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환은 조선 후기의 문신ㆍ학자로, 평생을 학문과 후진양성에 힘쓰는 한편, 시무(時務)에도 밝아 19세기 조선사회의 문제점이 군역제(軍役制)와 서얼금고(庶孼禁錮)의 폐단에 있다고 보고 이의 개혁을 주장하는 등 조선 후기의 실학적 전통을 계승한 분입니다. 이러한 저자가 창문, 지팡이, 그릇, 책상, 의관, 신발 등 생활 주변의 사물 12가지를 보며 평소 깨달은 내용을 서술한 것이 「연거십이명(燕居十二銘)」이며, 그중 하나가 「신발[履]」입니다. 전문을 번역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신발이여 履乎 네가 있으면 내가 가고 有爾吾行 네가 없으면 내가 멈추니 無爾吾止 나는 너를 기다려 가고 멈추는 것인가 吾其待汝而行止耶 내가 가면 너도 가고 吾行爾行 내가 멈추면 너도 멈추니 吾止爾止 너도 나를 기다려 가고 멈추는 것인가 爾其待我而行止耶 너는 나로 하여금 가지 못하게는 할 수 있지만 爾能使我不能行 나로 하여금 멈추지 못하게는 할 수 없으니 而不能使我不能止 가는 것도 내가 가는 것이요 行亦吾行 멈추는 것 또한 내가 멈추는 것이로구나 而止亦吾止耶
신발이 있어야 다닐 수 있고 신발이 없으면 다닐 수 없으니 나는 신발에 좌우되는 존재. 그런가 하면 내가 걸으면 신발도 걷고 내가 서면 신발도 서니 신발 또한 나에게 좌우되는 존재. 그런데 신발은 나를 가지 못하게 할 수는 있지만 내가 멈추지 못하게는 하지 못합니다. 신발이 없으면 예의에 맞지 않거나 불편해서라도 가지 않을 수 있겠지만, 내가 가고자 한다면 저 신발이 끝내 나를 가거나 멈추게 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결국 신발이 있고 없는 것이 내가 가고 멈추는 것을 좌우할 수는 없다는 말씀. 왜냐하면, 가고 멈추는 주체는 결국 '나'이기 때문입니다.
2013년 새해가 밝고 벌써 두 달이 휙 지나갔습니다. 새해 첫날 다짐했던 결심들이 추위와 폭설과 그 밖의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둘씩 무너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결심을 지키지 못하는 핑계를 수십, 수백 가지 들 수 있겠지만, 그 모든 핑계의 근본 원인은 결국 나의 게으름과 나약함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 내일이면 3월, 아직은 쌀쌀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봄이 시작됩니다. 이 희망의 계절에, 내가 주체가 되고 내 삶의 주인이 되어, 가고 서는 것을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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