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헌선생속집 제5권_ 잡저(雜著)_ 녹의사질(錄疑竢質)
제목을 ‘녹의사질(錄疑竢質)’이라 하였는데, 의(疑)는 감히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말이다. 이미 어리석은 소견이 있으므로 우선 한 가지 설(說)을 구비하여 기록해 두어 후세의 군자가 취사선택하기를 기다리는 바이다. 내 어찌 스스로 자신의 견해를 옳다 하여 반드시 참람하고 망녕된 죄를 범하겠는가. 이것을 보는 자들은 부디 나의 이러한 심정을 용서해 준다면 다행이겠다.
《대학(大學)》·《중용(中庸)》 두 편(篇)은 본래 《대기(戴記)》가운데에 실려 있었는데, 송(宋) 나라의 두 정자(程子)가 비로소 이 책을 높이고 믿어 세상에 널리 알렸다. 《대학》은 경문(經文)과 전문(傳文) 및 삼강령(三綱領)과 팔조목(八條目)이 있는데,옛 책에는 착간(錯簡)이 많으므로 두 정자가 각기 개정(改正)한 것이 있고 주자(朱子)가 또 두 정자의 개정한 것을 가지고 다시 차례를 만들었다.
‘지지(知止)’와 ‘물유(物有)’의 두 절(節)이 경문의 첫머리 삼강령의 아래에 있는 것이 원본(元本)이니, 명도(明道)와 이천(伊川)이 모두 이것을 따랐고 회암(晦菴 주자(朱子)의 별호)도 이것을 따랐다.
‘자왈(子曰)’의 한 절(節)이 원본에는 ‘지어신(止於信)’ 아래에 있었는데, 명도가 개정하여 위로 ‘시운첨피(詩云瞻彼)’와 ‘시운오호(詩云於戱)’의 두 절(節)에 연결하여 평천하장(平天下章)의 ‘시운절피(詩云節彼)’의 절(節) 아래에 두었으며, 이천(伊川)은 이것을 개정하여 아래로 ‘차위지본(此謂知本)’과 ‘차위지지(此謂知之)’의 두 절을 연결하여 경문의 아래에 두었으며, 회암은 이것을 개정하여 본말(本末)을 해석한 것이라 하고 지지선장(止至善章)의 아래에 두었다.
‘차위지본(此謂知本)’과 ‘차위지지(此謂知之)’의 두 절은 원본에는 경문의 아래에 있었는데, 명도는 그대로 따랐으나 이천은 위로 ‘자왈(子曰)’의 한 절을 연결하여 또한 경문의 아래에 두었으며, 회암은 개정하여 두 절을 ‘자왈(子曰)’의 절에 두어 본말장(本末章)의 아래로 삼고는 위의 ‘차위(此謂)’는 연문(衍文)이라 하고 아래의 ‘차위(此謂)’는 격물치지장(格物致知章)을 끝맺은 말이라 하였으며, 격물(格物)·치지(致知)의 전문(傳文)의 전문(全文)은 빠졌다 하고 정자의 뜻을 취해서 ‘간상(間嘗)’의 한 단락을 지어 그 빠진 부분을 보충하였다.
그 후에 문정공(文靖公) 동괴(董槐)와 승상(丞相) 섭몽정(葉夢鼎), 문헌공(文憲公) 노재(魯齋) 왕백(王柏)이 모두 이르기를 “전문(傳文)이 일찍이 빠진 것이 없으므로, 마침내 경문의 ‘지지(知止)’와 ‘물유(物有)’ 두 절을 ‘자왈(子曰)’의 절 위로 돌리고, 합하여 전 4장(傳四章)을 만들어 격물·치지를 해석한 것이다.” 하였다. 이렇게 되면 회암이 본말을 해석한 것이라 하여 제4장으로 개정한 것이 없어지고, 격물치지장이 이에 빠짐이 없게 되는 것이다.
허재(虛齋) 채청(蔡淸)은 또 이르기를 “여러 선생들이 바로잡은 것이 또한 온당치 못한 부분이 있으니, 마땅히 ‘소위치지재격물자(所謂致知在格物者)’의 여덟 글자를 ‘물유(物有)’절의 위에 더하여 장(章)의 첫머리로 삼은 뒤에 ‘지지(知止)’의 절을 그 뒤에 놓고, 다음에 ‘자왈(子曰)’의 절을 놓고, 맨끝에 ‘차위지지(此謂知之)’의 절을 두어야 한다.” 하였다.
자계(慈溪) 황진(黃震)은 자(字)가 동발(東發)인데 《일초(日抄)》를 지었고, 채허재(蔡虛齋)는 《몽인(蒙引)》을 지었고, 방정학(方正學) 효유(孝孺)는 《대학(大學)》의 전서정문(篆書正文) 뒤에 글을 썼고, 오군(吳郡)의 도목(都穆)은 ‘청우기담(聽雨記談)’을 지었는데 모두 각각 이러한 말이 있는바, 노소재(盧蘇齋 노수신(盧守愼)을 가리킴)가 편집(編集)한 《개정대학(改正大學)》 가운데 상세히 실려 있다.
우리 동방(東方)에는 본조(本朝)의 유선(儒先) 중에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의 소견이 대략 이와 부합하였다. 그가 개정한 《대학》의 서문(序文)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내 일찍이 《대학》을 읽다가 이 부분에 이르면 항상 본문을 볼 수 없음을 한탄하였는데, 근년에 들으니 중국의 대유(大儒)가 빠진 글을 편(篇) 가운데에서 찾아내어 다시 장구(章句)를 지었다 한다. 내 이 글을 얻어 보고자 하였으나 얻을 수가 없으므로, 마침내 감히 억측으로 경문(經文) 가운데에서 두 절(節)을 취하여 격물치지장의 글로 삼았다. 그리고 반복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말이 부족함이 없고 뜻이 분명하여 경문(經文)에 흠이 없고 전문(傳文)의 뜻에 보탬이 있으며, 또 위아래의 글 뜻과 맥락이 관통하는바, 비록 회암이 다시 나오셔도 또한 혹 이것을 취할 것이다.”
회재는 이에 ‘물유(物有)’의 한 절을 장(章)의 첫머리로 삼고, “장의 첫머리에 ‘소위치지재격물자(所謂致知在格物者)’의 여덟 자가 있었을 듯한데 이제 없어졌다.” 하였다. 그리하여 다음에는 ‘지지(知止)’의 절을 놓고 다음에는 정자(程子)가 연문(衍文)이라고 말씀한 ‘차위지본(此謂知本)’의 절을 놓고 맨 끝에는 상문(上文)의 두 절을 맺은 뜻이라는 ‘차위지지(此謂知之)’의 절을 놓았으며, 또 ‘자왈(子曰)’의 한 절을 경문의 끝에 두고 “이천이 정한 것을 따랐다.” 하였다.
이 또한 격물치지장이 빠지지 않았다는 의논인데 별도로 본말장(本末章)을 세우지 않았으니, 전문(傳文)은 다만 9장이 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처음 《대학》을 읽었는데, 다만 전문(傳文) 가운데 격물치지장의 전문(全文)이 빠진 것이 한스러울 뿐만 아니라, 경문의 첫머리 삼강령(三綱領) 세 구(句)의 한 절 아래에 갑자기 ‘지지(知止)’와 ‘물유(物有)’ 두 절을 이은 것이 적당한 차례가 아니어서 위아래의 글 뜻이 견강부회함에 가까워 합당하지 못함이 있는 듯하였다. 이는 내가 억지로 뜻을 두어 찾아서 그러한 것이 아니요, 지각(知覺)이 미치는 바에 저절로 이와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곧바로 다시 생각하기를, ‘고문(古文)의 원본이 이미 정해져 내려온다면 이는 반드시 후생(後生)이 어리석고 용렬하여 본의(本義)를 통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의심이 있는 것이다’ 하고 이에 감히 억지로 구설(舊說)을 지켜왔다.
그러나 말년에 이르러 아무리 반복해서 생각하여도 이것이 과연 합당한지 알 수가 없었으니, 의심이 여전히 풀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 뒤에서야 비로소 회재(晦齋)가 위와 같이 개정하였다는 말을 들었고, 다시 중국의 후대 유자(儒者)들 또한 이미 이러한 의논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의심이 풀리는 듯하였다. 후학(後學)의 다행스러움을 어찌 측량할 수 있겠는가.
이후로는 《대학》을 외고 읽을 적에 개정한 순서에 따라 반복하여 생각하기를 마지않으니, 진실로 상쾌하고 흡족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다만 두려운 것은 정자(程子)와 주자(朱子)가 정해 놓은 차서에 부합되지 않는 점이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나의 소견으로는 또한 의심스러워 마땅히 질정(質正)하여야 할 것이 있을 듯하다.
‘자왈(子曰)’의 한 절을 명도(明道)는 평천하장(平天下章)의 가운데에 두었고 이천(伊川)은 ‘차위지본(此謂知本)’과 ‘차위지지(此謂知之)’의 두 절을 아울러 경문(經文)의 아래에 두었으며, 회암(晦菴)은 별도로 본말장(本末章)을 만들어 지지선장(止至善章)의 아래에 두었는데, 후대 유자들은 모두 격물치지장(格物致知章)의 글이라 하여 제3절로 삼았으며, 우리 나라의 회재는 이천이 정한 것을 따라 다시 경문의 끝에 두었다.
이제 어리석은 나의 소견은 이 한 절이 진실로 격물치지장의 가운데를 떠나지 아니하여 장(章)의 첫머리 ‘물유(物有)’의 절 아래에 있어야 할 듯하다. 그리하여 다음에는 ‘지지(知止)’의 절을 놓고 맨 마지막에는 ‘차위물격(此謂物格)’과 ‘차위지지(此謂知之)’의 두 절을 놓는다면 더욱 합당할 듯하다. 시험삼아 다음과 같이 배정(排定)하는 바이다.
이른바 지식을 지극히 함이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에 있다는 것은 물건에는 본(本)과 말(末)이 있고 일에는 종(終)과 시(始)가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所謂致知在格物者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이는 채허재(蔡虛齋)와 이회재(李晦齋)가 정한 것을 따른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송사(訟事)를 다스림은 내 남과 같이 하겠으나 백성들로 하여금 송사함이 없게 하겠다.” 하였으니, 실정이 없는 자가 거짓말을 다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백성의 마음을 크게 두렵게 하여 복종시키기 때문이니, 이것을 일러 근본을 안다고 한다.[子曰 聽訟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이는 마땅히 제2절이 되어야 하는바, 바로 나의 어리석은 견해이다.
그칠 데를 안 뒤에 정함이 있으니, 정한 뒤에 고요하고 고요한 뒤에 편안하고 편안한 뒤에 생각하고 생각한 뒤에 얻어진다.[知止而後有定 定而後能靜 靜而後能安 安而後能慮 慮而後能得]
이는 마땅히 제3절이 되어야 하는바, 이 또한 나의 견해이다.
이것을 일러 근본을 안다 하고[此謂知本]
나의 소견은 지본(知本)은 마땅히 물격(物格)이 되어야 할 듯하니, 그렇다면 이 절이 연문(衍文)이 되지 않는다.
이것을 일러 지식이 지극하다 한다.[此謂知之至也]
이는 회암이 ‘격물치지장의 결어(結語 맺음말)’라고 한 말씀을 따른 것이다. ○ ‘지본(知本)’ 두 글자를 만약 물격(物格)으로 쓴다면 이 두 차위(此謂)의 글귀가 마땅히 합하여 한 절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혹자가 묻기를 “물유(物有)의 한 절을 반드시 장의 첫머리로 삼은 것은 어째서인가?” 하기에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경문(經文)에 이미 ‘지식을 지극히 함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에 있다.[致知在格物]’고 말하였으니, 물건의 이치를 마땅히 먼저 말해야 할 것이다. 만약 물건의 이치를 말하려 한다면 물건에 있는 이치는 본(本)·말(末)을 들지 않으면 체(體)·용(用)을 다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물건에는 본과 말이 있다’고 말한 것이며, 이미 물건이 있으면 물건에는 반드시 일이 있게 마련인데 일의 이치는 종(終)·시(始)에서 벗어나지 않으므로 ‘일에는 종과 시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만일 물건의 본과 말, 일의 종과 시를 밝게 안다면 마땅히 먼저 해야 할 것은 본과 시이고 마땅히 뒤에 해야 할 것은 말과 종이니, 지혜가 이에 미치면 순서를 따라 나아가서 도를 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도에 가깝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하니 이 한 절이 장의 첫머리가 됨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혹자가 또 묻기를 “구본(舊本)에는 ‘소위치지재격물자(所謂致知在格物者)’라는 여덟 글자가 없는데, 허재(虛齋)와 회재(晦齋)가 처음 더한 것이다. 그런데 그대가 또 이를 따랐으니, 이것도 과연 옳은가?” 하였다.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전문(傳文)에서 경문(經文)을 해석한 방식을 살펴보면 강령의 세 장에는 장의 첫머리에 모두 ‘소위(所謂)’라는 말이 없고, 조목의 다섯 장에 이르러서는 모두 ‘소위 아무 조[所謂某條]’라는 말을 장마다 첫머리에 덧붙였는데, 격물·치지(格物致知) 한 장은 조목의 위와 강령의 아래에 있으므로 혹 전문(傳文)을 기록하는 자가 강령의 전문의 예(例)를 따라 잘못 머리말을 빼서 마침내 ‘소위운운(所謂云云)’ 한 것이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미 으레 첫머리에 덧붙이는 머리말을 잃어 격물·치지를 해석하는 것임을 구별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인하여 착간(錯簡)으로 여기고, ‘지지(知止)’의 절과 함께 잘못 경문의 첫머리 삼강령의 ‘지지선(止至善)’ 아래에 넣었을 것이다.
그러나 강령의 글을 가지고 헤아려 보면 두 절을 그 아래에 넣는 것이 합당함을 볼 수 없으며, 격물치지장의 빠진 글로 돌리는 것이 매우 적합할 듯하다. 그렇다면 이 없어진 여덟 글자를 마땅히 다시 도출(挑出)하여 ‘물유(物有)’의 위에 덧붙여서 조목의 장 첫머리의 범례(凡例)를 따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옛 사람들은 책을 만들 적에 대부분 죽간(竹簡)을 사용하였으므로 편(篇)을 연결할 때에 혹 자세히 대조하지 못하여 착오가 생기는바, 그 착간(錯簡)과 오자(誤字) 또한 모두 원인이 있어 오류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 장을 가지고 말하면 장의 첫머리에 있는 여덟 글자가 없어진 것은, 강령의 전문(傳文) 세 장에 모두 머리말이 없기 때문에 ‘물유(物有)’의 한 절이 장의 첫머리가 될 수 없고, ‘지지(知止)’의 한 절이 경문의 첫머리에 있는 ‘지지선(止至善)’의 말을 따라 잘못 그 아래에 들어갔기 때문에 ‘물유(物有)’의 절이 잘못 그 다음에 위치하게 된 것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이제 머리말의 여덟 글자를 ‘물유(物有)’의 위에 더하여 머리절[首節]로 삼는다면 어찌하여 갑자기 ‘자왈(子曰)’의 한 절을 ‘즉근도의(則近道矣)’의 아래에 넣었는가?” 하였다.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전문(傳文)에서 경문(經文)을 해석한 배열 순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장마다 첫머리에는 먼저 큰 강령을 들고 또 반드시 증거할 만한 중요한 말을 써서 실증하였다.
예컨대 명명덕장(明明德章)에 먼저 강고(康誥)의 말을 들어 단서를 삼았으면, 다음에 태갑(太甲)의 말을 들어 실증을 하였으며 제전(帝典)을 인용한 것은 그 효험을 든 것이다. 그리고 신민장(新民章)에는 먼저 탕(湯)임금의 반명(盤銘)을 들어 근본을 삼았으면, 다음에 강고의 말을 들어 실증을 하였으며 ‘시운(詩云)’의 한 절은 그 효험을 든 것이다. 그 아래 각 장(章)의 문세를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그러하다. 그러므로 ‘자왈(子曰)’의 한 절은 이 장의 머리절 다음에 있어야 함을 아니, 이것이 바로 그 유례(類例)이다.
머리절에 이미 ‘물건에는 본과 말이 있고 일에는 종과 시가 있다’고 말하였으면, 송사를 다스리기 이전에 명덕(明德)을 밝히는 것이 바로 그 본이요 시이며 송사가 있은 뒤에 다스리는 것은 바로 그 말이요 종이니, 이것이 본과 말, 종과 시를 징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을 가지고 미루어 보면 천하에는 본과 말이 없는 물건이 없고 종과 시가 없는 일이 없는 것이다. 본이 되고 말이 되며 시가 있고 종이 있는 것은 모두 자연의 묘한 진리이다. 물건은 본과 말을 갖추어 물건이 되고 일은 종과 시를 얻어 일이 되니, 그렇다면 사물의 이치는 진실로 본과 말, 종과 시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미 모든 물건과 온갖 일에서 본과 말, 종과 시를 보았다면 나의 지식이 어찌 지극하지 않음이 있겠는가. 지선(至善)에 마땅히 그치는 것이 모두 내 마음과 내 눈의 가운데에 있게 될 것이다.
뒤의 여섯 가지 조목을 가지고 말하면 성실히 함은 뜻의 지선이요, 바르게 함은 마음의 지선이요, 닦음은 몸의 지선이요, 가지런히 함은 집안의 지선이요, 다스림은 나라의 지선이요, 화평하게 함은 천하의 지선이다. 이미 지선이 있는 곳을 알았으면 뜻을 진실로 성실히 하지 않을 수 없고 마음을 진실로 바루지 않을 수 없고 몸을 진실로 닦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아가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지 않을 수 없고 나라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고 천하를 평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바, 모두 이 도리이다.
그렇다면 여섯 가지 조목의 지선이 어찌 격물·치지에 바탕을 두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격물·치지의 효험을 말하면서 반드시 능정(能定), 능정(能靜), 능안(能安), 능려(能慮), 능득(能得)을 말한 것이니, 정(定)은 성의(誠意)의 기틀이요, 정(靜)은 정심(正心)의 기틀이요, 안(安)은 수신(修身)의 기틀이요, 여(慮)는 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기틀이며, 득(得)은 그 이치를 얻는 것이다. 그 기틀이 이미 서고 그 이치가 이미 얻어지면 도가 과연 가깝지 않겠는가.
《주역(周易)》의 건괘(乾卦) 구삼효(九三爻) 문언전(文言傳)에 이르기를 ‘이를 데를 알아 이르기 때문에 더불어 기미를 알 수 있으며, 마칠 데를 알아 마치기 때문에 의(義)를 보존할 수 있다.’하였다. 그렇다면 이르고 마치는 본(本)과 시(始)가 모두 격물·치지에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지(知止)’의 절이 격물·치지의 효험이 되어, 마땅히 ‘자왈(子曰)’의 절 아래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위에 있는 ‘차위(此謂)’의 절에 ‘지본(知本)’이라는 두 글자를 어찌하여 물격(物格)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기에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차위지본(此謂知本)’과 ‘차위지지(此謂知之)’의 두 절이 구본(舊本)에는 경문의 아래 성의장(誠意章) 위에 있었는데 회암(晦菴) 역시 이것을 성의장 위에 두었다. 그리하여 위에 있는 ‘차위지본(此謂知本)’의 한 절은 정자(程子)를 따라 연문(衍文)이라 하였고, 아래에 있는 ‘차위지지(此謂知之)’의 한 절은 치지(致知)의 결어라 하고는 보망장(補亡章) 끝에 말씀하기를 ‘이것을 일러 사물의 이치가 이른다 하고 이것을 일러 지식이 지극하다 한다.[此謂物格 此謂知之至也]’ 하였다.
내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차위지본(此謂知本)’은 바로 ‘자왈(子曰)’ 절의 마지막 말인데 본장(本章)의 가운데 있으므로 잘못 그 말을 인습하여 거듭 ‘지본(知本)’이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실제는 ‘물격(物格)’ 두 글자가 본래의 말이어서 회암이 보망장의 맺음말로 한 것이 맞다. 그러하니 여덟 자를 ‘물유(物有)’의 절 위에 더하여 머리절로 만들고, ‘자왈’의 절을 그 다음에 배치하여 제2절로 만들고, ‘지지(知止)’의 절을 그 다음에 배치하여 제3절로 만들고, ‘차위지본(此謂知本)’과 ‘차위지지(此謂知之)’의 두 절을 그 끝에 두어 한 장을 맺는 글로 삼는다면 이에 격물치지장의 전문(全文)이 굳이 보충하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저절로 완전해진다.”
혹자가 말하기를 “이제 경문의 두 절을 취하여 격물치지장의 글이라고 한다면 격물치지장은 온전한 글이 되어 빠짐이 없게 된다. 그러나 경문에 있어 과연 부족한 단락이 되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 《대학》의 도는 강령으로 나열하면 세 가지가 되고 조목으로 나열하면 여덟 가지가 되니, 강령은 조목의 강령이고 조목은 강령의 조목이다. 앞에 먼저 삼강령을 말하지 않으면 팔조목을 통솔할 수 없고 뒤에 팔조목을 말하지 않으면 삼강령을 실증할 수 없는바, 이처럼 글의 뜻과 말의 순서는 마땅히 선후가 있고 서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삼강령을 머리절에 들었으면 또 모름지기 팔조목을 그 아래에 차례로 서술하여야 하니, 이렇게 한 뒤에야 강령이 조목을 통솔하고 조목이 강령에 매여 있어 반드시 서로 연결되고 반드시 서로 참조(參照)가 된다. 그러므로 ‘지지(知止)’와 ‘물유(物有)’의 두 절을 그 사이에서 제거하면 ‘고지(古之)’의 절이 곧바로 머리 절의 아래로 들어와 삼강령이 팔조목의 강령이 되고 팔조목이 삼강령의 조목이 되어 마침내 서로 붙어 나란히 이어져 간격이 없게 된다.
또 ‘지지’와 ‘물유’의 두 절을 보면 글을 지어 설명한 뜻이 따로 별단(別段)의 문자가 되어 삼강령과 팔조목의 사이에 있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 듯하다. 만약 원본(原本)에 배열한 바와 같다면 이것을 위로 삼강령에 매여 있다 하겠는가, 아래로 팔조목에 연결된다 하겠는가?
‘지지(知止)’의 지(止)는 비록 ‘지지선(止至善)’의 지(止)와 똑같은 글자이나 진실로 삼강령 가운데 홀로 ‘지지선’의 한 구(句)를 들어 곧바로 그 공효(功效)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또 그칠 데를 알고 능히 얻는[知止能得] 일은 모두 아래의 두 절인 팔조목의 공부와 공효의 가운데 있으니, 굳이 미리 팔조목의 위에 말할 필요가 없다.
물건의 본과 말, 일의 종과 시에 이르러는 자연 전문(傳文) 가운데 사물을 말하는 장에 나와야 할 것이다. 경문에 강령과 조목을 차례로 배열하였으니, 먼저 물건과 일을 언급하지 않아야 할 듯하다. 그렇다면 위로 강령에 매이는 것도 합당하지 않고 아래로 조목에 연결하는 것도 합당하지 않으니, 어찌 경문에서 빼어도 부족함이 없고 전문에 돌리면 온전해지는 것만 하겠는가.”
혹자는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그럴 듯하나 두 절이 삼강령과 팔조목의 사이에 있는 것이 바로 구본(舊本)인바, 모두 두 정자(程子)의 개정을 거쳤고 주자(朱子)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설(異說)이 없다. 주자의 주석에는 ‘물건은 본과 말이 있고 일에는 종과 시가 있다’는 한 절을 상문(上文)의 두 절을 맺은 말로 삼아, 물건은 명덕(明德)과 신민(新民)에 해당시키고 일은 지지(知止)와 능득(能得)에 해당시켰으니, 이와 같다면 이 두 절이 삼강령의 아래에 있지 않을 수 없다. 이 어찌 십분 옳은 소견이 아니겠는가. 후대 유자들의 소견이 어찌 정자와 주자의 견식(見識)보다 더 낫겠는가.” 하였다.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내 일찍이 반복하여 글의 뜻을 생각해 보니, 명덕과 신민을 물건이라고 한 것은 본의가 아닐 듯하며, 일은 또 지지와 능득만을 가리킨 말이 아닐 듯하다. 무릇 물건과 일은 모두 하문(下文)의 팔조목 가운데에 들어 있으니, 어찌 갑자기 열거하여 이 사이에 끼이게 할 리가 있겠는가. 이는 주자가 구본(舊本)을 독실히 믿었으므로 이 뜻을 끌어내어 해석하였을 뿐이다. 책을 보는 방법은 옛날의 학설에 구애되지 말고 사사로운 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오직 천연(天然)의 지각(知覺)에 스스로 흡족하게 하여야 하니, 이렇게 하면 옳은 것을 보게 된다.”
나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경문에는 첫번째로 삼강령을 들고 뒤이어 팔조목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증자(曾子)가 전문(傳文)을 기술할 때에도 제1장부터 제3장까지는 이미 삼강령을 해석하고 마침내 팔조목을 언급하였으니, 이 때문에 격물치지장이 네번째에 위치하여 지지선장(止至善章)의 다음이 되는 것이다. 격물치지장을 진실로 지지선을 해석한 장에 접속하였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격물치지장의 ‘물유(物有)’와 ‘지지(知止)’ 두 절을 잘못 그 선후를 바꾸어서 경문 머리절의 지어지선(止於至善)이라는 말을 따라 마침내 경문의 제2절과 제3절로 만들었는데, 후대 유자와 선생들이 모두 그대로 인습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최후에 이르러 ‘곧 이 두 절은 격물치지장의 탈간(脫簡)이니 마땅히 전문(傳文)의 지지선장 아래에 돌려서 격물·치지의 빠진 글을 보충하여야 한다.’ 하였는바, 이 말은 진실로 의심이 없을 듯하다.
그리고 ‘자왈’의 한 절은 마땅히 격물치지장의 제2절이 되어, 위로 ‘물건에는 본과 말이 있고 일에는 종과 시가 있다’는 글을 이어받고, 아래로 ‘그칠 데를 안 뒤에 정함이 있다[知止而后有定]’는 글을 접속하여야 하니, 이렇게 한 뒤에야 한 장의 의미가 말이 구비하고 뜻이 충족하여 격물치지의 공부가 실증이 있게 되는 것이다.
‘물건의 이치를 궁구하고 지식을 지극히 함[格物致知]’은 물건에 있는 이치를 밝혀 마땅히 그쳐야 할 도(道)를 아는 것이다. 물건의 이치가 본과 말에 벗어나지 않고 일의 이치가 모두 종과 시를 꿰뚫고 있는데, 명덕을 밝히고 백성을 새롭게 함은 실로 《대학》의 강령이다.
백성들로 하여금 송사가 없게 하는 것이 자신의 덕을 밝힘에서 말미암지 않겠는가. 분쟁을 다스리는 것이 백성을 새롭게 하는 지엽적인 다스림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물건의 본과 말, 일의 종과 시가 모두 여기에 들어있는 것이다. 이미 여기에 그 본과 말, 종과 시의 이치를 알아서 마땅히 먼저 해야 할 것을 알고 마땅히 뒤에 해야 할 것을 안다면 그 나머지 만 가지 일과 만 가지 물건의 법칙이 어찌 여기에서 벗어남이 있겠는가. 마땅히 그쳐야 할 지선(至善)이 모두 그 안에 들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절은 본래 ‘지지(知止)’의 절 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구본(舊本)에 다섯 지(止) 자를 잘못 따라 ‘지어신(止於信)’의 아래에 잘못 놓은 것이니, 이제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리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별도로 끌어내어 본말장이라고 해서 전문(傳文)의 범례(凡例)에 위배됨이 있는 것과는 같지 않다.”
혹자는 또 “이미 두 절을 옮겨 전문의 격물치지장으로 삼는다면 경문에 있는 삼강령이 결어(結語)가 없게 되니, 이것이 흠이 되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는 그렇지 않다. 강령은 조목의 강령이고 조목은 강령의 조목이니, 강령이 조목을 통솔하고 조목이 강령에 매여있어야 한다. 그러하니 그 사이에 결어가 있을 수 없다. 반드시 강령으로 조목에 임하고 조목으로 강령을 계승한 뒤에야 삼강령이 팔조목의 근본이 되고 팔조목이 삼강령을 포괄하게 됨이 분명하다.
강령 세 가지를 이미 머리절에 열거하고 조목 여덟 가지의 공부(工夫)와 공효(功效)를 또 이미 두절에 모두 서술한 뒤에야 마침내 경문의 끝 두 절을 가지고 맺을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말하는 순서의 당연함이요 문세(文勢)의 필연적인 것이다. 만약 강령의 아래에는 별도로 강령의 맺음말이 있어야 하고, 조목의 아래 두 절은 다만 조목의 맺음말이 될 뿐이라고 한다면, 이는 강령과 조목이 한 가지 일이 아닌 것이니, 어찌 옳겠는가.”
성의장(誠意章)의 제2절 끝에 “이것을 일러 가운데(마음속)에 진실하면 밖(외모)에 나타나는 것이다.[誠於中 形於外]”라는 말이 있는데, 이 글을 읽는 자들은 항상 ‘소인(小人)이 불선(不善)을 마음속에 진실히 하는 것’을 성(誠)이라고 여긴다. 회암(晦菴)이 성(誠)을 논하면서 혹자가 이 말을 물은 것에 답한 글에서도 “천리(天理)의 대체(大體)를 가지고 보면 선(善)을 함이 진실로 허(虛)하고,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을 가지고 보면 악을 함이 무엇이 이보다 진실하겠는가. 어찌 성(誠)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는 회암 역시 악이 마음속에 진실함을 성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내 일찍이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니, 자못 온당치 못하다고 여겨졌다. 성(誠)은 ‘진실하고 망녕됨이 없음[眞實無妄]’을 이르니, 이 성 자는 마땅히 도리의 올바른 곳에 놓아야 하고 악을 하는 진실함에 놓아서는 안 된다. 본절(本節)은 소인이 한가히 거처할 때에 불선을 하다가 군자를 만난 뒤에 이것을 엄폐할 수 없음을 위주로 하여 말했기 때문에 ‘마음속에 진실하다’는 것이 악을 하기를 진실히 함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반복하여 글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인용한바 “가운데에 진실하면 밖에 나타난다.”는 말은 불선을 엄폐하고자 하여도 엄폐할 수 없음을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요, 바로 선을 드러내고자 하여도 드러낼 수 없음을 위하여 말한 것이다. 마음속에 선을 하는 진실함이 없으면서 겉으로 이것을 드러내고자 하면 마침내 폐간(肺肝)을 들여다 보는 듯한 안목을 속일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말을 인용하여 증명해서 반드시 선을 하는 진실함이 마음속에 쌓인 뒤에야 선을 하는 징험이 비로소 밖에 나타나게 됨을 말한 것이다.
만약 마음속에 선을 하는 진실함이 없다면 어찌 선을 행함이 밖에 나타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마침내 이어서 말하기를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를 삼간다.[故君子必愼其獨也]”라고 한 것이니, 이는 선을 함을 위하여 이 말을 인용한 것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이 장은 바로 성의(誠意)를 해석한 것이니, 성의의 성(誠)은 곧 공자(孔子)의 이른바 ‘성실히 함[誠之]’의 성으로 진실하지 못하고 망녕됨이 없지 못하여 진실하고 망녕됨이 없고자 하는 도이다.
머리절에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는 것이니, 악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미워하듯이 하고 선을 좋아하기를 아름다운 여색을 좋아하듯이 하는 것, 이것을 일러 스스로 만족해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慊 故君子必愼其獨也]”는 것은 성실히 하는 공부이며, “증자(曾子)가 말씀하기를 ‘열 눈이 보고 열 손이 가리키는 바이니, 그 무섭다.[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하였다.”는 것은 성실히 하라는 경계이며, 마지막 절에 이른바 “부유함은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하니, 덕이 있으면 마음이 넓고 몸이 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성실히 한다.[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는 것은 성실히 한 효험이다. 그렇다면 한 장(章)에서 말한 성(誠)이 모두 도리의 올바름에 나아가 말한 것이니, 어찌 홀로 그 가운데 한 절(節)에서만 소인이 악을 하는 진실함을 가리켜 성(誠)이라고 말하였겠는가.
만일 마음속에 악을 진실히 함을 성이라고 한다면 이것을 진실(眞實)이라 하겠는가, 무망(无妄)이라 하겠는가. 진실이 아니고 무망이 아니면서 성이라고 이를 수 있겠는가? 회암은 끝에 다시 말씀하기를, “천리(天理)의 진실무망(眞實无妄)한 본연이 아니면 그 성(誠)은 다만 본연의 선(善)을 비워 도리어 불성(不誠)이 되고 만다.” 하였다.
어리석은 나의 생각에는, 진실무망이 아니면 성(誠)이라는 명칭을 얻을 수 없고, 천리의 바름이 아니면 진실무망의 실제에 해당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천리의 밖에 어찌 딴 성(誠)이 있겠는가. 악의 진실함은 스스로 악을 함의 진실함이 될 뿐이니, 결코 성에 비의(比擬)될 수 없는 것이다. 회암의 이른바 ‘도리어 불성함이 되고 만다’는 것이 바로 성의 근본을 얻은 것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인용한바 ‘가운데에 성실하면 밖에 나타난다’는 것은 다만 소인으로서 군자를 보고 그 선을 드러내려 하는 자는 단지 밖을 꾸밀 뿐이니, 밖을 꾸미는 자는 끝내 사람을 속일 수 없으므로 반드시 마음속에 선을 성실히 하는 자라야 비로소 밖에 나타날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가 반드시 그 홀로를 삼감을 거듭 말하여 권면한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중용(中庸)》의 비은장(費隱章)을 구설(舊說)에는 대부분 ‘성인(聖人)이 알지 못하고 능하지 못하다’는 부분을 은(隱)으로 보아 말하였는데, 주자(朱子)는 이것을 취하지 않고 체(體)의 작은 것을 은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어리석은 나의 생각에는 구설이 아마도 자사(子思)의 본의가 아닌가 싶다.
‘비(費)’와 ‘은(隱)’ 두 글자는 모두 빌려 쓴 말이니, 비(費)는 널리 베풂을 이르고 은(隱)은 감추어 숨음을 이른다. 도가 어찌 일찍이 널리 베푸는 것이 있고 일찍이 감추어 숨는 것이 있겠는가. 자사는 이 도의 용(用)이 그 낮고 얕고 가깝고 작은 것에 두루하여 빠뜨림이 없어서 널리 베푸는 것과 유사하므로 비라고 말씀하였고, 또 지극히 높고 깊고 멀고 커서 측량하고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감추어 숨는 듯하므로 은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또 혹 비(費) 자와 은(隱) 자를 굳이 빌려 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옛날에는 글자가 적고 쓰임이 많았기 때문에 한 글자를 가지고 여러 가지 뜻을 겸한 경우가 많으니, 비 자가 실로 낮고 얕고 가깝고 작은 뜻을 겸하였고, 은 자가 실로 높고 깊고 멀고 큰 뜻을 겸하였기 때문에 자사가 이 두 글자를 사용하여 이 도의 용을 밝힌 것인지를 어찌 알겠는가.
하문(下文)에 이른바 “어리석은 지아비와 어리석은 지어미가 더불어 알고 더불어 능하다.[愚夫愚婦之與知與能]”는 것이 바로 비이며, “성인이 알지 못하는 바가 있고 능하지 못한 바가 있으며, 천지의 큼으로도 사람들이 오히려 한(恨)하는 바가 있다.[聖人之有所不知不能 天地之大也 人猶有所憾]”는 것이 바로 은이다. 비이기 때문에 천하가 깨뜨릴 수가 없어 그 작음이 안이 없는 것이요, 은이기 때문에 천하가 실을 수가 없어 그 큼이 밖이 없는 것이니, 이에 진실로 비와 은이 이 도의 용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아래에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못에서 뛴다.[鳶飛戾天 魚躍于淵]”는 시(詩)를 인용하고, “상하에 이치가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言其上下察也]” 하였으니, 이 또한 빌려 인용해서 이 도가 위로 드러나고 아래로 드러나 없는 곳이 없음을 증명한 것이다.
솔개가 하늘에 이름이 과연 도의 높고 깊고 멀고 큼을 지극히 하고, 물고기가 못에서 뛰는 것이 과연 도의 낮고 얕고 가깝고 작음을 다하였음을 말한 것이 아니요, 다만 취하여 이치가 위와 아래에 드러난 증거로 삼았을 뿐이다.
그리고 장의 끝 부분의 맺은 글에 이르러서는 말씀하기를 “군자의 도는 부부에게서 단서를 짓는데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천지에 드러난다.[君子之道 造端乎夫婦 及其至也 察乎天地]” 하였으니, 이른바 ‘부부에게서 단서를 짓는다’는 것은 낮고 얕고 가깝고 작은 비(費)가 아니겠는가. 이른바 ‘천지에 드러난다’는 것은 높고 깊고 멀고 큰 은(隱)이 아니겠는가.
무릇 천하의 일은 지극히 낮음으로부터 지극히 높음에 이르고, 지극히 얕음으로부터 지극히 깊음에 이르고, 지극히 가까움으로부터 지극히 멂에 이르고, 지극히 작음으로부터 지극히 큼에 이르기까지 군자가 떳떳이 행하는 도 아님이 없다. 위만 있고 아래가 없는 것은 도가 아니며 아래만 있고 위가 없는 것도 또한 도가 아니다. 이 때문에 장의 첫머리에 반드시 비(費)·은(隱)을 말의 첫머리로 삼아 위에 놓고 이(而) 자를 두 글자 사이에 두어서 높고 낮고 깊고 얕고 멀고 가깝고 크고 작은 것이 통하여 이 도의 전체가 됨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그 아래 각 장(章)에 미루어 넓히고 반복한 것이 모두 비·은의 뜻인 것이다.
그렇다면 자사(子思)가 비(費)를 말씀한 까닭은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어리석은 지아비와 어리석은 지어미가 더불어 알고 더불어 능할 수 있는 것을 소홀히 하여 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은(隱)을 말씀한 까닭은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성인이 알지 못하는 바를 알려 하고 성인이 능하지 못한 바를 능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다만 하늘에 명(命)을 받고 자기 몸에 성(性)을 간직하여, 일상 생활하고 떳떳이 행함에 잠시도 떠나지 아니하여 반드시 알아야 하고 반드시 행하여야 할 도에 있어서는 낮고 얕고 가깝고 작다 하여 빠뜨리는 바가 없고, 높고 깊고 멀고 크다 하여 힘을 다하지 않는 바가 없어야 함을 말씀한 것이니, 이렇게 한 뒤에야 능사(能事)를 다하고 전체를 얻어서 성분(性分)과 직분(職分)을 이에 다할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그렇다면 도(道)의 비(費)는 일반 사람들도 진실로 알 수 있고 또 능할 수 있으나 은(隱)에 있어서는 성인과 천지(天地)도 다하지 못하는 바가 있음은 어째서인가? 하물며 배우는 자에 있어서이겠는가.” 하였다.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천지와 성인이 다하지 못하는 바가 있는 것은 그 지혜와 생각과 역량이 실로 부족해서 그러한 것이 아니요 또 다하려고 하지 않아서 그러한 것이 아니다. 다만 형세가 통하지 못하는 바가 있어 지혜와 생각과 역량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형세가 통하지 못하여 지혜와 생각과 역량을 쓸 수 없는 곳에는 비록 천지와 성인이라도 또한 어쩔 수 없었으니, 만일 지혜와 생각과 역량으로 통할 수 있는 것이라면 성인이 어찌 알지 못하고 행하지 못할 리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도에 알 수 있고 능할 수 있는 것은 성인이 일찍이 다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성인을 배우는 자들이 성인이 알고 능한 것을 가지고 스스로 기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과연 어리석은 지아비와 어리석은 지어미가 더불어 알고 더불어 능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알고 능하여 성인이 아는 것을 모두 알고 성인이 능한 것을 함에 이른다면 정자(程子)의 이른바 ‘종신토록 쓰더라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이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도가 중(中)이 되고 용(庸)이 되는 것은 이 비(費)·은(隱) 때문이니, 도가 중·용이 아니면 과연 위를 통하고 아래를 통하여 만 가지 일을 두루 다해서 부족함이 없겠는가.
이미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비록 성인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나 또한 알지 못하더라도 중·용을 아는 것에 해롭지 않으며, 성인이 능하지 못한 것에 대해 나 또한 능하지 못하더라도 중·용을 행함에 해롭지 않은 것이다. 하물며 천지도 한(恨)하는 바가 있는 부분에 사람이 어쩔 수 있겠는가. 이는 다만 도리가 무궁함을 말한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비와 은을 진실로 모두 도의 용(用)을 가지고 말하였다면 이는 다만 용(用)만 말하고 체(體)를 말하지 않은 것이니, 도가 어찌 체가 없는 용이 있겠는가?” 하였다.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별도로 체를 말하지 않아도 용을 말한 부분에 체가 일찍이 그 가운데 들어있지 않음이 없으니, 굳이 상대하여 들고 아울러 말한 뒤에야 체에 이 용이 있음을 아는 것이 아니다. 정자는 말씀하기를, ‘《중용》 책은 처음에는 한 이치를 말하고 중간에는 흩어져 만 가지 일이 되고 끝에는 다시 합하여 한 이치가 되어, 풀어 놓으면 육합(六合)에 가득하고 거두면 물러가 은밀한 곳에 감추어진다.[其書始言一理 中散爲萬事 末復合爲一理 放之則彌六合 卷之則退藏於密]’ 하였고, 또 말씀하기를, ‘체와 용은 근원이 하나이며 드러남과 은미함은 간격이 없다.[體用一原 顯微無間]’ 하였으니, 이미 근원이 하나라고 말했으면 체와 용을 둘로 삼을 수 없고, 이미 간격이 없다고 말했으면 간격을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본서(本書 《중용》을 가리킴)의 대지(大旨)가 체와 용을 분별함에 있으면, 이미 체를 말했으면 또 모름지기 용을 말하여야 하고 바야흐로 용을 말했으면 또 모름지기 체를 말하여야 하니, 이는 문세(文勢)의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 편은 오직 도를 밝힘을 요점으로 삼았는바, 도는 체와 용을 겸하고 드러남과 은미함을 합하여 말한 것이니, 체를 말하면 용이 그 가운데 들어 있고 용을 말하면 체가 그 가운데 들어 있다. 어찌 용이 없는 체가 있으며 또 어찌 체가 없는 용이 있겠는가.
이치는 도의 체이고 일은 도의 용이니, 도의 용이 흩어져 만 가지 일이 되기 때문에 장차 만 가지 일을 말하려 하면 반드시 한 이치에 근본하고, 이미 만 가지 일을 말했으면 끝내는 한 이치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이치에 시작하고 마치는 것은 용이 체를 떠나지 않고 체가 항상 용을 주관한다.
이른바 ‘처음에 한 이치를 말했다’는 것은 곧 ‘하늘이 명한 것을 성이라 한다[天命之謂性]’는 것이니, 이는 사람의 성이 하늘에 근본한 것이며, 이른바 ‘끝에 한 이치를 말했다’는 것은 곧 ‘하늘의 일이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上天之載 無聲無臭]’는 것이니, 이는 사람의 덕이 하늘과 하나인 것이다. 그렇다면 처음에 말한 한 이치는 바로 중용의 도의 근원이며, 끝에 말한 한 이치는 바로 중용의 도의 극(極)이다. 근원은 시작함을 이르고 극은 마침을 이르니, 근원함도 진실로 이 이치이며 지극함 또한 이 이치이다. 그렇다면 이치가 중용의 도의 체가 아니겠는가.
사업(事業)에 있는 용(用)으로 말하면 이른바 ‘비하면서도 은하다[費而隱]’는 것이 이것이다. 이미 비라고 말했으면 낮고 얕고 가깝고 작은 일[事]이 극진하지 않음이 없고, 또 은이라고 말했으면 높고 깊고 멀고 큰 업(業)이 열거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몸에 있어서는 몸의 도가 되고, 평소의 지위에 있어서는 평소의 지위의 도가 되고, 집에 있어서는 집의 도가 되고, 나라에 있어서는 나라의 도가 되고, 천하에 있어서는 천하의 도가 되고, 만세(萬世)에 있어서는 만세의 도가 되니, 비하면서도 은함이 과연 어떠하겠는가.
그러나 비한 까닭은 이치가 비하기 때문이요, 은한 까닭은 이치가 은하기 때문이다. 이미 비가 이치 때문에 비하고 은이 이치 때문에 은하다면 비와 은이 어찌 일찍이 이치를 떠나 비하고 은하겠는가. 용이 체로 말미암아 나오고 체가 용 가운데에 들어 있는 것이 중용의 도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비와 은이 모두 도의 용이 되는데 체가 일찍이 그 가운데 있지 않음이 없으니, 어찌 굳이 비와 은을 나누어 한 체와 한 용으로 삼은 뒤에야 체와 용이 구비되겠는가. 바야흐로 이 도의 용이 위아래와 만 가지 일에 드러남을 말하면서 겸하여 체를 들어 용과 상대한다면 그 체가 혹시라도 너무 천함에 가깝지 않겠는가. 편의 첫머리에 이미 체의 근본을 말하였고 편의 끝에 장차 체의 은미함에 귀숙(歸宿)하게 하였으니, 어찌 중간에 용을 말하는 즈음에 겸하여 체를 말하겠는가.
비와 은의 뜻이 참으로 풍부하다. 혹 비를 말하여 은에 이르고 혹 은을 말하면서 비를 포함하여, 종횡으로 교차하고 종합하며 층층이 나타나고 서로 발명하였다. 이것을 한번 들어 말하면, 도는 사람에게 멀리 있지 않은데 공자(孔子)는 스스로 능하지 못하다 하였고, 행실은 평소의 지위를 벗어나지 않는데 들어가는 곳마다 자득하지 않음이 없음에 이르며, 처자(妻子)가 서로 화합하고 형제가 우애함이 모두 가깝고 또 낮은 일인데 부모가 편안하시기에 이르며,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귀신이 사물의 근간이 되어 빠뜨리지 않는 용이 된다.
대순(大舜)과 문왕(文王)·무왕(武王)·주공(周公)의 도는 떳떳한 행실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성인이 되고 천자(天子)가 되어 종묘에서 선조에게 제향하고 후손들이 잘 보존함에 이른다. 그리고 몸을 닦는 방법을 아는 자는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방법을 아는 데 이르며, 윗사람에게 신임을 얻어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반드시 선을 밝히고 몸을 성실히 하는 데서 말미암는다. 어리석은 자가 반드시 밝아지고 유약한 자가 반드시 강해지는 것은 남이 한 번 하면 자신은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 하면 자신은 천 번을 하는 데서 말미암는다.
그리고 천지의 화육(化育)을 돕는 것이 처음에는 자신의 성(性)을 다하는 데서 말미암으며, 동(動)하고 변(變)하고 화(化)하는 덕이 처음에는 한쪽을 지극히 하는[致曲] 데서 말미암는다. 박후(博厚)하고 고명(高明)하고 유구(悠久)한 업이 쉬지 않는 데에서 시작되며, 만물을 발육(發育)하여 높기가 하늘에 이르는 도가 3백 가지 큰 예(禮)와 3천 가지 작은 예를 쌓는 데에서 연유한다. 광대(廣大)함을 지극히 하여 정미(精微)함을 극진히 하고 고명(高明)함을 지극히 하여 중용(中庸)을 따르며 서민(庶民)에게 징험하고 삼왕(三王)에 고찰하고 천지에 세우고 귀신에게 질정하고 백세(百世)를 기다리는 것이 자신의 몸에 근본하며, 공손함을 돈독히 하여 천하가 화평해지는 교화가 비단옷을 입고 위에 홑옷을 더하는 데에서 말미암으니, 그렇다면 한 편 가운데 어디인들 비와 은이 아니겠는가.
26장에 말하기를 ‘지금 하늘은 조금 밝은 것이 많이 모인 것인데, 무궁(無窮)함에 미치면 해와 달과 별이 매여 있으며 만물을 덮고 있다. 이제 땅은 한 줌 흙이 많이 모인 것인데, 그 광후(廣厚)함에 미치면 화악(華嶽)을 싣고 있어도 무거워하지 않고 하해(河海)를 거두어도 새지 않으며 온갖 만물이 실려 있다. 이제 산은 한 조각 자갈[石]이 많이 모인 것인데 그 광대(廣大)함에 미치면 초목이 자라고 금수(禽獸)가 살며 보장(寶藏)이 나온다. 이제 물은 한 잔의 물이 많이 모인 것인데, 그 헤아릴 수 없음에 미치면 큰 자라와 악어와 교룡(蛟龍)과 물고기와 자라가 나오며 재화가 불어난다.’ 하였으니, 이 한 절(節)은 비와 은의 전체가 됨이 분명하고 또 자세하다.
이른바 조금 밝다는 것과 한 줌의 흙과 한 조각 자갈과 한 잔의 물이라는 것은 비(費)를 말함이 아니겠는가. 이른바 무궁함과 광후함과 광대함과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은 은(隱)을 말함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비와 은은 곧 한 이치인 것이다. 비는 은에 통하고 은은 비에 포함되니, 비가 없으면 은이 없고 은이 없으면 비가 없다. 그 소이연(所以然)은 곧 이치이니, 하필 체(體)의 은미한 것을 은에 해당시킨 뒤에야 체가 올바른 체가 되겠는가. 마땅히 비와 은을 아울러 도의 용으로 삼아야 할 것이니, 이렇게 하면 자연 그 가운데 들어 있는 체가 높고 또 신묘하지 않겠는가. 편의 첫머리와 편의 끝에 말한 바의 한 이치가 이에 일관되는 것이다.”
25장의 머리절[首節]에 이르기를 “성(誠)은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요, 도(道)는 스스로 행하는 것이다.[誠者自成也 而道自道也]”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이르기를 “성은 물건이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요, 도는 사람이 스스로 행해야 하는 것이다.[誠者物之所以自成 而道者人之所當自行也]” 하였다.
나는 일찍이 반복하여 참고하고 연구하였으나 끝내 분명하지 못함이 있었다. 내 망녕된 생각으로는 ‘자성(自成)’의 성(成) 자는 마땅히 이 성(誠) 자가 되어야 하는데 등사(謄寫)하는 자가 잘못 편방(偏旁)의 언(言) 자를 제거하여 마침내 성(成) 자가 된 것이니, 아랫절[下節]에 자성(自成)이란 글이 있기 때문에 옆의 것을 잘못 보아 오자(誤字)를 만든 것이라고 여겨진다. 글 뜻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름지기 성(誠) 자가 된 뒤에야 그 뜻이 명쾌해진다.
이 편(篇 《중용》을 가리킴)에서 성(誠)을 말한 것이 20장에 처음 나오는데 성은 실로 이 편의 주안점이다. 이 절의 이른바 성(誠)은 곧 20장의 “하늘의 도[天之道]”의 성인 것이요 아랫절에 이른바 “성실히 한다.[誠之]”는 것은 곧 20장에 “사람의 도[人之道]”의 성인 것이니, 사람이 성실히 하는 공부를 지극히 하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하려 하였으므로 장의 첫머리에 먼저 성인(聖人)의 성(誠)을 말하여 이르기를, “성은 스스로 성실함이요 도는 스스로 행하는 것이다.[誠者自誠也 而道自道也]”라고 한 것이다.
이치가 천지에 있는 것은 본래 스스로 진실되고 망녕됨이 없기 때문에 천지의 도는 성(誠)일 뿐이요, 성인이 천지에게서 얻어 성(性)의 이치가 된 것 또한 스스로 진실하고 망녕됨이 없으니, 곧 이른바 ‘성은 스스로 성실하다’는 것이다.
성(性)이 발하여 정(情)이 되어 일상 생활하는 사이에 유행하는 것은 억지로 힘씀에서 나오지 않고 굳이 닦음에 말미암지 않고 모두가 당연한 도리이니, 이것이 이른바 ‘도는 스스로 행한다’는 것이다. 이미 스스로 성실하고 스스로 행한다고 말했으면 바로 이른바 ‘하늘의 도’의 성(誠)인 것이다.
성(誠)의 이치가 이와 같기 때문에 모든 물건이 물건이 될 적에는 반드시 성실함이 있고 나서 시작도 마침도 할 수 있으니, 곧 이른바 ‘성실함이 아니면 사물이 없다’는 것이다. 군자가 반드시 성실함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성실히 한다’는 것은 하늘의 도의 성실함에 미치지 못하여, 모름지기 사람에게 있는 도리를 다해서 하늘의 도의 성실함에 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성실한 성(誠)은 성실히 하는 자의 준칙(準則)이 되는 것이다.
만약 ‘스스로 이루어진다’고 말하면 이루어짐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음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을 말함이요, 성(誠)은 본래 스스로 성실한 것이다. 성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성실함이 이미 확립되어 있으니, 어찌 이룬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자성(自成)의 성(成)은 이 성(誠) 자의 오자인데 편방에 언(言) 자가 없어진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중용》의 20장 끝에 “배우기를 널리하고 묻기를 자세히 하고 생각을 삼가고 분변하기를 밝게 하고 행하기를 독실히 한다.[博學之 審問之 愼思之 明辨之 篤行之]”라는 말이 있으니, 이는 선(善)을 잘 가리고 굳게 잡아 지키는 공부의 조목을 말한 것이다.
그 아랫글에 “배우지 않을지언정 배우면 능하지 못하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며, 묻지 않을지언정 물으면 알지 못하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며,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생각하면 터득하지 못하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며, 분변하지 않을지언정 분변하면 분명하지 못하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며, 행하지 않을지언정 행하면 독실하지 못하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아서, 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백 번을 하고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하여야 한다. 과연 이 도에 능하면 비록 어리석으나 반드시 밝아지며 비록 유약하나 반드시 강해진다.[有不學 學之 不能不措也 有不問 問之 不知不措也 有不思 思之 不得不措也 有不辨 辨之 不明不措也 有不行 行之 不篤不措也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果能此道矣 雖愚必明 雖柔必剛]” 하였다.
주자(朱子)의 장구(章句)에 이르기를, “군자의 학문은 하지 않으면 그만이거니와 하면 반드시 이루기를 요구한다.” 하였으니, 이른바 ‘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것은 ‘배우지 않고 묻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분변하지 않고 행하지 않는다’는 다섯 구(句)의 뜻을 가리켜 해석한 것이며, 이른바 ‘하면 반드시 그 이루기를 요구한다’는 것은 ‘배우면 능하지 못하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며, 물으면 알지 못하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며, 생각하면 터득하지 못하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며, 분변하면 분명하지 못하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며, 행하면 독실하지 않거든 그대로 버려두지 말라’는 다섯 구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또 주자는 말씀하기를, “이 문법은 ‘싸우지 않을지언정 싸우면 반드시 승리한다.[有不戰 戰必勝]’는 유(類)와 같은 것이다.” 하였으니, 이는 딴 문장을 인용하여 이 장의 문세를 증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은 자들은 항상 생각하기를 ‘배우지 않고 묻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분변하지 않고 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지고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변하고 행하는 일에 전혀 뜻이 없어 단연코 하지 않는 자를 가리킨 것이라 여기고, 그 구의 끝에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不爲則已]”의 이(已) 자는 바로 전혀 다시 가망이 없는 뜻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 아래에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변하고 행한다는 학지(學之), 문지(問之), 사지(思之), 변지(辨之), 행지(行之)의 각각 두 글자를 곧 말의 첫머리로 삼아 제기해서 배우는 자를 권면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까지 이것을 따르지 않는 자가 없다.
그러나 나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보면, 윗글에 이미 다섯 가지 공부의 조목을 차례로 말했기 때문에 아랫글에 다섯 가지 조목을 따라 조목조목 권면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 뜻을 살펴보면 ‘후학이 과연 배우지 않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지금부터 배워서 능하지 못한 것을 감히 그대로 버려두어 배움을 놓지 말고, 과연 묻지 않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지금부터 물어서 알지 못하는 것을 감히 그대로 버려두어 질문을 접어두지 말고, 과연 생각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지금부터 생각하여 터득하지 못한 것을 감히 그대로 버려두어 생각하는 것을 꺼려하지 말고, 과연 분변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반드시 지금부터 분변하여 분명하지 않은 것을 감히 그대로 버려두어 분변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고, 과연 행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지금부터 행하여 독실하지 못한 것을 감히 그대로 버려두어 불성실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글 뜻이 윗글을 따라 거듭 권면한 것이 순하고 굽힘이 없으니, 어찌 반드시 배우지 않고 묻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분변하지 않고 행하지 않는 자를 들어 물리친 뒤에 저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분변하고 행하는 사람을 권면하였겠는가.
힘쓰지 않아도 도에 맞고 생각하지 않아도 터득하는 성인이 아니라면 그 누가 배우지 않고 묻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분변하지 않고 행하지 않는 절목(節目)이 없겠는가. 배우지 않으면 반드시 능하지 못한 바가 있고, 묻지 않으면 반드시 알지 못하는 바가 있고,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터득하지 못하는 바가 있고, 분변하지 않으면 반드시 분명하지 못한 바가 있고, 행하지 않으면 반드시 독실하지 못한 바가 있는 것이다.
이에 과연 그 능하지 못한 것을 그대로 버려두지 말고 반드시 배우며, 알지 못하는 것을 그대로 버려두지 말고 반드시 물으며, 터득하지 못한 것을 그대로 버려두지 말고 반드시 생각하며, 분명하지 못한 것을 그대로 버려두지 말고 반드시 분변하며, 독실하지 못한 것을 그대로 버려두지 말고 반드시 행한다면, 처음에 능하지 못하던 것이 마침내 능하지 못한 바가 없게 될 것이요, 처음에 알지 못하던 것이 마침내 알지 못하는 바가 없게 될 것이요, 처음에 터득하지 못한 것이 마침내 터득하지 못하는 바가 없게 될 것이요, 처음에 분명하지 못하던 것이 마침내 분명하지 못한 바가 없게 될 것이요, 처음에 독실하지 못하던 것이 마침내 독실하지 못한 바가 없게 될 것이다. 비록 어렵게 알고 힘써 행하는 자라도 스스로 공부를 백 배를 하고 천 배를 한다면 성공에 이르러서는 똑같게 되니, 이것이 성인의 뜻이다.
그러므로 ‘배우지 않고 묻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분변하지 않고 행하지 않는다’는 등의 말을 가지고 아랫글의 각 조목을 일으키는 말로 삼아, 반드시 배우지 않은 것을 배워서 배우지 않은 바가 없고, 반드시 묻지 않은 것을 물어서 묻지 않은 바가 없고, 반드시 생각하지 않은 것을 생각해서 생각하지 않은 바가 없고, 반드시 분변하지 않은 것을 분변해서 분변하지 않은 바가 없고, 반드시 행하지 않은 것을 행해서 행하지 않은 바가 없게 하도록 권면한 것이니, 이는 글 뜻이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 아니겠는가.
성현이 책을 지어 글을 쓴 것은 한 장(章)과 한 구(句)에 모두 일정한 종지(宗旨)가 있는데, 옛 사람들은 문법이 간략하고 심오하며 의취(義趣)가 원만하고 넓어서 내용이 얕고 뜻이 드러나 쉽게 이해하고 쉽게 알 수 있는 후세의 문자(文字)와는 다르다. 그러므로 책을 엮는 자가 혹 두루 살펴보지 못하여 착각하고 잘못 갖다 붙이며 읽는 자들 또한 억측(臆測)으로 헤아리고 견강부회(牽强附會)하여 본의를 잃는 경우가 많다.
비록 통달한 식견으로도 범범히 보고 그대로 지나침을 면치 못하여 혹 미처 다 이정(釐正 개정)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이것을 옮겨 개정하고 다시 수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의논하는 자들은 혹 말하기를 “선현(先賢)들이 일찍이 주목하였고 이미 손을 거쳤으니, 후학들이 그 사이에 이동(異同)을 가하고 가부(可否)를 논할 수 없다.”고 한다. 이는 진실로 선유(先儒)들을 독실히 믿는 것이니 그 뜻이 좋고, 경전(經傳)을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니, 그 의논이 확고하다.
그러나 의리의 공정(公正)함을 사람들이 똑같이 얻었으니, 비록 지극히 어리석고 지극히 누추한 자라도 혹 한 가닥 길을 통달하여 다만 한 가지라도 옳게 터득한 뜻이 있으면 마땅히 그것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옛날 대순(大舜)이 사람들에게 묻기를 좋아하고 천근(淺近)한 말을 살펴 큰 지혜가 된 것은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대학》과 《중용》 두 책은 진실로 정자(程子)와 주자(朱子)의 눈과 손을 거쳤는데, 명도(明道)가 수정한 것을 이천(伊川)이 이미 다 따르지 않았고, 명도와 이천 두 정자가 수정한 것을 회암(晦菴)이 또한 다 따르지 않았는 바, 다 따르지 않은 까닭을 스스로 혐의하지 않은 것은 공공(公共)의 의리(義理)에 있어 각각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는 것이 또한 자신의 분수 안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감히 스스로 다하지 않을 수 없어 후세의 군자를 기다리는 것이 어찌 선현에게 죄를 얻는 것이겠는가. 이 또한 선현들이 인정할 것이 분명하다.
일찍이 《주역(周易)》 한 책을 보면 전문(傳文)은 이천에게서 나왔고 본의(本義)는 회암에게서 나왔는데 똑같이 경문(經文)의 뜻을 발명하였으나 본의의 말씀이 또한 정전의 말씀을 다 따르지 않고 혹 별도로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설명한 곳이 있다. 이천을 높이고 숭상함이 그 누가 회암만 하겠는가. 그런데도 글에 대하여 달리함이 이와 같으니, 이는 선유(先儒)와 달리하기를 좋아해서가 아니요 공의(公義)가 있는 곳에는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달리하는 것은 글 뜻 사이에 세미한 곡절(曲折)일 뿐이니, 도리의 큰 두뇌가 있는 부분은 일찍이 똑같지 않은 것이 아니다.
[주D-001]《대기(戴記)》 : 한(漢) 나라 때 대성(戴聖)이 주해(註解)한 《예기(禮記)》를 이른다. 대성은 숙부인 대덕(戴德)에게 예를 배웠는데, 대덕은 일찍이 《의례(儀禮)》를 주해하였다. 이 때문에 대덕을 대대(大戴), 대성을 소대(小戴)라 칭하고 《의례》를 대대기(大戴記), 《예기》를 소대기(小戴記)라 하여, 《의례》와 《예기》를 모두 ‘대기’라고도 칭하나 후대에는 주로 《예기》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주D-002]두 정자(程子) : 명도(明道) 정호(程顥)와 이천(伊川) 정이(程頤) 형제를 이른다.[주D-003]지지(知止)와 물유(物有)의 두 절(節) : 《대학》의 세번째 절인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네번째 절인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를 가리킨 것이다.[주D-004]자왈(子曰)의 한 절(節) : ‘子曰 聽訟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을 가리킨 것이다.[주D-005]연문(衍文) : 쓸데없이 중복된 글을 이른다.[주D-006]간상(間嘗)의 한 단락 : “요즘 내 일찍이 정자의 뜻을 취하여 보충한다.[間嘗竊取程子之意以補之]”는 글을 가리키는바, 주자는 격물치지장이 빠져 있다는 정이천(程伊川)의 말을 따라, 격물·치지의 뜻을 자신이 지어 아래에 끼워 넣었으므로 말한 것이다.[주D-007]여섯 가지 조목 : 《대학》의 팔조목(八條目) 중 격물·치지를 뺀 성의(誠意)·정심(正心)·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여섯 가지를 가리킨다.[주D-008]이를 데를……보존할 수 있다 : 이를 데를 알아 이르는 것은 지공부(知工夫)로 학문의 시작에 해당하고, 마칠 데를 알아 마치는 것은 행공부(行工夫)로 학문을 끝마침에 해당하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주D-009]팔조목의 공부와 공효 : 《대학》의 “옛날에 명덕을 천하에 밝히고자 한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몸을 닦고, 그 몸을 닦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루고, 그 마음을 바루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성실히 하고, 그 뜻을 성실히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지식을 지극히 하여야 하니, 지식을 지극히 함은 사물의 이치를 연구함에 있다.[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한 것을 팔조목의 공부라 하며, 바로 다음에 있는 “사물의 이치가 지극해진 뒤에야 지식이 지극해지고, 지식이 지극해진 뒤에 뜻이 성실해지고……나라가 다스려진 뒤에 천하가 고르게 된다.[物格而后知至 知至而后意誠……國治而后天下平]” 한 것을 팔조목의 공효라 한다.[주D-010]다섯 지(止) 자 : 문왕(文王)의 덕을 말하면서 “인군이 되어서는 인(仁)에 그치고, 신하가 되어서는 공경에 그치고, 자식이 되어서는 효에 그치고, 아버지가 되어서는 사랑에 그치고, 백성들과 사귈 때에는 신(信)에 그쳤다.[爲人君 止於仁 爲人臣 止於敬 爲人子 止於孝 爲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는 글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