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동명집(東溟集)》은 17세기 우리나라의 문학사(文學史)와 사상사(思想史)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는,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1597~1673)의 시문집(詩文集)

정두경은 1597년(선조30) 호조 좌랑을 지낸 정회(鄭晦)와 광주 정씨(廣州鄭氏)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나 1673년(현종14) 77세로 졸하였다. 정두경의 본관은 온양(溫陽)이고, 자는 군평(君平)이며, 호는 동명이다.

 

[제목] 청풍 부사로 가는 목겸선을 전송하다〔送睦淸風 兼善

 

청풍 고을 좋은 경치 그 어디가 그만하랴 / 淸風勝境誰與儔
고을 안에 높고 높은 한벽루란 누각 있네 / 邑有寒碧之高樓
만 구멍이 모두 함께 한 풍혈로 돌아가고 / 萬竅同歸一風穴
천 봉우리 솟아나고 푸른 강은 흘러가네 / 千峯束起滄江流
어촌에는 석양 속에 낚싯배가 돌아오고 / 漁村斜陽來釣艇
물가에는 비 지난 뒤 물새들이 날아가네 / 別渚過雨飛沙鷗
내가 장차 누각 올라 시의 흥취 돋울 건데 / 我將登眺助詩興
사군께선 그곳 물색 아니 남겨 두시려나 / 物色使君留不留

 

- 목겸선(睦兼善) : 1609~? 본관은 사천(泗川), 자는 달부(達夫), 호는 용재(容齋)이다. 1644년(인조22)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효종 때 사은사(謝恩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현종조에 수찬, 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현종개수실록》 5년(1664) 윤6월 1일 기사에 목겸선이 청풍 부사로 있었던 기록이 나온다.

- 한벽루(寒碧樓) : 청풍의 객사(客舍)에 있던 누각이다.

- 풍혈(風穴) : 청풍 치소의 북쪽에 있는 병풍산(屛風山)에 바람구멍〔風穴〕이 있다.

- 萬竅同歸一風穴 : 이 부분의 소주에 “어떤 데에는 ‘만 구멍이 울어 대는 풍혈의 한 구멍이네.〔萬竅爭號風一穴〕’로

  되어 있다.” 하였다.

- 千峯束起滄江流 : 이 부분의 소주에 “어떤 데에는 ‘천 봉우리 솟은 속에 가운데로 강 흐르네.〔千峯崛起江中流〕’로 되어

  있다.” 하였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는 조선 후기 실학의 개조(開祖)로 불리는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 편찬한 지리지로, 최초로 개인이 저술한 전국적인 지리지라는 면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지리지는 일정 지역 내에 분포하는 시간적, 공간적, 자연적, 인문적인 여러 현상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기록인데 조선의 지리지 형식은 대개 일정한 항목하에 나열식으로 기술된 백과 사전식 총람이다. 조선 시대 이전의 지리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와 같이 역사서에 부록된 것으로 독립된 지리지가 없었 다. 조선 건국 후 중앙 집권 체제의 강화와 함께 문물이 정비되고 국가 통치 자료의 파악을 위한 목적으로 독자적인 지리지가 만들어졌는데, 조선 최초의 전국지리지는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이다. 이후 1481년(성종12)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 편찬되었고, 1530년(중종25)에 증보된 것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지리지의 집대성으로 이후 조선 지리지의 규범이 되어 후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후 16, 7세기에는 지방 군현 단위의 읍지가 본격적으로 편찬되었는데 특히 사찬 읍지(私撰邑誌)가 많이 나와서 내용이 보다 풍부하고 상세해졌다. 또 한백겸(韓百謙)의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와 같은 역사지리서가 출현하여 역사 인식과 지리가 연결되는 새로운 양상을 띠기도 하였다. 양란 이후 사회 경제적 변화를 담아내는 전국적인 규모의 지리지 편찬은 국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유형원이란 실학자 개인의 노력에서 나온 《동국여지지》였다. 국가적으로 전국지리지 편찬이 행해진 것은 1757년(영조33)의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처럼 《동국여지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 간의 230여 년의 공백을 메워 주는 전국 규모의 지리지이자 실학자 유형원의 개혁 사상을 담은 지리지이며, 우리나라 역사를 지리적 고증을 통해 밝힌 역사지리서란 면에서 주목을 받아 왔다.

 

 

[지명]충청도(忠淸道) 좌도(左道)○충주진(忠州鎭)  청풍군〔淸風郡〕 

 

동쪽으로 단양군(丹陽郡) 경계까지 39리이고, 남쪽으로 경상도 문경현(聞慶縣) 경계까지 60리이고, 서쪽으로 충주(忠州) 경계까지 40리이고, 북쪽으로 제천현(堤川縣) 경계까지 17리이다. 서울과의 거리는 355리이다.

한전(旱田)

 

수전(水田)

 

건치연혁(建置沿革)

본래 고구려의 사열이현(沙熱伊縣)인데,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청풍으로 이름을 고쳐 내제군(奈堤郡)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 현종(顯宗) 때 에 충주(忠州)에 편입시켰다가 뒤에 다시 청풍현을 설치하였다. 충숙왕(忠肅王) 때 에 승격하여 군(郡)으로 삼았다. 현(縣)의 승(僧) 청공(淸恭)이 왕사(王師)가 되었으므로 승격한 것이다. 본조에서 그대로 따랐다. 관장하는 면(面)은 □개이고, 관원은 군수와 훈도이다. 각 1인이다. 지금 증보하건대 금상 1년(1660, 현종1)에 승격하여 도호부로 삼았다. 왕비 김씨(金氏)의 본관이므로 승격시킨 것이다.

 

군명(郡名)

사열이(沙熱伊)

 

형승(形勝)

산천이 기이하고 빼어나다. 본조 송처관(宋處寬)의 〈한벽루기(寒碧樓記)〉에 나온다.

한 줄기 맑은 강이 흐른다. 고려 정추(鄭樞)의 시 “한 줄기 맑은 강이 한 고을을 다 흐르네.[一道澄江一邑傳]” 라고 하였다.

 

풍속(風俗)

화경(火耕)을 좋아한다. 정추의 시 에 “풍속은 화경 좋아해 곡식 많이 심고[俗尙火耕多種粟]”라고 하였다.

 

산천(山川)

인지산(因地山) 군 남쪽 1리에 있다. 진산(鎭山)이다.

무암산(茂巖山) 군 동쪽 10리에 있다. 창고 터가 남아 있는데, 고려 때 경상도의 전부(田賦)를 이곳에서 실어 보냈다.

삼방산(三方山) 군 북쪽 3리에 있다.

금곡산(金谷山) 군 서쪽 26리에 있다.

저성산(猪城山) 군 동쪽 5리에 있다. 석성(石城)이 있다.

병풍산(屛風山) 군 북쪽 1리에 있다. 한강을 굽어보고 있으며, 산에 풍혈(風穴)이 있다.

부산(婦山) 군 서쪽 15리에 있다.

성황산(城隍山) 군 동쪽 3리에 있다.

월악산(月嶽山) 군 남쪽 50리에 있다. 신라 때에는 월형산(月兄山)이라 하였다. 소사(小祀)를 지낸다.

전산(箭山) 군 북쪽 17리에 있다.

백야산(白夜山) 군 남쪽 33리에 있다.

쌍암산(雙巖山) 군 동쪽 5리에 있다.

취산(鷲山) 군 남쪽 2리에 있다. 군창(軍倉)이 있다.

장선현(長善峴) 군 서쪽 16리에 있다. 지극히 험하다.

북진(北津) 병풍산 아래에 있다. 수원(水源)은 강릉부(江陵府) 오대산(五臺山)에서 나와 충주 경계로 흘러 들어간다.

고교천(高橋川) 군 북쪽 8리에 있다. 수원은 제천현(堤川縣) 경계에서 나와 한강으로 들어간다.

월천(月川) 군 서쪽 40리에 있다. 수원은 부덕산(夫德山)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충주 경계에 이르러 한강에 들어간다.

엄성협(嚴城峽) 군 서쪽 20리에 있다. ○ 본조 최숙생(崔淑生)의 시에,

산허리에 험한 돌길 나 있어 / 山腰開犖确
말도 조심조심 밟고 가네 / 馬足踏凌兢
포개진 바위가 천 길 뻗어서 / 累石千臨丈
구름 뚫고 위로 일만 층 솟았네 / 穿雲上萬層
응당 오정을 불러 뚫었을 테지 / 應煩五丁鑿
바로 높디높은 하늘 오르는 듯하네 / 正似九天登
눈에 가득 보이는 것 모두 청량한 경치 / 滿眼皆淸景
시를 지어 내 이전 회포를 기억하노라 / 題詩記我曾

하였다.

 

토산(土産)

명주실[絲], 무쇠[水鐵], 군 동쪽 평등산(平登山)에서 생산된다. 석유황(石硫黃), 전산, 백야산, 쌍암산, 논양리(論陽里) 등지에서 난다. 석종유(石鍾乳), 군 북쪽 풍혈(風穴) 및 군 남쪽 저전리(苧田里) 석혈(石穴)에서 생산된다. 청옥(靑玉), 군 동쪽 목동(木洞)에서 난다. 녹반(綠礬), 군 북쪽 전산에서 난다. 먹[墨], 대추[棗], 영양(羚羊), 꿀[蜂蜜], 황랍(黃蠟), 인삼(人蔘), 복령(茯苓), 시호(柴胡), 산무애뱀[白花蛇], 지치[紫草], 송이버섯[松蕈], 석이버섯[石蕈]

 

학교(學校)

향교(鄕校) 군 남쪽 1리에 있다.

 

궁실(宮室)

객관(客館) 본조 김정(金淨)의 시에,

가을 지나니 산속 집 고요하고 / 秋盡山居靜
한가한 구름 고을 누각에 걸려 있네 / 閑雲淡郡樓
평평한 모래사장은 나무 빛 띠고 / 平沙帶樹色
텅 빈 산골에 강물 소리 울리네 / 空峽響江流
흥은 멀리 푸른 모래톱에 맡기고 / 興托滄洲遠
정은 깊숙한 계수나무 떨기에 남기네 / 情留叢桂幽
뜬구름이 이제 산골을 빠져나가니 / 浮雲今出洞
물고기 새들 절로 유유자적하네 / 魚鳥自悠悠

하였다.

 

향사당(鄕射堂)

한벽루(寒碧樓) 객관 동쪽에 있다. 강물을 바로 굽어보고 있으며 그 옆에 응청각(凝淸閣)이 있다.

○ 고려 주열(朱悅)의 시에,

물빛은 너무 맑아 거울인가 거울 아닌가 / 水光澄澄鏡非鏡
산기운은 곱게 서려 연기인가 연기 아닌가 / 山氣藹藹煙非煙
찬 물 푸른 산이 서로 엉겨 한 고을 이루었는데 / 寒碧相凝作一縣
맑은 바람은 만고에 전하는 사람 없네 / 淸風萬古無人傳

하였다.

 

○ 본조 유운(柳雲)의 시에,

골짜기 쪼개고 강물 흘러가는 것 거령 덕분이고 / 擘峽奔江賴巨靈
지치면 와서 의지하니 나그네 정신 일깨우네 / 困來從倚客魂醒
여울물 소리 귀를 건드리니 한기가 베개에서 일고 / 灘聲撼耳寒生枕
산기운 창에 들어오니 푸른빛으로 병풍 둘렀네 / 山氣籠窓翠作屛
물새 노는 모래사장은 비에 씻겨 밝기가 눈과 같고 / 雨洗鷗沙明似雪
달에 잠긴 고기잡이 불 어지럽기 반딧불 같네 / 月沈漁火亂如螢
만 리 길 끝도 없어 외로운 배에서 피리 부는데 / 無端萬里孤舟笛
돌아가고픈 마음뿐인데 동정호 아득하기만 하네 / 一片歸心杳洞庭

하였다.

 

○ 본조 김정의 시에,

절벽에 자리잡아 산천이 장엄하니 / 盤壁山川壯
천지간에 이 자리 그윽하구나 / 乾坤玆境幽
바람은 만고의 굴혈에서 나오고 / 風生萬古穴
강물은 오경에 누각을 흔드네 / 江撼五更樓
누워 있기론 맑은 여름이 알맞고 / 虛枕宜淸夏
시 쓸 때는 깊은 가을이 상쾌하지 / 詩魂爽九秋
어찌하면 속세를 벗어던지고 / 何因脫身累
푸른 물가 곁에 높이 누우려나 / 高臥寄滄洲

하였다.

명월정(明月亭) 한벽루 동쪽에 있다.

 

봉수(烽燧)

오현 봉수(吾峴烽燧) 군 남쪽에 있다. 동쪽으로 단양군(丹陽郡) 소이산(所伊山)에 응하고 서쪽으로 충주 심항산(心項山)에 응한다.

 

우역(郵驛)

황강역(黃江驛) 군 서쪽 35리에 있다.

수산역(壽山驛) 군 남쪽 26리에 있다.

안음역(安陰驛) 옛 이름은 안성(安城)이다. 군 북쪽 5리에 있다.

권일원(權一院) 군 남쪽 26리에 있다.

논양원(論陽院) 군 서쪽 33리에 있다.

주병원(酒餠院) 군 서쪽 25리에 있다.

 

관량(關梁)

북진나루[北津渡] 군 북쪽 1리에 있으니, 바로 한강진 나루이다.

 

사묘(祠廟)

사직단(社稷壇) 군 서쪽에 있다.

문묘(文廟) 향교(鄕校)에 있다.

성황사(城隍祠) 군 남쪽에 있다.

여단(厲壇) 군 북쪽에 있다.

 

사찰(寺刹)

월악사(月嶽寺) 월악산에 있다.

산방사(山房寺), 무암사(霧巖寺) 모두 백야산(白夜山)에 있다.

 

고적(古蹟)

 

명환(名宦)

 

고려

안종원(安宗源) 공민왕조(恭愍王朝)에 지청풍군사(知淸風郡事)가 되었다.

 

본조

송처관(宋處寬) 지청풍군사를 지냈다.

김연수(金延壽) 청풍 군수가 되어 정사를 하는 데 청렴하고 간소함을 숭상하였다. 처음에 고을 사람이 목우(木偶)를 얻었는데, 사람들이 신(神)이라고 여겨 매년 여름마다 객헌(客軒)에 모셔 두고 제사를 크게 벌였다. 온 경내 사람들이 모여들어 폐단을 끼친 지가 오래되었다. 김연수가 고을에 부임하자 곧바로 무격(巫覡) 및 일에 앞장선 자를 잡아들여 장을 치고 마침내 그 목우를 태워 버렸다. 이에 요사(妖祀)가 마침내 근절되었다.

송담(宋譚) 청풍 군수가 되어 은혜로운 정사를 폈다.

민순(閔純) 소경왕(昭敬王 선조) 때에 청풍 군수가 되어 지극한 정성으로 백성을 어루만지되 한결같이 진실하게 하였으므로 백성들이 모두 사랑하며 받들었다.

 

인물(人物)

 

본조

김길통(金吉通) 장헌왕(莊憲王 세종) 때에 갑과(甲科) 1등으로 등제하였고, 강정왕(康靖王 성종) 때에 좌리 공신(佐理功臣)에 참여하여 월천군(月川君)에 봉해지고 관직이 호조 판서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평(文平)이다. 아들 김순명(金順命)은 등제하여 혜장왕(惠莊王 세조) 때에 적개 공신(敵愾功臣)에 참여하여 청릉군(淸陵君)에 봉해졌다.

 

열녀(列女)

안씨(安氏) 고을 사람 윤림(尹霖)의 처로, 일찍 지아비를 잃고 시어머니를 온 정성을 다해 봉양하였다. 집에 불이 났는데, 안씨가 불길 속으로 몸을 던져 들어가 지아비의 신주를 안고 시어머니를 등에 업고서 나오다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모두 불에 타서 죽었다. 본조 선조(宣祖) 때에 정문(旌門)을 세워 주었다.

 

- 고려 현종(顯宗) 때 : 1018년(현종9)이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14 忠淸道 淸風郡》

- 충숙왕(忠肅王) 때 : 1317년(충숙왕4)이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14 忠淸道 淸風郡》

- 왕비 김씨(金氏) : 현종(顯宗)의 비(妃)인 명성왕후(明聖王后)이다. 명성왕후는 김우명(金佑明)의 딸이다.

- 정추(鄭樞)의 시 : 〈청풍즉사(淸風卽事)〉이다. 《圓齋文稿 卷中》

- 정추의 시 : 위 시이다.

- 병풍산(屛風山) : 금병산(錦屛山)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 오정(五丁) : 전국(戰國) 시대 촉(蜀)나라의 뛰어난 역사(力士) 다섯 사람을 말한다.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촉왕본기

   (蜀王本紀)》에 의하면, 하늘이 촉왕을 위해 오정 역사를 보내 주어 촉산을 옮길 수 있게 하였다 한다.

- 김정(金淨)의 시 : 〈청풍을 노래하다[詠淸風]〉이다. 《冲庵集 卷》

- 주열(朱悅)의 시 : 〈청풍 객사 한벽헌(淸風客舍寒碧軒)〉이다. 《東文選 卷20》

- 거령(巨靈) : 고대 신화에 나오는 신장(神將)의 이름이다. 그는 큰 도끼를 가지고 대화산(大華山)과 용문(龍門)을 찍어서

  열어 놓았다고 한다.

- 김정의 시 : 〈청풍의 한벽루[淸風寒碧樓]〉이다. 《冲庵集 卷1》

- 바람은 …… 나오고 : 〈청풍의 한벽루〉 소주(小註)에 “군에 풍혈이라는 이름의 굴이 있다.[郡有風穴得名]”라고 하였다.

  《冲庵集 卷1》

 

<출처 : 한국고전종합DB>

조선 시대 두곡기인(杜谷畸人) 홍우정(洪宇定, 1595~1656)의 문집

 

[제목] - 寒碧樓

 

“드넓은 천하의 한 대장부, 청풍 한벽루에 올랐네. 난간에 임해 휘파람 부니, 강달 비추는 가을 새벽이라.

〔宇宙一男子 淸風寒碧樓 臨軒發長嘯 江月五更秋〕”

 

<출처 : 한국고전종합DB>

[제목] 청풍 한벽루에 올라[登淸風寒碧樓] 

 

깊은 골 푸른 그늘 자리 옮기니 / 絶峽蒼陰轉
높은 누각 햇살이 차갑구나 / 飛樓白日寒
서리 하늘 석벽만 높이 섰는데 / 霜天唯石壁
가을물은 물결만 절로 이누나 / 秋水自波瀾
바야흐로 배 타고 지나려면서 / 正欲乘舟過
한가로이 말 세워 구경한다네 / 聊成立馬看
사군이여 당신이 부럽구려 / 使君吾羨汝
여기가 다름아닌 선관이로세 / 卽此已仙官

《농암집(農巖集)》 은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문집인 《농암집(農巖集)》을 국역한 것이다. 김창협은 아우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과 더불어 농연(農淵) 형제로 병칭되며 당대의 문운(文運)을 주도하는 한편, 철학사에서도 낙론(洛論)의 종장으로 추숭되기도 하였던 인물이다. 또한 그는 안동 김씨(安東金氏) 그중에서도 속칭 장동 김씨(壯洞金氏)의 일원으로서 숙종대의 치열했던 정치적 상황에서 갈등했던 노론(老論)의 정치가이기도 하였으니, 정치ㆍ철학ㆍ문학 등 어느 한 방면에서도 소홀히 여길 수 없는 비중을 지니고 있다.

 

[1.제목]  가흥(可興)을 지나는데 강물이 맑디맑아 내 마음을 기쁘게 하다. 

 

머나먼 길 급하게 달려오자니 / 汩汩赴脩塗
불안해 객의 시름 쌓이더니만 / 搖搖積旅思
골짝 강에 홀연히 정신 깨이어 / 峽江忽寤懷
한가로이 말고삐 늦춰 잡는다 / 聊以緩長轡
구불구불 길 하나 이어졌지만 / 綿延雖一路
굽이마다 느낀 정취 다르고말고 / 回轉每殊致
울퉁불퉁 기암괴석 여기 또 저기 / 磊磊奇石見
반짝반짝 흰 모래 덮이었는데 / 炯炯素沙被
깊은 물엔 비단 무늬 펼쳐져 있고 / 縠文布淵淪
빠른 여울 화살보다 한층 더 빨라 / 竹箭讓湍駛
구름 태양 번갈아 서로 비추니 / 雲日遞相照
시시각각 변화하는 경치로구나 / 景氣多變異
뉘 알았으리 사행길 고달픔 속에 / 不謂原隰勞
강변의 은자 흥취 함께 누릴 줄 / 兼領滄洲事
평소부터 이런 정취 좋아했기에 / 平生篤斯好
감탄하며 깊은 마음 쏟아낸다네 / 喟焉注深寄
물길을 거스르며 어디 향하나 / 溯洄終何向
청풍 고을 한벽루(寒碧樓) 그곳이라오 / 碧樓在延跂

 

- 가흥(可興) : 충청북도 중원군(中原郡) 가금면(可金面)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가흥창(可興倉)은 조창(漕倉)이 있던

  곳으로, 경상도 북부의 여러 고을과 충청도 일원의 전세(田稅)를 이곳에 모아 남한강(南漢江)의 수로를 이용하여 서울로

  수송하였는데, 덕흥창(德興倉), 경원창(慶原倉)이라고도 한다.

 

 

[2.제목] 강기슭에 물결을 스치는 수양버들이 있어 지나가는 배를 덮었다.  

 

기슭 누운 수양버들 금빛으로 단장하고 / 臥岸垂楊黃嚲金
긴긴 가지 나날이 강 빛 함께 푸르러 가 / 長條日與綠江深
뱃머리에 펼쳐진 봄빛 지금 이러하니 / 舟前春色今如此
한벽루 어귀에도 봄을 막지 못하리라 / 寒碧樓頭恐不禁

 

 

[3.제목] 달밤에 배 안에서 한벽루(寒碧樓)에서 들려오는 피리소리를 감상하며 율시 한 수를 짓다. 

 

누 위의 피리소리 격이 높은데 / 樓上吹初好
배 안에서 듣노라니 더욱 시원해 / 舟中度更寒
텅 빈 강 그 울림이 자연스럽고 / 江空易成響
먼 안개 아스라이 끝이 없는 듯 / 煙遠似無端
맑은 소리 강변의 풍혈에 닿고 / 淸籟連風穴
흐르는 음 월탄까지 울려 퍼진다 / 流音溯月灘
뜻이 통한 아양곡 여기 있으니 / 峨洋今在此
거문고 굳이 애써 탈 것이 없네 / 綠綺未須彈

 

 

[4.제목] 응청각에서 또 ‘호(壺)’ 자 운을 얻어 짓다.

 

한벽루라 누각 위에 한 병 술 앞에 놓고 / 寒碧樓頭酒一壺
술 마시는 높은 흥취 봄 강물이 있음이라 / 含杯高興在春湖
강변에 두루 핀 꽃 하양 땅의 오얏이요 / 岸花開徧河陽李
모래 위 나는 물새 섭현 고을 오리로세 / 沙鳥飛依葉縣鳧
주렴 아래 방울 둬도 관아의 공무 없고 / 簾下掣鈴無簿牒
수령 함께 휘호(揮毫)하는 선비들도 많다네 / 席前揮筆盛文儒
이다음 지금 이 일 쓸쓸히 추억하며 / 異時此事空相憶
금병산(錦屛山) 외로이 지는 해를 마주하리 / 閒對屛山落日孤

 

- 하양(河陽) 땅의 오얏 : 진(晉)나라 반악(潘岳)이 하양 현령(河陽縣令)으로 있을 때 온 고을에 복사나무와 오얏나무를

  심어 봄바람이 불어올 때면 곳곳에 꽃이 만발하였다 한다. 《白孔六帖》

- 섭현(葉縣) 고을 오리 :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 도술을 지닌 왕교(王喬)가 섭현 영(葉縣令)을 지내면서 매월

  초하루와 보름이 되면 언제나 조정에 와서 명제를 알현하였다. 그가 먼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자주 오고 또 수레도

  타지 않았으므로, 이를 이상하게 여긴 명제가 비밀리에 태사(太史)에게 그 진상을 알아보라고 명했는데, 태사가,

  그가 오는 시기에 한 쌍의 들오리가 동남방에서 날아온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들오리가 다시 날아오는 때를 기다렸

  다가 그물로 덮쳤는데, 그물 속에는 몇 해 전에 황제가 상서대(尙書臺) 관원들에게 하사한 가죽신 한 짝만 있었다고

  한다. 《後漢書 卷82上 方術列傳 王喬》 작자가 현재 물오리가 노는 남한강 상류 청풍부에서 왕교처럼 한적한 벼슬살이

  를 한다는 뜻에서 인용한 것이다.

- 주렴 …… 없고 : 당(唐)나라 때 지방 관청에서 문밖에 쇠방울을 매달아 두고 수령에게 보고할 일이 있으면 방울을 잡아

  당겨 울림으로써 사람이 수령을 불러내는 것을 대신하였다 한다. 곧 지금 청풍부에 공무가 한가함을 말한 것이다.

 

 

[5.제목] 자익이 배에 오르기 전에 한벽루(寒碧樓) 앞의 배나무 한 그루를 읊었는데, 홍생(洪生)과 함께 그에 화답하다. 

 

한벽루라 누각 앞에 한 그루 버드나무 / 寒碧樓前一株柳
금병산의 안개를 천 가지가 얽어맸네 / 千條綰盡錦屛煙
봄바람아 부질없이 왜 저리 길러냈나 / 春風長得空如許
가는 사람 탄 배를 잡아매지 못할 것을 / 不繫歸人下瀨船

 

-  금병산(錦屛山)의 …… 얽어맸네 : 버드나무 잎이 다 자라 무성한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출처 : 한국고전종합DB>

 

《기묘록(己卯錄)》은 본래 기묘사화(己卯士禍) 때에 같이 화를 입었던 한 사람인 김정국(金正國)이 편찬한 것이고 뒤에 김육(金堉)이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 시절에 간행하였다.

 

[제목]  최운 전(崔澐傳) 

최운(崔澐)은 □□생으로 자(字)는 운지(澐之)이다. 대대로 전의(全義)에 살았으며 일찍이 충암(冲庵 김정(金淨))과 같이 공부하였다. 무인년에 그 고을에서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별과(別科)로 보관(補官)되었는데, 천목(薦目)에는, 지조와 행실이 바르고, 학식과 재행(才行)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제(下第)하여 황간 현감(黃澗縣監)이 되었다. 정사를 대범하게 다스리고 송사(訟事)는 사리에 맞으니 아전들은 두려워하고 백성들은 따랐으며, 임금은 옷감 한 벌을 내려 격려하였다. 12월에 파직되어 고향에 근신하고 있었는데 경진년에 이신(李信)의 고사(告辭)에, “김 대사성(金大司成 김식(金湜))이 망명 중에 있을 때, ‘나를 받아줄 사람은 최운과 영해 부사(寧海府使) 이윤검(李允儉)뿐이다.’ 말한 바 있다.” 하였으므로, 체포되어 추국을 받고 전 가족이 강계(江界)로 추방되어 죽었다. 죄가 풀리자 그의 아내가 뼈를 가지고 돌아와 고향에 장사지냈다. 공이 일찍이 청풍(淸風) 한벽루(寒碧樓)에서 벗을 보내는 시를 지었는데,

 

머나먼 타관 길에 / 萬里關河路
나그네의 외로운 모습이여 / 羈危隻影微
바람은 성긴 버들 언덕에 많고 / 風多疎柳岸
낙엽은 늦은 산 석양빛에 떨어진다 / 葉落晩山暉
내 마음 산수에 쏠려 있고 / 山水情都在
저 일은 존망이 다 틀렸네 / 存亡事已違
고향이 이제 멀지 않으니 / 故園今不遠
행여나 더디 돌아갈까 저어하노라 / 錯莫欲遲歸

하였다.

제목 : 한벽루 벽 위의 주 문절의 시에 차운하다〔次寒碧樓壁上朱文節韻〕

 

천 가지 경치에 사람 눈 번쩍 뜨이고 / 千般景象醒人眼
아침에 창을 열면 저녁까지 안개로세 / 晨啓軒窓至暝煙
누가 알았으랴 천지의 맑은 기운을 / 誰識二儀淸淑意
산천이 가져다 여기에 전해 줄 줄을 / 山川持向此間傳

 

- 주 문절(朱文節) :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의 문신인 주열(朱悅, ?~1287)을 가리킨다. 문절은 그의 시호(諡號)이다.

 

 

<출처 : 한국고전종합DB>

고산유고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시문집

《고산유고(孤山遺稿)》를 번역한 것이다.

 

[제목] : 〔代嚴君次韻酬姜正言大晉 六首○甲寅〕 6수○갑인년(1614, 광해군6)

           부친을 대신해서 정언 강대진에게 차운하여 답하다

 

한벽의 선경을 독차지하고 / 寒碧領仙景
맑고 호방하게 서 있는 누대
/ 爲樓淸且豪
은총과 치욕을 잊게 해 주나니 / 能令忘寵辱
한번 산호를 휘두를 만하도다 / 可以揮山毫
소리도 듣기 좋은 긴 여울이요 / 長瀨聲容好
기상도 드높은 뭇 산봉우리라 / 群峯氣象高
병든 몸으로 승경에 오르기 어렵지만 / 沈痾難濟勝
손잡고 감상한다면 수고롭다 말하리오 / 携賞豈言勞

도담에게 축하하는 말을 전하노니 / 寄語賀島潭
금일의 손님은 영호하신 분이니까 / 今日客英豪
도담은 내가 보지 못했다마는 / 島潭吾不見
그대의 휘호만은 보고 싶은걸 / 欲見子揮毫
그 절경 참으로 어떤 형상일까 / 奇勝眞何狀
여기와 어디가 더 낫다 할지 / 與此孰爲高
머지않아 나도 배 저어 가며 / 早晩刺舟去
결코 고생을 사양치 않으리라 / 吾亦不辭勞

 

용모를 정제하고 서 있는 봉우리들 / 群峯整容立
신선과 호걸들이 한데 뒤섞였네 / 羽客雜人豪
푸른 옥색이 두 눈을 밝게 하나니 / 玉色明雙眼
한 터럭도 봉심이 있지 않다오 / 蓬心無一毫
강의 흐름은 맑음이 이미 극에 달하고 / 江流淸已極
새소리는 성운(聲韻)이 여전히 높아라 / 禽鳥韻猶高
현포가 어찌 이보다 나을 수 있으리오 / 玄圃何能勝
이제 꿈속에 그리는 수고를 덜겠도다 / 今除夢想勞

 

청풍이라 처음에 누가 지었나 / 淸風始誰作
땅을 보니 사람도 호탕하겠네 / 相地人應豪
물가는 깨끗해서 벽옥과 같고 / 洲渚淨如玉
강물은 맑아서 터럭도 비친다오 / 江流澄鑑毫
수려한 봉우리는 신선이 모여 선 듯 / 秀峯仙侶會
비낀 능선에는 그림 병풍 드높아라 / 橫嶂畫屛高
심신이 상쾌해짐을 앉아서 깨닫노니 / 坐覺心神爽
어찌 안력의 수고를 저어하리오 / 何嫌眼力勞

 

산이 만약 묘한 이치 토론한다면 / 山如論妙理
여울은 필시 맑고 호방함 다투리라 / 瀨必角淸豪
제작하느라 누구의 손을 빌렸을까 / 制作煩誰手
신기함이 붓 속에 자세히 들어 있네 / 新奇細入毫
안개와 노을은 윤색할 줄을 알고 / 煙霞知潤色
물고기와 새는 각자 낮고 높아라 / 魚鳥自卑高
작은 고을에 할 일이 없다 해도 / 小邑雖無事
이 때문에 응접하느라 바쁘다오 / 斯爲應接勞

 

한 해가 다 가도록 선경을 차지하니 / 經年占仙境
몸은 병들어도 뜻은 오히려 호쾌해라 / 身病意猶豪
저녁노을은 푸른 기운을 내뿜고 / 暮靄噓靑氣
물새는 젖은 털을 볕에 말리네 / 晴鷗曬白毫
기이한 경치를 겨루는 강산이요 / 江山較奇勝
높고 낮게 난분분한 화훼로세 / 花卉亂低高
너희들이 돌아갈 생각을 막으니 / 爾輩沮歸計
벼슬하는 노고를 다시 잊겠도다 / 還忘作吏勞

 

- 한벽(寒碧)의 …… 누대 : 충청북도 제천군(提川郡) 청풍면(淸風面)에 있는 한벽루(寒碧樓)를 말한다. 고려 때 세워졌으며,

   조선 태종(太宗) 때 군수 정수홍(鄭守弘)이 중건하였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14 忠淸道 淸風郡》

- 한번 …… 만하도다 : 산호(山毫)는 중산호(中山毫)의 준말로, 모필(毛筆)을 말한다. 중산(中山)의 토끼털로 만든 붓이

  최고의 명필로 일컬어졌으므로, 보통 좋은 붓을 중산옥토호(中山玉兔毫) 혹은 줄여서 중산호ㆍ옥호(玉毫)라고 부르게

  되었다. 대본에는 ‘可以渾山毫’로 되어 있으나, ‘渾’은 ‘揮’의 잘못이기에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 봉심(蓬心) : 쑥대가 우거져 앞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답답하게 꽉 막힌 마음을 말한다. 장주(莊周)가 친구인 혜시(惠施)

  와 문답을 나누다가 “그대는 아직도 쑥대가 우거진 것과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夫子猶有蓬之心也夫〕”라고 비판한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莊子 逍遙遊》

- 현포(玄圃) : 위로 천계(天界)와 통한다고 일컬어지는 곤륜산(崑崙山)의 정상에 있다는 신선의 거처를 말한다. 그 위에는

  금대(金臺), 옥루(玉樓)와 기화요초(琪花瑤草)가 만발해 있다고 하는데, 보통 선경(仙境)의 뜻으로 쓰인다. 현포(懸圃)

  혹은 현포(縣圃)라고도 한다.

 

<출처 : 헌국고전종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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