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필(王弼)의 역리(易理)에 대한 변증설
(고전간행회본 권 42)
오주연문장전산고 > 분류 오주연문장전산고 경사편 1 - 경전류 1 > 역경(易經)
왕필(王弼)이 청담(淸談)하던 세상에 태어나 《역(易)》을 해설하고 이치를 말하였으니, 그의 훌륭함은 칭찬할 만한데 미공(眉公) 진계유(陳繼儒)가 폄(貶)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미공이, “《역》의 묘리는 획(畫)에 있는데, 왕필은 이치만을 말하여 송 나라 학자들에게 상수(象數)의 문을 열어 《역》이 드디어 하나의 처음과 끝이 있는 책처럼 되었으니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다.” 하였다.
상고하건대, 《주역약례(周易略例)》는 진(晉) 나라 왕 필의 저서인데, 유가(儒家)에서는 비록 그가 노(老 노담(老聃))ㆍ장(莊 장주(莊周))을 따라 공리(空理)만으로 《역》을 말했다고 하여 비웃지만 그의 글과 말이 명백하고 깨끗하여 읽을 만한 책이다. 형도(邢璹)는, “《약례》가 크게는 한 권의 전체 뜻을 모았고 적게는 6효의 득실(得失)을 밝혀, 승승역순(承乘逆順)의 이치와 응변정위(應變情僞)의 단서가 쓰임에 행(行)과 장(藏)이 있고 말이 험하고 평탄함이 있으니, 이 책을 읽어본 사람은 하늘과 땅의 진리를 모두 알고 귀신의 이치를 헤아려 나라와 가정을 바로잡을 수 있다.” 하였으니, 대개 독실히 믿었던 것이다. 그의 《약례명상(略例明象)》에, “상이란 뜻을 표출(表出)하는 것이요, 말이란 상을 밝히는 것이다.” 했고, 형도의 주에, “건(乾)은 변화하는 것이며 용(龍)이란 바로 변화하는 물건이니, 건의 상(象)을 알려면 용이라는 것을 빌어서 건을 밝혀야 하고, 용을 알려면 말[言]을 빌려서 용을 나타내어야 하니, 용은 곧 뜻을 나타낸 것이다.” 하였으며, 《약례》에, “말이란 상을 밝히는 것이니 상이 밝으면 말은 버려야 하고, 상이란 뜻을 나타내는 것이니 뜻이 나타나면 상은 버려야 한다. 이것은 마치 덫이란 토끼를 잡는 것이니 토끼를 잡으면 덫을 버리고, 통발이란 물고기를 잡는 것이니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말이란 상을 구하는 덫이요, 상이란 뜻을 구하는 통발이다.” 했고, 그 주에, ‘용상(龍象)을 얻으면 그 말은 버려도 되고, 건상(乾象)을 얻으면 그 용을 버릴 수 있다.’ 하였다. 《약례(略例)》에는, “유(類)로 미루면 상이 될 수 있고, 뜻에 맞으면 증거가 될 수 있으니, 뜻이 참으로 건(健)에 있으면 어찌 꼭 말[馬]이어야 하며, 유가 참으로 순(順)에 있으면 어찌 꼭 소[牛]이어야 하느냐.” 했다. 어떤 사람은 말은 건에만 일정해져 있다 하나, 상고하건대 비괘(賁卦)에, “말은 있어도 건은 없으니, 위설(僞說)이 많이 퍼져서 다 적을 수가 없다.”고 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 “그의 말이 이치에 맞으니, 미루어 책 읽는 법을 삼아야 한다.“ 하였으니, 세상에서 그의 말한 격조(格調)가 후세처럼 난만(爛漫)하지 못하고 노ㆍ장의 학이라 말하여 배척할 수 있겠는가? 공평한 마음으로 자세히 읽어보면 지극한 이치를 찾아볼 수 있으니, 진(晉) 나라 때의 청담이라 하여 죄를 주고 공격해서는 안될 것이다.
왕필(王弼)의 …… 변증설 : 본 변증설은 주로 노장(老莊) 학자인 왕필이 지은 《주역약례》에 대해 훌륭한 저서로 인정, 이에 대해 부당하게 여긴 진계유(陳繼儒)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한편, 이를 독실히 믿었던 형도(邢璹)의 말을 많이 인용하여 그 내용이 명백하고 깨끗하여 읽을 만하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주역약례(周易略例)》 : 명단(明彖)ㆍ명효통변(明爻通變)ㆍ명괘적변통효(明卦適變通爻)ㆍ명상(明象)ㆍ변위(辯位) 약례하(略例下)ㆍ괘략(卦略)으로 되어 있으며, 당 나라 때 사문조교(四門助敎)로 있던 형도(邢璹)가 주를 냈다.
《약례》 …… 바로 잡을 수 있다. : 《주역약례》서문에 보인다.
건(乾)은 …… 것이다. : 이는 《주역》건괘(乾卦)의 건의 상(象)을 용(龍)으로 표현했으니, 용이란 변화 무쌍한 것으로서 건의 변화가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물고기를 …… 버리는 것 : 《장자》 외물편(外物篇)에, “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蹄者所以在兎 得兎而忘蹄 言者所以在意 得意而忘言"이란 말이 보인다.
말은 …… 없다 : 《주역》비괘 육사효사(六四爻辭)에, “賁如皤如 白馬翰如 匪寇婚媾"란 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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