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 여덟 번째 이야기
2011년 10월 6일 (목)
중추일 아침에 성묘를 다녀오며

초목에 바람 높고 이슬은 마르지 않았는데
아침 추위 스며들어 옷을 껴입게 되네
뉘 집 묘제인지 까마귀들 시끄럽고
물가 근처 논은 묵어 물새들이 굶주리네
남은 여생 이 걸음도 그칠 날 있으리니
살았을 때 성묘를 게을리 하지 않으려네
가벼운 차림 말 타고 십리 남짓 선영 길을
짐짓 더디더디 재배하고 돌아오네

草樹風高露未晞
朝寒中軆欲重衣
誰家墓祭鳶鴉閙
近渚田荒鴈鶩饑
餘日此行終有盡
生時躬省莫敎稀
輕鞍十里松楸路
猶自遅遅再拜歸

- 조재호(趙載浩 1702~1762)
〈중추일조왕송추(中秋日朝往松楸)〉
《손재집(損齋集)》

창작은 시인의 몫이지만, 해석은 독자의 권리이다.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면 평범함도 감동이 된다.

요 근래 명절이나 벌초, 성묘 때면
제사를 줄이고 산소를 한 곳으로 모으자는 주장들이 부쩍 잦아졌다.
숨 가쁘게 변해가는 세태 속에서,
전통 예절도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성인도 시속을 따른다는 말을 굳이 들먹이며
전통은 형식이 아닌 정신의 계승이 중요하다고 쉽게 말들 하지만,
결국 그 선택의 무거운 짐을 지는 이들은
평생 전통을 계승하고 조상을 모시는 일에 성심을 다한 세대들이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나마 성묘를 거르지 않겠다는,
선영에서 멀어지는 아쉬움에 더디게 돌아오는,
그 옛날 노시인의 모습에서,

저승에 가 조상께 호된 꾸지람을 듣더라도
당신 대에 변개하여 자손들에게 편한 삶을 물려주겠노라는
우리 아버지들의 주름진 얼굴과 처진 어깨가 오버랩 된다.

가슴이 아리다.

 

글쓴이 : 권경열(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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