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괘(乾卦) 상구(上九) 강의(講義)

퇴계집(退溪集) > 퇴계선생문집 제7권 > 경연강의(經筵講義)

 

 

〈문언(文言)〉에 이르기를, “‘극한까지 오른 용[亢龍]이니 후회함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한 것인가? 공자가 말하기를, ‘존귀하되 지위가 없고, 높되 백성이 없으며, 어진 사람이 아래 자리에 있어서 보필(輔弼)을 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움직이면 후회함이 있다.’ 하였다.”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항(亢)이라는 말은 전진할 줄만 알고 후퇴할 줄 모르며, 보존하는 것만 알고 멸망하는 것은 알지 못하며, 얻는 것만 알고 잃는 것은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오직 성인(聖人)만이 전진하고 후퇴하며 보존하고 멸망하는 것을 알아 그 바른길을 잃지 않으니, 오직 성인만이 이렇게 할 수 있다.” 하였습니다.

신(臣)은 아룁니다. 임금은 권세와 지위가 지극히 높습니다. 진실로 전진하는 일이 극도에 도달하면 반드시 후퇴하게 되고, 보존하는 것은 반드시 멸망하게 되며, 얻으면 반드시 잃는 일이 있다는 이치를 알지 못한 채 극한으로 높고 가득 차게 되면 의지와 기개가 교만하고 넘쳐서 어진 이를 업신여기고 스스로 성인인 체하며 혼자만의 지혜로 세상을 다스리려 하고, 신하와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며 덕(德)을 같이하여 성의로 서로 믿음을 주고받아 함께 나라 다스리는 도리를 이룩하려고 하지 않아 은택이 백성에게 내려가지 않습니다. 비유하자면 양기(陽氣)가 극도로 높이 올라가서 아래로 내려와 교류함이 없으면 음기(陰氣)가 스스로 올라가서 양기와 교류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어찌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이루어 은택이 만물에 미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이른바 ‘극한까지 오른 용이니 후회함이 있다는 것은, 궁극에 도달한 재난’이라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옛날의 현명한 군주는 깊이 이치를 알아 항상 스스로를 낮추고 굽히며 겸손하고 공경하여 자신을 비우는 것으로 도리를 삼은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일컬어 ‘덕이 부족한 사람[寡人]’ㆍ‘박덕한 사람[涼德]’ㆍ‘어린 나[予小子]’ㆍ‘보잘것없는 어린 나[眇眇予末小子]’라고 하였습니다. 그들 스스로 이와 같이 처신하면서 오직 혹시라도 교만하고 넘치고 자만하여 위태롭고 패망하는 환난에 이를까 두려워하였습니다. 이른바 가득 찬 것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 극도에 이르기 전에 방지한다면 후회 있을 자가 후회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사〉에 이르기를, “위태로움을 걱정하는 자는 그 지위를 편안하게 할 수 있고, 멸망을 걱정하는 자는 그 존재를 보존할 수 있고, 어지러움을 걱정하는 자는 그 다스림을 이룰 수 있는 자이다.” 하였습니다. 《주역》에 “망할까 망할까 하고 두려워하여야 총생하는 뽕나무에 매어 놓은 것처럼 튼튼하다.” 하였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성명(聖明)께서는 항상 이를 경계하시어서 극도로 높고 가득찬 마음 때문에 후회하는 일이 없게 하신다면 국가에 큰 행복이 되겠습니다.


건괘(乾卦) 상구(上九) : 건괘라 함은 3획괘로서의 과 6획괘로서의 를 말하는데, 《역경(易經)》의 64괘 중에서 제일 첫머리에 나오는 괘로서 가장 으뜸 되는 괘이다. 상구라 함은 제일 윗자리에 있는 양효(陽爻)를 말한다. 원래 6획괘는 6개의 효(爻)가 모여 한 괘를 구성한다. 그것을 아래에서부터 초효(初爻)ㆍ2효ㆍ3효ㆍ4효ㆍ5효ㆍ상효(上爻)라 부르며, 또 양효(陽爻)를 9, 음효(陰爻)를 6이라 한다. 따라서, 상구는 상효가 양효인 경우이다. 양효는 강강(强剛)한 것을 상징하고, 음효는 유순한 것을 상징한다. 그런데 건괘는 6효가 전부 양효만으로 구성되어서 가장 강강한 것을 상징하는 것인데, 그것의 최상의 위치인 상효가 양효인 건괘의 상구는 가장 상승의 극한 상태, 강성의 절정을 의미한다. 사람 특히 군왕은 이러한 최고의 상태에서 근신하고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언(文言) : 건괘(乾卦)와 곤괘(坤卦)에 한하여 그 괘사(卦辭)ㆍ효사(爻辭)를 확대하여 해석한 글인데, 공자가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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