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 여든 세 번째 이야기
2012년 4월 26일 (목)
빗자루
먼지와 더러움으로 깨끗하지 않으면
땅의 본 모습이 어찌 빛나겠는가?

塵穢不淨
진예불정


地道何光
지도하광

- 기준 (奇遵 1492~1521)
<육십명(六十銘) 부옥추(富屋帚)>
《덕양유고(德陽遺稿)》

1519년, 중종반정의 공신들이 국정을 농단하던 것에 반대하여 성리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강력한 정치 개혁을 추진했던 조광조(趙光祖) 등 신진 사림(士林)들이 억울하게 죽어간 기묘사화(己卯士禍)가 발생한다. 이때에 화를 입은 사람을 기묘명현(己卯名賢)이라 부르는데, 기준(奇遵)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귀양갔다가 죽은 기묘명현의 한 사람이다.

유배지에서의 기준은 우리 주변의 일상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을 통해 그 사물이 가지는 깊은 의미를 깨닫고 이를 통해 끊임없는 자기 수행을 전개하는데, 그 성찰의 결과로 60가지 사물에 대한 명(銘)을 작성한다. 울타리, 부엌, 온돌, 창문, 측간, 술잔, 숟가락, 허리띠, 벼루, 주머니, 칫솔 등 늘 마주하면서도 무심히 지나쳤던 사물에서 발견한 의미가 재미있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다. 두루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이 글에서 살펴본 것은 60개의 사물 중 가장 마지막에 있는 빗자루에 대한 명(銘)의 일부 내용이다. 명문(銘文)의 제목에서 빗자루 앞에 ‘집을 부유하게 한다[富屋]’는 수식어를 붙여놓았는데, 이를 마음에 적용하면 마음의 윤택함, 즉 덕(德)의 함양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으니, 기준은 빗자루라는 사물을 통해 본성의 회복을 추구했던 듯하다.

소학의 가르침에서도 가장 우선적으로 행해야할 덕목으로 물 뿌리고 쓰는 것[灑掃]을 언급하였는데, 모든 일의 기본이 깨끗하게 쓰는 것임을 말했나 보다. 글자대로는 주변을 정갈하게 청소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청소할 것이 어찌 마당뿐이겠는가? 마음의 찌꺼기를 쓸어내어 맑은 마음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세상의 더럽고 추잡한 것들을 쓸어내어 바탕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가장 우선일 것이다. 부정한 세상 속에서 뜻을 펴지 못하고 30세의 젊은 나이에 죽어간 기준이 진정 쓸어버리고 싶었던 것은 더러운 당시의 정치 상황은 아니었을까? 근자에 누군가가 말했던 “정치도 청소하듯이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이 진정 아는 사람의 말인 듯하다.

글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