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물 세 번째 이야기
2011년 12월 15일 (목)
동짓날에

세태를 한탄할 게 무에 있으랴
저 천심도 또한 가고 오는 것을
오늘밤엔 술잔 들고 위안할 수 있나니
내일이면 미약하나마 양기가 돌아온다네

世態何須歎
天心亦往來
擧杯今可慰
明日一陽廻

- 김의정(金義貞)
〈동짓날에 다른 사람의 시에 차운하여[冬至次人韻]〉
《잠암일고(潛庵逸稿)》

시인은 조선 중종 연간의 문신이다.
그의 뛰어난 문장과 행의는
당대의 쟁쟁한 명사들부터 극찬을 받았다.

한때 실권자 김안로(金安老)의 미움을 받아
고향인 풍산(豐山)으로 낙향하였다가
김안로가 실각한 뒤에 다시 조정으로 돌아왔다.

이 시의 저작 연대는 명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낙향 전후의 시점에 지은 시가 아닌가 싶다.

동지는 한 해 중에서 밤이 가장 길다는 날이다.
밤은 어둠이고, 기나긴 어둠은 암울함이다.

대의도 없이 권세가에게 휘둘려 돌아가는 조정,
그런 권력에 굴복하고 빌붙는 부조리한 염량세태(炎凉世態),

제목에서 제시된 어두운 이미지는
첫째 구절의 표현과 겹치면서 더욱 극대화되어,
절망하는 시인을 저절로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동지는 역학적으로 보면
온통 음기가 가득한 세상에서
약하게나마 양기가 싹을 틔우려는 시점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절망하기보다는
한 잔 술을 기울이며
내일이면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는 작은 희망에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다.

 

글쓴이 : 권경열(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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