 시켜서 끌고 오게 하자, 진나라 군대가 그 뒤를 따라와 촉을 멸망시켰으므로 그 길을 석우도(石牛道)라고 불렀다 한다. 《華陽國志 蜀志》
새는 …… 가시는고 : 염제(炎帝)의 막내딸인 여와(女娃)가 동해에 빠져 죽은 뒤에 정위(精衛)라는 작은 새가 되어 항상 서산(西山)의 나무와 돌을 입에 물고 동해를 메우려고 한다는 전설이 남조(南朝) 양(梁) 임방(任昉)의 《술이기(述異記)》 상권에 보인다.
석양(石羊)은 …… 일어났도다 : 황초평(黃初平)이 15세에 양을 치다가 신선술을 닦으러 도사를 따라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 속에서 수도하였다. 40년 뒤에 형이 찾아와서 양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황초평이 형과 함께 그곳에 가서 백석(白石)을 향해 “양들아, 일어나라!〔羊起〕”라고 소리치니, 그 돌들이 수만 마리의 양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진(晉)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 황초평전(黃初平傳)에 나온다.
낭군(郞君)을 …… 하고 : 각지에 두루 퍼져 있는 망부석(望夫石)의 전설을 말한 것이다.
어떤 …… 모셨도다 : 송나라 서화가(書畫家)인 미불(米芾)이 기암괴석을 좋아하였는데, 언젠가 보기 드문 기이한 돌을 대하고는 뜰 아래로 내려와서 절을 하며 “내가 석 형님을 보기를 소원한 지가 20년이나 되었소.〔吾欲見石兄二十年矣〕”라고 했다는 일화가 송나라 비연(費兗)이 지은 《양계만지(梁溪漫志)》 미원장배석(米元章拜石)에 나온다. 원장은 미불의 자(字)이다.
영척(寗戚)의 …… 전하였고 : 춘추 시대 위(衛)나라 영척이 제나라에 가서 빈궁하게 지내며 소에게 꼴을 먹이다가 제 환공(齊桓公)을 만나 쇠뿔〔牛角〕을 치며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를 부르자, 환공이 그를 비범하게 여겨 수레에 태우고 와서 객경(客卿)에 임명한 고사가 있는데, ‘반우가(飯牛歌)’라고 불리는 그 노래 중에 “남쪽 산은 말쑥하고, 하얀 돌은 번쩍이는데, 요순이 선양하는 것을 살면서 보지 못하였다.〔南山矸 白石爛 生不遭堯與舜禪〕”라고 하여 돌을 소재로 한 가사가 있다. 《淮南子 道應訓》
남산(南山)의 …… 드러내었도다 : 《시경》 소아(小雅) 절남산(節南山)에 “우뚝 솟은 저 남산이여, 바윗돌이 겹겹이 쌓여 있도다. 빛나고 빛나는 태사(太師) 윤씨(尹氏)여, 백성들이 모두 그대를 바라보도다.〔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라는 말이 있다.
금은 …… 부끄럽고 : 《서경》 홍범(洪範)에 “금은 따라서 바뀌는 것이다.〔金曰從革〕”라는 말이 나오는데, 쇠는 돌과 달리 사람의 용도에 따라서 변할 가능성이 많다는 말이다. 또 《주역》 택화 혁괘(澤火革卦) 상육(上六)에 “백성은 임금을 따라 드러난 악행을 고친다.〔小人革面〕”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에 대해서 “불은 물건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금은 변화에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택을 뜻하는 태는 금에 해당하니, 불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다.〔火革物者也 金從革者也 兌金也 從火而革者也〕”라고 해설하기도 한다.
옥은 …… 부끄럽도다 : 귀중한 옥이 다른 일반 상품과 함께 시장에서 상인들의 흥정에 의해 아무렇게나 취급되는 것이 부끄럽다는 말이다. 아름다운 옥이 있을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자공(子貢)의 질문을 받고 공자가 “나는 그 옥의 진가를 알고서 사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我待賈者也〕”라고 대답한 말이 《논어》 자한(子罕)에 나온다.
환퇴(桓魋)의 …… 않았고 : 공자가 송나라에 있을 적에 환퇴가 자기의 석곽(石槨)을 만드는 데 3년이 되도록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이처럼 사치스럽게 만들려고 할진댄 차라리 죽으면 속히 썩게 하는 것이 더 좋겠다.〔若是其靡也 死不如速朽之愈也〕”라고 말한 내용이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나온다.
요 임금의 …… 받았도다 : “요 임금은 천자가 되고 나서도 비단옷을 겹으로 입지 않았고 밥상에는 두 가지의 맛있는 반찬을 놓지 않았으며, 석 자 높이의 섬돌은 흙으로 만들었고 지붕의 띠풀도 가지런히 자르지 않았다.〔堯爲天子 衣不重帛 食不兼味 土階三尺 茅茨不剪〕”라는 말이 《태평어람(太平御覽)》 권696에 윤문자(尹文子)의 말로 인용되어 나온다.
송나라 …… 감추었고 : 송나라의 어리석은 사람이 옥돌과 비슷하면서도 보통의 돌멩이에 불과한 연석(燕石)을 보옥인 줄 알고 주황색 수건으로 열 겹이나 싸서 깊이 보관하며 애지중지하다가 주(周)나라의 어떤 나그네에게 비웃음을 당한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48 應劭列傳 註》
초나라 …… 다듬었도다 : 춘추 시대 초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진귀한 옥돌을 초왕(楚王)에게 바쳤다가 임금을 속인다는 누명을 쓰고 두 차례나 발이 잘렸으나, 나중에 왕에게 진가를 인정받고서 천하 제일의 보배인 화씨벽(和氏璧)을 만들게 되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韓非子 和氏》
예전에는 왕부의 관석(關石)이었도다 : 《서경》 오자지가(五子之歌)에 “어디서나 통하는 석과 누구에게나 공평한 균이 곧 왕부에 있었다.〔關石和鈞 王府則有〕”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채침(蔡沈)의 주석에 따른 해석이다. 석(石)과 균(鈞)은 중량의 단위로, 30근(斤)이 1균이고 4균이 1석인데, 과거에는 국가의 도량형이 정확하고 공정해서 백성에게 믿음을 주었다는 말이다.
작용 …… 아니로다 :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군자는 지나는 곳마다 변화하고 마음을 두는 곳마다 신묘해진다. 위와 아래로 천지와 그 흐름을 같이하나니, 그 작용이 어찌 세상을 조금 도울 뿐이라 하겠는가.〔夫君子所過者化 所存者神 上下與天地同流 豈曰小補之哉〕”라는 말이 있다.
자방(子房)이 경외한 것 : 누런 돌 즉 황석(黃石)을 말한다. 어떤 노인이 일찍이 하비(下邳)의 이교(圯橋) 가에서 장량(張良)에게 《태공병법(太公兵法)》을 전해 주면서 “13년 뒤에 그대가 나를 제북 땅에서 보리니, 곡성산 아래의 누런 돌이 바로 나이니라.〔十三年孺子見我濟北 穀城山下黃石卽我矣〕”라고 하였다. 13년 뒤에 장량이 실제로 그곳에 가서 황석을 발견하고 사당에 봉안하였으며, 장량이 죽자 황석도 함께 장사 지냈다는 기록이 《사기》 권55 유후세가(留侯世家)에 나온다. 자방은 장량의 자이다.
승유(僧孺)가 품평한 것 : 후세에는 좋은 돌이 없어서 쇠로 침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익살스러운 그의 발언을 가리킨다.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왕승유(王僧孺)는 고사를 많이 알고 있었는데, 시랑(侍郞) 전원기(全元起)가 《황제내경(黃帝內經)》 소문(素問)에 주석을 내려고 하면서 폄석(砭石)에 대해 묻자, 대답하기를 “옛사람들은 응당 돌을 가지고 침을 만들었을 것이요, 쇠는 쓰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설문(說文)》에 이 폄(砭)이라는 글자가 있는데, 허신(許愼)은 ‘돌로 병근(病根)을 찌르는 것이다.〔以石刺病也〕’라고 해설하였고, 《동산경(東山經)》에 ‘고씨의 산에 침석이 많다.〔高氏之山 多針石〕’라고 하였는데, 곽박(郭璞)은 ‘그것으로 돌침을 만들 수 있다.’라고 해설하였고, 《춘추좌씨전》 양공(襄公) 23년에 ‘보기 좋은 발진(發疹)이 아프게 하는 돌보다 못하다.〔美疢不如惡石〕’라고 하였는데, 복자신(服子愼)은 ‘돌은 돌침을 의미한다.〔石砭石也〕’라고 해설하였다. 그런데 말세에는 더 이상 좋은 돌이 없기 때문에 쇠로 대신한 것일 뿐이다.”라고 했다는 기록이 《남사(南史)》 권59 왕승유전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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