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石問)

 

가정집(稼亭集) > 가정집 제1권 > 잡저(雜著)

 

객이 묻기를

“어떤 물건이 있는데, 견고하여 변하지 않고 천지와 시종을 함께한다. 그대는 그 물건이 무엇인지 아는가?”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천지가 영기(靈氣)를 비축하여 만물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중에서 오직 사람이 가장 뛰어나고, 이적(夷狄)과 금수가 그 다음을 차지한다. 저 높은 산과 깊은 바다 역시 만물 중에 큰 것으로서, 곤충과 초목 등 크고 작은 동물과 식물이 모두 그 안에 들어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분분하게 영축(盈縮)ㆍ대사(代謝)를 거듭하고, 착잡하게 영고(榮枯)ㆍ계칩(啓蟄)을 반복하니 변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가령 본말을 추구할 수 없고 거세(巨細)를 췌탁(揣度)할 수 없으며, 한서(寒暑)도 그 바탕을 바꿀 수 없고 고금(古今)도 그 쓰임을 고갈시킬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직 돌이라는 물건 하나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대가 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하였다.
그러자 객이 말하기를

“그렇다. 그렇다면 그 소이연에 대한 설명이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태극(太極)이 나뉘면서 양의(兩儀)가 성립하고, 성인(聖人)이 나오면서 삼재(三才 천지인(天地人))가 갖추어졌는데, 이때의 성인은 그 이름을 반고(盤古)라고 한다. 그 당시의 상황은 아직도 한데 뒤섞여 있는 혼돈 상태라서 만물이 종류별로 분류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반고가 죽으면서 눈은 일월이 되고, 피는 강하가 되고, 뼈는 구산(丘山)이 되었다. 그런데 산이 형체를 부여받을 때에 돌이 그 바탕을 이루었기 때문에 산의 뼈〔山骨〕라고 칭하게 되었으니, 그러고 보면 돌이 생겨난 지가 오래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공공(共工)이 황제(黃帝)와 싸울 적에 성이 나서 부주산(不周山)을 머리로 치받자 하늘이 기울어졌는데, 여와씨(女媧氏)가 돌을 구워 메운 뒤에야 일월성신이 제자리를 잡고 도수(度數)에 맞게 운행하게 되었으니, 그러고 보면 돌의 공로가 크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두터운 땅속에 뿌리를 박고 웅장하게 꽂혀서 위엄 있는 모습으로 거해(巨海)를 진압하는가 하면, 만 길 위에 홀로 우뚝 서서 어느 물건에도 요동되는 일이 없고, 구천 깊이 그윽이 묻혀 있으면서 어느 물건에도 침해를 당하지 않는 가운데, 하늘과 더불어 시작하고 땅과 더불어 마감하니, 그러고 보면 돌의 덕이 후하다고 할 것이다. 우순(虞舜)이 음악을 만들자 사(絲)ㆍ죽(竹)ㆍ포(匏)ㆍ토(土)ㆍ혁(革)ㆍ목(木)의 앞에 위치하여 봉황을 춤추게 하였고, 주 선왕(周宣王)이 석고(石鼓)를 만들자 진(秦)ㆍ한(漢)ㆍ위(魏)ㆍ진(晉)ㆍ수(隋)ㆍ당(唐)을 거치면서 귀신이 보우해 주었으니, 됨됨이와 씀씀이가 기특하고도 위대하다고 말할 만하다. 내가 아는 것은 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하였다.
이에 객이 말하기를

옛날에 돌에 대해서 말한 자들이 많지만 아직 번역(藩閾)에도 미치지 못했고, 도를 찬양한 자들이 많지만 고작 사부(詞賦) 정도로 그쳤다. 그러니 그대가 역시 송(頌)을 지어서 돌의 공덕을 형용해 보지 않겠는가?”

하였는데, 내가 그만한 능력이 없다고 사양하니, 객이 이내 붓을 잡고는 다음과 같이 시를 지었다.

위대하고 지극하다 / 大哉至哉
하늘과 땅의 정기여 / 堪輿精氣
이 견정(堅貞)한 물질을 내어 / 生此貞質
효용이 끝없게 하였도다 / 功用不旣
기이하도다 그 문채 그 결이여 / 文奇理異
선명하도다 가로 세로 그 무늬여 / 煥其經緯
모나게 쪼개지고 둥글게 나뉘어서 / 方裂圓分
귀천을 막론하고 은혜를 베풀도다 / 施之賤貴
삼재에 하나 더해 사재로 할 만하니 / 可四三才
이 물건은 어떤 일에도 관련이 있음이로다 / 可該衆彙
우가 바위를 뚫자 용으로 날아올랐고 / 禹鑿龍飛
진이 바위를 몰자 사슴이 죽고 말았도다 / 秦驅鹿死
비석에 새겨 공적을 기념하고 / 碑以紀功
토석을 쌓아 이정표를 세우도다 / 堠以表里
우묵하게 파서 절구통도 만들고 / 窊而爲臼
판판하게 갈아서 숫돌로도 쓰는도다 / 磨而爲砥
석경(石鏡)은 가인의 생활 필수품이요 / 鏡徇佳人
석정(石鼎)은 도사의 여행 도구로다 / 鼎隨道士
회지는 돌로 조를 잘도 제작했고 / 懷智作槽
숙신은 돌로 화살촉을 만들었도다 / 肅愼作矢
석연(石燕)은 비를 몰아오는데 / 燕能致雨
석서(石犀)는 수해를 물리치도다 / 犀能却水
살에 침을 놓을 때는 석망(石芒)이 있고 / 砭肌有芒
얼굴을 젊게 하려면 석수(石髓)가 있도다 / 駐顔有髓
초나라 석호(石虎)는 깃털까지 푹 박히고 / 楚虎飮羽
진나라 석우(石牛)는 발꿈치를 들었도다 / 秦牛擧趾
새는 돌을 입에 물고 어디로 가시는고 / 鳥㘅曷歸
석양(石羊)은 엎드려 있다가 일어났도다 / 羊伏且起
낭군을 기다리다 못해 돌이 되기도 하고 / 或望夫還
어떤 이는 돌을 형님으로까지 모셨도다 / 或作兄事
영척의 노래에서는 / 寗戚之歌
돌을 언급해 뜻을 전하였고
/ 載言厥志
남산의 시에서는 / 南山之詩
바위를 말해 아름다움을 드러내었도다
/ 式著其美
금은 따라서 변하는 것이 부끄럽고 / 金慚從革
옥은 시장 상인의 거래가 부끄럽도다 / 玉愧貿市
환퇴(桓魋)의 석곽(石槨)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 魋槨不成
요 임금의 흙섬돌엔 돌이 버림을 받았도다 / 堯階見棄
생각하면 신묘한 이 물건도 / 惟此神物
때에 따라 쓰임이 다르도다 / 用隨時異
내버려두면 돌덩어리에 불과하지만 / 抛之頑璞
갈고 닦으면 보배로 변신하도다 / 琢則寶器
송나라 사람은 깊숙이 감추었고 / 宋人深藏
초나라 왕은 늦게야 다듬었도다 / 楚王晩剖
지금은 묘당의 초석(礎石)인 것이 / 今礎廟堂
예전에는 왕부의 관석(關石)이었도다 / 昔關王府
하지만 실체야 변하는 일이 있으리오 / 體豈有渝
작용 역시 조금 도울 뿐이 아니로다 / 用非小補
그대의 공덕을 노래하노라니 / 頌爾功德
나의 폐부가 또 격동되는도다 / 激我肺腑
요컨대는 유능한 사관에게 부탁해서 / 要畀良史
만고에 길이 전해지게 함이로다 / 流光萬古

객이 송(頌)을 짓고 떠난 뒤에 내가 물러 나와 그 내용을 살펴보고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이치가 그 속에 있지 않음이 없음을 바로 인지하였다. 아, 자방(子房)이 경외한 것은 속임수가 섞인 괴담에 가깝다고 한다면, 승유(僧孺)가 품평한 것은 장난기가 섞인 해학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그 밖에 돌에 관한 제가(諸家)의 설들이 있지만, 모조리 거론하여 일일이 소개할 수 없기에 우선 객이 읊은 송으로 이 편을 장식할까 한다.

 

영축(盈縮)ㆍ대사(代謝) : 진퇴(進退)ㆍ굴신(屈伸)ㆍ다소(多少)ㆍ장단(長短)ㆍ수요(壽夭)ㆍ영허(盈虛) 등 온갖 변화하는 현상이 주기적으로 번갈아 새롭게 교대하는 것을 말한다.
영고(榮枯)ㆍ계칩(啓蟄) : 초목이 무성하여 꽃 피고 열매를 맺었다가 다시 마르고 시드는 것처럼 모든 존재가 성하고 쇠하는 현상이 마치 겨울철에 땅속에서 칩거했다가 봄에 다시 나와 활동하듯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한 경제(漢景帝)의 이름이 계(啓)이기 때문에 이를 피해서 후대에 계칩을 경칩(驚蟄)으로 바꿔 불렀다.
양의(兩儀) : 보통은 음양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천지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성인(聖人) : 여기서는 공자와 같은 성인이 아니라 신성한 능력을 소유한 초인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반고(盤古) : 천지가 개벽할 당시에 맨 먼저 나와서 세상을 다스렸다는 중국 신화 속의 인물로, 최초의 인간인 동시에 세상을 창조하는 조물주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하는데, 일명 혼돈씨(混沌氏)라고도 한다. 반고가 죽을 때에 숨기운은 풍운이 되고, 목소리는 뇌정(雷霆)이 되고, 좌우의 눈은 각각 해와 달이 되고, 사지와 오체는 각각 사극(四極)과 오악(五嶽)이 되고, 근맥(筋脈)은 지리(地理)가 되고, 기육(肌肉)은 전토(田土)가 되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성신(星辰)이 되고, 피모(皮毛)는 초목이 되고, 치골(齒骨)은 금석이 되고, 정수(精髓)는 주옥이 되고, 땀은 우택(雨澤)이 되었다는 기록이 《오운역년기(五運曆年記)》에 나온다.
산의 뼈〔山骨〕 : 바윗돌을 가리킨다. 참고로 한유(韓愈)의 석정(石鼎)이라는 연구(聯句) 시 첫머리에 “솜씨 좋은 장인(匠人)이 산의 뼈를 깎아다가, 그 속을 파내고서 음식을 끓일 그릇을 만들었다네.〔巧匠斲山骨 刳中事煎烹〕”라는 표현이 나온다.
공공(共工)이 …… 되었으니 : 공공씨(共工氏)가 전욱(顓頊)과 싸우다가 성이 나서 부주산(不周山)을 머리로 치받자 하늘 기둥이 부러지면서 하늘은 서북쪽으로 기울고 땅은 동남쪽으로 꺼졌다. 이에 여와씨(女媧氏)가 자라의 다리를 잘라서 땅의 사방 기둥을 받쳐 세우고, 오색의 돌을 구워서 터진 하늘을 메웠다는 전설이 있다. 전욱은 황제(黃帝)의 손자이다. 황제와 싸웠다고 한 것은 가정의 착오이다. 《淮南子 覽冥訓》《列子 湯問》
우순(虞舜)이 …… 하였고 : “순 임금이 창작한 음악인 소소를 연주하자, 봉황이 듣고 찾아와서 춤을 추었다.〔簫韶九成 鳳凰來儀〕”라는 내용이 《서경》 익직(益稷)에 나온다. 그리고 8종의 악기인 금(金)ㆍ석(石)ㆍ사(絲)ㆍ죽(竹)ㆍ포(匏)ㆍ토(土)ㆍ혁(革)ㆍ목(木)을 팔음(八音)이라고 하는데, 석이 사 등의 앞에 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주 선왕(周宣王)이 …… 주었으니 : 석고(石鼓)는 북 모양으로 된 10개의 석조 유품으로, 돌 표면에 진대(秦代)의 전자(篆字)에 가까운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중국 최고(最古)의 금석문으로 꼽힌다. 한유는 주 선왕 때의 작품이라고 하고, 위응물(韋應物)은 주 문왕(周文王) 때의 작품이라고 하는 등 이설이 많으나, 주 선왕이 사냥한 내용을 사주(史籒)가 송(頌)으로 지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원래 섬서성(陝西省) 부풍현(扶風縣) 서북쪽에 있던 것을 당나라 때 봉상부(鳳翔府) 공자묘(孔子廟)로 옮겨 왔다가 다시 북경(北京)의 국자감(國子監)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옛날에 …… 못했고 : 승당(升堂)ㆍ입실(入室)은커녕 집 근처인 담장〔藩〕이나 문간〔閾〕에도 이르지 못했다는 뜻으로, 돌에 대해서 피상적으로만 언급했을 뿐 수준 높은 경지는 보여 주지 못했다는 말이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에 “시를 짓는 솜씨야 근처에도 못 갔지만, 울적한 심정을 풀려면 그래도 노름보다야 낫지 않소.〔作詩雖未造藩閾 破悶豈不賢樗蒲〕”라는 표현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7 李杞寺丞見和前篇復用元韻答之 再和》
위대하고 지극하다 : 각각 하늘과 땅을 찬양한 말이다. 《주역》 건괘(乾卦) 단(彖)이 “대재 건원(大哉乾元)”으로 시작하고, 곤괘(坤卦) 단(彖)이 “지재 곤원(至哉坤元)”으로 시작하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모나게 …… 나뉘어서 : 당나라 정유충(鄭惟忠)의 고석부(古石賦)에 “둥글게 나뉘는 것은 우박처럼 흩어지고, 모나게 찢어지는 것은 얼음처럼 갈라진다.〔圓分者雹散 方裂者冰開〕”라는 표현이 나온다. 《文苑英華 卷31 地類7》
우(禹)가 …… 날아올랐고 : 하우(夏禹)가 치산치수(治山治水)를 잘해서 순(舜)의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는 말이다. 우가 홍수의 물길을 강하로 유도할 적에 “용문의 바위를 뚫고 이궐의 길을 열었다.〔鑿龍門 辟伊闕〕”라는 말이 《회남자(淮南子)》 수무훈(修務訓)에 나온다. 또 《주역》 건괘 구오(九五)에 “용이 날아올라 하늘에 있다.〔飛龍在天〕”라는 말이 있는데, 보통 임금의 즉위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진(秦)이 …… 말았도다 : 진나라가 학정으로 천하를 잃었다는 말이다. 진 시황이 돌다리〔石橋〕를 놓아 바다를 건너가서 해가 뜨는 곳을 보려고 하자, 신인(神人)이 바위를 바다로 몰고 가면서 채찍질을 하니 바윗돌이 모두 피를 흘리며 붉게 변했다는 전설이 진(晉) 복심(伏深)의 《삼제약기(三齊略記)》에 나온다. 사슴은 천하를 뜻한다. 제나라 변사 괴통(蒯通)이 한 고조(漢高祖)에게 유세하면서 “진나라가 사슴을 잃자 천하가 모두 그 뒤를 쫓고 있다.〔秦失其鹿 天下共逐之〕”라는 말로 군웅이 할거하여 천하를 놓고 쟁탈전을 벌이는 것을 비유한 고사가 있다. 《史記 卷92 淮陰侯列傳》
회지(懷智)는 …… 제작했고 : “당 개원(開元) 연간에 악공 하회지(賀懷智)가 비파를 잘 연주하였는데, 돌로 조(槽)를 만들고 곤계(鵾雞)의 힘줄로 현(絃)을 만들어 쇠로 퉁겼기 때문에, 소식(蘇軾)의 시에 ‘곤계의 현줄을 철로 퉁기는 솜씨여, 세상에 다시 볼 수 없도다.〔鵾絃鐵撥世無有〕’라는 표현이 있게 된 것이다.”라는 말이 《산당사고(山堂肆考)》 권162 계근작현(雞筋作絃)에 나온다. 조(槽)는 현악기 위에 현을 올려놓는 움푹 파인 격자(格子)를 말하는데, 단목(檀木)으로 만들면 단조(檀槽)라고 하고, 옥석(玉石)으로 만들면 석조(石槽)라고 한다.
숙신(肅愼)은 …… 만들었도다 : 주나라 무왕(武王)과 성왕(成王) 때에 숙신씨(肅愼氏)가 와서 호시(楛矢)와 석노(石砮)를 공물로 바쳤는데, 그 길이가 1척(尺)이 넘었다는 기록이 《국어(國語)》 노어 하(魯語下)에 보인다.
석연(石燕)은 비를 몰아오는데 : 상주(湘州) 영릉산(零陵山)에 제비처럼 생긴 돌들이 있는데, 풍우가 몰아치면 크고 작은 돌들이 진짜로 제비 모자(母子)처럼 날아다니다가 풍우가 그치면 다시 돌로 환원한다는 전설이 북위(北魏) 역도원(酈道元)의 《수경주(水經注)》 상수(湘水)에 나온다.
석서(石犀)는 수해를 물리치도다 : 바위에 물소의 형태를 조각해서 둑 위에 세우면 수괴(水怪)를 진압한다는 전설이 있다. 진(晉)나라 상거(常璩)의 《화양국지(華陽國志)》 촉지(蜀志)에 진 효문왕(秦孝文王) 때 이빙(李冰)이 촉군 태수(蜀郡太守)로 부임하여 석서 다섯 마리를 세워서 수정(水精)을 진압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석수(石髓) : 석종유(石鐘乳)라고도 하는데, 복용하면 신선이 되어 장생불로한다는 도가의 전설이 있다.
초나라 …… 박히고 : 초나라 웅거자(熊渠子)가 밤에 길을 가다가 바위를 범으로 오인하고는 활을 쏘았는데 바위에 워낙 깊이 박혀서 화살 끝의 깃털이 보이지 않을 정도〔飮羽〕였다는 일화가 《한시외전》 권6 24장에 보인다.
진(秦)나라 …… 들었도다 : 돌로 만든 소가 길을 인도했다는 ‘석우개도(石牛開道)’의 고사를 가리킨다. 진 혜왕(秦惠王)이 촉(蜀)을 정벌하려고 했으나 길을 알지 못하자, 다섯 마리의 석우를 만들어 꽁무니에 황금을 묻힌 다음 황금 똥을 누는 소라고 속였다. 이에 촉왕이 오정역사(五丁力士)를 시켜서 끌고 오게 하자, 진나라 군대가 그 뒤를 따라와 촉을 멸망시켰으므로 그 길을 석우도(石牛道)라고 불렀다 한다. 《華陽國志 蜀志》
새는 …… 가시는고 : 염제(炎帝)의 막내딸인 여와(女娃)가 동해에 빠져 죽은 뒤에 정위(精衛)라는 작은 새가 되어 항상 서산(西山)의 나무와 돌을 입에 물고 동해를 메우려고 한다는 전설이 남조(南朝) 양(梁) 임방(任昉)의 《술이기(述異記)》 상권에 보인다.
석양(石羊)은 …… 일어났도다 : 황초평(黃初平)이 15세에 양을 치다가 신선술을 닦으러 도사를 따라 금화산(金華山) 석실(石室) 속에서 수도하였다. 40년 뒤에 형이 찾아와서 양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황초평이 형과 함께 그곳에 가서 백석(白石)을 향해 “양들아, 일어나라!〔羊起〕”라고 소리치니, 그 돌들이 수만 마리의 양으로 변했다는 전설이 진(晉)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 황초평전(黃初平傳)에 나온다.
낭군(郞君)을 …… 하고 : 각지에 두루 퍼져 있는 망부석(望夫石)의 전설을 말한 것이다.
어떤 …… 모셨도다 : 송나라 서화가(書畫家)인 미불(米芾)이 기암괴석을 좋아하였는데, 언젠가 보기 드문 기이한 돌을 대하고는 뜰 아래로 내려와서 절을 하며 “내가 석 형님을 보기를 소원한 지가 20년이나 되었소.〔吾欲見石兄二十年矣〕”라고 했다는 일화가 송나라 비연(費兗)이 지은 《양계만지(梁溪漫志)》 미원장배석(米元章拜石)에 나온다. 원장은 미불의 자(字)이다.
영척(寗戚)의 …… 전하였고 : 춘추 시대 위(衛)나라 영척이 제나라에 가서 빈궁하게 지내며 소에게 꼴을 먹이다가 제 환공(齊桓公)을 만나 쇠뿔〔牛角〕을 치며 자기의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를 부르자, 환공이 그를 비범하게 여겨 수레에 태우고 와서 객경(客卿)에 임명한 고사가 있는데, ‘반우가(飯牛歌)’라고 불리는 그 노래 중에 “남쪽 산은 말쑥하고, 하얀 돌은 번쩍이는데, 요순이 선양하는 것을 살면서 보지 못하였다.〔南山矸 白石爛 生不遭堯與舜禪〕”라고 하여 돌을 소재로 한 가사가 있다. 《淮南子 道應訓》
남산(南山)의 …… 드러내었도다 : 《시경》 소아(小雅) 절남산(節南山)에 “우뚝 솟은 저 남산이여, 바윗돌이 겹겹이 쌓여 있도다. 빛나고 빛나는 태사(太師) 윤씨(尹氏)여, 백성들이 모두 그대를 바라보도다.〔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라는 말이 있다.
금은 …… 부끄럽고 : 《서경》 홍범(洪範)에 “금은 따라서 바뀌는 것이다.〔金曰從革〕”라는 말이 나오는데, 쇠는 돌과 달리 사람의 용도에 따라서 변할 가능성이 많다는 말이다. 또 《주역》 택화 혁괘(澤火革卦) 상육(上六)에 “백성은 임금을 따라 드러난 악행을 고친다.〔小人革面〕”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에 대해서 “불은 물건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금은 변화에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택을 뜻하는 태는 금에 해당하니, 불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다.〔火革物者也 金從革者也 兌金也 從火而革者也〕”라고 해설하기도 한다.
옥은 …… 부끄럽도다 : 귀중한 옥이 다른 일반 상품과 함께 시장에서 상인들의 흥정에 의해 아무렇게나 취급되는 것이 부끄럽다는 말이다. 아름다운 옥이 있을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는 자공(子貢)의 질문을 받고 공자가 “나는 그 옥의 진가를 알고서 사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我待賈者也〕”라고 대답한 말이 《논어》 자한(子罕)에 나온다.
환퇴(桓魋)의 …… 않았고 : 공자가 송나라에 있을 적에 환퇴가 자기의 석곽(石槨)을 만드는 데 3년이 되도록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이처럼 사치스럽게 만들려고 할진댄 차라리 죽으면 속히 썩게 하는 것이 더 좋겠다.〔若是其靡也 死不如速朽之愈也〕”라고 말한 내용이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나온다.
요 임금의 …… 받았도다 : “요 임금은 천자가 되고 나서도 비단옷을 겹으로 입지 않았고 밥상에는 두 가지의 맛있는 반찬을 놓지 않았으며, 석 자 높이의 섬돌은 흙으로 만들었고 지붕의 띠풀도 가지런히 자르지 않았다.〔堯爲天子 衣不重帛 食不兼味 土階三尺 茅茨不剪〕”라는 말이 《태평어람(太平御覽)》 권696에 윤문자(尹文子)의 말로 인용되어 나온다.
송나라 …… 감추었고 : 송나라의 어리석은 사람이 옥돌과 비슷하면서도 보통의 돌멩이에 불과한 연석(燕石)을 보옥인 줄 알고 주황색 수건으로 열 겹이나 싸서 깊이 보관하며 애지중지하다가 주(周)나라의 어떤 나그네에게 비웃음을 당한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48 應劭列傳 註》
초나라 …… 다듬었도다 : 춘추 시대 초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진귀한 옥돌을 초왕(楚王)에게 바쳤다가 임금을 속인다는 누명을 쓰고 두 차례나 발이 잘렸으나, 나중에 왕에게 진가를 인정받고서 천하 제일의 보배인 화씨벽(和氏璧)을 만들게 되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韓非子 和氏》
예전에는 왕부의 관석(關石)이었도다 : 《서경》 오자지가(五子之歌)에 “어디서나 통하는 석과 누구에게나 공평한 균이 곧 왕부에 있었다.〔關石和鈞 王府則有〕”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채침(蔡沈)의 주석에 따른 해석이다. 석(石)과 균(鈞)은 중량의 단위로, 30근(斤)이 1균이고 4균이 1석인데, 과거에는 국가의 도량형이 정확하고 공정해서 백성에게 믿음을 주었다는 말이다.
작용 …… 아니로다 :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군자는 지나는 곳마다 변화하고 마음을 두는 곳마다 신묘해진다. 위와 아래로 천지와 그 흐름을 같이하나니, 그 작용이 어찌 세상을 조금 도울 뿐이라 하겠는가.〔夫君子所過者化 所存者神 上下與天地同流 豈曰小補之哉〕”라는 말이 있다.
자방(子房)이 경외한 것 : 누런 돌 즉 황석(黃石)을 말한다. 어떤 노인이 일찍이 하비(下邳)의 이교(圯橋) 가에서 장량(張良)에게 《태공병법(太公兵法)》을 전해 주면서 “13년 뒤에 그대가 나를 제북 땅에서 보리니, 곡성산 아래의 누런 돌이 바로 나이니라.〔十三年孺子見我濟北 穀城山下黃石卽我矣〕”라고 하였다. 13년 뒤에 장량이 실제로 그곳에 가서 황석을 발견하고 사당에 봉안하였으며, 장량이 죽자 황석도 함께 장사 지냈다는 기록이 《사기》 권55 유후세가(留侯世家)에 나온다. 자방은 장량의 자이다.
승유(僧孺)가 품평한 것 : 후세에는 좋은 돌이 없어서 쇠로 침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익살스러운 그의 발언을 가리킨다.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왕승유(王僧孺)는 고사를 많이 알고 있었는데, 시랑(侍郞) 전원기(全元起)가 《황제내경(黃帝內經)》 소문(素問)에 주석을 내려고 하면서 폄석(砭石)에 대해 묻자, 대답하기를 “옛사람들은 응당 돌을 가지고 침을 만들었을 것이요, 쇠는 쓰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설문(說文)》에 이 폄(砭)이라는 글자가 있는데, 허신(許愼)은 ‘돌로 병근(病根)을 찌르는 것이다.〔以石刺病也〕’라고 해설하였고, 《동산경(東山經)》에 ‘고씨의 산에 침석이 많다.〔高氏之山 多針石〕’라고 하였는데, 곽박(郭璞)은 ‘그것으로 돌침을 만들 수 있다.’라고 해설하였고, 《춘추좌씨전》 양공(襄公) 23년에 ‘보기 좋은 발진(發疹)이 아프게 하는 돌보다 못하다.〔美疢不如惡石〕’라고 하였는데, 복자신(服子愼)은 ‘돌은 돌침을 의미한다.〔石砭石也〕’라고 해설하였다. 그런데 말세에는 더 이상 좋은 돌이 없기 때문에 쇠로 대신한 것일 뿐이다.”라고 했다는 기록이 《남사(南史)》 권59 왕승유전에 나온다.

 사바(闍婆)의 칼. 전배(前輩)의 운(韻)을 쓰다.

 

 가정집(稼亭集) > 가정집 제14권 > 고시(古詩)

 

동쪽으로 접해로부터 서쪽으로 봉파까지 / 東自鰈海西蓬婆
육지엔 요기(妖氣)가 없고 바다엔 파랑(波浪)이 없다 / 野無氛祲水無波
이 어찌 용이 날아오르매 만물이 모두 우러러보아 / 此豈龍飛萬物覩
은택이 금수와 수중 동물까지 미친 덕분이 아니리오 / 澤及禽獸兼蛟鼉
명당이 크게 열려 왕도 정치를 펼치나니 / 明堂大闢布王政
서기(瑞氣)가 무성하게 사아 주위에 감도누나 / 鬱蔥佳氣纏四阿
요 임금 백성들 희희하여 스스로 오변하니 / 堯民熙熙自於變
어찌 인의로 수고롭게 점마할 것이 있으랴 / 寧將仁義勞漸摩
인민이 기약하는 것은 단지 경착하는 일뿐 / 黔蒼但期事耕鑿
반백의 노인이 차과를 또 알지 못한다오 / 班白不復知差科
성조가 이제는 무력을 잘 행사하지 않지만 / 聖朝雖已不好武
일이 있으면 창칼을 비껴들어야 하고말고 / 有事徑須橫劍戈
땋은 머리 풀지 않은 저 조그만 사바 나라 / 蕞彼闍婆不解辮
얕고 좁은 식견이 관려에 비교할 수도 없네 / 淺狹那容比管蠡
회음이 부월(斧鉞)을 받고 자방이 작전을 세우고 / 淮陰受鉞子房籌
군량이 모자란 것은 소하의 힘을 빌렸다네
/ 餉饋不及煩蕭何
돛 올리고 북 울리며 거친 파도 헤치고서 / 張帆擊鼓駕高浪
송골매가 신라를 지나듯 빠르게 진격하였다오 / 疾如鷂子逾新羅
남만(南蠻)의 임금은 단지 항복의 깃발을 들 수밖에 / 蠻君徒自豎降旌
고황의 형세 군박해서 손쓸 수 없는 걸 어떡하나 / 膏肓勢窘難醫痾
사방을 포위한 중국 군대 물처럼 적요한 가운데 / 漢軍四擁寂如水
초가를 듣고 장막 아래 얼굴 가리며 울었다오 / 帳下掩泣聞楚歌
개선(凱旋)할 때 누군가 가지고 온 보검 하나 / 班師誰得寶刀來
방금 간 것처럼 북두성 무늬도 선명해라 / 斗文赫赫如新磨
용처럼 가끔 신음도 하고 자기도 내쏘는지라 / 龍吟有時紫氣迸
정원 나무에 깃들인 새도 놀라 떨어진다네요 / 棲禽驚墮庭之柯
온 천하가 한집안이 된 뒤로부터 / 自從六合爲一家
서쪽 보물 남쪽 재화 산하를 통행하지만 / 西賝南貨通山河
사바의 이 명검과 어떤 물건이 견줄까 / 闍婆之刀孰與竝
자격도 없이 허리에 차면 칼이 질책하는지라 / 佩非其人刀所呵
간사한 자는 가슴이 떨려 바로 보지도 못하나니 / 姦邪寒心敢正看
그래서 다른 보물들과 이 칼이 다른 줄 알겠노라 / 故知此物殊於他
요컨대는 시를 지어 뒷면에 새겨 둠으로써 / 要當作詩銘其背
천년토록 이 보검에 딴소리 없게 해야 하리 / 千年爲寶傳無訛
차가운 역수에 갈바람 물결을 일으키며 / 秋風吹波易水寒
장사 한번 떠나고는 형가 같은 장부 없어
/ 壯士一去無荊軻
서생 이 칼 대하고서 괜히 탄식을 발할 뿐 / 書生對此空嘆息
머리 위 해와 달만 북처럼 빨리도 내달리네 / 頭上歲月如飛梭

사바(闍婆) : 지금의 인도네시아에 속한 섬나라 이름으로, 사바바달(闍婆婆達)의 준말이다.
접해(鰈海) : 가자미〔比目魚〕가 나는 바다라는 뜻으로, 동해(東海)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고려를 의미한다.
봉파(蓬婆) : 토번(吐蕃)에 속한 산 이름으로, 대설산(大雪山)이라고도 하는데, 현 중국 사천성(四川省) 무현(茂縣) 서남쪽에 있다.
이……우러러보아 : 군신이 의기투합하여 선정을 베푸는 것을 말한다. 《주역》 〈건괘(乾卦) 구오(九五)〉에 성군과 현신이 만나는 것을 비유하여 “용이 날아올라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飛龍在天 利見大人〕”라고 하였고, 다시 〈문언(文言) 구오(九五)〉에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르나니, 성인이 나오시면 만물이 모두 우러러보게 마련이다.〔雲從龍 風從虎 聖人作而萬物覩〕”라고 하였다.
사아(四阿) : 기둥이 넷이고 지붕이 사각추(四角錐) 형태로 된 건물을 말하는데, 보통 태묘(太廟)와 명당(明堂) 등에서 볼 수 있다.
요(堯) 임금……오변(於變)하니 : 백성들이 요순(堯舜)과 같은 성군의 덕에 힘입어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는 말이다. 《노자(老子)》 20장에 “사람들 화락한 모양이, 흡사 진수성찬을 먹은 듯도 하고 봄 누대에 오른 듯도 하네.〔衆人熙熙 如享太牢 如登春臺〕”라는 말이 나오고, 《서경》 〈요전(堯典)〉에 “백성들이 성군의 덕에 크게 감화된 나머지 온 누리에 화평한 기운이 감돌았다.〔黎民於變時雍〕”라는 말이 나온다.
어찌……있으랴 : 백성들을 교육시켜 교화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도덕이 갖추어졌다는 말이다. 《한서(漢書)》 권56 〈동중서전(董仲舒傳)〉에 “태학을 세워 국도에서 가르치고 상서를 세워 고을에서 교화하되, 인으로 백성들이 젖어들게 하고 의(義)로 백성들을 단속하게 해야 한다.〔立大學 以敎於國 設庠序 以化於邑 漸民以仁 摩民以誼〕”라는 말이 나온다.
경착(耕鑿) : 밭 갈고 우물 판다는 말로, 여기에도 태평 시대를 구가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요 임금 때에 어느 노인이 지었다는 〈격양가(擊壤歌)〉에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면서, 내 샘을 파서 물 마시고 내 밭을 갈아서 밥 먹을 뿐이니, 임금님의 힘이 도대체 나에게 무슨 상관이랴.〔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라는 말이 나온다.
차과(差科) : 차역(差役)과 과세(科稅)의 준말이다.
땋은……사바 나라 : 사바국이 변발(辮髮)하는 자기의 풍속을 고쳐서 중국인의 복식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말로, 중국에 귀순하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 남조 양나라 구지(丘遲)의 〈여진백지서(與陳伯之書)〉에 “야랑과 전지에서 땋은 머리를 풀고 중국의 관직을 청했다.〔夜郞滇池 解辮請職〕”라는 말이 나온다.
관려(管蠡) : 국량과 견식이 협소하고 천박한 것을 비유하는 말인데, 한나라 동방삭(東方朔)의 〈답객난(答客難)〉에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고, 바가지로 퍼서 바닷물을 재며, 풀줄기로 종을 치는 격이다.〔以筦窺天 以蠡測海 以筳撞鍾〕”라는 말이 나온다. 《文選 卷45》
회음(淮陰)이……빌렸다네 :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과 같은 야전사령관과 자방(子房) 장량(張良)과 같은 작전 참모와 소하(蕭何)와 같은 군수(軍需) 책임자 등으로 구성된 한나라 삼걸(三傑)에 비견되는 유능한 조정 신하들이 합동으로 정벌을 수행하였다는 말이다.
신라를 지나듯 : 어떤 상황이 신속하고 민첩하게 전개되거나, 혹은 한 생각이 엉뚱하게 다른 곳으로 빠져들 때 쓰는 표현으로, 원래 선가(禪家)에서 나온 말이다. 한 승려가 ‘금강 일척전(金剛一隻箭)’에 대해서 묻자, 조사(祖師)가 “그 화살이 벌써 신라를 지나갔다.〔過新羅國去〕”고 대답했다는 이야기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을 비롯해 많은 선서(禪書)에 등장한다. 소식(蘇軾)의 시에도 “나의 삶 역시 자연의 변화 따라 밤낮으로 물처럼 흘러가나니, 찰나의 한 생각이 신라를 이미 지나간 것을 앉아서 깨닫겠노라.〔我生乘化日夜逝 坐覺一念逾新羅〕”라는 표현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17 百步洪》
고황(膏肓)의 형세 : 중국 군대가 사바국의 심장부인 도성에까지 진입했다는 말이다. 춘추 시대 진 경공(晉景公)의 꿈에 병마(病魔)가 더벅머리 두 아이로 변해 고황에 들어갔는데, 결국은 병을 고치지 못하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春秋左氏傳 成公10年》
물처럼 적요한 가운데 : 군율(軍律)이 엄숙한 것을 표현한 것이다.
초가(楚歌)를……울었다오 : 사면초가(四面楚歌) 속에서 우 미인(虞美人)과 함께 비가(悲歌)를 불렀던 항우(項羽)처럼, 사바국의 임금도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에서 망국의 슬픔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용처럼……내쏘는지라 : 전욱(顓頊)이 예영(曳影)이라는 명검을 써서 사방을 정벌하였는데, 그 검을 사용하지 않고 상자 속에 보관하고 있을 때에는 ‘용과 범이 신음하는 듯한 소리〔如龍虎之吟〕’가 새어 나왔다고 한다. 《拾遺記 顓頊》 또 용천(龍泉)과 태아(太阿)의 두 보검이 풍성(豐城) 땅에 묻혀 있으면서 밤마다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에 자기(紫氣)를 쏘아 발산했다는 전설이 있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차가운……없어 : 전국 시대의 자객 형가(荊軻)가 연나라 태자 단(丹)의 부탁을 받고 진왕(秦王)을 죽이려고 떠날 적에 역수(易水) 가에서 축(筑)의 명인인 고점리(高漸離)의 반주에 맞추어 “바람결 쓸쓸해라 역수 물 차가운데, 장사 한번 떠나 다시 오지 않으리.〔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兮不復還〕”라는 비장한 노래를 부르고 작별한 ‘역수한풍(易水寒風)’의 고사가 전한다. 《戰國策 燕策3》

《참동계(參同契)》 수장(首章)의 해석

약천집 > 약천집 제29권 > 잡저(雜著)

 

건(乾)과 곤(坤)은 역(易)의 문호(門戶)이고 여러 괘(卦)의 부모이며, 감(坎)과 이(離)는 광곽(匡郭)이 되어 곡(轂)을 움직이고 축(軸)을 바로잡는다. 암수 네 괘(卦)로 풀무〔槖籥〕를 만들어 음(陰)과 양(陽)의 도를 뒤덮으니, 수레를 잘 모는 자가 승묵(繩墨)을 기준하여 함비(銜轡 고삐와 재갈)를 잡고 규구(規矩)를 바로잡아 궤철(軌轍)을 따르는 것과 같아서 중앙에 있으면서 밖을 제재한다.


건과 곤은 음과 양이다. 문호는 나가고 들어옴을 말하고, 부모는 낳고 이룸을 말한다. 감과 이는 수(水)와 화(火)이다. 광곽은 《주역(周易)》〈계사전(繫辭傳)〉의 이른바 ‘범위(範圍)’라는 위(圍)와 같으니, 포괄함을 말한다. 감(坎)은 곤(坤)으로써 건(乾)을 포함하고 이(離)는 건으로써 곤을 포함하니, 이것이 이른바 광곽이란 것이다. 곡(轂)은 수레바퀴의 가운데 부분으로 축(軸)을 받아들이는 곳이고, 축은 곡 가운데를 가로로 관통하여 바퀴를 돌게 하는 것이다. 탁약은 풀무라는 말이니, 탁(槖)은 약(籥)을 받아들이는 바깥의 독(櫝)이고 약은 탁을 고동시키는 안의 관(管)인바, 비어 있으면서 쓰임이 됨을 말한 것이다.
건은 호(戶)가 되고 곤은 문(門)이 되며, 건은 아버지가 되고 곤은 어머니가 되며, 감(坎)은 곡(轂)을 음으로 삼고 축(軸)을 양으로 삼으며, 이(離)는 곡을 양으로 삼고 축을 음으로 삼는다. 건과 감은 수컷이고 곤과 이는 암컷이며, 건과 곤은 탁(槖)이고 감과 이는 약(籥)이니, 이는 모두 비유를 취하여 형용한 것이다. 승묵과 규구는 바로 음과 양이 나아가고 물러나는 징후이고 수와 화가 올라가고 내려가는 순서이며, 함비(銜轡)와 궤철(軌轍)은 바로 수와 화를 운반하는 법이고 음과 양을 순환시키는 자취이다. 가운데에 처하여 밖을 제제한다는 것은 바로 천군(天君) 즉 마음이 주재하여 온몸이 명령을 따르는 것이다.
《주역》에 이르기를 “하늘에 있으면 상(象)을 이루고 땅에 있으면 형체를 이룬다.” 하였으니, 이것을 사람에게 비유하면 머리의 귀와 눈은 위에서 상을 이룬 것이고, 배의 오장육부는 아래에서 형체를 이룬 것이다. 이는 〈설괘전(說卦傳)〉의 이른바 “하늘과 땅이 자리를 정했다.”는 것이고 소자(邵子)의 이른바 “한 몸에도 역시 한 건곤이 있다.”는 것이며, 바로 여기의 이른바 ‘문호와 부모’라는 것이니, 바로 하늘과 땅의 본체이다.
사람의 한 몸은 다만 기(氣)와 혈(血)뿐이니, 무릇 발로되면 천식(喘息) 즉 숨결이 되고 쌓이면 따뜻함이 되어서, 소리 내고 말하고 발로 걷고 손으로 돌리는 따위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에 속한다. 그리고 내놓으면 침〔涎唾〕이 되고 감추면 정수(精髓)가 되어서 눈물과 땀, 윤기 나는 털과 윤택한 피부 따위에 이르기까지 모두 혈에 속한다. 기의 근본을 찾아보면 신장(腎臟)에 있고 혈의 근본을 찾아보면 심장에 있으며, 신장이 비록 기의 근본이 되나 실로 천일(天一)의 수(水)가 되기 때문에 기가 이르는 바에 물이 또한 불어나며, 심장이 비록 혈의 근본이 되나 실로 지이(地二)의 화(火)가 되기 때문에 혈이 행하는 바에 불이 또한 치성한 것이니, 이는 〈설괘전〉의 이른바 “물과 불이 서로 쏘아도 꺼지지 않는다.〔水火不相射〕”는 것이고 -‘射’는 음이 ‘석’이니, 물과 불이 아래에서 타고 위에서 끓지만 서로 꺼지게 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혹은 음이 ‘사’라고도 하니 범하는 것이니 이는 서로 해치지 않는 것이고, 혹은 음이 ‘역’이라고도 하니 이는 서로 싫어하지 않는 것이니, 두 가지 뜻이 모두 통한다. 물과 불은 본래 상극(相剋)인 물건이지만 미제괘(未濟卦)의 물과 불 같아서 중간에 물건이 가로막고 있어서 도리어 서로 쓰임이 되는 것이다.- 주자(周子)의 이른바 “음을 낳고 양을 낳아서 서로 그 뿌리가 된다.〔生陰生陽 互爲其根〕”는 것으로 바로 여기서의 이른바 ‘광곽과 곡과 축’이란 것이니 바로 음과 양의 쓰임이다. 이 장(章)은 바로 책의 첫 부분이고 여러 말의 첫머리이니, 만일 이것을 분명히 안다면 남은 것은 유추하여 알 수 있을 것이다.

참동계(參同契) : 도가(道家)의 서적으로 양생술(養生術)의 일종인데, 한나라 때 위백양(魏伯陽)이 지은 것이다. 참동계란 《주역(周易)》과 황로(黃老) 사상, 노화(爐火) 세 가지를 참고하여 하나로 만든 것으로, 노화는 연단술(煉丹術)을 이른다. 이 책에서는 감(坎)ㆍ이(離)ㆍ수(水)ㆍ화(火)와 용(龍)ㆍ호(虎)ㆍ연(鉛)ㆍ홍(汞) 등에 관해 많이 말하였다.
감(坎)과……되어 : 광곽(匡郭)은 《참동계》의 주(註)에 “감은 월(月), 이(離)는 일(日), 광(匡)은 바름이다. 옛말에 광성(匡城)이란 말이 있는데 오늘날 광곽이란 말과 같은 것으로 곧 성곽이란 말이다. 이것은 해와 달이 수레바퀴처럼 도는 것을 비유함이다.” 하였다.
천일(天一)의 수(水) :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서는 천일(天一)에서 수(水)가 생기고, 지이(地二)에서 화(火)가 생기고, 천삼(天三)에서 목(木)이 생기고, 지사(地四)에서 금(金)이 생기고, 천오(天五)에서 토(土)가 생긴다. 일(一)은 기수(奇數)로서 양(陽)에 해당하므로 즉 천수(天數)를 말하고, 이(二)는 우수(耦數)로서 음(陰)에 해당하여 지수(地數)가 되는바, 천지 음양의 자연적인 기우(奇耦)의 수(數)를 말한 것이다.
주자(周子)의……것 : 주자는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를 가리킨다. 그가 지은 〈태극도설(太極圖說)〉에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아 동이 극에 달하면 정하고, 정하여 음을 낳아 정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한다. 한 번 동하고 한 번 정함이 서로 그 뿌리가 된다.〔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라고 하였다.

 

 

천하의 곤란을 구제하되 성현의 신하가 보좌하지 않고서는 되지 않았다

[濟天下之蹇未有不由聖賢之臣爲之佐]

 

 삼봉집 제12권 > 의논(議論)

 

건괘(蹇卦)의 구오(九五) 효사에, ‘큰 곤란 때 벗이 옴이로다.’ 하였다.
강양(剛陽)하고 중정(中正)한 인군이지만 바야흐로 큰 곤란 속에 있게 되어, 강양하고 중정한 신하의 도움을 얻지 않으면 천하의 곤란을 구제할 수 없는 것이다.
예부터 성왕(聖王)들이 천하의 곤란을 구제할 적에, 성현의 신하가 협조하여 줌으로써 되지 않은 분이 있지 않았으니, 탕왕(湯王)이나 무왕(武王)이 이윤(伊尹)과 여상(呂尙)을 얻은 것이 이것이다.
중간쯤 범상한 임금으로 강명(剛明)한 신하를 얻어 큰 곤란을 구제한 분도 있으니, 유선(劉禪)이 제갈공명(諸葛孔明)을, 당숙종(唐肅宗)이 곽자의(郭子儀)를, 덕종(德宗)이 이성(李晟)을 얻은 것이 이것이다.
비록 현명한 인군이라도 만약 그런 신하가 없으면 곤란에서 구제될 수 없는 것이다.
대체로 신하가 인군보다도 어질면 인군을 보필하되 그 인군이 능하지 못한 바로써 하는 것이나, 신하가 임금에게 미치지 못하면 협조할 뿐이다. 그러므로 큰 공을 세우지 못하는 것이다.

 

 

군덕은 만물 위에 뛰어나야 한다[君德首出庶物]

 

삼봉집 제12권 > 의논(議論)

 

【안】 이 편은 《주역》 괘(卦)의 오효(五爻)에 대한 정자(程子)가 지은 전(傳)의 설명을 편집한 것이다.
건괘(乾卦)의 단사(彖辭)에 ‘만물 위에 뛰어나매 만국이 모두 편안하게 된다.’고 하였다.
하늘은 만물의 조(祖)가 되고 임금은 만방(萬邦)의 종(宗)이 되는 것으로서, 건도(乾道)가 만물 위에 뛰어나매, 오만 가지 것이 잘 되어 가고, 군도(君道)가 임금의 자리에 존대하게 임하매, 사해(四海)가 따르게 되는 것이니, 임금된 분이 천도를 본받아 하면 만국이 모두 편안하게 되는 것이다.

오효(五爻) : 역(易)의 1괘(卦)는 6효(爻)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아래에서부터 세는데 다섯째의 효를 말한다. 양위(陽位)로서 신분의 위치로는 임금의 자리이다.

[건괘(乾卦)]

홍재전서(弘齋全書) > 홍재전서 제101권 > 경사강의(經史講義) 38 ○ 역(易) 1

 

경사강의(經史講義) 38 ○ 역(易) 1 계묘년(1783, 정조7)에 선발된 이현도(李顯道)ㆍ조제로(趙濟魯)ㆍ이면긍(李勉兢)ㆍ김계락(金啓洛)ㆍ김희조(金煕朝)ㆍ이곤수(李崑秀)ㆍ윤행임(尹行恁)ㆍ성종인(成種仁)ㆍ이청(李晴)ㆍ이익진(李翼晉)ㆍ심진현(沈晉賢)ㆍ신복(申馥)ㆍ강세륜(姜世綸) 등이 답변한 것이다

 

선대 학자의 말에 의하면 “《역경(易經)》은 세 성인(聖人)을 거쳐서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세 성인은 곧 복희(伏羲)ㆍ문왕(文王)ㆍ공자(孔子)를 가리켜 말한 것으로, 주공(周公)은 문왕에게 포함시켰다. 복희는 아주 오래된 분이니 문왕과 주공, 공자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건(乾) 자 아래의 원형이정(元亨利貞)은 문왕의 단사(彖辭)이고, 초구(初九) 아래의 잠룡물용(潛龍勿用)은 주공의 효사(爻辭)이며, 단왈(彖曰)과 상왈(象曰)은 공자가 경(經)을 풀이한 말로서, 이것이 바로 대상(大象)ㆍ소상(小象)ㆍ단전(彖傳)ㆍ상전(象傳)이다.
성인의 생각은 다름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원형이정으로 말하자면, 크게 형통함을 위주로 하고 이로움이 정고(正固)함에 있는 것은 문왕의 생각이고, 공자의 경우는 네 덕으로 나누어서 말하였으니, 이는 공자의 생각이 문왕과 다른 것이다. 단사와 효사로 말하자면, 단사에서는 ‘순전히 길하여 허물이 없는 것’이라도 효사에서는 “쓰지 말라.[勿用]”고 하고 “위태롭다.[厲]”고 하고 “후회가 있다.[有悔]”고 하였으니, 이는 주공의 생각이 문왕과 다른 것이다. 괘사(卦辭)와 효사, 계사(繫辭)에서는 점서(占筮)의 응용을 위주로 말하였으나 단전과 상전에서는 오직 성인의 지위와 덕망의 측면에서만 말하였으니, 이는 또 공자의 생각이 문왕과 주공과 다른 점이다. 원형이정을 이미 네 덕으로 나누어 놓고서도 둔괘(屯卦) 이하에서는 문왕의 생각을 따랐으니, 이는 공자의 말이 또 그 자체로도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모두 《역경》의 중요한 강령(綱領)인데, 성인이 입언(立言)하여 가르치신 말씀이 이렇게 다르니, 어느 것을 따라야 하겠는가?

[윤행임(尹行恁)이 대답하였다.]
《역경》 한 부(部)가 세 성인을 거쳐서야 비로소 크게 갖추어졌으니, 말의 표현은 비록 다르나 그 뜻은 같습니다. 왜냐하면, 문왕이 괘사(卦辭)를 붙이게 된 것은 복희의 괘(卦)에 미비한 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서, 원형이정이란 네 글자에는 이미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괘의 기본 덕만을 말하고 괘의 응용은 말하지 않았으므로 주공이 효사를 붙이게 된 것인데, 효(爻)는 움직여 변하는 것으로서 길(吉)ㆍ흉(凶)ㆍ회(悔)ㆍ인(吝)이 거기에서 생깁니다. 그래서 “쓰지 말라.”고 하고 “후회가 있다.”고 하고 “위태롭다.”고 하고 “흉하다.”고 하였으나, 사실은 그것이 문왕의 괘사 속에 들어 있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학설을 내세움에 있어서는 상(象)과 수(數)를 근본으로 하여 점(占)으로 쓰이는 것뿐이었고, 행사(行事)에 절실한 의리(義理)에 대해서는 그래도 미비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자가 단전과 상전을 지어서 네 덕의 명목(名目)을 나누고 성인의 지위를 설명하여 문왕과 주공 때의 미비한 점을 보완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공의 역(易)은 곧 문왕의 역이고 공자의 역은 곧 주공의 역이니, 이 어찌 다른 가운데에서도 자연 공통점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둔괘(屯卦)에서 말한 원형이정의 경우는 다시 “크게 형통함을 위주로 하고 이로움이 정고함에 있다.”고 풀이하였는데, 그것이 어찌 문왕의 본뜻이 건괘(乾卦)에는 쓰이지 않고 둔괘 이하에만 처음으로 쓰여서 그러한 것이겠습니까. 진실로 네 덕을 완전히 겸한 것이 건괘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건괘의 다섯 효(爻)는 모두 용(龍)이라 일컬었는데 구삼(九三)에 대해서만 용이라 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운봉 호씨(雲峯胡氏 호병문(胡炳文))는 “삼효(三爻)와 사효(四爻)는 사람의 자리이기 때문에 삼효는 용이라 하지 않고 군자(君子)라 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만약 그 말대로라면 사효에서는 어찌하여 “혹 뛰어오른다.[或躍]”고 하였는가? 단사(彖辭)에서 육위(六位 육효(六爻)를 가리킴)라고도 하고 육룡(六龍)이라고도 하였는데,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육허(六虛 육위(六位)를 가리킴)를 종합적으로 가리킬 때는 육위라 하고, 육획(六畫)만을 가리킬 때는 육룡이라 한다.”고 한다. 과연 그러한 것인가? “내괘(內卦)는 덕학(德學)으로 말하고 외괘(外卦)는 시위(時位)로 말한다.”고 한 것은 무슨 말인가? 어찌하여 공부의 조건(條件)이 되며, 어찌하여 공부의 공정(功程)이 되며, 어찌하여 성(誠)은 건괘(乾卦)의 한 획[一畫]에서 나오고, 어찌하여 경(敬)은 곤괘(坤卦)의 한 획에서 나오는가? 이 몇 가지 학설에 대해 상세히 듣고 싶다.

[김희조(金煕朝)가 대답하였다.]
문언(文言)에 이르기를, “강이면서도 중은 아니다.[剛而不中]”라고 하였고, 또 “가운데로는 사람의 자리에 있지 않다.[中不在人]”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볼 때 구사(九四)가 비록 사람의 자리이기는 하나 사람 자리의 정위치는 아니고 구삼만이 사람 자리의 정위치에 있으니, 그 점이 바로 다른 효의 예(例)를 바꾸어 용이라 하지 않고 군자라 한 까닭입니다. 그리고 그 위치는 실제로 있는 자리가 아니고 그 용은 가설적인 말이니, 단사에서 말한 육위는 사실 육허를 종합적으로 가리킨 것이고, 단사에서 말한 육룡은 사실 육획만을 가리킨 것입니다. 내괘의 덕학과 외괘의 시위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논하면, 덕학을 말할 적에는 시위가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고 시위를 말할 적에는 덕학이 그 가운데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 덕을 닦은 뒤에 때에 따른 일을 행하고 학문이 밝아진 다음에 그 지위에 처하는 것에 대해서만은 분명히 내외(內外)와 선후(先後)의 순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덕학은 내괘에서 말하고 시위는 외괘에서 말한 것이니, 이는 성인(聖人)이 《역경》을 만든 깊은 뜻일 것입니다. “충과 신을 쌓는 것이 덕을 향상시키는 것이다.[忠信進德]”라고 한 것과 “할 말 안 할 말 가려 하여 성을 세운다.[修辭立其誠]”라고 한 것은 이른바 공부의 조건(條件)이고, “이를 데를 안다.[知至]”고 한 것과 “마칠 데를 안다.[知終]”고 한 것과 “기미에 대해 함께 대처할 만하다.[可與幾]”고 한 것과 “의리를 함께 보존할 만하다.[可與存義]”고 한 것은 이른바 공부의 공정(功程)입니다. 선대 학자들의 학설은 명확하여 의거(依據)할 만한 것입니다. 건괘의 한 획에서 성(誠)이 생기는 것은 그 양(陽)이 실(實)하기 때문이고, 곤괘의 한 획에서 경(敬)이 생기는 것은 그 음(陰)이 허(虛)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이(九二)에서 어찌하여 성을 말하고 육이(六二)에서 어찌하여 경을 말하였겠습니까.


이상은 건괘(乾卦)이다.

 

 

 

 

 

 

홍재전서(弘齋全書) > 홍재전서 제105권 > 경사강의(經史講義) 42 ○ 역(易) 5

 

경사강의(經史講義) 42 ○ 역(易) 5 갑진년(1784, 정조8)에 선발된 이서구(李書九)ㆍ정동관(鄭東觀)ㆍ한치응(韓致應)ㆍ한상신(韓商新)ㆍ홍의호(洪義浩) 등이 답변한 것이다

 

[건괘(乾卦)]

 

 

건(乾)이라고 한 이름의 의의(意義)를 자세히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성정(性情)으로 말할 때는 건이라고 한다.”고 하였는데, 그 성(性) 자는 오로지 이치로 말한 것인가, 아니면 기질(氣質)로 말한 것인가? 주자(朱子)는 논(論)하기를, “건은 하늘의 성정이다.”라고 하여 이치를 가리켜 말하였고, 또 말하기를, “강건(剛健)함은 바로 하늘의 품성(品性)이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의 성(性)은 사람의 기질과 같은 것이다. 이미 이치라고 하고 또 기질이라고 하였으니, 어쩌면 그렇게도 그 말의 앞뒤가 모순되는가? 주자가 또 말하기를, “정(靜)은 성(性)이고 동(動)은 정(情)이다.”라고 하였다. 저 강건하여 쉼이 없는 것을 건이라고 한다면 정이라고 할 경우 이는 곧 건이 아니다. 그리고 동함을 양(陽)이라 하고 정함을 음(陰)이라고 하는데 건은 순양괘(純陽卦)이니 동함은 있고 정함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주자는 동정(動靜)을 겸하여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정동관(鄭東觀)이 대답하였다.]
건(乾)의 강건(剛健)함은 대개 그 순양(純陽)의 기(氣)로 말미암은 것이니, 여기서의 성(性) 자는 마땅히 기질(氣質)의 성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순양이 강건할 수 있는 것은 곧 자연의 이치이니, 주자의 앞뒤 논리는 신(臣)은 서로 밝혀 준 것이지 피차에 모순이 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이를 크게 나누면 동(動)은 양이고 정(靜)은 음이지만, 세밀하게 나누면 양 속에도 정이 있고 음 속에도 동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건괘(乾卦)로 말하면, 초구(初九)에서 “잠긴 용이니 쓰지 말라.”고 한 것은 곧 양 속의 정입니다. 그러나 그 지극히 정한 속에도 지극히 동하는 이치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강건한 사람은 비록 조용히 앉아 있을 때라도 항상 움직일 생각이 있는 것과 같으니, 그것이 이른바 “강건하여 쉼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원형이정(元亨利貞)’을 《정전(程傳)》에서는 네 가지 덕(德)으로 풀이하였는데, 주자(朱子)는 점사(占辭)로 보고서 “크게 형통하며 정고(貞固)함이 이롭다.”고 하였다. 이것은 책 첫머리의 제일가는 의의(意義)인데, 정자와 주자의 말이 이렇게 차이가 나니 어느 학설을 따라야 하겠는가? 문언(文言)에서는 “원(元)은 선(善)의 으뜸이고, 형(亨)은 아름다움의 모임이고, 이(利)는 의(義)의 조화이고, 정(貞)은 일의 근간이다.”라고 하였고, 한(漢) 나라와 당(唐) 나라 이후로 여러 학자들이 모두 네 가지 덕으로 설명한 것도 대개 전수(傳受)한 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자같이 성인(聖人)을 돈독하게 믿는 이로서 문언의 훈고를 따르지 않고, 아름답지 못하다는 비평을 감수하면서까지 당당하게 점사로 단정을 지은 것은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인데, 자세히 말해 줄 수 있겠는가?

[정동관이 대답하였다.]
주자가 반드시 점사로 풀이한 것은 다른 괘(卦)의 용례(用例)와 같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주자어류(朱子語類)》에 “문왕(文王)의 뜻은 ‘크게 형통하며 정고함이 이롭다’고만 말한 것이지 애당초 네 계절(季節)에 분배한 것이 아닌데, 공자(孔子)가 이 네 글자의 의미가 좋은 것을 발견하고 비로소 네 가지로 나누어 말하였으니, 공자의 역(易)은 문왕의 역과 약간 차이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주자의 《본의(本義)》는 애당초 문언(文言)의 뜻에 어긋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지가 않다. 여러 괘(卦)의 점사(占辭)를 고찰하여 보면 ‘원길(元吉)’이니 ‘광형(光亨)’이니 ‘무불리(無不利)’니 ‘안정(安貞)’이니 ‘간정(艱貞)’이니 하는 유(類)는 모두 네 가지로 나누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오직 곤괘(坤卦) 단사(彖辭)에서 “암말의 정(貞)함이 이롭다.”고 한 것과 “서남(西南)은 벗을 얻음이니 이롭다.”고 한 것은 이(利) 자를 가지고 아래의 글을 거꾸로 해석한 것과 같다. 그러나 선대 학자들 가운데 ‘원형이(元亨利)’를 한 구(句)로, ‘빈마지정(牝馬之貞)’을 한 구로 보며, ‘득주리(得主利)’를 한 구로, ‘서남득붕(西南得朋)’을 한 구로 보는 이가 있는데, 이렇게 보면 문자(文字)가 순조로워 이치에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어찌 문왕의 본뜻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원형이정(元亨利貞)’의 네 글자가 여러 괘에 섞여 나오는 것에 대하여 모두 네 가지 덕으로 풀이하는 것도 무슨 불가함이 있겠는가? 그리고 《좌전(左傳)》에 목강(穆姜)이 점(占)으로 “원형이정하니 허물이 없을 것이다.”라고 한 수괘(隨卦)의 점사를 얻고서 말하기를, “네 가지 덕이 나에게는 모두 없으니 어떻게 허물이 없겠는가?” 하였다. 그때는 문언(文言)이 나오기도 전이었는데 목강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으니, 네 가지 덕으로 보는 학설은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다. 어찌 문왕의 시대에는 본래 네 계절에 분배하지 않았던 것을 공자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네 가지로 말한 것이겠는가?

[정동관이 대답하였다.]
주자가 일찍이 “《주역》은 복서(卜筮)를 위해서 만든 책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본의》에서 풀이한 것은 점사를 위주로 한 것이 많습니다. 진실로 점사를 위주로 하면 건(乾)의 ‘원형이정(元亨利貞)’도 반드시 “크게 형통하며 정고(貞固)함이 이롭다.”고 풀이하여야 그 뜻이 더 정밀할 것 같습니다. 목강(穆姜)이 네 가지 덕을 말한 것과 같은 경우는 선대 학자가 이는 좌씨(左氏)가 꾸며 넣은 것이라고 하였으니, 아마도 그것을 증거로 삼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그 오직 성인(聖人)뿐인가. 진퇴(進退)와 존망(存亡)의 이치를 알아서 그 정도(正道)를 잃지 않는 이는 성인뿐이다.”라고 하였는데, 위아래의 몇 구절 안에서 ‘성인’을 거듭 말한 것은 무슨 뜻인가? 《본의(本義)》에서는 다만 처음에는 설문(設問)을 하고 마침내는 스스로 응답하는 것으로 풀이하였으나, 한상 주씨(漢上朱氏 주진(朱震))는 말하기를, “사람은 진실로 진퇴와 존망에 대해서 알고는 있으나, 그 도가 성인과 어긋나게 되면 반드시 정도(正道)를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성인만은 진퇴와 존망의 기미를 알고 또 그 정도를 잃지 않을 수 있으므로, 성인이라는 말을 두 번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이 더 정밀한 것 같은데, 강원(講員)들의 뜻은 어떤지 모르겠다.

[홍의호가 대답하였다.]
이 구절의 처음과 끝에서 성인을 거듭 말한 것은 다만 기결(起結)의 문법입니다. 한상 주씨의 말은 교묘한 폐단이 있으니, 아마도 《본의》를 정론(正論)으로 삼아야 할 듯합니다.


 

이상은 건괘(乾卦)이다.


기결(起結) : 시문(詩文) 등의 기구(起句)와 결구(結句)를 가리키는 것으로, 시작한 말에 대해 결론을 맺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건룡사효설(乾龍四爻說)

 

하곡집(霞谷集) > 존언 > 존언(存言)

 

존언(存言) 상(上)존언(存言)《존언》은 하곡의 도학사상 특히 그의 양명(陽明) 사상이 가장 뚜렷하게 표현된 주요한 저술이다. 그러나 그의 《연보》에는 저록되지 않았으면서, A, B, C본에는 모두 수록되었고, A본에서는 8책과 9책에 수록되었는데, 여기서는 이에 따라서 국역하는 것이다. 역문에서는 역자가 편의상 장(章) 위의 아라비아 숫자를 붙인 것이다.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여섯 용(龍)에서 그 쓰이는 것은 네 용(龍)이다. 잠겼던 데를 떠나서[離潜] 초효(初爻)이다. 밭에 나와 가지고[出田] 2효(二爻)이다 세상 사람들의 보는 바가 되니, 현룡(見龍)이다. 땅에서 멀리 떨어져[絕地] 2효와 3효이다. 하늘을 날아 가지고[飛天]는 5효이다. 만물이 보는 것이 되니 비룡(飛龍)이다. 땅에도 있지 않고 2효이다. 하늘에도 있지 않아서 5효이다.인위(人位)로 경계하는 것은 3효이다 건룡(乾龍)이다. 혹은 오르기도 하고 뛰는 것은 안 괘의 상효(上爻)[躍內上]이다 혹은 내리기도 하며 못은 바깥 괘인 하효(下爻)[淵外下]이다. 밖에 있으면서 속을 비우는 것[處外虛中]은 4효이다. 연룡(淵龍)인 것이다. 현룡(見龍)은 내괘(內卦)의 가운데 것이니 용(龍)의 덕(德)에다가 정하고 중[正中]한 안 괘의 가운데[內中] 까닭에 이르기를 현(見)이라 하고, 비룡(飛龍)은 바깥 괘의 가운데 것이니 중(中)하며 바깥 괘의 중[外中]이다. 정(正) 양효(陽爻)로서 양위(陽位)에 있다.이고 높은 자리에 있는[居尊] 5효의 자리이다. 까닭에 비(飛)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덕이 같은 자라야 서로 만나 봄이 이로운 것이다.
건룡(乾龍)이란 것은 안 괘의 위로서 이미 하늘에서는 멀어졌고 5효이다. 또한 땅에서도 올라갔으니 곧 사람의 자리가 되는 것이다. 그 덕은 거듭 강(剛)하고 양효(陽爻)로서 양위(陽位)에 있다. 지위가 중(中)에 있지 아니하니 곧 3효의 자리이다. 위태한 때인 것이다. 그러므로 건(乾)이라고 하는 것이니 건건(乾乾 꾸준히 힘쓰는 모양)하고 조심하라[惕]는 것이다.
연룡(淵龍)이란 것은 바깥 괘의 아래로서 이미 사람 3효이다. 과 땅 2효이다. 에서 떠났으나 또한 하늘에는 5효이다. 이르지 못하였으니, 곧 가운데가 빈자리이므로 혹 뛸 수도 있고 땅을 떠나서 나아갈 수도 있다. 또한 못에 있을 수도 있으니 아래에 있으니 물러갈 수 있다. 안정된 때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못에 있으면서 혹 뛰기도 할 뿐더러 아래이면서도 바깥 괘의 하효(下爻)이며 또한 4효는 음효(陰爻)이다. 땅의 자리가 아닌 안 괘가 아니다. 까닭에 연(淵)이라고 하는 것이다. 위이면서도 안 괘의 상효(上爻)이며 또한 9효의 양효(陽爻)이다. 하늘의 자리는 아닌 것이니 5효가 아니다. 뛴다는 것은 허공의 물건이다[躍者 處之物也].
밭이여[田乎]! 중(中)이 아니고서는 밭이 될 수 없고 쌓이지 않고서는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쌓기를 두터이하여서 중(中)에 있어야 하는 것이니 어찌 힘쓰지 아니하겠는가? 용언(庸言)과 용행(庸行)의 한 장(章)을 사용할 것이다. 건(乾)이여! 강(剛)하고서는 위태롭지 않을 자가 있지 않고 조심하고서는 불안할 자가 있지 않는 것이다. 종일토록 건건하고 때로 조심하여서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충신(忠信)과 수사(修辭)의 한 장을 사용할 것이다. 못이란[淵也] 나아가면 뛸 수 있고 물러나면 못이 있으니 덕을 쌓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 나아가는 소이(所以)가 되는 것이다. 욕급시(欲及詩)의 한 장을 사용할 것이다.
하늘[天也]이란 중정(中正)한 덕으로 찬(贊)함 까닭에 하늘인 것이요, 신묘(神妙)하게 변화(變化)하는 공화(工化)로 찬(贊)함 까닭에 나르[飛]는 것이니, 오직 그 덕이 부합되어야만 九五효는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으므로 덕이 같은 이끼리 보아야만 이롭다는 것이 한 가지 뜻임 이에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여천지합덕(與天地合德)의 한 장을 사용할 것이다.
아! 밭과 하늘의 덕은 지위가 진실로 왕성하니 그것을 확충하자면 실로 어려우니 건(乾)과 연(淵)의 경계이다. 처한 때가 진실로 위태로우니 그것을 돌이킴에 요정이 있도다. 세력이 왕성하기만 하고 덕을 가득 채우지 않는다면 날고[飛] 나타날[見] 수 있겠는가? 그리고 위태롭다 하더라도 조심할 수만 있다면 홀로 형통할 수 없겠는가? 그렇다면 나아가고 물러나는 기틀에는 저것이나 이것이 따로 없는 것이며 길하고 흉한 형상(形相)에도 일정한 등급이 없는 것이니 재기(才器)에 따라서 힘써야 할 것은 각각 그 효(爻)마다 있는 것이다.

건룡사효설(乾龍四爻說) : 본 장은 《주역》의 건괘에 대한 그의 의견이다. 《주역》은 원래 주 나라의 문왕(文王) 때의 역(易)을 말하지만, 여기에서의 《주역》은 일반 관례대로 역(易)을 말하는 것이다. 《주역》은 8괘(卦)와 64괘(卦) 및 괘사(卦辭), 효사(爻辭), 십익(十翼) 등으로 되었으며, 괘는 복희씨(伏羲氏)가 만들고 괘사(卦辭)는 문왕이 만들었으며, 효사는 주공(周公)이 만들고 십익(十翼)은 공자가 만들었다고 하며, 괘사와 효사를 합하여 계사(繫辭)라고 한다. 주역의 작자나 성립 연대에 대한 논란(論難)은 여기에서 피하기로 하거니와 그 구성은 음양(陰陽) 이원론을 그 원리로 하여 우주와 만물(萬物)의 생성 변화의 원리를 풀되 이를 괘와 효로써 표시한 것이다. 괘는 효로 구성되었고 효에는 양효와 음효가 있으며 양은 ‘−’, 음은 ‘ꁌ’로 표시하여 각각 하늘과 땅을 말하고 효 세 개를 한 괘로 만듦으로써 천ㆍ지ㆍ인(天地人)의 삼재(三才)를 의미하였고 이를 소성괘(小成卦)라 하며, 이를 합칠 때는 상하의 괘가 되는데 이를 합칭하여 대성괘(大成卦)라고 한다. 위의 소성괘를 상괘(上卦) 또는 외괘(外卦)라 하고 아래의 소성괘를 하괘(下卦) 또는 내괘(內卦)라 하며 효는 아래에서부터 차례로 초효(初爻), 이효(二爻), 삼효(三爻), 사효(四爻), 오효(五爻) 및 상효(上爻)라고 한다. 양효인 때는 초양(初陽), 이양(二陽)……상양(上陽)이라고 하며 음효인 또는 초음(初陰), 이음(二陰)……음(上陰)이라고 하고 원문에서는 양효는 구(九), 음효는 육(六)으로 표시하여 양효는 初九, 九二, 九三, 九四, 九五, 上六으로 되었고 음효는 初六, 六二, 六三, 六四, 六五, 上六으로 각각 쓰였다. 이 관계를 도표로 하면 다음과 같다.

 

 

건괘(乾卦)는 64괘의 첫째 괘이니 ‘☰’으로 표시되었고 대성괘를 만들면 [☰☰]로 되며 건위천(乾爲天), 즉 건은 하늘이 되는 것이므로 잠복(潜伏)에서 비약(飛躍)에 이르는 만물의 생성, 변화, 발전의 과정을 효(爻)로써 표현하였으며 초효에서 상효에 이르는 과정은 육룡(六龍)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기상에 비유하였다. 그리고 《존언》에 있는 육룡(六龍)은 바로 대성괘인 6효를 말한 것이며 하곡은 이 중에서 초구(初九)인 잠룡(潜龍)과 상구(上九)인 항룡(亢龍)은 빼고 현룡(見龍), 건룡(乾龍), 비룡(飛龍), 연룡(淵龍)의 넷만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주역(周易)》 건괘(乾卦)의 여섯 용(龍) : 《주역》 건괘의 여섯 용은 사실상 건괘 효사에는 초구(初九)를 잠룡(潜龍), 구이(九二)를 현룡(見龍), 구오(九五)를 비룡(飛龍), 상구(上九)를 항룡(亢龍)이라고 말했을 뿐인데 하곡이 구삼(九三)을 건룡(乾龍), 구사(九四)를 연룡(淵龍)이라고 말한 것이다. 《역》 건괘단(彖)에, “크도다,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비로소 시작되었으니 하늘을 통괄하며 …… 육위(六位)가 때맞추어 타고서 하늘을 나르며 다스렸다…….”고 하였다. 한편 “初九潜龍勿用”의 6자는 양명(陽明)이 “역(易)의 상(象)은 초획(初劃)인 것이고 역의 변(變)을 당하는 것이며 역의 점(占)은 그 사(辭)를 쓰는 것이라.”고 하였다. 《전습록 상》
비룡(飛龍) : 《역》에 현룡은 밭에 있고[在田] 비룡은 하늘에 있으며[在天] 모두 대인(大人)을 보는 데 이(利)롭다고 하였다.
인위(人位) : 인위는 사람의 자리인데 《역》의 괘는 6효를 상ㆍ하괘로 나누되 그것은 각각 위의 것은 천위(天位)이고, 아래 것은 지위(地位)이며 중간 것은 인위(人位)이다.
용(龍)의 덕(德) : 용은 하늘을 나르고 운우(雲雨)를 일으키며 만물의 조화를 이루게 하는 만큼 정전(程傳)에도 “용은 영변불측(靈變不測)한 동물이며 건도(乾道)의 변화와 양기(陽氣)의 소식과 성인(聖人)의 진퇴를 상징하는 것이라.” 하였는데, 《역》 구이(九二) 문언(文言)에 공자(孔子)가 “ 용덕이정중자(龍德而正中者)”라 한 데서 인용한 것이고, 《역》 효사(爻辭)에는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보기에 이(利)롭다고 하였다.
비룡(飛龍)은 …… 하는 것이다. : 상괘와 하괘의 각 효(爻)가 서로 음양 관계로 대응(對應)되게 마련인데 대응 관계를 건괘의 5효와 2효는 모두 양효(陽爻)로서 가운데 자리에 있으므로 중정(中正)이라 하고 군신(君臣)의 자리에 비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덕이 같은 자라야 서로 만나봄이 이로운 것이다. : 《역》 구오(九五)의 문언에 공자가 이르되, “동성은 상응하고[同聲相應] 동기는 상구한다[同氣相求].”고도 하였다.
건(乾)이라고 …… 조심하라[惕]는 것이다. : 《역》 건괘 구삼(九三)에, “종일 꾸준히 힘쓰고 저녁에도 조심하면 위태한 자리에 있어도 허물이 없다.[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無咎]”고 하였다.
밭이여[田乎]! …… 아니겠는가? : 전(田)은 땅의 뜻이며 그 효는 안 괘의 중효인 때문이다.
용언(庸言)과 용행(庸行)의 한 장(章)을 사용할 것이다. : 용언은 보통 말이고 용행은 보통 행동이니, 《역》 구이(九二)의 문언에 공자의 이른 조목임. 《상산집(象山集)》 29卷에는, “언행의 신근(信謹)은 둘이 나[己]를 이루는 소이다…….”이라고 하였다.
건(乾)이여! : 멈추지 않고 나가는 것이며 《역》 구삼(九三)에, “건건 인기시이척 수위무구의(乾乾 因其時而惕 雖危無咎矣)”라고 하였다.
여천지합덕(與天地合德)의 …… 것이다. : 구사(九四)효의 문언에 “대인은 천지와 더불어 덕을 합하고 일월과 더불어 그 밝음을 합한다…….”고 하였다. 《주역 본의(周易本義)》에는, “사람과 천지. 귀신은 본래 두 가지 이(理)가 아니라.”고 하였다.
밭과 하늘의 덕 : 2효와 5효, 즉 안 괘와 바깥 괘의 중효(中爻)를 말한다.
건(乾)과 연(淵)의 경계 : 3효와 4효, 즉 과도기(過渡期)로서 지위를 얻지 못하는 어려운 때를 뜻한다.
길하고 흉한 형상(形相)에도 일정한 등급이 없는 것이니 재기(才器)에 따라서 힘써야 할 것은 각각 그 효(爻)마다 있는 것이다 : 위치와 효상(爻象)으로 보아서, 2효와 5효는 출세한 사람에 비유하고 3효와 5효는 불우(不遇)한 사람에 비유된다.

 

 

건괘(乾卦) 상구(上九) 강의(講義)

퇴계집(退溪集) > 퇴계선생문집 제7권 > 경연강의(經筵講義)

 

 

〈문언(文言)〉에 이르기를, “‘극한까지 오른 용[亢龍]이니 후회함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한 것인가? 공자가 말하기를, ‘존귀하되 지위가 없고, 높되 백성이 없으며, 어진 사람이 아래 자리에 있어서 보필(輔弼)을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움직이면 후회함이 있다.’ 하였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항(亢)이라는 말은 전진할 줄만 알고 후퇴할 줄 모르며, 보존하는 것만 알고 멸망하는 것은 알지 못하며, 얻는 것만 알고 잃는 것은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오직 성인(聖人)만이 전진하고 후퇴하며 보존하고 멸망하는 것을 알아 그 바른길을 잃지 않으니, 오직 성인만이 이렇게 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신(臣)은 아룁니다. 임금은 권세와 지위가 지극히 높습니다. 진실로 전진하는 일이 극도에 도달하면 반드시 후퇴하게 되고, 보존하는 것은 반드시 멸망하게 되며, 얻으면 반드시 잃는 일이 있다는 이치를 알지 못한 채 극한으로 높고 가득 차게 되면 의지와 기개가 교만하고 넘쳐서 어진 이를 업신여기고 스스로 성인인 체하며 혼자만의 지혜로 세상을 다스리려 하고, 신하와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며 덕(德)을 같이하여 성의로 서로 믿음을 주고받아 함께 나라 다스리는 도리를 이룩하려고 하지 않아 은택이 백성에게 내려가지 않습니다. 비유하자면 양기(陽氣)가 극도로 높이 올라가서 아래로 내려와 교류함이 없으면 음기(陰氣)가 스스로 올라가서 양기와 교류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어찌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이루어 은택이 만물에 미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이른바 ‘극한까지 오른 용이니 후회함이 있다는 것은, 궁극에 도달한 재난’이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옛날의 현명한 군주는 깊이 이치를 알아 항상 스스로를 낮추고 굽히며 겸손하고 공경하여 자신을 비우는 것으로 도리를 삼은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일컬어 ‘덕이 부족한 사람[寡人]’ㆍ‘박덕한 사람[涼德]’ㆍ‘어린 나[予小子]’ㆍ‘보잘것없는 어린 나[眇眇予末小子]’라고 하였습니다. 그들 스스로 이와 같이 처신하면서 오직 혹시라도 교만하고 넘치고 자만하여 위태롭고 패망하는 환난에 이를까 두려워하였습니다. 이른바 가득 찬 것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극도에 이르기 전에 방지한다면 후회 있을 자가 후회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사〉에 이르기를, “위태로움을 걱정하는 자는 그 지위를 편안하게 할 수 있고, 멸망을 걱정하는 자는 그 존재를 보존할 수 있고, 어지러움을 걱정하는 자는 그 다스림을 이룰 수 있는 자이다.” 하였습니다. 《주역》에 “망할까 망할까 하고 두려워하여야 총생하는 뽕나무에 매어 놓은 것처럼 튼튼하다.” 하였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명(聖明)께서는 항상 이를 경계하시어서 극도로 높고 가득찬 마음 때문에 후회하는 일이 없게 하신다면 국가에 큰 행복이 되겠습니다.


건괘(乾卦) 상구(上九) : 건괘라 함은 3획괘로서의 과 6획괘로서의 를 말하는데, 《역경(易經)》의 64괘 중에서 제일 첫머리에 나오는 괘로서 가장 으뜸 되는 괘이다. 상구라 함은 제일 윗자리에 있는 양효(陽爻)를 말한다. 원래 6획괘는 6개의 효(爻)가 모여 한 괘를 구성한다. 그것을 아래에서부터 초효(初爻)ㆍ2효ㆍ3효ㆍ4효ㆍ5효ㆍ상효(上爻)라 부르며, 또 양효(陽爻)를 9, 음효(陰爻)를 6이라 한다. 따라서, 상구는 상효가 양효인 경우이다. 양효는 강강(强剛)한 것을 상징하고, 음효는 유순한 것을 상징한다. 그런데 건괘는 6효가 전부 양효만으로 구성되어서 가장 강강한 것을 상징하는 것인데, 그것의 최상의 위치인 상효가 양효인 건괘의 상구는 가장 상승의 극한 상태, 강성의 절정을 의미한다. 사람 특히 군왕은 이러한 최고의 상태에서 근신하고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언(文言) :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에 한하여 그 괘사(卦辭)ㆍ효사(爻辭)를 확대하여 해석한 글인데, 공자가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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