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는 조선 후기 실학의 개조(開祖)로 불리는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 편찬한 지리지로, 최초로 개인이 저술한 전국적인 지리지라는 면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지리지는 일정 지역 내에 분포하는 시간적, 공간적, 자연적, 인문적인 여러 현상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기록인데 조선의 지리지 형식은 대개 일정한 항목하에 나열식으로 기술된 백과 사전식 총람이다. 조선 시대 이전의 지리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와 같이 역사서에 부록된 것으로 독립된 지리지가 없었 다. 조선 건국 후 중앙 집권 체제의 강화와 함께 문물이 정비되고 국가 통치 자료의 파악을 위한 목적으로 독자적인 지리지가 만들어졌는데, 조선 최초의 전국지리지는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이다. 이후 1481년(성종12)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 편찬되었고, 1530년(중종25)에 증보된 것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지리지의 집대성으로 이후 조선 지리지의 규범이 되어 후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후 16, 7세기에는 지방 군현 단위의 읍지가 본격적으로 편찬되었는데 특히 사찬 읍지(私撰邑誌)가 많이 나와서 내용이 보다 풍부하고 상세해졌다. 또 한백겸(韓百謙)의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와 같은 역사지리서가 출현하여 역사 인식과 지리가 연결되는 새로운 양상을 띠기도 하였다. 양란 이후 사회 경제적 변화를 담아내는 전국적인 규모의 지리지 편찬은 국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유형원이란 실학자 개인의 노력에서 나온 《동국여지지》였다. 국가적으로 전국지리지 편찬이 행해진 것은 1757년(영조33)의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처럼 《동국여지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 간의 230여 년의 공백을 메워 주는 전국 규모의 지리지이자 실학자 유형원의 개혁 사상을 담은 지리지이며, 우리나라 역사를 지리적 고증을 통해 밝힌 역사지리서란 면에서 주목을 받아 왔다.
[지명]충청도(忠淸道) 좌도(左道)○충주진(忠州鎭) 청풍군〔淸風郡〕
동쪽으로 단양군(丹陽郡) 경계까지 39리이고, 남쪽으로 경상도 문경현(聞慶縣) 경계까지 60리이고, 서쪽으로 충주(忠州) 경계까지 40리이고, 북쪽으로 제천현(堤川縣) 경계까지 17리이다. 서울과의 거리는 355리이다.
한전(旱田)
수전(水田)
건치연혁(建置沿革)
본래 고구려의 사열이현(沙熱伊縣)인데,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청풍으로 이름을 고쳐 내제군(奈堤郡)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 현종(顯宗) 때 에 충주(忠州)에 편입시켰다가 뒤에 다시 청풍현을 설치하였다. 충숙왕(忠肅王) 때 에 승격하여 군(郡)으로 삼았다. 현(縣)의 승(僧) 청공(淸恭)이 왕사(王師)가 되었으므로 승격한 것이다. 본조에서 그대로 따랐다. 관장하는 면(面)은 □개이고, 관원은 군수와 훈도이다. 각 1인이다. 지금 증보하건대 금상 1년(1660, 현종1)에 승격하여 도호부로 삼았다. 왕비 김씨(金氏)의 본관이므로 승격시킨 것이다.
군명(郡名)
사열이(沙熱伊)
형승(形勝)
산천이 기이하고 빼어나다. 본조 송처관(宋處寬)의 〈한벽루기(寒碧樓記)〉에 나온다.
한 줄기 맑은 강이 흐른다. 고려 정추(鄭樞)의 시에 “한 줄기 맑은 강이 한 고을을 다 흐르네.[一道澄江一邑傳]” 라고 하였다.
풍속(風俗)
화경(火耕)을 좋아한다. 정추의 시 에 “풍속은 화경 좋아해 곡식 많이 심고[俗尙火耕多種粟]”라고 하였다.
산천(山川)
인지산(因地山) 군 남쪽 1리에 있다. 진산(鎭山)이다.
무암산(茂巖山) 군 동쪽 10리에 있다. 창고 터가 남아 있는데, 고려 때 경상도의 전부(田賦)를 이곳에서 실어 보냈다.
삼방산(三方山) 군 북쪽 3리에 있다.
금곡산(金谷山) 군 서쪽 26리에 있다.
저성산(猪城山) 군 동쪽 5리에 있다. 석성(石城)이 있다.
병풍산(屛風山) 군 북쪽 1리에 있다. 한강을 굽어보고 있으며, 산에 풍혈(風穴)이 있다.
부산(婦山) 군 서쪽 15리에 있다.
성황산(城隍山) 군 동쪽 3리에 있다.
월악산(月嶽山) 군 남쪽 50리에 있다. 신라 때에는 월형산(月兄山)이라 하였다. 소사(小祀)를 지낸다.
전산(箭山) 군 북쪽 17리에 있다.
백야산(白夜山) 군 남쪽 33리에 있다.
쌍암산(雙巖山) 군 동쪽 5리에 있다.
취산(鷲山) 군 남쪽 2리에 있다. 군창(軍倉)이 있다.
장선현(長善峴) 군 서쪽 16리에 있다. 지극히 험하다.
북진(北津) 병풍산 아래에 있다. 수원(水源)은 강릉부(江陵府) 오대산(五臺山)에서 나와 충주 경계로 흘러 들어간다.
고교천(高橋川) 군 북쪽 8리에 있다. 수원은 제천현(堤川縣) 경계에서 나와 한강으로 들어간다.
월천(月川) 군 서쪽 40리에 있다. 수원은 부덕산(夫德山)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충주 경계에 이르러 한강에 들어간다.
엄성협(嚴城峽) 군 서쪽 20리에 있다. ○ 본조 최숙생(崔淑生)의 시에,
산허리에 험한 돌길 나 있어 / 山腰開犖确
말도 조심조심 밟고 가네 / 馬足踏凌兢
포개진 바위가 천 길 뻗어서 / 累石千臨丈
구름 뚫고 위로 일만 층 솟았네 / 穿雲上萬層
응당 오정을 불러 뚫었을 테지 / 應煩五丁鑿
바로 높디높은 하늘 오르는 듯하네 / 正似九天登
눈에 가득 보이는 것 모두 청량한 경치 / 滿眼皆淸景
시를 지어 내 이전 회포를 기억하노라 / 題詩記我曾
하였다.
토산(土産)
명주실[絲], 무쇠[水鐵], 군 동쪽 평등산(平登山)에서 생산된다. 석유황(石硫黃), 전산, 백야산, 쌍암산, 논양리(論陽里) 등지에서 난다. 석종유(石鍾乳), 군 북쪽 풍혈(風穴) 및 군 남쪽 저전리(苧田里) 석혈(石穴)에서 생산된다. 청옥(靑玉), 군 동쪽 목동(木洞)에서 난다. 녹반(綠礬), 군 북쪽 전산에서 난다. 먹[墨], 대추[棗], 영양(羚羊), 꿀[蜂蜜], 황랍(黃蠟), 인삼(人蔘), 복령(茯苓), 시호(柴胡), 산무애뱀[白花蛇], 지치[紫草], 송이버섯[松蕈], 석이버섯[石蕈]
학교(學校)
향교(鄕校) 군 남쪽 1리에 있다.
궁실(宮室)
객관(客館) 본조 김정(金淨)의 시에,
가을 지나니 산속 집 고요하고 / 秋盡山居靜
한가한 구름 고을 누각에 걸려 있네 / 閑雲淡郡樓
평평한 모래사장은 나무 빛 띠고 / 平沙帶樹色
텅 빈 산골에 강물 소리 울리네 / 空峽響江流
흥은 멀리 푸른 모래톱에 맡기고 / 興托滄洲遠
정은 깊숙한 계수나무 떨기에 남기네 / 情留叢桂幽
뜬구름이 이제 산골을 빠져나가니 / 浮雲今出洞
물고기 새들 절로 유유자적하네 / 魚鳥自悠悠
하였다.
향사당(鄕射堂)
한벽루(寒碧樓) 객관 동쪽에 있다. 강물을 바로 굽어보고 있으며 그 옆에 응청각(凝淸閣)이 있다.
○ 고려 주열(朱悅)의 시에,
물빛은 너무 맑아 거울인가 거울 아닌가 / 水光澄澄鏡非鏡
산기운은 곱게 서려 연기인가 연기 아닌가 / 山氣藹藹煙非煙
찬 물 푸른 산이 서로 엉겨 한 고을 이루었는데 / 寒碧相凝作一縣
맑은 바람은 만고에 전하는 사람 없네 / 淸風萬古無人傳
하였다.
○ 본조 유운(柳雲)의 시에,
골짜기 쪼개고 강물 흘러가는 것 거령 덕분이고 / 擘峽奔江賴巨靈
지치면 와서 의지하니 나그네 정신 일깨우네 / 困來從倚客魂醒
여울물 소리 귀를 건드리니 한기가 베개에서 일고 / 灘聲撼耳寒生枕
산기운 창에 들어오니 푸른빛으로 병풍 둘렀네 / 山氣籠窓翠作屛
물새 노는 모래사장은 비에 씻겨 밝기가 눈과 같고 / 雨洗鷗沙明似雪
달에 잠긴 고기잡이 불 어지럽기 반딧불 같네 / 月沈漁火亂如螢
만 리 길 끝도 없어 외로운 배에서 피리 부는데 / 無端萬里孤舟笛
돌아가고픈 마음뿐인데 동정호 아득하기만 하네 / 一片歸心杳洞庭
하였다.
○ 본조 김정의 시에,
절벽에 자리잡아 산천이 장엄하니 / 盤壁山川壯
천지간에 이 자리 그윽하구나 / 乾坤玆境幽
바람은 만고의 굴혈에서 나오고 / 風生萬古穴
강물은 오경에 누각을 흔드네 / 江撼五更樓
누워 있기론 맑은 여름이 알맞고 / 虛枕宜淸夏
시 쓸 때는 깊은 가을이 상쾌하지 / 詩魂爽九秋
어찌하면 속세를 벗어던지고 / 何因脫身累
푸른 물가 곁에 높이 누우려나 / 高臥寄滄洲
하였다.
명월정(明月亭) 한벽루 동쪽에 있다.
봉수(烽燧)
오현 봉수(吾峴烽燧) 군 남쪽에 있다. 동쪽으로 단양군(丹陽郡) 소이산(所伊山)에 응하고 서쪽으로 충주 심항산(心項山)에 응한다.
우역(郵驛)
황강역(黃江驛) 군 서쪽 35리에 있다.
수산역(壽山驛) 군 남쪽 26리에 있다.
안음역(安陰驛) 옛 이름은 안성(安城)이다. 군 북쪽 5리에 있다.
권일원(權一院) 군 남쪽 26리에 있다.
논양원(論陽院) 군 서쪽 33리에 있다.
주병원(酒餠院) 군 서쪽 25리에 있다.
관량(關梁)
북진나루[北津渡] 군 북쪽 1리에 있으니, 바로 한강진 나루이다.
사묘(祠廟)
사직단(社稷壇) 군 서쪽에 있다.
문묘(文廟) 향교(鄕校)에 있다.
성황사(城隍祠) 군 남쪽에 있다.
여단(厲壇) 군 북쪽에 있다.
사찰(寺刹)
월악사(月嶽寺) 월악산에 있다.
산방사(山房寺), 무암사(霧巖寺) 모두 백야산(白夜山)에 있다.
고적(古蹟)
명환(名宦)
고려
안종원(安宗源) 공민왕조(恭愍王朝)에 지청풍군사(知淸風郡事)가 되었다.
본조
송처관(宋處寬) 지청풍군사를 지냈다.
김연수(金延壽) 청풍 군수가 되어 정사를 하는 데 청렴하고 간소함을 숭상하였다. 처음에 고을 사람이 목우(木偶)를 얻었는데, 사람들이 신(神)이라고 여겨 매년 여름마다 객헌(客軒)에 모셔 두고 제사를 크게 벌였다. 온 경내 사람들이 모여들어 폐단을 끼친 지가 오래되었다. 김연수가 고을에 부임하자 곧바로 무격(巫覡) 및 일에 앞장선 자를 잡아들여 장을 치고 마침내 그 목우를 태워 버렸다. 이에 요사(妖祀)가 마침내 근절되었다.
송담(宋譚) 청풍 군수가 되어 은혜로운 정사를 폈다.
민순(閔純) 소경왕(昭敬王 선조) 때에 청풍 군수가 되어 지극한 정성으로 백성을 어루만지되 한결같이 진실하게 하였으므로 백성들이 모두 사랑하며 받들었다.
인물(人物)
본조
김길통(金吉通) 장헌왕(莊憲王 세종) 때에 갑과(甲科) 1등으로 등제하였고, 강정왕(康靖王 성종) 때에 좌리 공신(佐理功臣)에 참여하여 월천군(月川君)에 봉해지고 관직이 호조 판서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평(文平)이다. 아들 김순명(金順命)은 등제하여 혜장왕(惠莊王 세조) 때에 적개 공신(敵愾功臣)에 참여하여 청릉군(淸陵君)에 봉해졌다.
열녀(列女)
안씨(安氏) 고을 사람 윤림(尹霖)의 처로, 일찍 지아비를 잃고 시어머니를 온 정성을 다해 봉양하였다. 집에 불이 났는데, 안씨가 불길 속으로 몸을 던져 들어가 지아비의 신주를 안고 시어머니를 등에 업고서 나오다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모두 불에 타서 죽었다. 본조 선조(宣祖) 때에 정문(旌門)을 세워 주었다.
- 고려 현종(顯宗) 때 : 1018년(현종9)이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14 忠淸道 淸風郡》
- 충숙왕(忠肅王) 때 : 1317년(충숙왕4)이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14 忠淸道 淸風郡》
- 왕비 김씨(金氏) : 현종(顯宗)의 비(妃)인 명성왕후(明聖王后)이다. 명성왕후는 김우명(金佑明)의 딸이다.
- 정추(鄭樞)의 시 : 〈청풍즉사(淸風卽事)〉이다. 《圓齋文稿 卷中》
- 정추의 시 : 위 시이다.
- 병풍산(屛風山) : 금병산(錦屛山)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 오정(五丁) : 전국(戰國) 시대 촉(蜀)나라의 뛰어난 역사(力士) 다섯 사람을 말한다.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촉왕본기
(蜀王本紀)》에 의하면, 하늘이 촉왕을 위해 오정 역사를 보내 주어 촉산을 옮길 수 있게 하였다 한다.
- 김정(金淨)의 시 : 〈청풍을 노래하다[詠淸風]〉이다. 《冲庵集 卷》
- 주열(朱悅)의 시 : 〈청풍 객사 한벽헌(淸風客舍寒碧軒)〉이다. 《東文選 卷20》
- 거령(巨靈) : 고대 신화에 나오는 신장(神將)의 이름이다. 그는 큰 도끼를 가지고 대화산(大華山)과 용문(龍門)을 찍어서
열어 놓았다고 한다.
- 김정의 시 : 〈청풍의 한벽루[淸風寒碧樓]〉이다. 《冲庵集 卷1》
- 바람은 …… 나오고 : 〈청풍의 한벽루〉 소주(小註)에 “군에 풍혈이라는 이름의 굴이 있다.[郡有風穴得名]”라고 하였다.
《冲庵集 卷1》
<출처 : 한국고전종합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